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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한국어교육이란
    한국어교육이란
    한국어교육이란Ⅰ 서론‘한국어 교육?’이라는 질문에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지 명확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답을 하려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그 답이 다 달라질 것이다. 한국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다는 것, 한국어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이 풍부한 것,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 등 무수히 많은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 답이 달라지는 것이다. 때문에 본 보고서에서는 너무나 많은 기준을 다 다룰 수 없기에 기준 자료를 선택하여 답하고자 한다. 그 기준 자료를 정하는 것 역시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하나 높지 않은 필자의 수준을 고려하여 최신의 동향을 바탕으로 한 한국어 교육에 초점을 맞춘 논문을 선택하여 작성하고자 한다. 윤여탁(2020), 「포스트 휴먼 시대의 한국어교육: 그 현재와 미래」를 참조하였음을 사전에 밝힌다.포스트(post)는 그동안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등 문예사조나 현대사회의 사상적 경향을 규정하는 데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포스트 코로나라는 용어도 등장하였다. 그 의미는 후기, 이후 또는 탈(脫), 너머 등과 같은 시간적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현대사회의 새로운 상황 맥락에서 포스트라는 용어를 시간 개념뿐만 아니라 공간 개념도 함의한 용어로 확대하여 사용한다.시간의 관점에서 포스트를 ‘동시대 + 너머’라는 의미에서 ‘동시대 너머’라는 의미이고, 공간의 관점에서 포스트는 현대 디지털 기술이 가능하게 한 비대면 소통의 공간을 포함한다. COVID-19라는 전지구적 재앙은 플랫폼이라는 공간의 역할을 극대화하였으며, 그 경제성과 효용성도 입증하였다. 이에 따라 비약적으로 발전한 디지털 미디어 기술은 비대면 상황에서의 소통과 인간적 관계 형성이 가능한 공간으 ㄹ창조했으며, 이러한 결과는 다시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또한 현대사회는 세계화와 4차 산업혁명이 요청하는 여러 도전과 과제들에 직면해있다. 특히, 다문화(multiculture)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각기 다른 국가들의 지역적 특수성과 문화적 다양성에 주목하는 지역화(localization), 셋방화(glocalization)와 같은 지향 역시 중요해졌다.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로봇, 빅 데이터, 사물 인터넷 등 디지털 기반의 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 인간들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외국어교육에서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와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즉 외국어 학습자는 목표 언어와 목표 문화를 학습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학습자 자신의 모어와 모어 문화와의 비교를 통해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활용해서 학습에 적용해야 한다.Ⅱ 본론1. 상호문화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어교육한국어교육은 일차적으로 기능적 의사소통 능력을 넘어 문화 능력 함양을, 이차적으로는 다문화주의를 넘어 상호문화주의로서의 한국어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상호문화교육의 관점에서 한국어교육은 학습자의 목표 언어 사용 능력 함양을 넘어, 목표 문화와 모어 문화의 차이에 대해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문화 능력 함양을 목표로 해야 한다. 한국어교육에서 문화교육은 목표 문화와 모어 문화에 대한 이해 능력과 문화적 정체성 형성을 통해서 학습자의 언어생활이나 일상생활과 같은 실천 현장에서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상호문화주의를 견지해야 한다.2. 비대면 가상공간에서의 한국어교육비대면의 가상공간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교육 콘텐츠는 그동안에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한국어교육에서도 온라인, 사이버 강의 등의 형태에 적합한 교육 내용을 개발하여 교육의 실제에 적용함으로써 일정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최근의 비대면 상황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패턴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 및 교육의 향유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어교육 역시 기존의 온라인, 사이버의 교육 방법이나 효과의 노하우(knowhow)를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가상공간을 확보하고, 비대면 가상공간에서의 교육 내용과 방법을 개발하여 실제에 적용해야 한다.3. 한국학과 연계하는 한국어교육한국어교육이 기능적인 의사소통교육을 넘어 지속가능한 학문 영역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학의 학문 분야와 연계해야 한다. 즉 한국어 교육학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한국학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학문적 정체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일반목적 한국어교육에서는 의사소통이나 문화, 공동체 등의 표준이 중요하지만, 특수목적 한국어교육에서 다른 학문 분야와의 연ㄱ?P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취업목적 한국어교육이나 학문목적 한국어교육은 해당직업이나 학문 분야의 용어나 학문적 글쓰기 등을 중심으로 교수-학습의 실제가 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어교육학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4. 포스트 휴먼 시대의 한국문학 교육한국어교육에서 문학교육은 실용주의적인 한국어교육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실제로 한국문학은 지역학으로서의 한국학 분야에서도 중심이 되는 학문 영역이라는 특성을 바탕으로, 한국어교육에서도 한국학의 영역이자 인간의 기본적인 소양인 한국문학을 매개로 하는 한국어교육의 이론과 실제를 개발해야 한다. 문학 작품은 언어교육의 중요한 제재이자 교육의 내용이기도 하다. 때문에 한국어교육에서도 한국문학 작품을 활용한 교수-학습을 통해서 한국어교육의 목표를 실현해야 한다.5. 실천적 학문으로서의 한국어교육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은 의사소통 능력 함양을 중요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태생적인 차원에서 실용성을 전제로 한다. 앞에서 언급한 포스트 휴먼 시대, 세계화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현대사회의 시대적 요구는 한국어교육을 실용과 기능의 영역에 머물지 않게 할 것이다. 이제 한국어교육은 양적인 팽창의 밑거름이 되었던 실용성을 넘어 질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학문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
