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책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받는 순간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생각났다. 감명 깊게 본 영화였고 본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아 있었다. 그 영화를 볼 때 정말 아프리카 내전의 참상에 대해서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었다. 영화 속에 비춰진 소년병들의 표정은 영혼이 없는 사람 같았다. 마약을 하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사람들을 향해 난사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었다. 영화를 보면서 끔찍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가 오히려 덜 잔인하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상은 더 잔인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둘 다 시에라리온의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책을 영화화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영화가 먼저 나왔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상세히 설명된 전쟁의 참상을 영화영상을 떠올리며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 이스마엘 베아의 고통과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은 12살 이스마엘이 친구들과 랩 공연을 하러 집을 떠났다가 전쟁 때문에 집에 다시 돌아가지 못한 채 가족을 찾으러 끊임없이 마을을 돌아다니다 소년병이 되고 재활센터에서 재활을 하고 뉴욕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을 그렸다. 이스마엘은 친구들과 뛰어놀기를 좋아하고 형과 함께 힙합음악을 들으며 랩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아버지가 고급영어를 들으라고 BBC뉴스를 틀어줘도 도무지 말을 안 듣고 형과 춤추며 노는 장난꾸러기였다. 하지만 이스마엘이 공연을 하러 집을 떠난 사이 근처마을이 반군의 습격을 받게 되고 꼼짝없이 발이 묶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스마엘이 있는 마을도 곧 공격을 받게 되고 이스마엘과 그 일행은 살기위해 그리고 부모님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기 위해 숲속으로 도망가게 된다. 그 와중에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끔찍한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되고 반군과 마주치는 위험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가는 곳마다 소년 무리는 반군으로 오해 받아 호의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 어느 한 마을에서 대규모 습격을 받아 형과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지게 된 이스마엘은 혼자 숲을 헤쳐가게 된다. 도중에 멧돼지에게도 쫓기고 뱀 때문에 편치 못하게 자면서 가족을 만나기 위해 12살 소년으로서는 혹독한 경험을 하게 된다. 우연히 만난 마을 청년에게 가족들 소식을 듣게 되고 기대에 부풀어 마을로 갔지만 이미 반군에 의해 초토화 된 상태이고 시체밖에 없었다. 또 다시 반군을 피해 가다 정부군을 만나 한 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군인과 민간인이 어울려 사는 마을이었다. 군인이 안전을 보장해주는 대신 먹을 것과 잠자리를 마을이 제공하는 그런 방식이다. 반군과 교전 중에 군인의 숫자가 점점 줄게 되어 이스마엘과 그 친구들도 어쩔수 없이 소년병이 되었다. 군인들은 소년들을 훈련시키면서 분노를 일으키게 하였고 소년들은 점점 세뇌됬다. 어느새 이스마엘은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들이 좋아하는 용감한 소년병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마약과 코카인을 하며 기분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아이들한테 어느날 유니세프에서 사람이 오게 된다. 소년들을 이끌던 장교는 아이들을 구호단체에 넘겼고 그 곳에서 아이들은 전쟁만큼 고통스러운 재활치료를 하게 된다. 센터에서 광폭한 일들을 서슴치 않고 금단현상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에스더라는 간호사가 이스마엘에게 구원의 손길을 건네게 된다. 처음에는 이스마엘이 계속 뿌리쳤지만 간호사의 헌신적인 사랑과 연민의 정으로 차차 이스마엘이 그 손길을 잡게 된다. 하지만 몸은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전쟁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이스마엘을 괴롭히고 있었다. 마치 고장난 컴퓨터를 고쳤는데 아직 바이러스가 남아 가끔 컴퓨터에 다운을 먹인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재활센터 사람들이 준 백신은 “그 어떤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백신의 효능은 처음부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스마엘 자체가 그것을 못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차 위력을 발휘해 이스마엘의 죄책감을 덜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재활치료가 성공적으로 되어가고 있었고 도시에 사는 삼촌을 만나게 되었다. 