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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명의 충돌을 읽고 평가A좋아요
    1. 서론내가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가끔씩 봤던 역사 다큐멘터리나 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배운 크고 굵은 역사적 사실들 뿐 이었다. 처음 교수님께서 두 가지 과제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하셨을 때 세 가지 역사적 사실을 비교하는 것보다 책 한권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을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문명의 충돌”을 택했다.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아주 다른 책이었다. 책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읽어나가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국제 정세에 따른 보이지 않는 경계의 시선, 힘의 변화는 나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또한 그가 제시하는, 예견하는 미래 국제 정세 또한 흥미로웠다.불과 몇 해 전에 일어난 세계무역 센터와 펜타곤의 여객기 테러 사건은 국제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국가들 간의 구도를 바꿔 놓았다. 이는 단순한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건물과 이슬람 여객기와의 충돌이 아닌, 더 나아가서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크나큰 충돌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테러의 여파로 미국시민들은 어디 어느 곳에서 누구와 있든 경계와 두려움의 시선을 떨칠 수 없게 되었고 세계경제, 미래에 대한 시선 또한 그렇게 변하였다. 이렇게 지금도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를 그는 어떻게 분석하고 바라보았을까.그러면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2. 본론먼저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들은 생각은 헌딩턴이 보는 세계는 매우 현실적이고, 어떻게 보면 비관적이란 것이다. 헌딩턴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 그런 것일까.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에서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에 더 이상 대응할 가치가 없어져 전 세계가 이념적으로 보편문명을 형성하고 동질화 되어 버릴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헌딩턴은 저서의 제목에서처럼 이런 낙관론적 예측을 반대하고 새로운 갈등구조가 등장하여 충돌할 것이라고 예측한다.1부 문명의 세계에서는 문명의 의미와 보편문명에 대한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이 되는 부분에 대해 말한다. 문명의 사전적 의미를 요약해 보면 이렇다.문명(文明 c과 도시(civitas)에서 유래했듯이 특히 도시의 문화를 가리키는 일이 많지만, 19세기 말기에 <문화>를 최초로 정의한 E.B. 타일러는 <문명>과 <문화>를 동일시하고 있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T. 홉스 등은 <문명>과 <사회>를 동일시하고, 문명 이전을 무질서한 상태(자연 상태)로 여겼다. 그런데 자연 상태라고 불려진 무질서한 세계는 이른바 미개사회도 포함하여 인간사회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이 명확해져 이 이론은 논리적인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헌딩턴이 사용하고 있는 문명의 개념은 야만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문명이 아니라 사전적 의미와 다소 다른, 언어 종교 등 여러 가지 문화적 특질의 집합체로서 세계 여러 지역에 자리 잡아 온 문명권들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문명은 복수문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사회의 정신적, 물질적 관습, 가치, 체계, 사고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문화적인 실체라고 한다. 이런 문명은 독자적이고 포괄적이며 사회 구성원들에게 귀속감을 제공해 준다. 또한 장기지속성에도 불구하고 융성, 쇠락, 분열하며 시시각각 변한다. 이러한 특징에 의거하여 헌딩턴은 세계를 중화, 일본, 힌두, 이슬람, 정교, 서구,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상이한 여덟 개 문명들이 대립 구도를 이룬다고 말한다. 이런 구도에서 각 나라들은 상호배타적인 갈등관계를 이룬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서도 공통된 가치관, 믿음, 지향 점, 관습, 제도가 있게 마련이고 인류의 문화적 융합과 동시에 이는 점차 강화 되고 있다고 한다.이를 보편문명이라고 부르는데 그가 정의하는 바는 이렇다. ‘공통’이 아닌 ‘보편’문명으로써 옳고 그름 등 기본관념의 엇비슷한 가치관, 최소한의 도덕이며 원시, 야만, 문명사회를 나누는 주축이 되기도 한다. 