    교육학| 2022.11.08| 3페이지| 2,500원| 조회(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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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생규장전>의 교육적 활용 방안
    의 교육적 활용 방안Ⅰ. 서론김시습의『금오신화』는 현재 고등학교 문학교과서 18종 중 15개의 교과서에 , 등이 실려 있어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작품이며, 우리나라 초기소설사를 주도하는 정점이자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국문학사적 의의가 큰 고전소설이다. 전기소설(傳奇小設)은 다른 어느 소설보다 상상력이나 허구성이 강한 작품이며, 학생들에게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장르라 할 것이다.여기서는 『금오신화』에 실린 5편의 이야기 중 가장 서사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을 대상으로 그 교육적 활용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Ⅱ. 고전소설 교육의 목표 및 교사의 역할문학교육이란 문학작품을 바르게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을 길러서 학습자가 풍부하고 다양한 문학적 체험을 하게하고, 이를 통하여 학습자의 미적 인식력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길러 바람직한 인간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고전소설은 그것이 창작된 당시의 언어를 통해서 당대인의 문학적 풍토나 세계관을 바탕으로 당대인의 삶을 표현한 예술이라 할 것이다. 비록 현대인에게 낯설기는 해도 고전문학은 시대를 뛰어 넘는 문학적 진실의 보편성과 초월성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교육함으로써 한국인다운 세계관과 인생관을 기르게 되고, 한국문학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깨달아 문학교육 현장에 민족 문학의 전통을 잇는 커다란 목표를 지니게 된다.문학교육에서 요청되는 바는 수용자, 곧 학습자들로 하여금 작품의 이해 및 감상력을 신장시키고 나아가 문학 생산에까지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습자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소설을 즐겨 읽는 가운데 소설이 제기하는 제반 문제를 자신의 삶의 세계로 끌어들이도록 해야 한다. 이 때 문학교사의 직능은 문학현상을 수용하는 수용자이자, 학습자들이 문학적 체험을 내면화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중개자로서의 역할이다. 이를테면 학습자들과 독자의 영역을 공유한 문학교사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자기가 수용한 텍스트를 중개하고 안내하여 텍스트를 올바르고 심층적으로 감상하고, 나아가 내적으로 태도는 지양되어야 하며, 그 계도에 교사도 일정한 몫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문학 교사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매월당의 삶이나 에 구현된 작품적 의미지향과 결부하여 교육하였을 때 나름의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또한 이 작품에서의 남녀주인공의 애정이 절의를 구현하기 위한 제재가 아니라, 애정 그 자체라 할지라도 현대를 사는 학습자들에게 주는 교육적 의의는 충분하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배우자에 대한 신의를 쉽게 저버리는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 이생과 최랑의 사랑은 학습자들에게 사랑의 소중함과 자기가 선택한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의식은 지녀야함을 일깨워 줄 것이기 때문이다.Ⅳ. 의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여기서는 에서 가르쳐야 할 교육적 대상과 그 방법을 작품 외적 문제와 작품 내적 문제로 나누어 살펴보고, 작품의 창조적 내면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1. 작품 외적 문제은 『금오신화』중의 한 편이므로 『금오신화』와 관련된 사항들, 즉 작가의 삶과 인물됨, 사상, 그리고 작품의 소설사적 위상 등을 알아보는 것은 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알아야 할 중요한 교육의 대상이라 할 것이다.1) 김시습의 삶과 인물됨, 사상작품의 감상과 이해가 일차적으로 작품 내에서 이루어져야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작가와 작품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학작품은 작가의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므로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삶이나 사상, 당대의 사회상 등 작품 외적 문제들에 대한 이해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본다.김시습은 세종 17년(1435년) 서울 반궁(성균관) 북쪽(현 명륜동)에서 忠順衛 日省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미한 무반 가문의 후예인데다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 의탁되었고 부친의 중병으로 가사마저 어려웠지만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그는 당대의 석학들에게 수학하면서 유가적 입신양명의 꿈을 버리지 않고 학문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왕도정치의 이상이 수양대군의 왕위찬방랑하다가 59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이상으로 볼 때 김시습은 현실에 대한 집요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끝내 세상에서 밀려난 채 고독한 예외자, 방외인으로서의 일생을 보냈고, 그렇게 된 것은 지나친 결백성과 비판적 기질이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숙종 때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규정되었고, 정조 때 이조판서로 추봉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그의 절의를 높이 평가한 데서일 것이다.한편 김시습의 일생을 보면 외견상 유교와 불교 사이를 오가는 양면적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중심 사상이 유교냐 불교냐 하는 것이 논란이 되어 왔다. 이좌는 『매월당집』서문에서 유가의 행위로서 불가의 길을 걸었다고 하였고, 이이는 에서 유학에 뜻을 품고 불가의 길을 걸었다고 하였다. 이는 곧 매월당이 중의 행색을 하였지만 내면의 사상은 유교라는 의미인데 이런 점을 그의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에서 불교를 이단이라 규정하고, 그러면서도 중과 벗하게 된 것은 중은 본래 물외인(物外人)이요 산수 또한 물외경(物外境)이기 때문에 물외에서 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게다가 그는 부처의 영험을 믿고 복이나 비는 이른바 세속적 기복불교를 철저히 배격하였다. 