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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사]사기 고조본기 해석 평가A+최고예요
    對 外 秘史記卷八 - 高祖本紀第八*** 일러두기 *** 맨앞의 001은 사기의 卷數를 말함. ‘/’ 후의 숫자는 책의 쪽 수를 말함한문을 한글로 자동변환 했고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차이가 나타날 수 있음- 지명과 인명의 독음과 해석상의 독음 차이는 해석상의 독음을 기준으로 함.- 行(행)‘항’, 數(수)‘삭’, 北(북)‘배’, 不(불)‘부’, 降(항)‘강’, 更(경)‘갱’, 見(견)‘현’, 度(도) 탁, 復(부) 복, 說 등등의 한자일 경우 고유의 독음 법칙이나 의미상의 뜻에 관계없이 모두 위와 같이 표시된 곳이 있을 수 있으니 해석에 맞추어 확인이 필요함- 두음법칙이 적용된 부분과 적용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음지명과 인명 아래 밑줄은 해석상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표시하지 않은 곳은 교재를 참조------------------------------------------------------------------------------------------------008/0341高祖, 沛?邑中陽里人, 姓劉氏, 字季. 父曰太公, 母曰劉?. 其先劉?嘗息大澤之陂, 夢與神遇. 是時雷電晦冥, 太公往視, 則見蛟龍於其上. 已而有身, 遂産高祖.고조, 패풍읍중양리인, 성류씨, 자계. 부왈태공, 모왈류온. 기선류온상식대택지피, 몽여신우. 시시뇌전회명, 태공왕시, 칙견교룡어기상. 이이유신, 수산고조.고조 패현 풍음 중양리 사람으로 성은 류씨였고 자는 계였다. 아버지는 태공이라 불렀고 어머니는 류온(류씨 여인)이라 불렀다. 그에 앞서 류 여인이 일찍이 큰 못의 방죽에서 쉬고 있을 때 꿈에 신과 더불어 만났다. 이 때 천둥과 번개가 치고 어두컴컴해졌는데 태공이 가서 본 즉 교룡이 그 위에 있는 것을 보았다. 얼마 안되어서 몸을 얻으니 마침내 태어난 것이 고조였다.008/0342-0343高祖爲人, 隆準而龍顔, 美須髥, 左股有七十二黑子. 仁而愛人, 喜施, 意豁如也. 常有大度, 不事家人生産作業. 及壯, 試爲吏, 爲泗水亭長, 廷中吏無所不狎侮. 好酒及色. 常從王?·武 있는 곳을 깨달았다). 고조가 괴이 여겨 그것을 물었다. 여후가 말하기를 “계께서 있는 곳 위에 항상 운기가 있어서 좇아가면 항상 계를 얻게 됩니다” 고조가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패현 안의 자제들도 이것을 듣고 괴이쩍어해 붙고자 하는 이가 많았다.008/0349秦二世元年秋, 陳勝等起?, 至陳而王, 號爲“張楚”. 諸郡縣皆多殺其長吏以應陳涉. 沛令恐, 欲以沛應涉. ?·主吏蕭何·曹參乃曰 : “君爲秦吏, 今欲背之, 率沛子弟, 恐不聽. 願君召諸亡在外者, 可得數百人, 因劫衆, 衆不敢不聽.” 乃令樊?召劉季. 劉季之衆已數十百人矣.진이세원년추, 진승등기기, 지진이왕, 호위“장초”. 제군현개다살기장리이응진섭. 패령공, 욕이패응섭. 연·주리소하·조참내왈 : “군위진리, 금욕배지, 률패자제, 공부청. 원군소제망재외자, 가득삭백인, 인겁중, 중불감불청.” 내령번쾌소류계. 류계지중이삭십백인의.진나라 2세 원년 가을, 진승 등이 기에서 일어나 진에 이르러서는 왕이 되고 호를 장초라 했다. 여러 군현이 모두 그 장리를 죽여서 진섭에 응하였다. 패령도 두려워 패 땅을 섭에 응하고자 하였다. 옥연과 주리인 소하·조참이 이에 말하기를 “군께서 진의 리가 되었는데 지금 진을 등지고 패의 자제들을 인솔하면 듣지 아니할까 두렵습니다. 군께서 도망하여 밖에 있는 여러 사람을 부르기를 원하면 가히 수 백명을 얻을 것이고 인하여 대중을 위협하면 무리가 감히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현령은 번쾌에게 유계를 부르도록 하였다. 유계의 무리는 이미 수 십 백여 명이었다.008/0350於是樊?從劉季來. 沛令後悔, 恐其有變, 乃閉城城守, 欲誅蕭·曹. 蕭·曹恐, 踰城保劉季. 劉季乃書帛射城上, 謂沛父老曰 : “天下苦秦久矣. 今父老雖爲沛令守, 諸侯?起, 今屠沛. 沛今共誅令, 擇子弟可立者立之, 以應諸侯, 則家室完. 不然, 父子俱屠, 無爲也.” 父老乃率子弟共殺沛令, 開城門迎劉季, 欲以爲沛令. 劉季曰 : “天下方擾, 諸侯?起, 今置將不善, 壹敗塗地. 吾非敢自愛, 恐能薄, 不能完父兄子弟. 此大事, 願更相推擇可者.” 패공은 탕군의 장이 되었고 무안후에 봉하여져 탕군의 병사를 거느렸다. 항우를 봉하여 장안후로 삼고 노공이라 칭하였다. 여신을 사도로 삼고 아버지 여청을 영윤으로 삼았다.008/0356#2趙數請救, 懷王乃以宋義爲上將軍, 項羽爲次將, 范增爲末將, 北救趙. 令沛公西略地入關. 與諸將約, 先入定關中者王之.조수청구, 회왕내이송의위상장군, 항우위차장, 범증위말장, 북구조. 령패공서략지입관. 여제장약, 선입정관중자왕지.조나라가 여러 차례 구원을 청해와 회왕은 이에 송의를 상장군으로 삼고 항우를 차장으로 삼고 범증을 말장으로 삼아 북진해서 조나라를 구했다. 패공으로 하여금 서쪽을 공략하여 관으로 들였다. 여러 장수와 더불어 약속하기를 먼저 들어가 관중을 평정하는 사람이 왕이다.008/0356-0357當是時, 秦兵彊, 常乘勝逐北, 諸將莫利先入關. 獨項羽怨秦破項梁軍, 奮, 願與沛公西入關. 懷王諸老將皆曰 : “項羽爲人?悍猾賊. 項羽嘗攻襄城, 襄城無遺類, 皆?之, 諸所過無不殘滅. 且楚數進取, 前陳王·項梁皆敗. 不如更遣長者扶義而西, 告諭秦父兄. 秦父兄苦其主久矣, 今誠得長者往, 毋侵暴, 宜可下. 今項羽?悍, 今不可遣. 獨沛公素寬大長者, 可遣.” 卒不許項羽, 而遣沛公西略地, 收陳王·項梁散卒. 乃道?至成陽, 與?里秦軍夾壁, 破(魏)[秦]二軍. 楚軍出兵擊王離, 大破之.당시시, 진병강, 상승승축북, 제장막리선입관. 독항우원진파항량군, 분, 원여패공서입관. 회왕제노장개왈 : “항우위인표한활적. 항우상공양성, 양성무유류, 개갱지, 제소과무부잔멸. 차초삭진취, 전진왕·항량개패. 불여갱견장자부의이서, 고유진부형. 진부형고기주구의, 금성득장자왕, 무침포, 의가하. 금항우표한, 금불가견. 독패공소관대장자, 가견.” 졸불허항우, 이견패공서략지, 수진왕·항량산졸. 내도탕지성양, 여강리진군협벽, 파(위)[진]이군. 초군출병격왕리, 대파지.이 때를 당하여 진나라 병사는 강하여 승세를 타고 북으로 쫓으니 장수들은 먼저 입관하는 것이 이롭지 못하다 여겼다. 홀로 항우만이 진이 항량의 군대를 깨트린 것을 원망하고 현부노호걸왈 : “부노고진가법구의, 비방자족, 우어자기시. 오여제후약, 선입관자왕지, 오당왕관중. 여부노약, 법삼장이 : 살인자사, 상인급도저죄. 여실제거진법. 제리인개안도여고. 범오소이내, 위부노제해, 비유소침포, 무공! 차오소이환군패상, 대제후지이정약속이.” 내사인여진리행현향읍, 고유지. 진인대희, 쟁지우양주식헌향군사. 패공우양부수, 왈 : “창속다, 비핍, 불욕비인.” 인우익희, 유공패공부위진왕.한 원년 10월, 패공의 병사는 마침내 제후에 앞서 패상에 이르렀다. 진왕 자영은 백마가 끄는 흰 수레를 타고 조로써 목을 매고 황제의 새·부·절(옥새·부신·깃발)을 봉하여 지도 근처에서 항복했다. 많은 장수들이 진왕을 베라고 계속 말 하였다. 패공이 말하기를 “처음 회왕이 나를 보낸 것은 본디 진실로써 능히 관용할 수 있음이며 또 사람이 이미 항복 했는데 또 그를 죽이면 상서롭지 못하다” 이에 진왕으로써 담당관리에 맡기고 드디어 서쪽으로 가 함양에 들어갔다. 궁궐에 머무르고 쉬고자 하였는데 번쾌·장량이 간하여 이에 진의 중요한 보물·재화를 부고에 봉인하고 군을 패상으로 돌렸다. 모든 현의 부로·호걸을 불러 말하기를 “어르신,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고통 받은지 오래되었습니다. 헐뜯고 욕하는 자는 족하고(족을 멸하고), 마주 말하는 사람(그것을 화제로 삼은 자)도 저자거리에서 죽었습니다. 나는 제후들과 더불어 약속하기를 먼저 입관하는 사람이 왕 노릇을 하기로 했고 나는 마땅히 관중의 왕입니다. 어르신과 더불어 약속하기를 법은 3장뿐입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사람을 헤치거나 도둑질을 한 자는 벌을 주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진의 법을 모두 제거하겠습니다. 모든 관리와 사람들은 모두 옛날과 같이 마음을 놓으십시오. 