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를 다음의 네가지 관점에서 밝혀라.①궁극적 실재에 대한 견해불교는 이 세계를 만든 창시자는 존재하지 않고 무사 이래로 이세상이 존재 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했고 하느님의 뜻이 따라야만 하는 진리라고 한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불교는 모든 실재를 부정하는 종교로 그리고 기독교는 궁극적인 실재를 인정하는 종교로 알려져 왔다.불교에서의 궁극적 실재는 법신(法身)·공성 (空性)·진여(眞如)·제법실상(諸法實相)·불성(佛性)· 법성(法性) 등의 다양한 용어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실재의 고정 불변성을 부정하는 사유 체제를 지니고 있는 불교의 기본 입장에서 볼 때, 종교현상의 기술에 흔히 사용하고 있는 ‘궁극적 실재’라는 용어가 꼭 적합한 개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불교의 연기사상이나 공 사상은 사실상 궁극적 실재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에서 궁극적 실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 그것은 존재로서의 실재가 아니라 깨달음의 체험이나 가치를 말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우주의 궁극적인 실재를 셈족의 종교(semitic religion)에서는 인격적 실재로 믿고 있는 데 반하여, 불교에서는 비인격적인 것(impersonal)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신불 (化身佛)로서 태어났던 석가모니불이나 보신불(報身佛) 등의 인격적인 부처님은 방편으로 화현한 존재이지 궁극적인 법체 자체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부처의 본신은 불생불멸(不生不滅)한 진여(眞如)이나 다만 인연에 따라 의식있는 존재들에게 현현할 뿐이다.그러므로 〈금강경(金剛經)〉에는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려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함이라 여래를 능히 보지 못하리라”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부처님의 모습은 부증불감(不增不減)한 제법의 진여 실상 그 자체이다. 〈화엄경〉 세간정안품(世間眼品)에 “부처님 몸은 청정하고 항상 고요하다. 시방(十方)세계를 비추더라도 그 자취가 없고 형체를 나타내지 않으며 마치 허공에 뜬 구름 같다. 이처럼 부처님의 몸은 고요한 선정의 경지이므로 어떤 중생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부처님 몸은 다할 수 없으며 모양이 없으니 무엇에나 걸림이 없다”고 설하고 있다.여기에서 불교의 궁극적 실재를 이해함에 있어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궁극적 실재는 존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바르게 보는 깨달음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궁극적 실재를 불교에서는 언제나 이원적 분별을 떠난 인식과 체험적인 차원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법신을 일심(一心)이나 여래장(如來藏), 불성(佛性)과 같이 마음의 문제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이에 반해 기독교의 입장에서 시공간은 그 자체가 하느님의 창조에 의한 것이다. 하느님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다소 어려운 개념인데, 존재라는 것 자체가 시공간 안에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성서적 전통에서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하느님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로 주장한다. 이것을 신학적 개념으로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라고 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스스로 와서 스스로 가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창조하시고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고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 근거를 하느님에다 두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궁극적인 실재이다.②인간의 현존이 불완전한 이유기독교와 불교의 교리조직을 연역해 보면 기독교에서는 우주와 인간은 창조신이 무(無)로부터 창조한 종속적 피조물이다(宇宙論). 그런데도 인간이 만일 그 사실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주(主)'라고 여긴다면, 이런 교은 신의 뜻을 어긴 죄(原罪)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고, 죄에 필연적으로 괴로운 형벌이 따를 것이다(人間觀). 따라서 죄에 빠진 인류는 오직 신앙을 통한 신의 은총과 인간의 속죄 의해서만 구원을 바랄 수가 있다. 그러나 불교에 의하면, 인간은 진리에 대한 무지의 상태 속에 있다(無明). 이런 무지 있게 되면 그것에 의해 생사의 괴로움이 일어난다(緣起論). 따라서 괴로움에 빠진 인간은 오직 깨달음에 입각한 스스로의 행을 통해서만이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가 있다.③인간이 본래성을 회복하기 위해 실천해야 할 것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 구원받은 사람은 인간의 모든 자기 보장을 포기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살아 간다. 하나님에게 자기를 철저히 맡기며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시기를 기다리는 이 헌신을 통하여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이러한 자유로운 삶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가능하다. 이 때 그의 참된 미래가 열리며 인간은 자기의 본래성에 도달한다.그리고 불교에서는 해탈하는 것이 본래성 회복이라고 본다. 