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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주의(가치와 행위)
    현대 사회에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자유주의라는 것과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에 뜻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자유주의의 사전적인 의미는 “개인의 여러 가지 자유를 존중하고, 봉건적 공동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사상 및 운동”이라고 한다.정치적 자유주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신분에 의한 차별을 반대했고, 국가권력의 횡포를 금지하기 위해 헌법과 법률로 국가권력을 명확히 제한하는 입헌주의와 법치주의를 주장했다. 나아가 정치적 참여 채널의 확대를 주장했으며,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는 개인주의를 주장했다. 개인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자유 보장 등의 사회적 권리를 ‘자유’라는 한 마디로 요약했다.경제적 자유주의는 직업의 선택, 재산의 사유(私有), 사적 이윤추구, 계약의 자유 등을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자유를 인정하고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함으로써 조화와 정의의 원칙에 맞는 HYPERLINK "http://100.naver.com/100.php?id=11079" 경제질서가 실현된다는 생각에서 HYPERLINK "http://100.naver.com/100.php?id=135359" 절대주의 HYPERLINK "http://100.naver.com/100.php?id=11081" 경제체제를 비판한 것이다.하지만 자유주의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완전한 평등을 얘기하지 않고 다만 평등의 이념을 ‘정의’(=분배정의)라는 개념을 빌려 제시한다. 가령 70년대에 정치철학의 붐을 일으킨 존 롤스의 은 자유주의 이념의 틀 안에 평등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받아들여 자리매김하려는 이론적 시도로 볼 수 있다.자유주의 사상의 배경으로17세기 후반의 정치사상은 홉스, 스피노자, 보쉬에 등에 의한 절대주의의 완성과 동시에 나타나는 절대주의의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절대 군주를 계몽 군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주리외, 페넬롱, 생시몽, 불랭빌리에, 보방, 생피에르 등에 의 등은 절대 군주의 전제주의에 반대하고, 종교적 관용을 주장하면서 귀족과 사제계급의 특권을 거부하지만, 평민계급의 개인적 자유에 바탕을 둔 민주 정체가 프랑스에서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하지는 않는다.흔히 홉스와 로크를 자유주의의 선구자로 꼽는다. 이 두 사람은 동일한 철학적 전제에서 출발하여 각각 상이한 결론에 도달하는데, 여기서 자유주의의 두 가지 버전이 성립한다. 로크에게 천부인권이란 결코 양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절대군주의 월권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권력분립) 마련에 관심을 기울인다.반면 홉스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가 인간늑대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자연상태로 떨어지지 않게 막는 것이었다. 그에게 권력분립이란 곧 무질서를 의미했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권력을 절대군주에게 위임하되, 군주가 경제의 영역에 개입하여 또 다른 경제요인이 되는 것을 막는 데에 주력한다. 로크가 주로 경제적, 정치적 자유를 동시에 주장했다면, 홉스는 정치적 자유보다는 주로 경제적 자유에, 즉 경제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절대군주의 간섭을 막는 데 관심이 있었다.사실 정치적 자유를 포기한 이런 자유주의의 유형은 제3세계에선 흔히 보는 현상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유주의 경제각료를 거느린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이다. 그의 치하에서 칠레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했지만, 그 대가로 중소기업은 초토화하고 사회의 빈부격차는 더욱더 벌어졌다. 자유주의가 독재와 결합한, 역사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예는 나치정권이었다. 나치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는 가운데 경제를 교란(?)시키는 노동조합을 해산시키는 초(超)자유주의적인 조처로 대기업의 영업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해주었다. 우익독재와 자유주의의 연합. 우리의 상황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런 자유주의가 진보적인가, 아니면 반동적인가는 자유주의를 정치적 자유주의 및 경제적 자유주의로 구분함으로써 정리할 수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건설해 만인 평등과 개인 기본권의 보장, 사상과 비판의 자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생명 및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인정해 자신의 권리와 똑같이 이들의 정당한 권리를 존중하면서 이들과 서로 도우면서 함께 살아감을 말한다. 인간의 개인성과 사회성의 두 가지 측면 가운데 개인성에서의 원리를 자유라고 한다며 사회성에서의 원리를 상생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생의 원리는 자유주의의 관용 원리와 공동체주의의 관점을 더 적극적으로 확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상생의 이념은 두 가지로 근거한다.첫째는 개인주의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질서와 치안 유지는 공공의 것이지만 개인의 이익에도 정확히 부합하므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로 접근해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예를 들어 노사문제가 그렇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서로 상호 이익 극대화를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갈등의 원인이다. 개인주의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상생의 입장에 서면 문제는 달라진다. 