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왜 진실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진실이 없다면 사물을 확정해서 최종적으로 판정을 내리는 확신주의자 개념, 즉 객관성, 본질, 본질적인, 공평..등이 힘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진실은 결코 현상에 접근할 수 없는 언어의 자기 암시적인 얼굴이다.'즉, 역사는 '하나의 담론 즉 언어 게임' 이며 진실을 비롯한 그와 유사한 표현은 해석을 전개하고 통제하며 차단시키는 기제들이다. 이러한 진실들은 실제로 권력을 통해 다른 담론 속에 자리 매김 된 유용한 허구이며 결국 권력은 적절한 통제를 수행하기 위해 진실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진실은 무질서를 예방하고 무질서에 대한 공포는 진실과 물질적 이해들을 기능적으로 연결시킨다.→ 제주4·3 과 관련하여 최초에 지난 40년 동안 우리는 정부의 공식입장과 해석만을 받아 들여야했다. 그것은 소수의 공산폭도들이 무고한 양민들을 조종, 교사하여 일어난 친북적인 공산폭동이었다. 이에 대해 조금만 다른 견해를 말하려고 해도 그것은, 학문과 역사해석, 사관의 문제이기 이전에 현실 정치와 법규의 저촉을 받는 현실권력의 문제였다. 이점에서 역사해석은 권력관계의 반영이라는 말은 상당 정도 사실에 해당한다.→ 사회주의 역사기록의 특징은 한마디로 승리한 권력의 역사이자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생산수단의 국유화뿐만 아니라 생활의 모든 영역의 국유화, 무엇보다도 과거에 대한 기억의 국유화였다.그 점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순간부터 그곳에서 이상(理想)은 소멸된다. 민주주의가 공산주의체제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점의 하나는 역사해석의 다양성, 즉 사고의 다양성을 수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역사의 공식화를 위한 압력은 상존한다. 우리는 그것과 투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역편향인 이데올로기와 민족주의의 과잉표출로 인한 화석화한 역사해석 역시 지양되어야한다는 점 역시 강조할 필요도 없다.(2) 역사학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밝혀 낼 수 있게 하는가?'역사적으로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다.'라는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만을 우리는 밝혀5 10반대투쟁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나는데, 단선을 저지하기 위해 선거가 실시되기 전부터 부락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산에 오르는 등 일반 대중과 유격대의 결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인민유격대가 미군정과 남한단독정부로 이어지는 대항세력의 엄청난 물리력에도 불구하고, 제주지역에서 단선을 저지하고 1년 여 동안이나 항쟁을 지속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제주도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3) 역사학은 무엇에 대해서는 밝혀 낼 수 없다고 말하는가?'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밝혀 낼 방법은 많지만,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말할 방법은 전혀 없다역사가는 무엇이 일어났는가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고, 왜 일어났는가, 그 당시 그 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역사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한 설명 안에서 사실들이 차지하는 각각의 비중, 위치, 결합, 의미 작용의 문제이다. 이것은 곧 해석의 차원의 문제이고 과거의 사건을 의미유형으로 바꾸어 놓을 때 문제가 된다.과거란 누군가에 의해 읽혀져서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되는 하나의 텍스트란 점에서 텍스트성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곧 의미가 변형되지 않도록 묶어 놓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즉,과거에 대하여 하나의 가치 평가만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 서술이 지식의 주변부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라면 절대 중심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역사 서술적으로 구성된 국적 유형의 주변만이 존재 할 뿐이다. 역사 서술적으로 구성된 이러한 텍스트들은 반드시 역사 서술적으로 읽혀야만 한다.→ 80년대 들어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분출의 결과 비로소 기존의 공식견해에 대한 반명제적인 연구와 해석이 등장하였다. 공식화하고 국유화한 시각과 해석에 대한 체계적인 대안시각과 해석을 제시하려는 노력들은 이 시기에 등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일부 시각들은 급진주의적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고, 젊은 학생들의 일부고 국지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사실상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된다. 