*신*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3
검색어 입력폼
  • James Joyce의 “The Dead”에 대하여 (더블리너스)
    학사학위 논문James Joyce의 “The Dead”에 대하여-Gabriel을 중심으로 본 삶의 본질-2008年 11月영어영문학과목 차제 1 장 서 론1제 2 장 본 론4제 3 장 결 론22참고문헌 29제 1 장 서 론James Joyce는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서구를 풍미하였던 모더니즘 문학을 주도한 대표적인 소설가이다. 'Epiphany', 'Stream of consciousness' 등의 용어를 문학 사전에 처음 편입시키며 현대문학에 커다란 변혁을 초래한 세계적인 작가라 할 수 있다. 그의 문학의 특성은 무엇보다 그의 독창적인 실험성에 있으며 기존 문학 형식의 틀을 파괴하고 20세기의 시대적 사회현상을 포착하며 현대성을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는 James Joyce가 1904년 ~ 1907년 사이에 쓴 Dubliners의 終章격인 단편소설이다. 상징주의 문학으로 유명한 James Joyce가 Dubliners를 쓰게 된 동기를, 그는 그의 친구 콘스탠틴 큐런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저는 한 개의 잡지에 열 개의 Epicleti를 쓰고 있습니다. 전 이미 하나를 끝냈습니다. 여러 개의 글들을 Dubliners로 이름 지어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에 대해 생각하는 반 신 불수 또는 마비된 영혼을 드러내려 합니다.)그는 더블린이라는 도시 속에서 마비되어 가는 인간상을 표현해내고 싶었고 마지막 단편인 를 통해 그것이 어떻게 극복되는지를 다루고 있다. 그의 작품은 아일랜드 민족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선구적 믿음의 기반이 있었으며 이러한 인습 타파의 과감성으로 7년이 넘도록 출판의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개념은 그가 위에서 말한 Epicleti라 할 수 있다. Epicleti는 Epiphany의 라틴어로, Joyce는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의 初稿를 이루는 Stephen Hero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By epiphany, he(Ste인 Gabriel을 중점적으로 작품을 살펴볼 예정이다.위에서 언급했듯이 작품은 파티를 맞이하는 모습들로 시작되고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Lily라는 등장인물을 나타내는 단어에서 이미 작품은 상징성을 지니게 된다. Lily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표현한 것이며 동시에 백합을 나타낸다. 백합은 그늘진 곳에서 자란다. 이는 Kitchen과 Dinning Room에서 주로 생활하는 인물의 모습을 상징하면서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성모마리아의 상징적인 꽃이며 작품의 전체적인 플롯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참조 했던 다수의 논문이 Morkan 자매에 대해서 마비된 인물군상으로 집어넣는 경우가 많이 있었으나 개인적으로는 그 의견에 부정적이다. Joyce는 Morkan 자매가 살고 있는 지역을 Usher's Island라고 표기하고 있다.For years and years it had gone off in splendid style, as long as anyone could remember; ever since Kate and Julia, after the death of their brother Pat, had left the house in Stoney Batter and taken Mary Jane, their only niece, to live with them in the dark, gaunt house on Usher's Island, the upper part of which they had rented from Mr. Fulham, the corn-factor on the ground floor. )Usher's Island 란 직역하자면 ‘경비원의 섬‘ 이라고 할 수 있다. 경비원이란 목적지까지의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조력자이다. 따라서 Morkan 자매는 일종의 Helper가 될지 모른다는 상징이며 또한 Island는 고립된 지역으로 더블린의 마비상 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두 자매는 항상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분위기를 ft fist backwards and forwards into his left eye.(270)박성수 著, “James Joyce 소설연구” 라는 책에 따르면 Freddy Malins는 ‘외모에서 나타나듯이 무절제한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자기 이외의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고 표현하고 있으나 나는 이것에 대해서 견해를 달리한다. Freddy Malins는 Gabriel과 반대되는 인물군상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그의 외모가 깔끔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의 행동이나 심성이 마비된 인간의 그것과 같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일종의 디오니소스적은 외모와 자유 방만함으로 작품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아폴로적인 Gabriel의 지성주의적인 모습과 반대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그의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와 인종과 같은 경계를 초월하는 모습에서 그의 모습은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본다.