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생전(麴先生傳)가전 문학은 대개 어떤 사물을 의인화해 그 생애를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도 술을 역사적 인물처럼 의인화하여 그 가계와 생애 및 개인적 성품,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는 인물에 대해 평가를 내리고 있어서, 작가가 계세징인을 목적으로 지은 교훈적이며 우의적인 성격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보면, 이야기는 ‘성(聖)’의 집안 내력으로부터 시작된다. ‘국성’이라는 이름과 자, 관향이 나오는데, 성의 관향인 주천이나 그에게 이름과 자를 지어 준 서막은 술과 관련된 중국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그의 먼 조상은 ‘온(溫)’이라는 고장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이는 누룩이 따뜻한 온도에서 잘 뜨기 때문에 따뜻한 곳에서 살았다는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차(흰술)’이고 어머니는 ‘곡씨(穀氏)’의 딸이다. 이 역시 술과 술의 재료가 되는 곡식을 의인화한 것이다. 이처럼 글의 첫부분에서는 술의 성질과 그와 관련된 고사를 이용하여 ‘성’의 집안 내력을 밝히고 있다.다음으로는 성의 성품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도량이 넓고 침착하여 아버지의 손님이 성을 더 좋아할 정도라고 하며 그 됨됨이가 뛰어남을 이야기한다. 이는 성이, 가라앉는 것이 없고 흔들어도 흐려지지 않는 맑은 술을 의인화한 것임을 뜻한다. 국성이 자라서는 중산의 유영, 심양의 도잠과 더불어 벗이 되었는데, 이들 역시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술을 좋아했던 인물들이다.성은 넉넉한 덕과 맑은 재주로 임금의 총애를 받게 되어 벼슬을 하게 되는데, 곧 더 높은 벼슬에 오르며, 국선생이라 불리운다. 이 부분에는 술이 상에 차려져 임금 앞에 오르는 것을 교자를 탄 채로 전에 오르게 하였다고 하여 성이 임금에게 매우 사랑받았음이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임금의 총애가 극에 달하자 성은 임금을 좇아 잔치에 함부로 노닐고 그의 세 아들은 아비가 임금의 사랑을 받는 것을 믿고 방자하게 굴었다. 술을 지나치게 가까이 하여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에 모영(붓의 의인화)이 성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고, 그 결과 성의 아들들은 자살하고 성은 서인이 되었다. 성과 더불어 임금의 사랑을 받으며 서로 희롱하고 지내던 치이자(말가죽으로 만든 술을 담는 주머니를 의인화)도 수레에서 떨어져 자살했다.성이 벼슬에서 물러나자, 제 고을과 격 고을 사이에 뭇도둑이 떼지어 일어났다. 성이 벼슬에서 물러났다는 것은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성(聖)이 수성에 물을 대어 한 번 싸움에 이를 함락시키는데, 근심을 술로 달랬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공으로 성은 다시 벼슬에 오른다.2년 후 성은 임금에게 상소하여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며 스스로 물러가 조용히 여생을 마치기를 바란다. 임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돌아온 성은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마쳤다. 작품의 마지막은 사신(史臣)이 “국씨는 그 덕과 재주로 큰 공을 이루었으며 스스로 물러나 천수로 세상을 마쳤으니, ‘기미를 보아 이루어 나간다’는 말이 성에 거의 가깝다‘고 말해 그의 공적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술의 성질에 빗대어 신하의 처신에 대한 권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흥이 나고 사람을 즐겁게 하지만, 과하면 행동을 통제하기 어렵게 되고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술 자체에 초점을 둔 신하의 입장에서 본다면, 신하는 임금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덕과 맑은 재주로 나라를 위해 힘써야 한다. 하지만 총애를 입는다 하여 신하의 도리와 본분을 지키지 못하고 국가에 해를 끼치게 되면 결국 파멸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글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며 때를 보아 물러날 줄도 아는, 순리에 따라 바르게 처신하는 신하의 바람직한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이규보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종을 초월한 사랑과 그 결말의 의미- 불교적 관점을 벗어나서 본 김현감호1. 김현감호에 드러나는 일연의 시각김현감호에는 김현과 호랑이 처녀의 이야기와 신도징의 이야기 두 가지가 나온다. 두 이야기 다 인간과 호랑이의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김현의 호랑이는 자신을 희생하여 김현을 돕고 의롭게 죽은 반면, 신도징의 호랑이는 남편과 아이를 배반하고 떠났다. 