또한 서구의 힘이 강해지면서 그들의 소비양식, 대중문화가 널리 퍼지고 ‘보편적’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보편적인 문명 안에는 그 중심이 되는 두 가지, 즉 언어와 종교를 빼놓을 수 없다. 언어 면에서 보면 세계 공용어라고 말하는 ‘영어’가 있다.고 정식으로 보편언어로 자리하게 될까.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알고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해소하는 방책은 아니며 오히려 문화간의 이질감을 확연히 느끼게 된다.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강조하게 되며 사회,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자국어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게 된다. 프랑스를 예를 들면, 그들은 전 지역 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서도 영어보다도 거의 자국어를 사용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민족성, 자부심, 힘을 느끼게 된다.세계를 8개 권역으로 나눈 문명의 핵심은 종교이다.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 불교, 정교 모두 한때 건성으로 믿었던 신자들이 신앙에 전념하고 교리를 받들고 의식을 엄수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교리와 종교 제도의 정화를 전투적으로 앞세우면서 교의에 합당하게 개인, 사회, 대중의 행위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리주의 운동이 부각되고 있다. 더불어 20c후 종교적 자각이 두드러지면서 세계 곳곳에 여러 종교가 부활했고 그 차이와 갈등은 더 심화되었다. 이도 언어와 마찬가지로 보편종교가 생길 가능성이 만무하다는 것이다.서구는 그들이 중심이 된 그들의 산물을 ‘평화’라는 명제 아래 전 세계적으로 융화, 통합, 확산 시키려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보편문명을 제국주의로 받아들이는 비서구인들은 이를 단순한 위선, 이중 잣대, 단서 조항으로 밖에 보지 않으며 위기감, 적대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비서구는 그들을 죄고 있는 서구의 경제, 군사, 문화적 그늘아래를 벗어나려 하며 그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핵, 생물, 화학무기를 개발하며 서구에 필적할 만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서구는 이런 움직임에 맞서 문화, 사회, 인종적 틀을 보호하려 하지만 특히 도전의식이 강한 이슬람, 중국 문명, 문화적 자긍심의 일본 문명에 그 입지가 사라지고 있으며 앞으로의 길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본다.2부 변화하는 문명의 균형에선 1부에 이은 서구의 퇴조를 말한다. 20c초까지 서구는 거듭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후 경제적, 점진적으로 발달 하고 있고 그 힘을 키워 나간다. 과거 서구는 자신들의 문명을 가장 보편적인 문명으로 생각하고 이를 다른 국가나 민족에게 강요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만이자 착각이다. 전 세계인이 콜라를 즐겨 마신다고 해도 스타워즈가 영화 시장을 석권한다 해도 이는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형성한 문화, 종교적 동질성에 다가갈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급격히 성장한 이슬람과 아시아 문명을 주축으로 서구와 비서구의 대립구조는 수면위로 떠올랐고 헌딩턴은 그 충돌을 예견한다.3부 문명의 새로운 질서에선 두 개로 갈라졌던 냉전시대 이후 달라진 국제 정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뚜렷한 이데올로기적 대립구조를 보였던 냉전 시대와 달리 탈냉전 시대에는 문명들과 소속국, 핵심국, 고립국, 단절국, 분열국으로서 관계를 맺는다. 소속국은 한 문명에 문화적으로 완전한 동질감을 느끼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는 대부분 문화의 근원과 뿌리가 되는 성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장소는 주로 핵심국에 있는데 핵심국은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문화적 중심 국가로써 강력한 발언권을 갖는다. 서구에서는 미국과 독일-프랑스, 중화문명에서는 중국이 있다. 분열국은 한 국가 내에 다른 문명을 가진 여러 민족이 혼재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한 문명에 속하긴 하지만 다른 문명으로 국가를 바꾸려 하는 것이 특징이다. 터키처럼 비서구 문명인 자신들을 서구에 포함 시키려는 것이 그런 경우인데 헌딩턴은 이런 분열국이 정체성을 갖기 위해선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먼저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엘리트가 이러한 운동을 주도해야 하며, 일반 대중은 침묵하고 또 개종자를 수용할 의사를 지녀야한다고 한다.이런 탈냉전 시대에선 같은 문명의 나라들끼리의 문화적 결속은 더욱 강화되고 그와 반대하는 문명끼리의 단층선이 분쟁을 일으킨다. 