이스마엘은 잠시 행복을 느낄수 있었고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재활센터 소장의 추천을 받아 뉴욕으로 가서 전쟁의 비극에 대해 연설을 한다. 그곳에서 로라라는 사람과 소중한 인연을 맺었고 훗날 이스마엘의 양어머니가 되었다. 다시 시에라리온으로 돌아왔는데 삼촌가족과의 인연도 길지 않았다. 정부군의 장군이 반군과 손을 잡고 쿠테타를 일으킨 것이다. 도시에서도 총성과 포탄이 끊이지 않았고 삼촌은 약을 구하지 못해 세상을 떠났다. 이스마엘은 또 다시 세상에 의해 버려진 것이다. 군대로 절대 돌아가지 않기로 다짐한 이스마엘은 시에라리온을 떠나게 된다. 또 다시 머나먼 여정을 하게 된 것이다…….결국 이스마엘은 자신의 집을 영원히 못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뉴욕에서 양어머니와 살고 있지만 마음속의 집은 자신의 고향 시에라리온이다. 하지만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죽은 이상 집은 영원히 파괴되었다. 이스마엘이 지금 전 세계에 이런 사실을 알리려는 것은 자신과 같이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집을 찾게 해주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도 전쟁을 하는 악몽을 꾸고 나무를 볼 때 마다 포로들을 쏴 죽였던 기억이 떠오르는 이스마엘에게 아이들이 그런 고통을 겪지 않게 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과제일지도 모른다. 아직 사람이 죽는 것을 먼발치에서도 본적이 없고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신 적도 없는 나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고 생소하기만 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만약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다가온다면’ 이라는 상상을 많이 해봤다. 너무도 끔찍하고 외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그보다 더 한 경험을 고작 12살이라는 나이에 했고 그 후로 몇 년간 지속되었다. 죽어서도 가기 어렵다는 지옥을 그는 살아서 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집이 아닌 지옥으로 가는 아이들을 차마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아프리카가 지구상에서 가장 꾸밈이 없고 소탈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대자연과 함께 뛰노는 그런 공간을 상상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아프리카도 자본주의의 산물이 되었다. 자연이 만든 자원을 마음껏 갈취하고 그것을 또 갈취하려는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그 속에서 죄 없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채 죽임을 당하고 가족과 생이별을 한다. 시에라리온에 내전이 일어난 것도 결국 자원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다. 욕심이 없는 순수한 사람들의 영혼은 그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다시는 깨어날 수 없게 되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경영과학”2003317008 미디어영상학부 이 성 철지구촌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중 하나인 축구에 대해서 그중에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경영과학의 사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세계 여러나라 축구리그 가운데 가장 상업화가 잘되어있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경영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프리미어리그)입니다. 1888년 리그가 시작된 이래 1980년대 중반이후 구단의 수입이 급격히 증가 하였고 90년대 후반들어서 프리미어리그 구단의 순수익은 7억파운드(1조3000억원)을 웃돌고 1998년 영국정부가 환산한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산업규모는 1500억파운드(약240조원)입니다. 현재는 그 규모가 2500억파운드(400조원)까지 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2006년기준). 프리미어리그는 1970년대에 주식회사 형태의 구단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90년대이후 몇몇 선도 구단들이 기업공개를 통해 증시에 상장을 시도하면서 프로구단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 일반기업의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1996년을 기점으로 모든 구단들이 주식회사로의 전환을 마치게 되었고 축구산업의 투자유입규모가 급증하였습니다. 지금의 유입경로도 다양해 축구구단 자체가 말그대로 글로벌기업이 된것입니다. 