불교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신도징의 이야기는 앞의 이야기를 더욱 강조하기 위한 ‘반증’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김현감호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연은 “비단 짐승의 성품이 어질 뿐만 아니라 대개 부처가 미물에 감응하는 방법이 여러 방면이어서 김현이 정성껏 탑을 돌자 정성을 다한 것에 감응하여 보답하고자 한 것이니, 그때 복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고 하여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다. 이야기에 불교적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김현의 탑돌이에 큰 의미를 두어, 김현의 정성이 부처를 감동시켰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일연의 관점으로 보면, 김현의 앞에 나타난 호랑이 처녀는 부처가 김현의 소원을 들어 주기 위해서 보낸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부처의 화신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김현의 정성이 부처를 감응케 했다는 점을 중요시하고 있으므로, 일연에게 김현의 호랑이는 더 높이 평가될 수 밖에 없었다.2. 김현감호에 나타나는 설화성일연은 삼국유사에 당시 구전되던 설화를 많이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본인의 역사의식, 종교의식이 강하게 개입되면서 원래 이야기의 모습이나 의미는 많이 변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연은 앞의 두 이야기를 불교적 관점에서 보고 있지만, 사실 두 이야기는 서로 다른 존재인 남녀의, 종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김현감호는 ‘호원(虎願)’이라는 이름으로도 전해지며 《수이전》에 실려 있던 이야기로, 원래 사원연기설화였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불교와는 관련이 없이 떠돌던 이야기가 호원사라는 절이 생기면서 불승에 의해 의도적으로 윤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연이 그 뒤에 끌어 온 신도징의 이야기 또한 중국의 설화집에 나오는 이야기로, 불교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다.두 이야기에서 일연의 의도(불교적 관점)를 배제하면 그 설화성을 바탕으로 하여 민담의 특성의 일부와 관련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우선 민담은 꿈과 상상의 세계를 다룬다. 민담에서는 나무꾼이 선녀와 혼인하고, 평범한 인간이 악룡을 퇴치하고, 우렁이가 각시로 변하고, 쥐가 사람이 되는 등의 변화무쌍한 상상의 세계가 마음껏 펼쳐진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엄연히 현실적 삶이 존재하므로 그 상상의 세계가 현실과 맺고 있는 연결고리가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민담은 꿈과 현실의 상호작용을 통해 불가능한 일을 실현 가능한 모습으로 그려낸다.) 인간과 호랑이의 사랑이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민담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또한 민담은 기본적으로 일상성과 보편성을 지향한다. 신화와 전설이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면, 민담은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 혹은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들을 다양한 상상을 통해 보여주며, 그 일이란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들이다.) ‘남녀의 애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정서이다. 따라서 호랑이와의 사랑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일상에 존재하는 불변의 가치인 ‘사랑’이라는 주제를 민중의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창조해 낸 문학적 소산인 것이다.3. 종을 초월한 사랑의 비극적 결말과 그 이유종을 초월한 사랑이 소재가 되는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렁각시’ 이야기나 일본의 설화인‘베 짜는 학’, 그리고 종류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선녀와 나무꾼’등이 있다. 이 이야기들에는 모두 어떤 ‘금기’가 존재한다. ‘우렁각시’나 ‘베 짜는 학’의 경우는 그 본모습을 보이면 안되는 것이 금기였고, ‘선녀와 나무꾼’은 선녀가 아이를 셋 낳기 전에는 날개옷을 돌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있었다. 금기를 어길 경우에는 시련이 닥쳐오게 되고, 그 시련을 이겨내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사랑이 좌절되고 만다. 혹은 금기를 어기는 것이 바로 비극적 결말로 이어진다.김현과 신도징의 이야기는 위의 이야기들과는 다르다. 김현감호에도 금기가 존재한다. 김현은 탑돌이를 하다가 호랑이 처녀를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일연은 김현의 탑돌이에만 큰 의미를 두고 있으나, 호랑이 처녀 또한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호랑이 처녀는 탑돌이를 하면서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을 지도 모른다. 