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의 인생을 채워주는 인터넷동전의 양면처럼 모든 만물에는 음과 양이 있다는 말이 있다.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듯이, 물질에마저도 물질과 반물질이 존재하듯이 실제로 많은 현상들에는 현상과 반현상이 존재한다.인생에도 양과 음이 있다. 양의 인생은 원기왕성한 삶이다. 웃고, 떠들고, 즐기고, 함께하는 인생은 양의 인생이다. 음의 인생은 내적으로 파고드는 삶이다. 사색하고, 고민하고, 연구하고, 고독을 씹는 인생은 음의 인생이다. 모든 사람은 양쪽 인생의 성향을 모두 지니고 있다. 다만, 사람이 성장하면서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어느 한쪽의 성향이 좀더 밖으로 표출되고 나머지 한쪽의 성향은 상대적으로 잠재되어 있게 된다. 그리하여 외향적인 사람과 내성적인 사람으로 나뉘게 되고, 혹은 양 성향이 비슷한 사람도 나타난다. 흔히, 누군가가 나를 평할 때는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하거나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평하지만 스스로 그것에 대해 "아, 난 정말 그렇다"라고 쉽게 긍정해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에게 잠재되어있는 그 반대성향을 스스로는 늘 느끼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사람에게 노출하고 있지 않을 뿐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인터넷은 한 때 정보를 실어 나르는 유용한 도구였다. 그러나 그 탁월한 확장성 덕분에 정보 외에도 여러 가지 경험과 감정을 빛과 같은 속도로 실어 나를 수 있게 되었다.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증오가 인터넷을 통해 전달된다. 이런 탁월한 인터넷의 전달력은 심지어는 인생 그 자체를 실어 나를 수 있게 된다.인터넷이 나타나기 전에, 사람들은 대부분 반쪽의 인생을 살았다. 양의 인생 혹은 음의 인생이다. 신체적, 환경적, 성격적 원인들 때문에 자신의 나머지 반쪽 인생을 숨기고 살았다. 원만한 대인관계와 추진력으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는 자신의 고독과 우울함을 숨기고 살 수밖에 없었다. 말을 할 수 없었던 농아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양의 인생있게 되었다. 인터넷은 사람들의 인생을 질과 양 두가지 방면에서 모두 풍요롭게 만들어 주게 된 것이다. 인터넷은 사람들에게 즐길 수 있는 많은 양과 음의 서비스를 선사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한 인생을 인터넷을 통해 메우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인터넷에 빠져들기 시작했다.싸이월드에 관하여싸이월드는 이런 사람들의 양과 음의 속성을 아주 적절히 이용한 대표적인 커뮤니티 사이트이다. 나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 한 심리는 적절하게 이용된다.싸이월드는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고, 그곳을 장소로 남과 만날 수 있게 해주어 양과 음의 인생 모두를 사람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사람들은 나 자신과 나의 홈피를 동일시해서 홈피에 옷(스킨)을 입히기도 하고, 나를 대표하는 캐릭터(미니미)를 통해 나의 기분 등을 표현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깔며, 자신의 넋두리를 늘어놓아 다른 사람들의 위로를 받기도 하고, 자신의 즐거운 실생활의 자국(사진)을 남들과 공유하며 함께 즐거워하기도 한다. 자신이 싸이월드에 만든 새로운 인생을 남과 구별되도록 시각적으로 꾸밀 수도 있게 해주어 정말 또 하나의 인생을 사는 것 같은 착각마저도 일으킬 수 있게 한다.싸이월드는 그 동안 굳게 닫혀있었던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미니홈피”라는 서비스를 통하여 부각시키는데 기여했다. 미니홈피는 사회적인 관계에서 볼 수 없었던 개인의 솔직한 모습을 면밀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관음증” 과 “개인사생활” 침해라는 악용의 소지로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폐쇄하는 사례들이 점점 늘어나고, 또한 싸이월드는 점점 늘어나는 네트워크를 통한 “개인 미디어”의 니즈를 구현하기에 현재의 폐쇄형인 “미니홈피” 및 “페이퍼”로는 그 기능을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최근 활성화 되고 있는 개방형 미디어인 “블로그”의 열린 네트워크에 끊임없이 사회성을 유지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네티즌들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내 주위를 둘러보아도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를 폐쇄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늘어가고 있다. 