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광고인의 고백」을 통해 좋은 광고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지금까지 내가 막연하게 궁금해왔던 것들을 어느 정도는 해소한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모든 일이 그렇듯이 광고 역시도 진실성과 성실성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진실성과 성실성,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평생 실천해야할 것들이 아닌가 싶다.먼저 이 책은 광고계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서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광고대행사를 경영하는 것, 클라이언트를 유치하는 법, 그리고 그 클라이언트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또 내가 클라이언트라면 과연 좋은 클라이언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그리고 캠페인을 성공시키는 법, 강력한 카피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등등 광고계에서 일을 잘 해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지침서가 충분히 되어 주고 있다.나는 이 11장의 챕터 중에서 몇 가지에 대해 언급하고 내 생각을 말해보고자 한다.우선 클라이언트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예정 클라이언트의 심리적인 상태를 파악하는 예민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여기에는 아마 모든 것에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저술이 있는 것 같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클라이언트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이쪽은 묵묵히 들어만 주는 전술이다. 즉, 침묵은 금이라는 것이다. 이 방법은 우리가 평소에 대인관계에 있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과 같은 것이다. 사람을 사귈 때 그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주고 묵묵히 잘 들어주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쌓이고 편안하고 가까운 존재로 여기기 마련이다. 클라이언트 역시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만 줌으로써 인해 대행사에 대한 신뢰도가 좀 더 쌓이지 않을까? 하지만 귀 기울여 듣는 것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클라이언트에게 자신의 의견 또한 설득력있게 잘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일 것이다. 만약 클라이언트가 조금은 기분이 나빠질지라도 말이다.오길비는 클라이언트를 구할 때 자신의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구한다고 했다.그 회사의 제품이 자신들이 광고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이것은 스스로가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제품을 취급하여 과연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이다. 나는 대행사에서는 과연 자신들이 원하는 광고만을 취급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탐탐치 않은 제품을 취급한다면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성취도가 떨어질 것은 분명한 것이다.두 번째는 그가 맡기 이전에 일을 했던 대행사보다 일을 더 잘할 자신이 없으면 절대로 맡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에게는 자신감이라는 것이 참 중요하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잘 알고 파악하는 것 또한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욕심만으로는 분명 잘 해낼 수 없는 것이 있다.그는 또 클라이언트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의 경험담과 함께 잘 말해주고 있다.세상에 어렵고 힘든 일은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을 만나고 상대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오길비는 만약 대행사의 경영을 열망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깎아지른 듯한 벼랑 끝을 걷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면서 클라이언트를 놓치지 않는 법에 대해 말하는 데, 새로운 클라이언트보다는 현재 있는 클라이언트에게 서비스를 돌리는 것, 침착하고 인내심이 있는 AE를 고용하는 것, 과거 자주 대행사를 바꾼 클라이언트와는 계약하지 않을 것, 클라이언트와 모든 단계에서 항상 접촉하도록 노력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클라이언트의 눈으로 문제를 보기 위해 클라이언트 측의 테이블에 앉으려고 노력해 왔다는 것이다.나는 이 중에서 클라이언트의 눈으로 문제를 보려고 노력한다는 그의 말이 인상 깊었다. 