맨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지금은 개인이 구단을 소유하고있습니다)프리미어리그 구단의 주가는 일반기업들과는 달리 축구구단의 특성상 팀성적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리고 대형선수의 영입도 팬들의 기대 가치를 늘려 주가를 상승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모든 경기의 결과가 주가에 영향을 주게 되니까 구단들이 열을 올려 좋은 선수를 영입하고 경기에 이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소비자인 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구단들이 과학적인 경영을 할수밖에 없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어떻게 기업경영을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운영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1. 각 구단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운영 (Maximize the profit)⇒ 기업의 목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여러사업 (즉, 경영과학에서 말하는 의사결정변수들-Decision variables)을 통해 수익(목적함수- Objective function)을 극대화하는데 있어서 세계 어느구단도 따라오지 못할만큼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각 구단의 수입원은 입장료, 경기장시설임대, 스폰서와 경기장 광고, 선수유니폼, TV중계료, 기념품판매, 서포터즈 커뮤니티, 식음료판매, 축구기금, 증권시장 등이 있습니다. 보통 입장료등 경기장에서 얻는 수익이 40%, TV중계료등 미디어수익이 30%, 스폰서쉽 및 캐릭터 상품판매가 30%정도 됩니다. 철저한 브랜드 관리를 통해 전 세계에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강력한 마케팅전략을 펼치고있습니다. 또한 경기가 없는날 경기장을 놀게 하지 않고 체험관 같은 코스를 만들어 관광명소로 탈바꿈을 시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기장 안에 쇼핑센터도 만들의 선수들의 유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제도, 무엇이 문제인가?미디어영상학부 2003317008이성철수능시험 치를 때만 되면 혹은 수능시험만 치르면 성적비관으로 자살하는 고등학생들이 생긴다. 그게 마치 연례인 것처럼 말이다.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그 어린 나이에 왜 자살을 선택해야만 했을까? 왜 그렇게 수능성적에 집착해야만 했을까? 그것은 우리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대학이 전부인 우리나라교육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오로지 대학 하나만을 가기 위해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6년 동안을 입시에 매달려야한다. 그 꿈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시절에 꿈은 오로지 SKY이고 해야만 하는 것은 입시공부이다. 그야말로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를 입시지옥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수능시험점수 하나로 인생의 반이 판가름 난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대학이 서열화 되어있고 기업들도 그것을 염두 해 두고 사원을 뽑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문대학을 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조기교육, 고액과외, 대리수능등 온갖 방법을 총동원한다. 하지만 그것도 소위 있는(?)집 사람들만의 얘기이다. 과목당 백만원하는 그런 과외를 일반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한 달에 몇십, 몇백만원하는 학원을 6년 동안 꾸준히 보낼 수 없을 뿐더러 그런 학원도 강남이란 특수한 지역에 한정되어있다. 교육에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불리는 교육이 불평등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많은 모순들을 갖고있는데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가? 이것은 상당히 고찰해봐야 할 문제이다. 비단 수학능력시험제도 말고도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는 무언가 상당히 잘못되어 있다. 매년 성적비관 자살이 신문기사에 실리면서 매년 떠오르는 문제이다. 하지만 자살을 하는 못다 핀 꽃들이 늘어만 갈 뿐 대응책이라고는 거기서 거기인 교육정책의 한심한 변화일 뿐이다. 7차 교육과정이다, 평준화다 뭐다 해도 근본원인은 바뀌지 않고 있다.이제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와 교육정책의 문제점들을 더 자세히 짚어 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해보도록 하자.우선 수능제도의 폐단 중에 하나가 사교육비의 증가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교육비가 26조라고 한다. 이는 국가교육예산 21조원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사교육비의 부작용에 관해 어떤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생산의 재투자에 쓰여져야 할 돈들이 사교육비로 지출되고 만다면 경제가 어려운 이 시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가 없다. {) 안재오,「사교육비는 자본의 낭비이다」,『교육공화국: 공화주의 교육으로 미친 나라를 바로 세우자!』,얼과알, 2003년, pp.49-50.맞는 말이다. 수능을 위한 사교육비 지출은 사회에 필요한 인재배출의 목적이 아닌 단순히 진학위주의 교육이므로 먼 미래로 봤을 때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본의 낭비이다. 