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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정지용의 시세계
    1. 초기시-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시정지용의 초기시는 이미지즘의 시로 평가할 수 있다. 정지용의 이미지즘 지향성은 그의 일본유학시절에서 시작되었으며, 영?미 이미지즘을 그 원류로 한다. 영?미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은 그의 초기시는 감정을 절제하고 사물을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해서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정지용 초기시는 그 이미지의 구조적 양상에 있어서 취의(趣意)와 매제가 모두 사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정지용 초기시는 ‘사물시’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렇게 사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직유법과 더불어 시각적 이미지를 특히 즐겨 사용하고 있다. 또한 초기시의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이 현실을 인식한 고독감의 세계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의 초기시에는 20년대 초반의 젊은 문학도가 객지에서 학창 생활을 하며 갖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국 풍물에 대한 동경이 나타나고 있다.바다 9바다는 뿔뿔이달아나려고 했다.푸른 도마뱀떼같이재재발랐다.꼬리가 이루잡히지 않았다.흰 발톱에 찢긴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가까스로 몰아다 붙이고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었다이 앨쓴 해도(海圖)에손을 씻고 떼었다.찰찰 넘치도록돌돌 구르도록회동그라니 받쳐 들었다!지구는 연잎인 양 오므라들고……펴고…… 연작시 10여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정지용의 초기시 특징의 하나인 선명한 이미지 제시를 위한 시작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지용은 여러 감각적 이미지 중 시각적 이미지를 가장 많이 사용했으며, 또한 그 이미지를 직조해 내기 위해 직유법을 즐겼다. 그리고 직유에 사용된 보조 관념은 동물계의 자연물이 많이 등장한다. 이렇게 그가 직유를 즐기고 동물계 보조 관념을 많이 사용한 까닭은 움직이는 상태, 즉 동적 세계를 형상화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정지해 있지 않고 부단히 움직이는 세계는 외부로 열려진 세계이고 밖으로 확산되는 세계이다. 그렇다면 그가 라는 연작시에 집착했던 이유는 보다 분명해진다. 결국 '바다'는 최남선의 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개화기부앞 단락에서는 바다의 역동적 모습을, 5~8연의 뒷 단락에서는 해안선까지 확대된 시인의 시선을 통해 바다를 총체적으로 관찰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먼저 끊임없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의 모습을 '뿔뿔이 / 달아나려고'로, 파도가 뭍에 부딪쳐 흩어지는 모습을 '푸른 도마뱀 떼'로, '꼬리가 이루 / 잡히지 않을 만큼 빠른 파도의 움직임을 '재재발렀다'로,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泡沫)을 '흰 발톱'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바다를 투시하던 시인의 혜안(慧眼)은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달려왔다가 해변에 이르러 하얗게 부서져 쓰러지는 파도의 기진한 모습에서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를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바다가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는 것으로 생각하는 시인은 마침내 자신의 상상으로 조형한 해도(海圖)를 총체적으로 그려 보여 준다. '찰찰'과 '돌돌'이라는 첩어를 통해 충만하고 경쾌한 바다를 제시하는 한편, 바다에 둘러싸인 지구를 바다가 지구를 떠받들고 있는 것으로, 또한 바다에 둘러싸인 지구가 마치 연잎처럼 오므라들기도 펴지기도 하는 것으로 해도를 그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렇게 하여 바다에 대한 단순한 인식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은 바다와 하나가 된 무아경(無我境)의 세계에서 바다를 응시함으로써 바다에서 '도마뱀'을 찾아내고 '꼬리'와 '흰발톱', 나아가 육지를 떠받들고 있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향수(鄕愁)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아무렇지꿈엔들 잊힐 리야.근래 대중 가요로 만들어져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 작품은 고향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을 주정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고향 충북 옥천을 떠나 낯선 타국(他國)땅에서, 그것도 식민지 망국의 설움을 간직하고 생활하던 젊은 시인은 꿈에도 잊혀지지 않는 고향의 따스한 정경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목이 말랐을 것이다. 그가 노래하는 고향의 정경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한 특정 지역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개천이 지줄대고' '얼룩백이 황소가 금빛 울음을 우는 곳'이며 '짚베개를 돋워 고이시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우리 민족의 고향에 대한 보편적 정서와 부합된다. 그러므로 그의 향수는 그만의 향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된 향수로 확산되게 된다.이 시는 음악의 반복 형식처럼 구성되었는데, 각 연 모두 '― 는(던) 곳'으로 끝맺고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향의 정경을 실감있게 제시하고 있으며, 그 뒤에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독백이 이어짐으로써 간절한 그리움을 반복, 강조하는 단순한 표현 기법을 통하여 감동의 극대화를 이루고 있다. 한편, 홀수 연은 고향의 정겹고 따스한 모습을, 짝수 연은 고향의 아픈 모습을 교묘하게 배합시켜 고향의 밝고 어두운 모습을 번갈아 보여 줌으로써 고향을 아름답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푸근한 흙내음과 간난(艱難)한 삶의 고난이 함께 존재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지줄대는'?'해설피'?'풀섶'?'함초롬'이라는 감각적 우리말 구사와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와 공감각적 이미지, 냉온 감각 등의 수준 높은 이미지 활용은 그의 시를 현대시의 효시로 평가받게 하는 데 충분할 것이다.2.중기시- 종교적인 시정지용은 중기시에서 카톨리시즘을 채용하고 있다. 정지용의 신앙시는 그 동안 정지용 시의 약점으로 비판받아 왔던 사상성 부재를 신앙이라는 사상으로 극복하려 했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문학사적으로 볼 때에 정지용 신앙시는 당시로서는불이 아닌, 정지용의 신앙적 자아에서 피어오르는 내면의 불이다. 정지용은 불의 상승?