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Ⅹ?Ⅸ. 서 론0.0. 문제제기현대 산업기술의 발달과 그에 다른 시장의 성장은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무엇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 의식주에 매달리던 생활에서 벗어나 이제 사람들은 점차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고 개인의 여가생활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문화, 예술, 스포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커졌으며 그 중에서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3S(Sex, Screen, Sports)정책과 맞물리면서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스포츠에 대한 관심의 실례를 살펴보면 제일기획에서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등 5대 도시에 사는 12~59세의 남녀 6천명을 대상으로 신문 스포츠 면에 대한 관심도를 조사한 결과 1993년에는 사회, 정치, TV프로 연예에 이어 5위였으나. 96년에는 사회면에 이어 2위로 상승했다.이제 스포츠는 지상 최대의 관심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스포츠가 그 자체로서 커다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하나의 매력적인 산업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으로서의 위상을 갖는 스포츠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경제적인 논리를 반영하게 된다.이러한 경제의 논리를 이끌어 가는 중심에 미디어와 기업이 중요한 행위자로서 자리하고 있다. 예컨대 스포츠, 기업, 미디어, 이 세 분야는 상호간 공생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다.우선 스포츠 분야의 경우 스포츠 자체 또는 스포츠 단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재정원의 확보가 중요한데, 기업의 스폰서링 활동과 방송 중계권 판매 등을 통해 안정적인 재정 수입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다음으로 기업은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는 경쟁구도 속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롭고 보다 효과적인 매체를 찾으려고 부심하는데, 스포츠가 매력적인 광고매체가 되며 미디어의 보도를 통해서 그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미디어는 시청률 내지는 점유율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반대중이 선호하는 주제를점유율에 가치를 두고 있는 테마 가운데 가장 선호도가 높은 프로그램 및 기사의 장르 중 하나로서 대중매체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박현종 1996)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에 대한 중계방송은 필연적으로 중계권료의 고가화가 뒤따르게 되므로 스폰서(기업) 및 피 스폰서(스포츠)와 협조적인 관계가 필요하다.라. 스포츠 마케팅 대행사)스포츠 마케팅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스포츠 마케팅이 직접 수행된다는 것은 스폰서와 피 스폰서가 스포츠 마케팅을 전개할 때 발생하는 모든 과제를 스스로 수행한다는 것을 말한다. 간접적으로 수행된다는 것은 대행사가 전체 혹은 부분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이나 스포츠 단체의 노하우나 각종 권리의 판매경험 부족 등의 이유로 스포츠 마케팅 대행사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포츠 마케팅 대행사들은 선수, 개인, 팀, 클럽, 협회, 연맹의 특정권리를 먼저 사서 이를 되팔기도 하고, 수수료를 받고 스포츠 단체와 특정권리 판매계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대행사 스스로 특정 스포츠 이벤트를 운영하는가 하면, 그 대가로 해당 이벤트의 마케팅 권리 및 상업적 이용 권리를 소유하기도 한다.2.2.2. 스포츠 스폰서십)(1) 정의 및 목적가. 정의스폰서링의 사전적인 의미는 재정 지원을 통해서 어떠한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스폰서링은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포츠, 문화 그리고 사회복지 분야에서 특정한 개인 또는 조직의 진흥을 위해 기업이 제공하는 재원, 상품 또는 서비스 같은 일체의 행위에 대한 기획, 조직, 수행, 통제를 의미한다. 스폰서링 활동이 스포츠를 매개로 할 경우 스포츠 스폰서링이 되는 것이다.스포츠 스폰서링은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반대급부를 취하려는 목적으로 스포츠 선수, 스포츠 협회, 스포츠 경기(행사)를 위해 재원, 물품, 노하우, 그리고 조직적 서비스를 마련하여 주는 것으로 정의된다. 결국 스포츠 스폰서링은 서비스 제공과 이에 상하게 된 계기는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으로 볼 수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국내 기업들은 과도할 정도로 엄청난 광고비를 투입했고, 1988년 올림픽에서는 2년 전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비용을 투자했다. 공식후원업체, 공급업체 등 다양한 형태로 참여 열기를 더했다. 실제로 광고, 판촉에 올림픽 휘장이나 마스코트를 사용하는 대가로 지출했던 비용만도 무려 1천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88 올림픽에 적극 참여했던 구내 기업들은 자사 브랜드 고지와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되었고, 북방시장 개척의 계기 마련과 함께 기존 해외 거래선과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지는 등의 긍정적 평가를 내린 바 있다.이러한 배경에서 1990년대 들어 국내 기업들은 스포츠 마케팅 및 스포츠 스폰서십 활동을 크게 증가시키고 있다. 단순한 지원이나 협찬 등 과거의 소극적인 운영 스타일에서 벗어나 대회 전체를 스폰서하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운영 스타일을 보이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세계적인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일환으로 전세계 소비자들을 목표로 한 글로벌 스포츠 스폰서십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특히 1990년대 후반 국내 기업의 해외 스포츠 마케팅 활동이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전에는 국내 노출을 전제로 한 해외 스포츠 이벤트의 투자 방향이 최근에 와서는 해당 특정지역 내의 효과를 우선 고려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유망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동구, 남미에서의 스포츠 마케팅 활동이 두드러진다. 스포츠의 효용성을 해외시장 개척에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으로 해외 대형 이벤트의 수익사업권을 획득, 직접 영업 활동에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마케팅 시도가 이루어진다. 프로축구의 타이틀 스폰서 적용과 같이 대회명을 기업으로 하는 스포츠 행사가 늘어나고 있으며, 단순한 스폰서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기획·조직·운영의 모든 단계에서 기업이 참여하는 형태도 선호되고 있다.