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화에 나타난 토속신앙과 세계관들어가며Ⅰ. 민화의 정의 및 유래Ⅱ. 민화의 발달Ⅲ 민화의 특징1. 민화에 나타난 주술적 신앙1)벽사구복2. 민화의 상징성1)무병장수2)다산3)부귀공명3. 민화에 표현된 집단적 감수성나오며: 민화에 나타난 토속신앙과 세계관들어가며예술의 원형은 종교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의 예술활동은 그들의 생활양식 중에서 특히 종교와 결합된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로 알려진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예처럼 고대인들이 그림을 그리며 많은 동물들을 사냥할 수 있기를 빌었던 것처럼 그들의 예술은 유희활동이자 생활의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그 당시의 사회에서는 예술이라는 분야도 예술가라는 사회적 신분도 특별히 구분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술활동의 가치는 현대의 미학처럼 예술안에서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이익을 위한것이였으며 예술활동은 일상생활에 수반되는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이었다. 그들의 예술활동에는 따라서 집단의식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었으며 그것은 하나의 축제였으며 분화된 현대사회의 예술과는 달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종교적 유희의 성격이 강하였다.이러한 예술의 종교적 특징은 근대이전의 시기까지도 지속되었다. 서구에서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예술(그리스 로마시대와 그 이후)과 교회예술(중세시대)을 비롯한 종교적 성격의 예술들이 근대 이전의 시기까지 강하게 지속되었고 일본,중국 그리고 한국등의 동양권의 나라에서도 불교, 도교 그리고 유교등의 종교에 따른 예술활동과 민간신앙에 따른 예술활동이 행해졌다.사회적 분화가 진행되면서 예술활동이 생활과 분리되고 예술이라는 장르가 생겨났고 직업화가들이 생겨났지만 예술은 다른 분야와 같은 독립성이나 자율성을 가지지 못했고 그 사회가 추구하는 이념에 종속되어 권력자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경우 예술은 그러한 사회를 미화하고 이상화하였으며 권력자를 신화화, 영웅화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근대이전에 봉건사회에서 시민사회로의 이행이 진행되면서 자본주의 사회지를 목적으로 한 교화, 주거공간의 미화를 위한 장식, 민중의 미의식에 직결되는 작품"을 민화라 통칭하고 있다.따라서 민화는 우리 회화사의 주류에서 벗어난 비전문적인 화공, 장인들이 대중의 그림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멋대로 그린 소박하고, 꾸밈없는, 그리 명성이 알려지지 않은 그림을 가리킨다. 보다 광범위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통용된 민화의 개념은 정통화 대가들의 작품을 제외한 도화서, 불교, 도교 등의 장식과 종교, 민족에 관계된 그림들도 포함하고 있다.Ⅱ. 민화의 발달조선후기(약 1700년 이후)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그 중에서 회화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은 사상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변화였다. 조선시대는 성리학과 실학의 발달로 주체적인 자존의식과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고가 크게 중시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시켰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회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화원과 문인들은 기존의 중국 산수에서 벗어나 조선의 실재 경관을 대상으로 하는 진경산수화를 발달시켰으며, 곧이어 일반 서민들의 생활상을 표현한 풍속화가 순수감상화의 차원으로까지 발전해갔다.조선후기 이전까지 회화의 수요층은 주로 사대부와 문인들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농업 생산력과 상품 화폐경제의 발달은 회화의 제작 수요층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기존의 양반층 이외에 중인계층이 경제적으로 부상해 갔으며 서민들 중에서도 농업과 상공업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서구의 부르주아지처럼 근대사회의 주체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다만 자신들의 재력 정도에 따라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나아갔으며 그에 따라 회화의 수요도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순수감상용 회화보다 장식용 그림을 통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연초에 집안에 붙였던 진경산수화를 비롯하여 요지연도, 문자도, 책거리, 화조도 같은 화려하고 섬세한 장화의 담당자들 역시 민화의 발달을 체계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못하였다. 19세기에 이르러 봉건적 모순에 도전하는 수많은 민란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근대화가 외세의 입김 속에서 위로부터의 개혁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민화의 발전에도 치명적인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화는 조선 후기 봉건사회 해체기에 성장해가던 민(民)의 문화적 대응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 안에 깃들여진 밝고 해학적인 정서와 만나면서 그 시대에 회화의 양적 발달이 가져다 줄 수 있었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Ⅲ. 민화의 특징민화의 특성은 일반 서민들이 공감하는 실용성, 상징성, 예술성에 있다. 또한 토착종교와 결합된 풍습에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된 것들이 많다. 