인생은 왔기에 가야하고 가면 또 돌아와서 한없이 육도(六途)를 빙글빙글 돌면서 끝없는 윤회의 괴로움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를 막론하고 괴로움을 면하려고 하지만 면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므로 싫든 좋든 간에 윤회하게 된다. 이 괴로운 윤회에서 헤어나는 방법이 바로 해탈법이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이 부지불식간에 사실상 해탈을 원하고 있으며, 특히 슬기로운 사람과 천당 극락 등의 세계일수록 한결같이 해탈을 갈망하며, 구경(究境)목표로 삼고 있지만, 해탈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④궁극적 목적깨침의 종교인 불교는 모든 사람들이 다 깨쳐서 부처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깨침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깨침이 필요한 것은 깨침을 통해 우리는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하나인 존재의 실상을 모르는 우리는 나와 이웃, 나와 세계를 나누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간다. 모든 것에 욕심내고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성내고 짜증낸다. 그 결과는 대립. 갈등이요, 괴로움이다.
여러 추천 도서 중에서 이 책의 제목이 나의 눈을 끌었다. 아동기의 실종.. 왠지 낯설게 느껴졌지만 현재 아동들의 현실을 잘 보여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 책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그런 생각들을 통해서 내가 지금까지 미처 깨닫지 못한 아동들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했다. 또한 미래의 교사로서 잘못 알고 있었거나 또는 잊고 있었던 진정한 아동기의 개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요즘 유치원 교육을 거의 받지 않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유치원 교육이 학교교육처럼 당연시되어 가고 있다. 그만큼 유아 교육의 중요성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모든 유아 교육이 제대로 되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교육기관인지, 어떤 성품의 교사인지에 따라서 아이들이 받는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의 가르치는 방법이나, 행동의 변화에 따라 배우는 아이들이 크게 변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만약 교사가 된다면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단지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완전한 교사가 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배려 할 수 있는 마인드와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아이들에 맞게 전달 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이 책에서 다섯 종류의 유아교육기관에 대해서 서술에 놓았다. 그 다섯 종류의 유아교육기관 중에서 나는 우선 두 개의 기관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첫 번째 기관은 롤리팝 교육센터이다. 이 교육기관은 영리추구를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교육기관의 목표인 교육보다는 아이들을 이윤추구의 수단으로만 보았다. 이 유아원에서는 차별, 소외, 무관심이 만연했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해졌다. 그리고 교사와 아이사이, 아이와 아이사이에서도 인간다운 관계가 성립되지 못했고,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바르게 자랄 수 없게 되었다. 물질만능 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롤리팝과 같은 교육이 행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의 교육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두 번째 기관은 롤리팝 교육센터와 반대되는 부분이 많았던 마틴 루터 킹 보육 센터였다. 이곳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탁아소로 운영 되어가고 있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할머니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선생님 보다도 할머니의 영향력을 가장 큰 것으로 보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확대가족의 분위기를 만들어 전통적인 권위주의를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자유로움과 자발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아동들은 수업을 통해 개인주의보다는 협동적이고 사회적으로 변화하고,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아동기의 경험을 충분히 느끼게 해줄 수 있어서, 매우 인상적 이였다. 어느 정도의 자유와 구속이 적당하게 유지되어 있는 분위기에서 아동들도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참 좋은 교육기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뭘까? 단지 과거 조상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역사를 배우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간단하고도 정확하게 대답해 주었다. '과거는 현재의 원인이고 현재는 과거의 원인이다' 라는 말처럼 과거의 일은 현재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과거사를 앎으로 인해 미래에 더 나은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조언해주기 때문에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지금까지 우리 역사에 관해서 교과서나 TV, 책 등을 통해서 많이 접해봤다. 