“And why couldn't he have a voice too?” asked Freddy Malins sharply. "Is it because he's only a black?"(292)Fred Malins의 자유 방만한 모습은 Gabriel의 이성적인 캐릭터를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마비되어 있는 인간 군상들 속에서 항상 술에 취한 듯 살아가는 마비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리처드 엘먼의 “James Joyce 평전”에서는 Fred Malins라는 인물의 설정을 자신의 측근의 한사람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해석을 적용한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작가의 의도가 포함되지 않은 해석일 수 있다. 그러나 작품 내에서의 마비된 Gabriel의 모습과 극명히 대비되는 그의 모습은 비록 술에 취해있으나 Gabriel에 비해 감성적이고 인간적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무도회가 시작되고 Gabriel은 Miss Ivors라는 인물과 함께 춤을 추게 되며 Gabriel은 그녀를 경계한다. Ivorrt carver and liked nothing better than to find himself at the head of a well-laden table.(289)그가 가장 안심하고 있을 수 있는 자리, 그것은 자신의 가치를 타인이 우월하게 보는 Head의 자리이다. 또한 잘 차려진 식탁(well-laden table)이란 단어는 그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극복할 상황이 없는 공간, 마치 골목대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놀이터의 느낌을 자아낸다. Joyce는 언어가 가진 느낌을 탁월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거위에 찔러 넣은 포크의 날은 Gabriel이 조금 전까지 Miss Ivors에게 느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며, 칼의 Edge를 살펴보며 그가 느꼈을 묘한 도취감을 firmly 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로서 그의 감정은 다시 한 번 회복 된다. 는 사실 중 단편 격이지만 매우 짧은 시간, 즉 거의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을 기술 한 것이다. 이 중단편 길이 속에서 Gabriel 만이 유독 많은 감정의 기복 변화를 갖는다. 이는 그가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작품에 대하여 고찰하면서 이를 하나의 도표로 그려보았으며 이는 다음과 같다.해당 도표를 바탕으로 작품을 바라보자면 Ivors가 떠난 이후에 그의 기분은 급격히 좋아지며 그가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작품 중반의 가장 고조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연설 부분으로 이어지게 된다.Gabriel의 연설 자리에는 다양한 음식들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으로 되어 있다. 성대하게 차려진 파티 음식은 오감이 총 동원되어 물과 불의 조화로부터 만들어져 향유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Motif를 지닌 상징적인 음식들 가운데 위치한 인물들의 대화는 죽음에 관련된 것으로 매우 상반된 이미지를 지니게 된다. Gabriel이 연설에 임하면서 나타내는 Joyce의 상징적인 묘사는 여기서 한 번 더 빛을 발하게 Malins beat time with his pudding-fork and the singers turned towards one another, as if in melodious conference, while they sang with emphasis:Unless he tells a lie,Unless he tells a lie, (301)이는 결국 Gabriel의 언사가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비판적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낸 다 또한 그의 이러한 위선적 발언에 대해서 부정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조롱적인 어조로 기술해 나가고 있으며 작품은 이곳에서 한 번의 정점을 찍게 된다.파티가 끝나고 소설의 초점은 본격적으로 Gabriel과 Gretta 에게 맞춰진다. Gretta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면서 Gabriel은 그녀의 모습이 마치 그림의 한 장면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He stood still in the gloom of the hall, trying to catch the air that the voice was singing and gazing up at his wife. There was grace and mystery in her attitude as if she were a symbol of something. He asked himself what is a woman standing on the stairs in the shadow, listening to distant music, a symbol of. If he were a painter he would paint her in that attitude. Her blue felt hat would show off the bronze of her hair against the darkness and the dark panels of her skirt would show off the light ones. Distant Music he would call the picture if he.
