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제의 소재한국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공식적인 어업관계를 가진 일이 없이 중국과 인접해 있는 관계로 태풍철만 되면 우리나라 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국어선들이 목포와 제주도의 항구로 긴급피난을 하고있다. 이러한 중국 어선의 긴급피난은 UN해양법협약 제18조 제2항(불가항력, 조난으로 인하여 필요한 경우, 위험이나 조난상태에 있는 사람·선박 또는 항공기를 구조하기 위한 경우의 정박 및 투묘)에 근거한다.우리나라 관할해역에 피항하고 있는 선박은 98년 이후 다소 감소 추세에 있으나 매년 약 1천여척이 피항하고 있어 해난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많은 선박이 무리지어 피항하는데 따른 좌초, 침몰 등의 해난사고에 따른 기름유출 및 사고선박 장기방치화와, 피난선박으로부터 생활 오·폐수 및 쓰레기·폐어망 투기에 따른 연안오염의 심화, 해조류등의 생육지장 및 해양생태계 손상이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목포 신안군 흑산도와 소흑산도에서는 각99년과 2005년 어선 좌초로 인한 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하였다. 긴급피난 자체로 인한 피해도 문제지만 긴급피난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긴급피난권을 남용하여 우리나라 영해로 들어오는 경우나, 아예 불법조업 등 연안국에대한 법령위반을 목적으로 하여 긴급피난 하는 경우도 문제이다.이하에서는 영해에서의 무해통항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고 이에 대한 예외라고 할 수 있는 긴급피난의 요건과 내용, 그리고 중국 어선의 긴급피난권행사에 대해 우리나라가 취할 수 있는 대응방안에 대해 살펴보겠다.Ⅱ. 무해통항권모든 국가의 선박은 유해하지 않는 한 외국의 영해를 자유롭게 통항할 권리(UN해양법협약 제 17조)를 향유하며, 연안국은 이를 의무로써 인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국제해상교통의 원활화를 위한 제도로서 전통국제법상 원칙으로 인정되었으며, 58년 영해 및 접속수역협약 및 82년 해양법협약에 구체적 규정이 있다. 여기서 ‘무해’란 연안국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해하지 않으며 또한 국제법 기타 법규에 합당함을 말하며, ‘통항’은 단순히 영해를 횡단하는 목적으로, 또는 내수에 들어가기 위해 또는 그로부터 나오기 위해 진행하는 목적으로 계속적이고 신속하게 영해를 통과하는 항행이다.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UN해양법협약 제18조 제2항은 불가항력, 조난으로 인하여 필요한 경우, 위험이나 조난상태에 있는 사람·선박 또는 항공기를 구조하기 위한 경우의 정박 및 투묘의 경우에는 통항에 포함된다고 하고 있는데 과연 중국 긴급피난권 행사와 어로활동이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문제된다. UN해양법협약 제19조 제2항 (i)항은 어로활동에 종사하는 경우 외국선박의 통항은 연안국의 평화, 공공질서 또는 안전을 해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아래에서 긴급피난의 요건과 내용을 검토해보겠다.Ⅲ. 긴급피난의 요건과 내용긴급피난의 요건으로는 ⅰ) 태풍·폭풍우 및 돌발적인 ‘기상현상’으로 위해가 절박한 경우 또는 자국의 항구에 피난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경우, ⅱ) 선박의 중요부분의 ‘파손 또는 고장’으로 자국의 항구까지 항해 불가능할 경우, ⅲ) 중병상자 등 ‘응급환자 발생’시, ⅳ) 기타 재해로 인한 위해방지를 위하여 ‘긴급피난 외의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보충성)이다.한국과 중국은 최근 해양수색구조협정(악천후 등 긴급사태 때 상대 국가에 통보만 한 후 긴급 피난 가능)을 체결했다. 따라서 중국은 기상문제 등 긴급상황의 경우에 우리나라에 통보라는 간단한 절차로 우리나라 항구로의 긴급피난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긴급피난권을 빌미로 우리나라 영해에 들어와 조업활동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중국의 선박이 긴급피난의 제요건(위의 ⅰ)~ⅳ))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사전,사후 절차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Ⅳ. 대응방안과 나의 생각지금까지 긴급피난권을 행사하기 위한 요건과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긴급피난이란 명목으로 우리수역에 들어와 어로활동을 하는 중국어선들에 대해 우리나라는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한국과 중국은 2000년 8월 한중어업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양국은 정상적인 어업질서 유지와 해상사고의 신속한 처리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한중어업협정 제10조), 해난구조 및 긴급피난 문제는 상호주의원칙에 의하여 해결하기로 하였었다(한중어업협정 제11조 부속서Ⅱ).우리나라는 이러한 중국어선의 긴급피난권 행사에 대한 대응으로 해양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상특보 등으로 피항시에 감시활동을 위한 경비함정 고정배치와 어업지도선 및 행정선과 헬기를 이용한 입체적인 단속활동 전개와 더불어 우리 어선을 대상으로 피난 중국어선 오염물질 투기행위 발견시 신고체제 유지로 오염물질 불법투기행위에 대해 감시단속을 하고있다고 한다.생각건대 중국어선이 우리나라 관할수역으로 긴급피난할 경우에 앞에서 언급한 긴급피난의 요건을 갖추고 또 우리나라에 통보해 온다면 긴급피난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긴급피난권을 남용하여 조업의 목적으로 우리나라 관할수역을 침범하는 것인데 이는 엄연한 불법이므로 이에 대응하는 법적조치가 이루어져야한다. (긴급피난권을 남용하여) 우리나라 영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하고 불법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에 대해서는 배타적경제수역법(제정 1996.8.8 법률 제 5151호) 위반으로 다루어 추적권을 행사하거나 정선, 승선, 검색 및 나포등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한국 영해를 침범해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어선을 나포하여 목포항 등으로 압송??