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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루먼 쇼' 감상문
    나는 내가 이제껏 알고 지내 왔던 내가 아니다?여태껏 경험해 왔던 모든 일들이 나의 것이 아니라면,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시간의 흐름속에 나의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믿었던 나의 삶들이 인위적 시간 속의 나의 행동과 사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었었다면, 내가 살아오면서 쌓인 추억들 속에 내재해 있는 나란 실존자는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영화 에 나오는 주인공 투루먼 버뱅크는 아마도 이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씨헤븐이라는 조그만 섬에서 투루먼은 누구나 다름없는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그가 일하고 있는 보험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며 항상 그랫듯이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차를 타고,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며 회사를 향해 간다. 그렇게 평범하고 새로울 것 없는 똑같은 날의 반복의 삶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음을 투투먼은 감지하게 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하려 하는 투루먼 발 밑으로 하늘에서는 난데없이 촬영용 조명등이 떨어지고, 아내는 자신에게 다가와 마치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말하듯 생활 용품을 이야기하고, 어린시절 자신이 직접 익사를 목격했던 아버지를 어느 순간 갑자기 만나게 되고, 출근 길 매일 듣던 라디오에선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방송되어지는 일들을 겪게 된다. 눈에 보이는 세트 이면을 목격하면서 그 때부터 이상한 다고 느낀 투루먼은 이 곳을 벗어나 보아야겠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이 섬을 벗어나려 하지만, 항상 그곳에 자신을 어떻게든 저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깨닭고 그는 결국 어렷을 적 기억 때문에 심하게 물을 두려워함에도 불구하도 바다를 건너 이 섬을 탈출하기를 결심한다. 투루먼은 그가 정말 사랑한 여인이 있는 남태평양 피지섬으로 가기를 원한다. 험난한 파도와 때 아닌 천둥과 벼락을 헤치고 결국 그는 살아남아 피지섬을 향해 간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이 지금 피지섬으로 향하는 배의 머리는 흰벽에 쿵하는 소리를 내며 부딪히게 된다. 이제 그는 오직 투루먼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가상공간 씨헤븐이라는 인공의 스튜디오 끝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사뭇 신선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흥미롭게 엮어 내고 있는 영화였다.이 영화의 지금껏 흔히 볼 수 없었던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과 또 그것을 펼쳐 내리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가상공간이며, 나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철처하게 계획되어진 것이며,그 기획된 이에 의해 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지고 있다는 영화 속의 진실들은 나를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금 나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 표정 하나가 나의 것이 아닌 24시간 내내 나를 지켜보고 있는 전 세계인이라는 진실은 진실로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인간의 삶이란 것은 어떠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이 커가는데 있어 본인 스스로가 현실에 부딪혀가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투루먼은 자신의 삶속에서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너무나 안타깝다. 방송제작자가 말하고 있듯이 이 세상은 시기와 질투, 거짓과 악 투성이이며. 오직 투루먼을 위해 존재하는 이 사이버 공간은 행복한 곳이라 하자. 하지만, 진실(眞實)이 없는 이 공간안에서의 거짓으로 포장된 진실은 과연 투루먼 자신을 진실된 자아로써의 진실로 행복된 삶의 영위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방송 제작자들의 그릇된 관념으로 오인된 방식으로 한 인간의 삶을 한 인간의 생명을 조롱하고 있는 일 밖에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거의 종반 부에서 바다위에 놓인 투루먼과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에서, 제작자는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쓰다듬듯이 투루먼을 향해 대형 화면의 스크린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이것은 제작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세계안에서 만이 오직 행복을 맛볼 수 있는 투루먼이 거짓의 세계로, 악의 세계로 나아가려 하는 데에서 오는 안타까운 심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이와는 사뭇 대조되는 제작자의 섬을 빠져나가려는 투루먼에게 그는 자칫 그의 목숨이 위험할 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과하고 바다에 떠있는 트루먼에게 심한 파도를 만들게 하고 심지어 번개와 벼락까지 내리게 한다. 