갑적인 동력은 ‘실명’을 이용한 사람찾기 기능이었다. 사람들은 싸이에서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찾아대기 시작했고 점차 실생활의 인간관계가 싸이월드에 복사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싸이월드에서 [음의 인생]을 즐길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실생활에서 감추고 숨기고 억누르던 반쪽을 싸이월드를 통해 경험하고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자신을 감추고 숨기고 억눌러야 했던 상대들이 싸이월드 공간에도 똑같이 나타나게 되면 이곳에서도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차 싸이월드에서 일상생활에 쓰던 가면을 벗을 수가 없게 되고, 일상생활처럼 가식어린 말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 싸이월드를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게 해주었던 동력이 싸이월드를 쇠퇴의 나락으로 밀어낼 수 있는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예전에 선풍적인기를 끌었던 아이러브 스쿨의 경우만 보아도 그러하다.아이러브스쿨은 사람들에게 [추억]이라는 코드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냈고, 서비스의 정상에까지 올라갔었으나, 결국 추락해가는 비운을 겪는다. 많은 사람들은 서비스의 불안정성, 혹은 모인 사람들에게 줄 콘텐츠의 부족, 서비스의 부족 등을 이야기한다. 글쎄, 그랬다면 이후에라도 저런 코드를 가진 서비스가 부각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이러브스쿨의 근본적인 문제는 "반쪽짜리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아이러브스쿨의 첫 시작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옛 동창들을 찾아내고, 기뻐하고, 같이 추억하며 서비스를 즐겼다. 그러나 그렇게 실생활에서 다시 맺어진 추억의 끈은 아이러브스쿨의 간절한 필요를 사라지게 해 주었다.자신의 실생활에서의 인생과 다른 삶을 제공해주지 않는 인터넷 서비스는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고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싸이월드에 의한 사회적 이슈최초에 인간이 칼과 도끼를 만들고 총을 만들 때는, 도구로써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하길 바라였겠지만, 이런 도구를 범죄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문제가 발생했다. 자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좋은 문화만 공유하고 만들어 가길 바란다. 한때 유행을 뭐 심각 하게 생각 할 필요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유행은 말로 떠들기만 하지만, 트렌드는 사람들이 행동하기 시작 하면서 문화가 발생하기 때문에 관심과 주의가 필요 하다.1. 신변잡기적 소모 문화 양산22살 김희선양 오늘은 어디 가서 뭐하고 뭐먹고, 친구들이랑 영화 보고 커피숍에서 수다 떨다가 집에 들어가 디카 사진 싸이에 올리고 새벽에 잤다. 이런 신변잡기적 정보가 누구에게 유용할까? 이 사람에 대해서 관심 있는 사람, 그냥 아는 사람, 모르지만 관심 있게 보고 싶은 사람.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위 3가지 부류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 한다고 가정해도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작성자가 그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여기서 1인칭, 작성자가 관심 있는 대상에게 차라리 1주일에 전화 한통, 그것도 힘들다면 1달에 한번 전화나 메신저라도 말을 걸어서 근황을 묻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사람들 관계는 오프 관계가 더 유기적이다. 상당히 비효율적인 정보, 신변잡기적인 정보가 사이버 상에 넘쳐 나고 있는 것이다.2. 개인 사생활 침해, 정보 유출, 사이버 인맥 1촌 관리의 어려움과 부담감, 정보의 차단과 관리의 어려움너무 상세한 정보와 사생활 정보 노출, 인터넷에 오픈된 개인 정보는 상당히 통제하기 어렵다. 해킹이나 스팸의 위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공개한 정보로 인해 오히려 누군가에게 공격 또는 이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호감이 있고 친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관계가 나빠질 경우 파장이나 영향은 통제 불능 상태로 악화 될 수 있고 기존의 오프 관계까지 위협 받을 수 있다. 대개 누군가로부터 1촌 요청이 오면 거절 하지 못하고 수락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물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1촌으로 허가 받은 이후에는 상당히 위험성이 노출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100% 착하게 산다면 이런 걱정은 없을 것이지만, 사람 사는 성향, 개인주의의 보편화.