    인문/어학| 2009.05.11| 24페이지| 2,500원| 조회(1,820)
    미리보기
  •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대해
    The Birth of Venus (1487)Sandro BotticelliⅠ. 들어가기 전에.도서관을 뒤져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찾아 다니면서 어떤 주제를 잡을까 몇 일을 고민한 것 같다. 미술을 하겠노라 정해 놓고 한동안 고심한 끝에 끝내 정하게 된 것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이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서 할까 말까 많은 고민도 했지만, 너무도 마음을 끄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비너스의 표정에 넋을 잃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한 사람의 기분을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작품의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따뜻한 르네상스 회화들과 작가가 되어 그 속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음악과, 커피한잔이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예술은 가장 섬세하고 깨닫는 형태이며 대상과 일치하면서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존재한다.그림은 화가의 내면 세계로부터 시작되어야만 하며 이것은 의식 속에 살아 있는 이미지로서 생생한 환상이면서도 또한 알 수 없는 것이다. 로렌스 (D.H.Lawrence)Ⅱ. 작가에 대하여.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1444~1510). 영어로 쓰거나 발음해도 참 매력 있는 이름이다. 내가 아는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출생을 했으며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이다. 작품은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이외에도 《프리마베라 (1477∼1478, 우피치미술관 소장)》라는 작품이 있다.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그는 메디치가의 지식인 모임의 주요 멤버였으며 유려한 선과 투명감 넘치는 색채로 비너스나 성모자상을 그렸는데 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화풍으로 '시인 화가'라 칭송받았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필리포 리피에게 그림을 배운 듯하며, 이어 베로키오와 폴라이월로로부터 사실주의를 배웠다고 한다.. 후에 그는 사보나롤라가 순교하자 그의 슬픈 추종자로서 예언자적 신비주의로 변모하였으며, 1501년 제작한 《신비의 강탄(降誕)》(런던 내셔널갤러러 소장)이나 《신비의 십자가》(미국 케임브리지 포그미에 집착하기 시작한 근세 초기의 인간들은 이 지상 위에 삶을 영위하는 자각한 인간의 개별상으로서 종교화 내지 자화상 또는 초상화를 많이 남기게 된다. 한편 이러한 개별 인간의 상을 넘어서서 일반적인 또는 이상적인 인간의 상으로서 나체상을 들 수 있다. 그것은 신화나 전설 또는 종교적인 주제를 통해 표현되고 있음이 보통이다. 원래 고대 그리스의 나체 조각 이래로 서양에서는 진실되고 아름다운 형체가 가지는 보편적인 비례를 다름아닌 인간의 나체상에서 찾았다. 육체를 죄라고 생각하는 금욕적 윤리가 지배하던 중세에 반해 르네상스가 되어서야 비로소 누드가 탄생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누드의 대상은 아담과 이브의 그림을 제외하곤 모두 비너스의 이름을 달고 있었다고 한다.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찾아볼 수 있는 이와 같은 일편의 세속적인 근대적 정신은 교회나 종교의 예속에서부터 점차로 예술가를 해방시켜 예술가의 상상과 주관에 의한 예술 창조에로의 새로운 길을 터놓았다. 자, 이만하면 전체적인 상황은 정리가 되었을 것 같다. 르네상스라는 시대는 보티첼리의 타고난 회화적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이었다. 비잔틴과 고딕의 신성한 위엄으로부터 인간 중심의 새로운 가치체계를 성립시킨 르네상스는 비너스의 탄생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Ⅳ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따른 느낌들.자 이제 그의 유명한 작품중의 하나인 비너스의 탄생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아야겠다. 작품에 대해 많이 알아야만 꼭 많은 것을 배워가고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사전지식이 있으면 더욱더 좋지 않은가? 알고 있듯이 이 작품은 신화에 근거하고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1) ‘시간의 신 크로노스(Cronos)가 낫으로 자기 아버지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의 '성기'를 싹둑 잘라 버렸다. 이때 우라노스의 '성기'가 뿜어 낸 피 중의 일부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에게로 튀었고, 일부는 대지를 둘러싸고 있던 바다에 떨어졌다. 이 피가 한 덩어리의 거품이 되어 오랜 세월 바다 위를 떠다니게 ros)는 여신이 타고 있는 조개를 해변으로 밀어 한 섬에 상륙하게 했다. 여신이 상륙할 당시에도 거품은 여신이 탄 조개 껍데기 주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마침 이 섬에 있던 호라이 3자매 여신의 맏이 탈로는 이 여신에게 옷을 입혀주고는 '거품에서 태어난 여신'이라고 해서 아프로디테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프로디테가 상륙한 섬이 바로 키프로스다. 