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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법, 국제정치] 독도 영유권 분쟁 - 국제법적 관점 평가C아쉬워요
    독도 영유권 분쟁에 관하여1. 들어가며샌프란시스코 조약이후 일본의 독도 점유침탈, 이에 대응한 독도의용수비대의 독도 경비로 시작되는 독도 영유권 분쟁은 최근 일본 시네마현이 다케시마의 날 을 조례로 제정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마산시에서는 대마도의 날을 조례로 제정하는 등 양측의 감정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2. 일본의 주장1 독도는 공도였고 1905년에 일본이 시네마현 고시로 독도를 실효지배 하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본은 1905년에 시네마현 토지대장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등재하고 공시지가를 매기는 등 독도를 얻기 위해서 많은 자료를 축적해 놓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대해 1905년 편입당시 한국정부(당시 대한제국)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2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할 때 독도가 초안에는 명기되었으나 일본의 로비로 최종안에는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만 반환되는 섬으로 언급되었다는 사실은 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인정하겠다는 연합국의 의사로 보고 있다.3 반환범위에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편입 영토라고 명시된 조약들의 해석상, 독도는 1905년에 별도 편입된 것이므로 반환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3. 타당성1 공도정책을 편 것만으로 독도를 무주지로 볼 수 있을지는 명확치 않다. 무주지라는 것은 소유권이 애초에 귀속됨이 없이 새로이 생성되는 화산섬, 산호섬이나 소유자가 명시적으로 소유권을 포기한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 그러나 공도정책이 소유권 포기의사인지는 문언을 통해 검토해야 한다. 단순히 독도의 거주민을 철수시킨 것 말고, 어업, 방위 등에서도 명백히 독도를 영토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의사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조선시대 공도정책 이전에는 삼국사기 등 고대 문헌에서 신라, 고려 등의 지배가 유효하게 인정된 이상 공도정책을 통해 독도가 무주지로 된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일본측에서 입증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조례로 편입한 이후에도 공도로 방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를 인정할 수 있는 국가의사조차 인정하기 힘들다.2 대한민국이 1905년에 편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곧이어 을사보호조약, 한일신협약, 한일합방 등이 차례로 이루어지는 상황이었고 이미 대한민국은 주권을 사실상 행사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주장대로라면 한일합방의 경우에도 대한민국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므로 합방에 동의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주권 영토 침탈은 항상 동의로써 이루어진다는 황당한 논리가 된다.3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섬은 수천 개이고, 이들을 모두 기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재하지 아니한 섬은 기존의 지배 상태대로 돌려놓아야 하는 것이고, 독도가 무주지라는 문헌상 입증은 앞서 보았듯이 일본측이 해야 한다.4 1914년 이전에 편입한 것도 별도 편입으로 볼 수 없다. 이미 주권의 사실상 침탈이 일어난 이후였기 때문이다.4. 현재 독도의 상황가. 긍정적 측면대한민국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으로는 현재 독도가 대한민국의 실효지배하에 있다는 것이다. 독도에 항시 경찰병력이 상주하여 있고 독도와 연락망이 닿아 있으며 독도까지 대한민국의 방위영역으로 닿아 있다는 것이다. 최근 독도진입 제한을 완화하고 출입을 허용하는 것은 독도의 실효 지배를 대외적으로 알린다는 점에서는 매우 고무적이다.나. 부정적 측면1999년 맺은 한일어업협정에서 대한민국이 독도근방을 중간수역으로 양보하고 울릉도를 기선으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그은 것도 대한민국이 독도를 스스로 분쟁구역으로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이에 대하여 한국 정부에서는 영토와 어업수역을 분리한 조항이라고 하나 역시 일본영토 임을 시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분쟁지역 을 인정하는 것은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5. 앞으로의 방향가. 예상되는 일본의 방침1) 무력 충돌의 가능성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침탈하는 방법으로 무력 침탈이 거론될 수는 있으나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이 자위대 체재이후 적극적 무력전을 편바 없으며, 영토 확장 목적으로 무력전을 폈다가는 주변국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제외하고 중국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및 여러 바위섬의 영유권 문제가 얽혀 있어서 일본이 독도를 대응하는 방식에 중국 또한 가만히 좌우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이 독도를 차지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 다다른다면 어선을 넣어 조업 후 대한민국 해경의 나포시 정당방위를 근거로 자위대를 투입하는 방법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2) 분쟁지역에의 진입일본정부가 독도 문제를 계속 방치하거나(혹은 조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다. 분쟁지역으로 판명되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될 경우 승패를 장담할 수 없고 일본의 경우에는 어차피 현재 지배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밑져야 본전이다. ICJ의 판결이 대체로 강대국에 유리하게 나오고 있다는 것도 일본에는 유리한 점일 뿐 아니라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헌의 양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3) 관망 가능성다만 일본이 분쟁을 계속 유발하면서 어업협상 등에서 독도를 중간수역으로 만든다면 당분간은 적극적으로 독도 영유권 분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독도가 갖는 의미는 영토의 의미라기보다는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기준점 등 각종 해양자원 획득의 중심점이 되는 것이고, 한일 어업협정의 파기 또는 갱신까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나. 대한민국의 대응방안1) 실효지배의 강화대한민국이 장차 있을지 모를 독도 영유권 분쟁에 따른 제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독도에 대한 실효지배를 강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독도에는 본적지로 등록되어 있는 국민이 있으나,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므로{) 2005년 5월 현재, 독도에 본적을 둔 일본인은 26명이라고 한다.