무릇 내가 온 까닭은 어르신에 해가 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함이지 침략과 포학한 바에 있음이 아니니 두려워 마십시오. 또 내가 돌아와 패상에 진을 친 까닭은 제후들이 다다르기를 기다려 약속을 정하려는 것뿐입니다” 이에 진의 관리들과 더불어 사람들로 하여 칠 군대를 청하도록 하였다. 제는 진여에게 병사를 주어 상산왕 장이를 공격하여 깨트렸고 장이는 도망쳐서 한으로 귀속했다. 조왕 헐을 대에서 맞아 조왕으로 다시 세웠다. 조왕은 인하여 진여를 대왕으로 세웠다. 항우가 크게 노하여 북진하여 제를 쳤다.008/0368#2八月, 漢王用韓信之計, 從故道還, 襲雍王章邯. 邯迎擊漢陳倉, 雍兵敗, 還走 ; 止戰好?, 又復敗, 走廢丘. 漢王遂定雍地. 東至咸陽, 引兵圍雍王廢丘, 而遣諸將略定?西·北地·上郡. 令將軍薛歐·王吸出武關, 因王陵兵南陽, 以迎太公·呂后於沛. 楚聞之, 發兵距之陽夏, 不得前. 令故吳令鄭昌爲韓王, 距漢兵.팔월, 한왕용한신지계, 종고도환, 습옹왕장한. 한영격한진창, 옹병패, 환주 ; 지전호치, 우복패, 주폐구. 한왕수정옹지. 동지함양, 인병위옹왕폐구, 이견제장략정롱서·북지·상군. 령장군설구·왕흡출무관, 인왕능병남양, 이영태공·려후어패. 초문지, 발병거지양하, 부득전. 령고오령정창위한왕, 거한병.8월, 한왕은 한신의 계략을 써서 고도로부터 돌아와 옹왕 장한을 공격했다. 장한은 한나라 군대를 진창에서 맞아 싸웠으나 옹병은 패하여 돌아가 달아나 호치에 멈추어 싸웠다. 다시 패하여 폐구로 도망했다. 한왕은 드디어 옹 땅을 평정했다. 동쪽 함양에 이르러 병사를 이끌고 옹왕이 있는 폐구를 포위하고 여러 장수들을 농서·북지·상군으로 보내어 공략하여 평정하였다. 장군 설구·왕흡에게 무관을 나오게 하여 인하여 남양에 있는 왕릉의 군사를 태공과 여후를 패현에서 맞았다. 초나라가 그것을 듣고 병사를 동원해 양하에서 이를 막고 나아가지 못하도록 했다. 옛 오나라의 현령 정창으로 하여금 한왕으로 삼고 한나라 군대를 막도록 하였다.008/0369二年, 漢王東略地, 塞王欣·翟王?·河南王申陽皆降. 韓王昌不聽, 使韓信擊破之. 於是置?西·北地·上郡·渭南·河上·中地郡 ; 關外置河南郡. 更立韓太尉信爲韓王. 諸將以萬人若以一郡降者, 封萬戶. 繕治河上塞. 諸故秦苑?園池, 皆令人得田之, 正月, 虜雍王弟章平. 大赦罪人.이년, 한왕동략지, 새왕흔·적왕예·하남위표.
    인문/어학| 2006.01.25| 23페이지| 2,500원| 조회(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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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문학] 이즈의 무희 - 영화와 소설 비교 평가A+최고예요
    들어가며「伊豆の踊子」는 한국의 『춘향전』과 같이 일본 국민들에게 고전처럼 읽히고 어려 편의 영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이번에 접한 영화는 소설과 서두부터 구성이 다르다. 영화는 노년기에 강단에서 강연하는 ‘나’의 모습을 흑백으로 그려내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그의 제자가 발레리나와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 40년 전에 무희를 만났던 추억을 회상하게 된다. 그 회상 장면은 컬러로 나오게 되는데 이야기를 미화시키고 관객에게 쉽게 수용될 수 있도록 작용하는 것 같다. 과연 이 소설을 영화감독은 어떤 시각으로 새롭게 조성했으며 어떠한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지, 소설과 영화를 비교해보고자 한다.본문1. 무희에 대한 나의 태도소설에서와 영화에서 각각 ‘나’는 무희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다. 소설에서 ‘나’는 처음에 무희에게 관심을 보인다. 외적으로 봤을 때는 17~8정도의 처녀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희들과 함께 동행을 하면서 자신의 환상이 깨어진다.(p.42) ‘수건도 걸치지 않은 순 알몸이다. 그것이 무희였다.... 어린애인 것이다.’(p.42) ‘무희의 머리채가 풍성해서 17~18세로 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한창 나이인 처녀처럼 치장을 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당치도 않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p.58) '네에, 열네 살 먹었다는 여동생이 있다는 건-.‘ ‘그 아이지요’영화의 ‘나’도 무희의 나체의 모습을 보고 ‘어린아이구나’라고 느끼지만 영화에서는 열여섯 살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소설 속의 열네 살 어린아이와는 차이를 보인다. 무희의 나체를 보기 전 날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학생은 불안해하며 무희가 더럽혀질까봐 걱정한다. 소설 속에서는 빗소리와 북소리로 긴장되는 심정을 표현하였고 영화에서는 꿈을 통해 표현했다. 나보다 건장한 현지 지주의 아들이 무희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저지하려다가 폭포로 떨어지는 꿈을 꾼 것이다. 이는 소설보다 무희에 대한 관심이 더 적극적인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학생의 관심이 무희에게만 쏠려있지 않고 전반적으로 인물 전체에 초점을 두고 있다.(p.96~98) 방에 지요코와 유리코만 남았을 때 활동사진관에 가자고 청하자 지요코는 배를 눌러 보였다.영화에서는 활동사진관에 관련하여 무희와만 이야기 하고 있고 장면에서도 무희와 대모, 에이키치 이외에는 중요성을 두고 있지 않다. 소설 속의 나는 생각한다.(p.98) 왜 혼자 따라가서는 안 되는지. 나는 참 이상했다.... 나는 혼자서 활동사진관에 갔다.활동사진관은 나와 무희만의 공간이 아닌 모두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고 무희를 단순히 어린아이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희와 단 둘이 간다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활동사진관에 간다. 영화에서는 무희가 대모의 반대로 못 가게 되었으므로 나 또한 활동사진관에 가지 않는다.2. 신분의 차「伊豆の踊子」의 소설과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비중을 두고 있는 부분이 무엇이냐고 하면 바로 ‘신분의 차’이라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후반부에 나오는 (p.90)‘거지와 광대는 마을에 출입금지’라는 문구는 영화의 처음에 나온다. 소설 속에서의 신분의 차는 자주 등장한다.(p.16) 저런 것들이 어디서 묵을지 알 게 뭡니까, 나으리.손님이 있으면 있는대로 어디서건 묵는답니다.(p.64) 순박하고 친절한 듯한 여관의 여주인이 저런 사람(에이키치)에게 밥을 대접하는 건 아깝다고 나에게 충고했다.(p.66) 무희는 유리코와 함께....닭장수가 먹다 남긴 닭 냄비 요리를 뒤적거리고 있었다(p.80) 그리고 자기 발의 흙먼지를 털려고 하다가 문득 내 발 밑에 쭈그리고 앉아 바지자락을 털어 주었다.(p.84) "자 어서 먼저 드세요. 손을 넣으면 흐려질 것이고, 여자 뒤는 더러울 걸로 생각돼서.“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신분의 차를 확인시켜 주기도 하고 자신이 느끼기도 한다. 에이키치나 찻집 할머니에게 50전을 준 행위는 스스로가 높은 신분임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는 소설과는 다른 요소를 추가하여 신분의 차이를 무희 자체에게 깨닫게 해준다.- 아이들 따라가다가 죽어가는 창녀를 만난다. 다른 창녀가 나타나서 죽어가는 창녀와 무희에게 다 그치고 무희는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학생과 무희는 마주치나 피하여 들어온다.