억류하고, 배타적 경제수역법 위반 혐의로 담보금을 내게 한 후 강제퇴거조치를 하고있다. 한편 담보금 기준액 미납시에는 선장, 항해사, 기관사에 대하여는 구속 수사하고, 기타 선원은 강제 출국 조치하는 등 해양주권 수호 차원에서 강력하게 처벌 재발 방지에도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긴급피난을 가장한 불법조업의 폐해를 막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장의 피해를 막는데에는 효율적일 수 있으나 지속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2005년 한일(韓日)간 ‘신풍호 사건’때처럼 일본의 강경한 대처는 양국관계와 국민감정 마저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연안국이 추적,나포권등을 남용하여 자신의 불법행위를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외국선박이 긴급피난한 경우 정확한 상황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배타적 경제수역법 위반이라고 하여 무조건 추적하여 나포할 것이아니라 불가항력 또는 긴급피난으로 영해 또는 EEZ를 침범했지만 불법조업 기타 연안국의 법령위반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정선이나 나포 추적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설령 상황파악이 확실히 되지 않아 나포권이나 추적권 행사, 담보금 추징을 했다하더라도 그것이정당화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일어난 손실 또는 손해는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유엔 해양법협약 제111조 8). 외국선박의 선원 및 선체가 입은 피해에 대해 연안국이 보상해야 할 것이다. 또한 마지막으로 우리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긴급피난하는 어선이 줄지 않고 매년 반복되는 추세를 볼 때 정책적, 행정적, 외교적으로 장기적인 해결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Ⅰ. 들어가며최근 한국 사회가 급속한 민주화, 다원화를 겪으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는 긍정적 효과 뿐만 아니라 각 집단 간의 갈등 또한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 중 특히 심각한 것은 국가와 개인, 혹은 국가와 이익 집단의 갈등으로서, 거의 매일 언론 매체의 한 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원인은‘권위주의로 부터의 탈피’를 들 수 있다. 즉, 우리 사회가 군사 정권의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통치로부터 벗어나게 되자, 그 동안 억눌려있던 시민들의 민주적 권리 회복에 대한 욕구가 일시에 터져나왔기 때문에 국가와 시민들 간에 많은 갈등을 빚게 되었다는 것이다.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 존재한다. 바로 국가 ? 사회적 명령과 개인의 이익, 혹은 자유와 권리가 상충하는 경우이다. 이는 최근 벌어진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가장 먼저‘양심적 병역거부’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 사례에서는‘국가 안보를 위한 병역 의무 부과’가‘개인의 종교의 자유’가 충돌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 나라의 특수한 안보 사정으로 아직까지 논란만 거듭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매년 600 ~ 700명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포기하지 못해 감옥에 보내지고 있다.또한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례로는 바로 작년 한 해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평택 미군 기지 이전 문제’가 있다. 수십 년을 그 지역에서 살아왔던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미군 기지가 들어설 것이니 그 땅에서 떠나라.’는 국가의 명령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최근 보상과 관련해 국가와 지역 주민들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국가 이익과 시민의 거주권이 충돌했던 이번 사례는 앞으로 계속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이와 같이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는 더 나아가 국가의 명령과 지시에 대한, 특히 불의하다고 판단되는 국가의 명령과 지시에 대한 바람직한 시민의 자세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비록 러나 이 두 가지의 시민상에는 이러한 장점 이외에도 현실 사회에 맞게 수정되어야 할 단점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는 편협한 논리에 치우쳐 하나의 시민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시민상 - 소크라테스와 안티고네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 이 무엇인지, 두 사람의 경우를 바탕으로 논의해보자.Ⅱ. ‘소크라테스’와 ‘안티고네’앞서 언급했듯이 소크라테스와 안티고네는 자신에게 불의하다고 판단되는 국가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죽음을 택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우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이 두 사람의 사상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불복종도 모두 같은 불복종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참다운 불복종의 자세는 소크라테스와 안티고네의 사례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를 생각해보기 위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살펴보자.