    법학| 2005.07.03| 3페이지| 1,000원| 조회(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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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분쟁] 카슈미르 분쟁 평가D별로예요
    1. 들어가며미션 카슈미르는 카슈미르 지역의 문제를 폭로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에서는 살인과 복수가 반복되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테러리스트나 인도 보안 경찰 모두 복수심으로 인하여 화해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피의 복수극만 계속된다. 복수에 성공한다고 해서 어느 편도 행복해지지 못하고 슬픔속에서 살아간다. 이는 현재 카슈미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카슈미르 분쟁은 1947년에 있었던 카슈미르의 귀속결정을 둘러싸고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세력다툼에서 비롯된 영토싸움이었다. 이는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분쟁지역 중 하나이다.{) 현 시점에서도 카슈미르의 분쟁은 계속 중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서도 12월 9일 파키스탄은 올들어 6번째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였고 12월 5일에는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지뢰가 폭발하여 11명이 사망하였는데 이는 이슬람계 카슈미르 독립단체인 히즈불 무자헤딘의 소행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통제선 양측에는 인도군과 파키스탄군 그리고 평화유지군이 대략 100만 명이 집결해 있고, 카슈미르는 전쟁 전문가들이 보는 핵전쟁 발발 예상 가능성 0순위의 지역이다. 종교적이나 정치적으로 카슈미르 지역민들과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세계열강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카슈미르의 분쟁이 해결되지 않음으로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해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군비경쟁에 쏟아 붓고 있으며 양국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경쟁적인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함으로서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1998년 인도는 핵실험에 성공하여 세계 6번째의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는데, 이전까지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으로 소위 세계 5대 강국으로 뽑히는 국가였다. 인도가 비록 10억의 인구를 지니고 제 3세계를 대변하는 주도국가로의 성격을 갖지만 국가 경제수준과 국민 소득 등을 고려해 볼 때 인도의 핵무기 보유는 파키스탄, 중국과의 영토 분쟁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다소 무리를 한 것으로. 카슈미르 분쟁의 전개 상황가. 1947년 독립 이전의 상황인도와 파키스탄이 1947년 독립하기 전까지 인도는 영국의 오랜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인도인들의 관심은 이슬람이냐 힌디냐를 떠나서 일단 영국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것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갈등양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말엽부터 무슬림 현대주의자들은 인도 국민회의가 힌두교도의 입장만 대변하는 것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인도총독부가 1905년 벵골을 분리시키면서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벵골어를 사용하는 힌두인들은 불만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영국 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였다.이 무렵 모하마드 진나가 국민회의 지도부에 등장한다. 1928년 네루가 국민회의 의장이 되면서 진나는 무슬림에 대한 법적 보장을 확대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간디는 모두를 통합할 수 있는 힌디 전통의 촌락 사회를 추구하였고 진나의 요구에 냉담하였다. 원탁회의가 개최되었으나 자신들의 입장만 확인한 채 결렬되었고, 혁명적 민족주의자 무슬림 왕정주의자 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영국이 정권이양을 하기 10년 전인 1937년, 영국령 인도의 11개 지역에서 총선거가 열렸고 대부분 국민회의가 내각을 담당하게 되었다. 진나는 이에 반발, 무슬림을 대상으로 하는 정당을 만들고 무슬림만의 나라를 요구하였다.{) 파키스탄(Pakistan)은 순수한 나라 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힌두스탄(Hindustan-힌두인들의 나라라는 뜻)에 대항하는 순수한 무슬림으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것이다. 파키스탄에서 진나는 초대 총독에 취임한다.1939년 영국령인도의 전쟁참가 발표 이후 국민회의 지도자들이 지방 공관에서 철수하자 진나는 해방의 날을 선언함으로써 인도 전역의 무슬림들을 부추긴다.1942년 영국의 전쟁고문단이 파견한 스테포드 크립스 경은 인도 전역의 자치령을 제안한다. 즉 자치령에 가입하길 거부하는 토호국은 독립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을 사실상 보장해주는 자치령 제안에 대해 네루와중심으로 힌두국가를 세우자는 측과, 힌두에 의한 지배를 거부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무슬림 연맹이 대립하고 있었다. 이들은 합의점을 찾기도 전에 영국이 서둘러 정권을 이양하는 바람에 1947년 8월 15일 인디아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다.결국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을 하게 됨으로써 인도의 많은 제후국들은 인도냐 파키스탄이냐 양자 간에 택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대다수의 나라가 선택을 하고 남은 국가는 카슈미르, 주나가드, 하이데라바드 세 곳이었는데 주나가드와 하이데라바드는 주민의 다수가 힌두였으나 지배자가 무슬림이었으므로 지배자는 파키스탄을 선택하였으나 이들은 인도연방에 편입되었다.