핸드폰이나 디카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싸이로 달려간다. 사진 업데이트 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시간만 나면, 집에서 별일 없으면 파도타기나 싸이 홈피에 열중 하느라 밤새기가 쉽상이다. 개인 생활 뿐 아니라 회사 업무에도 방해가 될 정도로 중독 증세를 보이고 일부 회사에서는 사이트를 차단하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500원짜리 음악 하나 달고 시작 하다가 도토리가 얼마인지 잊게 되고 아이템을 하나씩 사게 되고, 한달에 쓰는 돈이 증가하기 시작 한다. 실제 10만원씩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친구의 홈 방문자 수가 몇 천명이 넘는데 난 3명일 때, 나도 1000명 방문자를 모아 보자 하는 생각으로 홈피를 꾸미고 관리하기 시작하여 친구 홈피의 방문자 수를 넘었을 때 그 희열!! 아, 짜릿하다. 이런 사람도 실제 많다는 것이다. 상대 홈피와 비교하며 경쟁 하면서 돈과 시간을 더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오프라인에서 친구가 100명이고 싸이에서 만난 친구가 100명 일 때, 어느 부분이 더 중요한가? 이 친구들의 생일만 챙겨도, 싸이에서 답방하고 방명록만 써줘도 많은 시간과 경제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드디어 친구를 관리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과연 친구가 관리할 대상인가? 갑자기 많아진 친구 때문에 관계가 계산적으로 변하고 득실을 따지게 되고 관심과 무관심으로 구분하게 된다. 온라인 관계에 치중하는 나머지 가식적인 성향의 인간관계가 중요해 지고 항상 좋은 면만 과장해서 보여주게 되며, 나를 중심으로 모든 상황이 진행되기를 희망하는 개인주의의 보편화가 진행 된다. 이런 현상이 너무 어린 친구들에게서 일찍 생기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오프라인의 실제 다양한 관계와 경험을 할 나이에 어떤 서비스로 인해 그런 좋은 기회들을 사실 잃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모양은 상당히 많은 인맥을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외형적인 과장에서 오는 허무감은 점점 더 심해 질 수 있다.이런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 온라인 관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문화의 이해 Report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작 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애니메이션을 쫓는 데서 출발했으며, 영화사 전속의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이라는 형태만 제외되었을 뿐, 작품들이 미국에서 계속 수입되었기 때문에, 교육용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만 그 명맥을 이어갔다.일본에 처음으로 공개된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폐허가 되어 버린 마을에서 눈부신 컬러로 나타난 디즈니 만화로 문화적 충격이였으며, 그 이후 디즈니에 사로잡혔던 아이들이 성장하여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1956 년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기업 수준의 대규모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든 토에이 동화는 스스로 "동양의 디즈디"를 목표로 하여, 설립한 후 2년만에 일본 최초의 장편인"백사전"을 완성시켰고, 그것을 시작으로 매년 일본과 동양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l~2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정기적으로 제작 공개했다.또한, 디즈니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데즈카 오사무도 61년에 무시프로덕션을 설립하였고, 1963년 "철완 아톰"을 만들어 방영하였고, 토에이도 "늑대소년 겐" "소년닌자 바람의 후지마루"(64년), "우주패트톨 홋파"(65년) 등 TV용 작품을 제작, 본격적으로 TV애니메이션 시대로 접어든다.출발은 늦었지만 짧은 시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60년대에 다수의 작품이 미국에 방영되면서 재패니메이션을 알리게 되었고, 제작 기술에는 뒤떨어 지지만 강한 스토리 전개와 치밀한 묘사, 리미티드 기법에 의한 독특한 화면효과 등으로 세계소년,소녀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TV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애니메이션 문법을 구축해 나가는 일본은 세계시장을 석권해 가고 있다. 