이제 우리 기업들도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회사 이미지를 홍보하고 해외시장을 위원회는 이때부터 10개 기업을 올림픽공식스폰서로 참여시키면서 흑자 올림픽시대를 열어갔다. 84년 LA올림픽 스폰서로 참여했던 일본의 브라더 공업은 10~15%였던 세계시장인지도를 60~70%로 끌어올렸고, 이미지도 재봉틀회사에서 정보기기 회사로 바꾸어 매출액이 16%이상 증가하는 효과를 냈다.98년 프랑스월드컵의 TV시청자는 전 세계에서 연인원 3백 70억 명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에게는 훌륭한 광고기회이다. 이에 45개 기업들이 공식파트너로 선정되어 총 4억 5천만 달러 이상의 후원 비를 비루했다. 대신 기업들은 막대한 광고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매 90분의 경기 동안 광고판이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은 평균 7~8분이다. 64게임이 치러지는 것을 감안하면 후원업체들은 전 세계를 상대로 무려 8시간의 광고를 하는 셈이다. 지난해 6월부터 월드컵후원을 시작한 코카콜라는 프랑스 내에서 이미 18%이상의 매출 신장률을 보였다.)02년 한일월드컵의 월드컵 공식파트너인 KT는 대표 팀의 선전과 IT월드컵 성공으로 최대 5조 원가량의 홍보효과를 거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식파트너로써 후원업체 자격을 확보하기 위해 FIFA에 현물 등으로 제공한 것의 약 100배 이상에 달하는 효과이다. 자체 분석결과에 따르면, 16강이 확정된 시점까지 경기장에 설치된 펜스광고판 2개의 국내외 중계방송을 통한 광고효과(월드컵 본선경기의 펜스광고 효과는 노출시간을 국내 10분, 해외를 국내의 10%수준인 1분으로 산정)가 2조5천억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이러한 결과 2001년 12월 ‘한국통신’에서 ‘KT'로 사명을 변경한 이후 이번 월드컵을 통해 6개월 만에 브랜드인지도 95%, 브랜드선호도 30% 이상으로 향상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기업인지도를 1% 끌어올리기 위해 들어가는 마케팅비용이 1억 달러 선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 온 것이다. KT는 총 400억 원 규모를 이번 월드컵에 투입(장비설치와 각종 프로모션, 광고에 230억 원, 공식후원사로서 출자한 현물규포함시킨다. 시간을 앞당기기로 계약하는 것은 방송이 가장 중요시하는 9시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다는 방송국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국내씨름의 경우 결승전을 5,6위전 또는 3,4위전보다 먼저 치르는 비상식적 경기 진행이 있어왔다.넷째, 스포츠 기술에 미치는 미디어의 영향은 기술의 전문화와 일반화로 요약할 수 있다. 미디어를 이용하여 선수들이 선진기술의 도입과 기술의 개발을 하는 것이 기술의 전문화이고, TV 중계를 통한 선수의 기술을 스포츠 동호인들이 습득하는 것이 기술의 일반화인 것이다. 오늘날 국제경기에 출전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VTR장비를 휴대하거나 기사를 대동한다. 외국선수들의 경기모습을 촬영, 장단점을 분석해 다음 경기에 대비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새롭게 개발된 기술을 도입한다는 뜻도 있는 것이다.육상단거리 선수로 올림픽 1백 미터 경기에서 우승한 칼 루이스(Carl Lewis)가 1백 미터를 선걸음에 달렸다는 것은 미디어기재를 통해야만 분석되며, 다이빙 ? 체조 등과 같은 세밀하고 정확한 동작을 요구하는 경기 종목일수록 미디어 기재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한 스포츠동호인들이 축구의 오버 헤드 킥을 하는 등은 미디어를 통한 스포츠 기술의 일반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미디어는 스포츠 기술의 개량과 인지?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한 부정적 결과로써 스포츠는 점차 정형화되고 프로화 한다. 아마추어라고 할지라도 보다 세련성이 높아지고 경기는 채색된다.다음 간접적 영향 즉, 스포츠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우선 긍정적 측면에서 미디어가 스포츠문화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스포츠의 보급과 확산을 통한 대중화를 지적할 수 있겠다. 생활의 여유와 윤택이라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성, 연령, 직업, 기역,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스포츠가 보급 전파되어 생활의 일부로써 스포츠를 향하게 되었다. 흥미와 관심을 자극하는 경기의 생중계 시청은 결국 그 스포츠의 대중화로 이어져 공공 및 사설 스포츠클럽, 직장 스포츠 시.)
목차序本◆ 광고의 이론적 배경○광고의 정의○광고의 역사1. 가장 오랜 광고(1) 파피루스 광고(2) 우리나라의 최초의 매스컴 광고2. 인쇄술의 발명과 광고3. 산업혁명과 광고4. 멀티미디어 광고시대○광고의 의의1. 사회적·문화적 의의(1) 상품 지식을 넓게 하는 기능(2) 오락·화제성 제공(3) 유행 촉발(4) 문화 발전에 기여2. 경제적 의의(1) 기업 간의 경쟁 유발(2) 상품 판매 가격 절감의 기능(3) 유통경비절감의 기능◆기호학의 이론적 배경○기호학이란?○광고의 기호학적 접근◆ 실제 광고의 예○섹스어필 광고○티져광고○유머광고○멀티스폿광고○감성, 공익광고○엔터테이먼트 광고◆광고를 통해 종합한 결과● 結● 序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 광고는 떼어놓을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되었다. 우리의 주변이 온통 광고로 둘러싸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도대체 요즘 현대인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몇 가지의 광고를 접하게 되는 것일까?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잠에서 깨어나서부터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3천여 개의 광고를 접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고 하니 약간에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도 그만큼의 광고를 매일 접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렇게 3천개라는 숫자가 아니고 그만큼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광고라는 사실이다.그런데 이러한 수많은 광고는 단순히 우리에게 보여 지기 위해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특정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상품을 판매를 하는 것이건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권장하기 위한 것이건 광고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말이다. 광고는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수많은 기호로 구성되어 있다. 광고 속에서 보여 지는 광고상품들, 광고 속에 등장하는 모델이나 소품들, 광고에 흐르는 음악이나 음향 효과 등 광고에서 강조하는 메시지들은 모두 기호들이다.또한 광고는 사회문화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광고라는 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년께 리디어 (Lydia)왕국에 속해 BC 670-546년께 번성을 누렸다니까 앞서의 파피루스 광고보다는 줄잡아 500년쯤 늦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2) 우리나라의 최초의 매스컴 광고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매스컴(신문)광고는 1886년 2월 22일자 한성주보 제4호에 실린 독일 무역상 '세창양행(世昌洋行)'의 「고백(告白)」으로 정설화 되어있다. 당시는 광고가 모두 한자로 되어 있었는데 그 후 1896년 4월 7일에 독립신문이 창간되면서 한글 광고가 실리는 등 본격적인 광고활동이 펼쳐지게 되었다.2. 