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론1. 서론김수영의 ‘역경주의’에 대한 발표 준비를 하면서 참고자료로 인용한 시들은 대개 1955년을 전후로 쓰여진 시들이었다. 그 시들을 살펴보면서 역경주의 말고도 또다른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설움’이라는 시어를 사용한 시들이 유독 많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김수영의 작품 들 중에 ‘설움’이라는 시어를 사용한 시는 모두 1954년에서부터 1958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 , , , , , , , 이상 총 10작품이 이에 해당한다. 한사람의 작품에서 그것도 한시대에 집중적으로 같은 시어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 김수영론에서 이들 작품에서의 설움의 의미와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김수영의 시창작 태도를 살펴보려 한다.2. 본문모두들 공부하는 속에 와보면 나도 옛날에 공부하던 생각이 난다그리고 그당시의 시대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고누구나 어른들은 말하고 있으나나는 그 우열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그러나 고구태여 달과하고 있는 지금의 내 마음에샘솟아나오려는 이 설움은 무엇인가모독당한 과거일까약탈된 소유권일까그대들 어린 학도들과 나 사이에 놓여있는연령의 넘지못할 차이일까......전쟁의 모든 파과 속에서불사조같이 살아난 너의 몸뚱아리 ----우주의 파편같이혹은 혜성같이 반짝이는무수한 잔재속에 담겨있는 또 이 무수한 몸뚱아리 --- 들은지금 무엇을 예의 연마하고 있는가흥분할 줄 모르는 나의 생리와방향을 가리지 않고 서있는 서가 사이에서도적질이나 하듯이 희끗희끗 내어다보는 저 흰 벽들은무슨 조류의 시뇨와도 같다오 죽어있는 방대한 서적들너를 보는 설움은 피폐한 고향의 설움일지도 모른다예언자가 나지 않는 거리고 창이 난 이 도서관은창설의 의도부터가 풍자적이었는지도 모른다모두들 공부하는 속에 와보면 나도 옛날에 공부하던 생각이 난다-전문이 시에서 시인은 죽어 있는 방대한 서책들에서 설움을 느낀다. 서책들은 당대의 지식들을 대표하며 또 시인이 지금까지 써내고 생각 했던 문장들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죽어 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쓰이지 못하는 책을 죽어 있을 수 밖에 없다. 전까지의 시인의 삶과 사상도 그러하였기에 이도 죽음을 당하며 이는 곧 설움이 된다. 그리고 또 시속에서 지금 공부하는 학생과 시인 자신을 비교하며 또 다시 설움을 느낀다. 지금의 학생과 자신과의 거리는 곧 현실과 자신과의 거리와 같다. 그러한 거리만큼 시인은 그 속에서 설움을 느낀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고향에서 전쟁의 모든 파괴 속에서 살아난 자신은 괴리를 느끼고 그 속에서 설움을 느낀다. 그리하여 여기서 말하는 설움은 현실을 도피한 시인, 예술가로서의 느끼는 설움이다.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전문한편 또 다른 의미의 설움으로 이 시에서는 예술가이기에 따라오는 삶의 고난으로 겪는 설움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시인은 거미와 자신을 비유하고 있고, 이 둘의 공통점을 무엇인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거미는 다른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거미줄을 치고 벌레가 거미줄에 걸릴때까지 숨죽이고, 참고 인내한다. 그렇다면 시인은 무엇을 바라고 참고 인내하는 것일까? 그것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특정한 자신의 신념일 수도 있고 고집일 수도 있고, 그 결과물은 바로 시 일 것이다. 시인은 시 창작을 위하여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그런 인내 속에 시인은 으스러진다. 심지어는 겨울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시인은 자신이 시인으로서 추구했던 무언가 때문에 현실에서는 몸이 으스러지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으며 그 속에서 설움을 가진다.이렇게 과 이 두 시를 살펴봄으로써 김수영의 시에서 나타나는 설움이 무얼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등장하는 설움은 단순한 설움으로만 존재하는 것일까?고통의 영사판 뒤에 서서어룽대며 변하여가는 찬란한 현실을 잡으려가하기는 현실이 고귀한 것이 아니라영사판을 받치고 있는 주야를 가리지 않는 어둠이표면에 비치는 현실보다 한치쯤은 더소중하고 신성하기도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나의 두 어깨는 꺼부러지고영사판 우에 비치는 길잃은 비둘기와같이 가련하게 된다고통되는 점은피가 통하는 듯이 느껴지는 것은비둘기의 울음소리구 구 구구구 구구시원치않은 이 울음소리만이어째서 나의 뼈를 뚫으고 총알같이 날쌔게 달아나는가이때이다 ----나의 온 정신에 화룡점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영사판 우의 모오든 검은 현실이 저마다 색깔을 입고이미 멀리 달아나 버린 비둘기의 두 눈동자에까지붉은 광채가 떠오르는 것을 보다영사판 양편에 하나씩 서있는설움이 합쳐지는 내 마음 우에-전문앞서 살펴본 두 설움이 이 시에서는 영사판 양편에 하나씩 서서 서로 대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설움은 대립하지 않고 하나로 합쳐진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고통의 영사판 위에 현실이 제 색깔을 입고 제대로 보이게 된다. 