다른 곳에서는 역사의 내용이 전혀 다르게 구성되며, 진실성의 문제 또한 아주 다르게 취급되기 때문이다.즉, 상대주의는 기본적으로 합의된 지식 틀에 대한 일목요연한 토론의 밑거름이 되며 공유된 가치와 관점은 '우리의' 대부분의 과거에 대한 해석들 위에 군림하고 있지 않다. '중심'이라는 개념은 단지 틀에 박힌 관행적 해석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편견 개념은 특수하고 국지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80년대 시기의 일부 시각들은 급진주의적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고, 젊은 학생들의 일부 논리는 명백히 좌파와 북한의 공식견해를 수용하고있었다. 80년대 후반 대학가에서 읽힌 지하문건들의 일부는 북한과 재일 교포들의 서술을 복사하듯 서술하여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제주4·3 에 대한 또 다른 이데올로기적 편향이자 사실왜곡이었다. 그러한 과도한 이념중심의 해석은 또 하나의 극단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견지되기 어려웠다. 역사의 올바른 이해는 사실에 토대를 둔, 서로 대립하는 대안적 해석 사이의 건강한 토론을 통하여 이것이 서로 수용되고 상호 교정될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감정이입이란 과거를 과거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상태와 관점을 포괄적으로 인식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감정이입은 실제로 불가능하다.가. 비트겐스타인 등의 철학자들은 타인의 마음 과 관련한 철학적 문제를 보면서 오랫동안 절친하게 지낸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고찰해 본 결과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역사가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실제로 들어갈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한 문제들을 계속 제기 해 왔다.나. 모든 발언 행위는 사생활 간의 해석 이라는 점을 무시하기 때문에 모든 의사소통 행위에는 반드시 번역 행위가 나타난다. 그런데 역사가는 현재 프로그램 된 자신의 사고 틀을 가지고 과거의 모수업을 듣고 시험을 볼 때 우리는 직접 역사적 인물에 감정이입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 또는 교재의 저자의 생각 밖으로 움직이기 어렵다.초등학교에서부터 계속 조금씩 확대되는 관계 와 인격적 개입 의 교육적 관념을 통해 드러나는 교육 내용 개인화, 능력별 학급 등의 위계질서 붕괴하고 동일한 커리큘럼에는 동등한 개별 자격 부여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 자신은 역사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역사에 관한 그들의 설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표현 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영국의 경우 콜링우드(Collingwood)와 관련된 관념론과 관계되어 있다. 그는 역사 이해란 결국 그 사람들이 바로 이 특정한 사물을 원한 까닭을 이해하는 일이다. 즉 모든 역사는 사람들이 마음 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 가와 관련이 있다. 이 관념론의 압력은 만은 역사가에게 감정 이입적 접근법을 정당화시키며,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이 주장을 감정이입의 진정한 본질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감정이입은 이데올로기 속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접근법은 시·공간을 통해 매우 지엽적이고 시간적 제약을 받는 이데올로기를 보편화 시킬 뿐 역사 이해를 제대로 생산 해 낼 수 없다.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들이 자신의 세계에 부여하는 의미의 측면에서 우리와는 다르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역사가가 과거로 가져가는 기본 전제가 무엇인지 설정하는 일이다.결국 모든 역사는 과거 사람들의 마음의 역사 가 아니라 역사가 마음의 역사 인 것이다.→ 1994년의 교과서파동에서 볼 수 있었듯 이 사건에 대한 이념적 해석의 경향은 아직도 완강하다. 정부, 법률기구, 언론을 비롯한 행정적 법률적 사회적 기관들의 주도하에 역사해석의 획일화가 추구된다면 역사적 상상력과 학문적 방법론에 근거한 해석의 확장과 개념적 언어의 도입을 통하여 역사이해의 지평을 열어 가려는 모든 학적 노력들은 좌절되고 말 것이다. 그러할 때는 결국 우리는 국정(國定) 서술과 동일한 역사연구를 진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료와 증거의 문제앞에서 우리는 실제로 과거란 알 수 없으며 중심부도 없고 사물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끌어다 댈 수 있는 '한 층 심도 깊은' 자료란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모든 것은 수박 겉핥기에 머물 뿐이다. 제 1 장에서 보았듯이 역사가는 어떤 조사를 행할 때 아래로 깊숙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옆으로만 가로질러 갈 뿐이고 이런 측면이동을 통해 하나의 자료더미에서 다른 자료더미로 옮겨 가며 자신의 설명을 구성해 낸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비교연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그러나 이것은 원자료를 최고로 여기도록 하여 기록들을 물신화 시키고, 결국 역사를 만드는 작업의 전체 과정을 왜곡시킨다.