반면 카슈미르는 반대의 형태였다. 지배자인 마하라자(Maharaja Hari Singh Bahadur)는 힌두였으나 국민의 대다수는 무슬림이었다. 국민의 뜻에 따른 결정을 한다면 당연히 파키스탄으로 가야 하는 것이었지만 마하라자는 자신의 친족들에게 이단으로 따돌림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 결정을 머뭇거리고 있었다.{) 마하라자 하리 싱은 인도냐 파키스탄이냐의 택일에서 어느 쪽으로 가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인도의 반대에 부딪쳤고, 인디아 총독이었던 마운트배튼이 권력이양을 논의하기 위해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Srinagar)를 방문하였을 때 병을 핑계로 답변을 회피하였다.이 때 카슈미르 서남쪽에서 지주의 착취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난이 일어났고 파키스탄의 무슬림들은 농민을 지원하기 위해서 카슈미르의 국경을 넘었다. 마하라자는 이에 겁을 먹고 인도에 도움을 급히 요청하면서 인도에 카슈미르를 넘긴다는 귀속문서에 서명하게 되었다. 서명과 동시에 인도군의 적극적인 개입이 이루어졌고 파키스탄은 이에 격분하여 양국 간에 전면전이 발생하게 되었다.카슈미르는 전략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느 쪽에도 포기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인도와 파키스탄은 전면적인 전쟁에 돌입한다. 이미 힌두와 무슬림이라는 화해하기 힘든 갈등상태로 두 국가가 나누어진데다가, 인도 이 지역을 인도 연방의 하나로 편입해버렸다. 이에 파키스탄 측과 카슈미르 주민들은 강력히 반발하였다.한편 유엔의 정전감시활동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크고 작은 충돌을 계속하였고 1964년 12월 파키스탄의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 공격에 인도가 반격을 가하면서 2차 인 파 전쟁이 벌어졌다. 1965년 4월에는 양국 남부 접경 쿠츠(Rann of Kutch) 지역을 둘러싸고 양국 정규군간의 일대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동년 5월 일시적인 정전이 성립되었으나, 펀자브의 파키스탄 수도가 인도군에게 함락되기 직전 상태에 가고 우리 푼치(Uri Poonch)도 인도에게 넘어간 만큼 전황은 인도측에 많이 기울어 있었다.그러나 1965년 9월 중국의 개입으로 인-파 전쟁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1962년 동북 국경지대에서 충돌을 벌여 승리한 중국이 파키스탄 측을 지지하면서, 중국-인도 접경지역에서 인도군의 철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인도 북동부의 시킴(Sikkim)과 중국의 티베트(Tibet) 접경에서 인도-중국간 교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1965년 9월 유엔의 제의로 인-파 정전이 발효되면서 대규모 지상전은 종식되었다. 소련의 중재로 1966년 1월 타슈켄트 선언(Tashkent Declaration)이 발표됨으로써 전쟁은 공식 종결되었는데, 이에 따라 양국은 1949년 설정된 정전경계선으로 복귀하기로 합의하였다.라.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독립, 3차 인 파 전쟁파키스탄이 인도와 분열되면서 벵골 지역의 무슬림들도 파키스탄에 귀속하게 되었지만 본토와의 거리는 1000 km 가 넘는 거리인데다가 동파키스탄에서는 주민의 대다수가 벵골어를 사용하는 반면 서파키스탄의 펀자브 인과 파타 족들은 대부분 우르두어를 사용하였다. 서파키스탄의 장성과 관료들은 카라치와 이슬라마바드에서 동파키스탄에 와서 그들을 통치하고 있었다. 사실 이슬람교라는 것을 제외하고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을 연결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1970년 선거에서 세이크 무지부르 라만의 아와미(Awami도 연방정부의 정치적 카드로 이용된다는 사실들로 인하여 카슈미르 인들이 인도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었다.1987년 부정선거로 인하여 국민연맹은 선거에서 승리하였지만 무슬림연합전선의 비판을 받고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는 심해진다. 카슈미르의 젊은이들은 급진적으로 돌변하였고 이들은 국경을 가로질러 파키스탄으로 넘어가 군사교육과 무기원조를 받고 돌아온다. 파키스탄은 비공식적으로 이들을 지원하면서(파키스탄에서는 지원 사실에 대해 일체 부인하고 있다.) 카슈미르의 젊은이들은 정부에 저항하는 반군으로 성장한다. 애초에는 분산되고 산발적인 집단이었지만 점점 조직화되면서 주요 세력으로 성장하였고 인도는 보안군을 앞세워 철저한 탄압을 시도한다. 그렇지만 무하마드 사이드 내무부 장관 딸의 납치와 장례식 발포 사건 이후 이들은 점점 세력화 되었고 마침내 아자드 카슈미르에 임시정부를 세워 카슈미르 주정부와 정면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이들은 인도연방에서 완전 독립하여 파키스탄도 인도도 아닌 카슈미르 인의 자치 국가를 설립하자는 데에 주안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인도 정부에서는 이를 절대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소수인종, 소수종교가 많은 인도에서 카슈미르의 독립을 인정해준다면 기독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 다른 소수파들이 들고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인데다가 카슈미르 자체가 가지는 경제적인 이익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는 카슈미르를 지키기 위해서 국민투표도 인정하지 않고 파키스탄과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은데다가 카슈미르 지역은 자치권을 주지 않고 중앙 정부의 직접 통제하에 두고 있고 상당한 수의 보완군도 파견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3. 카슈미르 분리독립운동의 전개과정1947년 마라하지가 카슈미르를 인도에 양도한 이후로 인도 정부는 카슈미르의 귀속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할 때 어김없이 마하라자가 서명한 이 양도문서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카슈미를 인들은 자신들의 의견수렴을 통해 귀속국가를 결정하기를 원했고 양도 문서에 서명있다.