인쇄술의 발명과 광고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에 의해 발명된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광고는 획기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인쇄술을 이용하여 책이 계속적으로 발행하게 되었고 이들 책을 팔기 위해서는 그 책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인쇄된 '삐라'였다. 책이라는 상품이 문자를 읽을 수 있는 계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광고는 직접적인 효과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 또한 인쇄술에 의해 비로소「양산(量産)→광고」라는 광고의 원천적 패턴을 낳게 되었다.3. 산업혁명과 광고18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 공업제품은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그리고 대량으로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 그 제품의 존재를 넓게 광고할 필요가 필연적으로 생겼다. 그때까지는 수공업에 의해 생산된 물건을 사방 500㎡내 의 상권을 대상으로 팔 수 있었던 것이, 대량생산시대가 되면서 훨씬 넓은 상권으로 확산하게 되었다.그리고 이와 같이 넓어진 상권 내에서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게 도달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인쇄기술의 개량은 물론 라디오와 TV 등 매스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매체를 출현케 하였다. 이렇게 해서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하여 상품의 존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현대적 광고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즉, 광고란「매체를 유료로 사용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 활동기호 속에 살고, 기호와 더불어 산다. 어디 그뿐인가. 거리의 신호등에서부터 밤하늘의 별자리 에 이르기까지, 꿈결 속의 모상에서부터 무지개의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의 일곱 색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눈이 수용하는 모든 것들이 기호이다. 우리는 기호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며, 기호를 갖고서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기호에 의해서 우리가 소망하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을 꿈꾼다. 즉 기호가 없는 우리들이란 상상할 수 없으며, 기호가 없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 자체가 기호이고, 우리들의 생각이 미치는 모든 것에 기호망이 펼쳐진다.기호학은 기호들(Signs)이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과 그 기호들의 사용에 있어서 지배하는 규칙들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학문이다. 즉 기호학은 기호의 유형과 체계구조를 분석하여 그 배후에 숨겨진 의미를 밝혀내고, 그 의미가 어떻게 창조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소쉬르(F. Saussure)와 퍼스(C. Peirce)에 의해서 주창된 언어학 중심의 기호학은 현대에 와서 다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은 기호와 기호체계를 논리적이고 행동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은 이론 정립을 이루게 한 언어학에 비중을 두고 있다. 특히 인류학의 레비스트로스(C. Levi-Strauss), 문학의 바르트(R. Barthes), 역사학의 푸코(M. Foucault),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알뛰세(L. Althusser), 정신분석학의 라캉(J.Lacan)등은 기호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사실 기호학은 이 같은 다양한 입장을 취하면서 사회현상을 밝힐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 되었다. 기호학의 연구 영역확장은 사물을 그 자체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관계’ 를 핵심 주제로 다루면서 텍스트를 언어와 같은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호학은 어떻게 의미가 생성되고 어떻게 의미를 밝히는가에 대한 기호 관계의 개념을 통해 분석하는 것이 핵심이다호학적인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광고가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몇 가지 광고를 살펴보겠다.○섹스어필 광고섹스어필광고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의 성적욕구를 불러일으켜 특정 효과를 보고자 하는 광고이다. 이런 섹스어필광고는 최근 광고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트렌드 중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한 분야이다. 여기서는 섹스어필광고의 예를 몇 가지 살펴보고 기호학적인 분석을 통해 섹스어필 광고를 하는 이유와 그 효과에 대해 알아보겠다.(1) Calvin Klein 향수 'cK one'캐빈클라인은 섹스어필 광고의 대표적인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광고가 선정적이며 아슬아슬한 면을 부각시킨다. 이 광고는 캘빈클라인 코스메틱 라인의 ‘CK one' 이라는 이름의 향수를 보여주고 있다. 두 남녀가 상반신을 드러낸 채 키스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남자의 손에는 상품이 쥐어져있다.처음 이 광고를 접했을때의 느낌은 이 모델이 섹시하다는 것 보다는 보이쉬한 느낌이 더 강했다. 여성 모델의 짧은 헤어스타일과 마른 몸매는 기존의 글래머러스한 여성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미지로 보여지고 있지만 남녀 모델의 야릇한 포즈가 섹시함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으며 보이쉬함에서 느껴지는 섹시함도 강하게 느껴진다.이 광고에선 남자가 여자의 뒤에서 감싸고 있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향수도 남자의 손에 쥐어져 있으며 여자모델의 바지 속으로 손의 일부가 들어가 있는 모습도 보인다. 쉽게 말해서 남자가 여자를 리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성의 자세도 수동적으로 키스를 받으려고 하기보다 마치 남자의 입술을 찾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두 남녀 모델의 포즈와 이미지를 관찰하고 내린 결론은 이 향수는 결코 어떤 한 성별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향수는 유니섹스 향수로써 많은 남녀가 애용하고 있다. 광고에서는 어느 한 성별의 섹시함을 부각시킨 것이 아니라 남,녀가 같이 있을 때의 섹시함을 더욱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광고가 기존 광고와 다른 점은 여법과 관련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티저광고로 1981년 프랑스의 「아브니어」정당의 정치광고를 들 수 있다. 이 정당은 81년 8월 말 파리시내에 「9월2일 윗 부분을 벗겠다」는 글귀와 함께 비키니 차림의 젊은 여성의 사진이 담긴 포스터를 내걸었다. 이어 2일에는 윗부분을 벗어던진 사진과 함께 「9월4일 아랫부분도 벗겠다」는 글이 적힌 포스터를 붙여 파리시민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다. 