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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재상서의 분석과 평가 평가A좋아요
    Ⅰ. 上梓相書의 분석과 평가1. 배경과 중요성1839년 3월 5일 우의정 “이 지연”이 교회 박멸 정책을 김 대왕대비에게 올려 허락을 받은후 교회 박해의 불길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가운데 10월 1일 마지막 발악으로 조인영에게 「척사윤음(斥邪倫音)」을 짓게 하여 김대왕대비의 이름으로 전국에 돌리게 하였다. 이에 정하상(바오로)은 기해년 박해가 시작되자마자 천주교의 교리가 참되며 공명정대함을 우의정 “이지연”에게 알리고자 3천4백자의 ‘상재상서’를 지었다)2. 상재상서의 분석1). 천주학이 유교의 문에 해가 되겠는가?천지를 주재하시는 분에게 3가지 증거가 있는데 하나는 만물이고 하나는 양지(良知)이며 하나는 성경이다.만물은 동.식물의 기기묘묘한 모양이며良知는 그 본래의 마음과 떳떳한 본성이어서 이것으로 주재가 있음을 알게 한다성경은 성교의 경전이다천주가 만물을 창조하심은 그 복을 같이 하게 하고자 함이며 그 덕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이를 받들어 섬기는 것은 죄과를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여 계명을 따를 뿐이다. 계명에는 십계(十計)가 있는데 1-3계명은 천주를 섬기는 절목이고 4-6은 사람을 다스리는 공부이다. 곧 천주를 만유 위에 사랑함과, 남을 나와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안자(顔子)가 말한 4가지 하지 말라는 것과 예기(禮記)에 말한 9가지 생각하라는 것, 충서(忠恕), 효제(孝悌),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모두 십계속에 있어 티끌만큼이라도 부족함이 없다. 이 도로써 한 집안에 행하면 그 집은 가히 다스려질 것이고, 한 나라에 행하면 그 나라는 가히 다스려질 것이고, 천하에 행하면 천하가 가히 태평할 것이다. 이 도는 천자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행하는 길이므로 유고에 해가 되고 난(亂)으로 된다고 할 수 없다2). 천국과 지옥이 없다고 하는것에 대하여천주의 계명은 다만 그 일을 다스릴 뿐 아니라 그 마음도 다스린다. 천주는 지극히 공평하여 착함을 반드시 갚으며 올발라 악함을 반드시 벌하는데 그 영혼에 한다. 영혼은 3가지가 있는데제1은 생혼으로 초목의 혼으로 생장하나 지각이 없고제2는 각혼으로 금수의 혼으로 지각하나 의리를 알지 못하고제3은 영혼으로 사람의 혼이다. 이는 생장, 지각, 시비분별하고 도리를 추론할수 있다. 오직 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귀하며 영혼은 불사불멸이다. 착한자는 하늘로가 상을 받되 “천당의 영복”을 받고 악한자는 땅으로가 벌을 받되 “지옥의 永苦”을 받는다. 천국과 지옥을 보지 못하였다고 없다고 하는 것은 장님이 하늘에 해가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한 나라의 임금이 상벌의 권을 갖고 있는데 하물며 천지의 대군이겠는가? 이는 족히 진교의 한 증거가 된다. 한 마디로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공변되고,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참되고, 지극히 홀로 오직 하나이어서 둘도 없는 교이다.3). 무부무군(無父無君)의 학이 아니다십계의 제4에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고, 무릇 충효 는 만대에 바꿀 수 없는 길이다. 부모의 뜻을 받들고 몸을 봉양함은 사람의 자식이 마땅히 할 바의 일로서, 교를 받드는 사람은 더욱 간절히 삼가고 있다. 부모를 섬기되 그 예를 다하고 봉양하되 그 힘을 다하며 충을 임금에게로 옮기어 몸을 바치고 몸숨을 던져 끓는 물에 뛰어 들어가고 불을 밟아 감히 피하지 않는다. 한나라에는 임금이 가장 귀하고 임금보다 높은 것은 천지의 대군이다. 또한 아비의 명을 듣되 임금의 명을 듣지 않으면 그 죄는 무겁고 임금의 명을 듣되 천지의 대군의 명을 듣지 않으면 그 죄는 더욱 무겁다. 그러므로 천주를 받들어 섬김은 임금의 명을 어기고자함이 아니요 부득이한데서 나옴이다.4). 재물과 색(色)을 통한다고 한다재물을 서로 통함은 가난한자와 가진이가 서로 도와 사는 것으로 금할것이 못되고 色을 통한다고 하는데 성교는 사음을 중복하여 엄금한다. 제6계명에 사음을 행하지 말라는 몸으로 범하지 말라 함이요, 제 9계명에 남의 아내를 원치말라는 마음으로 범하지 말라 함이다. 그런데 색을 통한다고 하는 것은 도의 참됨, 거짓됨과, 일의 그릇됨, 옳음을 알아보지 않고 외국의 도이기 때문에 물리치는 것이다. 금이라는 것은 그것이 나온 땅으로써 택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깨끗함이 보배가되는 것인데 도는 어느 지방으로써 억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거룩함이 곧 참된 것이 된다. 그런데 그 도가 전한 곳을 가지고 어찌 이곳 저곳의 지경으로 삼겠는가? 중국에는 각 나라의 사람들이 왕래하여 외국인이 많이 와서 삶이 있으되 일찍이 금함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불교의 경우는 서역의 이단이었고, 화복을 헛되이 떠들며 어리석은 백성을 공갈하여 괴상한 페해를 이루고, 무당, 풍수, 산명, 관상등은 여자와 어린이를 속이어 재물을 낚으나 포용이 되지만 성교에 이르러서는 홀로 포용이 되지 못하니 무엇때문인가? 