국민들이 힘써 번 돈을 쓸데없는 곳에 엄청나게 쏟아 붓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모든 사교육이 다 낭비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대학입시를 위해 하는 것이 현실이다.{) 안재오, 「사교육비는 자본의 낭비이다」, 위의책. pp.50-51참조.공교육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학원, 과외등 사교육비 지출이 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진도가 너무 느리고 고3이 끝날 무렵 수능시험에 대한 대비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불안하다. 그래서 미리미리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앞서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한번에 판가름 나는 시험에서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중학교때 고2때까지의 과정을 다 마치고 고등학교 1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수능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짠 학원이 있고 지금 많은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그런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학교때부터 학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고3때까지 다녀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학교 육성회비보다 훨씬 비싸고 교재비까지 더하면 사교육비는 어마어마하다. 더욱 놀랄 것은 이것은 보통 이라는 것이다. 소위 강남일대의 사교육비는 일반서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교육은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산의 정도에 따라 불균등하게 교육을 받는다면 그렇지 않아도 빈익빈부익부가 극심한 상황에 저소득층은 사회적 지위를 올릴 기회조차 불평등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교육을 더욱 강화해야한다. 그냥 매일 나오는 추상적인 말이지만 가장 근본대책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경우는 거의 모든 학교가 국·공립이다. 그리고 교육방식도 거의 다 국가에서 지시한다. 독일의 경우 전 대학의 수준이 비슷하고 대학이라는 울타리가 없다. 학생들은 자신의 기획과 취향에 따라 이 대학 저 대학 옮겨 다니면서 공부한다. 따라서 학벌이 없다.{) 안재오, 「기여입학제 그리고 대학 자율화의 문제점들」, 위의책, p.160참조.우리나라도 공교육을 독일수준으로 끌어 올려한다. 일명 국가교육주의 방식이다. 사교육을 강력히 법적으로 철폐하고 능력 있는 학원강사들을 학교로 끌어들인다면 땅에 떨어진 공교육의 수준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학교교육에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포괄시켜 아예 학원이란 곳이 생길 수가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평준화에 대한 것도 논의가 많다. 평준화정책의 출발점은 과열된 입시교육과 사교육 부담의 경감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평준화 정책이 그 문제점들을 완화시켰다고는 보기 어렵다. 평준화 정책이 적어도 중학교 및 고등학교 입시 지옥을 당장 해소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학 입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중학교 및 고등학교 학생들이 입시 경쟁의 압력을 받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사교육비의 부담이 평준화 정책 이후에도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평준화 정책이 과열된 입시경쟁을 완화시켰다고 하기는 힘들다. 결국 입시경쟁이 최종적으로는 좋은 대학에 진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의 입시경쟁을 줄였다고 해서 진정한 입시전쟁인 대입까지 경쟁을 경감시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학이다. 아무리 중·고등학교 교육체제를 바꾼다해도 중요한 것은 대학에 가는 것이기 때문에 고교평준화 정책은 우리나라의 모순된 대학입시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다. 결국은 대학체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을 대학에서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그런 입시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홍윤기/동국대철학과교수, 「평준화, 다시 문제는 대학이다」, 『한겨레』, 2003년12월4일.적극적으로는, 평준화가 다양한 교육의 평등한 공존을 보장하고, 다양한 자기개발 영역이 설정된 가운데 그 안에서 건전한 경쟁의 발판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대학 차원의 조처가 과감하게 시도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행정수도 이전 못지않게 대학체제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개편안이 마련되어야 하는 시급한 이 유이기도 하다.물론 수시라는 것을 통해 대학을 갈 수 있는 문이 넓어졌지만 그것도 학교성적의 일부라는 것에서 한계성이 드러난다. 