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코스모스를 보고.....영화의 시작과 함께 개미와 벌들이 우글거리는 곤충들의 세계 한가운데에 우리를 앉혀놓는다. 그리고는 이슬 한 방울에도 폭탄을 맞은 듯 힘없이 내동댕이쳐지는 곤충들의 일상과 소곤대며 피고 지는 꽃잎들의 속삭임과 개미 군단의 힘찬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게 한다.어느 들판 풀잎 밑의 조그만 다른 우주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하루해가 떠서 질 때까지 그리고 다음날 다시 해가 떠오를 때까지 크게 가까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건 인간의 시간과 공간으로 보면 단 하루의 조그만 이야기지만 그 마이크로코스모스에는 다른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 속에 살고 있는 벌레들에게는 일생의 시간이기도 하고 거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었다.어딘지 모를 곳으로 번데기가 되기 위해 반듯하게 줄을 서서 행진하는 나방의 애벌레들, 어떤 역경이 닥쳐도 짐승의 배설물로 만든 경단을 물구나무서서 드리블해가는 쇠똥구리, 사슴벌레 두 마리의 처절한 결투, 물에 빠진 잠자리 시체를 향해 달려드는 소금쟁이, 모두 다 부조리하고 맹목적이다.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하자 이 또 다른 우주에는 환란이 닥친다. 빗방울 하나가 이들에게는 거대한 재앙인 것이다. 그 부조리와 맹목과 무수한 재앙을 견디고 살아가고 있다니 우리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이다. 하지만 생명은 경이롭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그 딱딱한 껍질을 벗어내고 날개를 펼치는 나비를 보고 있노라면, 서서히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어가며 활짝 펼쳐지는 나비의 날개를 보고 있노라면, 심지어 모기의 탄생조차도, 놀랍다. 줄지어 기어가고 있는 개미떼 위로 꿩이 날아와 날카로운 부리로 수십 마리의 개미들을 쪼아 먹는다. 배를 채웠는지 개미에 비한다면 엄청난 몸집의 꿩이 저 멀리 날아간다. 점점 작아지더니 눈에 안 보인다. 개미떼들은 여전히 줄지어 기어 다니고 있다. 웃긴 상상이지만 우리가 그 조그만 생명체라고 생각하자 커다란 날개를 펴고 하늘을 천천히 선회한다. 밑으로는 푸르른 숲과 드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다. 풀밭 옆에는 호수가 반짝이는 유리처럼 놓여 있다. 사람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고요와 평화. 그러나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분명히 누군가 있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점점 강하한다. 그리고 사뿐히 풀밭 위에 착륙한다. 흔들리는 풀이파리. 갑자기 우리는 난쟁이가 된다. 풀밭은 정글이 되고, 가느다란 풀이파리는 거대한 나무가 되고, 한 알의 모래는 묵중한 바위가 된다. 땅 위에 갈라진 금은 깊은 계곡이 되고, 조그만 웅덩이는 넓은 호수가 된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마치 걸리버가 소인국을 방문했듯이,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우리가 난쟁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새로운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아쉽게도 우리는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키는 너무나 크고, 그래서 꼭대기에 달린 우리의 눈은 앞이나 위를 보기에나 편리할 뿐이다. 가끔 기운이 빠져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물론 우리가 밟고 서 있는 땅에는 시커먼 껌자국이나 담배꽁초 이외에 별로 볼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푹신푹신한 잔디를 밟을 때나 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바닥을 밟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우리의 눈은 커다랗고 눈에 잘 띄는 것을 보기에 적합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놓치는 세계가 있다.우리가 너무나 작기 때문에 놓치는 세계도 있다. 아무리 우리의 눈이 머리 꼭대기에 달려 위를 보기에 적합하다 해도, 그래서 아무리 위를 올려다보아도 하늘은 우리의 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아도 이 땅은 우리의 시선을 자꾸만 벗어난다.이렇게 위로 보나 아래로 보나 우리가 도대체 접근이 불가능한 세계가 있다. 우리가 너무 커서 혹은 우리가 너무 작아서 보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의 세계가 그렇다. 그래도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 잘 살아간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가 전부라고 여기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우리가 가보지 못한 세계는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그런 생각의 이면에는 그런 세계를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있다. 물론 우리는 이 세계만 있다고 주장할 정도로 머리가 나쁘지도 않고 오만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무시할 만큼은 오만하다. 살아가는 데에는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세계만으로도 충분할 듯 싶다. 사실 먹고사는데 우주가 무슨 소용이며, 곤충들의 세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후끈거리는 열기가 올라오는 아스팔트 대신 푹신푹신한 잔디를 밟고 싶다는, 늘 몇 겹으로 먼지가 껴 있는 듯한 하늘대신 우주 끝이라도 보일 듯 투명한 하늘을 보고 싶다는, 불쾌하게 목덜미에 달라붙는 바람대신 뽀송뽀송한 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을 맞고 싶고 싶다는, 그런 류의 꿈을 꾼 적이 없는가? 그런 세계를 꿈꿔본 적이 없는가? 아주 솔직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눈앞에 있는 세계를 똑바로 보자. 아스팔트의 열기와 탁한 공기와 시들시들한 햇살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앞에 있는 이 세계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쾌적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다운 세계는 결코 우리의 눈앞에 있는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놓쳐 버린 세계이다. 예전에 한때 그랬을지 몰라도 더 이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