이처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티져광고는 이제는 식상하다고 할 정도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런 티져광고 속에는 어떤 기호학적 의미가 숨어있는지 또 왜 티저광고가 성행하고 있는지 알아보겠다.(1)마이클럽닷컴의 ‘선영아 사랑해’사랑을 파는 선영이라는 말로 한창 관심을 끌었던 광고가 있었다. "선영아 사랑해" 라는 광고로 하여금 여러 모로 선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을 귀찮게 했던, 마이클럽닷컴의 광고의 카피이다.봄날 거리의 현수막에 나붙은 누군가의 이름, 그 이름으로 인해 서울시는 잠시 술렁였다. 더구나 그 메시지는 가슴 벅찬 사랑의 고백이었으니 그 영향은 더욱 컸었다. 시내 지하철역, 거리 벽보판마다 내걸린 '선영아 사랑해' 현수막은 무수한 얘깃거리를 남기고 수거됐다. 이 현수막을 놓고 '누군가의 사랑 고백', '죽은 애인에 대한 추도문', '불법 선거 캠페인'등으로 의견이 분분했으나, 결국 인터넷 업체의 홍보 문구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성 전문 인터넷 싸이트 마이클럽닷컴이 그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접하자 사람들은 고도의 홍보 전략에 감탄하는 한편 허탈해했다. 이 세상에 순수가 남아 있다고 훈훈해 했던 자신의 가슴을 더욱 단단히 여미고 빗장을 질러야 했다. 빛의 속도로 변전하는 이 눈부신 자본주의 사회에서 순수는 무슨 순수, 사랑은 무슨 사랑, 사랑 고백마저 상업화될 수 없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결국 현수막은 티저 광고인 셈이지만, 제품을 알리기 위한 프로모션 광고 전략에는 광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PR과 퍼블리시티를 통
● 序 論○들어가기에 앞서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과학기술 문명에 바탕을 둔 현대사회의 인간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해야만 한다. 이러한 필요성 아래 소비재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생활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증가하게 되었고 이런 관점에서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로까지 규정하게 되었다. 현 사회의 소비자들에게 있어서 소비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일상적인 것이지만 물질적인 풍요를 향유하는 후기 자본주의사회(현사회)의 소비자들은 소비욕구의 일차적인 만족에서 벗어나 소비를 통하여 심리적 만족을 추구하고 있으며,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상승 시킬 수 있는 소비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욕구의 탄생은 후기자본주의사회가 우리에게 약속하는 평등의 신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소비의 평등화는 실현되었지만, 소비의 평등화는 이 속에서 지위를 상승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형태(소비에 의한)의 차별화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구별 짓기와 차별화에 의한 소비문화와 취향의 미묘한 차이는 사회를 계층화하는 핵심적 원리로도 작용하게 되었다.우리나라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와는 다르게 종속적 경제발전을 이룩해왔다. 이 과정에서 현재의 과시 즉, 소비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유발하는 문제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고도의 경제성장과정에서 유발된 불로소득의 증대 및 소득과 부의 편중이 오늘날의 소비열풍과 향락산업번창을 주도하고 있으며, 소비욕구의 고도화와 타인지향적인 소비성향 및 물질주의가치관이 자신의 지위나 경제력을 나타내기 위해 고가의 유명제품(명품)을 구매하는 과시소비를 유도하면서 지나친 과시적 소비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런 과시적 소비현상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나타내고 있다.○명품선호현상신문, 잡지 등의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서 ‘해외명품브랜드의 사치성 소비’는 이미 충분히 언급되고 있다. 일종의 ‘열풍’ 이라 불릴위해 구사하는 그들만의 특별한 마케팅과 홍보 기법도 빼놓을 수 없다.그 중 첫째가 브랜드를 함부로 노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브랜드의 기법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대놓고 광고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 노출도 극도로 꺼린다. 또한 명품 반열에 오른 브랜드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로고나 문양을 자랑한다. 샤넬의 C 로고와 구치의 더블G 로고, 루이뷔통의 LV 로고, 에트로의 페이즐리 문양, 버버리의 체크 무늬, 페라가모가 채택한 말발굽에서 모티브를 얻은 간치니 문양 등은 시간이 흘러도 브랜드의 가치를 동일하게 유지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 에르메스처럼 인기인에게 자사 제품을 입히는 스타 마케팅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브랜드도 있다. 대중에게 알려서 많이 파는 것보다 가치를 알고 찾아오는 진짜 고객만 받겠다는 의도이다. 이렇듯 폐쇄적이고 상징적인 홍보 전략에서 ‘명품브랜드’ 는 그 희소성을 더욱 확보할 수 있었고, 그것이 지금의 명품선호현상에 밑바탕이 되는 명품소유에 따른 심리적 우월성을 낳았다고 볼 수 있겠다.-명품으로 분류되는 브랜드 소개다음으로 몇 가지 소위 ‘명품’으로 인식되는 대표적인 브랜드의 유래, 성장, 특성에 관하여 명품선호현상의 최상위에 있는 고급의류에 초점을 맞추어 몇 가지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1. 프라다20세기 초 새로움에 대한 강한 지적 호기심과 열정, 독창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마리오 프라다는 젊은 시절부터 세계 각국을 누비고 다녔다. 여행을 통해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와 경험을 넓힌 마리오 프라다는 유럽과 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탈리아 밀라노에 최고품질의 가죽제품 전문매장을 오픈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1913년에 개점한 ‘Import shop’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Prada 신화를 만들어낸 진원지이다. 마리오는 최고의 기술과 정성,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Prada의 가죽 전문 매장 두 곳을 밀라노에서 개점했고, 그때 개점한 매장 중 갤러리아 아케이트에 위치한 매장은 현재까지도 계속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고 불리는 카디건 스타일의 슈트를 발표하여 유명하게 되었다. 약 15년간 가게를 닫았으나 1954년 다시 문을 열었다. 장식이 생략된 옷의 본체에 브레드나 코드의 테두리를 붙이고, 당시에는 보기 드문 크고 작은 색유리나 크리스털 글라스의 액세서리를 붙이기도 하였다. 간단하고 입기 편하며 활동적이고 여성미가 넘치는 샤넬 스타일은, 유행의 변천 속에서도 별로 변함이 없이 오늘날에도 애용된다. 또, 그녀가 만든 향수 ‘샤넬 No.5’ 도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모델의 모자’ 라는 암호명으로 나치스첩보원으로 활동하였음이 사후 20년이 지난 1995년에 확인되어 충격을 주었다. Chanel은 기본적으로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하고 있으며 시대를 앞서가는 대담성과 정확한 판단력으로 현대적 의복의 창조와 여성의 개성을 강조하였다. 