죽어가는 창녀를 통해서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게 된다. 죽어가는 여인의 모습이 어쩌면 자신의 미래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무희에게 다가갔을지 모른다. 그래서 학생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눈물을 글썽이며 뛰어간 것일 것이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창부와 허드렛일 하는 여인들의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 또한 창부를 하찮고 더러운 존재쯤으로 취급하여 무희가 가지고 있는 광대라는 신분의 차이를 더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그리고 시모다에서 대모에게 활동사진관에 가겠다고 했다가 이유없이 거절당했을 때 계단 밑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무희와 학생은 신분이 달라서 안 된다는 이야기에 의해 무희는 상심한다.정리해보면, 소설에서는 서로의 신분의 차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반면, 영화에서는 무희의 입장에서 신분의 차이를 재차 확인시켜 줌으로써 무희의 학생에 대한 사랑을 전해주고 불가능한 사랑이라고 말해주고 있다.3. 대모의 역할소설 속의 대모는 학생에 대해 약간의 거부반응은 있어도 호의적인 편이다. 유가노에서 하루 더 있을 예정이라고 말하면서 처음에는 먼저 출발하라고 냉정한 태도를 보이지만, 금세 정중하게 사과한다.(p.54) ..모처럼 동행이 되어 주셨는데 이런 멋대로의 고집을 부려 죄송합니다..그리고 학생이 동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을 때 모두는 하루만 더 늦춰달라고 졸랐지만 ‘나’는 승낙하지 않았다. 그러자 대모는 이렇게 이야기한다.(p.96) ‘그렇다면 겨울방학에는 우리 모두가 배에까지 마중 나가겠어요.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이 삭제되고 대모가 무희와 학생의 사랑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와는 달리 차갑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영화 중반부에서 공연하러 간 무희의 모습을 대모와 함께 지켜보면서 대모는 학생의 마음을 확실히 눈치 채게 된다. 그래서 무희에게 책을 읽어준 학생을 금방 쫓아내 버린다. 그리고 후반부에 무희가 학생에게 지팡이를 주려고 따라갈 때, ‘그렇게 빨리 뛰어갈 것 없다’고 말함으로 학생에 대한 무희의 마음을 못 마땅히 여겨 냉소적으로 이야기한다.4. 주제의 차이1) 소설 - 유랑하는 가족들을 통해 새로운 ‘나’로 거듭나다소설에서는 고아근성으로 일그러져 있고 학생으로서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伊豆에서의 여행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회복하려고 한다. 우선, 그가 여행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찻집 할머니, 중풍의 할아버지, 종이장수, 미토로 돌아가는 불쌍한 할머니 그리고 무희를 포함한 광대들 등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에이키치 부부의 죽은 아기와 49제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삶과 죽음이 이야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무희들을 통해 얻게 되는 가족애를 느끼게 된다.(p.72) 호기심도 없고 경멸도 품지 않으며 그들이 유랑하는 광대라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것을 잊어 버린 듯한 나의 덤덤한 호의는 그들의 가슴에 스며들어가는 듯이 보였다. 나는 어느새 오시 마의 그들의 집에 가기로 결정되어 있었다.(p.73) 그들의 유랑길의 인심은.... 느긋한 것.. 부모 형제인 만큼 제각기 육친다운 애정으로 얽혀 있 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p.100) 까닭도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광대들과 헤어지면서)학생과 광대들은 분명히 신분의 차가 남에도 불구하고 그 것을 뛰어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 교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아였던 나에게는 그들에게서 느낀 가족애가 자신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만큼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나는 지난 모습을 벗고 새로운 ‘나’로 거듭나게 된다.(p.90) '좋은 분이야.‘ ’그건 그래. 좋은 사람인 듯해.‘ ’정말로 좋은 분이야. 좋은 사람은 좋아.‘‘나 자신에게도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솔직히 느낄 수 있었다.’스무 살인 나는 자신의 성질이 고아근성으로 일그러져 있다고 호된 반성을 되풀이 해오다 가, 그 숨 막히는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伊豆반도 여행을 나선 것이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뜻으로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다.(p.106) 할머니, 이 사람이 좋구만요(당신을 믿고 부탁하는 건데 할머니를 도쿄까지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한다)(p.112) 나는 아무리 친절을 베풀어 주어도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아 름답고 허전한 심정이었다.고아라는 인생의 결점에 의해 자기비하의 삶을 살아왔을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해 준 것은 나의 존재를 가치 있게 하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사람을 떠나 온 여행이지만 여행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이다. 이제 스스로뿐만 아니라 타인도 돌볼 수 있는 ‘내’가 되었다. 그러나 학생은 금전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동경으로 돌아가야 했다. 여행 동안 쓰고 있었던 사냥 모자를 벗고 학생 모자를 쓰는 모습을 통해 여행자의 생활을 마치고 학생의 본분으로 돌아가는 ‘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5.07.06| 5페이지| 1,000원| 조회(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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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의이해]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의 위치와 영향력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의 위치와 영향력머리말기독교는 우리가 서양에게 문호를 개방했을 때 서양의 문물과 함께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 그 이전에 우리 나라에서는 성리학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던 양반들의 지배로 우리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이 유교의 영향아래 있었다. 지난 오백여 년간을 지배해왔던 유교가 19세기에는 그 틈을 보이고 있었다. 