갑자기 역지사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인간관계에서 이것은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 페스트 푸드 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손님이 많이 오면 일도 바쁘고 짜증도 많이 나서 괜히 손님들에게 불친절하게 대한 적이 많았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에게 짜증을 내거나 재촉하거나 혹은 마치 아랫사람 보는 냥 기분 나쁘게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마음도 상했고 나도 그들에게 똑같이 대했다.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나서, 나는 조금은 새롭게 보는 눈이 길러진 것 같다. 그 일을 하기 전에 내가 고객이 되었을 때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재촉하며 짜증냈던 내가, 지금은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또 고객이 되니 아르바이트생들의 불친절함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한번 생각해 봐야하는 중요성을 알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구나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 일이야 한번 보고 말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클라이언트와 대행사와의 관계는 한번 보고 말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오길비는 새로운 클라이언트 유치보다 기존 클라이언트에게 서비스를 돌리라고 한 것을 봐도 알 수가 있다.그리고 오길비가 언제나 자신의 클라이언트 제품을 쓰도록 노력하며 그것은 초보적인 예의라고 한 것 또한 아주 인상 깊었다. 그 제품들은 최고의 품질, 최상의 서비스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며 또 그가 그것들을 광고하고 있는 이유라고 했을 때 감탄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광고인이 되었을 때 그것은 아주 본받을만한 점인 것 같다. 자신이 광고한 제품을 그만큼 신뢰하고, 또 자신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또한 오길비는 나의 클라이언트를 사랑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것 역시 정말 배울 점이다. 솔직히 광고는 상업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품을 팔기위해 광고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 광고를 만드는 오길비. 그는 광고를 통해 사랑을 하고, 광고를 통해 믿음과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그를 성공하게 한 요인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제5장에서는 캠페인을 성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그는 여기서 광고를 만들 때 지켜야 할 원칙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셰익스피어와 모차르트를 예로 들면서 말이다. 어느 일이든 원칙을 무시하고서는 제대로 이룰 수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는 원칙이 있으면 그것을 어기려고만 하고 있어서 불편한 것이라고만 여겼지, 그 원칙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길비 셰익스피어와 모차르트의 예를 들었을 때 이제껏 거추장스럽게만, 하찮게만 여겨졌던 원칙들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 무슨 일이든 원칙을 잘 지키고, 그것을 행해 나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나 할까?이 장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오길비가 좋은 광고란 무엇인 지에 대해 말한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온 좋은 광고, 그것은 오길비가 말하고 있는 좋은 광고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오길비의 글을 통해 좋은 광고란 어떤 것인지 새롭게 알게 되었다.오길비가 말한 좋은 광고는 광고자체에 주의를 끌지 않으면서 제품을 파는 광고이다. 광고는 독자의 주의를 제품에 집중시켜야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이제껏 광고를 보면서 보고나서 기분이 좋아지거나, 따뜻함이 느껴지는 광고, 감동을 주는 광고가 좋은 광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분이 좋고 따뜻함이 묻어나는 광고라고 해도, 그것이 무얼 광고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면 허사다. 보고나서 광고내용만 생각났지 제품은 안중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제품을 사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켜야 하는 것이 광고의 진짜 목적이다.오길비는 캠페인을 성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잘 알려주고 있는 데, 그 중에서 사실을 말하라고 하고 있다.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처와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가족에게 읽히고 싶지 않은 광고는 아예 만들지 말라고 했다. 