노동자와 사용자에게 공동의 이익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상생의 이념은 이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빈부격차, 독과점, 환경문제, 인간소외, 전쟁 등의 문제도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두 번째로는 왜 사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한 대답에서 상생의 개념을 도출한다. 생활이 가능한 것도, 생의 보람과 즐거움을 찾는 것도, 다른 사람과 함께 존재하고 공생한다고 지적한다. 가치의 담지자인 개인에게는 개인성과 사회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사회성에서 상생 개념을 도출해낸다.빈곤의 문제를 보면 개인주의 입장에서 보면 빈곤은 당사자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가 나서서 해결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상생의 원리에서 보면 사회가 빈곤을 퇴치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인은 자기의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경쟁자이거나, 아니면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는 존재다. 그 때문에 인간 소외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개인주의 윤리는 이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조장한다. 그러나 상생의 원리는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주의에서 말하고 있는 기본권(소유권)를 극단적으로 주장하기에 사회적 자원의 재분배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다수의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려는 태도에 대해서 개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어제 친일파들이 그들의 땅을 찾기 위해서 국가에 소송한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아쉽게도 그들은 국가로부터 친일행각으로 얻은 땅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왜 이러한 사태가 가능하겠는가? 그 이유는 현대사회의 기본권(소유권)의 강화에 있고 그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다움을 위한 권리를 말하기 위해서 주창된 인간의 천부인권적 권리의 신장과 더불어 기본권(소유권)에 역시 신장된 것이다.(소유권의 신장은 자본주의 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아마 그러할 수 밖에 없었다고 봐야 할 듯 하군요.) 즉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상의 발로가 사회관계가 바뀜에 따라서 소수의 부조리한 권력체제를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자유주의가 진보적 자유정신을 도외시하고 보수적 자유주의의 입장만을 견지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자원이 편향된 사회, 소수의 권력 집단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사회, 이러한 사회는 위의 그림에 표현된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즉 사회관계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의 교묘한 위장을 통하여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면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것이며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면 정치적 자유주의는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 정치적 자유주의는 유산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는 데서 그 구상이 출발한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닌다. 프랑스혁명의 주체세력이었던 부르주아와 민중세력은 처음부터 이해관계를 달리했다. 부르주아들은 민중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했고 또 경멸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민중들과 유대를 맺었던 것은 특권계급과 결합한 왕권의 완강한 저항에 맞서 달리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시켰다. 구체제처럼 선천적 신분의 구별로 출세 길이 막히는 경우는 없었으나, 여러 사회적 요인들은 여전히 상류계층을 부르주아들이 독식하게 했다. 요컨대 부르주아들은 최소정의적 민주주의를 보장함으로써 민중들이 기회균등이 보장되는 사회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또한, 부르주아가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서 주창했던 법치주의는 이제는 민중세력을 억압하는 도구가 됐다. 실정법을 어기는 시민불복종 운동 등의 정치행동에 대해서는 허용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음으로써 그 성격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이 리포트를 쓰면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찾아보다 보니,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의 구분에 대한 반박도 있었다. 처음 리포트를 썼을 때 이 둘이 확실히 구분 되어진다고 알고 있었지만 여러 자료들을 접하면서 이 둘을 분리시키지 않고 같은 맥락에서 이해시키는 글도 보았다. 즉 A와 B의 구분이 아닌 A=B라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는 그 이념간에 있어서는 같은 사상과 다른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비판 받고 변화해오면서 오늘날까지 왔다. 인간 불완전성의 인정, 만인평등의 인정, 개인기본권의 절대적 보장, 독립심과 자기책임의 원리, 사상과 비판의 자유, 관용의 원리, 그리고 이들의 구현으로써 법치와 민주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라고 말하고 자유방임의 자본주의 경제를 지지하는 입장을 경제적 자유주의라 말한다 위에서 거론된 생각은 이론적으로는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완벽한 부분이었지만 실상에서는 그렇지 못하여 오늘날 비판 받고 있다.그러나 현재 우리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등의 이념들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이념이 사회화되고 그로 인해 비판 받고 문제점을 야기시킨 덕분에 지금까지 수정되어 온 현재의 이념들이 다시 오늘날 비판 받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옳은 것은 없다. 문제가 생기면 그 상황상황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것, 즉 더 나은 방향으로 다시 잡는 것이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에