자신또한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가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을 지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투루먼을 위한 것이 아닌 제작자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쩜 그것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상황에 대한 그리고, 투루먼이란 자신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에 대한 자기 과시의 대상에 대한 강한 집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이러한 그릇된 가치관으로 고귀한 하나의 생명체의 삶을 거짓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을 낳았다.존중되어져야 하는 투루먼의 삶을 침해한 것은 비단 제작자 뿐만이 아니다. 요즘 우리의 사회에서도 문제시되고 있는 Media에서도 이것을 인간의 삶을 장난화 시키는 이러한 행위들을 조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바로 라는 영화 안의 현실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곳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라는 방송 프로의 한 세트장이라니....... 그는 365일 24시간 방송망을 타고 전세계에 생방송되는 의 주인공이었다. 화장실, 가로등, 심지어 아내의 목걸이에까지 설치된 5,000여대의 카메라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하고 이는 실시간으로 전세계 수십억 시청들의 눈과 귀를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슬프게 하는 방송 사상 유례없는 인기 정상의 드라마 스타. 그의 아내, 20년 이상을 알고 지내던 친구, 심지어 부모조차도 의 연기자였던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방송의 프로를 위해 존재하는 연기자임에 불과 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제작자가 한 뉴스 엥커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에서 이제 새로운 로맨스가 시작될 것입니다 라는 대사가 기억이 난다. 또한 방송에서는 극적 감정을 창출해 내기 위해 아버지를 재등장 시키는 등 자신의 감정과 사고, 심지어 운명까지 매체의 성패를 위해 결정되어지는 이러한 광경을 보며 인간의 삶이 매체의 장난감이 되는 영화 속 현실이 그리고 나아가 요즘의 우리의 현실 또한 이렇게 변화 하여 가는 현실에 안타깝고,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최근에 가장 알기 쉬운 예로 스타들의 몰래 카메라를(물론 일반인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들을 수 있겠는데 이것은 한 인간의 삶의 전환되는 심각한 순간마져 방송 매체는 단순한 오락거리로 전환시켜 버리고 만다. 더불어 매체의 이러한 정신은 상업주의와 맞물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피해를 입고, 마음에 상처를 짊어 진체,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경우도 종종있다. 그 예가 바로 연예인들의 비디오 사건 등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미디어 매체를 타고 급속도로 그 사회적 여파가 확산되기 시작하여 결국 그들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포기하게 되는경우도 낳고 있다. 또한 이것은 물론 일반 서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산골 소녀 영자 와 단란한 그의 가족 영자의 아버지 는 매스컴을 통해 그들의 삶이 반영된 이후 더 이상 영자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같은 하늘 아래 살수 없게 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으며라는 영화에 출연해 일역 스타덤에 오른 김을분 할머님 또한 신경쇠약에 걸려 힘들어 하신다는 보도를 접해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뉴스들을 보면서 영화 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삶을 바라 보면서 영화의 안을 떠나 현대에 진행되어지고 있는 이러한 방송 매체의 비인간화 현상들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 반성하는 계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미디어에 놀아날 만큼의 가볍고 단순한 흥미를 위해 존재하는 장난감이 아니니 말이다.이 영화를 보며 간과 할 수 없는 또 한가지의 사실은 바로 이러한 매스미디어의 비인간성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가하는 것이다. 비로 그 곳에는 시청자가 있다. 우리가 이러한 사회를 사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가 그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는 전세계인들이 제일 선호하는 TV프로 였고, 결국 시청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트루먼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청자들은 또한 영화 밖의 실재 세계에서도 우리의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을 재미있었하고, 또한 그것을 즐긴다. 