그녀는 당시의 관습을 타파하고 자유와 활동성을 추구하는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들어냈다.?5. 버버리(Burberry)패션 명품 Burberry의 창시자인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는 원래 포목상으로 당시 농부나 목동들이 즐겨 입었던 스목-프록 이라는 옷감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소재 개발과 연구를 거듭하여 개버딘이라는 혁신적인 원단을 개발했다. 이 소재는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며, 입고 난 후 세탁이 수월하고 비교적 습기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비가 자주 오고 축축한 영국 기후에 적합한 레인코트에 안성맞춤이었다. 이처럼 우수한 품질과 실용성 덕분에 Burberry는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에 의해 많은 사랑을 받으며 명품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에드워드 7세가 토마스 버버리의 개버딘 코트를 입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내 버버리를 가져오게" 라고 말한 것이 널리 퍼져, Burberry가 곧 트랜치 코트를 지칭하는 패션용어가 되어 버렸다. 또한 Burberry의 제품은 많은 스포츠 광들과 탐험가들에 의해 사랑을 받으며 남극 탐험가 아문센과 같은 모험가들의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하며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추위와 강2,000원) 동아대(36만6,000원)순 이었다.남궁성우 기자 socio94@hot.co.kr기존의 명품선호현상에 대한 연구나 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명품선호 현상에는 어떠한 특정한 원인이 내포되어 있고 이러한 선호현상에 문제가 있다면 이러한 특정원인들을 규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명품선호현상이 발생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명품선호현상이 나타나게 된 사회적 배경? 소비사회의 등장198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변화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낳았고 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를 유발했다. 소비는 더 이상 생산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생산을 유발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물질적 풍요로 인해 생활양식이 생산 중심에서 소비 중심으로 변화한 것은 물론이고 소비문화나 소비산업이 성장하면서 상품을 단순히 이용한다는 차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품이 가져다주는 환상에 취하고 있는 것이다. 60?70년대 서구 사회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상징체계로 '소비'에 주목한 학자, 쟝 보드리야르(J. Baudrillard)는 현대의 소비문화를 광고와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기호가치의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더 이상 물건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가치라는 것이다. 소비사회의 핵심적인 특징은 상품 기호들의 증대이며, 상품의 ‘교환가치’ 외에 상품의 내연적 의미인 ‘기호가치’를 통해 상품소비의 사회적 승인을 얻게 된다. 기호가치는 차이-위계로 특징 지워지며 대개 상품들 사이의 위계질서를 통해서 발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떤 유형의 옷이나 차의 스타일은 그들 소유자의 사회적 지위를 의미화 시킨다. 가령, 가방의 경우 물건을 담아 다닐 수 있다는 본래의 사용가치를 넘어 이제는 어떤 상표인가 하는 기호가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드리야르의 논의는 ‘상품’의 소비가 아닌 ‘상표’의 소비 시대와 그 맥을 같이하므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널리 확산된 해외적 소비의 논의는 근본적으로 계급의 문제에서 시작되어지는데, 최초 계급의 분화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일의 분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쟁, 수렵, 약탈, 종교의식 등 용맹이 요구되거나 명예로운 직업에 종사하는 계급과 근면이 요구되거나 천박한 생산적 직업에 종사하는 계급으로 크게 나누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계급의 분화과정에서 전자를 유한계급이라고 하여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고, 후자를 비천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게 되는데, 경제적 부를 축적한 유한계급은 자신을 대중 앞에서 과시하기 위해 ‘과시적 유한’을 그 수단으로 사용한다. 여기서 유한이란 나태나 무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비생산적 소비를 의미한다. 생산적 노동은 무가치하다는 관념에서, 그리고 게으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금전적 능력의 증거로서, 유한계급은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이다. 그것의 구체적인 수단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음악이나 운동 등의 레져 생활과, 장신구, 교양, 품위 있는 어법 등이 있는데, 유한계급은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기의 유한을 과시하게 된다.‘과시적 유한’ 과 더불어 ‘과시적 소비’ 또한 자신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계층의 분화가 보다 심화되고 한층 더 광범위한 인간관계가 요구되는 사회로 접어들면서 소비는 체면유지의 일반적인 수단으로 유한보다도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자기선전이나 자기지위확인의 수단으로써 소비라는 더욱 더 적극적인 방법이 사용되었는데, 타인의 일상생활에 무감각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금전적 능력에 대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불능력의 부단한 과시뿐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세계의 발전추세는 분명히 유한보다는 과시적 소비의 효용을 높이려고 하는 데 있다. ‘과시적 소비’란 생계와 기본적인 육체적 능력 유지에 필요한 양 이상의 재화를 소비하고, 또 고가품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외명품브랜드 옷이나 신발 등은 .