무릇 천주는 만물의 대부모이시며 대주재이시다. 옛적부터 성현들이 밝히 섬겨 믿어 왔었다. 그런데 오늘 이 당하는 환란이 무엇인가? 임금은 도리의 참됨과 거짓됨과 나쁨과 옳음을 자세히 밝히신 후에 위로는 조정을 다스리고 아래로는 백성을 거느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회과학| 2004.06.28| 3페이지| 2,000원| 조회(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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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겔서 개요 평가A+최고예요
    에 스 겔 서교역학 1년 박 흥 상에스겔서 전반부는 심판의 예언으로, 극도로 어둡고 우울한 장면이 계속된다. 수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내 죄와 멸망의 길로 달음질치던 이스라엘의 비극은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가시는 것으로 절정에 이르고 곧이어 예루살렘 함락의 소식이 전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도저히 이룰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예언된다. 그러므로 본서에 나타난 예언의 중심은 후반부, 특히 40장 이하 성전의 모습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완전한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회복의 역사를 이룰 수 있으며, 그 회복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것임을, 본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뜻의 ‘여호와 삼마’로 나타내 준다(48:35).)저자 에스겔서의 내증(1:1 ; 24:24)과 전체적인 내용의 일관성, 묘사되는 저자의 성품과 인격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볼 때, 단일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에스겔임을 추정할 수 있다.에스겔의 생애 에스겔은 예레미야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B.C. 597년에 바벨론으로 여호아긴 왕과 함께 포로로 잡혀갔다(왕하 24:14 이하, 렘 29:1-2). 에스겔이란 말 자체는 하나님이 강건케 하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에스겔은 사독 가문의 제사장 부시의 아들로 태어나 요시야의 종교 개혁과 B.C. 597년의 1차 침공과 B.C. 586 년의 완전한 멸망에 이르기까지 청년기로 있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있는 그발 강가의 텔아비브에서 포로생활을 하였다(겔 1:1, 3:15, 8:1). 에스겔은 결혼을 했으며(겔 24:18), 그의 아내는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었을 때 죽었다(겔 24:1, 15-18). 에스겔은 그의 나이 30세 때였고, 여호아긴 왕이 사로잡힌 지 5년 되던 해인 B.C. 593년에 소명을 받아 22년간 계속 사역하였다(B.C. 594-571).그가 B.C. 593년에 예언을 시작했다고 볼 때 그가 행한 예루살렘을 향한 예언은 뚜렷하게 요시야의 종여 제사법전적 선포에 이르기까지 에스겔은 하나님 중심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기 민족이 갖고 있는 체념에 대결하여 생명과 축복에 대한 강렬한 신념을 표출한다. 이스라엘은 운명론적으로 과거를 회상해서도, 현세대에 굴종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약속된 생명, 계약 공동체 속에서 새롭게 이어질 이스라엘의 희망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에스겔의 예언의 요지는 이처럼 운명론적 회의에 가득 찬 포로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회개에의 부름을 듣게 하려는 데 있었다.본문의 연대 겔1:1에 제삼십년 사월오일에 내가 그발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로 시작하고, 40:1에는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오 년이요...’라고 연대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주전 573년이다. 이 때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도 14년이 지났고, 바벨론에 포로공동체가 세워진 지도 25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 바벨론의 유다 공동체가 이미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귀환 이후의 미래를 대비하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때라고 볼 수 있다.)