이로 볼 때 김시습은 승려생활을 하고 불교관계의 글들을 쓰면서도 불교에 대한 종교적 애착을 가지지는 않았던 듯하다.김시습의 사상을 유교이념을 기반으로 한 유불일치론으로 파악한 이래 그의 사상적 기반이 성리학이라는 전제하에서 논의되어 왔으나 학자에 따라서는 김시습의 사상 및 금오신화의 사상적 성격이 불교나 도교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2) 『금오신화』의 소설사적 위상『금오신화』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 데에는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라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여태껏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쳐 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팽배한 상황이므로 학생들에게 단정적으로 『금오신화』가 최초의 소설이라고 가르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교사는 『금오신화』가 최초의 소설이라면 중 박희병 교수는 이 인물의 성격적 특징이 구체적으로 부각되어 있고, 최초의 시간과 최종적인 시간 사이에는 커다란 질적 변화가 감지되고, 주인공의 세계 내적 상황이 고독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으며, 주제의식? 일대기적 구성? 인물의 개성 부각? 시의 삽입 등에 있어서 뚜렷한 목적의식을 보여준다는 점 등을 들어 전기소설로 확정짓고 있다.)소설의 기점 문제는 설화와 소설의 장르적 변별성 내지 개념이 확연하게 수립되었을 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앞서 보인 논의들도 그러한 전제에서 소설의 기점 문제를 개진하고 있으나, 그 어느 쪽이든 학계의 공통적 공감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가들의 관점에 따라 『금오신화』를 소설의 출발로 보기도 하고 나말여초의 작품을 소설의 출발로 보기도 하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과 이해, 그리고 평가는 일차적으로 텍스트를 중심으로 텍스트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위와 같은 작품 외적 문제들은 일단 기본 텍스트를 충실히 음미한 후에 논의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작품 외적 사안들에 대한 교육은 학습자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해결하기에는 벅찬 과제이기도 하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에 교사 중심의 강의식 수업이 적합할 것이다. 교사는 미리 이러한 내용들을 읽기자료로 제작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충분히 읽어오게 한 다음,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력이 뛰어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며 김시습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학생들을 위해서는 참고서적을 소개해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1) 의 내용과 관련해서 작가의 그러한 삶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나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지도하면 좋을 것이다. 2) 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교사가 어느 것이 최초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교사는 기왕의 논의들을 적절히 수렴하여 교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설화와 소설의 장르적 차이점을 통한 소설의 개념은 언급되어야 할 것이며, 『금오신화』가 초기소설사를 주도하는 가다.…이별? 불행여기서 작품의 전반부에 드러난 사랑보다는 후반부에 나타나는 사랑이 훨씬 ‘승화된 사랑’이며, ‘초월의 사랑’이라 할 수 있다.다음은 갈등 구조이다. 소설은 자아와 세계의 심각한 대립과 갈등을 형상화한 서사장르이다. 에서 자아는 이생과 최랑이고, 세계는 중세적 윤리 규범이나 사회적 관습, 전쟁(홍건적의 난), 명수 등이다. 이 작품에서 자아와 세계의 갈등은 세 번 반복된다. 첫째는 당대의 중세적인 윤리 규범이나 사회적 관습과의 갈등(이생의 울주 추방)이고, 두 번째는 전쟁과의 갈등(최처녀 죽음에 따른 이별)이며, 세 번째는 명수와의 갈등(재결합 후 영별)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작품의 서사구조와 갈등 구조를 파악하게 함으로써 작품의 줄거리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때는 교사 중심의 주입식 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 작품내용을 구조화한 학습지를 문제지 형식으로 제작하여 제공한 뒤 학생들이 모둠별로 토의? 협력학습을 통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작품을 내용 구조에 따라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여섯 모둠이 한 부분씩 맡아 연극을 이어가도록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2) 인물의 성격이생과 최씨녀의 인연은 이생이 담장 너머로 최씨녀를 엿본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후 사건의 진행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이생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듯이 보이나 실제 이면적으로는 최씨녀가 사건을 주도하고 있다. 이생은 최씨를 마음속으로 흠모만 하였지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반해 최씨녀는 만나는 시간을 제시하고 이생이 자기 집 담장을 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이생의 부친이 이생을 고향인 울주로 내려보내자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따르는데 반하여, 최씨녀는 결연한 의지로 결혼을 성사시킨다. 홍건적의 난 때 이생은 혼자 피신하였는데 반하여, 최씨녀는 죽음으로 정조를 지켰다. 이처럼 그들 앞에 닥친 모든 문제를 이생보다는 최씨녀가 해결하고 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서 남자주인공인 각된다.
    인문/어학| 2010.11.10| 8페이지| 3,000원| 조회(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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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암집(TEXT)에 대한 고찰