우선 소크라테스가‘아테네 청년들을 현혹시킨 죄’로 재판에 회부되고 결국 독배를 마시고 죽은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소크라테스가‘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는 사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소크라테스의‘준법정신’을 찬양하며, 국민들에게‘소크라테스처럼 법에 순응’하도록 시민들에게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은 건 사실이나,‘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한 적은 없다. 즉,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일 뿐, 소크라테스가 투철한‘준법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단지 독재 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합법화 시키기 위해 와전시킨‘거짓말’일 뿐이다.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진정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알기 위해‘플라톤의 네 대화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중 크리톤 편을 보면 소크라테스의 절친한 친구인 크리톤은 소크라테스를 살리기 위해 그가 갇혀있는 감옥으는 여러분께 말할 것입니다. 아테네인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반기며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보다는 오히려 신께 복종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리고 할 수 있는 동안까지는, 지혜를 사랑하는 것도, 여러분께 충고를 하는 것도, 그리고 언제고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 만나게 되는 사람한테 이 점을 지적하는 것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그는 이 대목에서 당당하게, 한 사람의 철인으로서 나라에 대한 불복종을 공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라의 명령보다 더 상위의 것이라 할 수 있는‘델피의 신’에 대한 복종을 내세우고 있다. 즉, 나라의 법이나 명령보다 더 상위의‘도덕적 원칙’을 지키며 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말은 이와 같이 했을지라도 결국은 법에 순응해 독배를 들지 않았는가?’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소크라테스의 말을 통해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많은 사람(다중)이 생각하듯, 올바르지 못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앙갚음으로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해서도 아니 되는데, 이는 어떤 경우에도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일세...... 따라서 앙갚음으로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해서도 아니 되며, 누구도 해쳐서는 아니되네......)”이와 같은 소크라테스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비록 국가의 명령이 옳지 못한 것이라 할 지라도 자신 역시 옳지 못한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니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소크라테스는 단순히 악법에 순응한 것이 아니라, 불의한 국가의 명령에 자신도 역시‘탈옥’과 같은 부정한 방법으로 응수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토대로 소크라테스의 태도와 입장을 정리해보자면, 그는 국가의 법이나 명령보다 더 상위의 도덕적 원칙 - 우매한 다수보다 한 사람의‘전문가(철인)’의 의견이 존중되어야만 하며, 가장 중요시 여겨야 할 것은 훌륭하게 사는 것(to eu zen)) - 을는 차이점이 있다. 소포클레스의 를 살펴보면 소크라테스와 안티고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오이디푸스의 딸인 안티고네는, 전쟁을 겪은 후 자신의 친 오라비 두 명(에테오클레스, 폴뤼네이케스)을 모두 잃는다. 이 사건으로 인해 비통에 잠겨있던 그녀에게 또 한가지 분개할 일이 발생한다. 크레온 왕이 에테오클레스는 죽음의 세계에서 명예를 누리도록 성대하게 장례를 치루게 했지만, 안티고네의 또 다른 오라비인 폴뤼네이케스는 역적의 취급을 하며 그의 시신은 짐승들의 먹이가 되도록 들판에 버리라고 명령한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명령 뒤에는 함부로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러주는 자에게는 죽음을 내리겠다는 엄포가 따르고 있었다.그러나 안티고네는 이러한 크레온 왕의 위협적인 명령에 굴하지 않는다. 그녀는 왕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러준다. 결국 그녀는 크레온 왕의 심판을 받게 되며, 심판 과정에서의 안티고네의 말에는 그녀의 사상이 잘 반영되어있다.“그 포고를 나에게 알려주신 이는 제우스가 아니었으며, 하계의 신들과 함께 사시는 정의의 여신께서도 사람들 사이에 그런 법을 세우시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나는 또 그대의 명령이, 신들의 확고부동한 불문율들을 죽게 마련인 한낱 인간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불문율들은 어제 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고,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나는 한 인간의 의지가 두려워서 그 불문율들을 어김으로써 신들 앞에서 벌을 받고 싶지가 않았어요...... 자신의 혈육을 존중하는 것은 결코 수치스런 일이 아니에요......아무튼 하데스는 이러한 의식을 요구해요......)”우선 이와 같은 그녀의 대사에서 소크라테스와의 공통적인 입장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국가의 법이 반드시 따라야 할 최고의 덕목이 아니며, 그 위에는 제우스, 하데스의 명령과 같은‘신의 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의 법보다는, 보떠하였을까?