김현과 인연을 맺은 호랑이 처녀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돌아오려 하나, 김현은 궂이 그녀를 따라간다. 그리하여 결국 그녀의 정체가 호랑이임이 밝혀진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짐승이 등장하는 여러 이야기에서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동안 상대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켜서는 안되는 금기가 있다. 호랑이 처녀 또한 그 금기를 어기게 되었으므로 결국 완전한 인간이 되어 김현과의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신도징의 이야기에는 특별히 금기라 할 만한 것이 없다고 보여지지만, 신도징의 이야기에 생략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아 어쩌면 신도징의 이야기 속에도 둘의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꼭 지켜야만 했던 금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그리고 신도징의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신도징과 호랑이 아내의 이별을 공간적 배경과 관련해서 살펴볼 수 있겠다. 신도징이 현위로 부임해 가는 길에 잠시 머물게 된 초가집은 길가에 있는 외딴 집으로, 이 곳을 짐승인 호랑이의 공간이라고 보고 신도징이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가려 하던 본가를 인간인 신도징의 공간으로 본다면, 부임지인 십방현은 호랑이의 공간도 인간의 공간도 아닌 제3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인 신도징과 짐승인 호랑이가 융화되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도징이 본가로 돌아가려 하자 호랑이는 자신이 인간의 공간으로 가기에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므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음을 예감한다. 이는 “신도징이 벼슬을 그만두고 가족을 데리고 본가로 돌아오려 하자, 아내는 갑자기 슬픈 기색으로”라는 부분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내가 본래 살던 집에 들렀을 때, 아내는 벽 모서리에 걸린 호랑이 가죽을 보고 크게 웃고는 그 가죽을 뒤집어 쓰고 호랑이로 변해 으르렁거리다가 뛰쳐나가는데, 신도징이나 아이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처지를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루소의 『에밀』요약제2부에서 루소는 유년기를 다루고 있다. 유년기의 아동을 아이라고 칭하는데, 유년기를 넘어선 소년기의 아이는 말을 할 줄 알게 된다. 이 시기에는 주로 언어의 습득과 시ㆍ청ㆍ촉각 등 오관의 연습 즉, 감각의 경험을 통해서 학습하는 때이다. 아이의 발육 2단계에서는 참다운 개인 생활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자각이 생기게 되므로 이 시기의 아이를 처음으로 일개의 도덕적 존재라고 생각해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초기 교육은 아이들의 마음이 악덕이나 잘못된 정신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하는 순전히 소극적인 것이어야 하고, 한 개의 인간을 만들려고 계획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인간이 되어 아이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는 말로 주는 교훈이 아닌 경험만으로 교훈을 주어야 하고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죄를 시키거나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인간은 나면서부터 자기를 사랑하는 감정만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선해 질 수도 있고 악해 질 수도 있으므로 이를 지도하는 일이 중요하다. 아이를 선해지는 길로 이끄는 방법은 자연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만을 시키는 것이다. 아이에게 확실히 해 주어야 할 것은 소극적이지만 가장 어려운 “남을 해치지 말라”는 유일한 도덕적 교훈이다. 교훈은 말보다는 행위를 통해서 주어야 한다.(행위는 말과는 달리 잘 잊혀지지 않는다.) 따라서 교사는 사실에 따라 교훈을 가르치며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할 뿐이다.3부는 12세부터 15세까지의 소년기를 다룬, 중간 교육기 혹은 과도기에 관한 고찰이다. 이 시기에는 욕망의 발달보다 체력의 발달이 훨씬 큰 시기로 가장 격렬하고 무서운 욕망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불균형한 과도기이다. 이 시기는 상대적으로 힘이 최대가 되며, 감각이 관념으로 전환되는 시기로 적극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때이다. 