현실 인식 부재와 현실의 고통 속에 오는 설움을 통하여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게 된다. 그렇다. 김수영 이런 설움을 부정적인 피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끌어안음으로써 이를 자기 갱신, 자기발전에 이용한다. 이런 김수영의 설움에 대한 태도는 여타 다른 시에서도 계속 나타난다.김수영의 시에서 ‘설움’이라는 시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에서 이다.비가 그친 후 어느 날 ----나의 방안에 설움이 충만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오고가는 것이 직선으로 혹은 대각선으로 맞닥뜨리는 것 같은 속에서나의 설움은 유유히 자기의 시간을 찾아갔다설움을 역류하는 야릇한 것만을 구태여 찾아서 헤매는 것은우둔한 일인 줄 알면서그것이 나의 생활이며 생명이며 정신이며 시대이며 밑바닥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아아 그러나 지금 이 방안에는오직 시간만이 있지 않느냐흐르는 시간 속에 이를테면 푸른 옷이 걸리고 그 위에반짝이는 별같이 흰 단추가 달려있고가만히 앉아있어도 자꾸 뻐근하여만 가는 목을 돌려시간과 함께 비한 자루의 부채--- 그러나 그것은 보일락 말락 나의 시야에서멀어져가는 것 ---하나의 가냘픈 물체에 도저히 고정될 수 없는나의 눈이며 나의 정신이며이 밤이 기다리는 고요한 사상마저나는 초연히 이것을 시간 위에 얹고어려운 몇 고비를 넘어가는 기술을 알고 있나니누구의 생활도 아닌 이것은 확실한 나의 생활마지막 설움마저 보낸 뒤빈 방안에 나는 홀로이 머물러 앉아어떠한 내용의 책을 열어보려 하는가- 전문여기서 설움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앞서의 에서의 영사판 앞뒤에 설움의 대립은 이 시에서도 등장한다. 바로 이 방안을 채우고 있는 설움과 설움을 역류하는 것이다. 현실, 식민지시대를 거치고 전쟁을 거치며 많은 것이 무너지고 파괴되 버린 현실, 또 그 속에서 예술가, 시인이기에 더욱더 어려울 수 밖에 없는 현실, 이 현실의 설움에서 도망치기 위해 더욱더 자기 내면 세계에 빠지고 시에 있어서의 예술성을 탐구하지만 결국에는 시간만이 남을 뿐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설움이 생겨나게 된다. 설움을 거스르려 하지만 그 앞엔 또 다른 설움이 존재하며 이 둘은 서로 순환하며 또 서로 이어져 있다. 이에 시인은 설움을 거스르려는 것을 포기하고 오히려 두 설움에 안착하며 그 설움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마지막 설움으로 향하여 나간다. 그리고 오히려 그 마지막 설움 끝에 있을 허무함을 걱정한다. 삶에 대한 설움, 예술에 대한 설움, 이 설움들이 없이는 빈 방안일 수 밖에 없다. 설움이 없다면 어떠한 내용의 책을 읽어볼 필요가 없다. 이처럼 설움은 자기성찰, 자기 발전의 계기로 작용한다. 또 하나 살펴볼 특이사항으로는 이 시에서 시인은 설움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스스로 자기 것으로 끌어 안는다는 것이다. 나의 눈이며 나의 정신, 누구의 생활도 아닌 이것은 확실한 나의 생활, 설움을 외부에서 오는 고난으로 보지 않고, 자신이 직접 만든 자신이 직접 끌어 안는 나의 설움이다. 설움은 곧 자기 발전으로 이어지며 자세히 말하면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의 발전, 그리고 시지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설움은 그저 고통이고 고난일 뿐이다. 설움을 직접 끌어 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남의집 마당에 와서 마음을 쉬다매일같이 마시는 술이며 모욕이며보기싫은 나의 얼굴이며다 잊어버리고돈 없는 나는 남의집 마당에 와서비로소 마음을 쉬다잣나무 전나무 집뽕나무 상나무연못 흰 바위이러한 것들이 나를 속이는가어두운 그늘 밑에 드나드는 쥐새끼들마음을 쉰다는 것이 남에게도 나에게도속임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쉰다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면서)쉬어야 하는 설움이여멀리서 산이 보이고개울 대신 실가락처럼 먼지나는군용로가 보이는고요한 마당 우에서나는 나를 속이고 역사까지 속이고구태여 낯익은 하늘을 보지 않고구렁이같이 태연하게 앉아서마음을 쉬다마당은 주인의 마음이 숨어있지 않은 것처럼 안온한데나 역시 이 마당에 무슨 원한이 있겠느냐비록 내가 자란 터전같이 호화로운꿈을 꾸는 마당이라고 해서-전문여기서 나오는 쉬어야 하는 설움은 앞서의 두가지 설움 중에 현실을 보는 예술가로서 생기는 고뇌에 의한 설움에 더욱 가깝다. 시에서 화자는 돈이 없고 가난 하다. 그런데 남의 집에 와서 마음이 쉬고 있다. 돈이 없는 가난한 화자는 현실속에서 편하게 쉴 수가 하지만 마음은 태연하게 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과 현실이 불일치가 생긴다. 이런 상황속에서 쉰다는 것은 서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휴식은 속이는 것이 되고 매일같이 마시는 술이며 모욕이며 보기싫은 나의 얼굴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설움 속에 쉬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만 동시에 이 마당에 원한을 가질 필요까지 있겠느냐며 이러한 설움이 결코 헛된 것임을 알려준다. 시인은 시와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괴리를 몸소 체험하고 그 속에서 서러워 했기에 이런 자기기만적인 휴식, 현실 앞에 진정으로 다가가지 못한 삶, 허위적이고 비현실적인 삶을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쉰다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기에 쉬고, 또 서러워다.
