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만화영화라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애니메이션. 어린시절 TV앞에서 주제가를 따라부르며 넋을 잃고 보았던 [우주소년 아톰], [로봇 태권V], [타이거 마스크], [들장미 소녀 캔디], [은하철도 999]에서 지금의 최첨단 기술력이 동원된 [토이스토리]나 [개미], [타잔], [에반게리온]에 이르기까지 애니메이션은 항상 우리들 곁에 함께 있다. 애니메이션을 어린이들의 오락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과거에 의미에 비하여 현대적 의미에서의 애니메이션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대중문화예술, 커다란 산업으로 평가되면서 문화적, 사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애니메이션의 형태인 어린이 위주의 재미있고 유쾌하기만 한 이야기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의 정체성, 사회적 문제등 성인 취향의 테마를 다루면서 그 대상이 폭넓게 확대되었다. 이처럼 애니메이션은 이제 단순한 오락물로서가 아닌 하나의 대중문화예술 장르로써 당당히 그 위치를 자리잡고 있다.이렇듯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서고 있는 애니메이션은 전세계적으로 월트디즈니를 중심으로한 미국과 일본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그 질과 양에 있어서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하다. 이러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발전에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데츠카 오사무가 큰 역할을 하였는데, 그는 애니메이션 뿐만 여러 방면에서 일본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이는 강철 팔의 아톰이 마르크스를 이겼다고하며 일본 경제발전의 큰 공헌자인 데츠카 오사무에게 문화 훈장을 주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였다. 일개 애니메이터인 그가 어떻게 일본 사회의 다방면에 영향을 끼쳤고, 또 그 영향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의 대표작인 철완아톰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2. 본 론(1) 데츠카 오사무(手塚治蟲)는 과연 누구인가?1989년 2월9일 일본애니메이션의 신화, 저패니메이션의 대부 데츠카 오사무는 모든 일본 국민들의 슬픔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개척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제작비의 절감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일본애니메이션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Limites Animation), 그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초당 24프레임씩 그려주던 원화(애니메이팅이 되기 위해 그려주는 연속동작의 모든 그림)를 초당 8~15프레임까지 줄이고, 화면상에서 움직이는 부분만을 다시 그리는 방법으로 노동력을 최소화하는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방법의 개척이었다.또한 이전에 사용한 장면을 계속 반복사용하는 방법도 도입한다. 예를 들어 변신하는 장면이나 출동하는 장면등의 경우 매회 같은 장면을 삽입하였고, 그러한 방식은 오늘날에도 흔히 쓰이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노하우인 것이다. [철완아톰]은 우리나라에서도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제목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철완아톰]이후 그는 [정글대제](우리제목:[밀림의 왕자 레오]), [리본의 기사](우리제목:[사파이어 왕자])등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작품들을 발표하였다.그러나 데츠카 오사무의 이러한 상업적인 성과는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일본의 전체 애니메이션계가 낮아진 제작비에 맞추어 제작되어야만 했고, 그에 따라 작품의 '질의 저하'를 가져왔다는 부정적인 비평도 함께 들어야만 했다.데스카 오사무의 애니메이션 역사를 비단 상업적 측면으로써만 그를 평가 할 수는 없다. 그는 상업애니메이션을 하면서 꾸준히 예술적 성향이 강한 단편 애니메이션들도 함께 만들어낸다. 1984년에 제작한 「점핑」, 「낡은 필름」등에서는 그의 실험적인 시도들이 돋보이는 훌륭한 작품들로 해외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등에서 많은 수상을 하며 호평을 받는다.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던 데츠카 오사무, 죽기 직전까지도 작품에 쏟아부었던 그의 열정은 오늘날 일본 애니메이션, 세계를 지배하는 저패니메이션의 위상을 세운 원동력이 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2) 철완 아톰에 대하여1963년 1월1일 "무시프로덕션"의 "철완 아톰"이 처음으로 방송되었다. 1963년부터 19등장하여, 2차대전의 패전으로 상심속에 무기력해진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1963년 1월 2일 후지TV를 통해 처음 방영된 후 일본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출발한 아톰은 3년 뒤인 1966년 12월31일까지 방영된다.(3) 저패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저패니메이션'이라는 말은 JAPAN(일본)과 ANIMATION(만화영화)을 합성해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애니메이션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움직일 수 없는 그림을 움직이도록 만드는 기술 및 이 기술적 방법을 창출해내는 모든 분야 전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 보면 필름이나VTR용 테이프에 그림을 수록하여 움직이도록 하는 방법 및 그 필름이나테이프를 의미한다.