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명령이나 법을 일종의 합의의 개념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국가로부터‘받은 것(교육, 육아 등)’과‘약속’이 있다면 국가의 법에 복종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국가의 법질서 붕괴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국가의 명령에 대한 불의한 방식의 저항은 옳지 못한 일이라 판단했다. 따라서 그가 만약 안티고네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는 국법을 어기는 일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국법이 옳은 것이라 판단되는 경우). 아무리 혈족이라 하더라도 나라를 반역한 자를 위해 장례를 치러주는 일은‘국가의 약속 ? 동의’와 어긋나는 일이며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법이 옳지 못하다고 말할 가능성은 적다.Ⅲ. 나의 견해그렇다면 소크라테스와 안티고네 중 어느 경우가 보다 올바른 시민상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경우를 현실 사회에 적용해보며 생각한다면,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소크라테스의 경우, 국가의 법질서를 존중하며, 타 시민들의 각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 그러나‘소크라테스형’의 시민상에도 비판의 여지는 존재한다. 우선‘시민이 언제 국가와 약속을 했느냐’는 반문과‘내가 국가로부터 무엇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쉽사리 답변을 내리기 힘들다.‘내가 이 국가에서 태어났으므로’,‘국가 덕택에 어느 정도의 보호와 교육을 받았으므로’라는 답변이 가능하지만, 이에 대해서 다시‘그 정도의 혜택이 과연 국가에 반드시 복종해야하는 타당한 이유를 제공하는가?’라고 반문한다면 이에 대한 대답은 궁색해질 수 밖에 없다.또한 불의한 법, 혹은 악법에 대한 그의 태도가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비록 소크라테스가 악법에 대한 아테네 인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또한 자신의 철학적 ? 도덕적 지키기 위해 불의한 방법으로의 저항을 거부했다고 하지만, 이러한 태도로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국가와 시민 간의 갈등과 권리 침해등의 문제들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양심적 병역것이다.
들어가며러시아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하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을 꼽자면 가장 먼저 레닌을 언급할 수 있다. 레닌은 잘 알려져 있듯이 1917년, 낡고도 낡은 러시아의 전제 군주제를 뒤엎고 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인물이다. 이러한 ‘레닌의 유산’의 여파는 엄청난 것이어서, 20세기 후반까지 전 세계의 절반은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그러나 그가 이룩하고자한 ‘유토피아적 사회’의 건설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붉은 깃발’의 국가들은 대부분 20세기의 끝자락에서 자신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와 같은 처참한 결과로 인해, 레닌의 시도는 단지 ‘위대한 실험의 슬픈 종말’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으며, 사회주의 국가 내부의 다양한 문제는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억압적 사회주의에 대항하며, 일부 지식인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이념적으로 해체시킨, 솔제니친과 같은 인물들의 삶은 자유민주주의 시대인 지금,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러시아 사회주의 국가 건설의 일등공신인 레닌과 사회주의 이념의 해체의 선구자인 솔제니친이 만난다면 과연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그리고, 이들의 행동과 사상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릴 수 있으며, 그들의 행동은 진정 러시아, 혹은 러시아 인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레닌과 솔제니친의 가상의 대화를 통해 이와 같은 사항들에 대해 논해보도록 하자.가상의 대화 - 레닌과 솔제니친의 만남나 : 안녕하십니까? ‘레닌과 솔제니친의 대화’의 사회를 맡게 된 성찬용이라고 합니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두 분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허심탄회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두 분은 조금 다른 시대에 활동하셨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모르실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먼저 두 분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레닌 : 안녕하십니까? 저는 1924년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을 지낸 레닌입니다. 저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아노프이며, 공식명인 니콜라이 레닌은 1902년부터 사용한 필명입니다. 저는 1870년 볼가 강변의 심비르스크에서 교육자이신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고, 나중에 혁명 운동에 참여하여 1917년 10월 혁명과 뒤이어 벌어진 내전에서 볼셰비키의 대표로서 러시아 인민과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부합니다.솔제니친 :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러시아의 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라고 합니다. 저는 러시아 혁명 다음해인 1918년 캅카스의 키슬로봇스크에서 태어났고, 로스토프 대학교에서 수리와 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저는