彰善感義錄목차1. 작품의경개(梗槪) ―――――――――――――――――――――――――――――――― 12. 작가(作家) 소개 ―――――――――――――――――――――――――――――――――21) 작가 문제2) 조성기(趙聖期)3. 이본(異本) 소개 ―――――――――――――――――――――――――――――――――41)필사본2)석판본3)활자본4. 작품 분석 ――――――――――――――――――――――――――――――――――――61) 근원 설화, 모티브2) 작품의 구조적 특질3) 작품의 소설사적 의의1. 작품의경개(梗槪)명(明)나라 세종(世宗)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내는 화욱(花郁)이라는 자에게 부인이 셋 있었는데, 제1로 심(沈)부인, 그 밑으로 요(姚)부인, 정(鄭)부인 이렇게 되었다. 첫째부인 심부인은 말을 잘하고, 인물도 아름다웠지만, 마음씨가 매우 고약하였고, 그의 아들 춘(瑃) 또한 사람됨이 변변치 못했다. 둘째 요부인은 딸 빙선(聘仙)을 낳고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나고, 정부인이 빙선을 의탁하여 자기자식마냥 애지중지 길러내었다. 요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 정부인도 아들은 낳았는데 이름은 진(珍)이요, 인물됨이 귀인 풍이었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 그리고 화욱의 누이 성(成)부인 또한 남편을 잃고, 아들 준(儁)내외 와 함께 화욱의 집에서 같이 살며, 집안의 살림을 도맡아 챙기었다. 화욱은 심성이 고약한 심부인과 춘을 멀리하고, 정부인과 빙선과 진을 가까이하며 무척 아끼고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심부인과 춘은 시기와 질투가 심했지만 화욱과 성부인이 있기에 별다른 악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당시에 황제는 엄숭(嚴崇)이라는 대신을 무척 아꼈는데, 이 엄숭은 자신의 권세만을 믿고 부패를 일삼고, 나랏일을 소홀히 해 국정이 문란하였다. 이에 어사관직에 있는 남자평이 엄숭의 죄를 밝히고 탄핵하는 글을 황제께 바쳤는데 도리어 남자평이 먼 변방으로 유배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에 화욱은 아들 진의 진언을 들어 관직에서 물러나 가족들과 함께 고향 소흥(紹興)으로 내려간다. 성준과 함께 윤혁의 집에 당도하여 옥화와 채경과 혼인하여 다시 소흥 집으로 돌아가고, 이듬해 화진, 성준, 유성양은 과거를 보게된다. 화진은 장원급제 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고, 성준과 유성양 또한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게 된다. 이에 성준은 성부인을 모시고 집을 나가게 되고, 화진은 춘의 꾀임에 넘어가 관직을 미루고 집에 있게 된다. 그 사이 춘은 친구 범한(范漢)과 장평을 이용해 조녀(趙女)를 첩으로 들이는데, 조녀는 품행이 방정치 못하고, 시기와 탐욕이 심하였다. 그리하여 조녀는 정부인이 되기 위해 심부인의 처소에 흉물을 묻어놓고, 이를 임부인의 소행으로 모함하여 내쫓게 하고, 윤부인, 남부인에게 전에 화욱에게 받은 패물을 내놓게 하고, 이를 거부한 남부인에게 나쁜 마음을 품고, 범한과 결탁하여 엄숭의 측근 세력에게 뇌물을 바쳐 진을 관직을 박탈하고, 남부인을 첩의 지위로 끌어내린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녀는 남부인을 가두고 독약을 먹여 죽이고는 하인 막충(莫忠)으로 하여금 물에 버리게 하나, 전의 남부인의 모녀에게 도움 받은 일 있는 여승 청원(淸遠)이 시체를 가로채 선약을 먹여 남부인을 살리고는 시녀 계앵과 함께 서촉땅으로 데리고 가고, 후에 진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린다. 범한은 조녀와 통하며, 화씨 일가를 모조리 죽이고, 재산을 차지하려는 계략을 꾸민다. 친구인 자객 류금을 시켜 심부인을 죽이게 하고, 이를 남부인과 진이 계획한것 처럼 꾸미려 했는데, 일이 잘못되어 심부인이 아닌 시녀 난향이 죽긴 하였지만 그들의 뜻대로 춘은 진을 관부에 고소하여 투옥케 한다. 그러나 진의 사람됨이 살인을 저지를 만한 성품이 아니니 이를 수상히 여긴 소흥부 태수 최행은 사건을 쉽게 종결하지 못하던 차에 도어사(都御史) 하춘해가 이 일을 알게되고 하춘해 역시 진의 성품에 감복해 황제께 아뢰겠다며 서울을 떠난다. 이에 범한은 엄숭에게 뇌물을 바쳐 진을 서울로 압송케 하고 엄숭이 진의 처형을 황제께 청하나 하춘해의 간청으로 진의 판결은 부인 빙선(딸) = 유성양 화진(차자) = 윤화옥(1처)조녀(첩) 남채봉(2처)윤혁 = 조씨 부인 남자평 = 한씨 부인| || |윤화옥(딸) = 화진 ←------ 남채봉(딸) = 화진윤여옥(아들) = 진채경 (양녀)엄월화(=는 부부관계) 등장인물간의 가족관계도2. 작가(作家) 소개1) 작가문제작자에 대해서는 그 설이 구구하다. 김태준은 정준동 혹은 김도수의 작이라는 설이 있다고 하였고, 또 조성기의 작이라는 설을 들어 놓았으나, 결정적인 언급은 해 놓지 않았다. 이 작품의 작풍과 고전소설의 시대적인 작풍으로 보아 정준동이나 김도수가 생존했던 영정시대의 소작이라기보다는, 숙종기의 작품으로 보고 조성기의 소작으로 보는 것이 옳을까 한다.)2) 조성기(趙聖期, 1638∼1689)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성경(成卿), 호는 졸수재(拙修齋). 아버지는 군수 시형(時馨)이며, 어머니는 청송 심씨(靑松沈氏)로 참의에 증직된 정양(廷揚)의 딸이다.