시대적 배경 에스겔은 당시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가 있었으며 다른 유다인들과 더불어 유프라테스강에서 농지로 물을 끌어들이는 관개수로용 작은 강인 그발 강 근처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스겔이 거하는 정확한 지명은 ‘델아빕’이었다(3:15). ‘델아빕’이란 말은 바벨론어인데 ‘홍수로 인해서 폐허가 된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델아빕은 예전에 사람들이 살다가 홍수로 인하여 폐허가 되어서, 유다인들이 끌려갈 당시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폐허였던 것으로 보인다. 바벨론 정부에서는 유다인 포로들을 델아빕에 정주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그 폐허를 개척하도록 명령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다인 포로들은 그곳을 중심으로 해서 자치주 형태를 이루면서 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상당한 자유를 누리며 살았고 , 각기 집과 전답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 예루살렘의 죄악 8: 4. 예루살렘의 형벌에 대한 이상 9:-11:5. 전체적인 부패에 대한 형벌 12:-19: 6. 예루살렘 멸망 전의 마지막 경고 20:-24:Ⅲ. 이방민족에 대한 형벌예언 25:1-32:321. 암몬 25:1-7 2. 모압 25:8-11 3. 에돔 25:12-14 4. 블레셋 25:15-175. 두로 26:1-28:19 6. 시돈 28:20-26 7. 애굽 29:1-32:32Ⅳ.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탈취 후의 회복에 대한 예언 33:1-48:351. 그 건설 전의 사건들 33:1-39:291)악한 자들을 제거 33:1-36:15 2)거짓 목자와 참 목자 34:1-313)그 땅의 회복 35:1-36:15 4)그 백성의 회복 36:16-37:285)원수에 대한 심판 38:1-39:242. 그곳에서의 경배 40:1-48:351)천년왕국에 있는 성전 40:1-43:27 2)천년왕국에서의 경배 44:1-46:243)천년왕국에 있는 땅 47:1-48:35에스겔의 중심 사상)(1) 신관(神觀)에스겔의 신경험(神經驗)은 에스겔 이전의 다른 어던 예언자 보다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야웨를 이스라엘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으나 또한 야웨는 외국에 있어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에스겔은 그의 경험을 통하여 이것을 확증하였다. 의심할 것도 없이 이 사실이 에스겔의 신관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 능력 많으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불충성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교하여 볼 때에 이 양자간에 측량할 수 없는 먼 거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관념에서 에스겔의 유명한 초월신의 신관이 생기게 되었다. 에스겔에게 있어서 야웨는 가까이 할 수 없는 광채와 불로 둘러싸여 있으며 사람으로부터 먼 거리에 떨어져 있으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야웨 앞에 엎드려 그 말씀을 듣는 것 밖에 없다. 에스겔의 이 초월신(divine transcendence, 超越神)의 관념은 예레미야의 가까운 하나님의超人間的 存在)그는 인간 이외의 초인간적 존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전술한 바 있는 에스겔의 초월신의 관념에서 자연적으로 파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간적인 존재에 대해서 말하였다. 에스겔서에 언급된 또 다른 형태의 초기의 관념보다 더 높은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3) 개인의 책임개인의 책임에 대하여 성경에서 에스겔서 18장 20절만큼 간결하게 설명한 곳은 없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두 견해의 차이는 포로 생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에스겔은각 개인이 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개인의 책임 문제에 대하여 에스겔의 교훈과 예레미야의 교훈을 비교하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예레미야는 민족이 한 단위가 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한 단위가 된다는 사실을 가르친 최초의 예언자이었다. 개인관에 대하여 이 두 예언자의 교훈의 차이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예레미야의 개인관은 개인이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점에 집중되어 있다. 