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품으로 살펴본한국의 여성문학(페미니즘)-시-초록페미니즘에 관한 문학이나 사상 사변들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계속 이야기 되어왔다. 이 글에서는 그중 한국의 페미니즘에 다루고자 한다. 한국 고전중 규방 문학부터 20세기 초 우리나라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를 거쳐 1980년대 본격적인 여성운동이 시작되면서 부터의 문학작품들을 다룬다. 그 양이 너무 방대하여 이 글에서는 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페미니즘 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이나 작가 위주로 다룬다.목차서론- 페미니즘의미와 한국의 페미니즘 태동본론-고전속에 나타난 여성의 목소리-20세기 초 작품에 나타난 페미니즘 (나혜석, 노천명)-1980대 이후의 페미니즘 작품들.결론.서론)페미니즘은 본래 남녀는 평등하며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이념아래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법률적인 모든 권리의 확장을 주장하는 주의를 지칭하는 ‘feminism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근대적 페미니스트 의식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한국사회 여성들이 문학작품 등에서 개인적 자아를 표현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18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말에 이르면 동학 농민군 등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집단적 성격을 띠기 시작하는 것은 20세기 초의 일로, 여성들은 국체 보상운동이나 여성교육운동 등에서 자신의 말과 글, 행동을 통해 사회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한다. 19세기 말까지 공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여성교육과 민족운동 등 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인식하고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말하고 글쓰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페미니즘은 태동하게 되었다고 할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 우리나라에는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경우는 없었을까? 한국의 고전문학들을 살펴보면(신라향가, 고려속요, 조선 부녀가사 , 시조) 예전부터 여성들의 목소리는 작던 크던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는 것을 볼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황진희 의 작품에서수장’ ‘금사’ 등의 표현은 모두 의생활과 관련된 표현이고 규원가에 나오는 ‘베틀에 날아 오른 베올 사이의 북’같은 비유도 ? 여성들이 친숙하던 의생활문화와 관련된 표현이다. 그리고 노처녀가에 나오는 여인의 재주나 행실등도 모두 의생활 식생활과 관련된 것들이다. 여성작이면서도 남성작을 모방했던 부여노정기의 경우에서도 쌀로 떡을 하고 술을 빚는 잔치문화로 귀결해 작품을 마무리해가는 지은이의 태도에서 여성들의 현실적 삶과 문화를 엿볼수 있다. 규원가와 명도자탄사 등의 작품에서 나오는 옥창이나 방이란 공간은 지극히 제한된 공간 속에서 살았던 여인네들의 부자유한 삶을 나타내는 표상이기도 하다. )이렇듯 여성들의 고유한 문화적 속성이며 이러한 생활 문화와의 관련성을 살펴보는 것은 여성성의 시학을 정립하는데 하나의 단서가 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둘째로는 여성의 고유 권한인 창조와 양육의 감성이 잘나타난다 . 쌍벽가나 규원가를 보면 의식적이던 무의식 적이던 ‘낳아 기르는 것’에 대한 여성들의 내면화된 모습이 잘 나타나있고 후대의 규방가사인 은총 송씨의 ‘애련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표현들 속에는 옥동자를 낳아 자손을 번영 시키고 집안의 의식주를 걱정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여성상들이 나타난다. 이런 점들이 조선시대 규방가사에 잘 나타나고 있고 이런 소재들을 통해 당대의 여성들은 자신들 이야기를 해 나가는 여성문학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규방가사 에서는 자신들의 슬픔, 서러움을 내면화 한다. 규원가 에서도 한량인 남편과의 만남을 자신의 처지를 통해 드러내고 있고, 과부가, 절명가, 쌍벽가 등에서도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화자들의 처지, 즉 집안에서 의,식,주 를 걱정하고 아이를 키우고 남편에 기대어 살아가야하는 삶을 내면화 하여 나타낸다. 이처럼 고전에 드러나 있는 여성문학에는 여성의 해방이나 인권 향상 등을 주장하는 의식은 드러나지 않지만 당시 여성들의 자신들 삶에대한 이야기 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속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모습들이는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다. 다음에 볼 ‘인형의家’ 에서는 이러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살아가야하는 여성의 문제를 잘 나타내 준다.인형의 家1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기뻐하듯/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남편의 아내 인형으로그들을 기쁘게 하는/위안물 되도다2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의무같이/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나를 사람으로 만드는사명의 길로 밟아서/사람이 되고저3나는 안다 억제할 수 없는/내 마음에서/온통을 다 헐어 맛보이는/진정 사람을 제하고는/내 몸이 값없는 것을/내 이제 깨도다4아아 사랑하는 소녀들아/나를 보아/정성으로 몸을 바쳐다오/맑은 암흑 횡행할지나다른 날, 폭풍우 뒤에/사람은 너와 나(후렴)노라를 놓아라/최후로 순순하게/엄밀히 막아논/장벽에서/견고히 닫혔던/문을 열고노라를 놓아주게1연과 2연에서 아내로서 딸로서 어머니로서 사는 인형과 같은 여성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고 3연에 와서 이것에 대한 문제를 인식한다. 