기독교는 이런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틈이 있어 들어오긴 했으나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에게는 유교는 뿌리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때문에 기독교가 쉽게 정착한다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한 세기를 거치면서 남쪽 인구의 약 25퍼센트를 차지할 만큼 대종교가 됐다.)이를 두고 나라 안팎에서는 ‘경이적 성장’이니 ‘기적과 같은 성장’이라고 말들을 한다. 어떤 이는 네 사람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이 기독교 신자인 한국을 두고 非서구 국가 가운데 ‘가장 기독교화한 나라’라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어떤 이는 서울을 ‘교회당들의 도시’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런 표현이 무색하지 않게 우리 나라 길거리에 나가서 십자가를 찾기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울 것이다. 한 건물에서 두 세 개의 교회가 들어선 풍경도 적지 않게 보이고 있다. 이같이 우리 나라처럼 기독교가 급성장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견고한 유교문화에서 이렇게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 합당한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새 교육과 문화운동, 독립협회와 3.1운동, 신사참배거부 운동과 같은 굵직한 정치, 사회 운동은 기독교를 제외하고선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다. 여운형, 허헌, 안창호, 김규식, 이동휘, 조만식, 이승만, 최문식, 박희도 등 이념의 좌우를 통틀어 한국 현대사의 꼴과 결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이 기독교를 통해 교육받아 성장했거나 이에 기대고 활동했었다. 한국 초기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위치와 영향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시작할 때 적은 인원의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던 영향력을 현재에서는 그 만큼의 영향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현재 사회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못하다. 無교인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만약 종교를 가지게 된다면 갖고 싶은 종교에 기독교가 꼴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결과는 기독교의 현 주소이다. 초기 한국 기독교가 가지던 영향력을 인구의 25퍼센트나 되는 지금은 그 만큼의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기독교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이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재 기독교인들이 잘못된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기독교가 초기 기독교사회에 비해서 양적으로는 성장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현재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나 사회적 위치에서는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따라서 본 글에서는 초기 기독교가 가지고 있던 영향력과 위치를 조명해 보고 그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 기독교의 영향력과 낮아진 위치를 살펴보고 그렇게 된 원인과 앞으로 기독교가 나아갈 모습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초기 기독교의 모습초기 기독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올 때 제국주의의 물결을 타고 왔었다.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기독교를 전파하는 선교사들을 일컬어 제국주의의 앞잡이라고 생각했었다. 유교 문화가 깊이 뿌리 박혀 있던 조선에서 기독교는 심한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저항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오직 한 세기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세계 선교사상 찾아 볼 수 없는 성장을 이루었다. 강력한 저항 속에서 어떻게 이토록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는가. 가장 먼저 기독교의 시선이 바뀌어 지는 사건은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을 전쟁터로 삼아 싸움을 벌인 청일전쟁이 있었고 10년 후에는 러일전쟁이 터진 것이다.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조선은 청일전쟁을 통해 멸시와 천대를 마지않던 일본이 얼마 전에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더니 중국과 러시아를 차례로 물리치고 세계 열강의 자리에 올라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이를 통해서 서양의 것을 무조건 밀어내던 조선은 일본을 통해서 서서히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 서양의 문물이 조선의 것보다 청나라의 것보다 앞선 것임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고종이 친미 쪽으로 기울어 졌기 때문에 나라 전반적으로 친미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었다. 이런 친미적인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서양의 문물과 동일하게 여기던 기독교의 박해 역시 서서히 풀어지고 있었다.기독교가 앞장서서 병원을 먼저 세우고 다음에 학교를 세우고 조선을 근대화시키는데 기여를 했다. 하나 둘 씩 병원을 드나들고 학교에 다니면서 기독교에 대한 곱지 않던 시선들이 점점 기독교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대부분 조선사람들과는 달리 개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신분을 초월했고 성별을 초월했다. 예배를 드릴 때 빈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다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를 시작했다. 또한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 관련 활동으로 청년회, 학생회, 전도회, 같은 활동을 통해 대중 앞에서는 법을 대중을 선도하는 대중을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개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지식인층들이 믿으면서 기독교는 지도자훈련을 받을 수 있는 단체가 되었다. 이런 훈련을 받으면서 발달된 서양 문물을 교회를 통해서 받아들인 지식인층들은 여러 가지 운동으로 이어졌다. 