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일찍이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과거에 응시하여 사마시에 여러 번 합격하였으나, 몸에 고질이 생겨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사람들과 접촉을 끊고 심실(深室)에 들어앉아 공부하기를 30년간이나 계속하여 천지만물과 우주의 이치에 통관하였다고 한다.어렸을 때 이미 《이기설 理氣說》을 지어 이(理)와 기(氣)에 대한 고차원적인 정의를 내려 이기는 서로 혼합되어 분리할 수 없음을 주장하였으며, 20세에는 《퇴율양선생사단칠정인도이기설후변 退栗兩先生四端七情人道理氣說後辨》을 지어 이황 (李滉)·이이(李珥)의 학설을 논변한 바 있다.이 글에서 사단칠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기 위하여 본연명물(本然命物)·승기유행(乘氣流行)·혼융합일(渾融合一)·분개각주(分開各主) 등 4종의 설을 세웠다. 임영(林泳)과 학문적으로 깊이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한문소설인 ≪창선감의록 彰善感義錄≫과 문집 ≪졸수재집≫이 있다.조성기가 《창선감의록》을 창작했던 동기는 그가 저작한 《행상(行狀)》, 《송남잡식국립중앙도서관 소장(12) 《챵셩감의록》 국문필사본. 1책(83장) 고려대학교도서관 소장(13) 《창션감의녹》 국문필사본. 1책(48장;하권) 무봉산인 육십옹 필사, 고려대학교도서관 소장(14) 《창션감의록》 국문필사본. 5책(346장) 서울대학교도서관 소장(15) 《창션감의록》 국문필사본. 1책(45장;결본) 가람문고, 서울대학교도서관 소장(16) 《챵션감의록》 국문필사본. 4책(194장) 김동욱 소장(17) 《챵션감의록》 국문필사본. 3책(248장) 김동욱 소장(18) 《?션감의록》 국문필사본. 2책(185장) 김동욱 소장(19) 《倡善感義錄》 국문필사본. 2책(165장) 김동욱 소장(20) 《창선감의록》 국문필사본. 2책(121장) 1923 농와옹 필사, 김동욱 소장(21) 《챵션감의록》 국문필사본. 2책(116장;상권,하권) 김동욱 소장(22) 《창션감의록》 국문필사본. 1책(85장;상권) 김동욱 소장(23) 《昌善感義錄》 국문필사본. 1책(59장). 김동욱 소장(24) 《창션감의녹》 국문필사본. 1책(60장;1권) 김동욱 소장(25) 《彰善感義錄》 국문필사본. 1책(59장) 김동욱 소장(26) 《챵션감의녹》 국문필사본. 1책(56장;2권) 김동욱 소장(27) 《창션감의록》 국문필사본. 1책(55장) 김동욱 소장(28) 《창션감의록》 국문필사본. 1책(45장;2권) 송小姐 필사, 김동욱 소장(29) 《창션감의록》 국문필사본. 1책(42장;1권) 김동욱 소장(30) 《彰善感義錄》 국문필사본. 1책(35장) 김동욱 소장(31) 《?션감의록》 국문필사본. 1책(26장;4권) 김동욱 소장(32) 《창션녹》 국문필사본. 1책(38장;2권) 김동욱 소장(33) 《화진젼》 국문필사본. 1책(54장) 김동욱 소장(34) 《창션감의록》 국문필사본. 2책(137장) 조동일 소장(35) 《倡善感義錄》 한문필사본. 1책(90장;하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장(36) 《倡善感義錄》 한문필사본. 1책(78장;하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장(37) 《倡善感義錄》 한문필사본. 1책(6탄생한 만큼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다른 인물에 비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관음 설화 모티브불교적 색채를 지닌 관음은 사람들의 다양한 소망을 두루 살피고 이루어주는 존재이다. 이런 관음은 여성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이유는 승려나 백성에게 깨우침을 주거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서이다. 이 때 여성은 반드시 비속한 처지로 나타나거나 여성의 생산기능과 관련된 사건이 많다. 관음 설화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으며 남성의 득도를 돕는 기능을 한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르지 않고, 결국 남녀상하의 차별을 넘어서야 진정한 화합의 경지가 구현된다고 말한다.)작품에서 관음의 도움을 많이 받는 인물은 남채봉이다. 남부인은 작품 속에서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는데, 특히 죽음과 같은 고난은 현실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움으로 관음(여승 청원)과 같은 비현실적인 방법이 등장해야 한다. 주인공이 어려움에 처할 때 독자들은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관음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후에 전개될 이야기에 안도감을 느끼며 긍정적 기대를 하게 된다. 또한 관음의 등장으로 독자들은 무의식적으로 편안한 안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3) 변신(變身) 모티브변신은 모습을 바꾸는 것으로 둔갑이나, 탈신, 변복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데, 보통 변신 모티브는 작품의 전환점이 되거나 흥미를 주는 구실을 한다. 우리 문학에서는 단군신화의 옹녀를 비롯하여 민담인 《뱀신랑》, 《박씨전》 등 다양하다. 예를 들어 《박씨전》에서 박씨의 변신은 비범한 부덕(婦德)과 부공(婦功)은 물론, 신묘한 도술로써 여성의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계기가 된다.)이 작품에서는 변복(變服)의 형태로 나타난다. 진채경이나 윤화옥이 조문화와 엄세번에 의해 각각 위기를 맞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의 소산으로 진채경은 남장을 하고 윤여옥은 여장을 한다.위와 같은 변신은 진채경이나 윤화옥 같은 인물들이 각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다. 예를 들어 진채경이 남장을 하다.