예체능의 경우는 실기가 있어 많이 다르지만 특기자를 제외한 일반학생의 수시는 어차피 고등학교과정의 성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자질이 있어도 객관적인 자료, 예를 들면 수상성적이나 학교성적이 좋지 않으면 지원해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대학 자율화도 사교육 조장으로 안되고 고교평준화 정책으로도 되지 않는다면 어쩌란 말인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독일의 교육정책을 모티브로 삼아야한다.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강제적인 평준화나 획일적인 교육정책이 없다. 국가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국민은 선택한다. 따라서 모든 대학이 공립이지만 경쟁은 있다. 대학교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학과이고 학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도교수의 이름이다. 독일은 대학중심이 아니라 교수중심의 대학제도를 가진 나라이다. 그리고 입학시험은 그냥 간단한 고등학교 졸업시험으로 대처하고 대학교 졸업시험에 비중을 둔다. 결과에 더 가중치를 둔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대학교간의 서열이 없기 때문에 굳이 대학을 가려서 갈 필요가 없다. 단지 자신이 원하는 과와 원하는 교수를 선택할 뿐이다. 물론 독일도 좀더 좋은 대학, 좋은 과가 있고 또 의대, 공대등 실습 때문에 입학생을 무제한 받을 수 없는 학과들에는 입학제한이 있다. 그러나 그 경쟁은 그렇게 심하지 않다. 고등학교 졸업시험 성적이 나빠도 시간을 기다리면 성적이 상향조정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독일의 교육사회주의, 국가주의는 입학시험이 필요 없다. 그러니 자연히 사교육도 사라진다. 이것이 독일식 교육정책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 위해선 정부의 엄청난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로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전 대학을 국·공립화 시키려면 교육재정이 어마어마하게 들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26조원이나 되는 사교육비를 축소시켜 그 돈을 생산쪽으로 돌린다면 국가의 재정이 늘어나 서서히 대학의 평준화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또 한가지 문제점은 창의력을 신장시켜주지 않는 교육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죽어라 연습문제만 푸는 것이 한국의 수학교육이다. 우리나라는 일제식민지 통치하에 놓여 일제 교육을 받다보니 그렇게 된지는 몰라도 일본의 수학시험을 따르고 있다. 주로 공식의 암기와 그것을 이용한 응용문제 풀이에 수학의 초점을 둔다. 독일에서 수학은 어떤 주어진 사태를 수학화, 모델화하는 능력을 추구한다. 실생활에서의 문제를 수학에 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공식이나 법칙이 어떤 것인지 찾아내고 그들의 연관성을 제시하는 것이 답이다. 즉 우리처럼 문제의 정답을 산술적 수치로 나타낼 필요가 없다. 결국 수학을 사고와 논리의 일부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안재오, 「창의력과 무관한 한국의 교육」, 위의책, p107참조.
-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 -내가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본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개봉은 중학교 2학년 때했지만 그때 극장에서 못보고 중3때 집에서 비디오로 보았다. 전쟁영화 같은 스케일이 큰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까 참 후회가 된다. 어쨌든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나에겐 참 특별한 영화이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전쟁영화이다. 전쟁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어지간한 전쟁영화들은 중학생일 때 비디오로 두루 다 봤었다. 지금 그 영화들의 내용이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아도 장면을 보면 무슨 영화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전쟁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도 6.25 참전자이신 할아버지에게 어려서부터 전쟁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쟁에 관해 흥미 있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았고 말로만 듣다보니 전쟁의 참혹함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서 만든 전쟁영화가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갖게 되어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비디오로 보게되었다. 대략 800억이란 엄청난 제작비도 그렇고 그 유명한 스필버그가 감독이라서 더욱 관심이 갔는지도 모른다.영화 초반부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정말 사실적인 영상이었고 화려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의 화면이었다. 총알이 여기저기 정신없이 빗발치고 물 속에서 총알이 회전하는 세세한 장면까지 다 표현해냈다. 그리고 더욱 인상에 남았던 것은 내장이 다 나오고 그것을 움켜쥐며 두려움에 떠는 병사의 모습이었다. 