→ 누가 사건의 주체였고, 이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추구했으며 원하였는가 하는 점은 항쟁의 측면을 보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으며, 사망자의 숫자와 구성, 학살의 방법, 권력행사의 정당성 유무, 예컨대 양측의 공방이 무장대결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기록이 말하듯이 사망의 80%가 비무장 민간인들에 대한 군경 토벌대의 학살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이 점은 사태의 측면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학문적으로 이 두 측면은 분리되어 접근되어야 하나, 존재했던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서는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파악, 제주4 3 의 역사적 의미를 구성해야 한다.* 인과론의 문제예를 들어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원인을 설명 해 보라 고 한다면 이것은 왜 프랑스 혁명은 1789에 일어났느냐 왜 1789년인가? 1789년 역사적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가? 라는 뜻으로 통할 수 있다.어떤 방법이나 경험도 이러한 질문에 대한 충분한, 정확한 논리적 혹은 결정적인 핵심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내놓은 답안은 대개 다른 사람의 답변을 베낀 것 일 것이다. 홉스봄이나 햄슨과 같은 역사가들의 책자를 보고 자신의 답변을 구상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상황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 할 때 가장 중요한 몇몇 관심사 조차도 이론적으로 엄밀히 다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다.
*마르크스의 눈으로 본 소외"내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 탓"마르크스는 19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의 소외를 집중 분석했다.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래서 일하는 게 지겹고 일해서 먹고 살기 급급하고 남들과 경쟁하느라 서로 낯설어지는 게 일하는 사람의 소외 현상이다.마르크스는 이런 소외 현상을 상품과 돈이 중세의 신을 대신하는 현상, 어려운 말로 물신화 현상이라부른다. 살아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은 죽은 상품과 돈이 신처럼 지배하는 현상이다. 상품과 돈도 따지고 보면 살아 있는 사람이 일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일해서 만들어 낸 상품과 돈을 지배하지 못하고 거꾸로 상품과 돈의 지배를 받는다. 이것이 일하는 사람의 소외 현상이다.20세기 사회에서 돈과 권력은 갈수록 조직 규모가 커진다. 거대한 기업 조직과 방대한 관료 조직은 지배 논리대로 움직인다. 수만명이 함께 이하는 회사에서 전체 사원의 일이 어떻게 엮이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대부분의 개인은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지 못한다. 또 세상 살이에 철이 들면 알고 싶지도 않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사람들 사이의 물리 공간은 가까워지지만 심리 공간은 멀어진다. 농촌 마을에 비해 도시 아파트에서 사람들은 아주 많은 짧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살지만 이웃 사이는 훨씬 더 낯설다. 현대 사회의 모든 조직도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사람들은 마치 큰 기계의 나사 부품처럼 조직에 예속되어 있다. 이것이 현대 사회의 소외 현상이다. 이런 소외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요즘 마르크스의 인기가 없지만 소외 현상의 원인을 사회 구조 탓으로 돌린 눈길은 아직도 쓸모가 있다.마르크스의 눈으로 보면 소외는 개인 탓, 의식 탓이 아니라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을 대량 생산하는 사회 구조 탓이다. 일하는 사람은 자기와 가족이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낸다.이 초과분을 잉여 가치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사유 재산 제도는 자본가가 잉여 가치를 착취하는 것을 허용한다. 착취가 심할수록 소외도 심해진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사회 조직에 예속되는 소외 현상도 개인이 못난 탓이 아니라 거대하고 강력한 사회 구조 탓이다.'내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 탓' 이것이 마르크스가 소외를 보는 눈의 초점이다. 사회 구조를 탓하고 자기를 탓하지 않는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다. 개인이나 의식이 사회 구조에 비해 얼마나 허약한 데 왜 무슨 일만 터지면 개인과 의식을 탓하느냐는 것이 마르크스의 눈길이다.*마르크스의 눈으로 본 노동마르크스에 의하면 노동은 인간이 자신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다. 