교사는 자연현상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면서 정확하고 간단한 관념만을 주입시키는데 유의하여 진리 자체를 가르치기보다 언제든지 진리를 발견하는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이는데 힘써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책 속의 지식에 치중하기보다는 자신의 노력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물교육, 사실의 관찰, 경험 존중이 판단력 양성에 치중해야 한다.이 시기에는 또한 생계를 위한 직업 교육이 요구되기도 한다. 루소는 인간을 사기꾼처럼 무의 도식하게 만드는 당시의 유산제도를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순수한 기계적 기술로서 수공의 직업을 권장한다. 이는 귀족 사회의 생활을 비판하고 시민의 신성한 노동 의무를 강조한 것이다.2. 감상 (교육적 의미)『에밀』은 주인공 에밀이라는 이상적인 모델을 설정하여 그를 기존 문명사회의 악으로부터 보호하여 인간의 선한 본성이 구현되도록 하는 이상적인 성장과정을 그려 놓은 책이다. 루소는 이 책에서 자신의 교육관에 대해 피력하고 있는데,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에 앞서 어른들이 생각하는 어린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한 다음 참된 교육의 의미와 교육의 종류, 자연에 따르는 교육의 기본권리, 부모와 교사에 대한 자격론 등을 제시하고 있다.루소는 아동기까지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고 또한 가장 위험한 단계로 보고 있는데 이는 만약 이 시기에 인간의 본성이 스스로 발현되도록 하지 않는다면 그 이후의 교육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루소는 그의 독특한 교육 방법인 소극적 교육을 제시한다. 소극적 교육이란 한마디로 ‘교육하지 않는 교육’으로서 종래의 적극적 교육에 대해 반대의 개념을 가지는 교육이다. 즉 교육자가 아동에게 무엇인가를 의식적으로 형성하려 해서는 안되며 인간에 내재해 있는 자연이 스스로 발현되도록 하기 위해 그러한 발현을 저해할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배제하라는 것이다.루소의 교육관은 성선설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교육과는 달리 아동을 존중하는 교육이 가능해진다. 인간에게는 이미 성장할 수 있는 자질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발현할 환경만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1. 들어가며1920년에 시작된 김동인과 염상섭의 논쟁은 우리 비평사에서 최초의 논쟁으로 꼽힌다. 김동인이나 염상섭 모두 소설가로서 한국문학사에서 빠질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이기도 하고, 김동인과 염상섭은 한국에서 근대문학을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린 당사자들이면서, 당시 동인지시대의 『창조』와 『폐허』를 이끌어가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아 왔다. 그러니 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들의 논쟁은 관념적?추상적인 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작품의 비평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 하다.본문에서는 김동인과 염상섭의 비평 논쟁이 시작된 배경과 논쟁의 내용, 그 의의와 한계에 대해 살펴보겠다.2. 김동인-염상섭의 논쟁(1) 논쟁의 시작과 내용김동인과 염상섭의 논쟁은 김환이 1920년 1월 『현대』 창간호에 발표한 「자연의 자각」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뒤에 염상섭이 이를 비평한「백악씨의 ‘자연의 자각’을 보고서」를 김동인이 「제월(霽月)씨의 평자적(評者的) 가치」라는 글을 통해 반박한 데서 시작된다. 1920년 5월부터 1921년 5월에 걸쳐 세 차례 공방을 주고받는 7편의 글이 직접적으로 논쟁을 형성하게 되는데, 먼저 염상섭은 「자연의 자각」에 대해 소설로서 개성이 없는 일기장과도 같아 소설 이전의 작품이라고 혹평을 한다.대패질 안 한 문장으로 그린, 소설의 중심 생명이라고 할 만한 개성-개성이란 말은 인물에만 한한 것이 아니다.-의 암시없는, 평범한 P와 K, O와의 교제사, 더 심하게 말하면, 소설 중 인물인 K의 노골적 자아광고(自我廣告)라고 하는 것이 씨의 「자연의 자각」을 평가하는 나의 부르는 최고액이다. (중략)소설을 쓰는 목적이 자기광고에 있을 때, 그의 예술은 타락의 심연으로 따로 최촉(催促)하는 운명밖에 없음을, 나는 그 작자를 위하여 슬퍼하고 그 문단의 기풍을 위하여 통곡하는 바이다.)그런데 이러한 염상섭의 비평에 대해 반박을 하고 나선 것은, 당사자인 김환이 아니라 김동인은 같은 달에 나온 『창조』5호에서 다음과 같이 혹독한 비판을 가한 바 있다.백악(白岳)군의 「자연의 자각」(『현대』1월). 군 자기도 언제 말한 바와 같이 だめ(실패)이다. 통일이 없고 묘사까지 허투로 되어 있다. 주인공의 성격도 모르겠고, 또 주인공 P의 심리를 직접으로 묘사하여 나오려던 군은 ‘P는 여사여사하였다 한다’ ‘P는 무엇하는 듯하다’로 어느덧 제3자로 되고, 편지의 ‘자연을 자각하였다’하는 그 자연까지 똑똑치 않고, 또 내용의 조화는커녕 주지(主旨)까지 어떤 철리(哲理)를 표현함이련지 어떤 인생관을 표현함이련지 알 수 없다. 인도주의와 이기주의의 범벅이다.)이렇듯 김환의 작품에 대해 혹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제월씨의 평자적 가치」라는 글을 통해 염상섭의 견해를 반박한다. 