    사회과학| 2005.01.02| 8페이지| 1,000원| 조회(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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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법] 상법총론 영업양도 판례평석 평가A+최고예요
    {판시사항[1] 상법 제41조 소정의 "영업의 양도"인지 여부의 판단방법[2] 영업양수인의 상호적용 여부의 판단기준[3] 상호를 적용하는 영업양수인이 그 영업양도 사실을 알고 있는 양도인의 채권자에 대하여 변제책임이 있는지 여부(적극재판요지[1] 상법 제41조 소정의 영업의 양도란 영업목적을 위하여 조직화된 유기적 일체로서의 기능재산의 동일성이 유지된 일괄이전을 의미하는 것이고 영업의 동일성 여부는 일반사회관념에 의하여 결정되어져야 할 사실인정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영업재산의 전부를 양도했어도 그 조직을 해체하여 양도했다면 영업의 양도는 되지 않는 반면에 그 일부를 유보한 채 영업시설을 양도했어도 그 양도한 부분만으로도 종래의 조직이 유지되어 있다고 사회관념상 인정되기만 하면 그것을 영업의 양도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2] 상법 제42조 제1항에서 말하는 상호의 계속사용은 일반적으로 영업양도인이 사용하던 상호와 그 양수인이 사용하는 상호가 전혀 동일할 필요까지는 없고, 다만 전후의 상호가 주요부분에 있어서 공통되기만 하면 된다고 볼 것이다.[3] 상호를 속용하는 영업양수인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채무승계가 없는 영업 양도에 의하여 자기의 채권추구의 기회를 빼앗긴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영업양도에도 불구하고 채무인수의 사실 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악의의 채권자가 아닌 한 당해 채권자가 비록 영업의 양도가 이루어진 것을 알고 있었다 해도 보호의 적격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1) 상법 제41조가 말하는 영업이란 일정한 영업목적을 위하여 조직화된 유기적 일체로서의 기능재산(적극적재산과 소극적재산)을 뜻하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단골관계 등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사실관계도 포함되는 것이고 또한 같은 법규상의 양도란 위와 같은 기능재산의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를 넘겨주어 그에 의하여 양도인이 그 재산으로 경영하고 있던 영업활동의 전부나 중요한 일부를 양수인으로 하여금 인계받게 하여 양도인이 그 양도한 한도에 따라 법률상 당연히 같은 규정상의 경업금지의무를 지는 결과를 수반하는 것이라고 풀이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결국 영업의 양도란 위에서 본 바와 같은 기능재산의 동일성이 유지된 일괄이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아야한다.그리고 영업의 동일성이 인정되는가 안되는가는 일반사회관념에 의하여 결정되어져야 할 사실인정의 문제이기는 하나 문제의 행위(양도계약관계)가 영업의 양도로 인정되느냐 않되느냐는 단지 어떠한 영업재산이 어느 정도로 이전되어 있는가에 의하여 결정되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종래의 영업조직이 유지되어 그 조직이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에 의하여 결정되어져야 하는 것이므로 예컨대, 영업재산의 전부를 양도했어도 그조직을 해체하여 양도했다면 영업의 양도는 되지 않는 반면에 그 일부를 유보한채 영업시설을 양도했어도 그 양도한 부분만으로도 종래의 조직이 유지되어 있다고 사회관념상 인정되기만 하면 그것을 영업의 양도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그런 뜻에서 영업의 양도는 그 영업을 구성하는 모든 재산물건을 양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아니고 당해 영업의 요소로 인정되는 재산물건이 양도되면 영업의 양도로 보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는 것이다.이 사건에서 원판결의 이유설명 가운데 여기에 관계된 부분을 보면 원심은 소외 김☆모가 지하 1층지상 6층의 이 사건 건물에서 숙박업을 경영함과 동시에 부속시설인 목욕탕, 이발소 등도 경영하였는데 원고는 관할 행정청으로부터 위 소외인이 숙박업허가 및 공중목욕장업허가등을 받기 전의 설시실자에 같은 소외인에게 그 여관의 객실용으로 비치할 칼라텔레비젼 43대와 냉장고 39대 등의 전자제품을 계약금만 받고 외상판매하여 그 제품들을 인도하였으며 그후 같은 소외인은 여관경영의 사업부진으로 위 전자제품을 비롯한 여관내 시설물 일체를 양도담보로 제공하고 소외 이♧근으로부터 빌린 금 50,000,000원의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고 또한 그가 발행한 어음수표등도 부도를 내게 되기에 이르렀고 피고는 설시일자에 위 김 종모로부터 위 여관과 목욕탕등의 시설이 들어 있는 이 사건 건물 전부와 위 각 영업에 필요한 전화기, 의자 원고로부터 매수한 전자제품, 옷장, 신발장 등 비품일체를 매수함과 동시에 위 김☆모의 위 이♧근에 대한 피담보채무도 인수하는 등 하였다는 사실을 확정한 다음 소외 김☆모와 피고간의 위와 같은 계약관계를 영업의 양도라고 판단하고 있는바, 이와 같은 원판결 판단은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옳다고 수긍이 된다.소론은 기록을 살펴보면 피고가 소외 김☆모로부터 이 사건 여관의 건물과 그곳에 비치된 칼라텔레비젼등을 매수하였고 위 김☆모의 소외 이♧근에 대한 피담보 채무금 50,000,000원을 인수 하였다는 사실이 인정될 수 있을 뿐그밖에 소외 김☆모의 영업상의 채권 채무관계를 어떻게 처리한다는 점 등 영업양도에 대한 인정자료는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영업을 양수한 것이라고 단정한 원심의 조치는 영업의 양도에 관하여 심리미진 내지 증거에의하지 아니하고 사실을 인정하였고 또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비난하여 마치 영업의 양도가 인정되려면 양도인의 영업재산을 이루고 있는 모든 권리의무의 전부가 이전대상에 포함된 것이 입증되어야만 한다는 견해를 전제로 하여 이론을 펴고 있으나 영업의 양도는 소론과 같은 경우뿐만 아니라 원심이 확정한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서도 사회관념상 양도인의 영업인 여관업과 목욕탕업 등의 영업조직을 이루고 있는 기능재산의 이전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기에 충분하여 원판결 판단에 소론과 같은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2) 상법 제42조 제1항은 영업양수인이 양도인의 상호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에는 양도인의 영업으로 인한 제3자의 채권에 대하여 양수인도 변제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이 규정은 일반적으로 영업상의 채권자의 채무자에 대한 신용은 채무자의 영업재산에 의하여 실질적으로 담보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 인데도 실제로 영업의 양도가 행하여진 경우에 있어서 특히 채무의 승계가 제외된 경우에는 영업상의 채권자의 채권이 영업재산과 분리되게 되어 채권자를 해치게 되는 일이 일어나므로 영업상의 채권자에게 채권추구의 기회를 상실시키는 것과 같은 영업양도의 방법(채무를 승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호를 속용함으로써 영업양도의 사실이, 또는 영업양도에도 불구하고 채무의 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이 각각 대외적으로 판명되기 어려운 방법)이 채용된 경우에 양수인에게도 변제의 책임을 지우기 위하여 마련된 규정이라 할 것이므로 위규정에서 말하는 상호의 계속사용은 그러한 입법취지를 관철시키는 입장에서 결정되어야 하고 그렇게볼 때에는 일반적으로 영업양도인이 사용하던 상호와 그 양수인이 사용하는 경우가 전혀 동일할 것까지는 필요없는 일이고 다만 전후의 상호가 주요부분에 있어서 공통되기만 하면 된다고 볼 것이며 한편 제3자의 채권은 양도인의 영업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것이어야 하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상호를 속용하는 영업양수인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채무승계가 없는 영업양도에 의하여 자기의 채권추구의 기회를 빼앗긴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영업양도에도 불구하고 채무인수의 사실 등이 없다는 것을 알고있는 악의의 채권자가 아니한 당해 채권자가 비록 영업의양도가 이루어진 것을 알고 있었다 해도 보호의 적격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없다.