동시에 일본 최대의 대중문화 수출상품이 되고 있고 영상 수출상품의 60%를 점유하는 등 만화 및 만화관련 분야에서는 일본이 최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또한, 현지의 경쟁작품이 더 많은으로 만화를 공부한다. 졸업 후 토에이동화(동영동화)에 입사. 이곳에서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5년 연상의 선배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을 만난다. 훗날 이 두 사람의 우정은 전설이 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에 날개를 달아준 대히트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풍の곡のナウシカ:84년)의 프로듀서가 바로 타카하타 이사오.반대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타카하타가 감독을 맡은 ‘추억은 방울방울’ (おもひでぽろぽろ:91년 일본영화 흥행1위)에선 프로듀서로, ‘헤이세이 너구리전쟁’(평성리대합전ぽんぽこ:94년-일본영화흥행 1위)에선 기획으로 불후의 명작을 낳는다. 미야자키 하야오 인생에 또 하나 결정적 행운은 일본최대출판사중 한 곳인 토쿠마쇼텐(덕간서점)의 출자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설립된 것.‘사람이 최고의 자산’이라고 주장해온 그는 스탭을 전원 사원화하고 연수제도를 정비하며 인재키우는 일을 무섭게 추진해왔다. 그는 지브리 프로덕션에서 극장용 영화에만 전념하며 ‘천공의 성 라퓨타’(천공の성ラピュタ:86년), ‘이웃집 토토로’(となりのトトロ:88년)로 대히트를 기록한 뒤 급기야 ‘마녀의 특급배달’(마녀の댁급편:89년)부터는 연출작마다 일본영화흥행 베스트1을 독점한다.특히 92년 ‘붉은 돼지(홍の돈)는 그해 같이 개봉된 스필버그 영화나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를 넘어 그해 일본내 방화·외화 흥행순위 전체 1위를 차지했다.그리고 97년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 ‘원령공주’(もののけ희)는 일본 영화-애니메이션을 통틀어 사상 최고 기록인 1353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흥행수익은 113억엔 (약 1200억원). 미야자키는 ‘애니메이션 의 신(神)’으로 등극했다. 어떤 정치인이나 경제인에게도 붙여주지 않는 ‘국민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 만으로 우리는 그의 파워를 체감한다.. 일본인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말할 때 첫손 꼽는, ‘미야자키 표 애니메이션’의 브랜드 파워는 대체 어디에서 샘솟기 시작했을까.그의 최근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우선 ‘센과 치히로의 행도 조용한 이 마을의 낯선 분위기에 불길한 기운을 느낀 ‘치히로’는 엄마, 아빠에게 돌아가자고 조르지만 엄마, 아빠는 호기심에 들 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그러다가 어느 음식점에 도착한 ‘치히로’의 부모님은 그 곳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즐거워하며 허겁지겁 먹어대기 시작하는데, 그곳이 왠지 싫었던 ‘치히로’는 혼자 되돌아가겠다고 음식점을 나선다. 하지만 두려움에 다시 되돌아간 ‘치히로’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님을 보고 경악을 한다.겁에 질려 당황하는 ‘치히로’에게 낯선 소년 ‘하쿠’가 나타나 빨리 이곳을 나가라고 소리치는데... 부모님과 같이 나가야한다는 생각에 결국 나갈 기회를 잃은 ‘치히로’는 마을에 머물게 되는데,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마을에서 온천장의 종업원으로 일을 하게 된다.온천장의 주인인 마녀, ‘유바바’는 ‘치히로’의 인간이름을 빼앗고, ‘센’이라는 새 이름을 준다. 방법은 없다. 마을 밖은 바다로 변해버려서 건널 수가 없고, 엄마, 아빠를 구할 방법도 모른다. 지금은 단지 온천장에서 일을 하며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뿐....온천장은 신들의 휴식처. 밤이 되면 800여 신들이 하나 둘씩 온천장에 찾아들고 만화책에서나 보았음직한 갖가지 모양의 일꾼들이 시중을 든다.‘센’이 된 ‘치히로’는 특히 보일러실을 총괄하는 ‘가마할아범’과 ‘린’ 그리고 ‘유바바’의 오른팔인 ‘하쿠’의 보살핌을 받으며 그 곳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모두가 따돌리는 ‘가오나시(얼굴없는 요괴)’는 ‘치히로’에게 관심을 보이며 여러모로 도와준다.한편 평화로운 온천장에는 ‘치히로’가 들어오고 나서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10리 밖에서도 악취를 풍기는 오물신이 찾아오는가 하면, 조용히 지내던 ‘가오나시’가 금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며 종업원들을 현혹시킨다.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던 어느날 용으로 변했던 ‘하쿠’가 상처를 입고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치히로’는 ‘가마할아범’의 도움으로 생과 사의 갈림길을 운행하는 죽음의 기차에 오른다. 