에스겔의 개인관은 개인의 행위에 대하여 자기 자신이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개인 종교(Personal religion)의 책임을 가르친 최초의 예언자가 되었다.(4) 신생(新生, regeneration)의 사상신생의 과정의 첫 단계는 성결함을 받은 후에 새로운 영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36:31의 말씀과 같이 참 회개를 가져오게 한다. 에스겔은 에스겔 37장에서 보는 것과 같이 자기 자신의 독특한 신생의 관념을 갖고 있다. 에스겔은 37장에서 죄로 인하여 죽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마른 뼈가 가득 찬 골짜기를 보았다. 그는 또한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말미암아 죽은 뼈에 살이 붙어 신생하는 것을 보았다. 에스겔의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성결과 신생의 교훈은 히브리 종교사에 있어서 그 유례(類例)를 다른데서 찾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종교적 단계에까지 도달하였다.(5) 종교 의식관(宗敎儀式觀)종교 의식과 그 의룩하게 구별하는 일이다. 에스겔이 제자들을 일반백성들과 구별하여야 한다는 교훈은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6) 종말관(終末觀)종말관에 대하여 에스겔이 말한 것은 이미 에스겔 이전의 예언자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이다. 에스겔은 처음으로 그의 예언 가운데 묵시적인 특색을 가미하였다. 특히 메시야 시대에 관한 에스겔의 사상의 특징은 종교 의식에 대한 강조이다(겔 20:40, 41). 에스겔은 37장 26-28절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인들이 포로 생활에서 해방이 되어 팔레스틴 본국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을 다시 수축하고 그들의 종교 제도를 확립하게 될 찬란한 장래를 내다보았다. 에스겔이 야웨의 명령에 대하여 엄격하게 또한 문자 그대로 순종하여야 된다는 관념을 너무 강조하였기 때문에 에스겔은 ‘유대교의 아버지’라고 불리우고 있다.)특징 환상이 끝나고 나면 해석이 필요해서 상징(강조)으로 보여짐. 비유가 끝나면 상징이 또 나옴.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가 있고, 세 가지 속담이 들어있다.신학적 의미와 메시지 앞선 내용(1:1-46:24)은 대부분 패역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의 포로될 것과 하나님의 회복케 하시는 역사로 포로에서 벗어날 것을 예언한 것으로 현실 가운데 이미 이루어진 일들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본서의 마지막 단락인 이 부분은 보다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메시야 왕국의 축복을 예언하고 있는 에스겔서 전체의 하이라이트이다. 즉 이 부분은 회복된 이스라엘이 맺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 성전 건축과(40-43장) 새 성전에서 드려질 새 예배와(44-46장) 새 땅의 회복(47,48장)이라는 신비로운 내용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회복이 장차 신약시대 교회의 성립을 예표하는 바 본문에 나오는 새 성전과 새 예배와 새 땅에 대한 예언도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는 신약의 교회가 누릴 영광과 축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으로 이는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하심으로 이루어질 메시야 왕국의 성격을 보여다.)
    사회과학| 2004.06.28| 5페이지| 2,000원| 조회(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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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말 개화사상과 기독교의 수용
    Ⅰ. 개화사상(開化思想)의 개념(槪念)개화(開化)라는 말 자체는 근대(近代)에 와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한문에는 개화라는 숙어가 있고 그 뜻은 풍화교도(風化敎導)하여 세운(世運)의 진보(進步)를 꾀한다는 것이었다. 개화는 1880년대 한국의 정치(政治), 경제(經濟), 문화(文化) 전체를 지배한 사상 혹은 운동을 나타내는 표어로서의 개화이다.그러면 1880년대의 개화는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을까? 대표적인 개화 사상가 유길준(1856~1914)의 명저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 개화(開化)의 등급(等級)이라는 항목을 보면, 개화란 인간의 모든 일이 차원이 높은 단계에 도달함을 말한다는 것이다. 