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상호의 계속사용에 관한 원심의 확정사실과 판단을 보면 이 사건 영업의 양도인인 소외 김☆모가 사용한 상호는 삼정장여관이었다는 것이고 피고가 영업의 양수를 한 무렵부터 같은 건물에 사용한 상호는 삼정호텔이었다는 것이며 삼정장여관이나 삼정호텔이라는 상호는 사회통념상 동일성이 있다고 인정되므로 피고가 그와 같은 상호를 계속사용하면서 위 김☆모의 과거 영업을 그대로 이어 경영하고 있으므로 피고는 영업양수인으로서 양도인인 위 김☆모가 위 영업증에 원고에 대하여 부담하는 이 사건 채무를 변제할 책임이 있다고 설시하고 있는 바, 이와 같은 원판결 판단은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옳고 여기에 잘못은 없다.소론은 공중위생법령상의 규정에 비추어 여관과 호텔의 시설기준도 다르고 삼정장과 삼정도 다르기 때문에 위 상호들은 동일상호가 아니라고 주장하나 이는 위에서 설시한 상호속용의 기준에 관한 당원의 견해에 반하여 채용될 수 없다.대법원 1989.12.26 선고, 88다카10128(영업양도의 제3자에 대한 관계)1. 판례 사실관계소외 김모씨(이하 甲)는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고 부도를 내었고, 피고는 甲의 여관시설과 비품일체를 매수하고 소외인 이모씨(이하 乙)의 피담보채무를 인수하였다. 원고 丙은 이 같은 사실을 영업양도라고 주장하여 자신이 甲에게 갖고 있던 채무변제를 피고에게 요구하였다. 한편 영업양도와 관련하여 상호가 삼정장여관에서 삼정호텔로 변경되었고, 원고 丙은 영업양도 사실에 대해서는 알았으나 채무인수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선의이다.
    사회과학| 2004.11.15| 3페이지| 1,000원| 조회(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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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화씨 9.11의 표현방법을 통해 본 비상업적 영화의 대안
    1. 들어가면서화씨 9/11은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감독이 9.11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부시와 오 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의 연관 의혹을 제기하며 부시대통령을 비판한 작품으로 무어에게 칸영화제 대상을 가져다 준 작품이다.개봉 당시 월트 디즈니의 배급 거절과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개봉관으로 상영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3일 만에 역대 다큐멘터리 최다 수입(종전기록은 마이클 무어감독의 볼링 포 컬럼바인 )을 깨뜨렸으며{)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 1주일 만에 무려 5600만 달러를 벌어 들였다. 서울에서도 흥행에 호조를 보여 부족한 상영관 수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 주에 박스 오피스 5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엔키노, http://www.nkino.com/NewsnFeatures/article.asp?id=13578영화는 상업적인 효과뿐 아니라 영화 외적으로도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화씨 9/11의 개봉에 코웃음치던 부시 행정부뿐 아니라 영화를 만든 마이클 무어감독 조차도 영화가 이 만큼의 파급효과를 가져올 줄은 몰랐다는 분위기이다. 영화를 본 많은 미국인들이 이라크 전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11월 대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다소 성급한 전망까지도 나오고 있다.그렇다면 일개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처럼 성공을 거두었을까? 화씨 9/11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알겠지만 유명한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며(실제 인터뷰를 통해 짧게나마 나오기는 한다. 물론 유명한 사람-특히 정치인-들은 자주 나온다.) 전개자체가 드라마적인 것도 아니다. 게다가 관객의 대다수는 영화의 주제와 결론을 이미 알고 있다. 화씨 9/11이란 영화는 부시를 비판하는 영화라는 것을. 주연은 잘생기고 몸매가 섹시한 배우가 아니라, 살집이 엄청난 감독 그 자신이다. 상업영화가 가지는 특성을 거의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상업영화11테러로 인하여 미국인들은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고,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부시의 행위를 지지하였다.미군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 2003년 봄 바그다드의 평온한 모습을 잠깐 비추어 주더니 폭격과 함께 폐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쟁의 참상은 계속된다. 끔찍한 모습들, 그러나 더 끔찍한 건 미국의 상류층들은 단지 전쟁을 자신의 이익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 후 이라크 유전 개발과 기간 시설 건설을 통해 자신의 회사가 얼마만큼의 이윤을 남길 수 있을까에 관심이 집중되는 미국 기업인들의 모습은 이라크 전쟁이 단단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국회의원들이 이라크 파병 동의안에 찬성하면서도 자신의 자녀를 전쟁에 보낼 의향이 있냐는 마이클 무어의 인터뷰에 말뿐이라도 Yes."를 한 사람은 단 하다도 없다.(영화속 무어의 나레이션에서는 미국의 상 하원 의원 중 단 한명만이 자녀를 군대에 보냈다고 한다.)반면에 군대에 가는 젊은이들은 무어의 고향 플린트와 같이 경제가 파산한 곳에 사는 빈민층 아이들이다. 플린트에는 일자리가 없고 젊은이들이 길거리를 방황한다. 군인 모집자들은 부유한 거리로는 가지 않고 항상 빈민거리에 와서 아이들에게 군대에 가면,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을 유혹한다. 그렇게 해서 이라크에 갔다 온 젊은이들은 다시는 이라크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한다. 영화는 자신의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머니가 백악관 앞에 와서 아들을 그리워하며 내 아들을 죽인 건 우리 정부라고 호소하는 데서 끝이 난다.3. 화씨 9/11에서 감독이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는 방식가. 관객을 즐겁게 하기(1) 긴장 이완의 효과 - 관객에게 영화를 흡수시키기 위한 포석작가주의 영화를 대하는 관객은 감독의 주입이 자신을 강요할 것에 대비해 약간의 긴장과 적개심을 가지고 영화를 대할 수 있다. 긴장을 푸는 방법으로는 웃음이 가장 효과적이다. 영화는 한 번의 영상으로 관객에게 인상을 심어준다. 