새 교육 운동, 문화 운동, 사회 운동, 정치 운동이 이러한 기독 지식인 충들을 주축으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기독교는 조선이 일제 강점기 시점에서 독립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모임들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교회 모임은 일주일에 여러번 있었으므로 그 모이는 모임을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교회는 이런 모임을 제공할 뿐 아니라 교회를 통해 배운 신념들을 이용해서 독립운동을 주도해 나가고 있었다.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조선 사람들은 기독교를 근대화의 요소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이런 거부감이 없어지고 나서 바라본 기독교는 가난한 자를 감싸주고 빈부의 귀천을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남녀의 차별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무지하던 자신들을 깨우쳐주고 있었다. 교회에 가면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가 가지고 있던 교리들은 기독교가 급성장 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었다.뿐만 아니라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깨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운동에 앞장서고 많은 사람들을 선동했다. 이때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예수를 본받아서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했고 또한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때의 분위기는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신뢰를 해주고 존경해주었다.지금 알아본 바대로 기독교는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여러 가지 이점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이런 이점 때문에 기독교는 점점 긍정적 시각으로 보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기독교가 사회에 차지하는 위치는 상승하게 된다. 앞에서 말한 대로 기독교가 미치는 영향력 역시 커다란 것이었다. 특히 나라를 잃는 상황 속에서 출애굽의 설명을 통해서 독립운동을 고취시켰고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조선사회에 기름을 부어주는 격이었다. 기독교에서 작은 모임이 있어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정보교환 수단으로 기술습득의 수단으로 무지를 깨우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었기 때문에 큰 이슈가 되었었다.기독교는 이런 영향력과 위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 세기 동안 경이적인 급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현 기독교의 모습요즘 기독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이전의 경이적인 성장을 이룬 기독교가 어쩌다가 이런 현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저기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성장률이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하고 있다.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하면 신뢰를 해주고 존경을 마지않던 눈들이 이제는 날카로워 지고 교회에 대해 냉소를 보내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간의 언론에 보도되어 오던 교회의 모습을 바라볼 때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 모르겠다. 기독교의 시선이 달라지기 이전에 기독교 자체적으로 그 안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것은 요 근래의 일이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변화는 3,1운동 이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3.1운동이 실패로 이어지면서 기독교는 더 이상 사회참여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기독교계 지식인들은 여전히 사회참여에 선동에 서있었지만 기독교를 서서히 물러나 있기를 시작했다. 순수한 신앙으로서 돌아가기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는 독립운동을 할 때 기독교가 필요했지만 3.1운동이후 일본이 통치방법을 이른바 문화정치로 전환하면서 더 이상 눈치 보아가며 기독교라는 벽을 세우지 않고도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사회주의가 들어오면서 이념의 다원화가 생기고 기독교가 아니라도 다른 이념을 통해서 독립의 정당성을 찾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이제 사회참여에 대한 당위성을 잃어감에 따라 사회참여보다는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변화를 바라보던 주위의 시선은 신랄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인문/어학| 2005.07.02| 4페이지| 1,000원| 조회(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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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사회론]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지방참정권을 중심으로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지방참정권을 중심으로목차Ⅰ. 서론- 문제 제기, 연구 방법Ⅱ. 본론1. 정주 외국인의 지방 참정권에 관해서① 주요 관련법② 일본 정부의 태도2. 재일 동포의 참정권 요구① 요구의 근거② 일본 정부의 대응Ⅲ. 결론 및 전망Ⅳ. 참고 문헌Ⅰ. 서론1. 문제제기재일 동포들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적 산물로 일제시대에 일본에 강제 연행 등으로 거주하게 되어 해방 후에도 일본사회에서 생활의 기반을 갖고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자손들이 전후 50년 이상 일본의 지역 주민으로서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재일 동포들은 법률상 차별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현재 부각되고 있는 문제로 참정권이 있는데 참정권이란 모든 국민이 정당설립, 선거, 공무담임, 국민투표 등을 통해서 국가 권력의 창설과 국가의 권력행사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소견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권리)로 이것은 1945년 패전까지는 재일 동포도 참정권이 인정되어 반동친일파 라 할 수 있는 朴春琴이 일본중의원 의원에 2차 당선된 것도 하나의 역사이지만 패전 후에는 1945년 12월 12일의 제 89차 제국의회에서 「호적법의 적용을 받지 않은 사람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은 당분간 정지한다.」