    『燕巖集』(TEXT)에 대한 考察.1.들어가며 5.「燕巖集」異本에 대한 考察2.燕巖集 解題 6.熱河日記의 저술?출판과정과 異本3.燕巖集의 異本과 간행시기 7.나오며4.朴趾源의 필사본 小集들과 작품 창작년 고증1. 들어가며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소설가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문집인 연암집(燕巖集)은 시문집으로, 신활자본이다. 17권 6책. 1901년(광무 5) 김택영(金澤榮)이 9권 3책으로 간행한 바 있으나, 이것은 본집(本集)의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저자의 아들 종간(宗侃) 등이 편집해 두었던 57권 18책의 필사본을 바탕으로 1932년 박영철(朴榮喆)이 17권 6책으로 발행하였다. 내용은,권1에 서(序) ·기(記) ·인(引) ·논(論) ·장(狀) ·전(傳),권2에 서(書) ·묘지(墓誌) ·묘갈(墓碣) ·비명(碑銘) ·탑명(塔銘),권3에 서(序) ·기(記) ·논(論) ·장(狀) ·발(跋) ·설(說) ·소(疏) ·책(策) ·서(書),권4에 시(詩),권5에 척독(尺牘),권6에 서사(書事),권7에 서(序) ·기(記) ·발(跋) ·묘갈(墓碣),권8에 방경각외전(放?閣外傳),권9에 장(狀) ·기 ·진향문(進香文) ·제문(祭文) ·장계(狀啓) ·서(序) ·대책(對策),권10에 기 ·발 ·애사(哀辭) ·제문 ·서(書) ·비(碑) ·사장(祠章) ·잡저(雜著),권11∼15에 열하일기(熱河日記),권16∼17에 과농소초(課農小抄) 등을 수록하였다.1956년 서울 통문관(通文館)에서〈방경각외전〉등에 수록된 단편들을 뽑아 국역한 이민수(李民樹)의《연암선집(燕巖選集)》이 발행되었다. 은 최근에야 겨우 완역이 되어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중요한 줄 몰라서가 아니라, 번역이 어렵기 때문이었다.‘연암문학’ 20여년 만에 한글 완역.‘조선시대 최고의 산문작가’ 연암 박지원의 문집이 사제 간의 20여년에 걸친 노력 끝에 온전히 번역됐다.한학자 고(故) 우전(雨田) 신호열 선생과 한문학자 김명호 성균관대 교수는 ‘연암집’을 우리말로 옮긴 ‘국역 연암집’ 제2권을 최근 출간했권각종 산문제 8 권방경각외전(放?閣外傳)제 16 권전(傳)제 9 권고반당비장(考槃堂秘藏)제 56 권각종 산문제 10 권엄화계수일(?畵溪蒐逸)제 57 권각종 산문◇「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연상각(煙湘閣)은 연암이 안의 현감 시절에 세운 정각(亭閣)의 하나였다. 안의 현감으로 갓 부임한 때인 1793년, 연암은 정조로부터《열하일기》로 인해 문풍(文風)의 타락을 초래한 잘못을 속죄하는 뜻에서 순정(純正)한 문체로 글을 지어 바치라는 하교를 받았다 이에 그는 새로 글을 지어 바치는 대신 구작(舊作)에서 고른 약간 편과 안의에서 지은 글 몇 편을 합쳐 몇 권의 책자로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장차 정조에게 진상할 목적으로 연암 자신이 정선한 글들만을 모은 자찬(自撰) 문집이다.◇「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 연암이 십대 소년인 1755년에 지은「영목당 이공에 대한 제문〔祭榮木堂李公文〕」에서부터 노년인 1801년 양양 부사로서 강원도 관찰사에게 올린 편지까지 상당한 시차를 둔 작품들이 두루 섞여 있다.◇「영대정잡영(映帶亭雜詠)」- 연암의 시만을 모아놓음.◇「영대정잉묵(映帶亭?墨)」- 중년 이전의 짧은 편지들만을 모아놓음.◇「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 1797년경 정조의 어명으로 지은 독립된 저술.◇「종북소선(鍾北小選)」- 주로 중년에 지금 소품 산문들은 모아놓음.◇「방경각외전(放?閣外傳)」- 오늘날 한문소설로 간주되는 연암의 초기 전(傳) 9편.위의「연상각선본」에서부터「방경각외전」까지가 합쳐져서, 1차로 문집이 완성되었던 듯하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朴宗采)가 선친의 언행을 기록한《과정록(過庭錄)》을 지은 뒤 1831년에 쓴 추기(追記)에,《열하일기》와《과농소초》를 제외한 연암의 문고(文稿)는 모두 ‘16권’이라고 하였다. 위의 표에서도 보듯이, 이는 곧 필사본으로 제 16권인「방경각외전」까지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고반당비장(考槃堂秘藏)」,「엄화계수일(?畵溪蒐逸)」- 각각 연암의 은거지에 있던 ‘고반당’이란 집과 ‘엄화계’란 시내의 이름을 취한 속집에는 남정철, 신기선의 서와 김유정, 손정현의 발이 있다. 박영철본은 첫머리에 총목록만 있고 서와 발 등은 없다....(전략)연암은 구한말 창강 김택영에 의해 조선시대 최고의 산문작가란 평가를 받았지만 문장이 난해하고 어려워 지금까지 일부 작품을 번역한 선집 몇 종만 출간됐다. 이 중 벽초 홍명희의 아들인 홍기문이 번역해 1960년 북한에서 나온 박지원 작품선집이 최초로 나온 연암선집이다. 연암 시문의 3분의 1가량을 번역한 홍기문 번역본은 지금까지 나온 것 중 번역 분량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얼마 전 나온 ‘나는 껄껄선생이라오’는 바로 이 홍기문의 번역본을 다시 펴낸 것이다.남한에서는 1990년대 이후 이익성의 ‘박지원’, 김혈조의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정민의 ‘비슷한 것은 가짜다’ 등의 선집들이 나왔다. 이들 선집들은 양반전과 광문자전 등의 한문소설과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구경하다, 좌소산인에게 주다 등의 한시처럼 일부 작품만을 한글로 옮겨 연암의 문학세계 전체를 조감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특히 양반전 같이 널리 알려진 한문소설들의 경우 오역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중략)연암의 후손인 박영철이 1932년 활자본으로 출간한 17권 6책짜리 박영철본 연암집을 대본으로 필사본만 7~8종, 활자본 3~4종 등 10여종에 달하는 이본을 철저하게 대조해 완벽한 텍스트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위에서, 연암집의 해제와 이본, 간행시기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 밖에도 더 많은 해제와 이본들이 있지만 뒤에 소개할 논문에 잘 나와 있기에 간략히 제시하였다. 연암집이 가지는 의의와 연구방향에 대해서 알아보고, 연암집 관련 논문을 살펴보기로 하겠다.?연암집이 가지는 종합적인 의의.□ 역사적 의의 - 연암은 그의 대표작《열하일기》를 정조(正祖) 임금이 특별히 거론하고 그 문체의 영향력을 문제 삼았을 정도로 당대 조선의 걸출한 작가였다. 뿐만 아니라 연암은 사후(死後)에도 그의 문학과 사상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고조되어영철본의 목차를 제시,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승계문고본박영철본卷一~ 卷六 煙湘閣選本卷一 煙湘閣選本卷七~ 卷十 孔雀館文稿卷二 煙湘閣選本卷十一 映帶亭雜詠卷三 孔雀館文稿卷十二 映帶亭?墨卷四 映帶亭雜詠卷十三 書事卷五 映帶亭?墨卷十四~卷十五 鍾北小選卷六 別集「書李邦翼事」卷十六 放?閣外傳卷七 別集 鍾北小選卷十七~卷四十 熱河日記卷八 別集 放?閣外傳卷四十一~卷五十五 課農小抄卷九 別集 考槃堂秘藏卷五十六 考槃堂秘藏卷十 別集 ?畵溪蒐逸卷五十七 ?畵溪蒐逸卷十一~十五 別集 熱河日記卷十六~十七 別集 課農小抄「연상각선본」은 박지원이 안의현감 시절에 自選한 것으로 현재 그 원 실물 2책이 남아 있다.「공작관문고」는 박지원이 만든 소집이 원래 있었으나, 박영철본 연암집 목차의 끝에 지계 이재성의 글인데 잘못 섞여 들어가서 넣지 않는다는 編者의 識가 붙여져 있다.「영대정잡영」역시 끝에 붙은 宗侃의 識로 보아 박지원의 시를 모아 박지원이 썼던 ‘영재잡영’이라는 제목을 붙여 편집한 것이다.박종채는 박지원의 일반 문은「연상각선본」과「공작관문고」로 중요작품들은 거의 모였고, 여기 뒤에 시를 첨부함으로써 일단락 지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이 뒤 소집들은 추가 발굴된 단행권이거나 이미 있던 단행권에 새로 발견된 작품을 추가로 첨부하는 형태로 이어졌다.「방경각외전」의 경우, 부친이 젊은 날 한 때의 허작으로 치부했기 때문에 연암집의 맨 끝에 배치하였다.「고반당비장」과「엄화계수일」은 逸文들을 모아 가장 늦게 만들어진 소집이다.『연암집』이 체계적인 작업이 없이 특이하게 小集別로 엮인 것은 박지원 본인에 의해 만년에 만들어진「연상각집」을 존중해서 맨 앞에 위치해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연암이 초년에 썼던 堂號, 小集名을 그대로 박종채가 쓰면서 작품들을 뒤로 추가로 편입하였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혼란을 초래하였다.