영화를 두 번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뿐 아)으로 나온다. 두 마리아가 하는 주장에 선입견을 줄 만큼의 대비되는 묘사이다. 노동자들도 영화 전반부의 핍박받는 존재에서 결국 풍자의 대상으로 전략한다. 자식들을 버리고 폭동에 가담하는 모습, 인조 마리아를 화형에 처하고 그 주위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는 모습은 섬뜩하다.영화 결말까지 주된 인물로 남는 것은 마리아와 프레더 뿐인데,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가는 알아서 노동자를 배려하고, 노동자들은 혁명 같은 것 하지 말고 알아서 말 잘 들어라! 과연 이 주장이 타당했을까?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노동 상황은 영화 Daens'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가들이 스스로 노동자를 배려할 것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영화의 제작년도가 제 1차 세계대전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혁명이 끝난 혼란기였다는 점에서 프리츠 랑 감독은 사회주의 민중 봉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리 그렇게 감독의 의도를 이해해 보려고 해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 영화에 감동한 두 사람이 아돌프 히틀러와 할리우드 제작자 윌터 윈터라는 것, 그리고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프리츠 랑에게 같이 선전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다는 점과 프리츠 랑이 이를 거절하고 미국으로 떠났다는 점으로 볼 때 그의 이상은 실패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화씨 9/11에서는 무어의 나레이션에 유머와 위트를 섞으면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이 웃음은 가벼운 웃음이 아니라 뼈있는 웃음이다.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웃음이다. 무어가 선사한 웃음 뒤에는 항상 무언가가 있다. 9 11 발발 당시 플로리다에 멍하게 앉아 있는 부시를 보면서 주위에 뭐하고 조언하는 비서들이 없어서 멍청하게 앉아만 하고 있는 부시 로 비꼬지만 그 뒤에 부시가 사우디가의 친구들 - 빈 라덴 가문을 비롯한 사우디의 유력한 집안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기자들의 질문에는 별 생각 없이 답을 하면서 자신의 드라이버 샷을 자랑하는 모습도 부시를 희화화하는데 기여한다. 그러면서 관객들에게 부시는 무능하고 그가 하성애를 하면서도 한 사람만을 끊임없이 그리고 살 수 있다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깨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영화 내부에서는 유태인이었던 Felice가 친구들과 안전한 곳으로 도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연인 Lily를 지키기 위해 남는데, Lily가 실존하는 것을 관객들에 보여줌으로서 동성애 사이에도 생명을 건 믿기 어려운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화씨 9/11에서도 인터뷰는 곳곳에서 나온다. 군대에 입대해야만 하는 플린트 젊은이들의 사정을 인터뷰하면서 미국의 지역 경제 불황을 타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들을 전쟁의 자원으로 이용하려고만 하는 부시 행정부를 고발한다. 이라크에 아들을 보낸 어머니가 아들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그다드의 한 부인이 미군의 폭격에 의해 자신의 집이 모두 부서지고 가족을 다섯이나 잃었다고 절규하는 인터뷰 모습도 나온다. 그 밖에 많은 관련 공무원, 전직 FBI 직원의 증언, 이라크에 파견된 군인들의 증언은 무어의 주장에 타당성을 실어준다.라. 현장 모습을 보여주기현장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방법도 감독이 제시하는 주제에 근접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현장은 있는 그대로의 충격을 생생히 보여줄 수 있다. 또한 신빙성 보장에서도 인터뷰나 자료에 결코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 단지 그 장면이 실제 사건이후에 각색해서 포착한 것이 아니라면.밤과 안개(Night and Fog)는 이런 면에서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영화이다. 밤과 안개에서는 주인공도 내용도 없다. 다만 수용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레이터가 몇 마디 던질 뿐이다. 나레이터의 말도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산처럼 쌓인 시체, 시체를 던지고 트랙터로 밀어서 한 곳에 묻어버리는 장면, 수용소 의 숙소와 가스실의 모습, 사람을 갈아서 비누를 제조하는 기계를 보여줌으로써 어떠한 대화와 행동을 보여주는 것보다도 충격적이다.화씨 9/11에서도 많은 현장 모습이 나온다. 9/11 테러 당시의기 시작할 무렵 제작된 영화여서 주제 자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서 단지 지루함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계속 생겼는데, 이것이 대중이 갖는 거부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가 시종일관 일방의 시선에서 진행되고 선 악의 이분법적 대립이 뚜렷하다.{) 랜드 앤 프리덤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지는데, 전반부에서는 품이 승승장구하면서 마을 전투에서 동료를 잃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내셔널(International)을 제창하며 의의를 다진다. 이 때 반동적 위치에 있는 것은 프랑코 장군과 파시스트들이다. 그렇지만 후반부에서 혁명군은 분열되고 켄 로치 감독은 시민혁명군의 입장에서 관객을 설득한다. 물론 어떠한 작품에든지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의 대립은 있고, 갈등상황에서 감독이 한 인물의 입장을 편들지 않아야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주인공 데이빗의 고뇌가 지나치게 단순하게 처리되어 있다는 점도 마땅치 않다.{) 랜드 앤 프리덤에서 데이빗이 국제여단에 들어갔다가 회의를 품고 다시 품(P.O.U.M.)으로 복귀하는 부분에서 데이빗의 고뇌를 단순하게 처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이 좌파적 지식인이라면,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의 노선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더 잘 알 것이다. 데이빗은 스페인에 오기까지 스탈린주의적 공산주의자로 당원증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단순히 술집에서 품을 비하하는 몇 마디 말이 오가고 주먹다짐을 하였다고 자신의 사상을 바꾼다는 것은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그게 자신의 노선을 바꿀 만큼 심각한 문제였을까? 물론 감독이 90년대 스탈린주의의 붕괴이후 좌파적 지식인들의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길을 모색하고 있을 때 그들만을 설득시키기 위해 영화를 제작했다면 랜드 앤 프리덤은 성공한 선전영화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90년대의 스탈린주의는 비판받기만 하는 대상으로 전략해 버렸기 때문이다.물론 곰곰히 생각해 보면 어떠한 영화도 완벽히 균형 잡힌 시선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완벽한 균형이라는다.