(법률 제 40호 중의원선거 부칙)고 결정하였다. 1970년대 초에 이미 일본의 학계에서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와 함께 법무성 민사국장의 통달로 옛 식민지인의 일본국적이 하루아침에「박탈」 당한 조치에 대해 합헌성을 의문시하는 견해가 다수설이 되었다. 또한 70년대부터 재일 한국인을 비롯한 일본의 정주외국인들이 일본의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시민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주민」으로서의 권리보장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1981년에 뒤늦게 난민조약에 가입한 일본 정부로서는 더 이상 국내 외국인의 인권문제에 대해 좌시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낳고 자란 재일 한국인2세와 3세를 중심으로 활용 및 승진 등의 행정적인 처우에서 상당 부분을 가져왔다.이러한 일본 사회의 변화와든 자에게 보장한다.법률 앞의 평등관련법조문적용12국제 인권규약B규약제27조종족적, 종교적 혹은 언어적 소수민족이 존재하는 나라에 있어서 당해 소수민족에 속하는 자는 그집단의 기타의 구성원과 함께자기의 문화를 향유하여 자기의 종교를 신앙하며 또한 실천하여 혹은 자기의 언어를 사용하는 권리를 부정되지 않는다.소수 민족의 권리13지방자치법 제 10조①市町村의 구역내에 주소가 있는 자는 당해 市町村 및 이를 포함하는 都道府?의 주민으로 한다.②주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소속하는 보통공공단체의 역무를 제공을 동등히 받는 권리를 갖고 있으며 그 부담을 분임하는 의무를 진다주민과 그 권리와 의무14지방자치법 제11조일본국민인 보통지방공공단체의 주민은 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소속하는 보통지방공공단체의 선거에 참여하는 권리를 갖고 있다.주민의 선거권15지방자치법제 18조일본국민인 연령 만 20년 이상의 자이며 계속하여 3개월 이상 市町의 구역내에 주소가 있는 자는 멸도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소속하는 보통지방공공단체의 의회의 의원 및 장의 선거권을 갖는다.선거권16지방자치법 제 19조①보통지방공공단체의 의회의 의원의 선거권을 갖고 있는 자이며 연령 만25년 이상의 자는 별도 법룰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통지방공공단체의의회의 의원 피선거권을 갖는다.②일본국민이며 연령 만30년 이상의 자는 별도 법률에 정하는 바에 따라都道府?지사의 피선거권을 갖는다③일본국민이며 연령 만 30년 이상의 자는 법률에 정하는 바에 따라 市町村長의 피선거권을 갖는다피선거권관련법조문적용17공직선거법 제9조 2항②일본국민인 연령 만20년 이상의 자이며 계속하여 3개월 이상 市町村의 구역내에 주소를 갖고 있는 자는 그 소속하는 지방공공단체의 의원 및 장의 선거권을 갖는다.피선거권18공직선거법 제10조일본국민은 하기의 각호의 구분에 따라 각각 당해 위원 혹은 장의 피선거권을 갖는다. 一, 중의원의원에 관하여는 연령 만 20년 이상의 자 二,참의원의원에 관하여 연령 만 30년 이상의자 三, 都道「재일외국인의 입당을 인정한다」고 발표연합 大阪와 민단 大阪가 재일한국인의 생활권확충과 공생사회의 실현을 향하여「교류에 관한 확인」에 조인- 10월 福井지방재판소 판결(선거인 명부 부등록의 위헌 확인)《선거권보장은 일본국민에 한정되어 있으나, 市町村 차원의 정주외국인의 선거권은 헌법의 허용범위내에 있다》1995년 - 2월 28일 일본국 최고재판소 판결로 정주외국인에게 선거권을 인정하는 최초의 헌법 판단이 명시됨.....《정주외국인에 대한 지방선거권 부여는 헌법상 금지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일본국의 입법정책에 따른 것이다》- 광복 50년 참정권 문제를 해결하는 큰 고비의 해로서 지방참정권운동에 전 조직이 전력투구 해 나가는 것을 활동 방침에 명확히 내세운다.- 6월 30일 지방참정권획득 심포지움 개최 (東京)1996년 - 1월 14일 「인종차별철폐조약」발효 (일본 146개국째)- 10월 28일 東京都가 지방선거권용인 표명, 정부에 법개정요구결정1997년 - 5월 현재 1,307의 지방의회에서 정주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의견서 등이 채택되고 있다.- 6월 영주 한국인에의 지방참정권 부여의 입법화를 요구하는 동포서명운동 추진1998년 - 10월 6일 민주?공명양당, 법안을 국회에 제출-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 일본정부와 국민에게 지방참정권 부여를 요청- 12월 8일 공산당이 피선거권을 포함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1999년 - 8월 11일 중의원에서 법안이 최초로 심의되었다. (~8/13)-10월 4일 여당 3당, 「성립시킨다」것으로 정책합의문서에 서명2000년 - 1/21공명?자유 여당, 2당 법안을 국회에 제출- 5/8 민단 조기 입법화를 요구하는 전국 통일 진정활동을 전개- 5/23 중의원에 두 번째 심의- 7/5 공명?보수여당 2당 민주당, 법안 재제출- 8/23자민당 집행부 당의구속받지않는 방침을 굳힌다.- 8/29 자민당 총무회, 당의구속을 받지않기로 이론 계속했다 -자민당내 조정 난항, 심의 들어갈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9/21 문구를 삭제하자고 제안하면서 총리의 생각을 물었다. 이에 무라야마 총리는 "아직 최고재판소의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고 법 해석도 다양하기 때문에 앞으로 검토해 가겠다"고 하는 유보적인 답변만을 개진했다.그 후 최고재판소의 판결로 참정권 문제가 입법부로 넘어 오자 제1 여당이던 자민당에서는 곧 바로 외국인 참정권에 관한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여 서둘러 검토작업에 들어갔으며 그 해 5월에 중간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중간보고서는 참정권 부여의 문제점으로, 지방단체는 경찰 등 공권력 행사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기관 위임사무와의 관계, 영주외국인의 모국과 이해가 대립할 경우 북한과 같이 국교가 없는 국가와의 관계 등을 지적하고 "상호주의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상의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이처럼 반대론의 우회적인 표현이 허용되는 신중론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자민당의 정책에서 주된 방향이 되고 있다. 자민?자유?공명당에 의한 3당 연합이 출범한 직후 1999년 10월에 3당이 합의안으로 법률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그러나 자민당 내에 신중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은 가운데 하는 수 없이 자민당을 제외한 나머지 두 여당만이 참정권 법률안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2000년 1월 중의원 본회의에서도 간자키(神崎武法) 공명당 대표는 참정권 법률안 제출의 취지를 설명하는 가운데 오부치(小淵惠三) 총리에 대해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오부치는 "자민당에서의 진지한 의논 향방을 지켜보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극히 짧은 답변을 내놓았을 뿐이다. 이런 가운데 5월에 「선거법특위」에서 참정권법률안에 관한 심의가 시작되었으며 자민당 소속 위원들이 대거 불참한 가운데 진행되었고 그것도 중의원이 해산됨에 따라 심의가 자연 중단되고 말았다.