    인문/어학| 2007.01.10| 6페이지| 1,000원| 조회(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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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 미술관 감상문 (도천 도상봉)(그림파일삽입)
    미술관 감상도천 도상봉 탄신 100주년 기념전과 목생 활 과 미 술제출일2002년 11월 4일학 과화 학 과학 번1 9 9 8 0 1 3 8 3이 름배 현 철순 서작 가 및 전 시 회 소 개전 시 회 감 상 평 ( 세 부 적 )전 시 회 감 상 평 ( 전 체 적 )전 시 회 방 문 후 기작가 및 전시회 소개도천 도상봉 선생 (1902 ∼ 1977)도상봉(1902-1977)은 서양화 1세대에 속하는 작가로 한국적 정서를 전통적 사실주의 회화로 확립한 화가이다. 이번 전시는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되었으며 중후한 사실주의로 자신의 화풍을 실현시켰던 도상봉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도상봉은 1920년에 고희동에게 서양화를 배우고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명치대법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곧 미술로 전향하여 1927년에는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에는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였고 해방 후에는 국전 창설에 가담, 국전심사위원, 대한미술협회위원장(1955년)등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 우리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창작의 영역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조형의지와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도상봉의 호 도천(陶泉)은 `도자(陶瓷)의 샘`이란 뜻이다. 도상봉이 도자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면서부터이다. 고담(枯淡)한 한국적 멋을 풍기는 조선 백자의 소박하고 부드러운 선과 색채는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어 왔다. 또한 한국적 정취와 운치를 느끼게 해 주는 고궁 및 한국식 건축물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 역시 주요 소재가 되었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우미(優美)의 세계를 추구한 고인의 정신세계와 만날 수 있다. 초창기에서 만년에 이르는 도상봉의 작품은 주로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로 구분할 수 있다. 풍경화 중에는 성균관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은데 이것은 혜화동에 성균관이 내려다 보이는 집을 장만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회화는 생활의 반영이한 형태감각과 아카데미즘에 기초한 엄격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인물은 대개 의자나 소파에 걸터 앉아있는 이 시기의 전형적인 인물 구도를 따르고 있다. 인물 주변에는 도자기를 두어 구성의 균형을 이루게 하고 있으며, 도자기를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사용하여 `한국적 정서를 서양화 기법으로` 담으려는 의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도상봉은 대상을 확실한 존재로 강조하고 그 대상을 사실주의적 기법에 근거한 엄격한 조형적 구성으로 조절하고 있다. 정물화는 전시기에 걸쳐 가장 많이 제작되었다. 그가 즐겨 소재로 삼은 것은 라일락, 국화, 안개꽃 등의 꽃과 사과, 감, 포도 등의 과일, 조선백자와 목기, 서양식 술병 등이다. 정물화가 풍경화나 인물화에 비해 수적으로 많은 것은 작가가 소재를 임의로 선택할 수 있고 재배열할 수 있다는 구성 의도에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정물은 백자 항아리에 가득히 꽃이 꽂혀있는 유형과, 백자를 중심으로 목기나 서양식 술병과 꽃을 배열하는 유형 그리고 정물의 일반적 유형인 병과 과일접시, 과일 등을 배열한 것이 있다. 이러한 정물들은 어둠 속에서 부각되거나 정물 뒤에 천주름으로 안정된 구도 속에서도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백자에 꽃이 담겨 있는 유형은 백자 항아리가 주는 완벽한 형태감과 그 위로 퍼지는 꽃다발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외의 유형들은 소재의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와 크기를 적절히 배열하고 색채를 대비적으로 배치하여 조화로우면서도 동시에 화면에 생기를 준다. 이러한 소재들은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도상봉에 의해 선택되고 일관적으로 그려짐으로써 보편성을 넘어 도상봉의 고유한 독창성으로 바뀌어졌다고 할 수 있다. 도상봉의 정물화는 후반기로 갈수록 밀도를 더해가며 완숙한 예술적 심화를 보여주고 있다. 풍경화 역시 꾸준히 제작되었으며 후반기에 더욱 많이 제작되었다. 주로 비원, 광릉, 성균관 등 고궁이나 전통가옥을 대상으로 하여 고적하고 우아한 멋을 담고 있다. 풍경은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없이 로 한 고궁풍경이 후기로 가면서 집중적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풍경화는 소재의 선택, 광선의 변화, 대상을 관조하는 작가의 시각을 통해 한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예술작품이란 오랜 인격의 형성과 예술적인 숙련이 조화될 때 그 화격(畵格)을 더해갈 수 있다. 도상봉은 같은 대상을 언제나 새롭게 포착하였고 균형과 조화로서 격조 높은 화면을 완성시켰다. 이러한 그의 작풍은 `도상봉 화풍`으로 실현되어 우리 근·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근대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아름다움으로 한국적 미감을 추구했던 도상봉의 걸작들을 통해 숭고한 아름다움에 다가가려 했던 작가의 예술혼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전시회 감상평 (세부적)4개의 전시된 인물화중 하나로 여인이 비스듬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안정적이다. 