■ 서 론터키의 공식명칭은 터키공화국이며 수도는 중앙 아나톨리아지역에 있는 앙카라이다. 터키는 중동지역의 비아랍어권, 무슬림 국가로 그 성격규명이 쉽지 않다. 국민의 98% 이상이 무슬림으로 이슬람의 전통과 관례가 중시되지만 다른 이슬람 국가와는 달리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으며 사용하는 언어 또한 튀르크족의 언어인 터키어를 쓴다.고구려와 관계가 깊었던 돌궐족의 후예로 한국전쟁 때 미국 다음으로 큰 규모로 참전한 혈맹이며 한국과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터키어는 한국어와 같이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하며 중앙아시아의 천산산맥 아래 같이 살았던 민족으로 그들의 심성과 생활 양식의 많은 부분이 우리와 유사하다.주거문화는 자연환경,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그 독특한 특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앞으로 알아보게 될 터키의 주거문화는 터키의 자연환경, 사회문화등 일반적 특성을 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주거문화에 대해 살펴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본 론●일반적 특성-자연환경-터키는 국토의 97%가 아나톨리아 반도로 불리는 소아시아지역에 있고 나머지 3%가 유럽대륙의 동남부 트라키아 반도의 일부로, 보아즈이치로 양분된 두 대륙에 걸쳐 있다. 북위 36~42˚ 사이에 위치하며 3면이 흑해, 지중해, 에게해로 둘러싸여 있다. 총면적은 약 78만 580㎢로 한반도의 약 3.5배에 해당되며 지형은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 대부분이 고원과 험한 산맥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유럽대륙과 에게해, 지중해 및 흑해 연안은 낮은 평야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터키는 지진대에 속하여 흑해, 마르마라해, 에게해 연안은 제 1급 지진대에 속하며 이스탄불지방은 제 2급 지진대에 속한다. 터키는 대부분의 다른 중동국가들보다 습기가 많고 추우며 생산량이 높은 농업지역이 넓다. 또한 산이 많고 넓은 지역이 어떠한 종류의 경작에도 부적당하지만 양이나 염소를 키우는 데는 적합하다. 온화하고 습기가 많은 흑해 해안에서 겨울에 눈이 많고 뜨거운 여름의 건조한 중앙의 고원과 분지까지 지역적 변화가 다양하고 이에 때까지 지방에서는 계속 건축되었다 .오토만 주택의 기본적인 구조는 목구조이다. 며칠 동안에 건설되고 빠르게 지붕을 덮고 그 틈을 벽돌, 돌, 또는 사용할 수 있는 폐물들로 채운다. 이렇게 구조가 노출된 채로 두거나 회반죽 혹은 백색의 도료를 바른다. 목재를 사용한 건물이 터키건물의 위계에서는 더 높은 것으로 치며 지방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전통주택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2층 이상에서 1면 혹은 2면으로 돌출되어 걸린 창이다. 이는 2층 이상의 주택에서 상층부의 평면을 외측으로 확대한 형식인데 이 경우 돌출부는 캔틸레버의 구조보다 사각이나 곡선의 목재지주로 지탱하도록 하고 주로 창이 없는 1층의 위에 돌출시킴으로써 안정감을 준다.이러한 오토만 주택을 보다 상세히 알아보겠다. 먼저 구조와 형태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전통적인 오토만 주택은 파사드가 없다. 길에서 돌아 들어가거나 폐쇠된 벽에 기댄다. 주택은 길에서는 보이지 않고 2층에 돌출되어 걸린 측창에 앉은 사람이 커튼을 살짝 들치고 문에 노크하는 사람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도로쪽으로는 2층을 빼고는 창문이 없다. 틈이나 구멍이 있는데 스테인드글라스 등에 의해 여과된 다양한 색의 빛이 거주자의 머리위로 들어온다. 이렇게 창문이 없는 이유는 모든 유혹을 제거하기 위함이며 이는 이슬람의 문화적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부엌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조리가 중정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주인이 공직에 있으면 집에서 남성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방인 셀람릭이 포함되며 이는 우리나라 건축의 사랑방과 유사한 용도로 사용된다. 주요한 층인 2층으로 난 계단은 두 가지 형태로, 베란다와 같은 하야트로 연결되거나 소파로 연결된다.다음으로 실내공간을 살펴보겠다. 오토만 주택은 오다 또는 방들이 집의 중심이다. 그 중에 바소다라고 부르는 주요한 방은 창문이 있는 2벽을 갖도록 모서리에 위치하며 대부분 도로쪽 파사드에 2면이 걸리게 된다 바소다는 모서리 문으로 들어가게 된다.일상적으로 이용되는 보통의 방은 면문화에 기인한 것이다. 다음으로 새집은 쿠쉐위라고 부르며 터키건축의 특징으로 건물을 짓는 인간의 이익과는 전혀 관계없는 건물의 벽에 둥지상자와 같이 단순히 새들이 살기에 맞게 디자인된 부분을 말한다. 새에 대한 사랑과 보호태도는 이슬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오토만 주택은 지진대에 속해 있는 지형에 견디기 위해 내진성 있는 목재로 건축되는 등의 환경적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오토만 주택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이슬람교로 이는 물을 중시하는 이슬람교답게 샘이 오토만 건축에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점이나 남녀 문고리가 각각 따로 있는 것, 절제를 위해 창을 내지 않은것, 새를 위한 새집을 만드는 것등 여러 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얄르와 코낙-얄르와 코낙은 오토만 하우스 중에서도 특수한 상류주택이다. 먼저 얄르에 대해 알아보겠다. 얄르는 골든 혼과 마르마라해에 의해 둘러싸인 보스포러스의 양쪽 해안을 따라 건설된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에 접해 지어진 목조빌라를 말한다. 마흐멧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10년 후 보스포러스 해안을 따른 왕족의 부지에 톱캅피 궁, 겨울별장, 그리고 하맘이 달린 여름정자들을 건설하였다. 이것을 시초로 얄르가 시작되었으며 얄르라고 알려진 해안주택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18C 부유한 오토만 상인들과 정치가들이 보통 술탄에 의해 하사받은 대지에 지어졌다. 이곳의 교통수단은 우아하고 좁은 노 젓는 배인 자이크이며 18C말에 해안을 따라 나루터들이 만들어져 얄르의 건설이 활발해졌다.다음으로 코낙에 대해 알아보겠다. 얄르가 제국시대 이후 수도의 이스탄불의 상류주택이라고 한다면 코낙은 터키 전 지방에 걸쳐 나타나는 웅장한 주택을 가리킨다. 터키의 각 지방들이 제국의 행정부가 각 지역의 시골에 대한 행정력이 느슨해지면서 중앙정부에서 지방지도자들에게 고정된 세금만을 거둬들일 뿐 그들이 주민에게 얼마를 받는지 상관하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하에 형성된 코낙은 각 지방의 여러 민족의 대지주, 모피상, 상인, 무역업자, 저명인사 등에 이르는 경조하다. 집들은 기후의 계절적인 극한을 극복하기 위해 지어졌다. 여름철의 더위와 열을 피해 가사활동은 그늘진 중정이나 지붕이 있는 베란다에서 이루어지며 겨울철 생활영역은 동물들의 온기를 이용하도록 동물우리 옆이나 위가 된다. 조성된 집들 역시 차가운 겨울철의 바람에 표면을 더 적게 하려고 서로 붙여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선호되는 위치는 방이 지면 아래로 들어가는 가파른 경사지인데 이는 건설과 유지를 단순하게 하고 기온이 하루중과 계절적으로 변동하는 폭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흑해 해안주거-해안지역의 산은 주택의 지붕과 틀, 전체 구조, 벽 등에 필요한 목재를 제공한다. 북해 해안을 따라가면 수량이 풍부한 것이 마을을 형성하는데 필수적이고 수원에 따라 집들이 집적한다. 마을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고 마을 주민들은 멀리 떨어질 수도 있는데 중앙에 위치한 모스크, 찻집이나 시장이 이와 같은 상황에서 특별히 사회적으로 중요하다.흑해를 따라서는 건조함보다 습기가 문제이므로 이를 위해 경사지붕, 돌이나 나무기둥 위로 바닥을 들어올리는 것, 통풍특성들이 나타난다. 이런 모든 특성이 창고에서 발견된다. 음식저장소를 시원하고 건조하게 유지하기 위해 독립구조로 디자인되었다. 집 역시 독립구조로 중정이 없고 지붕으로 덮인 중앙 홀이나 공동장소로 열린 몇 개의 방이 있다. 모든 주택들이 정사각구조로 비슷하게 보이지만 평면구성과 건축 디테일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나무로 혹은 나무와 돌벽을 조합하여 짓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두 가지 기초적인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나무기둥들로 벽체틀을 만들고 그 안을 돌과 같은 재료로 촘촘히 채우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지틀이 똑바르게 서도록 하기 위해 수평의 통나무나 널들이 집의 모서리에서 만나 결구를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석공술과 목공술이 크게 발전하였다.