    법학| 2004.11.15| 10페이지| 1,000원| 조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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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반데니소비치 평가A+최고예요
    1. 작가소개{) , 쯔베또프 저, 김태연 역,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7.알렉산드르 이싸예비치 솔제니친(Aleksandr Isayevich Solzhenitsyn. 1918 ~ ).알렉산드르 이싸예비치 솔제니친은 1918년 12월 11일 북까프까즈의 도시 끼슬로보드스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솔제니친이 태어나기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고, 소련은 짜르의 장교였던 아버지의 대한 것을 말살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유년시절을 보낸 솔제니친은 로스토프 대학과 모스크바 대학 통신학부에 진학한다. 대학 생활에서 나딸리야 레쉐또프스까야를 만나 그녀와 결혼한다.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솔제니친은 전장에서도 창작을 계속한다. 전쟁터에서의 활약으로 국가 훈장도 받는다.그러나 그는 1945년 반역으로 몰려 체포된다. 단지 레닌과 스탈린을 별명으로 불러댔다는 이유였다. 그에게는 이적 서신, 반혁명적 주장, 정치 혁명 선동, 조국에 대한 배신이라는 죄과가 붙어서 8년의 강제 노동 수용소형을 받는다. 8년간 경험한 수용소 생활을 토대로 를 창작한다. 그는 조금의 감형도 받지 못하고 8년을 꼬박 채운다. 수용소 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가 떠나고, 암이 발병한다. 그는 암으로 거의 생명을 잃을 뻔 하였으나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다.솔제니친은 출소 후 잡지 의 편집장 뜨바로도프스끼에게 -854를 보여주었고, -854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러시아의 삼엄한 검열을 통과해서 출판된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러시아 내 외적으로 많은 파장을 불러왔다. 그는 계속 창작 욕구를 불태우면서 수용소 군도, 암병동, 제 1권에서, 마뜨료나의 집 등의 작품을 써간다. 그러나 호르시초프가 실권하고 브레즈네프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솔제니친의 소설은 불온한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는 레닌 상 후보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그의 원고는 외국으로 넘겨져서 출판되었다.그는 소련의 공산주의에 대하여 점점 비판의 수위를 높였고, 소련 작가 동맹은 솔제니친프는 체자리의 소포를 타기 위해 소포 인도소에서 줄을 서주고 대가로 체자리의 저녁을 대신 받는다. 그는 빵 두개와 양배추 국 두 접시를 받는다. 국은 다 먹고 빵은 내일을 위해 남긴 슈호프는 라트비아인에게 가서 담배도 한 컵 사서 핀다. 체자리가 받은 소포에 눈독이 가지만 슈호프는 참기로 하고 그의 빵을 차지한다.오늘의 점호는 악질 막사장이다. 그 바람에 체자리는 소포로 온 물건을 정리하지 못하고 나간다. 슈호프는 체자리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다. 그는 알료시카와의 대화에서 하느님을 믿어도 집에 갈 수 없다고 투덜댄다. 두 번째 점호가 있고 무사히 끝난다. 그에게 오늘 하루는 정말 운이 좋은 하루였고 그는 행복함을 느낀다. 이렇게 슈호프는 십년을, 정확히 말하면 3653일을 보낸다.3. 감상가. 슈호프의 하루에서는 슈호프로 불리는 이반 데니소비치가 수용소에서 보낸 3650일 하고도 윤년이 포함된 3일 중 운이 좋았던(본인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 하루를 보여준다. 이것은 반어일까? 철창 밖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반어적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행복한 하루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나게 끔찍한 하루이다. 그도 밖에서의 생황을 그리워한다. 그렇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기대해 봤자 다시는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형기를 다 채운다고 해서 석방하는 것이 아니다. 알지도 못하는 죄목을 보태서 다른 수용소로 보내질 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붙잡아 둔다. 그래서 그는 바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카펫에 염색을 해 주면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을 들어도 그다지 희망을 갖지 않는다.{) 상게서. p.52.그가 갖는 희망은 단지 작품에서의 오늘 과 같은 날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간수의 눈에 잘못 들어서 중영창을 가지도 않고, 남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면서 소시지라도 하나 더 얻어먹을 수 있던 날이다.그렇기 때문에 그가 생각하기에는 정말 운이 좋은 하루일 지도 모르겠다. 줄칼을 가지고 들어오면 영창에 갈 수도 있고 줄칼을 지니고 있는 것을 그냥 당국에서 잡아서 보내니까 오는 것일 뿐이다. 살인과 같은 진짜 범죄를 저지르고 온 사람은 소수이다. 나머지는 국가에 대한 반역, 이적, 사상의 죄목을 달고 온다. 그렇지만 슈호프는 소심하게 분노할 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호프는 인간의 감성을 완전히 잃지는 않는다. 그는 수용소에 들어와서도 한 번도 뇌물을 준 적이 없다. 뇌물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불이익을 당하거나, 아예 가족들에게 소포를 보내지 말라고 한다. 강제 노역에서도 노동의 기쁨을 느끼려 한다. 벽돌을 쌓으면서 작업 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조금 늦게라도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상게서. p.131.모르타르를 버리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가난하지만 부지런하고 절약하는 러시아 농부의 모습이다. 체자리의 짐을 선뜻 지켜 주면서도 훔쳐가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고 싶지만 선뜻 한 모금만 빨게 해달라고 말 하지도 못한다.{) 상게서. p.39.