신간을 행함으로써 개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쓰고 있는 개화는 개명(改名)화 혹은 문명화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개화란 차원이 높은 단계의 문명(問名)화는 선진(先進)외국문화(外國文化)를 받아들여 재래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를 창조함을 가리킨 것일 것이다.그런데 개화 혹은 문명화에 있어서 화의 뜻에는 교화(敎化)라는 말에서 잘 표현되어 있듯이, 인도(引導)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개화사상(開化思想)이라는 것은 선각자들이 무식한 대중들을 교도하여 문명의 단계로 이끌어 보려는 사상이었다. 이러한 사상은 서양의 계몽주의(啓蒙主義) 혹은 계몽사상(啓蒙思想)과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계몽사상(啓蒙思想)은 17세기 영국에서 일어나 18세기부란서, 독일(獨逸)등 유럽에서 발달하였는데, 그것은 위로부터 전근대적인 사회체제, 즉 민중에게 근대화의 성격과 방향을 교육시키기 위해 나타난 역사적인 사상조류(思想潮流)였다. 그러므로 개화사상이나 계몽사상은 전근대적인 사회에서 근대적인 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준비기의 사상이었다.이와 같은 개념의 개화는 일본에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일본에서는 1873년 구미시찰(歐美視察)단이 귀국한 뒤로 문명개화라는 새로운 유행어가 만들어졌고, 한편 동양문화섭취(東洋文化攝取)에 전력을 다하고 있던 당시의 국가정책에 반영하여, 한편 1870~80년대에 그 유행어가 일본사회를 풍미(風靡)하였다. 개국한 뒤 우리나라의 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을 견제한바 있는데, 그들은 일본에서 유행되고 있는 개화라는 용어에 활력을 느끼고, 또 그 개념에도 공감을 느끼어 귀국한 뒤로 차츰 사용하게 되었던 같다. 이 시기에 중국에서는 자강(自强)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었다. 자강(自强)은 양무(洋務)라고도 하여 그 개념은 서양의 기술문명을 습득하고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꾀하여 외국의 침략(侵略)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자강이라는 유행어도 우리나라에 들어왔다.이처럼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던 개화(開化), 중국에서 유행되고 있던 자강(自强)이란 말이 들어왔는데, 선진외국기술(先進外國技術)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문명(文明)화한다는 점에서 개화(開化)와 자강(自强)은 동일한 개념(槪念)으로 공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82년 7월에 군란(軍亂)이 일어났다. 이 난은 사상적으로 개국 혹은 개화에 대한 반동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쇄국정치가(?國政治家) 대원군(大院君) 이상웅이 난(亂)이 일어나자 전면에나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난으로 보수정객(保守政客)들 이 정권(政權)을 잡자 전년(前年)에 착수(着手)된 새 사업은 탄염(彈?)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1개월 뒤 청군에 의하여 대원군이 입지 되어가고, 난이 진압됨에 보수반동(保守反動)에 대한 반동은 상대적으로 커지고, 그리하여 개혁을 유지해야 되겠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게 되었다. 왕(王)이 8월 31일 이후(以後)몇 차례 중외의 관사와 국민들에게 교서를 내린 바 있는데, 왕 자신이 전과(前過)를 뉘우치고 革新政治를 하겠다고 선언(宣言)하였다. 이에 따라 누구나 開化라는 말은 개국(開國) 이후(以後) 일본(日本)에서 들어와 일부인사(一部人士)들간에 사용되다가 임오군란(壬午軍亂) 뒤부터 유행어처럼 한국사회에 통용되게 되었다.그런데, 문명화 혹은 부강화(富强化)를 표시하는 개념으로서의 개화를 일부인사들이 받아들이는 데에는, 역시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어떤 지적(知的) 유산(遺産)을 토대(土臺)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영조, 정조시대에 전성을 이루었던 실학사상(實學思想)은 내용(內容)면을 따져보면 몇 학파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 중에 박지원(1737-1805)을 대표하는 이른바 이용후생학파(利用厚生學派)는 상공업(商工業)의 유통(流通)과 일반기술면(一斑技術面)의 발전을 지표로 하고있었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 즉 실학(失學)을 연구함에 있어서 이 학파에 에서는 실이(實利) 혹은 실용(實用)면을 대단히 중요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실사구시는 실용적이면서 대단히 개방적인 면(面)을 나타내고 있다.요컨대, 이상(以上)의 몇 가지 예로서 1870-1880년대 진보적(進步的) 사상가들은 개화의 개념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실학 중 이용후생(利用厚生)학파의 이상을 토대(土臺)로 받아들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이상(理想)을 토대(土臺)로 하였기 때문에 쉽사리 개화의 방향으로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개화를 그들이 신봉하고 있던 실학사상(實學思想)의 연장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Ⅱ. 