이때부터 이 섬은 아프로디테 여신의 섬이 된다.’원래 신화와 관련된 그림들은 그 신화를 알지 못하면 똑바로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서 찾아보았었다. 그 다음으로는 비너스의 몸을 살펴보았다. 팔꿈치의 뽀족함이나 휘어짐을 보면 작가의 개인적인 인체 비례가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녀의 얼굴과 목을 살펴보면, 그 당시에는 참 해부학적인 지식이 부족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뭔가 어색하고 입체감이 떨어진다 랄까? 그리고 또한 그녀가 서있는 포즈도 그러하다. 그녀의 서있는 모습은 약간 다리가 구부러져 있는데, 알아보니 그것은 일종의 콘트라포스트1) 라고 한다. 그녀의 모습 주변에는 봄의 여신으로부터 떨어지는 장미꽃이 흩날리고 있으며 이러한 풍경은 왠지 낯이 익은 풍경처럼 느껴졌다.비너스의 탄생이 제작된 상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작품은 결혼식을 앞두고 또는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라 한다.3)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이탈리아에는 고전적 주제를 다룬 그림으로 결혼을 축하하는 전통이 있었지만 그런 작품은 대개 신부용 화장도구 상자 옆면에 그려졌다. 보티첼리의 그림은 크기에서도 전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뿐더러 고대의 신화와 문학을 언급한 복잡성도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화가가 묘사한 것은 비너스가 탄생한 직후의 순간이다. 바다에서 이미 태어난 여신은 막 발을 내디디려 하고 있다. 바람의 신 제피루스가 옆에서 비너스를 해안쪽으로 불고 있다. 그가 불고 있는 서풍은 앞으로 그녀의 삶에 닥칠 고난들을 의미하는 듯 하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바람의 신을 껴안고 있에 이 내용을 알기전에는 그녀의 표정에 주목하지 않았었고 단지 아내인줄만 알았는데, 그렇게도 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화가가 의도했던 비너스는 예비 신부의 시적 표상일 것이다. 비너스는 현실세계, 사랑과 결혼의 세계에 막 발을 내려 놓는 순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닉슨의 말에 의하면 이 그림은 처녀가 아내가 되어 출산과 생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을 시적으로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순간 나도 흥미롭게 느꼈던 것이 왼쪽의 그림에서 보면 비너스의 몸을 가려주려 하고 있는 계절의 여신의 오른손에는 망토(여자다움을 나타내는 은폐물)를 쥐고있는데, 붉은 헝겊의 고리는 분명히 여성의 성기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새로운 성장을 상징하는 나뭇잎 하나가 그 고리 안에 갇혀 있다. 자세히 보면 그림 아래쪽에 그녀의 머리다발을 볼 수 있다. 비너스는 이 머리타래를 얌전히 몸에 붙이고 있지만, 그것 역시 여성의 성기 모양을 이루고 있다. 신성한 결혼에 대해 다루지만 이 그림에서 암시적이고 강조되는 부분은 노골적이라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녀의 얼굴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조각상처럼 굳어 있지만, 아름답다. 슬픔과 아쉬움과 즐거움에 대한 작은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맺어지는 듯 하다. 온화하지만 그 슬픈 눈에 빠져들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봄의 여신이라는 붉은 망또를 든 여인은 풍성함(?)과 따뜻함이 느껴지지만, 그녀의 얼굴은 굳어 있는 듯 하다. 아니면 비너스에 대한 연민과 걱정의 눈빛을 담고 있는 듯도 보인다.그림자체만의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그는 효과를 위해 금가루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는 금가루를 사용하는 그림들이 많았다고 알고있는데, 그러한 화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 보다. 오른쪽 그림에서처럼 바닥에 반짝이는 부분이라던가 조개 위에서의 하이라이트 부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금가루를 사용하는 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난 단지 그것은 표현의 소재일 뿐이라 내용으로 추려 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 사실이다. 혹여 나 미술사 쪽으로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작품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모든 미술 작품들이 그러하듯 그 따뜻함이 이끌어내는 감상이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비너스의 탄생은 곧 르네상스의 탄생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당시는 초기 르네상스 시절이었긴 하지만 앞으로 이어질 거대한 르네상스의 전성기가 오고 있다는 느낌. 물론 거기에는 제피로스의 서풍과 같은 고난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육지에 닿을 듯 말듯한 그녀가 타고있는 조개와 망토를 들고 뛰어 나가는 계절의 여신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정작 그녀의 얼굴에서는 평온함과 슬픔을 엿볼 수 있다. 글쎄, 왜 슬프다고 느끼게 되는 걸까? 저렇게 온화한 표정에서. 