염상섭의 「자연의 자각」에 대한 견해는 앞서 비평한 김동인의 견해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므로 김동인의 반박은 염상섭의 작품론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염상섭의 비평 태도에 대한 것이 되고 만다. 김동인은 ‘작품의 조화된 정도를 논한 것보다 백악씨에게 대한 이유 없는 인신공격뿐’이라는 주장을 통해 비평가의 비평태도를 문제삼으며, ‘작품 비평가는 다만 그 작품 비평에만 진실하여라. 그 작품이 자아광고이든 무어이든 그것은 볼 필요도 없거니와 볼 권리도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김동인 비평관의 핵심인 형식주의 비평관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김동인은 평자 염상섭이라는 인물에 대한 감정적 공격에 주력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염상섭의 비평가로서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추후 회고에서 염상섭의 비평이 사적인 원한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어떻든, 제월씨가 이 비평을 쓴 동기는 모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만 백악씨를 공격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은 그 글이 증명하는 바다.즉 이 평론은 작품에 대한 것보다 인신공격이다. 이것으로 보아 나는 제월씨의 비평가적 자격을 절대로 비인(非認)하며, 따라서 그의 비평가적 가치의 제로임을 절대로 단언한다.)이런 일이 있었습는 사람이 『학지광』편집원 시대에, B라 하는 사람이 『학지광』에 투서를 하였습니다. 그 글을 A가 가치없는 것으로 인정을 했든지? 내지 않았습니다. 그뒤 몇 달 지나서, 그 『학지광』 편집원이었던 A가 『현대』에 어떤 소설을 내었습니다. 이것을 본 B는 그 소설 비평을 하여 현대사에 보냈는데, 첫머리에 이런 말이 있었답니다.‘이전에 내가 학지광에 투서를 하니까 A가 내 글을 퇴(退)하였기에, A는 얼마나 잘쓰나 생각하였더니 A의 소설을 보니까 이렇다 운운’ 이 구(句)는 편집인인 C군이 삭제를 하여서, 세상에는 발표 안 되고 암암리에 없어져 버렸지만, 비평가 가운데, 이런 사감정(私感情)으로 비평을 하려고 들어붙는 이가 있으니까 한심한 일입니다.)김동인의 이러한 글은 논조가 매우 감정적이다. 염상섭의 비평문은 김환의 작품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에 비하면 이러한 태도는 결코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염상섭은 「여(余)의 평자적 가치를 논함에 답함」에서 김동인의 글이 감정에 치우쳐 있으며, 그 감정이 이른바 동인지 『창조』파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임을 언급한다. 염상섭은 김환과 함께 동인활동을 하고 있는 김동인이, 동인들에 대한 옹호를 위해 앞에 나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염상섭은 김동인의 감정적인 공격에 대해 매우 찹ㄴ하게 대응하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비평가에게 작가의 인격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고 한 것은, 마치 재판관에게 범인의 신분을 조사하지 말라고 한 것과 같다. 자신이 「자연의 자각」에 대한 평을 하면서 작가 김환의 인격에 대해 평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작가의 인격은 당연히 작품에 드러나는 것이므로 작품을 평할 때에 작가의 인격을 음미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평론가가 작품을 평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그 작가의 집필 당시의 경우?성격?취미?연령?사상적 경향 등을 면밀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둘째, 인신공격이라고 하는 것은 공인(公人)을 비판할 때에 사적(私的) 행위,파렴치한 방면을 적발하여 수치를 폭로케 함을 말하는 것이니, 김환의 창작 동기에 대한 평가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 K에 대한 광고가, 작가 김환 자신에 대한 광고라고 지적한 것은 사실을 밝히는 것일 뿐 인신공격이라고 할 수 없다.셋째, 김동인은 자아광고라는 말과 자아표현이라는 말의 의미 차이, 그리고 목적과 자연적 결과의 차이에 대해 분명히 구별하고 있지 못하며, 예술가의 양심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오해를 하고 있다.넷째, 김동인이 말하는 ‘상용일기(常用日記)도 완전한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마치 역사 연대표도 우수한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다섯째, 일정한 사실을 표현할 경우에는 거기에 맞는 적절한 언어를 찾아 쓰는 일이 중요하다.여섯째, 작품에 대해 칭찬은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격만 했다고 해서 그것을 곧 인신공격이라고 보는 논법은 성립될 수 없다.)이러한 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타난 해명 형식의 글에서, 염상섭은 김동인과는 구별되는 문학관을 드러낸다. 