그런데 만약,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지켜 보고 있는 것이고, 자신의 추억과 비밀들은 이미 계획된 사실이었고, 이것은 나의 것만이 아닌 다른이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래도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한 인간의 삶을 엿보는 행동을, 한 인간의 추억과 비밀을 없애는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행하는 것에 대해 정당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독후감/창작| 2004.10.12| 4페이지| 1,000원| 조회(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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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시가의 이해] 가단의 개념
    歌壇의 槪念-- 歌壇이라고 하면, 노래 부르는 장소를 말한다. 이러한 개념을 내포하는 말들로는 ‘可當’ ‘歌所’가 있는데, ‘歌壇’이 이와는 구분되어 지는 것이 바로 이 명칭의 이면에 “특수사회”라는 개념도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며, 여기서 나아가 “문인들의 집단” “시인들의 집단”이란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1.?仰亭 歌壇의 形成과 活動?仰亭이 창건된 것은 1541년 宋純 나이 41세 때였다. 이 ?仰亭이 창축 되어 호남 제일의 歌壇을 형성하게 되었고, 호남 시가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호남 시가를 우리 시가 사에서 길이 빛나게 한 역할을 하였다. ?仰亭 歌壇이 형성된 데에는 첫째. 宋純의 인간적 매력이 있었다. ?仰集을 통해 볼 때 宋純의 성격이 寬厚한 성격에 信義와 義理가 있었으며, 벼슬에 나아가서도 위신과 권위가 있었다. 둘째. 가까운 거리와 인간적 유대를 들을 수 있다. ?仰亭 출입을 했던 인사들은 거개가 호남출신이었고, ?仰亭과 인접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령 정만종과의 거리는 30리 정도가 그 예이다. 또한 이들은 스승과 제자, 門下生의 관계를 가짐으로써 ?仰亭의 출입은 자연스레 당연한 것이 되었다. 셋째 ?仰亭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다. 면앙정은 우선 전망의 규모가 크고 웅장하고 활달한 것이 특징이다. 넷째로는 출입인사들의 風流性의 공통성이다. 이들은 學者가 아니면 文章家, 혹은 風月을 아는 퓽류 시객들이었다. 그럼 이렇게 형성되어 어떠한 활동을 했는가를 살펴보면, 松純은 ‘次?仰亭韻 2수’를 비롯 임제는 ‘면앙정부 1篇’을 지었고 박순은 ‘면앙정이십영’등의 수많은 시가 활동을 이루었다. ‘?仰亭’을 주제로 한 것으로는 宋純의 ‘致任歌 3수’를 비롯 ‘몽견주상가 1수’ 등이 모두들 종합해 보면 宋純의 국문시가는 長歌 1편 短歌 21수가된다. 구성체제나 표현 형식에 있어서도 나무랄데 없는 완숙한 노래로 평가받고 있다.2. ‘星山歌壇’星山은 현 전남 담양군 남면에 있는 산으로 창평읍에서 남동쪽으로 20리 안팎의 위치한 장원봉 남륵을 일컬는데, 이 산록에는 息影亭을 비롯 여러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鄭澈 은 김노휴, 김대승 등 유명한 스승들에게서 기와 학문을 닦을 수 있었고, 金成遠, 高敬命,백광훈 등의 재우들과 사귀면서 그의 詩才를 발휘할 수 있었다. 이 歌壇에 출입하면서 詩作을 즐긴 사람들은 金成遠, 高敬命, 李後白등 허다하다. 이들은 星山의 歌壇에 서로 왕래를 하면서 시를 짓고 즐겼는데, 때로는 瀟灑園을 찾는가 하면 息影亭과 環璧堂을 돌며 차운으로 화답하며 풍류를 즐겼다. 송순은 ‘次環璧堂 2首’를 비롯 많은 작품들이 ‘星山歌壇’의 명성을 드높였다. 이들의 활동 중 특히 한시에 활동에 있어서는 鄭澈과 김진후의 활약이 대단했는데 정철은 상기 ‘息影亭二十曲’ 말고도24수의 한시를 더 지었으며, 김진후도 상기 ‘瀟灑園四十八詠’ 이외에도 72수의 한시를 더 지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무튼 이들의 시가 활동을 통하여 ‘성산가단’이 흥성했고, 많은 작품들이 생산되어 ‘?仰亭歌壇’과 더불어 조선조 시대 호남지방의 二大 歌壇으로 손꼽히게 되었던 것이다. 더불어 鄭澈의 국문시가를 살펴보면 성산 歌壇에서 지은 것으로 ‘성산가곡’ 등 短歌로는 ‘將進酒辭’등 약 30여 수가 있다. 이러한 정철의 주옥같은 국문시가는 ‘星山歌壇’ 의 존재의의를 새롭게 부조 시켰고, 호남시가를 더욱 찬란하게 장식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3. ‘敬亭山歌壇과 ’老歌齋歌壇’‘敬亭山歌壇’ 이란 김천택을 중심으로 한 家團을 잠정적으로 지칭한 것이다. 敬亭山을 국내 지명이 아니라 詩社의 命名法과 상충되는 바가 있다고 하겠으나 선학들에 의하여 거론된 바 있어 널리 사용되어 지고 있는 명칭이므로 존중하고 자한 것이다.‘老歌齋歌壇’ 은 김수장이 그의 나이 71세 때인 1760年(英祖316) 漢城의 化開洞에 조그만 茅屋을 새로짓고, 노가재를 경영한 이후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歌壇 활동으로서의 ‘老歌齋歌壇’이 성립되었다. 이로부터 김수장의 ‘老歌齋’에는 가객 및 閭巷 詩人들이 다수 출입하여 폭넓은 사교가 이루어 졌으며, 시조 문학의 창작과 창법의 발달에 공헌한 바가 컸던 것을 의 여러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김천택에 대해서는 생존연대를 비록 거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 작자 연구의 성과는 몇 부분에 한정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注目을 끄는 것은 뒤의 김천택의 작품에 붙은 김수장의 발문과 에 실린 여러 가객들의 작품에 붙은 김수장의 호칭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연구자는 이러한 이질성을 그들의 계급에서 찾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김천택의 시가관에서는 ‘사대부 지향적’ 요소로 老歌齋에서는 ‘시객으로서의 성격’이 나타난다는 것인데 김수장은 장시조도 창작하였는데 김천택은 오직 단시조만을 창작하였다는 것을 통해서도 호칭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즉 김천택이 단시조만을 창작하였다는 것은 그 실제는 한미 하였지만 사대부 계층의 인물이었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에서 도 그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편찬의 이면에서는 그 편찬자 들의 작품과 편찬자 들의 신분에서도 나타나는 사대부 意識과 사대부 계층, 평민의식과 평민계층‘ 에 속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이다. 