박지원의 중요 필사본 소집들을 연대순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1)「孔雀館集」미발견본,自序 1769 2)「放?閣外傳」 1760년대 후반 成冊 추정3)「鍾北小選」 필사본 1책, 1771년 겨울 4)「映帶亭?열 시 일제에 혐기되는 불온한 문자는 강제적으로 삭제됨으로 저본과는 차이가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2) 筆寫本① 自然經實本 ; 서유구의 집안에서 필사한 책, 본래 연암의 가장 원사본 57권22책을 베낀 것으로 보이며, 현재 소장된 것은 11책으로 落帙本이다. 박영철본을 간행하면서 붙인 것으로 보이는 頭註가 있어 오자를 바로잡고 있다.② 延世大本 ; 현재 시문 부분만 있으며, 7책이다. 연대본은 뒤에 2책인 ?考盤堂秘藏?과 ??畵溪蒐逸?이 낙질되고 없다. 이 문집은 홍길주, 홍석주가 초고본을 필사한 것이 외손인 한필교(청주 한씨)로 이어졌고, 후손인 한상억씨가 기증한 것이다. 한편, 자연경실본, 영남대본, 승계본이 박규수 이후에 필사된 것임에 비해 연대본은 그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보여지는데, 연세대본에는 頭註가 없으며, 또 다른 3본이 보충하여 넣었던 자리를 공란으로 둔 것으로 보아 다른 본들이 보충되기 전의 원사본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③ 勝溪本 ; 승계는 任昌宰라는 분의 雅號이며, 창강의 중편연암집이 간행된 1916년 이후에 필사된 것이다. 이는 여러 사람의 전문 필사자가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며, 金承烈은 창강의 燕巖集(續)과 重編燕巖集을 편찬키 위해 저본으로 삼았던 책이나 그와 동일계통의 창강이 편찬한 선집을 참고하여 교정,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본과 대조해 볼 때, 오자 탈자가 가장 많은 문제본으로 여겨진다.④ 嶺南大本; 시문만으로 된 것이며 현재 제2책(권3,4)이 낙질되고 8책이 소장되어 있다. 필사자, 기증자, 필사동기, 필사의 저본 등을 살펴볼 아무런 단서가 없다. 다만, 東濱金庠基文庫에 열하일기 필사본12책의 필사체가 흡사하여 이와 관계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박영철본 및 자연경실본과 일치하는 바, 저본에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며 이 두 본에 비해서도 오자나 탈자가 없는 善本이다. 또한 頭註에 다른 판본도 더러 소개하고 있어 필사 과정에서 여러 필사본을 대조한 치밀함을 보인다.⑤ 全州大本; 55권10책으로 된.
    인문/어학| 2009.08.01| 8페이지| 2,500원| 조회(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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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農巖 金昌協의 문학론
    農巖 金昌協의 문학론- 목차 -Ⅰ. 서론Ⅱ. 본론1. 시(1) 농암의 시 세계(2) 농암의 시 창작방법론2. 산문Ⅲ. 결론Ⅰ. 서론穆陵盛世라 일컬어졌던 宣祖代를 지나 農巖이 살았던 17세기 후반의 문단의 사정을 살펴보면, 麗末에 수입된 성리학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작가들이 語錄體나 註疏體가 담긴 글을 썼으며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난 작가들도 명대의 의고문파를 답습하여 의고문에 치중했다. 이러한 문풍에 싫증을 느낀 농암은 先秦兩漢의 古文體裁와 唐宋古文家들의 창작정신을 전범으로 삼아 시대에 맞는 글을 쓰고자 했다. 시에 있어서는 당시풍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농암도 기본적으로 당시를 배워야 한다는 점에는 수긍하였다. 하지만 당시를 배우느냐 송시를 배우느냐 라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정이 담긴 시를 창작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인식에 새로이 도달한다. 이는 그 동안 끊임없이 전개된 당시와 송시의 학습을 놓고 벌어진 논쟁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논의라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중국 당송시의 권위적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조선의 한시가 나름대로 개성적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 주었다. 결국 도 위주의 문학관이 만연한 사회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나 작가의 개성을 중시하고 옛 사람의 법도를 따르는 것을 배격했으며, 진솔한 감정을 다루려고 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문학사에 있어서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본고에서는 농암의 문학론에 대해 살펴보고 그 문학사적 위치를 고찰해보고자 한다.Ⅱ. 본론1. 시(1) 농암의 시 세계농암은 시에서 自然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시는 性情의 드러남이요, 天機의 움직임이다. 당나라 사람들의 시는 이에 터득함이 있었기 때문에 初?盛?中?晩唐을 논할 것 없이 대개 모두 自然에 가까웠다. 지금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로지 聲色을 摸象하고 氣格에 매달려 고인을 추종한다면 그 聲音과 面貌는 비록 흡사할지라도 神情興會는 모두 서로 같지 않을 것이다.위의 인용문을 통해 우선, 시가 ‘성정’의 드러남이며 ‘천기’의 움직임아니면 宋詩일변도로 흐른 그 당시 문단의 풍조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자연은 경물로서의 본래 그것인 동시에 원리로서 성정과 천기를 최대한 발현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것으로 변화를 중시한다. 어느 한 시대나 한 시인을 전범으로 정해놓고 그것과 애써 같아지려고 하는 의고 자체는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 시작태도이다. 이러한 시작태도는 動的이라기보다는 靜的이며 生보다는 作의 논리가 앞선 결과 다양성보다는 획일화되기 쉽다.시에서의 획일화를 농암은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其人’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서 기인이라 “宣祖이전의 시를 읽어보면 오히려 그 나름의 시인은 볼 수 있지만, 宣祖이후의 시를 읽어보면 그 나름의 시인은 거의 볼 수 없다”에서의 ‘그 나름의 시인’을 말한다. 이와 같은 其人의 존재 여부에 따라 詩道에 있어서 盛衰를 구분하고 있다. 宣祖대 이후로는 시법이 한결같고 音調가 비슷하여 天質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은반면 선조이전에는 天質로 自得의 경지에 오른 시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농암이 읍취헌을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한 이유도 바로 읍취헌은 천부적 재주가 뛰어나 그의 시 대부분이 자득의 경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그 뿐만 아니라 농암은 “시는 마땅히 唐을 배워야 하지만 또한 唐詩와 반드시 같을 필요는 없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唐人은 唐人이며 今人은 今人일 뿐, 서로 수천 년이나 떨어져 있는데, 聲音과 氣調가 하나라도 같지 않음이 없도록 하고자 한다면 이런 이치는 반드시 없는 법이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마땅히 唐人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唐詩의 자연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唐人의 자연일 뿐 今人의 자연은 아니다. ‘억지가 아닌 天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今人自今人이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아울러 자연은 天然 ? 