즉, 전쟁이라는 것이 단지 국익, 안보 같은 것 때문이 아닌 문명이라는 요소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눈에 띄게 발전하면서 세계는 유동적으로 교류하며 자신과 전과 더불어 경제적 근대화와 사회화는 대중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혼돈을 주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민족적이거나 종교적으로 정의한다. 민족, 종교적으로 자기네들과 다르면 그들은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이는 매우 배타적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같은 문명에 속하는 나라들은 모이고 뭉쳐서 문화, 경제적 협력체를 만든다. 이런 문명국끼리의 연합은 더 큰 이익, 힘, 성공 가능성을 만들어 주고 그 결속력 또한 훨씬 강해지기 마련이다.4부에선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이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긴 문명의 충돌을 본격적으로 거론한다. 서구의 힘이 쇠퇴하였다 해도 군사, 경제력에 있어서는 가장 우위이다. 이에 맞선 비서구 국가들은 핵, 생물, 화학 무기를 만들고 그들 조직 안에서 수출입하며 서구를 위협하고 서구는 국제적 합의와 경제적 압력을 통해 규제시키려 한다.헌딩턴은 문명의 갈등이 보통 단층선 분쟁과 핵심국 분쟁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가장 큰 구도인 이슬람과 서구, 아시아와 중국의 역학관계에 대해 말한다. 단층선 분쟁은 서로 상이한 문명의 국가나 무리사이의 집단 분쟁인데 이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전쟁으로 발전 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선 세계 주요 문명의 핵심국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의식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경고한다. 같은 문명이라는 이름 하에 뭉친 국가는 다른 문명과의 전쟁 시 크나 큰 지지를 얻게 되고 이런 문명 규합은 여러 가지가 사건을 보여준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아랍, 서구(미국)⇔이라크’의 구도를 나타내야 했지만 아랍인들은 이라크를 응원하여 결국 ‘서구⇔이슬람’의 구도가 펼쳐졌다. 또 다른 경우로 아르메니아의 아제르바이젠에 대한 공세는 ‘터키, 아제르바이젠, 이란⇔러시아, 아르메니아’로 발전되었는데 이는 인종, 종교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구유고슬라비아의 내전에서 또한 러시아는 같은 슬라브인이며 정교도인 세르비아를 지원했으며, 이슬람 국가들은 같은 이슬람교 국가인 보스니아를 있다.
    인문/어학| 2005.06.13| 5페이지| 1,000원| 조회(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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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키츠-성 아그네스의 전야
    『존 키츠』 The Eve of St. Agnes키츠의 시를 읽고 가장 먼저 느껴졌던 것은 시적 표현이 매우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작품의 주제, 배경, 시어 등의 중심은 “미”였다. 그는 오로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였고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미 는 곧 진리였다.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워 온 시인들- 자연을 찬미하고 도회지의 물질적 삶을 개탄한 도덕적 자연주의자인 워즈워스, 인간세계에 대한 환멸과 사회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보여준 바이런, 인류, 사회에 대한 개혁을 주창한 셸리와 달리 키츠는 모든 인간사에 대해 상대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는 초연함을 지녔다. 또한 끝없이 변하는 문명세계에서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영원의 세계를 탐색해 낸다. 시를 통해서 시인 자신이 추구하는 바, 목적이 있는 다른 시들과 달리 한 발짝 여유롭게 떨어져 아름다움을 읊는 키츠의 시는 요즘 들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나에게 매우 참신하게 다가왔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시가『성 아그네스의 전야』이다.이 시는 다른 비평가들이 평가하기에도 중세를 배경으로 삼은 가장 완숙한 작품이라고 한다. 전반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성 아그네스 날 전야인 1월 20일 처녀가 저녁을 거르고 잠자리에 들어 눈을 하늘로 향한 뒤 경건하게 신께 기도드리는 의식을 준수한다면, 그녀의 미래의 남편에 대한 환영을 보게 되리라는 민담을 토대로 한다. 포피로 라는 청년이 그가 사랑하는 매들린을 만나기 위해 그녀의 가족들을 만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안젤라의 도움으로 성으로 들어가 그녀를 만나고, 결국은 사랑의 도피를 한다는 낭만적인 내용이다. 예전 같았으면 비현실적인 유치한 내용이라고 했겠지만 요즘 졸업반이고 남자를 볼 때 현실적 요건을 많이 보게 되면서 이 내용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주변에서도 물론 그렇고 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이런 현실을 맞게 된다.