꼭 자신이 불행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현실에 직면하게 될 자신의 모습에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지금 내가 듣고 있는 Astrud Gilberto의 음악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붉은 색의 망토가 주는 강렬한 느낌이 순수한 모습의 그녀를 감싸 안으려 하고있다. 조개 끝에 아슬아슬 하게 서있는 비너스의 모습이 보면 볼수록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림 속 모든 사물이 그녀를 현실의 세계로 떠미는 듯 하다. 보티첼리가 결혼에 대해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비너스는 어떠한 존재일지가 궁금하게 된다. 내가 조사하고 위에 설명한 바로는 육체적인 사랑의 상징이라고 해야 한다. 그 이전 시대에서 중요시 했던 정신적 사랑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르네상스의 특징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하지만 그는 정신적 사랑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비약일지 모르나 그림 속 그녀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확실히, 육체적 사랑이란 신에 대한 사랑에 비해 저속하다. 하지만 그들은 보완 관계에 있다. 말 그대로 그녀는 육체적이고도 정신적인 완전한 사랑의 결정체인 것이다. 그리고 육체적인 사랑의 측면에서 보자면 아쉬움을 느끼는 듯한 비너스의 표정은 처녀성을 잃는 것에 대한 아쉬움일
    인문/어학| 2008.01.03| 5페이지| 1,000원| 조회(1,573)
    미리보기
  • 햄릿과 베니스의 상인에 나타난 복수에 관한 고찰 평가A좋아요
    -Shakespeare and Drama - Final Report.PAGE작품 ‘햄릿’과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본복수(REVENGE)에 관한 고찰.INTRODUCTION.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접해보고 나니 그 주제가 인간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햄릿’과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는 삶과 죽음, 사랑, 정의 등의 주제들이 담겨있었다. 여기서는 ‘햄릿’과 ‘베니스의 상인’의 근저(根?)에 깔려있는 복수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어 볼 것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물론 복수에 대한 내용이 있으나 잠시 접어두기로 하겠다. 복수의 감정을 작품을 통해 살펴봄으로서 인간에게 내재된 복수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들은 왜 복수하려 하는가?두 작품내에서 복수를 계획하는 인물, 햄릿과 샤일록은 그 세계에 있어서 진정한 아웃사이더이다. 샤일록은 기독교적 세계에서의 유대인이며, 햄릿은 비탄과 죽음의 세계에 머물러있다. 이 두 아웃사이더는 도대체 왜 복수를 하려하는가? 셰익스피어는 작품에서 그들에게 복수의 이유와 정당성을 각각 부여해 주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유태인에 대한 지독한 멸시에 대한 보복. 이는 보는이들에게 까지도 그들의 복수가 정당하다고 어느 정도 수긍하게 만든다.또한 그러나 그들에게는 차선책이 있었다. 우선 햄릿의 경우 복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무사히 왕위를 물려받고 오필리어와 결혼하여 자신이 원하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지게 되어 있었으며, 또한 샤일록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이 빌려주었던 돈의 갑절이상을 받아서 다시 장사를 시작하고 어쩌면 딸을 되찾아 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대체 복수가 무엇이기에 그들에게 차선책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들었을까?그것은 바로 증오의 감정이자 복수의 감정이다. 증오와 복수의 감정들은 인간의 이성적인 측면을 마비시킨다. 그것들은 인간이 통찰력을 가지고 본질을 보는 시야를 가리고 극도로 감정적으로 만든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작품의 이러한 복수에 집착하는 장면들을 통해 한 인간이 응어리진 감정을 가슴속에 지니고 산다는 것, 그것을 해소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나라는 왜 일본을 용서하지 못하는가? 흔히들 우리 민족에게는 한의 정서가 있다고 한다. 이 한(恨)이 증오와 복수의 감정을 참 많이 닮아있지는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햄릿과 샤일록의 복수하고 싶은 마음과 무엇이 다를까? 일본이 호주에게 축구를 지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대부분이 환호성을 질렀지 않은가? 사실 그런면에 있어서 그들에게는 충분히 복수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햄릿의 복수와 샤일록의 복수.결과적으로 샤일록은 복수를 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 둘의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든가 태도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는다. 우선 복수의 태도면에서 보자면 햄릿은 샤일록에 비해서 훨씬 우유부단했다. 햄릿이 복수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인 방법(비유, 연극)을 써서 복수를 조금씩 실행에 옮긴 반면에 샤일록은 복수의 이를 드러내고 수많은 기독교인들 앞에서 당당했다.사실 이러한 복수에 대한 태도는 그들의 환경에 의한 것이었다. 햄릿은 자신의 아버지가 된 삼촌을 죽여야 하는 윤리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또한 어머니에게는 그 복수의 날을 들이댈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를 광기로 몰아가서 오히려 복수를 하는데 침착성을 잃게 만든 것일 수 있다.