수직의 이미지에 주목하여 ‘불’을 종교적 환희, 그리고 정신적 고통을 해소시켜 주는 성신(聖神)의 정화된 세계로 상징하고 있다. 중기의 신앙시는 초기의 감각적인 시와 후기의 고전적인 시들의 교량적인 역할을 담당한다.3.후기시-동양적인 정신의 시정지용의 후기시는 초기 시세계의 특징으로 지적되는 감상적 이국정조와 사향의식을 벗어나 성숙된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즉 노장사상?자연친화?은일정신 등으로 사상을 전환하여 동양정신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식민지 치하라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하여 정지용이 느끼게 된 불안감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후기시의 주된 소재는 ‘산’으로, 산으로 형상화된 자연세계에 몰입하여 자연과 동화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는 정지용이 일제말기의 시대현실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보다는 자연 속으로의 은일을 지향함으로써 자신의 불안과 고뇌를 해소하려고 했음을 말해준다. 이것이 정지용의 한계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그가 은일하면서 동양의 고전적인 전통속에서 자신의 시적방법론을 체득하려 노력한 결과 그의 언어 인식은 그의 시를 단순히 복고적인 취향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그의 시가 지니는 현대적 의의가 명백하게 했다. 서구 추수주의적인 시적 유행을 넘어서서 우리의 오랜 시적 전통에 근거한 산수시의 세계를 독자적인 현대어로 개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장수산(長壽山) 1벌목정정(伐木丁丁)이랬거니 아람드리 큰 솔이 베어짐직도 하이 골이 울어 메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직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멧새도 울지 않아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종이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다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줍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어하는 시인의 정신적 의지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의 정신적 위기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나타나 있다.이 작품은 의식의 연속적인 흐름과 긴밀성을 표출하기 위한 시적 배려의 일환으로 문장의 종결 부호가 사용되지 않고 종결 어미에 독특한 변형을 가한 표현 특징을 갖고 있다. 화자는 먼저 내부적 반향을 일으키는 음악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 '하이'로 끝맺고 있으며, 그 사이에 '쩌르렁'이라는 의성어를 배치함으로써 '울림'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적 배려는 첫 구절 '벌목정정'이라는 한문구(漢文句)를 살리기 위한 것이며, 이런 청각적 영상은 결국 '장수산'이란 공간을 내적 울림으로 형상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앞의 두 구절은 실제적으로 벌목하는 소리를 화자가 듣는 것이 아니라, 장수산의 큰 소나무숲에서 느끼는 고요를 뒤바꿔 표현한 것이다. 셋째 구절에서는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고요를 보여 준다. 다람쥐나 묏새같이 조그만 동물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장수산의 고요는 '뼈를 저리우는' 촉각적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으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흰'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눈과 밤이 일체화되어 장수산을 이룬 그 빈 공간에 이제 '보름달'이 떠오른다. 표면적으로는 달이 내려와 계곡을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화자가 달빛만 그윽한 고요 속의 계곡을 걷는 모습으로 화자의 감정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어 시인의 엄격한 언어적 절제력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웃절'에 거주하는 스님이 남긴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줍고 싶어하는 모습에서, 장수산을 청각으로 묘사하던 지금까지의 방법을 후각으로 전환함으로써 자연을 인간화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화자가 고요뿐인 장수산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늙은 중이 남기고 간 냄새와 같은 무념 무상(無念無想)의 탈속적 세계이지만, 그는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는 시름을 갖는 인간적인 내면을 보여 준다. 그러나 장수산의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 속에 있는 화자는 장수산이 고요하면 고요할수록이다.
    인문/어학| 2005.11.16| 7페이지| 1,500원| 조회(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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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학]처용가의 주술성
    처용가에 담긴 주술적 의미 파악하기1. 처용가의 배경 설화제 49대 헌강대왕 대에는 서울에서 동해변까지 집들이 맞닿았으며 담장이 서로 이어졌고 초가는 한 채도 없었다. 길가에 음악이 끊이지 않았고 풍우가 사철 순조로왔다. 이에 대왕이 개운포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물가에서 쉬었는데 홀연 구름과 안개가 캄캄하게 덮여 길을 잃게 되었다. 이상히 여겨 좌우 사람들에게 물으니 점성관이 "이것은 동해의 용이 변괴를 일으키는 것이므로 좋은 일을 행하여 풀어야 합니다" 하였다. 유사에게 칙령을 내려 "용을 위하여 이 근처에 절을 짓도록 하라." 하였다. 왕의 명령이 내리자마자 안개가 흩어져 이름을 개운포라 했다. 동해 용이 기뻐하여 아들 일곱 명을 데리고 임금 앞에 나타나서 대왕의 덕을 칭송하며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와 춤을 추었다. 아들 하나를 딸려서 서울로 보내어 왕의 정사를 돕도록 하였는데 그의 이름은 처용이었다. 왕은 미모의 여자로 아내를 삼아 주고 그의 뜻을 사로잡기 위하여 급간의 벼슬을 주었다. 그의 아내는 너무나 아름다워 역신이 탐을 내고 사람으로 변신하여 밤에 몰래 그 집으로 들어가 같이 잤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서 노래(처용가)를 부르고 춤을 추며 물러났다.이 때 역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처용 앞에 꿇어 엎드려 말하기를 "내가 공의 아내를 흠모하여 죄를 범했습니다. 그런데도 공은 노하지 않으니 그 미덕에 감복했습니다. 지금 이후로는 공의 얼굴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집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맹세하겠습니다." 하였다. 이 말에 따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문에 붙여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경사스런 일을 맞는다 하였다. 왕이 궁중에 돌아와 영취산 동쪽에 좋은 땅을 가려 절을 짓고 망해사 혹은 신방사라 했다. 