天眞등 眞의 세계와 닿아있다.나는 ‘시라는 것은 性情의 物이라 오직 天機에 깊은 자만이 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로 악착스럽고 엉뚱한 사람이 한갓 聲病? ? 格律에 자질구레하게 얽매여 속까지 들추어 아로새들 시단을 白嶽詩壇이라 하고 그 움직임을 眞詩運動이라고 한다. 이 움직임의 중심인물이 農巖 金昌協과 그의 아우 三淵 金昌翕이다. 이들은 주변의 자연경물과 같은 대상에 눈을 돌리면서 계획된 의도나 꾸밈보다는 物 그 자체의 속성을 觀하는데 커다란 의미를 두고 그 연장선상에서 시를 性情之發이요 天機之動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런 점을 염두하며 농암의 시 창작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첫째 방법으로 情景交融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면, 천지 사이에 있는 진실로 순한 기운과 조화로운 소리는 景이고, 사람의 마음은 情이며, 서로 유통하는 것은 바로 交融이다.시가의 묘함은 산수와 더불어 서로 통한다. 무릇 맑고 멀고 높고 무성하며 기이하고 아름답고 그윽하고 장엄하니, 모양에 변화가 많고 경계는 다하기 어려워 바라봄에 神이 솟구치고 직면함에 마음이 융화된다. 이것이 山水의 승경이며, 詩歌 또한 그러하다. 때문에 둘이 서로 만나게 되면 精氣가 서로 흐르고 景趣가 어우러져 發하게 되는데, 이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농암에게 있어서 이러한 빼어난 산수는 시를 짓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시가의 묘함은 산수와 더불어 서로 통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농암은 기본적으로 훌륭한 시가 나오기 위해서는 常境이 아닌 勝境에 처할 것을 주장하였다. 승경에 처하게 되면 精氣가 서로 흐르고 景趣가 어우러져 절로 詩情이 發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좋은 시가 나오기 때문이다. 곧, 빼어난 山水는 直面하기만 해도 마음이 융화되고 神이 솟구치기 때문에 그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만 해도 저절로 좋은 시가 나올 수 있다는 논리이다. 또 景物로서의 대자연이 매우 그윽하며 아득한 풍취가 있는 것은 경물 그 자체가 갖는 기운 곧 物氣라고 하였는데, 이 景物로서의 대자연의 조화로운 기운이 人之性情에 그대로 흘러들어 會通하는 그 무엇을 농암은 詩情이라고 하였다. 그는 곧 한 편의 좋은 시가 나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좋은 경관을 만나야 하고, 또 시를 짓고자 하는 욕구가 고 하였는데, ‘寫景取象’ 혹은 ‘寫物取象’ 등이 바로 그것이다. ‘寫景取象’은 간단히 말하면 景象이며, ‘寫物取象’은 物象인데 의미와 쓰임에 있어 커다란 차이는 없다. 그런데 이 景象과 物象이 중요한 것은 景과 物을 묘사하면서 각각 象을 취하되 단순히 그 象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象을 취해 意를 표달함으로까지 나아간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象을 이루다’라는 ‘成象’은 소재와 주제 차원에서 단순히 ‘象을 구상한다’는 의미가 있는 동시에 ‘寫景取象’에서 ‘寫物取象’로 나아가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하며, 나아가 마지막 최고의 실현 단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成象’은 약간의 의미차가 있긴 하지만 形象化의 또 다른 표현이며, 이러한 成象은 그저 막연히 象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저에는 반드시 山水 景物이 있다. 그 산수 경물에 직면하여 詩情이 動한 가운데 情과 景이 교융된 속에서 象이 이루어져야만 진실성과 참신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농암이 인식한 올바른 시 창작 방법이다.셋째 방법은 入律이다. 律로 들어간다는 것은 가장 간단하게 말한다면 成象과 마찬가지로 ‘시를 짓는다’이다. 그러나 成象이 아닌 入律, 作詩가 아닌 入律로 표현한 것은 산문과는 다른 音韻美가 구현된 吟詩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律은 기본적으로 자연물로부터 나온 것인데, 그것은 대개 和聲 곧 음운의 和諧를 추구하며, 서로 같거나 비슷한 음의 중복보다는 유동적인 변화를 중시한다. 어찌 보면 ‘成象而入律’이란 막연한 것은 확연하게 해주고, 무질서적인 것을 질서화 시키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成象이 형태의 대소와 무게 질감 등을 현현해내는 것이라면, 入律은 그런 것들을 비례 배열하여 배치하는 일종의 질서화작업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자칫 경직된 시가 나올 수 있으므로 농암은 이 점을 매우 경계하였다.나는 ‘시라는 것은 性情의 物이라 오직 天機에 깊은 자만이 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로 악착스럽고 엉뚱한 사람이 한갓 聲病? ? 格律에 자질구레하게 얽매여 속까지이다.?州는 고인들의 提??錯綜의 묘법을 알지 못하고 다만 句字를 모의하여 흉내 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碑誌敍事를 지을 때 巨細와 輕重을 따지지 못하여 모두 써서 실었으므로 번잡하고 자질구레하다. …… 그가 스스로 風神이나 景色을 그렸다고 여기는 것도 사마천과 반고의 字句를 이용한 데 불과하여 꾸미고 갖다 맞추었을 따름이다.농암은 明代의 의고문파를 비판하면서 그들이 古人들을 본받으려 했으나 창작정신과 작문기법을 헤아리지 못하고 字句를 모방하는 정도였으므로 보잘 것 없다고 하였다. 진정한 古文은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따라서 농암은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당송고문가들을 높이 평가하였고, 韓愈가 수백 편의 글을 지었지만 襲用한 흔적은 한 마디도 볼 수 없다고 하며 작가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강조하였다.나는 三代 이하의 정치로는 漢나라보다 나은 나라가 없다고 말했는데 문장 또한 그러하다. 이는 아마 한나라가 고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서 풍속이 오히려 순박하고 그 사람들도 모두 質直하고 渾厚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秦火를 입은 나머지 고문이 모두 三代 文藝의 유산에서 나와 가끔 일컬을 만한 것이 있다. 지금 이 문집을 읽어보니 賈誼, 董仲舒, 劉向같은 몇몇 군자들은 그 말이 모두 經術을 근본으로 삼아 奧雅하고 雄深하며 彬彬하게 바탕에 그 문채가 있다. 그 외의 事情을 가리킨 것과 利害를 논한 것도 精?하고 工篤하여 결코 헛된 말을 하지 않았으니 그 문장을 보면 그 정치를 알 수 있다.농암은 성현의 도를 담은 문장을 정통 고문으로 인식했고 실제 작품 창작에 있어서도 실천했다. 즉, 문장에 있어서 道學은 근본이고 詞章은 말단으로 여겼으며 性情의 진실을 담아야 시대를 반영한 글을 지을 수 있다고 보았다. 글은 시대의 현실에 맞아야 하는데, 따라서 고인의 글을 본받더라도 시대적 차이를 인식해야 하며 겉만 흉내 내서는 속에 있는 정신을 찾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비지와 사전은 그 문체가 대략 같은데 사전은 오히려 該贍함을 .