반면 샤일록은 법적인 물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만든 법이라는 제도가 가지는 강한 구속성과 절대성을 통해 자신의 복수를 방법적인 측면에서 정당화시킬 수가 있었다. 또한 샤일록은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더욱 적극적일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다.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두 사람의 태도는 전체적인 작품의 역동성에 따라 달랐다고 볼 수 있다. ‘햄릿’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암울하고 무력감이 느껴지는 캐릭터들과 분위기로 가득 차 있는 반면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좀 더 역동적이고 모험심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역동적인 항구의 음지에서 오히려 샤일록이 마음은 독해졌을 것이다.이처럼 두 사람의 복수에 대한 태도는 각자의 환경에 의해서 조금씩 다르나, 결국 두 사람 모두 죽임을 통해서 복수를 이루려는 면에 있어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복수의 상황으로 치달아 가는 모습역시 닮아있다. 햄릿이나 샤일록 둘 다 처음부터 그렇게 막무가내로 복수를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햄릿의 경우 선왕의 유령의 압박이 있었으며 사일록에게는 자신을 궁지로 몰아가는 환경적인 압박이 있었던 것이다.그들은 복수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였다. 햄릿은 선왕의 원수를 갚는 것과 동시에 그의 권력을 얻어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였다. 또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으로서 사회적 정의가 바로 서게 되기를 희망한 것이었다.샤일록은 유태인의 대표인이라고 볼 수가 있다. (단적인 예로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태인이라는 단어가 58번이나 사용되고 있는데 비하여 샤일록이라는 이름은 17번에 불과하다.) 그의 복수는 그의 민족에 대한 멸시와 지탄에 대한 것으로서 자존심과 명예심의 회복을 희망한 것이었다.-감정의 미묘한 모순관계.우리는 흔히 ‘햄릿’을 비극이라 하고 ‘베니스의 상인’을 희극이라고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햄릿은 복수에 성공했다. 비록 햄릿이 죽긴 했지만, 그의 도시에는 새로운 희망을 암시가 싹이 트게 된다. 그렇지만, 햄릿이 죽었으니까, 비극인가?또한 ‘베니스의 상인’은 누구를 주인공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샤일록은 복수를 성공하지 못하고 파멸로 치닫게 된다. 악인이 정의에 따라 벌을 받았으니 희극인가?이는 매우 미묘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삶과 죽음만이 희극과 비극을 나눌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복수에 성공한 햄릿을 보면서도, 혹은 안토니오의 승리와 샤일록의 패배를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또한 햄릿이나 샤일록이 자비를 배풀었어도 우리는 아쉬움과 씁쓸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감정은 양날의 검이다. 한편으로는 통쾌하고 속 시원한 감정을 가지는 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움과 동정심을 느끼는 것이다. 비단 자비뿐만 아니라 사랑-미움, 슬픔-기쁨과 같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은 결국 미세한 차이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독자와 관객들은 햄릿의 복수를 동정하다가 그의 광기어린 모습을 보게 되고 그가 정말 본것이 유령이 맞는지 혹은 그의 광기로 인해 지어낸 것은 아닌지 하며 작품을 반추해가기 시작한다. 또한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샤일록은 고리대금업자의 악마의 이미지로 해석되다가도 결국 재판장면에서 자비를 요구한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일푼의 자비없이 당하게 되고, 독자나 관객은 또한 자신이 그동안 샤일록을 잘못 보아온건 아닌지 반추해 올라가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감정 사이에는 미세한 선이 있어서 그 선을 넘어서게 되면 다른 감정의 공간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복수를 계획하던 인물들에게 주어지는 시련은 너무나 모순되다고 할 만큼 가혹하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기독교인들이 베풀라고 강요하는 자비란 그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 상황이 역전되고 나서 샤일록에게는 그들이 그렇게나 요구하던 자비는 전혀 주어지지 않고 오히려 복수를 하는 계기가 된다. 신에게 용서를 구하던 클로디어스가 햄릿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는것 또한 얼마나 모순된 행동인가?-복수와 현실.위에서 보듯이 사실 그 두 인물에게 현실의 상황은 복수밖에 할 것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는 원한과 갈등, 그것에 대한 복수가 담겨져 있다. 물론 비단 그 당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에도 살인과 같은 여러 복수극들을 사회 일면에서 접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인문/어학| 2007.12.23| 4페이지| 1,000원| 조회(683)