저패니메이션(JAPANIMATION)은 일본에서 일본인이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여 만든 만화 영화로서, 사용언어는 일본어이다. 즉 저패니메이션은 일본제 애니메이션인 것이다.) 김지룡씨는(1998 : 213) [저패니메이션에서의 JAP는 흑인을 차별하는 용어인 니그로(Negro)와 비슷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패니메이션이라는 말에는 외설적인 장면이빈번히 사용되는 저질 애니메이션, 폭력적인 장면이 많은 나쁜 애니메이션이라는 의미가 포함 되어 있다. 즉 저패니메이션이라는 용어는 미국인의 편견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이다.]라고 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アニメ와 漫畵와 함께 일본 만화 사업의 파워를 보여주는 단어로 소개되고 있다.저패니메이션이라는 용어의 유래는 일본 최초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인 '철완아톰(鐵脘アトム)'시리즈는 무시프로덕션 제작으로 데츠카 오사무가 감독했다. 이 작품은 총 193편으로 1963년 1월 1일부터 1986년 12월 31일까지 4년간 인기 속에 방송됐다. 과학자 코주부 박사와 한가족처럼 살아가는 소년 로봇 아톰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패전 후 침체돼 있던 일본 사회 분위기에 꿈과 희망을 선사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1971년 TBC에서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됐었다.이 1963년 하와이를 비롯한사용했는데, 배경이 캐릭터와 겹치는 부분은 백색 물감으로 지웠다. 이렇게 만들어진 셀들은 손으로 넘겨서 촬영했다. 이 무렵에는 시모가와 외에도 고무라 쥰이치, 기타야마 세이타로우등도활동했다. 이들은 주로 정치적인 PR애니메이션이나,정부의 캠페인을 위한 애니메이션, 교육용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했는데, 내용이나 기법면에서 초보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46년 일본 의회가 영화법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어린이 교육에 필요한 문화 영화 1종으로 규정하고, 같은 해에 처음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협회가 탄생하면서 애니메이션이 발전을 하게 된다. 1958년 도에이프로덕션의 야부시타 타다이지(藪下黍司)에 의해서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사전(白蛇傳)')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는관객들의 평이 그다지 좋진 않았다. 그러나 [백사전]은 1958년 NHK 영화제 베스트 10에 선정됐고, 13회 每日영화 콩쿠르에서 특벌상,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문화상,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 그리고 멕시코 영화제에서 명예대상을 수상했다. 내용은 소년에게 구출된 뱀이 아리따운 소녀로 변하고 그들은 온갖 시련을 겪으며 결합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1963년에 일본 최초의 TV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철완아톰(鐵脘アトム)'이 만들어진다. 이 후 [늑대소년 켄](1963) [소년닌자 바람의 후지마루](1964) [우주 패트롤 홋파](1965)등 TV용 작품이 계속 제작되면서, 일본은 본격적으로 TV 애니메이션 시대로 들어간다. 데즈카 오사무에서 시작되었던 일본의 TV애니메이션은 6,70년대에 만화를 원작으로 한순정, 액션, SF 등 다양한 소재를 바창으로 급속하게 팽창한다.그러나 1977년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戰艦ヤマト)) '우주전함 야마토'는 마츠모토 레이지 감독의 작품으로 1974년 텔레비전 시리즈로 방영되었다. 이 시리즈를 재편집한 것이 77년에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이다. 제목에서의 ヤマト는 원래 세계대전 당시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에게 침몰된나이에 출판만화가로 출발한 그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과 극장용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기초공사를 다진 것이다.데츠카 오사무는 [철완 아톰]이후 애니메이터로 방향을 돌리면서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데츠카 오사무의 지휘 아래 시작되었며 62년에 후지 텔레비전을 토해 방영된 [철완 아톰]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일본에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출판만화가로 출발한 데츠카 오사무는 출판물에서 텔레비전가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잇는 영상산업의 고속도로를 닦은 것이며 애니메이션 전성시대의 문을 연 것이다. 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텔레비전이 보급된 일본 사회에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은 문화적 촉매 역할을 했다. 더불어 데츠카 오사무는 [철완 아톰]으로 만화가 낳을 수 있는 파생산업, 즉 캐릭터 산업을 발굴했다. 아톰의 캐릭터는 의류와 문구, 완구산업가 결합해 일본의 대중문화를 해외로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꼬마 로봇 아톰의 얼굴은 곧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징처럼 되었다.그러나 데츠카 오사무의 작업은 편당 50만엔 이라는 저예산으로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을 제작해야 했으므로 제작비 절감이 큰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한 장의 셀 그림으로 다양한 화면을 구성하는 제작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애니메이션 은행’이라는 것을 창안해 한번 등장했던 캐릭터의 행동과 표정을 반복해 재활용함으로써 작품의 제작비를 줄인 것이다. 이같은 방법은 적은 자본으로 디즈니의 대작 애니메이션 작품들에 맞서야 했던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에게 계승되었다. 이렇듯 데츠카 오사무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표준작업방식을 제시하였다.또한 그는 애니메이션이 다룰 수 있는 모든 장르를 실험하고 선두에 서서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기도 했다. 최초의 성인용 애니메이션 [천야일야 이야기](69년)를 만들었을 때 관객들과 언론의 찬반 양론이 어셌지만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창조영역을 선점했다는 업적을 인정받았다. 작품별로 따진다면 그는 .