그렇지만 자기는 체자리로부터 받은 비스킷을 알료시카에게 나누어 줄 줄 안다. 슈호프는 이처럼 어리숙하다. 수용소에서 다른 사람을 고발해서 간수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슈호프의 이러한 모습은 솔제니친이 러시아를 향해 소리없이 외치는 메아리 같다. 너희들이 아무리 우리 러시아인을 못살게 굴어도 우리는 결코 굴하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 라고.나. 인물 군상의 모습슈호프 뿐 아니라 반장이나 알료시카 체자리의 모습도 속물적인 모습이 없지는 않겠지만 인간적이다. 그들은 서로서로 공유하는 요소가 있다. 수형자라는 것,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힘겨운 날들이 계속된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이미 국가로부터 배신당한 그들에게 완전한 믿음이라는 것은 남아있지 않다. 에서는 그 밖에도 많은 인간 군상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대부분 속물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렇지만 약간 모자란 모습을 보여준다. 솔제니친은 그들을 매우 인간적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준다. 그들 대부분은 국가 조직이 가져온 안 되는 걸까? 이게 진짜 평등하고 지상 낙원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일까? 출신성분에 의한 역차별이?수용소 내에서 인간적이지 않게 나오는 사람들은 볼코보이나, 니콜라이, 소포 직원, 현장감독, 심장 등 계급이 우월한 사람들이다. 공산주의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평등을 외치지만 정작 스탈린주의는 계급의 고착화를 가져왔다. 출신 성분 따위로 말이다. 스탈린이 추구한 만민 평등 인간의 권리 실현이 역설적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들도 하나의 희생물에 불과하다. 사상적으로 투철해서 간부가 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단지 우연히 간부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원래는 촌에서 농사짓던 노동자, 공장에서 일하던 공원이었을 것이다. 사상과 계급이라는 것 때문에, 공산주의에 물들고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사회를 지휘하며 출신성분에 따라 반동 이 된 자들은 사상 문제가 있으니까 집단 수용해서 사상개조를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그들은 변한 것이 아닐까. 수용소에서 재소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간수들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밀고에 의해 옷만 갈아입고 그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그러한 일이 흔했던 것도 사실이다.결국의 조직의 문제이다. 사람의 본성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주의라는 조직 평등을 추구하면서도 결국 계급을 만들 수밖에 없는 조직이 수용소를 만들어서 재소자 간수 할 것 없이 한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의 비극이다.다. 배고픔과 고통의 이미지수용소 생활에 적응해 버린 슈호프를 괴롭히는 두 가지는 배고픔과 추위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는 솔제니친이 수용소 생활에서 경험했던 추위와 배고픔이 절절하게 묻어 나온다. 수용소에서 배급상황은 터무니없이 나쁘다. 당시 러시아의 식량상황이 터무니없이 나쁘다는 것을 슈호프가 예전 수용소에 있기 전에 배불리 먹던 것을 상상하는 장면으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배가 터지도록 먹어대는 것이 아니었다고, 음식은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처럼 맛을수용소 생활을 힘들게 한다.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작품에서 광활한 벌판에 눈이 덮인 장면은 러시아의 거대함, 대지의 이미지을 느끼게 한다. 그렇지만 이반 데니소비치에서 눈은 그 무엇도 아니다. 단지 추위를 뜻하고 추위는 생명을 위협하는 적이다.추운 막사의 모습과 그것보다 훨씬 춥고 고통스러운 영창, 그래서 막사에라도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슈호프는 안쓰럽다. 펠트 장화와 편상화를 겨우 얻어서 갈고 닦고 길을 잘 들여놨더니만 어떤 죄수가 고발하는 바람에 신발을 반납해야 했는데 그것이 여태까지 수용소 생활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는 모습은 웃음을 지나 처연하다. 그가 오늘 작업을 하러 나가면서 기뻐할 수 있었던 것도 로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생활단지는 춥다. 바람까지 부는 영하 이십칠 도의 날씨에 불을 피울 곳은커녕 바람막이도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니!{)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저, 이영의 역, 민음사, 1998.부이노프스키가 중영창을 가게 된 것도 옷을 껴입는 것은 권리로 보장되어 있다고 볼코보이에게 대들었기 때문이다. 모두 추위를 위한 생존 투쟁이다.작업을 시작하기 직전에 작업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온기를 쐬기 위해서 난로 앞에 쭈그리고 있는 모습도 나타난다. 난로의 온기는 기계를 돌리기 위한 온기이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조금만이라도 더 가까이 가서 더 많은 온기를 쐬기 위해 노력한다. 기계는 따뜻하게 돌아가면서 정작 사람들은 곡괭이를 죽어라고 휘두르지 않으면 얼어 죽을 것 같은 곳으로 내몰려서 가혹한 노동을 당한다. 그들에게는 살을 에는 듯한 영하 십 팔도의 추위도 벽돌을 쌓기에 좋은 날씨일 뿐이다.{) 상게서. p. 86.저녁 식사 시간에도 식당의 온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아직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빨리 들어가려고 벌이는 아우성은 끔찍하다.라. 표현절망적인 현실을 솔제니친은 정확히 그려낸다. 머리로서 창작한 작품이 아니라 몸으로 알고 있는 진실이어서 그럴 것이다. 수용소의 열악한 상황, 스탈린주의있다.
    인문/어학| 2004.11.15| 10페이지| 1,000원| 조회(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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