- 들어가며크리스마스(Christmas), 이 단어를 듣고 가슴이 들뜨지 않을 어린이는 전세계에 과연 몇 명이나 존재할까?(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 이슬람교, 힌두교, 유태교 국가는 제외) 그러한 어린이는 아마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제는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는 경우에만 진실로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인식하고 있는 아이들의 경우, 이들에게 성탄절은 산타를 기다리는 즐겁고 경건한 날이 아닌, 단순히 자신이 원하던 선물을 '부모님에게' 받는 날로만 다가올 것이다. 즉 그들은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아닌 부모님'을 기다리는 것이다.나 또한 산타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유치원에 입학하고 나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을 사귀에 되면서, '산타는 없다'는 생각이 확고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던 것 같다. ‘눈에 보이지도 찾아오지도 않는’ 산타를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심지어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서 유치원을 방문한 산타 할아버지를 앞에 두고 친구들과 '저 사람은 진짜 산타가 아니다'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 날 밤에는 산타의 선물이 아닌 부모님의 선물을 기대하게 되었다.내가 읽었던 책의 저자 역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자신의 책에 적어놓았는데, 이야기가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산타클로스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언제쯤 눈치 채게 됐는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바로 그 많지 않은 사람 중의 하나다......(중략) 12월이 다가오면서부터 엄마는 사전 교육의 일환으로 '착한 어린이에게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다'고 강조하셨고, 크리스마스 아침 책가방과 학용품을 선물로 내놓을 '만반의 준비'까지 하고 계셨다. 그런데 12월 20일 바로 그 날 저녁 애물단지 같은 TV가 웬수였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쇼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사회자가 가수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닌가? 'OOO씨는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것을 몇 살 때 아셨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온 가족이 보는 TV에서 이런 질문을 해대는 사회자의 심리를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중략) 한순간 긴장감이 거실을 맴돌았고 내 눈치를 보는 엄마와 아빠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일곱 평생을 잔머리로 살아온 나는 '이럴 땐 자는 척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평소 소신대로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챈 '똑똑한 어린이'로 선물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는 산타클로스를 믿는 '순진한 어린이'로 선물과 함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후략)")이 책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많은 어린이들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부정하고, 성탄절은 단순히 '선물을 받는 날'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최근 시청하게 된 '폴라 익스프레스(Polar Express)'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비록 완전히 종교에 대한 주제를 다룬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나,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와 같은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소재를 다뤘다는 점에서 선정했다.)는 어린 시절의 동심과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된 나의 모습을 반성케 하고 '인간과 종교' 강의 시간에 배운 '과학적 합리주의'와 '종교적 근본주의'에 대한 고찰을 하도록 해주었다. 그렇다면 폴라 익스프레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부터 폴라 익스프레스를 통해 바라 본 종교에 대한 두 가지 시선과 관련하여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폴라 익스프레스, 보이고 들리는 것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소년(영화 내에서 주인공 소년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은 산타의 존재를 의심한다. 산타의 존재를 믿고는 싶지만 믿는다면 왠지 속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소년에게 한밤 중 북극행 특급열차가 찾아온다. 놀라운 것은 이 낯선 특급 열차의 차장은 소년에 대한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산타클로스에 대한 소년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 소년을 찾아온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소년은 이 특급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소년처럼 크리스마스에 대한 '의심'을 갖고 있는, 그리고 각자 개성이 강한 세 명의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소년은 북극으로 가는, 다시 말해서 산타의 세계로 가는 열차를 타고서도 산타에 대한 의심을 풀지 못한다. 