이처럼 일본 내각은 정주외국인 참정권문제에 대해 오로지 국회의 입법화 진행만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오고 있으며 모리 총리도 역시 마찬가지 자세를 답습하고 있다. 지난 9월 한일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채택상황町 채택상황村 채택상황479 (전국 시 688중, 채택비 69. 6%)594 (전국 정 1, 988중, 채택비 29. 9%)153 (전국 촌 579중, 채택비 26. 4 %)채택 전 자치체 수1, 252(전국 3, 302 자치체 중 채택율 37. 91%)*전국시에는 동경 23특별구가 포함되어 있음.(3) 연간별 채택상황)93년94년95년96년합계합계161827942601,252(4) 지방참정권 의견서 채택 지방별 통계(2000년 11월)(2000년 11월 8일 현재 민단 중앙국제국 조사결과)縣 名 市?區 町 村 자치단체 채택縣 채택 채택 채택 채택 채택률 한국인居住者 총인구(都道府) 수 수 수 합계 (都道府) 市?區 町 村 團體 合計 (1994년12월말) (1999년3월말)東京都 50 5 8 64 1 45 2 3 51 79.69% 56,981명 11,680,490명神奈川縣 19 17 1 38 1 19 17 1 38 100.00% 25,187명 8,324,355명千葉縣 31 44 5 81 1 17 0 0 18 22.22% 11,262명 5,863,182명山梨縣 7 37 20 65 1 7 1 0 9 13.85% 1,543명 883,847명橡木縣 12 33 4 50 1 11 12 1 25 50.00% 1,833명 1,998,186명茨城縣 20 42 23 86 1 10 4 0 15 17.44% 3,743명 2,990,472명埼玉縣 42 39 11 93 1 36 5 0 42 45.16% 11,612명 6,838,164명群馬縣 11 32 27 71 1 6 15 4 26 36.62% 1,891명 2,013,753명靜岡縣 21 49 4 75 1 8 2 0 11 14.67% 4,886명 3,754,758명長野縣 17 36 67 121 1 16 36 67 120 99.17% 3,257명 2,200,468명新潟縣 20 56 36 113 1 8 12 4 25 22.12% 1,912명 2,487,980명宮城縣 10 59 2 72 1 6 24 0 31 43.06% 2,443명다.
    인문/어학| 2005.06.12| 18페이지| 1,000원| 조회(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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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사회론] 영화감상문(나라야마부시코,호타루) 평가B괜찮아요
    '05. 5. 23(월) 일본 사회론『楢山節考』 감상지금 일본에서는 고령화 사회로 인한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우리도 곧 머지 않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에서는 2050년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37%가 65세 이상 고령자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비단 일본이나 기타 다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영화에서는 나이가 찬 부모님을 나라야마라는 산에 버리는 모습이 묘사된다. 물론 지금의 상식이나 윤리?도덕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 문화가 존재했던 것에는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고통스럽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행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이 문제는 단지 노인공경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였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이 작품은 고대의 한국 민속 가운데 사람이 노쇠하여 70세가 되면 산에 내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는 ‘기로전설(棄老傳說)’처럼 부모가 70세가 되면 나라야마에 버려야 하는 일본판 ‘고려장(高麗葬)’ 풍습을 중심 줄거리로 삼고 있다. 당시 일본의 한 마을에는 69세이지만 치아 하나 상하지 않고 정정한 할머니 오린이 살아있는 식구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라야마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녀는 만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번 겨울에 나라야마에 갈 것이라고 알리고 다니지만, 오린의 맏아들 타츠헤이는 그런 어머니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나라야마 행은 노인의 명예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불문율(不文律)이었지만, 아들 타츠헤이는 죽음을 준비하는 노모(老母)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회적 관습 사이에서 갈등한다.타츠헤이가 새 아내를 맞이하게 되자 착하고 부지런한 새 며느리는 어머니의 마음에 쏙 들지만 그로인해서 이제 그녀는 할 일이 없어져버렸다. 그녀는 효심 깊은 아들을 위해, 또 자신이 죽다 건강한 것을 미안하게 여겨 튼튼한 이를 일부러 부러뜨리면서까지 아들에게 부담을 덜어주고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으로 인해 후손들이 생존의 위협에 놓이지 않도록 배려한 인간존중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가을이 되고 겨울이 다가올수록 타츠헤이의 마음은 괴롭다. 그러나 흉작으로 인해 어머니를 붙잡기에는 양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내일 새벽에 나라야마에 갈 것이니 사람들을 불러달라고 말한다. 그날 밤, 산에 가기 위한 행사가 이루어지고 이튿날 새벽, 어머니는 아들의 지게에 업혀 산으로 간다. 단지 노인을 산에 버렸다는 이런 단편적인 일화를 가지고 그 시대의 문화는 부모공경과 노인공경의 마음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상에서도 노모를 버리는 타츠헤이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하지만 나라야마의 정상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천국에 간다는 전설 때문에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험한 산을 힘겹게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효도는 정상에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이 영화의 절정은 이처럼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나라야마로 떠나는 여행을 다룬 마지막 20여분간으로 죽음을 재촉하는 노모와 그를 살리고 싶은 아들이 나누는 침묵의 대화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자신의 식량을 돌아가는 아들의 지게에 걸어주고, 포옹하며 눈물 흘리는 아들의 뺨을 때리며 등을 떠미는 어머니. 타츠헤이는 눈이 내리자 내려오던 산길을 다시 올라갔지만 오린은 춥지 않다고 고개를 저으며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한다. 욕구 중에서도 생물이라면 가장 본능적으로 가지는 생존에 대한 욕구를 초월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버렸지만 이상향처럼 그리던 나라야마는 까마귀 떼의 울음소리와 해골만이 가득하다.영화는 타츠헤이를 다시 현실 세계인 마을로 내려보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집으로 돌아온 타츠헤이는 “할머니는 운이 좋아. 