Ⅰ. 서론지금까지 이인로(李仁老)에 대한 연구는 다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 업적이나 명성에 비하여 학계의 관심도가 그다지 높지 못하며 연구성과도 저조한 편이다. 그것도 이인로에 국한된 연구는 극히 인색했으며, 대부분 고려시대의 한문학을 다루는 과정에서 거론 되었다.)시인으로서 당시를 주름잡았고, 『파한집』을 저술하여 후대 문학에 크게 기여했으면서도 문집을 전하지 못하여 작품이 적은데다가, 주필과 장편 대작으로 독주한 이규보에 비하여 연구의 우선권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규보 시론의 재평가와 아울러 이인로에 대한 개별적 연구도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있는 이인로의 문학을 점검하면서 그 참모습을 이번 시간에 살펴보기로 한다.Ⅱ. 본론①. 이인로의 생애이인로의 가문은 고려조 전기의 혁혁한 벌족 명문이었다. 그가 태어난 것은 18대 의종 6년 (1152) 이었는데 바로 이 의종조에 발생한 무신란 이전까지만 해도 경원이씨는 ‘고려조 전기 3대 가문’의 하나로, 여러 대에 걸친 국혼으로 왕가의 외척으로서의 부동의 문벌을 형성해왔다. 이인로 자신이 그의 가문을 말하기를, ‘나의 선조는 문장으로 세세에 이어와 홍지(紅紙) 전해온 것이 지금 이미 8장이다.) 라고 하여 문신귀족으로서의 성세를 말한 바 있고, 역시 명가의 후예인 최자도 경원 이씨의 당당한 문벌의 형세에 대해 언급하기를,“경원 이씨는 개국 때부터 대대로 높은 관직을 지내오다가 장화공 자연에 이르렀다. 그의 아들 호는 경원백이 되었고 정 · 의 · 안 세 아들도 모두 재상이 되었으며 딸 한 사람이 바로 인예태후 였고 나머지 두 딸도 궁주(宮主)가 되었다. 자연의 아우인 복야(僕射) 벼슬의 자상(子祥)에게는 두 아들 예 · 오가 있어 모두 재상이 되었고 그 자손이 모두 종실과 혼인하여 존귀한 외척으로서의 성세가 고금을 통해서도 비할 바 거의 없다.") 라고 하였다. 이인로는 바로 자상의 후손인데, 자상의 둘째 아들로서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이가 그의 증조가 된다.이인로는 이렇게 연간에는 고원에서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으로 천직(遷職)하였고 그 뒤 신종 7년(1204) 그의 나이 53세 때에는 맹성(孟城; 지금의 맹산) 수령으로 나가 있기도 했다. 한편 그는 신종 2년(1199), 희종 3년(1207), 강종 2년(1213) 등에 누차 최충헌의 집에 초대되어 당대의 문사 이규보 등과더불어 시문을 짓기도 하였다. 또 최당 형제 중심의 ‘기로회(耆老會)’에 참석하여 시문을 지어서 문명을 드날렸다.고종 초에는 비서감우간의대부(秘書監右諫議大夫)에 올랐다. 아들 세황(世黃)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문장의 성세를 자부하면서도 제형(提衡)이 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다가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올라 시관(詩官)의 명을 받았으나 시석(詩席)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가 역임한 최후의 관직은 좌간의대부였고 이 관직에 재임하던 중 고종 7년(1220) 향년 69세로 개경 홍도정제(紅挑井第)에서 작고하였다.이인로는 관직에 매력을 가졌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관직을 구걸하지도 않았다. 또 당시 집권층인 최씨 일파에 대해서도 호의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역사는 “성격이 편협하고 급했으며 당세에 거슬리어 크게 쓰이지 못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②. 문학 사상(1) 현실 소외에 대한 자위책이인로의 집안은 고려 전기 문벌귀족인 인주(麟州) 이씨로 오랫동안 왕실 외척으로서 권력을 누려왔다. 그 역시 자기 가문에 대한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래서 벼슬에 대한 야망이 켰으며 관직에 대한 갈망도 누구 못지않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신란으로 그는 좌절과 패배를 맛보았다. 19세 때 정중부가 난을 일으켜 많은 문신들을 죽이자 그는 그 일을 피해 스님이 되기도 했다.이후 10년이 지나 최씨 집권기에 그는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등용되었으나 그것은 그의 야망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이는 무신 집권 하에서 살아가기 위한 피할 수 없는 형세였다고도 하겠으나 이인로 본심 역시만남을 우연이 아니 필연적 인연으로 보았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인로의 인생관은 확립되었다고 하겠다.첫째, 천성불변, 는 것이다. 이 품성을 제대로 발휘하자면 환경 조성이 되어야 하겠으므로‘대개 초목은 그 토질이 맞지 않으면 그 품성을 발휘하지 못한다’하여 식물과 토질과의 관계로써 표현했다.둘째, 안분 자족, 관직을 원하면서도 앙앙불락 매달리지 않고 시와 술로 자오하며 자신을 안주시켰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면을 많이 보여준다. 이와 아울러 이인로의 인생지침을 읽을 수 있으며 군자의 풍모도 성현에게서 찾지 않고 있다. 일례로 홀아비로 8년을 보내면서도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함순에게서 군자의 풍모를 발견했다. 