이는 용을 위해서 지은 것이다. [삼국유사 권2 기이. 처용랑 망해사]2. 처용가의 원문과 현대문 해석東 京 明 期 月 良夜 入 伊 遊 行 如 可入 良 沙 寢 矣 見 昆脚 烏 伊 四 是 良 羅 ⇒ 역신의 침범二 ? 隱 吾 下 於 叱 古二 ? 隱 誰 支 下 焉 古本 矣 吾 下 是 如 馬 於 隱奪 叱 良 乙 何 如 爲 理 古 ⇒ 처용의 관용?? ?긔 ?래 / 밤드리 노니다가 / 드러? 자리 보곤 / 가?리 네히어라둘흔 내해엇고 / 둘흔 뉘해언고 / 본? 내해다마? / 아?? 엇디?릿고東京 ?기 ?라라 / 밤 드리 노니다가 / 드러? 자? 보곤 / 가로리 네히러라.두?른 내해엇고 / 두?른 누기핸고. / 돈? 내해다마?? / 아?? 엇디?릿고.서울 밝은 달 아래 / 밤 늦도록 노닐다가 / 들어 와 자리 보니 / 가랑이가 넷이어라둘은 내 것인데 / 둘은 뉘 것인고 / 본디 내 것이었다마는 / 빼앗아 간 것을 어찌하리오??? - 서울. 여기서는 경주??긔 ?래 - 밝은 달(밤)에?밤 드리 - 밤 들게, 밤이 늦도록?노니다가 - 노닐다가, 놀며 지내다가?드러? - 들어와?가?리 - 다리가, 가랑이가 가?[脚] + 이(주격조사)?네히어라 - 넷이로구나.?아?? - 빼앗겼음을, 빼앗긴 것을.?내해엇고 - 내 것이어니와, 내 아내의 것이어니와. ‘내 것’이라는 직접소유로 표현하여 강조함.?엇디?릿고 - 어찌 할 수 있으리오??드러? 자리~가?리 네히어라 - 역신이 아내를 범하고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아?? 엇디?릿고 - 이미 다른 사람의 여인이 되어 버린 상황에 대한 체념으로 보기도 하며, 자신의 아내까지도 대상에게 바치는 관용적 표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8구체 향가는 대체로 2단락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노래는 내용상 세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단락인 1-4행은 노래가 불려지는 현장과 상황을 보여 주고 있으며, 5,6행의 둘째 단락은 '처용가'가 주사로서의 기능을 가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이 노래의 절정은 7행과 8행이다. 이는 체념적인 주사(呪詞)로 볼 수 있으나 오히려 처용의 시황(초극적인 이미지)을 부각시킨 것으로 후대로 오면서 벽사(?邪)의 위력으로 발전한 것을 이해할 만하다. 이를 무가의 일종으로 보아 악신을 보내는 ‘뒷전풀이’로 이해하지 않고는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무속에서는 악신이라도 즐겁게 하여 보내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이다.3. 처용가에 대한 해석이 노래의 내용에 대해서 민속학적 관점에서 처용을 무속과 관련지어 보려는 견해와 정치사의 관점에서 처용을 지방 호족(豪族)의 아들로 보려는 견해, 신라 시대에는 멀리 서역(西域) 지방과도 교역이 있었다고 보아 처용을 이슬람 상인으로 보려는 견해 등이 있다. 그러나 민족학적 관점에서 처용을 무속과 관련지어 보려는 견해가 우수하다. 그 까닭은 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자고 있는 것을 보고도 노래를 부르며 춤추며 물러났다고 하는 것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무격(巫覡) 사회에만 있는 풍습이기 때문이다.우리 무속에서는 병이 든 것은 역신(疫神, 전염병 귀신)이 덮어 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처용의 처가 역신과 교접한 것은 실제로는 처용의 처가 병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병든 아내의 병을 치료하는 직능을 수행하는 처용은 바로 의술사로서의 무당인 것이다. 이런 처용의 성격이 처용 설화 끝에 보이는 문신(門神)으로 정착될 수 있는 동력인 것이다.여기에서 8구의 해석도 가능하다. 우리 무속에서 병을 치료하는 굿의 형태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주문이나 독경으로서 병마를 물리치는 것이고, 둘째는 삼지창과 같은 무기로 겁을 주어 역신을 퇴치하는 것이고, 셋째는 천연두 퇴치굿인 '마마별상거리'에서처럼 곱게 낫게 해달라고 정성들여 비는 것이다. 그런데 '역신이 감복했다'는 대목을 염두에 두면 8구는 세 번째처럼 상심과 체념으로 보아야 옳다. 이 상심과 체념은 역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것의 다른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용가의 8구는 체념적 주사로 처용의 초극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이다.[참고] 처용가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불교 신앙적 관점은 처용을 호국 호법(護國護法)의 용으로 보고, 그의 왕정 보좌와 가무(歌舞)는 중생 교화의 임무 수행이자 불교적 교화가무(敎化歌舞)의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역사 사실적 관점으로 이는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시도된 것이다. 신라 말기의 역사적 현실과 처용 설화 전체 문맥을 결부시켜 해석하였다. 처용은 중앙의 왕권에 순복하지 않는 지방 호족의 자제이고, 헌강왕의 개운포 출타는 지방 호족의 무마책이고, 동해 용왕의 조화는 지방 호족의 중앙 왕권에 대한 도전의 표시이며, 용의 아들 처용의 입경(入京)과 왕정 보좌는 고려의 기인 제도(其人制度)와 같이 호족의 자제를 인질로 잡은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처용의 아내를 범한 역신을 중앙 귀족의 자제의 타락한 모습으로 파악하고, 이에 따라 [처용가]는 지방 호족이 중앙 귀족에게 느꼈던 갈등의 표현으로 보았다.한편, 이와는 달리, 신라 시대 국제 교역상 중심지로서의 울산만을 중시하고, 쳐용을 울산만에 들어 온 이슬람 상인 중의 한 사람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4. 처용가에 나타난 주술성4.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처용가]는 무가적인 해석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무가라면 그 바탕에 주술성이 있어야 한다. 처용 설화에 나타난 주술성을 보자.이 설화 혹은 노래는 외관상 명령이나 위협적 요소가 없어 주술 원리를 지니지 않은 듯이 보이며 단순히 현재하고 있는 사실만을 기술한 듯이 보인다. 물론 8구의 해석을 분노로 하여 무당으로서의 신분과 능력의 과시 및 역신에 대한 위협으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해석을 체념으로 하더라도 세 가지 측면에서 주술의 원리를 지니고 있다.첫째, 원인의 기술이나 그 지적이다. 역신에 범해진 것은 역질에 든 것을 의미한다. 역질은 역신에게 범해진 결과이며, 역신이 범한 것은 역질의 원인이다. 즉, 그 원인을 지적함으로써 그 지적이 원인에 작용하여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치자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곧, 병은 그 원인에 의하여 고쳐질 수 있다는 주술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둘째, 역질의 원인은 곧 역질의 부분임을 고려할 수 있다. '다리'가 육신의 제유이듯 '다리'를 역신에게 빼앗긴 것은 육신 자체를 역신에게 빼앗긴 것의 제유일 수 있고, 나아가 역신으로 해서 병든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여기에 전염 주술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셋째, [처용가]는 야기되기를 바라는 결과의 반대 상황을 진술하고 있다. 이는 기우제의 역설적 구조처럼 역신이 물러날 경우와는 반대인 역신이 들어 있는 상태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이상에서 보았듯이 [처용가]는 무가의 일종이며 역신을 보내는 '뒷전 풀이'의 성격을 띤다. 실로 우리 무속에서는 악신(惡神)이라도 즐겁게 보내는 것이 통례이다.