    인문/어학| 2007.11.23| 6페이지| 2,000원| 조회(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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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당시인의 시세계
    三唐詩人의 詩世界< 개 요 >Ⅰ. 서론Ⅱ. 본론1. 唐詩風 유행의 배경2. 唐詩風의 특징3. 三唐詩人의 詩世界Ⅲ. 결론< 참고문헌 >Ⅰ. 서론16세기 후반의 조선은 개국 이래 다져온 성리학이 200여년의 치세를 맞아 사대부 사회의 제도와 문화가 전성을 누린 시대였다. 정치적으로 사림이 승리하는 등 외형적으로는 이상적인 중앙 집권제가 실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안으로는 심각한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곧 당쟁과 가렴주구 등으로 인해 농촌의 피폐 등 제반 봉건사회의 모순은 급기야 외세의 내침과 민생의 침탈을 가져오기에 이르렀다.이에 사림들은 주자학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고, 유가적 규범의 틀에서 벗어나 경험론적 인성에 대한 인식과 추구가 대두되었다. 송대의 사변적이고 主理的인 시풍보다는 참신한 主情的 唐詩風 문학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에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三唐詩人으로 불리는 백광훈, 최경창, 이달이다. 그들은 사장파나 사림파처럼 권위와 규범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체제 밖의 의식적인 반발이나 궤변적 초탈을 가하기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체득한 진솔한 경험, 인간적인 정감을 노래하였다. 문학을 도를 싣는 하나의 그릇이나 성정을 도야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통해 자유롭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였다.본고에서는 당시풍이 유행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고, 三唐詩人의 시 세계를 통해 당시의 문학관과 문학사적 의의를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唐詩風 유행의 배경모든 변화에 있어서 그 배경은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文風의 변화 역시 정치적인 측면이라든지 대내외적인 시대적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宋風에서 唐風으로 유행하게 된 배경을 크게 내적인 측면과, 외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16세기에 수입된 명의 복고주의는 唐詩風으로 전환에 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여 확고한 문풍을 형성하게 했다. 정치적으로 새롭게 쇄신하는 분위기 속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사림들이 주창하는 이상적인 학문의 세계로 돌아가자는 는 자연스럽게 唐風이 제기되었던 것이다.다음으로, 내적인 요인을 살펴보기전에 우선 唐風을 선도한 三唐詩人은 모두 朴淳의 문생들이라는 사실을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삼당시인의 스승인 박순은, 그들의 내재적 가치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物象을 物象대로 보는 주기론적 세계관을 갖추었다. 이러한 사유관은 唐詩風 한시의 창작에 적합하였고, 그 영향은 삼당시인의 사유관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그들이 唐詩風이라는 시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추론된다. 또한 학당의 문학론이 정계진출로 인해 기존의 문단을 비판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던 사림의 문학적 취향과 요구에 부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과도한 用事의 사용과 모방이 강조되면서 형식성에 경도되어 이른바 江西詩派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하였고, 정감에 근거하는 시의 본령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각성으로 그들은 내적 정감을 긴밀하게 단련하되 함축적으로 형상화 하여 조탁의 흔적이 없는 자연스런 시를 목표로 하였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을 바탕으로 宋風에서 唐風으로 점차 유행하게 되었던 것이다.2. 唐詩風의 특징唐詩와 宋詩라는 말은 그 당시에 유행한 시대적 개념임에 비해 唐詩風과 宋詩風은 시대적 개념이 아니라 시의 체재나 창작방법 또는 한시대의 문학적 유행풍조인 文風을 일컫는 개념이다. 중국의 원, 명, 청대의 시인이나 우리나라의 고려, 조선조의 시인들에게 唐詩와 宋詩는 각기 경향을 달리하는 두 가지 전범인 동시에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인식되어 學唐, 學宋 또는 唐風, 宋風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 唐詩의 경향을 따를 것이냐 宋詩의 경향을 따를 것이냐 하는 문제는 한 시인의 시풍을 결정할 뿐 아니라 한시대의 문풍을 좌우하는 핵심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흔히 先景後情이라 일컬어지듯이 景物의 묘사와 정감의 표출에 의하여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 唐詩風의 이상이자 목표였다. 宋詩처럼 경물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묘사된 景物에 시인의 정감을 투영하고 이를 통하여수법이 최고의 비법이었다. 평범한 표현속에 깊은 흥취와 여운을 함축시키기 위해 述語나 虛辭의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때로는 명사나 명사구만으로 한연의 시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하여 宋詩風은 대명사, 부사, 어조사 같은 산문적 어휘나 구어적 표현을 바탕으로 한 일상어가 많이 사용되어 唐詩風이 추구하는 우아함이나 간결함과는 처음부터 길을 달리한다. 唐詩風의 장점인 암시, 비유, 함축이 배제되고 그 대신 直敍法으로 정치의 得失, 생활속의 애환, 우국과 애민의 고민, 사물이나 예술품에서 얻은 느낌 등을 노래하는 수법이 宋詩風의 기본적인 방법론이었다.