김동인은 작품 자체만을 비평할 것을 주장하나, 염상섭은 작품에는 작가의 인격이 반영되는 것이라는 전제를 내세우며, 작품을 평가할 때는 작가의 인격과 집필 당시의 상황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임을 지적한다. 김동인이 작품 자체를 중시하는 내재적 비평관을 제시했다면, 염상섭은 그와 구별되는 외재적 비평관을 보여주는 것이다.염상섭의 반론에 대해 김동인은 「제월씨에게 대답함」을 통해 재반론을 하게 되는데, 김동인은 이 글에서 염상섭에 대한 자신의 대응이 『창조』파의 감정적 대응이 아님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염상섭이 제시한 여섯 항목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지만, 이 반론들은 대부분 초점을 벗어나 있거나 비논리적이다. 그러나 이 글은 김동인의 비평관의 새로운 부분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김동인은 비평이란 작가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독자만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해력이 없는 일반 독자에게 이해력을 주는 것, 독자를 지도임을 그는 주장한다. 염상섭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작가가 집필하던 당시의 경우?성격?취미?연령?사상의 경향 등을 고찰하게 된다면 그것은 작품비평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비평가란, 활동사진의 변사와 같은 것이고 결코 판사(判事)가 아님을 다음과 같은 말로 단언한다.제월씨에게 말하노라. 작품 평자란 활동사진 변사(辯士)와 같은 것이고 결코 판사(判事)와 같은 것이 아니다. 변사는 그 사진의 설명에만 주의하여야지 그 사진의 선악은 평할 권리가 없다하는 말이다.)김동인의 이러한 주장들은 그가 앞에서 보여준 내재적?형식주의적 비평관의 연속선상에서 그 의미가 파악될 수 있다.김동인의 이 글에 대해 염상섭은 「김군께 한 말」을 통해, 김동인이 자신의 말의 의미를 옳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김동인이 자신의 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기보다는 오직 공박하려는 마음만 앞서 있기에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한 것임을 이야기하고 ‘나는 군에게 반성을 요구할 권리는 있으되 일일이 답변할 의무는 없다’는 말로 이 글을 맺는다.)또, 1921년 1월에 염상섭은 동인지 『폐허』를 통해 논쟁 중단의 이유를 해명하며, 논쟁 과정을 회고한다. ‘그러한 무용(無用)의 논전을 교환하기에는 나는 너무 분망도 하였을 뿐 아니라, 그러한 문제의 본말(本末)을 망각한, 감정의 충돌일진대, 차라리 철권(鐵拳)으로 해결함이 편리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함으로써, 김동인과의 감정 싸움에 자시이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는 견해를 내보인다. 아울러 가는 ‘문예비평가를 활동사진 변사에 비하는 것 등에 대하여 일일이 대답하는 것은 마치 예술가를 은방(銀房)의 직공으로 보는 것’과 같이 되어버릴 것이므로 그런 견해에 대해 성실히 논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손해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염상섭은 자신과 김동인의 이 논쟁이 개인간의 논쟁임에도 불구하고, 세간에서는 그것을 『창조』파와 『폐허』파 간의 대치로 보려는 시각이 있으나, 그것이 오류임을 밝혀둔다는 말로는다.)
1. 된장의 유래·종류(1) 된장의 유래한국 음식은 거의 모두 간장·된장·고추장 등 장류로 간을 맞추고 맛을 내므로, 장의 맛은 곧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기본 요인이 된다. 한국에서 언제부터 된장을 먹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확실한 것을 알 수 없지만, 중국의 《위지(魏志)》 에 “고구려에서 장양(藏釀)을 잘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미 된장·간장이 한데 섞인 걸쭉한 것을 담가 먹다가 삼국시대에 와서 간장·된장을 분리하는 기술이 발달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기서 장양이란 술빚기·장담그기 등 발효성 가공식품을 총칭한 것으로 해석된다.또, 조선시대 초·중기에 기록된 《구황촬요(救荒撮要)》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각각 조장법(造醬法)항과 장제품조(醬諸品條)가 마련되어 있어 좋은 장을 담그는 방법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 식생활에서 장류가 얼마나 중요한 식품이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장제품조의 첫머리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장은 모든 음식맛의 으뜸이다. 집안의 장맛이 좋지 아니 하면 좋은 채소와 고기가 있어도 좋은 음식으로 할 수 없다.설혹 촌야(村野)의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없어도 여러 가지 좋은 맛의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 걱정이 없다. 우선 장담그기에 유의하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게 함이 도리이다.” 