    인문/어학| 2005.11.16| 7페이지| 1,500원| 조회(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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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루소의 에밀 평가B괜찮아요
    Ⅰ. 머리말루소의 에밀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교육학적으로 고전에 속하는 저서이다. 교육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조차 루소의 에밀은 때때로 꼭 읽어야 하는 교양도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도 이 책 읽기를 시도하다가 중간에 포기한 기억이 있다. 이번 과제를 위해서 책을 읽으려고 할 때도 나는 망설여야 했다. 이 책을 꼭 읽어야 할까?그러나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발췌해서 읽어 주시는 부분들과 그 글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의미를 듣고는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는 의지와 호기심이 생겼다. 이런 관심이 생긴 이상 지난번과는 달리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책을 들고 읽기를 시작했고 2장까지는 잘 읽어 내려갔다. 내용의 정리로만 알고 있던 부분들을 마치 루소의 육성을 통해 듣는 것 같아서 그냥 내용으로만 들을 때 보다는 더 많은 생각들을 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고백하건데 나는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지는 못했다.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내용으로만 알고 있던 요목들이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기쁨도 상당의 분량의 드러나는 줄거리도 없고, 극적 재미(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었으므로 기대해 봄직도 하다.)도 없는 내용을 독파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책에 대한 ‘애정’이 생긴 이상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가봐야 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부끄럽지만 일종의 ‘편법’을 택했다. 안인희 선생님의 『루소의 교육론 에밀』을 뻐대로 하고 잘 이해가 안가거나 좀더 알고 싶은 내용들은 본래의 텍스트를 다시 찾아보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도 수월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결국은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읽어 내려가는 ‘성취’를 이뤄내었다.에밀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에밀은 상당한 분량의 내용이 숫자로만 구분되어 있을뿐 내용에 대한 요목같은 것들이 전혀 없다. 그러나 안인희 선생님의 책에는 각 장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나타낼만한 작은 제목들의 달려 있어서 한참 읽으면서도 도대체 생각했다고 한다.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부분이 자신의 사회 비판적인 면이나 비교적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측면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면 이 장에서 루소는 교육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생각들을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교육학도로서 생각해야할 것들이 가장 많았던 장이라고 생각된다.아이에게는 유모를 쓰지 말고 어머니 스스로 젖을 먹임으로써, 유아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머니의 육체적, 정신적인 임무를 다 해야 한다. 아기는 본능적인 욕구의 만족을 구하는 순수한 쾌고의 감각의 시기이면 어머니가 젖을 먹일 것을 권장하였고, 교육은 신체적 욕구의 만족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시기의 습관은 자발적인 것으로 습관의 발달과 정서의 훈련이 특징적이다. 양육 방법은 자연질서에 따라야 함을 강조하였다. 만약 어린이가 오류를 범하였을 때 사물 그 자체가 벌을 준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사물의 필연적 질서에 복종하는 것은 인간 질서에 복종하는 것과는 달라 노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물과 사물간의 의존관계는 필연의 질서를 갖는 것이지 도덕성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악으로 이끌림이 없다고 하였다. 그것은 자유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정신을 육성시킨다는 것이다.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한데 사회 생활을 거치면서 타락하였다고 하는 말을 에밀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닌가 한다. 즉, 태어날 때의 인간의 모습과 사회 생활을 경험하고 난 인간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 본래 자유롭고 평등하며 자존심이 강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태어난 인간은, 사회 속에서는 타락하게 된다. 즉, 타인에 의해 지배당하거나 자신이 만들지도 않은 법에 의해 구속당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자연 교육을 통해서 사람의 성품을 전환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장에서 드러나는 자연교육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자연의 교육은 인간의 내부에 천성으로 갖추어진 각 기관과 능력의 자연스러운 내면적인 발달을 의미한다. 인간 본성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성장 발달하는 것이회와 대립된다. 사물에 의한 교육은 아동으로 하여금 생활을 보다 편리하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사물을 선택하고 발견하게 한다 .사물이 독자적으로 아동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아동은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태어날 때는 사물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나지만 그것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태어난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사물에 의한 교육은 지적인 발달은 가져오지만 도덕의 발달은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 사물의 교육에서 교사는 편견과 악덕의 원천인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것이다.인간의 교육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국가의 시민으로서 살아간 다는 점과 관련된다. 한 인간이 사회인으로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 줌으로서 교육은 완성된다. 