唐詩는 평범한 가운데 깊은 함축미를 요구하므로 후대의 시인들에게는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피안의 세계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보니 唐詩風을 추구하나 시는 唐詩와 비슷한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하여 唐詩의 시상, 표현, 제재를 모방하거나 摸擬詩를 양산하게 된다. 따라서 唐詩風의 시는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모두 개성이 없고 제재의 폭이 좁다는 공통점을 지니게 되는 바 조선조 唐詩風을 대표하는 三唐詩人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3. 三唐詩人의 詩世界(1) 孤竹 崔慶昌최경창의 자는 嘉運이고, 호는 孤竹이다. 그는 선조 1년(1568)에 청신한 기개와 탁월한 능력을 가진 출중한 인물로 평가 되었으나 당시 재상이었던 이산해와 요직에 있었던 관리들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짐으로 인해 최경창은 외직으로 물러나게 되었다.그는 당시를 수용하여 시를 지을 때에 복잡한 수사와 어려운 전고의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신의 정서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최경창 한시의 성격은 影描的인 표현기법과 興趣 위주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 당풍시를 바탕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먼저 라는 시다.古郡無城郭 옛 고을에 성곽은 하나도 없고山齋有樹林 산재에는 나무숲만 무성하다.蕭條人吏散 쓸쓸하게 관리들 흩어져 가니隔水搗寒砧 물 건너 차가운 다듬질 소리만 들리네.이 시는 작가가 고봉군에 있는 사택에서 읊은 시인데, 시 인것 같다. 적막한 靜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개울 건너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다듬질 소리를 부각시켜 유상과 무상의 대비로써 흥취를 돋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蕭條는 '쓸쓸하다'는 뜻이다. 가을 풍경 자체가 쓸쓸함을 나타내어 자기의 감정을 부분적으로 개입시킨 것이다. 특히 최경창의 눈에 비친 쓸쓸한 광경 속으로 은은하게 들려오는 차가운 다듬질 소리는 당시 무상감에 빠져있는 자신의 심상을 잘 살려준 것이라 하겠다. 寒砧는 겨울 옷을 다듬질하는 소리인데 청각적 이미지를 나타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 이라는 자신의 정서가 투영된 글자를 통해서 배경으로 제시된 분위기와 자신의 정서를 하나로 통합하고 있다. 시가 화려하고 곱지는 않지만 풍경 속에 자신의 정감을 함축하는 방식으로 풍경이 주는 분위기 속에서 작가의 인격을 느낄 수 있다.(2) 玉峯 白光勳백광훈의 자는 창경(彰卿)이고, 호는 옥봉(玉峯)이다. 그는 최경창과 함께 李後白에게 수학하였는데 李後白은 호남에서 唐詩風을 최초로 선도한 인물이다. 아마도 후에 그들이 삼당시인이 되어 당시풍을 주도하게 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그가 젊은 나이에 벼슬을 포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봉이라는 벼슬(일종의 명예직)에 나아간 것은 그의 경제적 빈곤 때문이었고, 전원으로 돌아가 은거하고자 했지만 이 또한 경제적인 요인으로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지어진 것이므로 그의 시에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절망감과 전원에 대한 꿈이 담겨 있을 것이다.붕당이 동서로 갈라지기 시작한 당시에 개인적 능력보다는 당파적 관계가 더욱 중요시 되어 문학적 능력과는 어울리지 않게 관직으로 우뚝 서지 못한 자신을 절실하게 체험함으로써 거듭 田園에 돌아가고자 했고, 실제로 은거할 곳을 물색하기도 했다고 한다.아래는 그러한 절실함을 토로한 이라는 시이다.歸心一夜建溪南 가고 싶은 마음 하룻밤에 건계 남쪽에 있어舊疾逢春更不堪 고질병이 봄을 만나니 다시 견디기 힘겨워라偶見山僧話新夢 우연히 스님 만나 새로운 꿈 이야기했으니野梅 암자에 이르렀네작가의 현재와 꿈을 대비시켜서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歸心, 즉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다. 새로운 꿈과 매화향기, 山僧 등의 시어를 뛰어난 시적능력으로 맑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스님을 만나 꿈 얘기를 하다가 어느 덧 자신의 마음은 이미 들매화 향기가 가득 한 서쪽 암자에 이르렀다고 하는 부분에서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의 절실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관직생활과 현실에서 오는 불만들이 그리움을 자극시켜 전원, 즉 고향을 현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편안한 공간으로 바라보게 한 것이다.(3) 蓀谷 李達이달의 字는 益之, 호는 蓀谷, 東里, 西潭 등이며 原州 蓀谷에 와서 살았으므로 이로 호를 삼았다. 그는 서자로 태어난 신분적 제약 때문에 평생을 유랑하면서 지냈는데 그때 맺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의 이력이며 시의 배경이다. 이달의 시는 시상이 맑으면서도 화려하고 고운 인상을 주며, 전반적으로 작자 자신의 失意와 恨을 그 내면에 담아 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승맞거나 어둡지 않고 오히려 화사하고 청명한 색조를 강하게 띠고 있다. 이달의 시가 널리 회자되고 쟁쟁한 평가를 받은 것은 당시를 모범적으로 모의하여 그 기법과 시적 성취가 뛰어난 작품이기 때문이다.그는 간결한 시어로 오히려 높고 먼 의경을 꾸며 만들고 시와 畵의 상호 보완을 도모하였다. 그러면서도 그 의경이 비교적 평상적이며 실질적인 점과 구상이 비교적 엄정하며 대체적으로 오언의 절구, 율시에 우수한 작품이 많다. 또 시의 분위기는 온화하면서도 흥취는 거침없이 뛰어나고, 시의 발상은 화려하면서도 시어는 담박하다. 이달의 시는 정감이 절절하게 풀려나오는 시로 다양하고 거침없는 소리로 울린다. 그는 중국 시인들이 그들의 언어인 한자를 새로운 문장 논리의 틀로 조직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하여 놀랍게도 잘 살려썼다고 할 수 있다. 한시를 表象체계로 활용하여 표현할 수 있는 최상 상태로 극대화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의의 한계를 벗어나 다.
    인문/어학| 2007.11.23| 5페이지| 7,000원| 조회(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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