또한 소년은 열차를 타고 가면서 여러 위험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자신을 도와준 '유령 사나이'를 보고 나서도, '보고 듣는 것만을 믿는' 자신의 신념을 쉽게 접지 못한다. 여러 난관을 거쳐 소년과 친구들은 마침내 산타와 요정들이 사는 북극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산타를 만날 시간이 되는데, 주인공 소년은 그때까지 버리지 못한 산타에 대한 의심으로 인해 산타의 썰매에서 떨어져 나온 방울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나 소년은 곧 크리스마스 정신과 산타의 존재를 믿게 되고, 마침내 산타의 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소년은 산타에게 그 방울을 선물 받았으나, 폴라 익스프레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쉽게도 그 방울을 잃어버렸음을 알게 된다. 방울을 잃어버린 소년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폴라 익스프레스에서 하차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 소년에게는 부모님이 준 선물 외에 놀라운 선물이 도착해있다. 'C씨(산타클로스로 추정되는)'의 소포에 소년이 어젯밤 여행에서 잃어버렸던 방울과 그의 편지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소년과 그의 여동생은 이 방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나, 순수함을 잃어버린 부모님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이와 같은 영화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지나친 '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반성과 합리주의로 인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종교적 근본주의'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년은 북극에 다녀오기 이전에는 철저한 합리주의의 입장에 서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그는 유령과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것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점차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영화 속 등장인물과 장치들은 이러한 소년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즉 세상에는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만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게 되고, 소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크리스마스 정신과 의심 없는 믿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그런데 혹자는 '소년이 결국 산타를 직접 만났고, 산타로 추정되는 인물로부터 산타를 만났다는 증거인 방울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결국 소년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믿게 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해서, 결국 소년은 결국 합리주의라는 자신의 신념에 맞추어 실증적인 과정, 즉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산타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방울은 단순히 합리주의적 증명을 위한 증거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방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소년이 맨 처음 방울을 주워서 흔들어 보았을 때, 그 방울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방울이 고장이 났던 것일까? 물론 아니다. 소년이 산타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자, 방울 역시 이에 화답하듯 경쾌한 소리를 울린다. 과학적 합리주의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된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에서 방울 소리에 대한 부모님과 아이들의 대비 역시 합리주의적 관점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음이 분명하다. 아이들이 흔들면 들려오는 경쾌한 방울소리가 어른들이 흔들면 어떠한 이유에서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인가? 산타가 아이들에게만 들리도록 요술이라도 부린 것 일까? 물론 아니다. 영화는 이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어른들이 동심, 즉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어른이 된 주인공의 내레이션이다.'세월이 지나 친구들과 동생들은 방울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지만, 나에게는 지금도 그 소리가 들려온다.'즉, 중요한 것은 산타가 실제로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었다. 중요한 점은 바로 산타가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 - 종교적 근본주의와 유사한 - 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는 나이가 듦에 따라, 혹은 여행을 떠나기 전 주인공 소년의 모습에서처럼 어린 시절의 믿음과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현대인들에 대한 아쉬움과 '눈에 보이는 것만, 귀에 들리는 것만' 믿으려 하는 세태에 대한 간접적인 비난이 숨어 있다고 생각된다.