여기서 교사의 보다 다른 의미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의 관습과 습관은 타락한 것이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에게 사회의 타락된 관습과 습관에 물들지 않으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 과 능력을 획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유아기에서의 루소의 교육관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조기교육의 열풍에 있다. 유난히 교육에서의 선발이나 평가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경쟁에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걷거나 말하기도 서툰 유아기부터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배우게 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고려에 두지 않는다. 어른들의 관점으로 무엇을 가르치고 자신들의 기준으로 잘하는 것이 가장 가치로운 일이다. 루소가 비판한 당시의 교육과 똑같지는 않다고 해도 현재의 우리나라의 교육은 학교교육 뿐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 대한 교육의 일반적인 생각들이 많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제 2 장 아동기제2부에서는 5세부터 12세까지의, 즉, 아동기의 교육을 논하고 있다. "인간도 동물도 아닌 아동이다"라는 전형적인 아동시대로서, 여기에 그의 소극교육, 감각교육, 사물의 교육, 육체 하는 시기이다. 소극교육은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간섭을 피하고 학생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만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인간의 자율성을 신장시키는 가장 적극적 형태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적인 교육"이란 학생들의 본성에 있어서 서로 다른 측면을 충분히 고려한 교육으로, 교육의 기본원리는 자유와 행복사이의 완전한 균형에 있다. 학생들에게 자유를 위해 필요한 힘을 줌으로써 적극적으로 그 원리를 적용할 수도 있고, 자연이란 그것을 순종함으로써만, 말을 듣는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소극적으로 원리를 적용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아동은 직접 도덕수업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사회적 생활로부터 멀리하고 개인 교육에 의해 양육해야 하며 이 시기에는 감각기관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으므로 이때 어린이를 둘러싼 환경은 자연에 접할 수 있는 전원 풍경이어야 하고, 이 자연환경을 유일한 교육의 장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책을 통해서 감각훈련을 하거나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유해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에 의한 사물교육은 곧 자연주의 교육인 것이다. 그는 그 어느 때나 어린이는 그 시기를 충분히 생활해야 하므로 미래의 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희생될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하였다.이 시기의 교육의 대부분 앞 시기인 유아기의 교육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다만 자연교육의 방법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진술이 되어 있고,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시기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자연을 대함에 있어 신체 및 감각의 훈련이 중요하다는 점의 강조이다.제 3 장 소년기12세부터 15세까지의, 즉,소년기의 교육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손재주를 익히게 할 것을 강조하여, 자기의 제자인 에밀에게는 목공을 가르친다. 이 기간은 아동기와 청년기 사이의 과도기로서, 에밀은 모든 일을 제 힘으로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많은 것을 배우지는 않지만 정확하고 명백한 관념들만을 감지하도록 교육받는다. 그가 자기가 배우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하, 연구의 시기인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행위자체가 수업의 대상이므로 "유용성"이나 행함으로써 배운다는 일반적인 원리가 적용되며, 이 시기를 선택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가 그것을 가르쳐 준다는 것을 유의해야 하므로 교육은 자연에 대한 경험과 관찰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과학과 수공에도 배우고 장사도 배워야 한다. 즉 수공업적인 기술을 습득하여 사회생활의 개념을 얻게 해야한다는 것이다.제 4 장 청년기15세부터 20세까지의 "제2의 탄생에 해당하는 청년기이다. 이 시기는 앞서 언급했듯이 루소가 가장 먼저 집필한 부분이고 그 만큼 당시의 상황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적인 성격을 지닌 장이다. 이 시기는 인간 관계와 사회제도에 대한 지식을 배우게 된다. 지적인 교육, 정념 도야의 감정 교육, 도덕적. 종교적 교육이 마찬가지로 경험과 실천을 따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성의 비약적인 발전과 정념이 일어나서 이성에 대한 동경과 성적인 충동을 많이 일의킨다.이 시기는 실제에 있어서 남자아이 교육의 마지막 단계를 이룬다고 하였다. 에밀의 사춘기 시기이며, 교육의 정점을 이루는 단계이다. 종교와 도덕과 사회가 교육의 주된 내용이 되는 때이며, 우선 이성에 대한 정념에 일찍 사로잡히지 않도록, 아이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거나 상상력을 진정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우정, 호의, 연민 등 인간들을 어울려 살 수 있게 하는 정념들을 가꾸어 주도록 하였다.그러나 아이가 이성에 대한 정념에 사로잡히는 때가 되면, 교육자는 그를 이젠 성인 남자로 대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의 사랑의 욕구를 억누르게 하지 말고 친구 같은 안내자 역할을 하여 어떤 여인이 이상적인 반려인지를 이야기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청년기는 종교적, 도덕적 감성의 성숙의 시기이며 감정에 따라 이성을 완성하는 시기이며, 우정과 동정 등의 인간적 감정이 생기며, 성의 의식이 깊어지고 종교에 의하여 영혼의 교육이 완성되는 시기이다.루소는 이시기에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신체적인 변화의 예를하였다.
    교육학| 2005.11.16| 8페이지| 1,000원| 조회(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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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작가론]황진이론