비코 Vico 를 인용하면서 마르크스는 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에서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해 놓고 있다.[노동은 우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참여하는 하나의 과정인데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인간은 자발적으로 인간과 자연간의 물질적 반응을 유발, 규제. 통제한다. 이와 같이 인간은 외부적 세계에 작용하고 외부적 세계를 변모시킴으로써 동시에 자기 자신의 본성도 변화시킨다. 인간은 그의 잠재력 slumbering powers을 계발하여 이를 자신의 위치에 따라 작용하도록 강요한다.]이러한 노동개념은 마르크스의 초기 저술에서부터 줄곧 등장하고 있었다. 사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노동개념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헤겔로부터 계승한 것이고 이 개념은 마르크스가 에서 헤겔과 만나는 키 포인트이기도 하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헤겔이 노동의 본성을 파악하고 객관적인 인간, 진정한 인간, 현실적인 인간을 그 자신의 노동의 결과로 이해하고 있다.]고 헤겔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 반면에 마르크스는 헤겔이 [노동의 긍정적인 면만 보고 그 부정적인 측면을 간관하고 있다. 노동은 인간이 자신을 外化시키는 가운데서 자신을 실현하거나 또는 외화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헤겔이 이해하고 인정한 유일한 노동은 정신노동일 뿐이다.]라고 헤겔을 비난하고 있기도 하다.이전에 마르크스는 가장 중요한 인간소외의 영역을 종교나 정치라고 생가가고 있었는데 1844년에 와서야 그는 노동과정이 인가의 근본적인 소외 영역을 이루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으며 그는 이 견해를 그 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의 산물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로 그의 이익에 적대되는 힘을 소유하기에 이른다고 느낌으로써 생겨나는 소외된 노동의 조건을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소외에서부터 노동자는 생산활동 중에 기쁨을 느낄 수 없게 되고, 그가 타인과 공유하고 있는 자연세계와 능력은 그에게 소원해지게 되며, 끝으로 인간은 동료인간으로부터 소외되고 그들에게 적대감을 느끼기에 이른다.미래 공산주의 사회에서 문제될 노동의 성격에 관해서 마르크스가 가장 분명하게 설명한 곳은 이다. 이 책에서 마르크스는 자신의 입장을 아담 스미스와 푸리에의 두 극단적인 입장 사이에 놓이는 중도적인 입장으로 제시했다. 아담 스미스에 의하면 노동은 필연적으로 부담이요 희생일 뿐, 인간의 쾌적한 상태는 휴식이다. 이에 반하여 푸리에는 이상적인 미래를 예견하면서 노동을 오락이나 유희와 동일시했다. 아담 스미스의 입장에 반대해서 마르크스는 정상적인 작업량은 모든 인간존재에게 필수적인 것이고, 정상적인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노동의 결과는 [자기 실현이요 주제의 객관화이며 따라서 바로 노동을 그 활동으로 삼는 진정한 자유]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한 푸리에게 반대해서 주장하기를 [진정으로 자유로운 노동(예컨대 작곡)은 동시에 너무나도 진지한 것이며 최대한의 노력을 요하는 것이다. 물질생산에 관여하는 노동은 (1)사회적 본성에서 비롯되고 (2)과학적인 성격을 띠고 있을 때에만 이러한 성격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노동에 부여된 정학한 기능은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에서는 노동이-적어도 이상적으로는-인간의 모든 활동과 동~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연관에서 볼 때 의 주제 중의 하나는 [기계나 자동화의 발전이 인간에게 충분한 자유 시간을 제공하게 되면 공산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지금까지 소외된 상황 속에서 장시간 노동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위축되어 왔던 역량들을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마르크스가 자유의 영역을 필연의 영역과 대비시킨 에서 더욱 더 강조되어 있다. 즉 여기서 마르크스는 자유의 영역이 [사실은 필요와 외적 목적에 의해서 규정되는 노동이 종식될 때에 비로소 시작되며, 따라서 자유의 영역은 비로 구 본성에 의해서 물질생산 고유 영역 밖에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부연해서 설명하기를 심지어는 공산주의적 생산조직 아래서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항상 필연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하며 이 필연의 영역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인간의 잠재력을 그 자체 목적으로 개발시키는 진정한 자유의 영역이 번성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작업시간의 단축이 그 근본적인 선행조건이라]고 주장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노동의 성격이 미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근본적으로 변하리라고 생각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심지어 종국적인 에 관해서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이 부의 일반적 형식을 끊임없이 추구함으로써][노동을 그 자연적 필요의 한계 밖으로 내몰아서 풍부한 개성의 발전에 필요한 물질적 요소를 산출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제 개성은 생산과 소비에 물질적 요소를 산출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제 개성은 생산과 소비에 다 같이 보편적으로 되고, 이리하여 노동 자체가 이제는 노동이 아니라 다 같이 보편적으로 되고, 이리하여 노동 자체가 이제는 노동이 아니라 활동의 충분한 계발이 됨으로써, 자연적 필요가 그 직접적인 형태에 있어는 소멸하게 된다]고 기술했다. 