왼편에 놓인 백자로 인해 더욱 안정감을 주게한다. 바로 우편(전시된 작품중)의 여인좌상(1933)과 필치나 느낌이 너무 달라서 큐레이터분에게 기회가 되어서 질문을 했는데 이 작품은 인상주의적인 빛의 생동감을 잘 표현한 그림이고 우편의 여인좌상은 초기작으로 아카데믹한 느낌을 잘 살린 그림이라고 하였는데 같은 인물화인데도 불구하고 느낌이 매우 달랐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이 그림은 다소 정적인 느낌을 벗어나기 위해서 노란색의 조끼와 양말로 운동감을 나타내었고 대각선 구도를 이용해 정적인 화면에 역시 운동감을 부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시된 모든 인물화에는 인물의 우편이나 좌편에 백자나 우산같은 물건이 놓였있어서 더욱 안정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한 정 (1949)이 그림은 도상봉이 시집가기 전의 맏딸을 모델로 그린 인물화라고 했는데 여유있게 앉아 있는 딸의 모습과 오른쪽 앞에 놓인 둥근 백자 항아리가 빈틈없는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시잡가기 전의 긴장된 마음 때문인지 한복을 입은 딸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고 우아한 치마 저고리와 거의 매번 등장하는 백자 항아리 때문에 한국적인 느낌이 강하게 나타났다. 위의 그리 아래에서 위로 빛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다른 그림보다는 갈색계톤의 색으로 표현되었고 수평구조로서 역시 안정감이 있어보인다. 그림 앞쪽에 실제 모델이 되었던 조선백자가 전시되어 있어서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항 아 리 (1953)명륜당을 소재로 한 이 풍경화는 우편에 나무의 수직감과 지면의 수평감이 조화를 이루어 구도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전시되어 있는 풍경화가 다 이런식의 구도를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풍경화마다 등장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큐레이터 분의 설명이 도상봉 선생님은 풍경화에도 정물화의 느낌을 준다고 하셨는데 한 그림은 집뜰 풍경가운데 인위적으로 가져다 놓은듯한 화분이 그런 느낌을 주었다. 다른 풍경화 대부분의 경우 대각선 구도를 사용했는데 특징이 있다면 가운데로 길이 가다가 오른편으로 그림의 가운데에서 꺽인다는 특징이다.명 륜 당 (1933)도상봉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해서 주의깊게 보았다. 선생님의 모든 정물화가 그렇듯이 안정적인 수평구조이고 초기 작품보다는 왠지 모르게 밝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백자에서는 극도로 단순화한 선 처리와 음영이 어울러져 무한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고 정물화라고 해서 그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닌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시건으로 사물을 재창조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정 물 화 (1977)백자에 꽃혀진 한아름의 안개꽃이 부각되는 작품이다. 어두운 배경에서 입체감있게 표현된 안개꽃이 인상적이다. 역시 안정적인 수평구조이고 백자에서 나타나는 광채가 실제의 백자를 보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 그림은 밝은 편이지만 굉장히 어두운 정물화들도 있었다. 두분의 큐레이터분의 의견이 틀렸는데 한 분은 붓을 석유에 빨면 어두워진다고 했는데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 잘 모르겠고 내가 공감했던 다른 분은 어두운 배경에서 꽃의 밝은 면을 부각시켜서 생동감과 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이 그림은 정물화중에서 제일 따뜻해보이고 밝아보여서 특별히 맘에 들었다.안 개 꽃 (1974)전 수평구도, 풍경화, 인물화의 경우는 수평수직구도, 대각선 구도로 나타내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과 동적인 느낌을 가미하였다. 그림마다 백자와 조선시대 사람들을 연상하는 인물이 많이 들어가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었고 필치가 다소 거칠은 편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빛에 의한 기법이 사용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을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으로 나누었을 때 차이점을 발견했는데 1970년을 기준으로 그림이 어둡다가 밝아졌다는 점이다. 후기의 그림들은 르노아르의 그림과 같이 상당히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받았다. 몇 몇 작품에서 일본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일본유학시절의 영향이라고 들었다. 정물화에서 어두운 배경속에 피어오르듯 표현된 정물화는 50년대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물화에서 소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나리, 라일락, 국화, 안개꽃, 매화를 주로 썼으며 특히 라일락은 하얀 솜처럼 때로는 보라색의 물결처럼 피어나는 만개한 라일락꽃의 풍성함은 실로 풍요로운 느낌을 주면서 그 향기마저도 코를 찌르는 듯 느껴진다. 화면의 중앙에 다소곳이 영명한 조선백자에 소담하게 꽂혀 있는 라일락의 자태는 서설보다도 더한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봄날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조의 바탕에 간간이 드러내는 파아란 잎과 함께 대비와 조화를 이루는 라일락의 풍요로운 자태는 개개의 작은 꽃들이 모여서 일구어 내는 또 다른 개체의 아름다움이자 전체의 모습이다. 늘 보는 조선백자의 눈에 보일 듯 말 듯 배경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과 그 속에 가득히 담겨있는 순백의 라일락은 백자의 순백의 색깔과 연결되면서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연도의 차이가 있음에도 똑같은 배경이지만 그림안에 사람이나 동물등이 똑같이 나타내어져 있는 것은 풍경화 속에서도 정물화의 배치감을 느낄 수 있는 점이었다. 같은 그림이 많아서 비교해 보기가 쉬웠는데 그림마다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빛의 변화, 색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길이 있는 풍경화에다.