오직 편도만이 운 소년과 만나 힘을 얻고, 여러 종류의 일본 전통 원령들이 등장하며,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썩어가는 ‘쿠사리가미’는 ‘센바’의 물로 치유되어 고명한 강을 다스리는 신으로 모습을 되찾고, 소녀는 용이 된 ‘하쿠’와 함께 하늘을 난다.그렇다면 전작 '원령공주'에 비해 내용이 이해하기 쉬워졌을 뿐, 이전의 지브리 작품과 별로 다를바 없지 않은가 반문할 수도 있겠다. 10살 정도 또래의 소녀가 대상이라는 특정 타겟 이외에는 미야자키 구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이 작품에는 전작과는 또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첫째, 아이들의 시선을 끄는 판타지 동화의 세계를 일본 고유의 전통과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토토로 이전까지는 무국적성으로 비판 받았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작품으로 인해 비로서 일본 전통을 자연스럽게 소화시켰다. 아이들에게 고리타분하게 여겨지기 쉬운 일본 고유 전통의 미를 센바라는 협소한 공간에 리얼하게 구성해서 승화시켰다는 점은 놀라울 따름이다. 영화속 센바는 감독의 상상이 가미되어 자유롭게 창조된 또 다른 판타지의 세계이자 치히로가 처음 접하게 되는 현실적인 세계다. 일본 전통의 고증이라는 틀에 속박되지 않으면서도 현실감 있는 세계관을 구축해 낸 것이다.둘째로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테마를 꼽을 수 있겠다. 무조건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비현실적인 환경주의와 흑백논리의 계몽주의가 아니라는 것인데, 남의 목소리가 아니면 말하지 못하는 가오나시, 끝까지 이름을 잃지 않고 자아를 지켜 나가는 치히로 등을 통해서 관객들이 다양하게 느끼고 공감하고 해석하는 여유를 부여했다. 그밖에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이야기의 적절한 템포와 연출, 위화감을 느낄 수 없는 면밀한 작품 만들기가 매력적이다. 또한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표현 기법들이 디지털 작업으로 가능해 졌다. 한마디로 이 작품만의 매력을 평하자면 외침없는 테마와 강요하지 않는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 자체는 가볍지만 담고있는메시지에는 무게가 실려있다.결과적으로 치히로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모두가 반대하는) 변화구를 개발해내는 치열한 노력, 그리고 용감하게 새로운 변화구를 꽂을 수 있는 추진력과 용기에 있다. 자신을 ‘영화의 노예’라 지칭하며 자신을 가장 엄격하게 대하는 태도야 말로 미야자키 브랜드 파워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한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작업중 일부를 절대 외국에는 자신의 작품을 하청하지 않는 미야자키 감독이 처음 한국에 외주를 줘 화제가 됐다. 물론 적은 부분에만 참여하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수준 결코 낮지 않음을 증명한 것인데, 미야자키 애니메이션과 기타 애니메이션으로 양분돼 있는 일본 시장에 미야자키라는 거대한 성벽을 넘어서는 작품이 한국에서 나오기를 기대해본다.※참고 문헌+조선일보 2002년 5월 9일자 이효영 영화감독의 서평+‘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식 홈페이지 (http://www.senn.co.kr/)+디지털 조선일보"아니메(アニメ)"란 무엇인가?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자료를 보거나 사이트를 검색할 때 우리는 아니메(アニメ)라는 단어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아니메란 말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아니메는 애니메이션(Animation)의 일본식 줄임말입니다. 지금은 이 아니메란 단어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일컫는 다른 말로 저패니메이션(Japanimation)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서 시작된 말로 자국의 애니메이션과 구분하는 산업적 측면이 강한 용어적 성격을 띕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나온 그들만의 단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일반적인 의미의 애니메이션과 달리 일본의 이 아니메는 단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액션을 가미한 공상과학(Science Fiction)부터 슬랩스틱 유머(Slapstick Humor), 아침 연속극적 로맨스(Soap-Operatic Romance)까지 그 장르도 방대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TV Show나 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