즉 이인로의 인생관은 평범한 데에서 체험으로 이룩된 것으로 본다.④. 이인로의 문학적 경향과 대표작『파한집』은 상 ? 중 ? 하 3권으로 엮어져 있는데, 구체적으로 나누면 상권 25화, 중권 25화, 하권 33화, 도합 83화가 된다. 시 ? 문 ? 그림 ? 글씨 ? 역사 ? 인물 ? 지리 ? 풍물 등에 대하여 두루 기록하여 시로 연결시켰다. 이와 같이 『파한집』은 대부분 시를 담고 있는데 83화 중 단 4화에 시가 없다. 그러나 시에 대한 언급이 있기 때문에 시화가 된다. 일부에서는 『파한집』을 수필과 평론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고찰한 다음 이를 다시 종합하여 평론 내지 수필적 평론으로 귀결지어 『파한집』의 장르 규정에 혼란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는 『파한집』이라는 시화와 거기에서 추출된 사회비평을 혼동한 데에서 빚어진 결과이다. 따라서 비평이라 할 때는 후자에 국한되어야 한다.『파한집』은 반 이상 시화비평을 담고 있는 한국 고대 한문수필이다. 『파한집』은 한가함을 깨뜨린다는 뜻의 ‘파한(破閑)’을 책의 이름으로 삼았지만, 『파한집』은 단순한 심심파적을 위한 저술이 아니다. 그 내용은 주로 문담(文談), 신라의 옛 풍속, 서경(西京)·개경(開京)의 당시 풍물, 시작(詩作)에 얽힌 일화(逸話)·시평(詩評), 자신의 시작에 대한 것 등으로 되어 있고, 태 시인의 시를 몇 구절이라도 소개하고 있으므로, 자료를 제공해주는 면에서 시화로서 큰 의의가 있다.그럼 이인로 문학의 전개 양상을 알아보자.이인로가 송적의 그림을 보고 1경에 한수씩 8경에 여덟 수의 시를 지었는데 그시를 감상해 보도록 하겠다.1. 平沙落? (평사낙안)水遠天長日脚斜 긴 강물 먼 하늘 햇살 기울자(수원천장일각사)隋陽征雁下汀沙 양지 따라 가던 기러기 모래톱에 내리네(수양정안하정사)行行點破秋空碧 줄줄이 점점이 파란 가을 하늘 가르며(행행점파추공벽)低拂黃蘆動雪花 나직이 갈대밭 스치니 하얀 꽃 날리네.(저불황로동설화)소상팔경도 중 평사낙안의 주제와 내용은 평평한 모래펄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를 표현한다.砂丘(사구)와 기러기 떼가 중경과 원경에 보인다. 나무는 잎을 잃어 앙상하고, 자연은 메마르고 거칠게 보이며, 갈대숲이 있다. 시간은 저녁때, 계절은 늦가을을 나타낸다. 첫구는 물이 넓게 퍼져 있고, 산 너머로 해가 지는 저물녘임을 드러내고 있다. 둘째 구에서는 서산너머 해는 지고 비스듬히 비추는 햇살을 따라 잠자리를 찾아 모래밭에 내려앉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셋째 구에서는 하늘에 떠있는 하얀 기러기 떼가 마치 하늘의 푸르름을 점찍는 듯하다고 하여 저 멀리 하늘 높은 곳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를 그리고 있다. 기러기의 하얀 색과 가을 하늘의 파란 색이 묘하게 대비되어 있다. 둘째 셋째 구에서는 의 주제, 즉 따사로운 모래밭과 그곳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를 눈앞에 보이듯 그대로 그려내었고 계절이 가을임을 드러냈다. 넷째 구에서는 갈대밭에 내려앉는 기러기로 인하여 갈대꽃이 휘날리는 모습을 그렸다. 이인로의 시는 바로 이러한 그림의 특성을 포착하여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묘회하고 있다. 시인의 주관적 감정이나 사유 혹은 인식은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 이러한 작시태도는 눈앞에 그림을 마주 대하고 그림의 내용을 객관적 거리를 두고 묘회하는 것이다.2. 煙寺晩鐘 (연사만종) 안개 낀 절의 저녁 종소리千回石徑白雲封 천 구비 돌길에 흰 구름이 가려있고(천회석경백운봉)巖樹蒼蒼灑歸舟 바람 불자 뱃전에 가랑비 뿌리네(풍취세우쇄귀주)夜來泊近江邊竹 밤들어 강가 대숲에 배대고 묵으니(야래박근강변죽)葉葉寒聲總是愁 싸늘한 댓잎소리 모두가 시름이네(엽엽한성총시수)푸른 물결이 띠를 이루며 밀려든다. 물결이 지나는 양켠 언덕이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단풍으로 물든다. 이 얼마나 근사한 연상이냐? 고기잡이배는 이렇게 가을을 몰고 돌아온다. 바람도 뒤에서 슬쩍 등을 떠민다. 보슬비가 뱃전에 흩뿌린다. 하루해도 어느덧 저물었다. 일을 마치고 묵묵히 고깃배를 물가에 맨다. 대숲에선 잎마다 가을을 앓는 소리를 낸다. 강물 위엔 어느새 안개가 쳐들어와 풍경을 차례로 지운다.山居(산거) : 산에 사노라면春去花猶在 봄은 지났건만 꽃은 아직 남아 있고(춘거화유재)天晴谷自陰 하늘은 개었는데 골짜기는 어둑하구나(천청곡자음)杜鵑啼白晝 두견새 한낮에도 구슬피 우니(두견제백주)始覺卜居深 비로소 깨닫네, 내가 깊은 산에 사는 것을(시각복거심)1구에서 “춘거(봄은 가다)”와 “화유재(꽃이 아직도 있다)”는 구절로 보면 시간적 배경은 초여름이나 늦봄이다. 계절이 순환되어 당연히 질 꽃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작가의 관점에서 기쁨일까 슬픔일까. 현실에 순응하지 못하는 작가의 슬픔이 담긴 구라고 할 수 있다.2구에서는 하늘과 골짜기라는 공간적 배경이 묘사된다. 하늘은 맑게 개이고(天晴) 골짜기에는 그늘이 진다(谷自陰)는 표현으로 작가의 내면적 심상이 반영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이 곳에서 살았더라면 하늘과 골짜기의 함수관계를 잘 알겠지만 낯설게 바라보니 이 골짜기에서 산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3구에서는 두견새가 등장한다. 한 낮에 등장하는 새는 앞에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낯설은 자신이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기다림의 의미일 것이다. 문학적으로 망국의 한이나 실연한 사람의 심정이 내포되어 있는 듯 하다. 즉 과거급제를 통해 현실참여를 하려고 하는 작가의 처지가 현실 때문에 멀어졌다는 의미이다.4구에서는 대낮에 새소리가 들리니 자신이 현재 사는 곳(卜居)이 세상에서 멀리 떨어