    독후감/창작| 2003.12.08| 11페이지| 1,500원| 조회(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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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문학의 의미
    민족문학의 의미민족문학이라는 단어는 다른 어떤 말보다 넓은 범위와 다양한 뜻을 갖는다. 그것은 역사와 정치를 가로질러 옛적부터 우리와 함께 한 문학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인간에게 있어 어머니라는 단어만큼이나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사전적으로 민족문학이란 동질성을 갖는 한 나라, 한 민족이 만들어내는 문학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이 뜻은 민족혼을 담고 있거나 민족사적 사건이 담긴 문학, 또는 민족에게 정체성을 일깨우는 문학, 그리고 민족에게 어떤 방향이나 목표를 제시해주는 문학 등 다양한 의미를 아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뜻의 민족문학은 서구에서는 국민문학이라고 부르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그 역사적 사건과 의미로 인해 국민문학보다는 민족문학으로 받아들여지고 말해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와 민족분단을 겪으며 국민문학이 용어의 왜곡을 가져와 국민문학보다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를 내포하는 개념으로 한 민족의 한이 서린 문학이라는 뜻으로 민족문학이 받아들여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그럼 다른 유럽의 국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근대적인 의미의 민족문학이란 무엇일까?근대적인 의미의 민족국가를 에릭 홉스봄(Erich Hobsbawm)이 제시한 공식인 '민족=국가=민중'의 등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것은 특정 역사적 조건 속에서 생겨난 담론적, 문화적, 의식적 구성체로서 이러한 담론/문화/의식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문학이 가지고 있는 역할은 매우 큰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민족=국가' 등식보다는 '군주=국가'라는 등식이 지배적인 의식이었으나, 시민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군주나 특정 귀족층의 독점물로서의 국가가 아니라 훨씬 더 큰 단위인 '민족'이라는 개념이 국가와 동일시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민족'과 동일시된 '국가'는 근대 이전에는 단순히 통치의 대상으로만 인식되던 민중을 국가권력의 주체로 올려놓았다. 민중의 위치와 권리가 부상하면서 이미 성립된 '민족=국가'의 등식에 '민중(인민, 국민)'이 연결되는데, 이것은 무엇보다도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국민군대가 상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여기서 강조할 점은 이러한 민족국가의 등식핵을 이루는 '민족'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특정 지역의 사람들의 총합의 개념이라기보다는 독특한 형태로 인격화되고, 성격화되고, 실체화된 하나의 '허구적', 담론적 구성체라는 점이다. 그리고 모든 추상적 개념들의 이러한 구성체들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이 '민족'도 담론적 구성의 역사적 계보 속에서 추적될 수 있다. 그 계보와 관련된 근본적인 연원에는 각 '민족'들의 중심에 서 있는 '민족문학', 그 '민족'의 '문화'를 대표한다고 추앙 받는 '문호'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라의 중심인 '민족' 그리고 민족의 중심에 서 있는 '민족문학' 이 둘은 한 선상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시대와 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평가를 할 때 문학에서 차지하는 장르의 대부분은 아마도 민족문학이 될 것이다. 