흑해 해안주거의 대표적인 주택인 아얀즉 주택은 방어를 위해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두드러진 외관을 형성한다. 산림, 자칼이나 도마뱀과 같은 야생동물의 침입과 산적의 공격으로부터 보남단의 아룰리아의 탄산석회암조각으로 건설된 투룰리 프랑스 레 에지에 부근의 석재주거인 보리에에서도 형태적 유사성을 볼 수 있다.-카파도키아 지방-카파도키아는 ‘친절하고 사랑스런 땅’이라는 뜻을 가진 곳으로 이곳은 평균 고도가 해발 1,000m 정도인 소아시아반도 중앙고원에 위치한다. 카파도키아 지방은 화산지대로 히타이트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이들이 발칸종족에게 멸망된 이후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하도시에서 피난생활을 했다. 지하도시는 약 30여개가 있으며 카이마클르, 데린쿠유, 외즈코낙이 유명하다. 그후 7~8세기에 아랍으로부터 도망온 새로운 기독교 이주민들이 이러한 유연한 응회암의 자연적 조건을 이용하여 횡혈을 파서 거주하게 되었고 기존의 지하교회, 수도원, 피난처를 발전시켰다.지금은 폐허가 되었으나 가난한 유목민들이 아직도 횡혈주거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돌구조에 기인하는 카파도키아의 주택드은 전통적인 오토만 주택과 다소 거리가 있다. 이들 주택은 남동부 터키 지역의 아랍의 영향을 받은 곳의 주택과 더 비슷하다. 거실에 의해 모든 면에 측면이 되는 커다란 방 전체의 소파와 유사한 배치를 발견할 수 있다.지하도시들은 8~10층 깊이로 석회암을 뚫고 만들었다. 지하 8층에까지 미치는 지하도시가 있고 1만명 정도의 사람까지 살았다고 한다. 이 중 가장 유명한 데린쿠유는 ‘깊은 우물’이란 뜻인데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거대한 지하도시이다. 전체 규모는 알 수 없고 현재 8층까지만 일반에게 공개된다.특수주거는 비교적 터키전통적인 주거와 달리 특수환 환경이나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나톨리아 내륙의 주택은 한랭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군집한 형태의 마을이 형성되었고 흑해 해안은 습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나무기둥 위로 바닥을 들어올리는 등의 통풍적 특성을 나타낸다. 또한 하란의 주거는 높은 기온차와 강렬한 태양광선을 피하기 위한 벌집형 구조를 가지고 있고 카파도키아 지방은 박해를 피하기 위한 기독교인들의 피난처로써 주거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환어졌다.
.序論보통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이 어떤 나라냐 고 물으면 무서운 나라, 뒤에 칼을 숨기고 있는 나라라고 하면서도 근면하고 배울 것이 많은 나라라고 말한다. 한국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생각은 과거사 때문인지 몰라도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의 패션잡지를 보고 유행을 쫓으며, 이미 한국에서 수많은 일본 영화를 흥행에 성공하였으며 일본 가요를 구해 듣고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많다.우리는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 라고 표현한다. 해방 후 철저하게 일본문화에 대해 폐쇄적이었던 우리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과 일본 문화에 대한 단계적인 개방으로 이미 우리는 다수의 일본 대중 문화를 접하고 있다. 좋지 못한 과거사 때문에 일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적대감을 갖는 우리의 현실에서 일본에 문화를 쫓는 이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찾고자 요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일본의 대중가요에 대해 조사를 했다. 이를 통해 일본 대중음악의 성공요인과 우리의 올바른 수용태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本論.베끼기 엔까에서 세계 2위의 음반시장 이룬 일본음악일본의 패전 후인 1945년을 기점으로 미국 군대가 일본에 상륙하게 되고, 그러한 미국 군대가 상주하던 미군 부대를 전전하며 팝송을 따라 부르던 시절부터 일본의 대중가요는 그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미국 대중음악의 인상적인 멜로디 라인과 일본인들의 정서가 융합되어 새로운 엔까(40년대 이전부터 민족음악을 대변하는 엔까의 형태는 존재하고 있었다)가 탄생하기 시작했으며, 일본 엔까계의 전설적인 여왕이자 한국계 일본인으로도 유명한 미조라 히바리가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도 바로 이때였다.60년대를 주름잡던 비틀즈(The Beatles)의 인기는 일본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64년 일본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던 비틀즈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 포크와 록의 움직임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였고, 수많은 그룹 사운드 붐이 일어났다. 또한 당시 사카모토 큐(Sakamoto , '일본음악'이라는 또 하나의 자기네들만의 것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음악을 가지고 아시아권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티스트들- 사카모토 류이치, 와이엠오(Y.M.O), 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 이시이 켄 등-을 배출해냈으며 일본을 세계 제2위의 음반시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도대체 일본음악의 이러한 파워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일본음악이 이렇게 성장하게 된 가장 핵심적인 배경으로서 활성화된 인디 세계, 다양한 장르, 탄탄한 콘서트 문화등 세 가지를 거론할 수 있다..일본음악계의 또 하나의 세상 '인디'일본에는 오래 전부터 라이브 하우스라는 곳이 존재해왔다. '라이브 하우스'란 말 그대로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아마추어 친구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며 선보일 수 있는 곳으로 음악인에게 있어 최고의 자유의 장이다. 우리나라의 홍대나 신촌 근처에 있는 클럽들이 바로 이러한 형태인데 일본에는 이와 같은 라이브 하우스가 전국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그만큼 많은 라이브 하우스에서는 연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룹이나 팀을 이끌고 연주를 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의 인디 그룹들이 포진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엑스 재팬이나 대부분의 비주얼 록 그룹들이 그랬듯이 라이브 하우스를 통해 메이저로 데뷔한 아티스트들 또한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디 그룹들은 메이저에 얽매이지 않는 그들만의 음악을 하고싶어 하고, 이러한 인디 음악은 메이저 못지 않게 체계적인 조직망을 갖고 있는 인디 레이블이나 인디 미디어 등을 통해 배출된다. 기존의 메이저나 미디어에 식상해진 팬들은 이러한 하나의 거대한 인디 세계 속에서 돌파구를 찾기도 한다..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하는 다양한 장르의 공존위와 같은 인디의 활성화로 인해 파생된 일본음악계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장르의 다양화이다. 