    Ⅰ. 서론이능화 선생은 그의 ) 이능화 , 「조선 해어화사」 , 한국학연구소 , 1977에서 우리나라 역대 명기를 다음 몇 갈래로 나눈 바 있다.유재모이채지명기(有才貌異彩之名妓)능시가서화지명기(能詩歌書畵之名妓)선해담지명기(善諧談之名妓)절의효지기(節義孝智妓)그리고 이러한 갈래 중 황진이를 재모와 시가의 두 조항에 들어 말하였다. 즉, 황진이가 '출중한 재주'와 '경국의 미색'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한시와 시조·노래에도 뛰어남을 나타낸 것이다.이능화 선생 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황진이의 뛰어난 문학성을 들어 우리 나라 여류 문학계의 백미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황진이의 문학작품들을 조사하면서 그녀의 작품들이 '사대부 시조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표현을 갖춤으로써 관습화되어가던 시조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황진이의 시조에 이르러서야 기녀(妓女) 시조가 본격화되는 동시에 시조 문학이 높은 수준에 달했다'는 등의 높은 수준의 칭송을 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이전부터 그녀가 재문을 겸비한 기생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녀의 작품을 대하는 것도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단 몇편 뿐이었다. 이러한 나에게 황진이의 문학성에 대한 논의들은 그녀의 작품세계를 알고 싶다는 깊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과연 그녀의 작품들은 어떠한 면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작품의 우수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고전작가론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그녀의 생애와 삶에 대한 인식을 통해 찾아 보기로 했다. 작품을 살펴보기에 앞서 작가를 살펴보는 작가연구(biography)에 대해 이미 배운바 있기 때문이다. 먼저 기녀의 문학에 대해 살펴봄으로서 기녀 문학이 갖는 특징을 알아보고 황진이의 문학에 적용해 보려 한다. 그다음 황진이의 생애를 살펴보고, 그 생애를 바탕으로 한 황진이의 삶과 정서를 황진이의 문학세계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Ⅱ. 기녀의 문학우리의 고대 문학사를 거슬러 있었다. 이러한 특수한 조건이 그들을 시인으로서 빼어나게 했고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문정희 동국대학교 교수) 문정희, "교수와의 만남", , 2001/3/12는 "기생이라는 비극적인 신분에서 오는 현실의 불행이 시의 생성에 더할 수 없이 절실한 본질적 모티프를 제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녀였기에 한문학을 배울 수 있었고, 한시 문학을 누리며 억울하고 답답한 심경을 문학으로 표현하여 자신의 삶을 승화할 수 있었으니 기생이라는 인간으로서의 비극과 시인의 축복 속에 그녀들의 삶과 예술의 역설이 놓인다는 것이다.이러한 기녀시의 주제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서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남성을 향한 상사 일념의 시와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는 한 서린 주제에서부터 남성의 위세에 당당하게 대응하는 재치와 재능 넘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것이 많다. 그들은 찾아주는 남정네가 없을 때에는 그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기녀들의 삶의 지주는 그들을 찾아주는 양반들이 전부였다. 그 결과 기녀들의 시조에는 임에 대한 사랑의 갈구가 들어 있거나, 떠나간 임에 대한 원망 내지 슬픔이 담겨 있다. 그들의 작품은 즉흥성을 띤 것이 대부분이고 남성에 대한 감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즉 사랑하는 남성에 대한 상사의 노래가 많고 남성의 수작에 화답하는 노래 또한 많다. 그 가운데서도 재기를 발휘하는 시조와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자기 확인을 하는 노래가 있음도 기녀시의 한 특성으로 꼽을 수 있다.) 성기옥, "기녀 시조의 감성 특성과 시조사", , 1999/5/14이러한 기녀 문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 시대 최고의 기녀로 꼽히는 황진이의 문학세계를 살펴보자.Ⅲ.황진이의 생애황진이의 본명은 진(眞)이고, 진이(眞伊) 또는 진랑(眞娘)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녀가 되어서는 자를 명월(明月)이라 하였다. 그녀의 문집이나 연보 등은 전해지는 것이 없으며, 야사나 개인 문집 등 일부 고문헌) 황진이 관련 고문헌은 다음과 같다.황준양(151술이었다. 그녀는 매우 놀라 이상하게 여겼다. 이러한 인연으로 진이가 출생했다.- 진이의 어머니는 진현금으로 병부교 아래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한 소년이 놀린 후 가버렸다. 날이 저물자 다시 찾아와 물을 청하니 현금이 떠서 주었다. 물이 술로 변하여 마침내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그는 이름도 알리지 않고 떠나갔다. 진이를 해산할 때 이상한 향기가 방을 가득 채우니 이는 곧 선녀라. 어찌 황이란 성을 가질 것인가?- 황진이는 중종 때 사람으로 황진사의 서녀이다. 어머니 진현금은 병부교 아래에서 물을 마시고 마음이 통해 진이를 잉태했는데, 해산 때 이상한 향기가 3일 동안 가득 찼었다.- 진이는 황진사의 서녀인데, 진사의 첩은 진현금이다. 진현금은 병부교 아래에서 물을 마시고 마음이 통해 진이를 잉태했는데, 해산 때 이상한 향기가 3일이나 방을 채웠다.- 진랑은 개성에 사는 맹여의 자식인데 성격이 척당하여 남자같았으며, 거문고를 잘 타고 노래도 불렀다.- 진랑은 개성에 사는 맹녀의 자식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황진이의 출생에 관한 부분은 그녀의 비범함을 알리기 위하여 과장 또는 미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양상으로 정리된다. 하나는 황진사의 서녀설이요, 다른 하나는 맹인의 자식이라는 설이다. 이 외에도 "황진이는 황진사의 서녀도 아니요, 하물며 신선의 딸도 아닌 서민층의, 그것도 천한 가문의 사생아였을 것이다.") 김용숙, 「황진이의 전기적 연구」 강전섭 편저 『황진이 연구』(창학사, 1986), 185쪽라는 주장도 있다.황진이는 역사속의 실존 인물이지만 후세 사람들에 의하여 흥미 위주로 왜곡 기술되어 있다. 그녀의 출생에 관한 사실을 단언하기는 어렵다.2) 황진이의 남자들(1) 옆집 총각황진이가 기녀로 나선 원인은 옆집 총각의 죽음 때문이라고 한다. 황진이의 미모에 반한 옆집 총각이 그녀를 짝사랑하다 상사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 총각의 장례를 치루던 날, 장지로 향하던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들 이 두 사람은 계약 기간이 끝나자 깨끗이 헤어졌는데, 이사종은 황진이에게 있어서 가장 오래 동거한 남자이다. 진이가 그를 사랑했음은 그녀의 시조 '동지ㅅ 딪 기나긴 밤을∼'을 통하여서도 알 수 있다.(3) 양곡 소세양소세양은 호가 양곡 또는 퇴휴당이며, 시문에 뛰어났다. 그는 중종 4년에 등제하여 대제학을 지냈으며, 명종 17년에 77세로 죽었다. 홍중인의 '동국시화휘성'에 황진이와 소세양의 일화가 나온다.소세양은 강장한 사나이로 소시에 항상 말하기를 '남자가 여색에 혹함은 남자가 아니다'라고 장담하면서 황진이를 만나 한달 30일만 같이 살면 미련없이 헤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예약된 이별의 마지막 날, 황진이가 남루에 올라 주연을 베푼 자리에서 '송별소양곡'이라는 한시를 지어 읊으니, 이에 감동한 소세양이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며 황진이와 며칠 더 지냈다고 한다.- 황진이와 소세양은 이렇게 짧은 기간을 함께 살았는데, 아마 황진이는 소세양을 사랑했었나 보다. 진이는 소세양과 이별한 후 그 때 지었던 한시 송별소양곡을 몇 군데 고치느라 고심하였으며, 제목도 봉별소판서세양이라 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조 '어져 내 일이야∼'를 지어 그를 보낸 아픔을 노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다. 이 시조는 '동지ㅅ 딪 기나긴 밤을∼'과 함께 그녀의 대표작인데, 진이가 사랑하는 임 소세양을 보냈다는 사실에서 남자에게 매달리지 않으려는 그녀의 강한 자존심과 함께 감정을 이성으로 누르는 독한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4) 화담 서경덕서경덕은 호가 화담이요, 자는 가구이다. 