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사랑만을 위하는 순수한 사랑이 그립기도 하고 가장 아름다워서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 것 같다.이러한 낭만적 줄거리를 틀로 중세적 배경,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풍부한 감각적 이미저리의 사용, 화려하고 장식적 수사, 음악적 효과로 더욱 그 분위기를 고조 시킨다. 아름다운 시구와 감각적 묘사력으로 시를 읽어 내려가면서 그 그림이 눈앞에 절로 펼쳐졌다. 특히 식탁에 차려진 온갖 산해진미에 대한 시인의 묘사는 정말 정교했고 시각, 후각, 미각이 동시에 어우러진 풍요한 상차림은 이국적이고 낭만적 분위기를 더욱 일깨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내용을 보조하려는 아름다운 단어들이, 너무 수사적인 장식에 치우쳐 줄거리 전개가 산만해지고 정작 유기적인 구성력이 부족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매들린이 그에 대한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녀는 현실의 포피로를 보게 된다. 이제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 속의 사랑이 된 것이다. 그런 현실세계에서의 가족들의 위협, 그녀는 울며, 한숨쉬며, 종잡을 수 없는 말을 읊조리며 고통스런 실망감을 나타낸다. 이원화된 세계, 즉 현실과 꿈, 영혼과 육체, 자연과 초자연 이 대조되는 두 가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또한 동전의 앞, 뒤처럼 절대 떨어지지 않는 그런 존재 말이다. 이런 이원화된 세계는 그의 상상력을 통해 현실-영원-이상의 세계까지 구현한다. 마지막으로 이 연인들은 현실의 장벽이 없는 폭풍우,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그들이 사라진 곳은 현실이 아닌 영원의 세계, 이는 곧 육신의 세계가 아닌 영혼의 세계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문/어학| 2005.06.12| 2페이지| 1,000원| 조회(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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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과 바다 평가C아쉬워요
    노인과 바다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읽어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자세한 내용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 교수님께서 좀 지루할 것이라고 얘기를 하셔서 중요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지금까지 보았던 모비딕이나 최후의 모히칸 보다 더 재미있고 집중하고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어보기도 하였다.어부인 샌디아고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 그의 딸들 주변사람들이 모두 말리고 늙은 그를 무시했지만 그는 어마어마한 것을 이뤄냈다. 그것이 비록 뼈만 남은 물고기를 가져왔지만 말이다. 크나큰 바다에 홀로 떠있는 배 한척, 수 많은 나날을 아무 소득 없이 있던 샌디아고, 나도 처음엔 마을사람들과 비슷한 태도였다. 무엇을 하려고 힘들게 저렇게 있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곁을 멀리서도 지켜준 한 소년을 보며 마음이 찡했다. 바다를 향해 야구경기 소식도 전해주고 딸이 아버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말할 때도 샌디아고를 옹호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영화의 바다에서 물고기와 씨름(?)하는 샌디아고를 보며 저 장면만 보여줬더라면 참 지루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힘든 항해를 하면서 간간이 그가 젊었을 때 팔씨름 왕이었던 장면, 근래에 젊은 사람과 팔씨름하여 이긴 장면을 삽입하여 지루함을 덜어주었고 그의 신체적이나 정신적인 괴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하였다. 영화를 보면서 젊었을 때나 그랬을지언정 지금은 아닐꺼라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하도 노끈을 쥐고 있어 손에 피가 나고 태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그 끈을 놓치 않았던 집념은 나중에 달빛에 커다란 청어가 뛰어올랐을 때의 기쁨과 쾌감을 이루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상어들이 몰려왔다. 안 그래도 힘이 빠진 노인에게 수없이 몰려오는 상어 떼는 너무 가혹했다. 작살을 던지고 칼을 던지고 나중엔 남은 것이 없었다. 영화를 보면 나 같았으면 차라리 낚은 청어를 떼고 도망가는 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역시 샌디아고는 불구의 집념과 의지를 가졌었다. 정말 경외감이 들었다. 계속 그 상어들과 싸웠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나중에 장면에서 배가 사라지고 마을의 풍경이 나올 때는 그냥 죽었나 하고 생각이 들었지만 바다 멀리 뿌옇게 보이는 배를 보며 나도 그 소년처럼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반가웠다.남은 것은 비록 큰 뼈일 뿐..하지만 그를 보며 비웃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을 없었다. 