인디 뮤지션들이 메이저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을 하다보니 상무한가치의 소프트웨어를 창출해가고 있다. 게다가 리얼 네트워크와 손잡고 '리얼플레이어G2'를 이용해 무료접속이 가능한 '비디오 뮤직 네트워크'를 선보이며 고객들에게 보다 강력하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앞서나가고 있다..스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일본의 연예계 특히 가요계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가요계와 연예계를 살펴보는 방법 중 하나가 대중으로부터 큰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돌 스타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세이코, 사카이 노리코, 나카야마 미호, 소년대, 히카루 겐지와 같은 80년대의 아이돌부터 SMAP, ZARD, Trf, B’z, SPEED, 아무로 나미에 등 현재 전성기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90년대의 아이돌 중에서 주목할 만한 몇몇에 대해 알아보자..액스 재팬침체된 일본 헤비메탈계에 새로운 조류의 락을 선보이며 혜성같이 등장한 이들이 바로 '엑스 재팬'이다. 이들은 일본열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나갔으며 이후 비주얼 락(Visual Rock)이라 일컬어지는 새로운 장르를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이는 기존 메탈계에 식상해 있던 일본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만화를 좋아하는 일본 청소년들이기에, 또한 그 만화속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사랑할 줄 아는 일본인들이었기에 비주얼 락이라는 장르는 쉽게 대중들과 친해 질 수 있었다. 만화 왕국이라 불러도 무색하지 않은 일본에 있어서 그 만화 속의 주인공 같은 사람들이 락계에 등장하였으니 당연히 대중들의 모든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리드미컬한 멜로디 라인에 정적인 감동을 자아내는 가사들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닐 수 없다. "Endless Rain', 'Forever Love'등의 히트곡을 가진 일본음악의 한 장르인 비주얼락의 효시이다. '도쿄돔'의 마지막 라이브공연으로 해체되었지만 기타리스트인 '히데'의 죽음과 장례식은 전 세계에 방송을 타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그들의 인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엑스니지만 기왕의 상품이라면 최고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내고자 애쓰는 것이 바로 일본의 연예계. 쟈니스가 탄생시킨 소년 그룹의 바람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거의 20년 동안 새로운 그룹과 스타로 이어지면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그간 계속된 성공의 노하우는 일본 연예계에서 쟈니스 라는 이름이 차지할 수 있는 굳건한 위치를 마련해주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소년대, 새로운 SMAP가 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아직도 한국의 가요계에는 그들과 비슷한 옷차림과 팀 구성원을 가지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이다.일본을 넘어선 아시아의 스타 아무로 나미에아무로 나미에는 혼자서 스타가 된 것이 아니다. 그녀가 일본, 그리고 아시아에 붐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천재 프로듀서 고무로 테쓰야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고무로 테쓰야는 쟈니스와는 또 다른 면에서 일본 연예계를 다스리고 있는 인물로 그가 손을 댔다 하면 돌마저 황금으로 변한다. 댄스그룹 Trf, 19세 나이에 대 스타가 된 아무로 나미에, 그리고 자신이 발굴해내고 결혼까지 한 가하라 도모미까지, 고무로는 스타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스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고무로가 발굴해낸 아무로 나미에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고무로는 무엇을 보고 이 조그만 소녀를 스타로 만들게 되었을까? 15세의 아무로 나미에는 자신의 노래 실력 하나만을 믿고 오키나와에서 도쿄로 무작정 상경한다. 과거 한국에서 서태지의 학력이 공고 중퇴라는 사실을 끄집어내어 사회 전반에 신세대 붐과 학력 파괴붐이 몰아쳤던 것처럼 일본에서도 노래를 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둔 아무로 나미에의 대담성과 솔직함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특히 같은 또래의 여학생들에게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사생활과 성격 면에서 사람들의 호감을 얻은 아무로 나미에는 곧장 그 인기를 자신의 음반으로 연결시켰고 음반의 성공은 또다시 아무로식 스타일의 대유행으로 번져나가 일본열도가 아무로 현역공세로 나선 것. 그 결과 가장 정상적인 모습이 이들만의 특징이 되었고 그들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정상적이라고 해서 싱거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오해이다. B’z는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야성미를 분출한다. 마쓰모토의 기타음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나바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접하고 있으면 이들은 정말 천생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B’z의 애절한 록발라드 그리고 그들의 인기 행진은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다. 앞서 아무로 나미에와 함께 언급했던 고무로 테쓰야의 또 다른 작품 TRF 역시 국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댄스그룹이다. B’z가 단촐한 멤버로 애상적인 노래를 부르는 그룹이라면 TRF는 언제나 한판 굿과 같은 요란스러운 무대를 선보이는 댄스그룹이다. 이들도 5백만 장 이상의 CD를 팔아치우는 괴물들이다..GRAY누구도 넘지 못했던 500만장의 판매벽을 가장먼저 뛰어넘었던 글레이는 더 이상 비주얼 록이 비 주류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한 그룹이다. 그들은 고교밴드부터 활동하다가 동경으로 와서 여기저기 데모 테이프를 돌리다가 X-Japan의 요시키에게 발탁되어 데뷔앨범 하이또 다이야몬도(재와 다이아몬드)를 발매하였고 더불어 영화음악, 싱글 Rain으로 가요계에 입문하였으나 그리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95년 메이져 데뷔앨범인 Speed pop을 발매하였고 그 후 발표한 6번째 싱글 Yes, Summer days는 25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8번째 싱글 글로리아스, 앨범 Beat out이 일본 오리콘챠트에서 상위 순위를 기록,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후 발표한 그들의 베스트앨범 Review best of glay 가 1주일에 100만장 그리고 꾸준한 인기로 5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여 일본 음반 최다 판매기록(98년 기준)을 갱신하는 기록을 세워 정상의 인기그룹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99년에 들어와서도 16번째 싱글 Winter again은 발매 첫 주에 오리콘 차트 1위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