그것이 수적인 개념에서 차지하는 대부분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비중의 개념으로 본다면 그러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현대에 이르러서 두드러진 자전적 소설 경향을 제외시킨다면 이제껏 가져왔던 문학의 의미는 개인보다는 국민, 국민보다는 민족의 개념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 문학이란 그에 대한 수많은 정의와 의미 그리고 불분명해진 개념으로 인해 그 의미가 점점 퇴색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나라와 민족마다 자신들의 문학인 민족문학 또는 국민문학을 정의하는 기준이 다른 만큼 문학이 차지하는 민족적 비중마저 작아져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특히 우리나라의 현대문학에 있어서 더욱 두드러진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이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의 역사에서 치욕적인 한 때였다는 점을 들어 그 당시의 문학을 우리 근대 문학의 현실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문학 연구가 해방 공간의 민족문학론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으로 식민지 시대와 그 문학에 대한 당시의 평가를 아직도 우리가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는 사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 시대가 치욕적이라고 해서 그 시절 문학의 정통성만을 인정한 채 기타의 여러 근대적 문학 조류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의식적으로 무시한다고 해서 다양한 근대적 문학 조류가 현재의 우리 문학에 끼친 영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의 문학을 극복하는 일은 우리 문학의 근대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것은 아직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엄연한 과제이다. 그 과제는 해방 공간의 민족문학론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그들이 제대로 밝혀 내지 못했던 측면에 대한 탐구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민족이라는 것의 의미, 그리고 문학이라는 개념. 두 가지 모두 우리에게는 너무 가까우며 동시에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그 의미를 서양 근대에서 또 우리나라의 근대적 문학을 예로 들어 얘기하는 것이 어쩌면 너무 부질없고 시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민족문학이 실제 가지고 있는 의미와 우리에게 끼친 영향을 고려할 때 지금 얘기하는 이 몇 마디는 너무 편협하고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과 민족에 대해 더불어 민족문학의 여러 측면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의미 있는 과제를 완성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인문/어학| 2007.01.10| 2페이지| 1,000원| 조회(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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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 탁구란 무엇인가 평가B괜찮아요
    탁구란 무엇인가?과 목:구 기 2학 과:화 학 과학 번:1 9 9 8 0 1 3 8 3이 름:배 현 철■ 탁구의 유례탁구는 그 역사나 기원이 정확하지 않은데 중세 이탈리아의 루식 필라리스라는 유희에서 변한 것이라 하기도 하고 15-16세기경 프랑스 궁전에서 행해진 폼 이란 놀이가 변하여 탁구가 되었다고도 한다.그 명칭도 일정하지 않아서 고시마, 프림프림, 와프와프등 여러가지로 불리어졌다.그러나 남아프리카, 인도등 영국 식민지에 살던 영국인들이 테니스에서 힌트를 얻어 더위를 피하여 실내에서 놀수 있는 유희로 변형 시켰다는 것이 통설이다.지금의 셀룰로이드 공은 1898년 영국의 제임스 깁이 고안 했는데 이를 취급하던 운동구 상인 "함레상회"에서 공을 칠때 나는 "핑퐁" 소리를 따서 핑퐁이라는 상호를 붙였다고 한다.1900 년무렵에는 전 유럽에 탁구가 널리 보급되었으며 1926년에는 독일의 베를린에서 국제 탁구연맹이 발족하여 국제적인 면모를 갖추었고 1927년 1월에 영국 런던에서 제 1회 유럽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었다.■탁구 경기 규칙1) 경기를 시작하는 순서경기를 시작하기까지의 순서는 1:1의 단식이나 2:2의 복식이나 거의 마찬가지이다.