모두가 나와 그를 경외감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노약 해진 그를 부축하는 소년 을 샌디아고는 끝까지 거부하고 쓰러져도 홀로 일어나 걸어간다. 그리고 얼마 뒤 바다를 항해하자는 소년을 보며 약간은 망설이는 듯했지만 그러자고 한 샌디아고는 죽음도 바다에서 맞겠다는 듯한 고결함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그는 계속 고기를 낚으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기를 향해 몰려드는 상어를 마구 죽인다. 하지만 그는 그러면서도 고기에 대한 존경심이 있고 고기를 사랑한다. 이게 정말 소명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샌디아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보통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면을 가졌다. 책에서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은 다 낡아 보였지만 눈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두 눈만은 바다와 같이 푸르고 명랑하며 패배를 몰랐다. 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의지가 매우 강하며 자신의 목표 앞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조금은 무서운 강인한 인물이다. 또한 중간에 자신은 커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큰 새들에게 먹이를 뺏기는 제비갈매기를 가엾어하는 대목에선 그의 따뜻한 마음씨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초반부에 나온 장면에선 소년과 노인이 집에 돌아와서 있지도 않은 생선을 먹으라고 권하고, 벌써부터 팔아버린 망태기를 빌려간다고 말하며 둘이서 연극하는 장면은 그의 유머러스 한 면도 볼 수 있었다.이 작품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고 반성하게 되었다. 이제 곧 4학년으로서 취업을 앞두고 경쟁률 얘기를 들으며 몸부터 사리며 걱정이 한 가득 이었다. 해보지도 않고서의 두려움.. 이는 여기저기서 달려드는 상어와 아무런 무기도 없는 샌디아고의 입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인문/어학| 2004.11.08| 3페이지| 1,000원| 조회(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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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비딕영화의 처음은 이슈마엘 중심으로 시작된다. 이슈마엘은 나레이터처럼 일종의 관찰자가 되어 우리에게 그가 보고 느낀 것을 알려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간다.바다, 포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의 고통을 잊으려 시작된 그의 항해에서 한 포경선을 함께 타는 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그 중 오래 들어오기만 했던 선장-에이합은 승선한지 며칠이 지난 후 대면한다. 다른 선원들도 그에 대해 전설로만 들어왔다는 듯이 위압적인 경외심을 느낀다. 에이합은 고래뼈로 된 다리에 의지한 채 엄숙한 표정으로 줄곧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데 나 또한 의문은 모르지만 먼가 암울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에이합은 선원들을 모아 자신이 모비딕을 꼭 잡아 죽이는 것이 이 항해의 목적이라며 모든 선원들이 함께 해야한다고 금화를 내건다.이슈마엘을 비롯한 그저 고래를 포획하기 위해 항해에 나섰던 선원들은 점점 선장의 광기에 이끌려 간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하루 항해를 해 나갈수록 더 해져가고 그 광기는 복수심, 충성심과 맞물려 더 커져만 간다. 모비딕은 고래 잡는데의 전설인 에이합의 자존심을 깎고 다리를 앗아간 존재이다. 에이합이 가지는 그에 대한 분노, 원한, 집착은 더욱 심해지고 커져 모비딕을 흰고래가 아닌 악의 화신이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다른 선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고통을 준 악마를 부수기 위한 도구로 배를 항해해 나간다.책에서 멜빌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감에 있어 독자에게 고래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알려준다. 그에 비하자면 영화는 주로 에이합이 모비딕에 대해 느끼는 분노와 광기가 어떻게 발전되는 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소설이든 영화든 포경선 또는 드넓은 바다의 배경, 그 외 요소에도 고루 신경을 써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고 나중의 비극적 운명이 더 장엄하게 그려졌다.에이합의 분노 어린 광기를 겉잡을 수 없이 커져 지나가다 마주친 포경선의 경고도 무시하고 숱한 폭풍에도 오히려 하늘의 도움이라 여기게 된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던 스타벅을 제외한 선원들도 모두 그처럼 편집광적 분노에 빠진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모티브가 되었을까? 에이합도 사람을 빠지게 하는 카리스마와 리더쉽이 있다. 