김종삼 「해가 머물러 있다」작품연구1. 전문)뜰악과 苔瓦마루에 긴 풀이 자랐다.한 모통이에 자근 발자욱이 나 있었다.풀밭이 내다 보였다. 풀밭이 가끔 눕히어지는 쪽이 많았다.옮아 간다는 눈치였다.아직해가 머물러 있다.(『문학예술』, 1956.11.)2. 기존의 해석기존의 해석이라기 보다 기존의 다른 이들의 김종삼 시 연구를 통해 본 나의 해석이라고 봄이 옳겠다. 이곳 저곳을 통해 이 시에 대해 개별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한 내용을 찾으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김종삼의 초기시 전체에 대한 연구와 교재의 내용을 짜깁기 하여 이러이러한 해석들이 나왔을 것이다 라는 추측을 하였는데 그러다보니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어색한 모양이 되어 버렸다.1연의 상황은 뜰악과 태와마루에 풀이 자라있고, 그 가운데 한 모퉁이에 작은 발자국이 나있다. 김종삼 시에서의 나무나 풀이 갖는 의미는 생명이다. 마당 뜰에는 이렇게 많은 생명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런데 이 한 모퉁이에 작은 발자국이 나있다. 무언가 다른 존재가 등장한다. 그리고 발자국이 난 모퉁이는 중앙을 벗어난 주변부에 해당한다. 작가는 중앙보다 주변에 더 관심을 가지고 더 큰 가치를 둔다. 작고 보잘것 없는 것 보편적인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2연에서는 풀밭이 가끔 눕히어지는 쪽이 많았다 한다 또 이건 옮아 나가는 것이라 한다. 주변부에서 나타난 변화가 중앙과 다른 부분에도 옮아간다. 작은것에서부터 시작된 변화는 전체로 이어진다. 이것은 어떤 방향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이 움직임, 변화는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다기 보다 무언가 더 큰 힘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인간은 앞서 풀이 가리키는 수많은 생명중 하나로 봄이 옮다고 본다.3연에서는 이 변화의 주체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준다. 바로 ‘해’. 해로 인해 생명이 살아 숨쉬며 해로 인해 변화를 겪는다. 이러한 해는 미지의 절대자를 상징한다. 해를 바라보면 움직이지 않고 머물러 있다. 하지만 사실 해는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이렇듯 절대자는 빛의 이미지로 머물러 있는 듯 하면서 움직이며 시의 여백속에 숨어서 우리를 주변에서부터 서서히 변화 시킨다.3. 나의 해석자료를 찾고 분석하기 전에 내가 이 시를 본 후에 느낀 내용은 이러하다.1연에서 뜰악과 태와마루에 긴풀이 자랐다는 내용에서 떠올린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바로 몇 해전 어느 시골에서 보았던 몇 해 사람이 살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폐가 앞에 사람 키만큼이나 자라버린 잡초 들이었다. 시가 쓰여졌던 당시는 1956년으로 6.25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아마도 그때까지도 전쟁의 상처는 남아있고, 아직 복구가 되지 않은 곳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은 많이 지치고 피폐해져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을 긴 풀(잡초)이 자란 것으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처들을 주변, 구석에서부터 차근차근 치유하고 복구하고자 한다. 길게 자라난 풀을 자를 수는 없겠지만 눕히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부분에서 부터 시작된 노력은 중앙을 거쳐 전체로 나아간다. 전쟁에 대한 상처를 한꺼번에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부분에서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다보면 언젠가는 극복될 것이라는 의지를 담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3연에서의 내용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아직 희망은 살아있다라고 단순하게 해석하였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의 마지막의 대사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 처럼 아직 우리의 희망은 지지 않고 머물러 있다고 해석하였다.