① 서비스, 리시브, 엔드를 정한다.우선 가위바위보를 하여 이긴 사람이 서비스를 하거나, 리시브를 택하거나, 엔드(장소)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선택할 권리를 상대에게 물린다 - 이 네가지 권리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예를들어 A와 B가 경기를 할 경우 A가 가위바위보에 이겨 리시브권을 선택했다고 하자. B는 자동적으로 서버가 되어 엔드를 선택할 수 있다.② 라켓 러버를 확인한다.대항전이나 공식 경기에서는 상대의 장비를 확인할 권리가 있다. 단, 경기 전개 전에만 할 수 있다. 경기 연습에서는 상대가 어떠한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지 미리 알고 있으므로 생략해도 상관없다.③ 경기 전의 연습은 2분간경기 연습에서는 경기 전의 연습시간은 자유롭게 정하도록 하자. 공식 경기에서는 2분간으로 제한되어 있다.④ 스톱, 레디, 러브 올경기 전의 카운트는 서버쪽부터 말한다.③ 10대10 이후는 어느 한쪽(조)이 먼저 2점을 따내면 이긴다. 예를 들어 12대10이거나 15대17.(참고) 이전에는 이같은 경우를 듀스라고 했으나, 지금은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냥 [텐 올]이라고 한다).3) 최종 게임 도중의 약속5게임 경기의 5번재 게임이나 7게임 경기의 7번째 게임(승패를 결정하는 최종 게임)에 어느 한쪽(조)이 5포인트에 달하면 [체인지 엔드](장소를 교체)한다. 이것은 양쪽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또한 복식 경기에서는 단식과 다른 특별한 약속(리시버 조의 리시버가 교체한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2월호 참고).경기는 5게임인 경우는 3게임을, 7게임인 경우는 4게임을 먼저 잡은 사람이 이긴다. 경기가 끝났을 때, [게임 셋]이라고 말한다.(참고) 경기 종료 사인인 [게임 셋]이 선고된 후에 잘못된 점이 발견되어도 경기를 다시 할 수는 없다. 그 경기는 유효이다.3. 규칙 ABC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이프(유효), 아웃(실점), 포인트(득점) 정도의 간단한 규칙만큼은 알아두어야 한다.공정한 스포츠인 만큼 경기를 하는 사람이 같은 조건 하에서 규칙을 지키고, 경기가 끝나면 서로 기분좋게 악수를 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경기를 끝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무리 초보자라고 해도 최소한의 규칙을 익혀 두어야 한다.1) 서비스 넣는 법탁구는 서비스에서 시작된다. 서비스의 규칙을 알아두지 않으면 게임을 할 수 없다. 우선 서비스의 규칙에 대해 살펴보자.① 오픈 핸드 서비스서비스에는 여러 가지 규칙이 있다. 그림 1을 참고로 올바른 자세를 익히도록 한다.㉠ 공을 16cm 이상 던져올린다(그림 3).㉡ 꼭지점으로부터 떨어지는 도중에 친다.㉢ 공을 칠 때까지 라켓은 코트 면보다 내려서는 안된다.② 우선 자신의 코트에 바운드시킨다올바른 오픈 핸드 서비스에 의해 타구된 곧을 일단 자신의 코트에 바운드시킨 후, 네트를 넘겨 상대 코트에 넣는다(이때 서비스된 공이 네트나 서포네트나 서포트에 닿고 상대 코트에 들어간 경우.㉡ 서비스 볼이 네트나 서포트에 닿거나, 그 볼을 상대가 코트 안에서 직접 라켓을 잡고 있는 손 손목에서 손끝, 또는 라켓에 맞힌 경우.② 아직 자세를 잡고 있지 않은데 상대가 서비스해 온 경우(단, 빨리 치려고 라켓을 내밀어 상대가 리시브할 수 없는 경우는 리시버의 실점이 된다).③ 아직 카운트하지 않았는데 서비스한 경우(단, 심판원이 타임을 선고한 경우).④ 다른 코트의 공이 날아와 방해가 된 경우.⑤ 갑자기 비나 지진, 정전, 광선이 들어온 경우. 이밖에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난 경우.⑥ 공이 파손된 경우.⑦ 상대의 땀 때문에 제대로 리시브할 수 없는 경우(자신의 땀은 안된다).4) 타구가 세이프가 되는 경우다음과 같은 경우 그 타구는 유효(세이프)이다.① 서비스를 제외하고 타구가 네트 인(서포트 인)한 경우.② 랠리 중 타구가 코트 끝(에지)에 들어간 경우(서비스도 마찬가지).③ 라켓을 쥐고 있는 손의, 손목에서 손끝 부분으로 맞은 경우.④ 공이 라켓에 맞지 않고(헛스윙하여) 다시 쳐 상대 코트에 들어간 경우.⑤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꿔 쥐고 친 경우.⑥ 펜 그립에서 셰이크 그립으로 바꿔서 친 경우.⑦ 타구가 네트를 넘지 않고 서포트 바깥쪽이나 코트보다 낮은 위치에서 상대 코트에 들어간 경우.