이와 같이 좋은 장을 담그기 위하여 우리는 오래 전부터 여러 가지 배려를 하여 왔으며, 이러한 풍습은 공장생산 장류가 많이 시판되고 있는 지금까지도, 다만 분량이 크게 줄었을 뿐 대부분의 가정에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다.(2) 된장의 종류된장의 종류는 간장을 담가서 장물을 떠내고 건더기를 쓰는 재래식 된장과 메주에 소금물을 알맞게 부어 장물을 떠내지 않고 먹는 개량식 된장, 2가지 방법을 절충한 절충식 된장 등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계절에 따라 담그는 별미장으로, 봄철에 담그는 담북장·막장이 있고, 여름철에 담그는 집장·생황장, 가을철에 담그는 청태장·팥장, 겨울철에 담그는 된장은 청국장과 더불어 매우 높은 항돌연변이 효과를 나타낸다. 특히 원료인 대두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어 발효에 의한 기능성이 증가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특히 아플라톡신으로 인한 돌연변이를 억제하는 연구에서 전통된장의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주목을 받고 있다.지금까지 연구발표에 따르면 콩은 유방암·대장암·전립선암 등의 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콩 성분 가운데 항암효과의 성분들은 BBTR(Bowman birk trypsin inhibitor), 제니스테인(genistein), 사포닌(saponins), 파이테이트(phytate) 등이다.우리가 먹고 있는 된장·고추장·간장 등 전통식품이 돌연변이를 억제하는 효과가 커 암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한국식품개발연구원 생물공학부가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된장이 돌연변이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가장 컸으며 다음으로는 고추장·간장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전통식품은 섭씨 100 에서 15분간 끓여도 돌연변이 억제효과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각종 식품속에 함유될 가능성이 있는 여러 발암물질이 된장·간장·고추장 등과 함께 섭취될 경우 돌연변이 발생이 줄어들어 암 발생이 예방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2) 간 기능 강화우리 몸속의 장기에서 간은 가장 중요한 기관의 하나로 섭취한 양분의 모두가 간을 통해서 분배된다. 전통된장은 간 기능회복과 간 해독에도 효과가 있으며 간 독성 지표인 아미노기 전이효소의 활성을 떨어뜨린다고도 밝혀지고 있다.(3)성인병 예방콩에는 혈중 콜레스테롤 함량을 낮추고 인슐린을 조절하는 여러 가지 성분들이 들어있다. 따라서 콩은 동맥경화나 심장병, 당뇨병에 좋은 식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콩의 아이소플라본은 단백질원일 뿐 아니라 특수한 기능이 있는 생리활성 물질이다. 식물성 단백질인 아이소플라본은 혈중 콜레스테롤을낮추는 작용을 한다.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면 축적된 지방을 이용하여 단백질을 만든다. 그 지방은 혈관을 통해 옮겨지기 때문에 혈액속 도움이 된다. 또한 콩 지방의 50%인 리놀레산은 혈고나 속의 콜레스테롤을 씻어내어 혈관벽을 튼튼하게 하고, 체지방으로 축적되는 에너지를 줄여주기 때문에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콩에서 발견되는 사포닌과 섬유질 역시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를 나타낸다. 사포닌은 화학적 구조에서 콜레스테롤과 유사하기 때문에 콜레스테롤 흡수를 저해하기도 하고 콜레스테롤 배출을 돕기도 한다. 또한 식이 섬유에 함유된 펙틴은 담즙산을 물리적으로 흡착하여 대변으로 배설함으로써 간장과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을 낮춘다.콩 속의 트립신 저해제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여 혈당을 정상화시킨다. 췌장의 기능이 회복되면서 당뇨병이 호전되는 것이다.(4) 노화 방지(항산화)된장은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항암·항노화·면역력 강화 등 다양한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화현상은 산화작용에 의해서 일어난다. 여러 가지 성인병의 부작용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 결과적으로 신체 기능의 노화로 이어진다. 그 중에서도 지방의 산화에 의한 과산화물의 생성은 노화를 촉진한다. 콩은 이와 같은 산화반응을 막는 사포닌과 아이소플라본·토코페롤(비타민 E)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사포닌은 과산화지질의 형성을 억제하며 아이소플라본도 강력한 항산화제 역할을 한다.노화는 혈관에서부터 온다 는 말이 있듯이 혈관을 잘 다스려야 장수할 수 있다. 토코페롤은 혈액이 원활히 흐르도록 도와 줄 뿐만 아니라 노인성 반점 이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레시틴은 토코페롤의 체내 흡수를 돕는 작용이 있으므로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다.