고등학교 때도 수능을 위해 우리 역사를 단 두 권으로 요약해 놓은 국사 교과서를 수도 없이 들여 다 보았었다. 특히 500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시대를 몇 천년동안의 역사보다도 더 많이 기술해 놓았다. 조선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의 바로 전 시대였고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쳐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교과서를 통해서 배웠던 역사는 너무 딱딱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졌고 진정으로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었다.이 책은 조선 시대의 생활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있어 조선시대에 대한 좀 더 많은 지식들 그리고 정확한 지식들에 대해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또 이론적이고 딱딱하게 역사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교과서와는 달리 이 책은 소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또 조선시대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부분이 많아 내가 잘못 알고 있던 조선시대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이 책에서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첫 번째로 조선시대의 경제에 관한 것이다. '돈 한 냥, 쌀 한 말, 베 한 필의 가치'라는 제목의 글에는 조선시대의 경제에 대한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농업사회에서 상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든지 돈의 발생, 물가 변동 등에 대해 설명해줌으로써 조금이나마 그 시대의 경제 활동을 알 수 있었다. 산업사회가 도래하기 전까지 경제생활의 기반이었던 농업사회에서 상업이 발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토지 생산성의 발달에 있다. 농기구와 우경이 발달하고 연작법과 모심기법이 보급되면서 토지생산성이 급속도로 높아져갔고 이 결과로 잉여 생산물이 증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연적 제약 때문에 일부 물자를 교역에 의존해야만 했고 이런 상황들로 인해 교역은 확대 되어 갔다. 그러면서 시장이 성장하였고 자급자족은 줄어들게 되었다. 시장에서 교역이 확대 됨으로써 교화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 기능을 담당하는 화폐가 출현하게 되었다. 상평통보가 발행되기 전에 금속화폐 유통이 활발하지 않았지만 쌀과 삼베와 같은 물품화폐가 널리 통용되었고 이들 물품화폐도 훌륭한 화폐의 기능을 했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동전과 저화 등 금속화폐의 통용을 추진했었지만 그 당시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실패하게 되었고 조선전기에 은화가 '돈'으로 인식 되었지만 고액 화폐였으므로 여전히 서민 경제생활에서는 무명이 화폐의 기능을 담당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17세기 이후 지방 시장이 성장 함으로써 금속화폐의 통용이 가능하게 되었고 화폐경제가 성장함으로써 상업적 동기를 촉진 시켜 경제생활, 나아가 사회생활 전반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하였다. 하지만 화폐경제의 부정적 측면 때문에 한때 동전 사용이 폐지 되기도 하였지만 이런 제도의 결과는 더욱더 농민 몰락을 조장하게 되었고 이미 화폐경제가 농촌경제를 포섭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동전주조는 꼭 필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상업이 발달하고 화폐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조선은 농업만큼 상업 활동 또한 활발하게 전개 되었다.두 번째로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신분사회의 피해자 : 백정' 이라는 부분이었다. 백정이라고 하면 굉장한 천민으로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한 신분이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백정이라는 용어는 고려시대에서는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한 농민층을 의미하던 것이 고려 말과 조선 초를 거치면서 주로 도축업. 고리제조업을 종사하던 계층을 지칭하는 데 사용 되었다. 조선시대의 신분은 대개 법으로 규정되어 있어 개인의 정치적 출세는 물론 사회적 지위와 세세한 일상의 생활양식까지 강제 할 정도였다. 노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일률적으로 양인으로 간주하였는데 백정계층도 법적으로는 양인 신분이었다. 하지만 다같은 양인이라 하더라도 양반과 신략역천인의 실제 사회생활에는 엄청난 신분적 차별이 존재했었다. 신량역천은 법적으로 양인 신분이었으나, 천한 역을 지고 있어서 사회 내부에서 천인에 가까운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던 계층이었다. 신량역천가운데는 일반 양민의 주거 지역에 섞여 살고, 신분상승의 기회도 있는 부류가 있는 반면, 백정은 일반민들이 상종하지 않는 부류로써 노비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받았었다. 그리고 이런 계층의 사람들은 정부의 차별 정책과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 습성으로 인해 자연히 역을 세습하게 되었다. 하지만 조선 전기의 백정은 조선 후기만큼 멸시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양반과 백정의 주거공간이 엄격히 분리되었으며 더구나 백정의 집에서 사람이 길러지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백정에 대한 일반의 인식의 변화는 백정에 대한 국가의 차별정책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커 조선 후기에 들어와 크게 변화 되었다. 