모비딕은 커다란 고래가 아니라 쳐부수어야 할 악, 즉 그들이 살아가기에 방해가 될 하나의 큰 장애물이 되어버린다. 에이합, 선원들의 최대의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선원들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은 다 달랐다. 하지만 무엇이, 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도 않았는데 그들을 그토록 하나가 되어 열광케 만들었을까? 앞서 말했던 에이합의 카리스마, 군중 심리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고래를 잡기 위한 그들의 동기가 편집적인 분노로 변하기까지 에이합은 그들 안의 악, 영웅심리를 잘 꺼내었다. 이것은 우리 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악이 모이면 그 커다란 자연도 정복하려는 겉잡을 수 없는 욕망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모비딕은 생각해보면 정말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바다에 있는 큰고래에서부터, 악의 상징, 우주 또는 신 등등..그리고 모비딕이 가지는 하얀색 또한 그렇다.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쳐 가는 모습은 순결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나중에 작살이 던져질 때 피와 대조되는 하얀 색은 공포 스럽고 두렵다. 이것은 선과 악의 결합으로 이 또한 해석이 다양하고 모호하다. 에이합은 단지 자신의 다리를 앗아가서 그토록 모비딕을 파괴하려 한 것일까? 에이합에게 모비딕은 꼭 없어져야만 자신이 살아남고,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바꿀 수 있는 대상이 되었고 반드시 정복해야 한다는 불굴의 의지로 표출된다.이것은 어떻게 보면 커다란 자연의 이치를 하찮은 인간이 지배하고 정복하려 하면서 오히려 초자연적인 존재에 정복당하고 마는 모습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바다에서 잘 살고 있는 고래를 기름을 짜내기 위해 인간들이 이용하기 위해 작살을 던져 죽이는 모습은 공포 스러웠고 야만인처럼 표현된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나가던 포경선의 경고에도 아랑곳 않고 거절한 채 그들만의 의지로 나아가다 결국 당하는 모습은 광기에 눈이 멀어버린, 자신들의 이익에만 눈이 먼 인간들처럼 보인다.비극적인 인물 에이합은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반영하여 보여준다. 가치가 다원화 되가는 현대에서 자연의 의치를 거스르는 인간의 행동들은 셀 수 없이 늘어간다. 그러면서 선은 악의 힘에 밀려 나간다. 이것은 우리가 모비딕을 일종의 예언서라고도 볼 수 있는 이유이다. 긴박감 넘치는 음악 속에서 소리를 지르며 눈에 빛을 내며 작살을 내리꽂는 인간들, 그러나 모비딕은 그를 비웃듯 한번에 몰살시키고 다시 유유히 조용한 바다를 헤엄쳐 간다. 이런 최후의 대결에서 우주적인 자연은 인간의 오만하고 완고한 고집을 겸허하게 만들어 준다. 나 또한 이 마지막 장면에서 그 큰 자연이 만든 힘, 위대성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하찮은 인간임을 깨닫게 되었다.모비딕은 작가 멜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해양 소설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포경선과 선원은 인간세계와 인간으로 볼 수 있고 드넓은 바다는 인생 또는 우주로 볼 수 있다. 초반부터 작품 전체에 흐르는 신비로운 분위기와 거칠고 독특한 인물들의 분위기는 나레이터 이슈마엘이 멜빌을 대신하여 나타낸다. 이슈마엘은 또한 독자들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 소설속에서 그는 매우 객관적인 인물로 나온다. 말 그대로 화자이다. 물론, 주인공으로서 갈등과 인물 사이에 오고가는 사건들 사이에 작용을 하긴 하지만 지극히 객관적이고 삼자적인 입장에서 포경선을 탐구하고 서술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슈마엘 혼자 살아남게 되는데 이 또한 결론적으로 독자에게 화두를 던짐으로서 작가 스스로 어떤 최종적인 해석을 부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슈마엘만이 자칫 주관적일 수 있는 사건에 대해 거리감을 두고 사실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고 그럼으로써 작가의 사상 또한 올바르게 전달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신임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 같다.멜빌은 결국 인간은 인간의 광기로 자기들 스스로 파괴를 불러 왔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모비딕은 불완전한 인간이 도달하거나 정복할 수 없는 절대존재인 자연이나 신을 뜻하고 신성의 존재이자 두려움의 존재로 그것과 도전하여 맞 부딪힌 인간인 에이합 등에겐 파멸만 남았다. 이 모비딕에서 우리의 삶과 세계, 미래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육지를 떠나 바다로 항해하는 이슈마엘은 문명의 잘못된 틀을 벗어나 자연적인 다른 세계를 꿈꾸는 우리의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고래와의 죽음의 경험을 한 뒤 관을 잡고 다시 육지로 가게 되는 모습은 죽음과 근접했던, 그래서 다시 육지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모티브가 될 수 있다.