여타 다른 영화들처럼 배우나 엑스트라들이 소리소문 없이 "악"하는 비명과 함께 피만 흘리고 죽는 것과는 달리 징그러운 장면과 생사의 갈림길에서 두려움에 떠는 병사의 비명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냉정함을 보게되었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 전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배경으로 한 첫 번째 전투씬은 이 영화에서 가장 리얼리티를 잘 살렸다고 볼 수 있다. 상륙하기 위해 배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빗발치는 총알과 포격에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아무런 힘도 못브러지고 물위에 둥둥 떠다니는 수없이 많은 시체들은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죽은 전우의 시체들을 방패막이로 삼아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하고 부상당해 괴로워하는 병사를 보면서도 포탄이 두려워 그곳에 다가가지 못하는 장면은 전쟁의 비정함을 보여주었다. 사방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와 진격하라는 상사의 외침소리는 전쟁의 포화 속에 파묻히고 두려움에 파묻힌다. 감독은 그것을 잠시 소리를 죽이고 슬로우 화면으로 담음으로써 표현해냈다. 머리가 백짓장처럼 새하얗게 되었다는 말을 그대로 실감케 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겨우 안전지대까지 도착한 미.영 연합군은 주인공 톰 행크스가 소속된 레인져부대의 활약으로 결국 벙커를 점령하게 된다. 죽은 전우의 복수를 하는 것일까? 손들고 나오는 독일군을 가까이서 쏴 죽이는 잔혹한 연합군 병사들은 이미 인간임을 거부한 것 같았다. 승리의 기쁨과 살아남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는 담배의 맛은 병사들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한 차례 큰 전투가 끝나고 톰행크스, 극중 밀러대위에게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진다. 미 행정부가 전사자 통보 업무를 진행하던 중 4형제가 모두 참전한 라이언가에서 며칠간의 시차를 두고 3형제가 전사하고 막내 제임스 라이언(맷 데이먼) 이병만이 프랑스 전선에 살아 있음을 알게 되자 밀러 대위에게 라이언 이병을 찾아 집으로 보내라는 특명을 내린 것이다.(영화 속에서 라이언의 계급은 이병이다. 제목에서 라이언일병이라 한 것은 우리나라 배급사에서 그렇게 지어 놓은 것이다. 원래는 이병이다.) 드디어 본격적인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명령을 받은 밀러대위는 자신의 부하들로 8명의 특공대를 결성한다. 여기서 부하들의 심한 반발에 부딪친다. 라이언이란 이병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은 내놓아도 상관없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밀러대위는 부하들을 차차 설득시킨다. 카리스마가 느껴지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이 느껴지는 상관의 모습은 어떤 부하라도 잘 따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라이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카파조라는 부하 한은 목에 걸린 십자가에 입을 맞추고 기도하며 저격을 하는 버릇이 있는데 침착함과 냉정함이 보이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그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저격씬이였다. 저격수들이 서로의 위치를 찾는 고요한 상태에서 흐르는 긴장감. 그리고 저격총에 달린 망원경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바로 터지는 총성과 화면위로 뿌려지는 피는 정말 섬짓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을 쏜 것 같았다. 망원경으로 보여지는 독특한 화면구성이었다. 어쨌든 등장인물들은 한명의 죽음으로 이 작전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자신들이 이병 한명을 위해 목숨을 내걸어야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벙커탈환하는 도중 한명을 더 잃게 되자 밀러대위 마저 작전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애써 라이언은 착한 사람일거라고 한다. 자신들이 구할 가치가 있을 만큼. 먼가 어울리지 않는 대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톰행크스의 연기력에 그 말이 녹아든다. 그리고 폐허 건물 속에서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어린 시절을 얘기하며 서로 웃는 장면은 숨막히는 전쟁터에서 벗어나 잠시동안 갖는 여유로움과 휴머니즘이 있었다. 스필버그 감독의 장기인 밀고 당기는 재주, 긴장과 이완이랄까?영화가 후반부로 갈 무렵 우여곡절 끝에 라이언 이병을 찾게되지만 라이언 자신은 정작 왜 자신만 돌아가냐며 전우들도 다 집에 가고 싶어한다고 하며 가기를 거부한다. 감독은 라이언도 훌룡한 젊은이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영화는 라이언과 밀러대위 휘하 특공대를 묶어 두고 마지막 전투씬으로 치닫는다. 결국 최후의 일전이 벌어지고 장비와 탄약부족에다 병력에서도 열세인 특공대는 탱크와 중화기를 앞세운 독일군과의 사투에서 엄청난 용맹성을 발휘한다.