자신은 값 없는 것이라는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남편의 아내나 자식의 어머니로서의 가치가 아닌 여성이라는 고유한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없음을 개탄하고 있는것이다. 4연에서 보이듯이 소녀들에게 정성으로 몸을 바쳐 달라 말한다. 암흑 횡행한날즉 여성이 인간자체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날 다른날 에 사람으로 남기위해서 말이다. 이처럼 나혜석은 자신이 내딛는 한 걸음의 진보가 조선 여성의 진보가 될 것이라는 자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개인 체험을 바탕으로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인간적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고 봉건적이고 인습적인 관념의 억압성을 드러내어 해체하는 글들을 써서 사회의 비난을 자초하면서도 시대를 앞서 살아갔고 이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여성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진지하게 던지고 있다.여인이 세상을 혼자 걸어간다는 일이 또 진정 외롭고 구성진 사실인지도 모른다 -노천명-노천명도 나혜석과 같이 진명여자고등학교를 나왔다. 졸업후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학과를 나왔고1938년 산슴은 자신의 ‘관이 향기로운 높은 족속’은 찾을수 없다. 물에서 본 눈은 타자화된 눈 현실 세계에서는 남성중심의 현실이며 여성의 현실이다. 여기서 사슴으로 투영된 시인은 타자의 시선을 무너트리고 나를 찾기를 원한다. 먼 데 산을 쳐다봄 으로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관이 향기로운 높은 족속’ 으로 회귀를 원하고 있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곤 향수에 젖는 행위들에 그 욕망이 드러나 있다고 볼수 있다. 이 시에서 노천명은 사슴을 통해 여성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다. 노천명은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으로서의 사슴이 아닌 관이 향기로운 높은 족속 으로의 회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1980대 이후의 작품들.‘시는 여성적 장르이고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그, 그녀는 귀신에 들리 듯 여성에 들린다.’-김혜순-김혜순은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교사이신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강원도 원주로 이사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실제로 김혜순을 키운 건 팔 할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였는데 데뷔작 가운데 하나인 (도솔가)에 나오는 죽은 어머니는 외할머니라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늑막염을 앓았고 초등학교 6학년 때와 대학교 때 또 그 병을 치렀다. 그의 시에 고름이나 피와 같은 병적인 이미지와 죽음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의 이러한 삶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73년 건국대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대학교 문학상에 시가 장원으로 뽑히면서 ‘시라는 게 요렇게 간단하구나’라는 소감을 얻었다고 한다. 첫 시집『또 다른 별에서』는 대학 시절에 씌어진 시들이다.길을 주제로 한 식사1/김혜순이를테면 길은/스파게티처럼 포크에 감아 먹을 수도 있지만 갈래로 쏟아진/여름 뜨거운 길들 위에/검붉은 태양이 쏟아져 꿈틀거리듯/뜨거운 스파게티 국수 위에/검붉은 소스를 끼얹어 먹는 거야/저것 봐, 그녀가 스파게티를 먹다 말고/냅킨을 접어 무언간 끄적거리고 있잖아/너무 뜨거운가봐 눈물까지 머금고 있네/그녀가 앉은 프라이데이 창문 밑으론/이 밤, 붉은 국수 가닥 먹기도 한다. 먹는 것에 대한 의미소들은 지속적인 그녀의 시적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때로 기괴함을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위의 시에서도 그녀는 길들을 쭈욱 포크로 끌고와 용암같은 붉은 소스를 끼얹어 '꿀꺽 삼키는거야'라고 노래한다.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그녀의 식욕은 '나는 눈을 받아 입안에 처넣는다' '나는 뚜껑을 열어 끓고 있는 /내 골을 들여다본다''길은 불에 올려 두 시간 이상 살캉하게 삶아 먹을 수도 있다//(중략)길은 어떻게든 먹어주어야만 또 자란다(중략)-할머니, 이승의 봄밤을 마음껏 드셔보세요 '쥐가/ 잠에 빠진 흰 토끼를 갉아먹는다/토끼장 밖으로 검은 피가 쏟아진다' 와 같이 나타난다. 물론 그녀의 허벅지를 흰개미가 먹거나 '내 몸에 누군가, 아니 그들이 빨대를 꽂고 있다/그 빨대를 통해 나를 빨아마신다' 와 같이 식민화되어 잡아먹히는 자신의 신체를 바라보기도 하지만 그녀는 무엇이든 잘 먹어치우는 왕성한 식욕의 상황들을 능동적으로 보여준다.여성은 오랫동안 '먹는다'라는 동사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먹는다'는 동사는 여성의 것이 아니었다. 에덴 동산의 타락신화 이후 여성에게 먹는다는 것은 거절되어야 할 혹은 금기시되어온 금기의 열매이다. 에서 백설공주는 못된 왕비가 준 사과를 먹고 쓰러진다. 여성은 '먹어서는 안되는 존재'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은 먹지 않아 배고프고 창백한 그녀의 허약한 몸이 그녀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입을 받아온다. 여성은 그리하여 거의 음식을 먹지 않거나 먹어도 조금만 먹어야 한다. 식욕을 거세한다는 것은 곧바로 성욕과 힘에 대한 욕망을 거세한다는 의미와 연루된다. 성욕이 남성굶주림을 나타내는 기호라고 보았을 때 식욕은 그러한 욕망으로 인해 음식갈구의 형태로 드러난 욕망이라고 보는 것이다.‘길을 주제로 한 식사1’에서 시인은 이제까지 '먹어치운다'의 주체였던 남성을 물러나게 하고 '먹는다'의 주체로 등장한다. 아주 천천히 아주 서서히 그녀는 음식들을 먹는데 이를테면 '수많은 세기를 기다려/바람이 산등성이를 깎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