뮤지컬 「그리스」를 보고 나서뮤지컬 ‘그리스’, 학생들이 하는 것이기에 큰 기대를 갖지는 않았지만, 학교 안에서 그것도 무료로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기에 몇 주 전 포스터가 붙었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출연한다기에 과제 얘기 듣기 전에 목요일 첫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맨 뒷자리다 보니 제대로 못보고, 그리고 다음날 과제 소식을 듣고 제대로 다시 봐야겠다 싶어서 금요일 저녁 공연까지 총 두 번을 보았다.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감상평을 말해보자면, 우선 나는 원작 뮤지컬이나 영화를 본 적이 없어 원작과의 비교는 힘들 듯 하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이라면 초반에 나오는 “Summer Nights"란 노래가 귀에 익은 것 정도이다.공연 내용을 말하기에 앞서 우선 나는 공연장 규모에 놀랐다. 벨칸토 홀을 처음 와보는 나로선 우리 학교에 이렇게 큰 공연시설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공연의 무대 장치며 조명장치, 각종 소품 등에서 꽤 많은 비용과 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간게 역력히 느껴졌다. 제작비만도 몇천만원 소요되고(하긴 배우들 스탭 들 밥값만 해도 꽤 들어갔을 테니..) 금요일 마지막 공연 끝나고 무대 철거하는 데만도 새벽이 돼서야 끝났다는 뒤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우리 국문과에서도 바로 일주일전에 연극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를 무대에 올렸었는데, 제작 여건이나 관객수 등 너무 비교되는게 많아서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하지만 훌륭한 무대설비에도 불구하고, 조명이라든가 오디오 쪽에서 계속 실수가 나와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아쉬웠다. 특히나 첫날 공연에서 어느 한 씬에서 배우 한명의 오디오가 너무 울리는 일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배우들이 당황해서 연기까지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그래도 그런 일이 일어났음에도 다른 실수 없이 연기하기에 그래도 배우는 배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첫날 공연 때는 맨 뒷자리에서 보느라 잘 못 봤었는데, 금요일 공연때는 좀 앞자리에 앉아보게되, 무대 스탭 들이 움직이는 것까지 볼 수 있었는데, 공연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은 채, 무거운 세트를 밀고 다니는 모습을 볼때, 그리고 공연 당일 뿐만 아니라, 준비과정, 그리고 마지막 철거하고 정리하는 것까지 이만 저만 수고가 아니었을 텐데, 새삼 무대스탭 들이 공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그럼 본격적으로 공연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면, 바로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은 이런 때에 쓰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겠다.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길지 않은 두 시간 반 동안 지루하지 않게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보게 하는 좋은 공연이었다. 특히나 두 번째 볼 때는 벌써 한 번 본거라, 두 번째 볼 때는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두 번째에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았다.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있다. 우선 단체로 하는 춤이나 노래에 대해서는 호흡이 딱딱 맞는게 많이 준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지막 날 공연 때 가까이서 볼 때는 소소한 실수 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크게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배우 들 개별적인 연기들을 볼 때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다. 특히나 두 주인공 대니와 샌디는 주인공이라 하기에는 뭔가 카리스마라든가, 무대를 장악하고, 관객을 흡입하는 것이 좀 부족해 보였다. 특히나 둘다 발성이 문제인지 노래할 때 그런 모습이 더 강하게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샌디역의 배우는 샌디라는 캐릭터가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시종일관 뭔가 답답하고, 침울해 보였다. 그나마 마지막 부분에 와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서야 제 모습을 찾은듯 보였다. 그 둘의 솔로 곡 보다 다른 배우들의 솔로나 다른 장면에서 환호나 박수가 더 나온 것을 보면 비단 나만의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번 뮤지컬 “그리스”에서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이고, 박수와 환호를 가장 많이 받은 배역은 리조가 아니였나 싶다. 물론 주연이 아닌 조연이 더 독보인 건 그 조연도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번에는 리조역이 역에 맞지 않게 너무 돋보이게 나왔다기 보다 두 주인공이 너무 소극적으로 나온게 더 큰 원인이지 싶다. 그리고 계속 비판만 하는거 같아 좀 미안하긴 하지만 몇마디 더 붙이자면, 공연을 두 번 봤기에 두 번째 공연에서는 중간 중간 전과 다른 애드리브가 나오곤 했는데, 그게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아, 좀 아쉬웠고, 그리고 파티 장면에서 대니역의 배우의 잘못인지, 아님 둘의 호흡문제인지, 차차역을 맡은 배우가 두 공연 모두 연거푸 몇 번씩 넘어졌는데, 넘어질때 마다 안타깝기도 했고, 공연의 큰 옥의 티가 되어 많이 아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