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적공원:올림픽공원,한국민속촌,남산공원, 제주 돌 문화공원...고고학적, 건축적 공원은 한국에서 별로 없다고 교수님이 그렇게 예기 한 것 같은데...대충 이렇게 정리했어요.그럼 수고하세요...1,아인스월드: 시대와 공간을 뛰어 넘어, 전세계의 건축예술과 각 나라마다의독특한 문화를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컨셉의 실외 박물관형 태마파크입니다단순히 보고 즐기는 수준에서 한차원 높은, 교육적효과와 더불어 다른 곳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감격과 경험을 함께 드립니다.아인스월드는 부천시 상동 영상문화단지 내 약18000평의 대지에 세계적으로 예술성과 역사성이뛰어난 전세계25개국의 유명건축물과 세계7대불가사의,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 등 총109점의 건축물을 실제 그대로 재현해 놓았습니다.2,한국민속촌:은 사라져 가는 우리 조상의 슬기와 지혜가 스며있는 전통생활모습을 총체적으로 재현, 전시한 야외민속박물관으로 조성된 국제적인 관광지입니다.한국 민속촌은 기성세대들은 아늑한 고향의 정감과 향수를 느낄 수 있고,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우리 조상의 지혜와 슬기를 체험할 수 있으며, 외국 관광객들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국제관광지입니다.전국 각지에서 옮겨온 가옥들과 30년 동안 가꿔온 수목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속에 150년 전 우리 선조들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한 국내 최고의 테마파크로 삼대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곳입니다.3,올림픽공원은 백제시대의 유적과 현대적 감각의 최신식 경기장이공존하면서 숲과 잔디밭 또한 훌륭한 여가공간이다.88 서울올림픽의 유산인 올림픽공원은 도시민의 생활수준 향상으로 건강 증진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도시 안에 마땅한 휴식공간이 없는 시민들에게 단순한 휴식처 뿐 만 아니라 국내 최대의 스포츠 마당으로 부각되고 있다. 올림픽공원은 체육 공간, 문화예술 공간, 역사와 교육의 장소, 휴식 공간 등 다양한 용도를 갖춘 만능공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백제 초기의 유적인 몽촌토성과 몽촌해자(인공호수)를 중심으로 43만평의 대지 위에 조성되어 있고, 세계적인 조각 작품들, 기념조형물, 88놀이마당, 산책로, 올림픽문화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이외에도각종 유료, 무료 공연이 수시 개최되고 있어 시민들을 위한 다목적 휴식공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올림픽을 치른 수영장, 체조경기장, 펜싱경기장, 역도, 테니스장을 비롯하여 경륜장이 있으며, 각종 스포츠교실은 쾌적한 공간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88서울올림픽대회를 기념 하는 유명 작가들의 조각품들이 야외에 전시돼있어서 문화예술 공간으로도 한 몫을 다한다.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몽촌토성은 백제가 고대국가의 터전을 마련한 한성시대, 즉 3세기-4세기 때 만들어진 거성의 하나이다.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 2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올림픽공원은 걸어서 한 바퀴 도는데 약 3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로 넓은 공간이기 때문에 진입로와 동선을미리 익혀둬야 관람이 편하고, 시간을 절약하려면 평화의 광장 옆에서 호돌이 열차(Road Train)를 탑승하면 된다.4,남산공원: 남산의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조선조 태조(이성계)가 1394년 풍수지리에 의해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겨 온 뒤에 남쪽에 있는 산이므로 "남산"으로 지칭 되었고 풍수지리상 안산으로 중요한 산이었다.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산신령을 모시는 신당을 북악산과 남산에 세웠으며 남산에 세운 신당에는 목멱 대왕이란 산신을 모시고 있어 목멱 신사라고 불렀고, 또한 나라에서 세운 신당이므로 국사당이라고도 했다. 이때부터 인경산은 목멱산으로 불렸다.지금의 남산 정상 팔각광장에 국사당이 있었다고 한다.국사당은 일제시대 인 1925년 일본사람에 의해 헐려 버렸고, 지금의 식물원 자리에 조선신궁이라는 일본신사를 세워 놓고 우리민족에게 신사참배를 하도록 강요했다. 이때 헐린 국사당 건물이 인왕산 서쪽 자락 선바위 아래에 옮겨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남산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주둔지였으므로 주민들은 '왜 장터'라 불렀고 일본인들은 남산을 자신들의 성역처럼 여겨 1897년 그 일대 3,000여 평을 빌려 '왜성대공원'이라 이름 짓고 도로개설과 함께 벚꽃 600그루를 심었으며 이듬해인 지금의 숭의 학원 자리에 '대선궁'이라는 신사를 세웠다.이어 회현동 일대 30만평을 무상임대해 1908년 한양공원 (현재 석재표석이 3호터널입구 위에 있음)으로 정하고, 이후에도 전안기부 자리에 통감부를, 현 남산골 한옥마을 자리에 헌병대 사령부를 설치하는가 하면 조선신궁, 동본원사등을 잇따라 지어 잠식을 계속했다.1925년에는 국사당을 폐쇄하고 장충단공원을 조성한 뒤 그 일대에 벚꽃 수천 그루를 심는 등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남산을 훼손, 우리 민족의 정신적 혼을 없애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