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 업헴이라는 캐릭터는 전투에서 말도 안되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총은 제대로 쏘지도 못하고 부대의 보조탄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원들에게 주지 못해 대원들은 하나씩 죽어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이 살려주자 했던 독일군이 바로 방안에서 전우를 살해하지만 도와주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 테니 비범한 영웅보다는 비겁한 '업헴'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 마지막 하이라이트 죽어 가는 밀러대위가 권총 한 자루를 꺼내 적 탱크에 쏘아대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다. 하지만 기적처럼 탱크가 폭발한다. 때 맞춰 나타난 아군 전투기의 공습 때문이지만 마치 밀러대위가 한 것처럼 보여 대위를 영웅시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밀러대위는 라이언에게 네가 구할가치가 있는 사람이었기를 바란다면서 세상을 뜬다. 그리고 장면은 라이언이 할아버지가 되어 밀러대위의 묘소를 찾는 것으로 바뀐다.이처럼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보통사람들을 내세워 전쟁의 잔혹함과 비정함을 고발하려했다. 기존의 영화와같이 람보와 같은 전쟁영웅이 있는 전쟁영웅드라마가 아니라 두려움을 느낄 줄 아는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싹트는 인간미를 부각시킨 전쟁휴먼드라마이다. 전쟁이 집단 살상의 주범이라면 그 속에 뛰어든 한사람의 생명은 그냥 소모품에 불과하지만 그 한사람의 생명을 살려내기 위해 나타나는 전우애를 통해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작품도 흠이 있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보이는 애국주의. 아메리칸리즘이 선명히 드러난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한 사람의 인권을 위해 그보다 더 큰 대가와 희생을 치름으로써 오늘날의 미국을 이룩했다는 거창한 발상이다. 최후의 전투에서 밀러대위와 대원들이 몸을 던져 라이언을 구하고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꼭 나중에 성조기를 앞세운 미국주의로 감동을 반감시켰다. 늙은 라이언이 가족과 함께 국립묘지의 밀러대위의 묘비를 찾아와 거수경례를 하고 대위의 말대로 열심히 가치 있게 살았다고 독백하는 장면에서 성조기가 펄럭이는 장면은 미국인들에게는 필수적인지 몰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어느 나라나 군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국립묘지에 묘비를 두고 충혼탑을 세워 그들을 치하한다. 그들의 신성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라가 있고 우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의미가 담겨있고 스필버 미국 또는 미국 대통령을 만능 해결사로 그려 신 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스필버그는 한술 더 떠서 군인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미국은 천국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영화 진주만도 미국 영웅주의의 대표적 작품이다. 그 당시 세계의 악인 일본을 미국의 한 영웅이 타도하면서 미국은 세계평화의 대표주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진주만도 화면 자체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답게 화려했지만 이면에 숨겨진 뜻이 너무 거부감이 든다. 블랙호크다운, 태양의 눈물등도 그런 뜻이 담겨져 있다. 전쟁영화 말고도 아마겟돈, 인디펜던스데이, 에어포스원 같은 것들도 그런 맥락이다. 이런 외교적, 정치적인 선전만 빼면 작품자체로 놓고 봤을 때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전쟁영화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장면을 뉴스나 다큐멘터리보다 더 리얼하고 잔혹하게 묘사함으로써 관객들 스스로가 진저리를 칠만큼 전쟁의 참상을 느끼게 하면서 그런 전쟁이 앞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특히 초반 몇 분 동안의 전투장면은 종군 카메라맨의 필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얼리티를 살려냈다. 그러면서 탄환이나 포탄처럼 전쟁의 소모품으로 쓰이는 인간을 전우애로 감싸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열고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스필버그만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생동감 있는 화면을 위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촬영을 했다니 그의 열정과 노력은 칭찬해줄 만하다. 배우들도 연기가 아닌 실전과 같은 현장감을 내기 위해 군대훈련을 몸소 체험하고 극한상황을 표현했다한다. 연기가 아닌 실제를 나타내는 것 그것은 연기이상의 인내와 노력 없이는 안 될 것이다. 이 영화에서 톰행크스, 멧데이먼은 그런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특히 톰행크스의 연기는 가공 할만 하다. 먼가 전쟁의 참혹함에 두려움을 떨면서도 겉으로는 부하들을 진두 지휘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내면연기는 나에게 깊은 호감을 주었다. 이 같이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배우와 감독이 찰떡궁합이 되어 만든 예술작품이다. 미국주의가 나타나있고 전쟁영웅드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