빵가게 습격, 빵가게 재습격, 둘 다 상상력이 비탈길을 굴러가듯 달가닥달가닥 움직이는 정말 좋은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그저 이야기가 표현되고 싶어서' 라는 말에 어울릴법하다. 그러면서 두 번 세 번 읽어보니, 역시 하루키 다운 이야기. 내가 하루키에 대해 뭘 알겠느냐 만은 무언가 교환수단이 필요한 사회에서 빵과 취향을 교환의 대상으로 등가화 시켜버리는 그래서 바그너와 일본공산당원이라는 서로 안 어울릴 법한 두개의 항목을 한 사람 안에 넣어버리는 그래서 전후 일본에서의 공산당원이나 생존의 문제나 다 하나의 기호로만 바꾸어버리는 하루키의 빵가게, 하지만 상상력이 달그락거리는 놀라운-세련된 하루키의 빵가게. 이 빵가게에 들어가 보았다.난 처음에 이 단편들을 읽었을 때 생각했다. '아 이거 굉장하다'. 한번 읽고 난 후 다시 생각했다. '근데 뭐가 굉장한 거지?' 일단 굉장한 건 사실이다. 읽으면서 어떤 굉장한 무언가를 주는 건 사실인데 그게 뭐지. 그래서 생각했다. 며칠동안 한번씩 읽다 보면 뭔가 보이겠지. 음식의 맛만큼 자유로운 연상 작용으로 심연에 가라앉아있는 추억을 되살리는 기제도 없을 것이다. 푸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의 이 추억의 기제는 마들렌이란 프랑스쿠키였듯이, 주인공 부부는 극심한 공복에 잠을 깬다. 이 극심한 공복이 작중 화자 “나”의 오랜 기억을 일깨운다. 친구와 10여년전 빵가게를 습격한 사건, 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공복의 원인이 이 빵가게 습격의 저주라고 느낀 이 부부는 다시 한 번 새벽에 빵가게를 습격한다. 빵가게가 없어 맥도날드를 공격하지만, 그럼 바그너와 공산당이 뭘까? 독재를 재외하고는 별 닮은 것이 없는데 뭐가 닮은 걸까? 설마 이 걸로 무의미를 표현하려 했을 수도 있지만 뭔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아버지 서재에서 자고 있던 '트리스탄과 이졸데' CD를 꺼내고 바그너에 대해 뒤져보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몇 번을 존 끝에 한번 다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곤 소중하게 CD장에 얼른 넣었다. 내가 아는 건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듯 비극적인 사랑을 떠올릴 땐 자주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등장한다는 것뿐 줄거리가 어떤지도 모른다. 인터넷 의하면 바그너란 사람은 오페라에 관련된 사람이며 작극, 작곡, 감독, 연출 만능 제작자라고 한다. 바그너에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은 어떤 부품화 되어 단지 바그너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니체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의 작품을 보러가려면 생각을 집에다 두고 가야 한다.'라고 바그너를 욕했다고 한다. 대충 짐작하건대 바그너라는 사람은 독선이 강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나쁘게 말하면 '자기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 한다' 정도이고 좋게 말하면 '자기주장이 강하군' 정도가 아닐까? 물론 내가 제대로 이해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가 궁금하다. 이렇게 며칠동안 나는 ‘빵가게 습격사건’에서 빵을 훔치려고 했다. 수십 번을 시도하고 나서도 확신은 서지 않지만 훔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다른 빵 하나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하루키는 ‘밤의 거미 원숭이’에서 도넛화라는 신조어로 '현대인의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을 그려낸 바 있는데 맥도날드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한다.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라는 신조어는 어떨까? 비약적일지는 모르지만 주인공에게 있어서 빵가게에서의 현실타협(빵과 취향을 교환)은 주인공의 인생의 전환점이었고 이후 주인공은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재습격에서는 맥도날드의 꽉 막힌 점장을 협박하여 빼앗아 먹는 햄버거 맛은 분명 좋았을 것이다. 분명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특정한 개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방식을 선택하는 대신, 자본주의 시스템에 시비를 걸 수 있는 가장 표준적인 공간으로서 맥도날드를 털었던 것 같다. 후기 산업사회의 비합리적이고 인간이 배제되어 있는 현대에 대한 비판을 하루키는 맥도날드를 통해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는 관료주의가 합리성을 추구하는 대표집단으로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불합리한 권력속성에 빠져 있는 것처럼 맥도날드화가 가져다준 장점, 합리성은 내면적 부조리에 빠진 '형식 합리' 일 뿐이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속의 점장과 점원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표준화된 맥도날드형의 교육받은 것 이외의 것에는 특별한 상황에 대처할 수 없는 통제된 인간형이었다. 다송 통닭집 주인에게 총을 겨누기보다 맥도날드 점장에게 겨눈 것은 역시 적당한 선택이었다. 안 그랬으면 한 가정의 가장을 쏘는 격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주인공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는 인간화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매장문화무덤은 시신을 매장하는 곳이고 봉분은 반원형의 무덤을 말한다. 