Ⅰ. 들어가며최근 세계 무대에서 러시아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1991년 ‘소련 붕괴’이후, 한 없이 추락하는 듯 보이던 러시아는 2000년 푸틴 대통령의 집권 이후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다. 1인당 GDP는 7년 전에 비해 무려 여섯 배나 성장했으며, 1998년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인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던 ‘노대국’은 현재 외환 보유고 세계 3위의 국가로 떠올라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신흥 시장 ‘브릭스(BRIC's)의 한 축을 담당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러시아가 보유한 ‘자원의 힘’은 세계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얼마 전 벌어진 러시아 - 벨로루시의 에너지 갈등은 유럽인들을 석유 공급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에 대한 공포로 떨게 하기 충분했다.그렇다면 쓰러져가던 ‘노대국’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가? 혹자는 푸틴의 과감한 지도력을 언급한다. 집권 당시 미국의 3배에 이르는 범죄율, 각종 범죄, 정경 유착으로 망가진 과두 재벌 체제 등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던 문제들을 과감한 개혁을 통해 쓸어낸 푸틴의 지도력이 현재의 ‘발전하는 러시아’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은 푸틴의 모습이 18세기, 러시아를 본격적인 ‘유럽’으로 변모시킨 표트르 대제의 모습과 오버랩된다고 말한다.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구습과 제도에 신음하던 제정러시아에 ‘유럽화 ? 근대화’라는 바람을 몰고 온 표트르 대제의 업적이 푸틴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푸틴은 자신의 집무실에 표트르 대제의 초상화를 걸고 있으며, 대제를 자신의 정치적 모델로 삼고 있다.또한 혹자들은 이와 같은 푸틴과 표트르 대제의 개혁 성공의 이면에는 러시아 인의 중요한 민족적 특색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원인은 바로 ‘러시아인의 극단성’이다. 다시 말해서 유럽인들이 수십, 수백 년간에 걸쳐 이룩했던 근대화 ? 자본주의화로의 변모를 불과 십수 년 사이에 ‘극단적으로’이룩했다는 것이 는 가장 좋은 단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수 많은 사람들이 속해있는 민족의 특성을 단 하나의 단어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일은 분명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러시아’라는 국가적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어떤 공통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 - The Barber of Siberia]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와 같은 질문의 답을 찾아보도록 하자.Ⅱ. 러시아 인이 ‘극단적’이라는 견해와 그에 대한 반박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통해 러시아 인이 ‘극단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는 의문이다. 우선,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러시아 인은 참으로 극단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례로는 ‘의원(정치인)에 대한 테러’를 들 수 있다. 영화 초반, 수십 명의 젊은 이들이 지붕 위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비춰진다. 그리고 곧 한 고급스러운 마차가 폭발물에 의해 불길에 휩싸인다. 영화 속의 이 장면은 19세기 말, 제정러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급진적 정치 사상을 가진 정치적 결사체에 의해, 수 많은 정치인들이 희생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사건이었다. 흔히 알렉산드르 2세는 농노해방을 비롯해 투르크와의 대결에서 승리, 러시아의 위상을 높인 군주로 유명하다. 그러나 급진적 개혁주의자들, 특히 ‘나로드니키(인민주의자)’들의 눈에는 ‘해방자 황제’의 개혁은 충분하지 못했다. 더구나 나로드니키들은 그간 수백 년 간 러시아를 지배해온‘차르 체제’를 부정했다. 따라서 그들은 차르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정부의 높은 관리를 여럿 죽였을 뿐만아니라, 결국에는 알렉산드르 2세마저 암살하게 된다.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암살을 단순히 ‘러시아만의 극단적인 것’으로만 여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정치적 암살 - 테러는 비단 러시아에서만 발생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과 비슷한 시기, 우리 나라에서 벌어졌던 ‘갑신 정변’을 예로 들어보코뱅당’의 사례에서도 전(前)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온건파인 ‘지롱드당’을 숙청하는 등의 ‘극단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의 갑신정변과 프랑스 혁명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에서 비춰지는 정치적인 암살은 러시아에서만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극단적’행위는 아니었으며, 따라서 이를 근거로 러시아 인의 극단성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러시아 인의 극단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할 수 있는 두 번째 사례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러시아의 전통’을 들 수 있다. 며칠 간의 러시아 전통 축제 장면 이후, 주인공 제인의 나래이션은 이와 같은 맥락의 내용을 잘 나타내고있다.“축제의 마지막 날은 용서의 주일이었어...... 가족과 친구, 이방인과 외국인을 용서하는 날이며...... 후회와 원한을 떨쳐내는 날이지...... 이 특이한 나라에서는 모든게 ‘극단적’이야...... 