따라서 김천택과 김수장은 신분적 상하 관계는 어쩔 수 없었지만, 비슷한 연배로써 고유하였고, 시조라는 공통된 취미와 시조집 편찬이라는 공통사를 가지고 서로 경쟁하며, 협력하는 동호인의 입장임을 알 수 있다.이러한 김천택이 ‘敬亭山歌壇’을 만들어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로는 우선 장현을 들 수 있겠다. 장현은 허정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가창 능력으로 이름났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고 특히 그의 재적 능력이 歌客들의 활동을 후원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주의식은 김천택과 직접적인 교류를 한 사람 중 한 사람이었고, 변문성은 김천택의 후배로써 의 편찬 및 시조의 가창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가객이었다. 김성기라는 사람과는 交友관계라 말하기에는 이나 에서 보듯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는 바이지만 김천택의 기록에 의거 ‘全樂師’ 와 같은 거문고 명인과 손을 잡고 가악 활동을 계속했다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었으며, 더욱이 시가를 결성한 당사자들이 “?‘을 모은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김천택과 거문과 명인 사이의 관계는 歌壇의 결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되어 진다.1.과 은 조선후기 歌壇의 설립과 더불어 편찬된 최초의 시집인 동시에 현존하는 시조집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편찬 연도는 1728년에 완성되었으며, 적어도 1716년부터는 시조 편찬 작업에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청구영언은 그 체제로 보아 편찬자의 편찬의식이 분명한 시조집이며, 특히 본문 전반부의 유명씨 소개에 있어서는 작가의 연대, 계층이 뚜렷하였고, 작가나 작품 선택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栗谷이나 孤山등의 작품이 수록되지 않은 특징을 보여 준다. 청구 영언의 편찬에는 변문성, 김중여 등의 도움이 있었고, 김천택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인사 또는 歌壇 구성원들의 협조가 뒷받침되었을 것임을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그런데, 에서는 서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서문의 말미에 있어 한유신은 가 곧 김천택의 또는 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는 김천택이 편찬한 것이 아니라 김수장이 편찬한 시조집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것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의 수록된 작가와 작품이 그것과 일치되고 있다는 점에서 입증되고 있다. 다만 가 김천택의 에 힘입어 편찬된 것이라고는 볼 수 있다.2. 는 위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 의 영향을 받아 김수장이 편찬한 시조집이다, 즉 는 ‘敬亭山歌壇’의 활동을 집대성하는 시조집으로 계획되었다가 김천택이 죽자 ‘敬亭山歌壇’이 와해됨에 따라 김수장 자신이 ‘老歌齋歌壇’이 중심이 되었고 의 규모를 換骨奪胎하는 새로운 시조집의 편찬을 도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편찬 된 는 크게 3기의 과정으로 분화되어 진다고 볼 수 있다. 제 1기의 편찬 사업으로는 로 묶을 수 있겠다.과 과 은 의 곡조 배열과 작품 배열이 거의 동일하게 닮아 있다. 이 가운데에 수록 작품 수와 작가들을 고려하여 볼 때 시조집의 전승체계는 ---로 잡을 수 있으며, 이가운데 와 는 1755年에는 아직 김천택이 생존해 있었을 때이므로 김수장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편찬의식이나 방법은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 지닌 의식이나 방법을 가장 온건히 받아들여 를 한편으로 독자적 준비의 과정으로 의 편찬과정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제 2기 는 에 비해서는 대담하게 개편을 계획하고 끊임없이 수정함으로써 완전한 시조집의 형태를 갖추려고 한 노력에 비교적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나 발문과 김수장의 작품 뒤에 적어 놓은 기록을 보면 은 건편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건편에는 김수장의 자서가 씌어진 발문이 보이므로 제 2기에 편찬된 시조집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었다기 보다는 비슷한 체제를 갖추었다고 추정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3.03.23| 4페이지| 1,000원| 조회(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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