무덤의 종류로는 지배계층의 봉분이 있는 무덤인 墳(분), 지하에 매장시설이 있는 백성들의 일명 민묘로 불리는 墓(묘), 장군총같이 무덤위에 구조물(사당)이 있는 무덤인 塚(총)이 있다. 棺(관)은 시신을 넣는 곳으로 목관, 석관이 있고 槨(곽)은 방으로써 시체를 넣는 방이다.(덧널) 구석기 시대에는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매장문화가 발견된 것이 없고, 중국의 경우 土葬墓(토장묘) 흙으로 덮은 일반무덤이 있다. 신석기 시대에는 구덩무덤-土壙墓(토광묘), 돌무지무덤-石塚(석총), 펴묻이 무덤-伸展葬(신전장)이 있다. 청동기 시대에는 고인돌이 등장하는데 支石墓(지석묘)라고도 불린다. 이는 굄돌의 지역차이를 보이는데 강화도 지역의 북방식은 탁자식으로 지상매장이 특징이고 남방식은 바둑판식이고 전라남도 영산강 부근의 변형식은 굄돌이 없이 지하매장하는것이 특징이다. 고인돌의 세는 단위는 基(기)이다. 돌널무덤은 石棺墓(석관묘)라고 불리우며 군장이 묻힌 묘이다. 큰돌(판석)과 작은돌로 사다리꼴 모양으로 관을 만들었다. 작은돌로 연이어 만들기도 했다. 옹관묘로 불리우는 독무덤은 60센티정도의 항아리에 묻는다. 신선장, 소아(아기)의 매장방법으로 屈葬(굴장)이다. 초기철기시대에는 길이 3m 너비 1m의 토관목곽묘인 널무덤과 소아, 굴장 높이 60cm의 독무덤이 있다. 한 4군때는 고구려에 의해 멸망한 중심지가 현재의 평양인 낙랑군이 있었고 현재 평양일대에 중국식 무덤이 2000기 정도 남아 있다. 방대형 (흙으로) 내부구조만 다른 목관분, 벽화무덤으로 이어지는 벽돌무덤이 있다. 고구려때는 길림, 흑룡, 묘녕성 일대 (동북3성) 적석총이 있다. 초기(350~450), 중기(450~550), 후기(550~668)의 벽화무덤은 발해로 이어진다. 초기에는 중앙에 전실, 편측에 측실, 안쪽으로 주실 통로로 연결되어있고 전실은 연도(외부와 이어지는 통로)와 연결되어있다. 연도에는 사신도(남주작, 북현무, 좌청룡, 우 나타난다. 회격묘는 관주위에 석회가루와 고운모래가 있는 형태로서 이는 왕들이 쓰다가 양반, 19C에는 백성들의 매장형태로 나타난다. 겉으로 보이는 형식은 단릉(왕만), 쌍릉(왕과 왕비), 동원이강(낮은 언덕에 왕이 조금위에 왕비는 낮은 곳에) 형태가 있다.한국의 의생활 문화선사시대, 구석기 시대에는 동물가죽과 나뭇잎을 사용하였고 신석기 시대에는 뼈바늘(骨針)과 가락바퀴, 조개, 구슬등의 장신구가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옷감이 있었을 걸로 추정된다. 초기철기시대에는 중국특산품으로 유목민족의 속옷용으로 사용된 비단 絹(견)이 있는데 여기에서 견마무역이 시작되었다. 닥나무 실로 만든 綿布(면포), 여러 가지 실로 만든 ?布(겸포)를 이용하였고 前開合佚式(전개합일식)이었다. 삼국시대에는 삼국사기의 본기(고구려, 백제, 신라), 열전(위인전), 표(연표), 지(色服志) 중 지에 기록되어있다. 신라에서는 두루마기(袍)-조선시대의 도포(양반이 입는것), 6,5,4품의 여자들만 입을 수 있었던 저고리(短衣), 바지(?)-바지라는단어는 조선초기부터 사용, 정인지의 把持(파지) 예를 들면 경주부근의 빨간바지 도적떼 적고적이 있다. 치마는 속치마를 裳(상) 의식용 드레스를 裙(군)이라고 했다. 쓰고다니던 것으로는 두건인 巾(건), 평상시에 쓰고다는 모자인 帽(모), ?(괵), 왕이나 귀족들이 공식적 행사에 썼던 冠(관)이있다. 메이크업은 오렌지색 눈화장이 특징이고 머리모양은 고구려는 남자는 외쌍투나 쌍상투를 틀었고 여자는 얹은머리를 했다. 백제는 남자는 상투를 틀었고 여자는 미혼일 경우 한가닥 땋은머리를 기혼일 경우 두가닥 땋은 머리를 하였고 신라에서는 남자는 뾰족한 스타일의 머리를 하였고 여자는 쪽진 머리를 하였다. 신발은 선이라 하였고 재료에 따라 가죽으로 만든 갓신, 짚으로 만든 짚신이 있었고 모양에 딸 단신인 단묘, 부츠인 화가 있었다. 혁대는 가죽혁대인 帶(대)와 비단혁대인 羅帶(나대)가 있었다. 남북국 시대에는 신라시대 때 비단은 40여 종류가 있었으며 최고급 비단은는 1920년때 파마머리가 등장하였고 1930년대 검정고무신이 등장 하였다.한국의 식생활 문화한국의 음식문화는 조리, 가공, 共食(공식)-같이 먹는것 이었고 음식의 역할은 첫 번째가 생존, 정서, 사회적 기능으로 규칙, 예절에 관여되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생자와 사자를 연결 시키는 제사음식의 역할, 세 번째가 사회경제적 기능으로 음식도구 도자기, 그릇 등 관련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역할을 하였다. 선사시대의 식생활은 안면도에서 출토된것들로 추측할 수 있는데 식물로는 도토리등의 견과류와 수수, 콩을 먹었고 동물로는 사슴, 멧돼지, 오소리, 꿩, 개, 산비둘기 등이었고 어패류로는 굴, 조개등이 있다. 음식별로는 곡물음식은 신석기시대의 죽, 청동기 시대의 떡, 7세기의 밥으로 나뉠수 있는데 이는각각 V형 토기와 U형 시루와 무열왕릉에서 출토된 무쇠솥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죽은 구황음식으로 기근이 들었을때, 병인음식으로 병자들에게, 별미음식으로 먹었고 떡은 그 종류만 하여도 150여 종류가 있는데 재료로 꿀편에서부터 개떡등으로 나눌수 있고 용도로는 백설기는 잔치, 성스러움, 고귀함을 나타내고 시루떡은 잔치, 사악한것을 물리치고, 인절미는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였으므로 여행용으로 사용되어졌다. 방법면에서 보면 시루에 찌는 시루떡, 시루에 찐다음 절구에 찧는 도병, 기름에 지진 전병, 송편같은 단자병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밥은 아직까지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으로서 3첩반상은 밥, 국(찌게), 김치를 말하고 혼수품목 1위는 밥그릇이었다. 남자의 밥그릇은 주발이라고 일컬었고 여자의 밥그릇은 바리라고 하였다. 돌때 개인용 밥그릇이 지급되었고 7~8살 때 밥그릇 지급 10대때 밥그릇이 마지막으로 지급되어 죽을 때 까지 썼다. 다음으로 장은 신석기 시대때 뚜껑이 있는 토기가 출토되었고 고구려때는 일본으로 간장을 수출하기도 하였다. 김유신의 장이야기에는 신문왕이 결혼할 때 혼수품목 100여 종류 중 앞부분에 장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며느리, 어머니들의 가장 중요한석기 시대에는 움짐과 동굴에서 거주하였으며 동굴에 노지(불을 피웠던 흔적)가 있다. 신석기 시대에는 초기 움집의 형태는 원형이었고 가운데 노지, 저장공(석기등을 보관하는 구덩이)이 있었다. 후기로 가면서 正方形(정방형) 혹은 長方形(장방형)으로 모양이 변하였고 후기로 갈수록 노지가 가장자리로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주거공간과 취사공간의 분리를 의미한다. 또 수형주거로 땅을 60cm정도 파고 진흙을 채우고 지푸라기등을 깔아 습기를 제거하였다. 특징으로는 이웃에서 침입하여도 채집생활이었기에 가져갈게 없어서 방어시설이 없었다. 