    미리보기
  • 향수 감상문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가 최근 영화로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우면서도 두려움이 앞섰다. 책을 먼저 접한 독자에게 영화로 다가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런 이야기를 접했다. ‘칠리소스에는 칠리가 1이 들어갈 때 토마토 4가 들어간다. 그럼에도 이름은 칠리소스다. 무엇이 나를 나라고 불리게 만드는가.’ 자신의 향기를 만들고 싶었던 살인자를 다룬, 영화와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본다.소설 『향수』는 그 전개가 매우 논리 정연하며 치밀하다. 몽환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사실적으로 다가오며 심지어 혐오감을 느끼게까지 한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에 대한 내용임에도 적절히 시각화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내용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영화는 이러한 소설의 줄거리를 대체적으로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시점 역시 전지적 작가시점과 주인공 시점으로 동일하게 채택하고 있는데 사실 이 때문에 영화의 전반부는 조금 지루했다. 이는 우리가 앞서 살펴본 다른 영화나 소설들에서처럼, 영화의 매체적인 특징에 기인한다. 방대한 내용을 두 시간 안에 전달해야 하며 따라서 생략할 수 없는 줄거리들은 내레이션으로 처리한 것이다. 물론 이와 관련하여 에스피나스 후작의 이야기와 같은 일정 부분들은 실제로 생략한 것이 눈에 띄었다.영화에서는 소설과 달리 동시적인 전개를 위해서 그르누이를 강아지에 의해 이미 범인으로 만든다. 그리고 여관에서의 완벽한 범죄 이후에 산에서 붙잡히게 한다. 소설에서 그르누이는 오직 향수만 만들면 그만일 뿐 자신이 잡히거나 하는 것에 관여하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그르누이적 사고방식이 이미 앞에서 생략되었거나 약화되었기 때문에, 그르누이라는 인물이 범인으로 지목받을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남겨두었다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러한 면에서 영화 “향수”는 단순히 소설을 답습한 것이 아닌 자체적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영화적 기법들이 보여줄 수 있는 역동성과 후반부의 빠른 전개 등은 작품의 줄거리와 분위기를 긴장감 있게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포커스가 약간 어긋났다는 생각이 든 곳도 있었다. 소설의 경우 그르누이가 향기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이 그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후반부로 갈수록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때문에 그는 모두를 지배하는 향기를 만들기 이전에 사람 냄새를 연구하고 자신에게 시험해보는 과정을 거친다. 결국 그는 결말에서 자신이 만든 향기는 허울뿐인 욕망의 덩어리라는 것을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멸하고 만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정체성과 관련하여서 설득력이 적었고, 따라서 마지막 처형대 장면에서도 사랑, 죄책감과 같은 코드를 넣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영화에서 그가 동굴에서 나온 뒤 그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사람들로부터 받는 무관심을 다루었다면, 영화는 좀 더 소설에 충실하게 만들어 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극적 긴장감과 파격성은 훨씬 떨어졌을 수도 있다. 이처럼 영화가 가지는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의 딜레마는 항상 아쉬움을 남기기 마련이지만, 작가에게 15년을 졸라서 만든 영화라고 하기에는 소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소설에서 그르누이는 자신의 인생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도망칠 수 있는 목표의 세상을 잃고 자신을 지운 인물이었다. 영화는 그르누이의 생각을 영상으로 표현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모습은 무어라 확정지을 수 없는 애매함의 감정으로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영상의 한계일 수 있다. 실제로 영화는 다소 황당하다는 평을 많이 받았지만 소설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물음표들을 사람들 사이로 던져 넣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7.12.23| 2페이지| 1,000원| 조회(407)
    미리보기
  •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감상문