    인문/어학| 2004.10.25| 3페이지| 1,000원| 조회(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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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문학] William Shakespeare<sonnet18>과 John Donne<A Valediction>표현방식에 따른 사랑 평가A+최고예요
    "William Shakespeare과 John Donne표현방식에 따른 사랑"두 시의 주제는 각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많이 사용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지만 그를 나타내는 방법은 사뭇 다르다. 두 시인은 사랑의 불변성과 영원성에 대해 뛰어난 상상력과 새롭고 생동감 있는 언어로 나타냈다. 셰익스피어의 sonnet18은 전체적으로 처음의 질문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처럼 여인과 여름날에 대한 대조로 이루어진다. 4연에선 lease라는 단어로 자연의 한 부분을 "빌림"으로써 그 기간을 매우 짧고 계속 퇴색하는 존재로 나타내는 반면 변하지 않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부각시켰다. 또 여름의 낮과 밤을 the eye of heaven, his gold complexion처럼 은유와 kenning을 사용하였고 자연의 변화가 손질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untrimm'd를 사용해서 자연의 시듬과 항상 가꾸는 여인에 따르는 아름다움의 영원성을 대조시켰다. 마찬가지로 nature's fair, nature's changing course와 thy eternal summer, thy possession을 비교해서 자연의 가치는 깎아 내리고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했다. 11연부터는 그것이 더욱 강조된다. 아무리 자연이 변하고 죽어도 "시가 존재하는 한"의 틀, 한계점을 둠으로써 자연현상 보다 더 큰 시의 힘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이 시에는 시간의 흐름이 나타나는데 처음부분 buds of may-생성, 태양이 뜨겁게 비추는 낮, natures changing course로 태양이 시드는 dimm'd, decline으로 결국 소멸을 표현한다. 이는 여인과 시 그에 따른 사랑 또한 더 강조시킨다. John donne의 A Valediction에서도 비교하는 대상은 다르지만 사랑의 불변성. 영원성은 강조된다. 첫 연은 직유를 사용해서 고결한 사람들의 죽음과 연인들의 이별을 비유한다. 고결한 사람들이 죽음이 영원한 소멸이 아닌, 오히려 더 축복 받은 삶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기뻐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의 이별이 시간, 공간적으로 헤어지더라도 영적으로 더 굳어지는 계기이니 오히려 좋은 시간이란 뜻이다. 또 지진을 이별로 인한 슬픔,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로 비유되고 연인들의 이별은 천체 진동처럼 두려운 것이 아님을 비유하고 있다. 넷째 연과 다섯째 연은 서로 대조시켜 전자는 육체적 이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나타내고 후자는 서로의 믿음을 바탕으로 사랑의 본질을 영혼에 둠으로써 이별을 극복하는 의지적 사랑을 하게된다. 그렇게 함으로서 a breach, but an expansion 이별이 아닌 확장임을 역설하고 그 사랑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또 떨어진 연인의 두 영혼을 두들겨 늘어뜨린 금에 비유함으로써 추상적인 것을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전환시킨다. 한편으론 전체적으로 시인이 뜻하는 바에서 금이라는 눈에 보이는 물질을 보이지 않는 영혼으로 나타내는 것은 모순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이미 하나로 결합되었으므로 오히려 그 의미를 더욱 와 닿게 하고 있다. 컴퍼스 부분은 시인의 기발하고 기괴한 발상을 전적으로 드러낸다. 이 컴퍼스의 비유를 통해 그 컴퍼스의 다리가 움직이더라도 정신 즉 꼭지는 붙어있으므로 항상 일체인 것이다. 제일 마지막 연처럼 한쪽의 변함없는 사랑이 또 한쪽의 변함없는 사랑이 되 정신과 육체의 참된 합일-완전한 원을 그릴 수 있게 된다. as makes me end, where i begun처럼 처음 시작한곳이나 마지막으로 만나는 곳은 변함없고 그 기본적 요소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요즘처럼 사랑을 가볍게만 생각하는 시대에 본보기가 될 것이다. 두 시 모두 틀을 깨는 비유법과 자신만의 개성 있는 언어로 사랑 "Eternalize", "Immortalize"을 나타냈다. 같은 사랑의 불변성이란 주제이지만 shakespeare의 시는 그 시대 흐름에 맞게 자연보다 인간을 중시하는 humanism을 통해 나타내고 john donne의 시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풀이함으로서 형이상학 시를 탄생시켰다.
    인문/어학| 2003.10.03| 2페이지| 1,000원| 조회(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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