청동기시대에는 움집의 지상 가옥화가 진행되었고 칸막이의 흔적, 초석등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정착 생활을 해 마을 규모가 거대해지고 마을을 방어하는 방어시설인 환호(마을 주변의 연못), 목책등이 등장한다. 또한 가운데 母村이 있고 주변에 子村이 있는 마을의 분화도 나타난다. 철기시대에는 온돌과 목조가옥이 등장하는데 지배층의 집터에서만 온돌의 흔적이 나온다. 일반 평민층은 고려시대 때부터 온돌이 나온다. 목조가옥은 추운지역에서는 귀틀집이 있고 따뜻한 지역에서는 원두막 형태의 高床式(고상식)집이 나타난다. 철기시대 가옥의 특징은 山上입지이다. 이웃마을의 공격으로부터 방어가 쉽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는 기와집과 초가집이 등장한다. 고구려는 지배층이 입식 생활을 하고 일반 백성은 초가집이었다. 신라는 삼국사기 지부분에서 신분에 따라 가옥의 크기를 제한하는 옥사조가 기록되어있다. 진골은 24척, 6두품은 21척, 5두품은 18척, 4두품은 15척으로 제한했다. 또 이시기에는 나성(집을 둘러싼 성), 9주5소경(계획도시, 신도시)가 등장했다. 고려시대에는 온돌이 전면 보급되었고 신분에 따라 깁의 크기를 제한하는 家舍(가사)제도가 있었고 성리학의 등장으로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이 등장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건물, 집의 건축규제인 家舍(가사)가 있었고 대지규제인 家垈(가대)제도가 있었다. 사실 더 많았지만 왕자, 공주, 옹주, 왕족은 사공이었기 때문에) 손돌을 첩자로 오인한 관리가 손돌의 목을 베어 죽인 이후 서해안과 강화도 사이 물살이 거친 곳에 손돌목이라는 이름이 붙고 손돌이 사망한 음력 10월24일이면 손돌바람이 불어 항해의 안전과 손돌의 넋을 달래기 위해 손돌 진혼제를 지낸다. 연평도의 해신은 임경업장군으로 연평도 근해에서 조기가 많이 잡히는데 (물반 고기반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옴) 계속 조기어업의 만선을 기원하며 임경업 장군을 모신다. 1년에 한번씩 무당을 불러서 뱃고사를 지낸다. 배에서 무당이 고사를 지내고 그릇에 물고기를 놓아 그 물고기의 머리 방향이 그해 고기가 잘 잡히는 방향으로 점쳤다. 전라북도 부안 죽막동에는 죽막동 해안 벼랑과 근처 섬사이 해류가 형성되어 거센물살이 흘러서 좌초가 잦은 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그 부근이 중국으로 가는 해로였기에 절벽에 수성당을 짓고 안전한 항해를 위해 제를 지냈다. 수성당의 터에서 백제시대 이후의 제기가 출토 되었고 그 제기가 깨어진 제기가 많았으므로 제사를 지내고 제기를 깨는 풍습이 있었던걸로 추정된다. 또한 제기 중 일본제기가 출토 되었는데 이는 백제시대에 일본이 중국으로 갈 때 백제기술자의 배를 타고 갔기 때문에 수성당에서 제사를 지냈다는것을 알 수 있다. 남해에는 경남 학리마을에 하당, 중당, 상당이 있다. 당은 원초적 형태의 숲에서 나무(堂木)→돌, 제당→당집으로 발달되었으며 하당은 거리당(장승)이고 중당은 장군당, 상당이 용왕당이다. 굿과 제물, 제구, 제비의 변천사를 보면 굿은 당굿에서 마을돌이 굿으로 마을돌이 굿에서 용왕굿으로 변했고 제물은 초기시대에는 심청이처럼 산사람을 제물로 쓰다가 희생 즉 제사때 죽이는 동물(여기서 희생양이 나옴)을 사용하다가 흙으로 동물모양을 빚어서 사용하였다. 제구는 초기에는 토기, 자기로 한번쓰고 제구를 깨버리는 풍습이 있었고 차후 양은그릇을 사용했다. 제비는 초기에는 주민전체가 각출하였고 후에는 제의 득을 가장 많이 보는 선주가 부담하였고 후에는 대선주, 근래에는 어촌계에서 제비를 부담하고있다.
자산 부채 계약이전 (P&A : Purchase of assets & Assumption of liabilities)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는 여러 가지 방식 중의 하나로서 부실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제외한 자산과 부채를 다른 금융기관에 인수시키는 것을 말한다. 계약이전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금융기관의 속성상 자산과 부채의 대부분이 계약상의 권리 의무이기 때문이다. 즉 부실금융기관이 가진 자산과 부채의 기반이 되는 다수의 계약상 권리 의무를 인수기관에게 넘긴다는 의미에서 자산 부채 계약이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다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이 부실해져서 자력으로 건전성 회복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금융당국이 나서게 되며 이때 사용되는 부실금융기관의 정상화방식은 ① 구제금융(bailout), ② 구제합병(assisted mergers), ③ 자산부채이전(P&A), ④국유화 후 민영화 ⑤ 청산 등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구제금융 은 금융기관의 영업과 소유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모든 손실을 정부가 부담하여 회생시키는 방안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주주가 손실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시장원리에 배치되기 때문이다.구제합병 은 인수의사가 있는 다른 금융기관이 부실금융기관을 인수합병 할 유인을 갖도록 정부가 최종대부자로서 충분한 자금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구제금융과 구별된다.P&A 는 구제합병과 마찬가지로 부실금융기관의 원활한 인수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부채 및 일부 자산만을 인수하는 것이 구제합병과 다르다. 부실금융기관이 보유한 기존자산의 추가부실이나 기타 우발채무의 발생가능성에 대비해 안전한 자산만을 선별해서 이전하는 방식이다. 금융기관의 부채는 대부분 예금이며 P&A 되는 부실금융기관의 예금자는 예금전액을 인수금융기관에서 찾을 수 있다.국유화후 민영화 란 정부가 증자에 참여해 소유권을 확보한 뒤 이를 국내외 원매자에게 매각하는 것으로 제일은행 매각이 이에 해당한다. 대한생명 한빛은행 등은 아직 이같은 방식의 처리과정 중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청산 은 부실기 구사함으로써 자신들이 매입한 주식을 고가에 되파는 수법을 사용한다.자신들이 매입한 주식을 장내가 아닌 장외매각방식으로 현 경영진 개인이 매입하거나 또는 회사자금에 의한 자사주 매입 형태로 재 매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또 현재 시장에서 형성된 주가와 무관하게 기존 경영진으로부터 경영권 탈취 포기에 대한 프리미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협박으로 볼 수 있다.