눈이 오는 날에 나라야마에 갔다네”라는 노래를 들으며 식구들을 둘러본다. 이미 식구들이 어머니의 옷을 나태를 보여주고 있다.그리고 이 영화는 무라하치부(村八分)에 의해 움직이는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서로 지켜야 할 도리와 규범이라는 질서가 반드시 존재한다. 영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끼리 차례를 정해 돌아가면서 관을 만들기도 하고 남의 식량을 훔치는 것을 가장 큰 죄로 여겨 그 가족을 산채로 매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불특정한 폭력의 피해를 두려워하여 집단의 불만과 위기를 모두 책임지게 하는 희생양을 만들어 사회질서의 붕괴를 막으려는 노력이다. 이렇게 만장일치의 집단 폭력은 공동체의 삶과 질서를 수호하는, 순리에 맞는 합리적인 것이라고 인식하여 정당화되고 공동체의 갈등은 해소된다.또한 어머니는 리스케가 한 번만 여자와 잠자리를 하면 열심히 일할 것이라며 과부들을 설득하러 다니고, 타츠헤이는 동생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큰 손해라며 집안을 위해서 리스케와 한 번만 잠자리를 같이 하기를 부인에게 부탁한다. 이것은 생산을 중요시했던 원시 촌락공동체에서 적극적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힘들게 사냥에 성공한 토끼를 매한테 날치기 당하고, 척박한 토양에서 거둬들인 수확물로 굶주려야 하는 겨울은 그들에게 고통스러운 계절이다. 겨우내 태어난 사내 아이는 내다 팔 수도 없어 이웃의 논바닥에 버려지며 여자 아이는 소금장수에 팔린다. 동네 개를 붙잡고 욕정을 푸는 리스케, 식량을 훔친 벌로 생매장 당하는 일가족, 친동생과 하룻밤 동침할 것을 아내에게 부탁하는 남편 등등 비참한 이들은 너무나 솔직하고 절박하고 대담하다.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다. 따사로운 봄날에 두 남녀가 눈이 맞아 섹스를 하고 곳곳에 교미하는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을 삽입해 놓음으로써 인간도 저들과 다를 바 없이 생존과 번식이라는 본능에 충실한 존재, 즉 자연의 일부임을 보여주고 있다.이와 같이『나라야마 부시코』는 여성과 가족과 마을과 규율로 이어려 복종함으로써 발휘되는 할머니의 비저항적 의지는 인간의 욕망을 자연의 순리 안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70살이 되는 해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자 나라야마로 가는 행위는 따라서 성스럽고 고귀하다. 이들은 이러한 자발성을 공동체의 미덕으로 간주하여 인간의 자발적인 삶의 마감이 자연과의 동화라는 측면에서 이것은 비인간적이거나 잔인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선택임을 강조하고 있다.여성의 모성을 예찬하는 듯이 보여지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수 백년 전 일본의 원시적 마을을 통해서 인간과 자연, 인간내면의 본능과 일본사회를 서로 대응시키며 살아나가는 방식으로 현재의 일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때로는 잔인한 영상언어로 삶이란 무엇이며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영화에서는 오린이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이것은 오히려 삶에 대한 욕망 추구가 아니었을까? 그들을 보고 나니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05. 5. 30(월) 일본 사회론호타루(ホタル), 진정한 화해의 날갯짓인가?19세기 후반부터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은 군국주의의 역사였다. 많은 국민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죽음을 무릅쓰고 이에 동참했다. 광기(狂氣)의 극치는 카미카제(神風) 특공대였다. 죽는 순간을 위해 평생을 기다리는 무사, 단 며칠 꽃을 피우기 위해 1년을 기다리는 사쿠라는 같은 속성을 지닌 것으로 그들은 야스쿠니(靖國)신사의 사쿠라로 환생하자고 외친 후 떠났다.‘호타루(ホタル)’는 일본어로 반딧불이라는 말이다. 이 영화는 일본 군국주의 막바지에 등장한, 우리에게는 카미카제 특공대라고 알려진 특공대원의 이야기이자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가슴 깊이 묻어둔 채 묵묵히 살아가는 한 부부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니 지난 2월 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3ㆍ1절 특집으로 방영한 ‘야스쿠니의 神이 된 소년 특공대원’편이 떠올랐다. 1945년 3월, 카미카제 특공대로 출격하기 직사되어 있는 조선 출신 카미카제 특공대원 박동훈의 이야기를 통해 야스쿠니 신사가 가지는 의미와 전후 60년이 지난 현재에도 해결되지 않은 한일 간의 문제를 집중 조명한 프로그램이었다.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의 과거 회상을 통해 태평양전쟁 중 일본인들이 겪은 은밀한 상처를 드러내면서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시작으로 현재 시점에서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을 오가며 과거 일본인과 한국인의 우정과 사랑을 조금씩 교차시키고 있다. 카고시마(鹿兒島)의 조용한 어촌의 어부 야마오카는 태평양전쟁 당시 카미카제 특공대의 일원으로 출격했으나 비행기 고장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귀환해 살아남아 어부가 된 사람이다. 야마오카와 동료 후지에다는 마지막 출격을 눈앞에 둔 카네야마 소위-조선인 출신인 김선재-의 유언을 듣게 된다. 그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가족과 사랑하는 약혼녀에게 이별을 고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야마오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의에 빠진 카네야마의 약혼녀, 토모코와 인연을 맺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살아남은 자로서 죄책감이 가슴 깊이 남아 있고, 아내 토모코는 약혼자였던 카네야마 소위를 카미카제 특공대로 잃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일왕의 서거에 이어, 역시 카미카제 특공대로 살아남았던 전우 후지에다의 자살소식이 전해지면서 야마오카, 토모코 부부는 가슴 속에 묻어왔던 과거를 회상한다. 한편 전쟁 당시 특공대원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던 치란의 여관주인은 야마오카에게 몸이 불편한 자기 대신 카네야마 소위의 유품을 한국에 있는 유족들에게 전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한다. 야마오카는 투병중인 아내의 한을 달래주기 위해, 그리고 상처입은 과거와의 화해를 위해 토모코의 약혼자였던 조선인 출신 카네야마 소위의 유품과 유언을 전하러 그의 고향인 한국을 방문한다는 내용이다.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전쟁의 상처는 카미카제 특공대와 연관되어 있다. 영화는 태평양전쟁 전후의 어려운 세월을 더불어 살아온 두 부부의 숨겨진 사연을 풀어놓으며 전쟁의 상흔과 남겨진 사다.
    독후감/창작| 2005.06.04| 4페이지| 1,000원| 조회(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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