백정들은 통행증서를 지참해야지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모든 백정들은 특정 방 및 촌에서 살도록 정했으며 호적도 따로 작성하여 보관하였다 그리고 가혹한 억압과 형벌도 적용하였으며 백정에 대한 사회적 멸시는 더욱 심해서 일반인들과는 떨어져 읍 박의 일정 지역이나 농촌 촌락의 외진 곳에 집단을 이루어 살아야 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백정들의 처지가 노비보다 그리 낫지 않았음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후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법제적 차별은 사라졌다 하더라도 관습상의 차별은 여전하여 보이지 않는 차별은 계속되었다. 이런 차별에 백정들은 계속 저항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1920년대의 백정신분 해방운동이 형평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이런 신분적 차별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 당시 백정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에 대해 알고 나니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세 번째로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담뱃대의 길이는 신분에 비례한다'라는 부분이었다. 여기서는 전통사회의 기호품이었던 차와 담배에 관한 내용이었다. 현대의 기호품은 술과 차. 커피 등의 음료, 담배 등이지만 술은 아주 옛날 부터의 기호품이었고 커피는 문명 개방 후 등장 한 것이기 때문에 술과 커피를 제외하면 종래에 즐겨 애용한 기호품은 차와 담배이다. 담배는 조선시대에 처음 들어 온 것이라서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장기간에 걸쳐 건전한 기호품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 온 것은 차이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차를 마셨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통일신라 때 불교 승려 사이에서 차를 마시는 풍습이 퍼져 있었고 고려 때는 차를 마시는 풍습이 귀족사회 내부에 널리 펴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납 등의 조세제도에 의한 지배층의 가혹한 수탈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차를 기호품으로 애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차가 백성들에게 기호품의 지위를 상실해 가자 그 대신에 등장한 것이 담배였다. 담배는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에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추측 되는데 초기에는 담배를 약초로서 인식되었지만 점점 흡연의 해로움을 깨달으면서 흡연에 대한 찬반 논쟁이 전개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담배는 민중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고 남녀노소 할것없이 담배를 피우게 되어 옛날 이야기의 첫머리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는 말이 붙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은 한편으로는 짐승조차도 마음대로 담배피우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고 한다. 즉 신분에 따른 담배 예절이 갖추어지면서 미천한 자는 존귀한 분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였고 조관들이 거리에 나갈 때 담배를 피우는 것을 금하기를 매우 엄하게 할 정도로 일종의 흡연문화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담뱃대의 길이가 곧 신분의 높낮이를 나타내게 되었다. 초기의 담뱃대는 담배가 일본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담배통도 작고 설대도 짧았었다. 하지만 18세기 풍속도를 보면 이미 담배통이 커진 장죽이 유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장죽으로 담배를 피우게 되면 혼자서 담배통에 불을 붙이면서 물부리를 빨 수 없기 때문에 불을 붙이는 하인이 딸리게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장죽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은 양반층을 비롯한 여유 있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계층에 국한되었고 일반 상민들은 곰방대를 애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담배 피는 문화 하나에서도 조선시대의 신분제도 및 생활상을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담배가 전래될 무렵을 전후하여 여러 농작물이 전래 되었고 그것은 농민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감자와 고구마, 그리고 옥수수가 전래됨으로써 농민들은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고 담배가 상업작물로 재배됨으로써 농민의 경제력 향상에 큰 몫을 하였다. 고려 말에 전래된 목화가 조선 건국 후 빠른 속도로 보급되어 우리 민족의 의생활에 일대 변혁을 초래하고 장시가 출현하는 하나의 바탕이 되었듯이 담배 전래 또한 우리 민족의 삶을 많이 변화시켰다. 담배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재배되어 국내 수요자는 물론 중국까지 공급됨으로써 농민층의 경제력과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나아가 수요를 충족을 위한 자급자족적 농업경제 단계로부터 벗어나 차츰 상업적 농업이 발달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 담배는 술과 함께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중요한 물품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아직까지도 우리 민족과 삶을 같이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