처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 좋은 제품은 정직한 광고로 충분히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여기서 나는 앞에서 언급한 진실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상품을 팔기 위해 만드는 광고지만, 거기에는 부풀리는 과장과 거짓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제품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클라이언트를 유치할 때 자신이 탐탁치 않은 제품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좋은 제품만을 취급하고, 그 제품을 믿으며 자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네르발(제라르 드 네르발):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저널리스트. 파리출생. 본명은 제라르 라브뤼니.1827년(19세) 괴테의 파우스트를 번역하여 문단에 데뷔, 이후 독일 문학의 연구, 소개에 힘쓰고 낭만주의 운동에 참가하여 시, 희곡, 소설, 기행 등에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파우스트의 번역은 직접 괴테로부터 명역이란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만년에는 정신착란을 일으켜 요양소에서 치료를 받던 중 발작을 일으켜 목을 매어 자살했다.그의 주요작품에는 ‘불의 딸들’(1854), ‘오렐리아, 꿈과 인생‘(1855) 등이 있으며, 또한 상징주의의 선구가 된 14행 시집 ’환상시집‘(1854)은 낭만파 말기에 속하고 상징파 시인 및 프루스트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현대에 와서 다시 그의 작품이 재평가되고 있으며 화려하고 난해한 시풍은 쉬르레알리스트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다.그는 세 살 때 어머니를 잃어 큰아버지 집에서 자라났다. 이 지방의 쓸쓸한 풍경과 전설로 가득한 자연과 환경, 그 위에 심령교, 점성술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큰아버지의 영향이 어머니 없이 자란 어린 네르발에게 강하게 작용한 듯하다고 한다.소년시절부터 그는 여행을 즐겨 유럽 각지와 중동 지방을 찾아다녔다. 독일 문학에 심취되어 19살 때에 이미 괴테의 파우스트를 번역했으며 이어서 독일 작가이며 작곡가인 호프만 류의 혼상적인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이때부터 이미 그에게는 환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징후가 나타나 이때에 쓴 그의 시 가운데는 그의 영원한 여성이며 수세기 전 수녀원에서 죽은 금발의 아드리엔이 현실로 나타난다.그가 28세 때 무대 여배우 제니 콜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이 여배우는 그의 작품 가운데 오렐리 또는 오렐리아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그는 제니 콜롱이 그가 소년 시절 보았다고 생각하는 여성 아드리엔의 환생이라고 확신했다. 제니 콜롱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그에게 극심한 심적 충격을 준다.1841년 그는 정신 착란을 일으켜 약 8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회복했으나 그 다음 해의 제니의 죽음은 그의 신비적인 꿈을 더욱 짙게 했다. 영원한 여성이라는 낭만적 관념은 그가 줄곧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죽은 제니의 모습은 아드리엔 뿐만 아니라 시바의 여왕, 고대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 성모 마리아, 심지어 그의 어머니의 화신으로까지 이어진다.이후부터 그의 생활은 때때로 일어나는 발광증과 가중되는 생활난으로 몸담을 집도 없이 거리를 헤매는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내가 시를 쓰게 된 것은 처음에는 청춘의 정열이었으며, 다음은 사랑, 최후는 절망 이다” 라고 할 만큼 40대의 그의 생은 절망의 시대였다.그러나 이때부터 그는 마치 인생을 정리나 하듯 정신이 들 때마다 자신의 관찰, 연구, 정신적 체험을 담은 작품을 하나 둘 출판했다.1855년 1월 그는 목을 매어 자살했다. 그는 미친 상태와 냉철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서도 비교적 많은 작품과 번역, 연구를 남겼으나, 결국 시집 ‘오렐리아’와 콩트‘실비’라는 두권의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두 작품은 프랑스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상상적 기억의 이야기로서,‘오렐리아’는 오렐리 즉 제니 콜롱의 이야기이며, ‘실비’는 그의 고향인 발루아 지방의 시골 처녀의 이야기다.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의 꿈과 기억 속에 이야기라고 한다. 이러한 환상적이며 꿈의 세계를 가장 성실하고 명쾌하게 그리고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쓴 점에 그의 문학적 가치가 있다.시의 특성도 그가 살고 느낀 환상적이며 초자연적인 체험을 성실하고 진실 되게 기술한 점에 있다. 그의 시는 앞으로 올 상징주의나 초현실주의의 선구적인 시가 되었다. 또한 그가 마음속에서 체험하는 꿈과 환상을 냉철히 관찰하고 분석하여 새로운 세계와 진리에 도달하려던 노력은 그 후 현대 문학에도 이어져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그의 생애와 작품을 연구하고 있다. 네르발의 생애1808 의사인 에티엔 라브뤼니의 아들로 제라르 라브뤼니 출생1810 마담 라브뤼니 사망. 모르뜨퐁텐느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의 형제 앙뜨완느 붓P에게 맡겨짐1814 에티엔 라브뤼니 귀국1820 샤를르마뉴 고등학교 입학. 떼오필 고띠예와 친구가 됨. 앙뜨완느 부셰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