(5) 고혈압 억제효과발효에 의해 콩 단백질은 펩티드와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데 이들 펩티드 중에는 앤지오텐신 컨버팅 효소저해제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고혈압을 억제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콩속에 함유한 레시틴은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혈관을 강화해 주며 다이드진은 고혈압과 두통을 개선해 주기도 한다.(6) 신장기능 효과신장은 나이가 들면서 사구체 경화증 등에 의해 그 기능이 저하된다 간질에 단백질이 축적되면서 시작된 만성적 염증이 사구체 여과막을 변형시킴으로써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콩 단백질은 당뇨병환자의 신부전증 합병증세를 완화시키는 효과와 전해질 및 수분의 배설을 촉진시키는 이뇨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7) 노인성 치매 예방효과콩의 지질 중에 인지질의 일종인 레시틴은 유화능력으로 인하여 콜레스테롤의 용해작용을 하며 세포의 활성화와 뇌기능 향상효과가 있으며 노인성치매 방지 그리고 비타민 E의 상승작용 등의 중요한 효과가 있다.레시틴의 주성분은 인산콜린으로 이는 체내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원료가 된다. 노인성치매 환자는 뇌속에 아세틸콜린의 양이 부족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사포닌은 기능성 물질로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과산화지질의 형성을 억제하여 노화 및 노인성 치매를 예방한다.(8) 다이어트두유나 두부 같은 콩 제품은 단백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소화·흡수가 잘 된다. 따라서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은 고칼로리 식품의 섭취를 줄이고 콩 섭취량을 늘리는 것이 좋다.콩에는 콩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콩의 섭취가 늘면 늘수록 열량으로 쓰이는 당분이나 전분의 섭취량이 줄어들며 그만큼 체지방으로 축적되는 에너지 또한 줄어들게 된다.레시틴은 몸 안의 지방을 용해시켜 씻어내고 이동시키는 작용을 한다. 중성지방 뿐만 아니라 악성콜레스테롤과 같이 혈관에 엉겨붙은 노폐물이나 기름덩어리를 없애주므로 피부건강에도 좋다. 콩에 있는 올리고당은 쾌변을 돕는 식이섬유이면서 설탕의 절반 정도 감미를 가진 「저칼로리 감미료」이다.(9) 변비·비만 방지콩 탄수화물은 수용성과 불용성으로 나누는데 수용성 당인 올리고당은 비영양당으로 인체에 유익한 생리활성이 인정됨에 따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불용성 탄수화물에는 섬유소, 반섬유소, 펙틴이 있다. 이들은 소화가 되지 않는 비영양물질로서 장의 노폐물을 배설하게 하고 장의 운동을 활성화시켜 변비예방은 물론 직장암, 대장암의 예방효능을 가지고 있다.콩에는 식이의 생육이 억제되고 장의 유동운동을 촉진시켜 대장이 튼튼해진다.콩의 사포닌도 역시 유해성분이 장 점막에 접촉하는 시간을 줄이고 유해성분을 흡착해서 독성을 약하게 하는 작용이 있다. 이것은 사포닌의 거품을 내는 성질이 장의 활동을 활발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10) 당뇨개선멜라노이딘(melanoidin)성분이 인슐린의 분비를 원활하게 하여 당뇨를 개선하여 주는 효과가 있다.(11) 유아기 두뇌발달콩에 들어있는 레시틴(lecithin)은 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물질이다. 레시틴은 노인성 치매의 예방에 도움이 되며 세포막의 중요한 구성물질이기도 하다. 세포막은 영양물의 흡수와 노폐물의 배설을 역학을 하는데 이 기능이 원활해야만 지각적인 능력과 정신적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콩에 많은 필수지방산은 영·유아의 지능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아와 어린이는 성장활동이 왕성하기 때문에 그들의 식사에는 지방이 꼭 필요하다. 실사를 통한 필수 지방산의 섭취는 뇌와 망막 같은 신경세포의 성장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콩을 충분히 섭취하면 집중력을 향상시켜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12) 여성병 예방미국의 경유 폐경기를 맞은 15% 정도의 여성들은 에스트로겐(estrogen) 투여라는 호르몬 요법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에스트로겐 투여가 생식기관의 암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보고도 있어, 점차 에스트로겐 대체물질로 자연식품인 콩이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현재까지의 연구결과는 콩의 섭취가 폐경과 관련하여 홍조현상 등을 완화시켜 주며, 에스트로겐 투여시 관찰되던 고지혈증이나 유방 및 자궁 내 근육층의 변화를 유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13) 임산부와 태아첫째, 콩은 태아의 뇌 발달을 돕는다. 콩속의 사포닌 성분은 레시틴 성분과 같이 엄마와 태아의 거강을 지켜주고, 두뇌를 총명하게 해 준다. 사포닌은 콩이나 인삼에 많이 들어 있는 성분으로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혈액을 맑게 한다. 엄마가 입으로 섭취한 콩의 레시틴과 사포닌 성분이 탯줄을 통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