開化思想과 基督敎1.실학(實學)에서 개화사상(開化思想)에로실학)과 개화사상을 연결 지우는 문제는 전통의 내부에서 근대에로 발전한 내재적인 자기전개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이며, 미약하나마 전통과 근대의 단절을 극복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한국의 유교적 전통사회 안에서도 사회. 경제사상으로나 또는 정신. 문화사상으로도 중세 봉건사회로부터 탈피와 근대 지향적인 싹이 여러모로 돋아나고 있었다. 서양의 충격은 이미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 직후부터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특히 반청정신(反淸精神)과 실천적 혁명의식(革命意識)이 담긴 양명학의 유입, 그리고 주자학설의 비판, 기독교의 전래 등은 이학지상(理學至上)의 사상계에 반항한 의미에서 일련의 신사조와 공동 전선에 있다.조선후기의 실학은 자유성. 과학성. 현실성으로 인하여 첫째로 전근대(前近代) 의식에 대립되는 과, 둘째로 몰(沒)민족의식(民族意識)에 대립되는 으로 말미암아 개화(開化). 자강계(自强係)에 의해서 재발견되었다.실학사상(實學思想)과 개화사상(開化思想)의 연관점들을 찾아본다.첫째, 이용후생의 우선적 강조의 문제이다. 유학에서 라 하여 먼저 정덕(正德)을 세운 후에 그 다음으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을 말하였다. 그러나 실학자들은 이용후생을 전면에 내세우고 정덕(正德)은 그 후의 문제라 보아 전통적인 유학사상에 정면으로도전하였다.둘째, 실학의 민족주의적 성격이 개화사상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셋째, 실학의 민권사상의 계승 발전이다. 서재필은 “그래서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인민의 권리(權利)를 세워 보자는 생각이 났다”하면서 갑신정변(甲申政變)의 동기를 민권사상으로 회고, 설명하였다.넷째, 실학자들의 통상(通商), 개국론(開國論)인 무역부국론이 개화사상에 계승, 실천되었다.다섯째, 토지의 실학자들의 이 갑신정변 때에 지조법(地租法)의 개혁으로 시정요강(施政要綱)에 나타나 있다.여섯째, 기독교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이다. 개화사상가들이 개신교의 수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거나 혹은 신자가 된 인사가 많았다.2. 開花派의 基督敎 受容態1)급진적(急進的) 개화파의 대두종래의 서채론의 사상적 미숙성과 동도서기론에 입각한 온건개화사상의 현실적 모순을 과격하게 개혁하려는 혁신적 세력이 한국 근대사에 대두하였다. 이 세력을 지칭하여 급진적 개화파라고도 하고, 이라고도 한다. 한말의 혁신 그룹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비밀단체의 성격을 함포하고 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獨立黨, 開進黨, 開論黨, 進步黨이라고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개화당이라고도 불렀다.이 개화파가 형성되기는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기 전부터지만, 김옥균 중심의 정치적 비밀결사로서 개화당이 결당되기는 1878년 충의약 형식으로 발족한 후부터다.2) 開花派의 基督敎 受容態개화운동이 본격화됨에 따라 이 운동의 추진세력 간에는 개화방법론을 둘러싸고 두 파로 크게 대랍하기에 이르렀다. 그 중의 일파가 한국의 점진적인 개화책을 도모하며 중국위 자강운동(自强運動) 방식을 모델로 삼은 온건개혁파요, 다른 한 파는 적극적인 개화책을 추진하며 일본의 명치유신 방식을 모델로 하는 체계적인 급진개화파이다.) 그런데 이들 온건. 급진. 양파의 공통점은 기술(西器)의 탐용(探用)이었고, 이들간의 차이점은 기독교에 대한 태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통적인 유교사회가 개화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 서양기술이고, 또 이 기술이 기독교의 전도를 위한 부수적 방편으로 한국사회에 전하여 파급되기 시작하였다.그리고 1890년대 아후로 갑신정변, 동학란, 청일전쟁, 갑오경장을 치루면서 한국사회는 일대변동을 격게 되었다. 이 때부터 개화기의 학술지(學術紙)나 언어지(言語紙) 에서는 유교사상의 극복을 위한 철저한 유교 비판의 소리가 높아갔고, 기독교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유교나 불교를 신봉하는 개화파 인사들마저도 기독교야말로 쇠약해가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고, 선교단체를 곧 “개화의 힘”이 될 것이라 공언하게 되었다.
    사회과학| 2004.06.28| 4페이지| 2,000원| 조회(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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