그리고 에서 마르크스는 간절하게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노동은 모든 문화국가에서 자유롭다. 따라서 중요한 문제는 노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철폐하는 것이다]라고* 소외의 네 가지 형태마르크스는 정신이라는 개념을 부인하고 소위 정신과 외부 세계와의 대비를 인간과 그 사회적 존재와의 대비로 대체 했다. 특히 초기 저술에서 마르크스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소외를 논의하고 있다.모든 청년 헤겔주의자들의 사고에 공통적인 급격한 세속화 과정을 겪으면서 마르크스는 종교적 소외에서 출발하여 철학적 소외, 다음에는 정치적 소외를 거쳐 마지막으로 경제적 소외에 이르기까지 소외의 여러 유형을 구분하고, 특히 경제적 소외를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는 노동이 인간의 근본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에서 지배적인 공통적인 견해는 인간이 그 본성에 대해서 본질적인 것을 누구인가 또는 무엇인가에 의해서 몰수당해 버렸다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소외에서 다른 어떤 존재가 인간 고유의 것을 차지하고 있다.예컨대 종교에서 인간 자신의 위치를 찬탈해 간 것은 신이다. 종교는 인간이 겪은 고난을 보상하고 또한 인간이 가장 깊은 욕망을 ~~하는 이중 기능을 수행한다. [인간의 본질이 아무런 참된 현실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종교가 인간 본질을 환상적으로 실현하게 된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을 뜻하는 종교를 철폐함은 그들의 참된 행복을 요구함이다. 그들의 조건에 관한 환상을 포기할 것을 요구함은 이러한 환상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조건을 포기하도록 요구함이다.]철학도 (여기서 마르크스가 의중에 두고 있는 것은 헤겔철학이다) 소외현상을 빚어 낼 수 있다. ~~~~은 역사와 정신적 과정으로 환원하고 신의 위치에 이념을 대체하고 있는 점에서 보면 세속화된 신학보다 더 나을 것은 없다. 마르크스는 [이리하여 헤겔의 경우에 물화되고 소외된 인간능력의 사용은 제일 먼저 정신,~~~~ 즉 추상 속에서 발생하는 사용일 분이다]라고 말했다.
(1) '과거' 와 '역사'이 책의 저자 키스 젠킨스는 를 엮으면서 '역사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모색하려 한다. 우선 저자는 '역사'를 세계를 해석하는 여러 담론 가운데 하나이며 '과거'를 역사연구의 가시적인 대상인 세계의 조각난 편린이라 밝히며 '역사'와 '과거'는 다른 것이라고 주장한다.즉 담론으로서의 역사는 자신이 직접 담론화하는 대상과는 다른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두 개념은 동일시 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키스 젠킨스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적 분석에 '과거'와 역사의 개념을 제시하며 이 두 개념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오래 강조한다.젠킨스는 '과거는 이미 사라져 버렸고, 사라진 것들은 역사가들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역사가들은 책이나 논문, 기록 등의 다양한 수단을 통해 과거에 발행한 사건을 원상태와는 별로 일치하지 않는 형태로 다시 옮겨 놓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즉, 역사는 역사가에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과거에 대한 일종의 구성물이라는 것이다.(2)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위에서 알아본 젠킨스의 생각은 수업시간에 배운 포스트모던 역사학으로 이해 할 수 있었다.왜냐하면 랑케와 마르크스가 주장한 '역사는 과학'이며 탐구의 대상으로서 충분히 객관적이라는 신념을 거부하고 역사는 직접적인 기억과는 달리 누군가의 눈과 목소리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특히 로웬탈의 입장을 받아들여 우리가 아는 '과거'란 항상 우리의 관점, 즉 우리자신이 과거의 산물이듯이 인식된 '과거'는 우리의 창작물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담론화' 즉, 1차 자료인 관찰대상을 나름대로 읽고 이야기하는 방식을 창작해 내는 데 필요한 독자적인 분석적,방법론적 도구를 제조해 내는 것에 대한 개념 이해가 더욱 확실해 졌다. 그리고 '과거'와 '역사'를 명확히 구분할 때에야 비로소 과거를 다루는 담론으로서의 역사의 본질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그렇다면 왜 옮긴이는 키스 젠킨스의 를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로 대체한 것일까. 