이는 주로 기존 경영진이 주식시장에서 자사의 주가 관리를 등한시하여 기업가치에 비해 주가가 크게 저평가되었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서 단기 금전적 차익만을 노린 불완전한 M&A의 한 형태라 볼 수 있다.백기사 (white knight)백기사(White Knight)는 기업사냥꾼(Raiders)들로부터 적대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기업의 경영권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방어 계책이 의미가 없고 방어자금의 조달이 더 이상 불가능한 상태에서 그 기업의 대주주와 경영진의 의사에 따라 우호적으로 경영권을 방어 하는 제3자를 지칭한다. 이와는 약간 상이하지만 방어하는 측에 필요한 지분 확보를 도와줌으로써 경영권을 지키게 하는 백영주(White Squire)도 있다.흑기사 (Black Knight)적대적인 M&A가 진행 중인 기업의 대주주와 경영진의 의사나 공격하는 측의 의사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기업의 경영권을 획득하려는 제3의 인수자를 가리켜 흑기사(Black Knight)라 한다. 이 경우 적대적인 인수자들보다 흑기사측의 인수금액이 높아진다.또한 기업 내용이 양호할 경우 인수를 시도하려는 회사가 여럿 나타나게 된다. 좋은 대상기업을 찾아내 인수공격을 하더라도 다른 기업에서 더 높은 가격과 조건을 제시하면서 달려드는 경우를 지칭하기도 한다.BIg Deal말 그대로 규모가 큰 거래를 말하는 것. 덩치가 큰 거래’라는 뜻의 합성 영어인데, 경제 위기 속에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국내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기업간에 대형사업을 맞바꾼다는 뜻으로 사용하여,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필요에 따라서는 신규 자금도 지원해야 하는 등 금융기관의 손실 분담이 필요하게 된다.따라서 워크아웃은 채권상환 유예를 통한 부도의 유예 조치와 협조 융자, 출자 전환까지 포괄한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손실 분담이 채무 기업의 기존 경영진·주주·종업원의 손실 분담을 전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감자(減資)·출자 전환 등의 과정이 선행된 연후에 금융권의 자금 지원이 이루어진다.화의 (Composition)법정관리의 경우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배가 아픈 것은 사실입니다. 또 해당기업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것도 기존의 경영자이기 때문에 모가지를 치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 화의제도이다. 화의란 글자그대로 화해를 위한 의논이다. 즉 부도를 낸 기업의 경영자가 채권자를 찾아다니면서 빌고 또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영자가 일일이 채권자를 찾아다니면서 용서를 빌고, 채권자의 2/3이상이 용서를 해주면 법원에서 전후사정을 감안해 화의를 허가하게 됩니다. 법원으로부터 화의가 인가되면 기업은 본격적으로 일어서기 위해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화의는 IMF구제금융이후에 무척 많이 늘어났는데 이것은 경영자의 경영권 유지 이외에도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넘어진 기업이 많기 때문입니다.채무자에게 파산이 선고되면 채무자로서는 좀처럼 경제적으로 재기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채권자를 위하여서도 그 파산관재인의 환가가 반드시 유리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그 배당도 기대할 것이 못 된다. 따라서 채권자의 이익을 현저하게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파산을 예방할 수 있다면, 채무자는 물론 채권자에게도 유리하다. 파산이 개시되기 전에 파산절차 밖에서 파산을 예방하는 방법으로서 이용하려는 것이 화의이다.즉, 채무자가 내놓은 채무변제방법에 대하여 다수의 채권가가 양보함으로써 이것을 수락하면(화의의 가결), 소수의 채권자들은 그 수락에 찬성하지 않아도 법률상 여기에 구속된다.화의는 파산절차를 종결시키는 한 방법인 파산절차상의 강제화의와 비슷하다. 화의는 화의개정이 있으면 통상의 범위에 속하는 행위라도 관재인의 이의(異議)가 있는 때에는 하지 못하고, 통상의 범위에 속하지 아니하는 행위는 관재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할 수 있다(32조).화의채권자집회에서 채무자가 제출한 화의조건을 가결하려면, 출석한 화의채권자의 과반수로써 그 채권액이 신고한 화의채권자의 총채권의 4분의 3 이상이 되는 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53조, 파산법 278조). 법원이 이 가결된 화의를 인가(認可)하면 화의로서 성립한다(화의법 54조). 그리고 이 인가의 결정이 확정되면 그 효력이 생긴다(58조).화의가 강박 등에 의하여 성립되었다든지, 채무자가 화의조건에 따른 이행을 게을리하면, 채권자는 재판 외의 의사표시로써 화의에서 채무자에게 한 양보(讓步)를 개별적 ·상대적으로 취소할 수 있다(66조). 채무자에게 사기파산(詐欺破産)의 죄에 해당하는 행위가 있거나(67조), 채무자가 화의의 이행을 해태한 경우(68조)에는 화의가 취소된다.법원이 채권자집회에서의 가결을 인가하지 않거나 화의를 취소하여 이러한 결정이 확정되면, 화의절차는 파산절차로 이행(移行)한다. 이러한 파산을 관련파산(關聯破産)이라 한다.법정관리 (Provide legal management)기업이 자력으로는 도저히 회사를 살리기 어려울 만큼 빚이 많아졌을 때 법원에서 지정한 제3자가 자금을 비롯 기업활동 전반을 대신 관리하는 것을 법정관리라고 한다. 법정관리를 신청할 때는 대개 기존의 모든 채권 채무를 동결시키는 재산보전처분도 동시에 신청하기 때문에 채권자는 그만큼 채권행사의 기회를 제약받는다. 보통 3개월 정도 시간을 가지고 법정관리를 승인하는 것이 합당한가를 심의한다. 법정관리가 기각되면 기업은 바로 파산절차에 들어가고, 수용되면 법원에서 지정한 제3자 에 의해 회생작업이 시작된다. 한편 은행관리는 법원이 지정한 제3자가 아니라 은행에서 직원을 직접파견, 자금을 관리한다.LBO (Leveraged Buy Out)기업매수를 위한 자금조달방법의 하나로서 매수할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말한다. 