    문학과 영화,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지독한 건조함이 가득한 방, 창문조차 없다. 이상하게도 어두움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조세프 K의 삶을 방으로 비유한다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하고 생각을 했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마음 졸이며 사는 것 보다야 죽는 게 나을 거야.’ 라는 냉소적인 생각도 가져본다. 소설은 어려웠다. 영화는 답답했다. 프란츠 카프카에게 다가왔던 인간 실존의 문제는 어렵고 답답했던 게 틀림없다. 소설과 영화에서 내가 느꼈던 매체적 특징과 실존적 문제에 관련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우선 소설과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소설에서는 작가의 특별한 개입 없이 전개되어 나간다. 아무 이유 없이 체포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그 과정들은 무언가 함축적이고, 인물간의 대화들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은밀하게 내포되어 있을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참 잘 써졌다고 생각했던 점은 영상을 보지 않고서도 그 어둡고 빛이 없을 것만 같은 배경을 충분히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직업으로 정의되는 인물들을 집어넣고 그들의 특징을 살림으로써 다양한 인물 군상들에 대한 묘사를 어색하지 않게 배치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면에서 보자면 영화는 소설의 요소를 적절하게 살려내었다고 본다. 영화라는 매체적인 특성을 이용, 음울하면서도 추리적 성격의 음악을 삽입함으로서 지루해질 수 있는 순간들의 극적 긴장감들을 살려내고 어두운 영상을 통해 분위기를 표현해 내었다.반면 그루바흐 부인과의 대화라던가 공장주와의 대화, 티토렐리의 그림 판매 등은 영화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성당에서의 문지기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 나타나 있는데 이러한 부분들이 삭제된 이유는 영화의 대중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앞에서 언급한 몇몇 부분들은 그 비중이 작고, 몇몇 부분들은 지나치게 상징적이고 난해하기 때문에 감독의 입장에서는 간소화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부분에 공장주와의 대화를 빼고 레니로부터 티토렐리로 이어지는 부분을 보면 원작의 모든 내용을 넣기에는 지나치게 지루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엿보인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런 이야기들이 빠지게 됨으로써 영화는 결국 관객에게 무수한 물음만 던져놓은 채 끝나게 되고 K의 죽음이란 것이 뭔가 허무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반대로 소설의 경우 텍스트라는 형식의 장점을 이용하여, 영화보다 K의 체포와 죽음에 관하여 미약하게나마 설득력 있게 다가서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가가 직접 개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양한 인물군상들의 짜임새 있는 배치와 K의 내면 독백 등을 통하여 좀 더 다양한 각도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이는 두 매체의 특성적 차이라고 본다. 영화는 영상과 음향으로 관객에게 특정 주제를 주어진 시간 내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소설보다 좀 더 뚜렷한 기승전결과 주제의식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결국 한 인간의 존재가치의 상실과 그 모순됨, 부조리함에 초점을 맞춘 영화 ‘The Trial’ 에서의 K는 아무런 죄도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수업시간에도 그러했듯이, 소설을 볼 때 우리는 죄라는 것의 본질 또한 생각해보게 되었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보았지 않은가?두 번째로 실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고 하였다. 결국 한 인간이 실존해 있다는 것은 그가 어떤 본질적인, 인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느냐 보다 우선한다는 말이다. 카프카는 K가 어떤 윤리적이거나 실재적인 죄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을 통하여 실존의 문제를 다룬 것은 아닐까? K가 존재하고 있는 세상은 다락방에 법원이 있으며 여자들은 온통 그에게 욕정의 손길로 다가서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부조리의 세상이다. 그림이든, 사람이든 간에 그의 행동들은 무언가에 의해서 항상 감시당한다. 결국 카프카가 제시하고 있는 ‘피고’ 라는 것은 문지기에게 적극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문인지 물어보지 않은 것처럼,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 없이 부조리한 세상을 부도덕한 방법으로 풀어 나가려는 사람들인 것이다. 죽음에 이르러서 K는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사람의 모습을 본다. 어쩌면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는지 모른다. 자신이 존재의 형태를 지니고 태어났던 날에 체포되어서, 자신이 태어났던 날에 죽음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이면서도 희망적인가.
    독후감/창작| 2007.12.23| 2페이지| 1,000원| 조회(675)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8
8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4
  • A좋아요
    3
  • B괜찮아요
    1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3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5:31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