성종 20년(1489)에 나서 명종 1년(1546)에 죽으니 향년 58세였다. 그는 사마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개성 동문 밖 화담에 초막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여 이기론을 체계화한 학자다. 그는 화담정사에서 독서로 소일하며 성릭학에 몰두하였는데, 항상 선비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황진이의 육체적 도전도 이겨냈다.황진이는 평생 화담의 사람됨을 사모하여 반드시 거문고와 술을할 때 가인에게 부탁하기를 "나는 천하 남자를 위해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내가 죽거든 관을 덮지 말고 동문 밖 모래와 물 있는 곳에 시신을 버려두어 갖은 벌레와 동물들로 하여금 내 몸을 뜯어 먹게 함으로써 천하의 여자들이 진이로써 경계를 하도록 하라"고 하여 가인이 그 말대로 하였는데 한 남자가 거두어 장사를 지냈다.- 황진이는 천한 신분의 기녀였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았다. 그리고 그들의 나약한 실상을 비웃기도 하였다. 그러나 죽음에 앞서는 회한과 자학이 섞인 유언을 할 수 밖에 없었다.또 "천하의 여자들이 진이로써 경계를 하도록 하라"는 말은 남존여비와 여필종부가 사회 유지의 근간이며 정신적 규범이 되는 조선 사회에서 자아 실현을 이루지 못한 그녀의 회환과 자학의 발로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여성들로 하여금 자애하지 못한 자신의 비참한 주검을 보게함으로써 스스로를 사랑하게 하려는 애정어린 충고라고 할 수 있다.청초 우거진 골에 자다다 누엇다다.홍안을 어듸 두고 백골만 무쳤다이잔자바 권힝리 업스니 그를 슬허힝노라.- 이 시조는 선조 때의 풍류 남아 백호 임제가 평안도사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제를 올리며 지은 시조로 알려져 있다. 임제는 말로만 듣던 황진이를 그녀가 죽은 뒤에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후에 백호는 벼슬아치가 체통을 잃고 기생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고 한다.황진이는 멋과 풍류를 찾는 많은 남성들의 연인이었으며, 그녀의 죽음은 많은 남자들을 안타깝게 하였다.앞에서 기녀의 문학과 황진이의 생애에 대해 살펴본 것은 황진이의 삶과 정서가 그의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시나 시조가 창출해 내는 미감은 시인의 삶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다음장에서는 황진이의 문학작품을 살펴보면서 그 속에 나타난 그녀의 삶과 정서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Ⅳ. 황진이의 문학세계-황진이의 삶과 정서살펴보기황진이의 문학 작품으로 시조 6수와 한시 7수가 전해 온다. 시구나.
    교육학| 2003.12.09| 10페이지| 1,500원| 조회(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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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주의] 진보주의 평가A좋아요
    *서론진보주의 교육은 19 세기말에 서양에서 시작된 전통적인 교육관습에 대한 비판을 주 내용으로 하는 일종의 새 교육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20세기 전반의 미국 교육개혁운동을 지배했던 사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비록 미국의 경우 진보주의 교육협회는 1955년에 해산되었다 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이후 대부분의 서구사회와 그 영향하에 있는 많은 나라의 교육이론이나 교육개혁논의에까지 미쳐왔던 것이 사실이다.교육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 같이 교육에서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진보주의 교육사조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뜻깊은 일일 것이다. 따라서 본문을 통해 진보주의 교육사조에 대한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그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그 이해를 돕는 본문의 내용으로 다음을 설정하였다.진보주의 교육 이념진보주의의 역사와 발전진보주의의 사상적 배경대표적 사상가진보주의에 대한 비판->다음을 차례대로 설명하고 전반적인 내용이해를 위해 요약을 제시한다.이러한 내용들을 살펴봄으로 해서 진보주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된다면 앞으로 교사가 되어 교육을 해 나가는 데에 있어 올바른 관점을 견지하게 될 것이요, 또한 아동을 바른 길로 이끌어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진보주의 교육 이념진보주의자들은 아동은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며 성인의 세계와는 다른 아동 나름대로의 고유한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동의 진정한 성장이란 아동의 생활과 세계를 포기한 채 성인들의 생활과 미래의 생활을 준비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동이 각 발달 단계에 맞추어 훌륭하고 만족스럽게 생활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학생 개인을 중요시하며 학생이 지니고 있는 흥미, 호기심, 관심, 욕구의 강력한 작용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이러한 것들은 곧 그의 창조적 지성의 내재적 성장력의 표현이므로 그것은 변화와 진보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 아동을 중요시하고 그들의 흥미와 필요를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이러한 근거에서 나온 것이다. 족되고 발전되지 않으면 안된다.3.교사는 안내자이지 감독자이어서는 안된다. 종래의 교육이 교사중심이기 때문에 교사는 아이들 위에 군림하여 지휘 감독 감시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진보주의 교육은 아동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교사는 아동을 도우면서 아동을 관찰하여 아동의 방향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4.생도발달에 관하여 과학적 연구를 행하라. 학교의 성적이 단순히 교사가 내긴 성적으로만 평가되어서는 될 수 없다.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사회적 제 특성에 관한 주관적 객관적 평가가 전부 학교성적에 포함되어야 할 것은 물론이요 학교와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활현장이 평가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니까 학교성적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학교에서만 참고가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널리 인생에 연장되고 확대되는 그런 의미가 있지 아니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교육은 생활이라 하는 원리이다.5. 아동의 신체적 발달에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에 대하여 더 큰 주의를 하라. 교육의 제 일차적인 의무는 건전한 신체이다. 진보주의 교육의 제 일차적 주의는 건강에 두고 있다. 모든 교육은 건강교육의 기본 위에 다른 계획이나 실천이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6. 