즉, 기업 및 사업인수가 외부의 제3자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회사 내부의 현직 임직원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구조조정, 고용안정, 경영능력 극대화를 기할 수 있다. 대기업은 한계기업을 매각하여 수익성과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고, 적자기업은 책임경영을 기할 수 있으며 해당 부서의 임직원은 실업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경영자 매수는 영국의 경우에는 국영기업의 효율성과 종업원의 고용 안정, 미국의 경우에는 불황 극복과 구조조정 방안으로 활용되었다. 기업경영을 담당한 현 경영진이 경영의 안정 및 독립을 목적으로 자사를 매수하는 것인데, 외부로부터의 기업매수 공세에 대해 효과적인 방어책이 될 수 있다.EBO (Employee Buy Out)제3자에 의한 기업 인수와는 달리 기업의 현 경영진이나 종업원이 중 심이 되어 그 기업의 전부 또는 일부 사업부를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MBO는 기존 경영진이 신설회사의 주요 주주이면서 동시에 경영진으로 참여하는 방식인 반면, EBO는 종업원들이 공동 출자로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98년 최근 재벌 그룹들이 MBO와 EBO를 통해 비주력업종이나 사업부문을 축소, 정리하는 방법으로 분사를 많이 시도하고 있다.황금 낙하산 (Golden Parachute)정관 개정을 통해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대표적인 전략의 하나로 임원을 해임할 때 거액의 퇴직금 지급, 저가에 의한 주식 매입권 부여, 잔여임기 동안의 상여금 지급 등을 명시해 기업의 인수비용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이 방법은 기존 경영진의 동의 없는 경영권 탈취를 저지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으나, 적대적 M&A의 위험이 없는 평상시에도 임원을 해임하기가 어렵게 되어 무능한 경영진에게 과도한 혜택을 부여하는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편 경영자가 아닌 일반 직원에게도 일시에 많은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여 매수 기업의 매수 의욕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황금낙하산과 구별해 주석 낙하산(tin parachut하나다.
1. 주제 및 선택 동기. 주제 : 인성교육. 동기 : 교육과 인간이라는 과목 명에서 기본교육이면서도 현재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인성교육을 선택. 주제의 문제화 : 인성교육 학교에서의 인성교육, 가정에서의 인성교육 간의 갈등. 주제발표 개요1 인성교육의 개념 설명2 영화 엠퍼러스 클럽 을 통해 가정에서의 인성교육과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의 대립 문제 제기3 현재 실행되고 있는 학교 및 가정에서의 인성교육 자료 및 바람직한 인성교육 안 둘러보기2. 인성교육이란?. 인성 : 사람의 성품개인의 특징적인 사고, 감정, 행동을 결정하는 심리-생리적 체계로서 개인 내부에 존재하는 역동적 구조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 견해{성악설성선설백지설순자맹자로크. 인성교육 : 인격을 깨우쳐 주는 교육 또는 현대사회의 비인간화 현상을 극복하고자 하는 교육이목표, 내용방법을 모두 포함하는 것{인성· 인간의 본성 (성선설, 성악설 백지설로 교육 가능성과 한계성)을 나타냄.· 개인의 특정적인 사고, 감정, 행동을 결정하는 심리 및 생리적 체제로서 개인내부에 존재하는 역동적 구조임·가치 판단을 하기 이전 상태의 본성으로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고와 행동의 특성임.·선악을 느낄 수 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마음과 가치 추구와 삶의 모습에서나타나는 행동임.인성교육· 사회성, 도덕성 등의 인성 특징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서교육, 도덕교육, 가치 교육으로 나타냄· 인간의 본성을 후천적으로 다듬어서 덕성을 바탕으로 교양과 능력을 갖춘 전인적인격의 소유자가 되도록 돕는 일임.· 올바른 사람됨을 기른다는 뜻으로 바른 마음과 사람됨을 추구하는 인간교육· 학습자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바람직한 품성 발달을 돕는 학교, 가정, 사회의의도적인 노력의 과정임인성교육의 요소{지 육이제까지 학교 교육에서는 지혜보다 지식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오늘날과 같은숱한 교육적 문제를 낳게 되었다. 삶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교육에까지 이르게된 지금, 기존의 단순한 기억력, 사고력, 암기력 위주의 교육방법에서 탈피하여 다가오는창조화 시대에 걸맞는 창의성과 고등사고력을 육성하는데 이러한 교육의 방향성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덕 육덕육은 정서교육이요, 마음의 수양교육이다. 인간의 심성을 계발하는 심성교육, 감성을발달시켜 주는 감성교육과도 일맥상통한다. 서구의 계몽주의, 실증주의가 인간의 삶과앎을 지배한 이후 수치로 측정 불가능한 인간의 마음과 정서는 교육에서도 등한시되어왔다. 오늘날 EQ(정서지수)와 같은 인간의 정의적 특성이 교육에서 새로이 부각되는현상은 지식 위주의 불구화된 교육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덕육은올바른 가치를 자라나는 세대에게 심어주는 가치교육의 차원, 옳고 바른 삶의 길로인도하는 도덕교육이나, MQ(도덕성지수), 사회의 성원으로서 떳떳이 살아갈 수 있도록해주는 사회성 교육이나 SQ(사회성지수)등과 같은 차원을 일컫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체 육이는 신체를 단련하고 몸을 가꾸는 교육, 건강교육, 성교육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인간은이제껏 몸보다 정신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지식 편중의 기형적 인간을 양산해왔다. 하지만 몸의 건전한 성숙없이 인성의 조화로운 발달이란 기대하기 힘들다. 인성교육에서는 그동안 교육에서 소홀히 다뤄온 몸을 가꾸고, 신체를 단련하고, 건강을 유지해 나가는 몸의 육성과 보존의 문제를 다른 모든 교육의 기초로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민주시민교 육개인은 고립된 개인이 아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 가치가 있다. 