책에서 젠킨스는 '역사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로 대체해야함을 역설한다. 왜냐하면 젠킨스는 '역사담론'이란 역사가에 의해 만들어진 언어적 구성물에 불고하며 이 언어적 구성물을 인식론,방법론.이데올로기 영역에서 고찰한 결과 그 언어적 구성은 역사가의 세 입장(인식론,방법론,이데올로기)에 따라 각각 달라진다.먼저 인식론적 측면에서 보자면 지식이라는 영역에 관한 한 '과거'에서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일반적 물음 자체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물을 인식하기도 어려운데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역사 속 과거'와 같은 주제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여기서 인식론적 허약성이 발견된다. 여기서 젠킨스는 역사가 여전히 정확하며 심지어 사실적으로 설며오딘 생생한 객관적 과거라고 말하는 확신주의적 역사가들을 비판한다.또한 젠킨스는 엘턴, 톰슨, 머위을 예로 들면서 그들이 실증주의 우파적, 마르크스주의 자파적..등의 입장에 서서 꼼꼼한 방법론과 절차들에 의해 진실과 지식을 탐구하는 방법론적 측면보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해석이 결정된다고 강조한다.바로 여기서 옮긴이의 의도를 읽어 낼 수 있다.젠킨스는 위에 제시된 여러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한 방법이 '보다 진정한' 과거로 이끌어 주리라는 것을 반박한다. 오히려 선택을 위한 합의된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지 않은 각각의 방법에 대해 자기 암시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내적으로는 엄밀한 일관성과 논리성을 가지고 역사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려는 이러한 방법에 의해 역사의 의미를 밝힌다고 해도 그 의미란 원래부터 과거에 내재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외부자에 의해 과거에 부여된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결단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역사가는 특정한 사회구성들에 의해 특정한 입장을 전달해 줄 것을 요망받고 있는 것이다. 지배 이데올로기가 '역사담론'에 영향을 미치고역사가는 그러한 강력한 지배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 자체는 이데올로기적 구성물로서 권력관계에 다양하게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재구성, 재정립된다.옮긴이는 젠킨스의 이러한 사고에 동의하고 있다. 편견에서 완전히 초월한 객관적 입장이란 있을 수 없다고 표현했을 만큼 누군가를 위하지 않는 역사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 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래서 한국어판 번역을 하면서 아직도 '역사란 무엇인가'에 매달려 객관적이고 이성에 입각한 합리적 설명에 소모하는 한국 역사학계에 반하여 역사는 지극히 이데올로기적 이며 항상 누군가를 향해 웃음짓도록 조율되어 있는 담론이라는 것을 주장한다.(3) 이것은 과연 정당한가?키스 젠킨스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을 주창하는 공격적인 역사가로 생각된다. 젠킨스는 확실히 우리는 지금 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로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도래를 선언한다. 이런 포스트모던 역사학 전개를 근대 역사학에서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근대 역사학의 성과로 여겨졌던 모든 것들을 포스트모던 역사학에서는 부정하거나 의미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포스트모던 역사학에서 역사학이 전통적으로 옹호하였던 객관성과 과학성 및 합리성들에 대해 상대적인 가치로 전환하여 이해하거나 과학성과 합리성들에 대해서는 언어적인 상징물인 텍스트로 여긴다는 것이다. 즉, 역사의 본질을 너무 주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특히 역사와 권력관계에 관한 설명에서 어떤 역사든 계급과 집단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일시적인 합의라는 것은 지배적인 힘이 공공연한 권력이나 은밀한 개입을 통해 다른 사람을 침묵시킬 때에만 달성된다는 부분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과연 모든 역사는 권력의 시녀일 뿐일까. 역사적 사례로 수업시간에 배운 투키디데스의 경우 필로폰네소스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자신이 목격한 바, 즉 1차 사료에 의해 충분히 객관적으로 탐구한 바를 바탕으로 필로폰네소스史를 저술했다고 배웠다. 여기서 투키디데스는 자기 스스로 주관적 설명을 배제하여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설명과 검증을 바탕으로 한다.여기에서는 젠킨스가 주장한 특정계층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서술자 자신이 과거에 대한 증거가 담론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근대 역사학의 흐름에서 위의 방식으로 역사적 객관성과 진리의 문제를 실증주의적으로 접근한 것에는 대표적으로 근대 역사학 초기의 랑케의 역사학과 랑케의 역사학에 영향을 받은 역사학 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