아동생활의 여러 가지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 위하여 학교와 가정은 상호 협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국민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자연적 흥미를 충족시켜 주고 자연적 요구에 입각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격려해 줄 수 있도록 학교환경이 정비되지 않으면 안된다.7. 진보적 학교는 교육운동의 선구자이어야 한다. 듀이가 교육은 철학의 실험실이라고 했거니와 진보적 학교는 바로 전통적 교육을 개혁하는 운동의 선도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진보주의의 역사와 발전진보주의의 뿌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762년에 발표된 루소의 에밀은 그 기반을 자연주의 교육사상에 두고 있다. 아동중심의 교육의 바탕이 되는 이 같은 접근 방법은 페스탈로치, 프뢰벨, 듀이, 그리고 킬패트릭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고 이론적으로령은 진보주의 교육이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미국 교육계를 풍미하기에 이르러 마침내는 초·중등학교의 모습을 일변시켰으나 1930년대의 경제공황을 계기로 본질파(W.C. Bagley)와 항존파(R.M. Hutchins)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진보주의 교육학회는 제 2차 대전 후 1955년 해산했다.* 진보주의의 사상적 배경1)철학적 배경- 루소 등의 자연주의 교육사상과, 듀이의 실용주의적 경험론을 배경으로 한다. 경험중심 교육과정과 인간중심 교육과정에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2) 전통적 교육에 대한 반항- 전통적 교육은 성인중심, 사회중심 교육으로서 아동을 고유한 인격을 가진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기보다는 성인의 부속물 및 축소판이라고 보는 아동관과 축적된 과거의 지식을 아동에게 필요하다면 주입하거나 암기시키고, 아동의 현재 생활보다도 장래를 위하여 준비시키는 것을 교육의 임무로 생각하는 교육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교육에 반대하여 진보주의 교육은 모든 교육의 중심에 아동이라는 인간을 두고, 아동의 전인적 성장 발달에 초점을 두었다.3)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실용주의 철학은 진보주의자들이 교육에 대해 산발적으로 제시한 주장에 확고한 철학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으며, 진보주의 교육사상을 하나의 체계를 갖춘 혁신적인 교육운동으로 추진시키는데 강력한 힘이 되었다.- 진보주의는 변화관에 근거한다. 즉 영원성보다는 '변화'가 실재의 본질이라는 프래그머티스트들의 견해를 받아들인 진보주의는 교육은 항상 발달과정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교육은 경험의 의미를 증진하고, 후속적인 경험의 과정을 지도하는 능력을 증진하는 경험의 재구성 또는 개조과정인 것이다.참고)프래그머티즘현대 미국의 대표적 철학.관념이나 사상을 행위(그리스어로 pragma)와의 관련에서 파악하는 입장으로 실용주의(實用主義)라고 번역된다.1870년대에 C.S.퍼스에 의해 주장되었고 19세기 말에 W.제임스에 의해 전세계에 퍼졌으며 20세기 전반(前半)에 욱 발전시켜 관념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명확한 상황을 결과로서 낳게 하기 위한 실험적인 가설(假說)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관념은 상황을 바꾸기 위한 도구로 취급되었다.이 밖에 제임스의 영향을 받고 자아와 사회와의 관련을 논하여 이론사회학(理論社會學)의 길을 연 미드, 논리학의 영역에서 퍼스와 듀이의 영향하에 있는 콰인 등을 프래그머티스트에 포함시킬 수 있다.* 대표적 사상가(1)듀이진보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듀이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게 진보주의 교육이란 말과 듀이즘을 동일시하여 공과(功過)를 논하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주의 교육의 공과가 듀이 한사람에만 의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거기에는 그럴 사한 이유가 있다. 진보주의라고 하는 이름의 교육운동의 관념적, 정신적 면 뿐 아니라 실천적 활동적 면에 있어서까지 듀이가 선도적 또는 대표적 역할을 해 온 때문이다. 관념적, 정신적 면에서는 그의 철학인 프라그마티즘으로부터 비롯하는 도구주의 및 실험주의의 확립과정에서 보여주는 그의 교육적 신조가 이를 대변해 주고, 실천적, 활동적 면에서는 시카고 대학의 실험학교를 세워 진보주의 교육의 과학적 확신을 위해 노력한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역사적 사회사상적 맥락을 살펴보아도 미국적인 풍토의 감정에 입각한 미국적인 생활방식을 기초로 해서 원만하게 이해할 수가 있다. 미국 사회의 기본 바탕에 깔려 있는 이익공동사회의 논리는 사상적으로 형상화되고 그 형상이 논리화 또는 규범화되어 프라그마티즘으로 명명된다. 이것이 철학적 권위를 가지면서 실용주의는 맨 먼저 논리를 갖추고 과학적 확신을 가지고 교육에 응용되어 진보주의 교육을 낳기에 이르는데 이 교육적 응용을 시도한 인물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 존 듀이 인 것이다.듀이는 실험 학교의 교육적 신념을 실용주의 철학의 핵심인 생활적 유용성, 진리의 변화성, 과정의 목적성, 민주주의의 수단성 등을 기초로 구축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 하였다.1.교육은 생활 그 자체이며 생활을 위한 준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학생 자신이 문제를 제기하도록 한다.제3단계는 실행 또는 수행단계로서 학생은 자신의 계획에 따라 학습하고 흥미를 가지고 활동을 전개하며, 교사는 작업이 정확하게 진행되도록 지도한다. 제4단계는 평가단계로서 학생 자신이 또는 학생 상호간에 평가를 하며, 평가단계에서 새로 얻게 된 지식이나 기능을 포착, 그 경험을 기초로 새로운 문제를 찾아 학습활동을 발전시켜 나가는 자료로 삼는다.킬패트릭은 교육의 중심개념으로 생활·문화·인격, 그리고 지성을 제시한다. 그래서 그가 강조하는 교육이란, 목적 지향적 활동을 통한 인격교육으로 정리된다.(3)올센올센은 진보주의 교육의 방법으로 지역사회학교를 주장했다. 지역사회학교란 학교가 소속해 있는 지역사회의 발달 및 지역사회 주민들의 교육적 필요를 충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학교의 한 형태를 말한다. 이러한 학교를 건설하려는 운동을 지역사회학교운동이라고 하는데 교과의 지식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전통적인 학교와 대비된다.1930년대 미국 미시간주(州)의 플린트시에서 학교시설이 1년 중 1/3은 방학과 공휴일로 유휴시설이 되어 사용되지 않고, 하루 중에는 8시간밖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지역사회학교운동을 시작하였다. 지역사회학교는 도서관·실험실 등을 사회에 개방, 이용하여 지역사회 발전의 중심지가 되고, 지역사회의 필요에 의하여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현장학습, 노작교육, 지역사회조사, 지역사회의 자원 활용, 지역사회의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 지역사회에 대한 각종 봉사활동 제공 등을 특징으로 한다.(4)파커스트파커스트는 진보주의 교육방법으로 달톤 플랜(Daoton Plan)을 주장했다. 이것은 1919년 파커스트(H. Parkhurst)여사에 의해서 미국 매사추세츠의 달톤 하이스쿨에서 실험된 것이다. 이 안은 Montessori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고등학교 상급학년에 적용한 것이 그의 독창적인 것이다. 이 플랜은 일제수업을 지양하고 자유다.
    교육학| 2003.10.27| 10페이지| 1,000원| 조회(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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