주로 상징적 표현으로 무병장수, 부귀공명, 다산, 벽사구복과 같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 반영된다.민화 화가들은 많은 경우 전혀 색다르고 남이 안한 그림을 그리고자 하지 않았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일반 대중의 기호와 요구에 따라 몇천 년을 그려 온 화조와 산수, 민속과 교화의 그림을 그렸을 따름이다. 민화의 아름다움을 전통과 역사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처럼 오랜 세월을 통해 수천의 화공들이 찾아낸 내용과 양식을 따랐다는데 있다.정통 화가들의 많은 작품은 하나밖에, 한 번 밖에 창조되지 않았다. 같은 화제에 같은 양식의 그림을 두 번 다시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민화의 주제는 언제나 비슷했다. 화조, 산수, 민속, 교화 모든 그림들이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끊임없이 내려왔던 것이다.그림의 내용이나 주제 면에서 보면 민화에 나오는 화조(花鳥) 다락문에 붙은 꽃병과 꽃꽂이 그림으로부터 꿩 새끼 그린 화벽(畵壁)에 매 새끼 날아드는 그림, 매란국죽(梅蘭菊竹), 모란(牡丹), 영모(翎毛) 병풍, 닭, 범, 물고기, 게, 새우, 제비, 꽃, 새 나비가 모두 이런 화조 그림 속에 들어간다. 민화 중에 가장 많은 것이 화훼(花卉), 영모(. 무교(巫敎)에 바탕을 둔 생활 의식에서 생겨난 그림이 민화에 많이 들어 있다.소재면에서도 민화는 자유로웠다. 민화의 작가들은 소재의 변화로 새로운 창조를 모색한 현대 화가들처럼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찾았다. 그래서 그림의 크기, 화폭의 모양도 제각각이다. 장지에도 그렸으며 창호지에도 그렸다. 중국에서 온 화선지로부터 양지(洋紙)로 불리는 크라프트 지, 모조지, 삼베, 모시, 양사, 비단, 광목, 나무판자, 소재를 가리지 않고 어느 것에나 그리고 바탕이 주는 아름다움을 찾았다. 바탕에도 다양한 색을 물들였다. 붓으로도 그렸으나 손가락으로도 그렸고 가죽붓, 버드나무 가지, 불에 달군 인두 등 멋대로 그렸다. 또한 구미나 일본 등지의 민화는 대량생산된 작품들이 많은데 비해 한국의 미술과 공예에는 이러한 대량생산의 흔적이 없다. 그처럼 많이 제작된 도자기, 목기에 똑같은 모양, 똑같은 크기의 같은 작품을 찾지 못한다. 이것은 한국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인데, 그처럼 많은 민화의 작품이 되더라도 한국인들은 절대로 꼭 같은 두 개를 만들지 않았다. 수천 년을 되풀이된 호랑이, 화조 그림이 수천 장 우리 앞에 나돌았으나 판에 박은 듯이 같은 두 장의 민화는 없는 것이다.1. 민화에 나타난 주술적 신앙옛날의 그림이 가진 기능중에서 오늘날의 그림의 기능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그림이 주술적 효과를 지닌 매개체로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들 그림이 가진 주술적인 힘이 여러 가지 재앙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또 소원하는 바도 이루어 준다고 믿었다. 이러한 생각은 한국인의 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는 벽사구복(僻邪求福)의 사상과 같은 맥락을 지닌다. 현세 복락주의와 벽사의 관념은 서민들에게 유구하고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샤머니즘 혹은 애니미즘의 일종이다. 이 원시적 형태의 종교가 불교나 도교 등과 융합을 거치면서 독특한 민간 신앙을 형성하였고 우리의 정신세계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벽사구복(僻邪求福)민화중에서는 토착적인 종교와 결합된 풍습에 의해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된가지의 상징이 있을 수 있는데, 머리를 투구처럼 그린 것은 장수를 상징하지만 남근처럼 그린 것은 다산의 욕구를 표현한 것이다.민화의 이러한 상징적 표현은 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희노애락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그러한 의사소통의 바탕이 되는 공통의 세계관을 매개해 주는 역할도 한다. 가령 부귀다남, 부귀공명, 무병장수 등 인간의 소박한 바램이 민화에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민화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착과 동경을 대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얘기다. 민화에서 표현된 이러한 상징성들은 사회전체에 의해 공유되기도 하지만 특수한 사회부류에서만 통용되는 것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감수성에 의해 그 상징이 변질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성이 민화만의 독특한 세계를 이루게 하며 민화의 아름다움이나 해학 역시 이러한 상징적 표현에서 얻어지는 것이다.무병장수(無病長壽)현세를 살고 있는 인간들의 가장 큰 소망은 아마도,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일 것이다.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수 있을 것이라는, 불로장생의 믿음은, 참으로 오래되고도 끝이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소망인 듯 하다. 장수의 상징으로는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천도 등이 있는데, 옛사람들은 이것들을, 시문, 그림, 조각, 생활용품 등에 즐겨 사용하였다. 우리의 민화에서도 이러한 무병장수, 불로장생에 대한 소망을 깃들여 이 열가지 장생물을 한 화면에 배치하여 십장생도(그림7)라 이름 붙여 세화로 그리기도 하고 회갑잔치를 장식하는 수연병풍으로 쓰기도 하였다.다산 (多産)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노동력의 다소가 곧 부의 원천이었던 이유에 다산을 큰 미덕으로 삼았다. 게다가 남아선호의 사상이 가세하여 아이를 많이 낳고, 또 그 중에서도 아들을 많이 낳아 잘 살게 해 달라는 소망을 품게 되는 것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한 바램 이었다. 이러한 다산의 상징으로는 연꽃(그림8)이나, 물고기가 떼를 지어 노니는 백어도(그림9), 알을 품은 잉어 그림 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