옷 벗고 빙판에서 죽도록 싸우고, 피멍든 눈으로 서로를 용서하며..... 울면서 결혼을 축하한단다.”그러나 이러한 사례 역시 러시아 인만의 고유한 ‘극단성’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타국에서도 극단적 전통의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조선 왕조 500여 년 동안, 조선의 백성들은 ‘극단적’으로 유교 문화를 숭상했다. 이로 인해 조선의 신하 ? 백성들은 엄격한 가부장적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주군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포기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자주 보였으며, 이는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명맥이 유지되는 하나의 전통과도 같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석전’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전통놀이도 찾아볼 수 있다. 석전은 왕이 관전하는 앞에서 상무정신을 기르기 위해 편을 갈라 돌팔매를 하는 행사를 말한다. 특기할 사항은 이러한 석전이 서로 경계를 맞대고 있는 이웃 마을 간, 혹은 마을 내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즉, 함 다양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그 유명한 ‘사무라이 정신’을 들 수 있다. 과거 일본인들은 이러한 사무라이의 전통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으며, 자신의 명예, 혹은 섬기는 주군의 명예에 흠집을 가했을 경우 서슴없이 싸움을 벌였으다. 더구나 자신이 주군의 명예를 손상시켰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할복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할복을 자랑스러운 일로 여겼다. 중세 유럽의 기사도 정신에서도 일본인들의 사무라이 정신처럼 명예를 최우선시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극단적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러시아의 전통에 비해서 이와 같은 타국의 전통들이 보다 더 극단적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혹 앞서 설명한 정치 테러, 전통 이외에 영화에 비춰지는 시베리아로의 유배나 젊은이들 간의 결투, 황제에 대한 절대적 복종 등을 러시아의 극단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라의 크기가 다를 뿐이지 정치범을 가혹한 곳으로 유배를 보내는 법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17년간 유배 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과 정치 싸움에 휘말려 일생의 대부분을 유배지에서 보낸 고산 윤선도의 경우가 있다. 그리고 젊은이들 간의 결투도 러시아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유럽에서 러시아로 전래된 것이기 때문에 러시아만의 고유 한 극단성을 보여준다고 말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황제(차르)에 대한 절대적 복종 역시 마찬가지이다. 차르에 대한 복종의 전통이 과연 수백, 수천 년 간 지속된 중국인들의 ‘천자'에 대한 복종이나, 일본인들의 ’천황’에 대한 복종만큼 극단적인면을 보이는지는 의문이다.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 이외에도, 더 나아가 혹자들이 러시아 인의 극단성을 주장하게 하는 사례가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소비에트 혁명’이다. 사람들은 러시아 신민들이 숭배하던 차르와 귀족이 한 순간에 제거되고, 그 동안 그들을 숭배했으며, 보잘것 없어보이던, 대다수가 노동자 - 농민으로 구성된 사회주의시혁명정부를 세우자고 선동하는 혁명가들을 따르게 되었는지 되짚어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차르와 귀족의 무리) 얼마 후 역사가 내린 무서운 벌을 피할 수 없었다......1905년 1월이 오기 전까지 러시아 민중은 아버지 차르를 섬겼다. 나로드니키든 사회주의자이든 혁명세력은 한 줌에 지나지 않았고 그 힘은 보잘 것 없었다. 부질없는 가정이긴 하지만......제정 러시아 지배층이...... 민중의 불만과 고통을 덜어 주었다면 러시아 역사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또한 사람들은 에서 저자가 설명하는‘소비에트 전국대회’에서의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의 대조적 모습에서 극단성의 실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10월 혁명 전야에 이 학원에서는 서로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하고 있었다. 아래층 큰 홀에는 차림새가 남루하기 짝이 없는 노동자와 병사들이 몰려들어 5코페이카짜리 싸구려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는 떠들썩하게 농담을 주고 받거나 마룻바닥에서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잤다. 대의원 자격 심사위원회가 있는 2층에는...... 말쑥하게 차려 입은 멘셰비키 신사들이...... 더럽고 무식한 아래층 사람들을 욕했다..... 아래층에 모여든 새 대표들은 그야말로 낡은 러시아 밑바닥에서 권력 꼭대기까지 올라온 사람들이었다......’)물론 이러한 모습들을 고려해 볼 때,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은 분명 극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극단적인 혁명’이 과연 ‘러시아만의 것’인가하는 점이다.이번 사례 역시, 우리나라를 비롯해 타국의 역사를 러시아의 경우와 비교해 살펴보도록 하자. 비록 실패한 혁명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민중에 의한 개혁이 시도된 적이 있었다. 바로 동학 신도와 농민들이 주도한 ‘동학 농민 운동’이 그것이다. 이 운동은 소비에트 혁명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하층민’에 의해서 주도되었고, 신분제도의 기반한 구제도의 악습을 타파하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