민주시민을기르는 인성교육에서는 공동체의식 함양교육, 전통예절 교육, 기초질서 교육 등을체계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전통 가운데 특히 부모에게 효도, 윗사람에대한 공경, 겸양이나 우애의 덕목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얼마든지 가정이나 학교에서길러줄 수 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공중질서 지키기, 규범준수, 타인에 대해 피해안주기,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몸에 체계화시킬 필요가 있다.국제이해교 육전 지구적으로 국제화,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국가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각 개인은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게 된다. 국제이해교육은 세계적인 안목을 키우는 것으로서 국가간의문화적 이질성을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며 정의로운 사회의 창조와 같은인류의 공동선을 실현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국제이해교육은 교원의 해외교류,방학 중 학생들의 해외여행 외국 문화와 외국어 교육, 세계 시민으로서 에티켓과 교양교육 등으로 구체화 될 수 있다.건전한 인성을 지닌 사람을 기르기 위한 인성교육의 특성첫째, 건전한 인성을 지닌 사람은 현실을 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한다. 주위사람, 사회적 맥락이나 주어진과제의 특징 등을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지닌다.둘째, 감정이나 충동에 따라 활동하기보다는 충동과 본능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셋째, 자기 존중과 자기 수용은 건전한 인성을 지닌 사람의 공통의 특징이다.넷째, 건전한 인성을 지닌 사람은 매사에 생산성 내지 합리성을 찾아 행동한다.3. 영화 엠퍼러스 클럽줄거리 : 성 베네딕트 아카데미의 로마사 선생 헌더트는 퇴임을 앞둔 어느 날 한 제자로부터 뜻밖의연락을 받는다. 그는 학창 시절 헌더트 선생의 속을 무던히도 썩였던 세드윅으로 지금은 거대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되어 있다. 억압적인 가정에서의 교육에 반감을 학교에서 불려고 했던세드윅은 헌더트 선생님의 애정으로 로마사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는 로마사에 관한 지식을겨루는 '줄리어스 시저 경연 대회'의 마지막 라운드까지 가게 되지만 커닝을 하다 헌더트 선생에게 들켜 최고의 자리를 놓쳤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헌더트 선생님은 세드윅이 삐뚤어지지않도록 배려하여 그를 탈락시키고 따뜻한 충고로 그의 인성교육을 마무리한다. 25년 후 잃어버린당시의 명예를 되찾고 싶다며 세드윅은 헌더트 선생과 옛 급우들을 모아 놓고 다시 한번 경연대회를 여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다이 영화가 꺼리가 된 이유교육적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와 비뚤어진 학생 이야기는 이나 같은 영화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 할리우드에서는 비교적 흔한 소재이다. 도 그 연장선 위에 있지만 은 교사가 탈선 학생을 성공적으로 선도한다는 뻔한 감동 스토리로 관객을 안내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교사와 학생을 수평적인 대척점 위에 올려놓고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강변하는 두 종류의 인성교육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주제가 이 영화를 택한 이유임.생각해볼 문제사회현실에 맞게 가정에서 인성교육을 받았고 실제로도 성공한 세드윅에게 학교에서 받는 형식적이지만도덕적인 인성교육은 필요 없는 것인가?4. 학교에서의 인성교육(1) 실태 및 문제점설문 (서울 광남 고등학교, 광운 고등학교 현직 교사 50명을 대상)문)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을 하고 있습니까?특별히 시간을 내어 하지는 않는다 (23명)교과 시간에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한다 (12명)학생상담 시간을 통해 정기적으로 한다 (9명)기타 (내가 하는 행동 말이 다 인성교육이다 등) (6명)문) 지금 학생들에게 하고 있는 인성교육이 학생들의 인성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예 (9명) 아니오 (41명)문)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과밀학급 및 업무과중 해결 (31명)입시위주의 교육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11명)가정에서의 인성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6명)기타 (교육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등) (2명)과밀 학급 및 업무 과중으로 인해서 인성교육이 소홀해졌다.교사 한 명이 보통 30-40명의 학생을 담당교과 외에 담당된 업무가 많아서 인성교육의 부재를 부추기고 있다교육과정의 문제현 윤리 교과 시수가 타 교과목에 비해 적음있는 시간 마저 입시에 맞춰진 수업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인성교육은 사실상 학교교육에서차선의 교육으로 밀려나고 있음모범적인 교사상 위축교사집단이 크게 확대되면서 교사로서의 사명감이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까지 교직으로대거 진출오늘날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예전처럼 교사를 존경하지 않으며 교사 스스로도 자신을 스승으로생각하기 보다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인식하려는 경향을 보임(2) 해결방안가. 인성 관련 열린 수업 전개다양한 인성 관련 열린 학습 방법의 전개로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과 창의성, 협동심, 인격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