■ 탁구의 좋은점과 주의할점탁구는 남녀노소 구별없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운동 자체가 과격하지 않으면서도 운동량이 많으며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운동 전에 반드시 충분한 준비운동이 요구되는데 가벼운 맨손체조를 실시한 다음, 목, 어깨, 팔, 손, 허리, 무릎, 다리, 발목 등의 순으로 정적인 스트레칭을 실시하도록 합니다.탁구는 보기에는 기술 위주의 운동 같지만 여느 운동 못지않게 체력소모가 많으며 트레이닝에 의한 체력단련이 필요한 운동입니다. 특히 탁구에서 주로 동원되는 근육은 복근과 배근, 장딴지와 종아리 근육, 그리고 팔과 손목의 근육으로 이러한 근육의 강화를 위해서는 웨이트 트레이닝이복장이 닿았을 경우에는 실점이 된다.2. 경기자가 플레이중에 코트(탁구대)를 움직였을 경우에는 실점이 된다.3. 플레이 중에 프리핸드가 코트에 닿았을 경우에는 실점이 된다.4. 발리(상대방이 친볼이 아직 자기 코트에 닿기전에 치는볼)을 했을경우는 실점이 된다 단,서브로 네트인이된 볼을 발리했을 경우는 제외한다.5. 라켓을 잡지않은 쪽의 손이나,손에서 라켓으로 리턴이 행해져도 무효이다.타구후 라켓을 손에서 놓친것은 유효다.6. 라켓의 뒷면을 사용할 경우는 정규러버를 붙였든가 목질그대로 앞면과 같은 암색으로 칠했을 경우이다. 따라서 니스나 에나멜 도료를 입혔거나 또는 코르크를 댄 면으로 타구하면 실점이된다(단 손가락이 닿는 부분은 제외)7. 코트란 탁구대의 윗면만 가르키는것으로서 (에지 및 코너포함)타구된 볼이 테이블의 측면(사이드)에 닿았을 경우에는 무효이다.8. 시합중에 휴식을할수 있는 경우는, 5셋트 매치에서는 3게임과 4개임째의 중간 5분간 또는 부상등으로 인한 사고로 심판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만 1매치에 있어서 최고 30분 이내의 휴식이 인정된다 그이상이 될 경우에는 기권으로 인정된다.9. 경기자는 1게임 후의 엔드의 교체시나 또는 피날레 플리이시에 어느 한쪽의 경기자가 10포인트를 선취해서 엔드를 교체할 때에 간단한 조언을 듣기 위해 밴치에 돌아가는 것이인정된다, 단 플레이중에 어드바이스는 개인적인 경우는 사전에지면된개인,단체전에 서는 팀의 감독 감독 부재시에는 주장에게만 허용된다.■ 라켓 (Racket)크기,모양,무게는 제한이 없다. 다만, 라켓의 본체는 두께가 균일한 물질로 단단하고 평탄하며 투구면에는 규정된 고무로 전면이 덮어 씌워져 있어야 한다.양면을 고무로 덮어 씌울 경우 이질의 고무를 사용해도 무방하나 확실히 식별할 수 있는 다른 색이 아니면 안된다라켓의 크기, 모양,무게에는 제한이 없으며 판은 평평하고 단단해야 한다I판의 최소 85% 두께는 원목으로 해야 하며 판 내부의 접착층은 카본섬유,유리섬유와 같은 섬유 소재 혹은 압축용지등으로 강화할 최상부까지의 높이가 15.25cm가 되도록 수평으로 친다■ 볼볼은 셀롤로이드제의 둥근 모양으로 백색 또는 황색의 무광택의 것으로 한다무게는 2.4에서 2.53g,직경 37.2-38.2mm■ 테 이 블테이블은 딱딱한 목재로 만들어지며 크기는 274cm*152.5cm로 두께는 2.5cm정도를 표준으로 하고 있다.바닥에서 테이블 윗면까지의 높이는 76cm가 되도록 설치된다윗면을 코트라고 하며 에지와 코너를 포함한다코트는 평탄하고 반사광서이 생기지 않도록 무광택의 짙은 녹색으로한다■ 올바른 서비스서비스의 시작시,볼은 서버의 프리핸드의 펼친 손바닥에 정지상태로 놓여있어야 하며 위치는 엔드라인 뒤 시합표면의 위여야 한다.서버는 수직에 가깝도록 위로 볼을 띄우되 회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볼이 프리핸드의 손바닥에서 떠난 후 적어도 16cm 높이로 올라갔다가 방해물에 부딪히는 일 없이 내려왔을때 쳐야 한다.볼이 내려오면 서버는 볼을 쳐서 서버의 코트에 볼이 먼저 닿도록 한다.다음, 볼은 네트 어셈블리위나 어셈블리를 돌아서 리시버의 코트에 바로 닿게된다.복식경기시에는 볼이 서버와 리시버의 오른쪽 하프코트에 연속적으로 닿아야 한다.볼을 띄우기전 마지막 정지상태에서부터 볼을 칠때까지 볼과 라켓은 시합표면보다 높은 높이에 있도록 해야 한다.볼을 칠때 볼은 서버의 엔드라인 뒤에 있도록 하되 팔,머리 다리를 제외하고 엔드라인에서 가장 멀리 있는 신체의 다른 부분보다 뒤에 있어서는 안된다.심판과 부심으로 하여금 올바른 서비스의 요건을 따르고 있는지를 볼 수 있도록 서버하는 것은 선수의 의무이다.심판이 서비스의 적법성에 대해 의심은 가지만 심판이나 부심이 확신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시합중 처음에 한하여 서버에게 실점 대신 경고를 준다.같은 또는 다른 이유로 한 선수의 서비스가 계속 그 적법성이 의심스러울 때는 리시버에게 1포인트를 준다.올바른 서비스 요건을 명백히 위반했을 경우에는 경고를 주지 않고 다른 부당한 행위때와 마찬가지로 리시버가 즉시 1점을 얻게 된다.예외적으로 시합전에 선수다
    예체능| 2003.12.08| 15페이지| 1,000원| 조회(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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