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철학』- 3장 「계몽과 공지성」근대의 사회적 소통의 영역은 연극이 아닌 다른 미디어-인쇄, 출판에서 이루어졌다. 근대의 미디어인 언론과 출판은 연극과 달리 의식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물론 철학의 영역에서 먼저 일어났던 의식은 텍스트로 변환되어 인쇄되고 출판되었다. 구술로 생각을 전달했던 시대에 있어서 생각의 저장은 개인의 몫이었다. 그러나 인쇄가 발명된 후 생각의 저장은 문자의 몫으로 바뀌었다. 개인의 기억에 의존했던 역사나 기록들이 문자화되어 종이에 저장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종이에 기록된 개인의 기억, 주장은 봉건사회보다 더 빨리, 더 많이 퍼지게 되었다. 출판물의 대량 생산이 소비를 촉진시켰으며 사회현상에 대한 공론화가 가능하게 되었고 각 개인들은 공론화를 통해 정치참여가 가능해졌다. 공론화는 곧 공표의 자유(언론의 자유)와 공지성(公知性)의 초기 단계를 부추겼다.* ① 공표의 원리: 주권자가 법을 준수하고 판단을 내림에 있어서 문제가 있을 때 주권자의 판단을 고치기 위해 여론을 조성하고 충고함으로써 계몽의 정신이 주권자의 통치원칙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서 공표의 자유는 시민사회의 원리였다. 즉 국민이 정치권력에 대항하여 갖는 유일하지만 합법적 무기인 것이다.*② 공지성의 원리: 이성의 공적인 사용은 항상 자유로워야만 하며 이것만이 사람들 사이에서 계몽을 성취할 수 있다. 이성의 사적인 사용은 계몽의 진보를 현저하게 방해하지 않는 한에서는 종종 아주 협소하게 제한되어도 무방하다.*③ 이성의 공적 사용: 공지성의 원리에 입각하여 공공의 계몽에 기여하는 사용ex) 대학 강단에서 강의하는 안철수 대표*④ 이성의 사적 사용: 사회적 지위나 맡은 역할에서 자신의 이성을 사용ex) 안철수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안철수 대표∴ 칸트에 의하면 공지성의 원리에 입각한 공표의 자유는 이성의 공적인 사용에 근거해야 한다. 이성의 공적 사용을 통해 공공적 계몽이 가능해지며 통치자와 국민이 서로를 개혁시킬 수 있고 권위를 전복시키지 않고도 정치적 변혁을 꾀할 수 있다고 칸트는 보았다.∴ 칸트는 이성의 사적 사용에 대해 경계를 했다. 이성의 사적 사용은 사회에서 개인에게 맡겨진 활동과 책임을 수행하지만 개인의 주관에 따라 이성이 사용될 수 있다고 칸트는 보았다. 그는 이성의 사적 사용이 시민적 질서를 해치게 되므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칸트는 학문적 영역에서 쓰이는 정신적인 차원에 이성의 사적 사용을 한정시켰고 그 활용에 있어 공표의 자유를 둠으로써 그의 개념에 융통성을 부여하고 있다.칸트의 주장은 진보를 위한 수단으로써 기본이 되는 개혁의 필요성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개혁은 공공의 계몽이 선행되어야한다. 즉 이성의 공적 영역에 의해 공론이 가능한 공론장의 필요를 지적하는 것이다. 여기서 칸트와 데카르트의 차이가 드러난다. 데카르트가 공론의 영역을 저자 즉 개인으로 넘긴 반면 칸트는 이성적으로 논증이 가능한 공론장 즉 공공의 영역을 예시하기 때문이다. 앞서서 언급된 데카르트의 공론의 영역은 개인 대 개인으로 존재했다. 칸트에 이르러 공론의 영역은 공지성의 개념을 통해 공론장, 미디어, 책문화로 이루어졌다. 개인 대 대중으로 공론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이다.
『미디어 철학』1~4장 정리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드러내는 데 있어 연극만큼 뚜렷한 관계를 보이는 예술은 없을 것이다. 연극은 상상, 모방, 가정의 현실을 무대 위에서 배우와 배우의 관계로 보여준다. 가상의 현실을 보는 관객은 텍스트를 공연으로 완성시키는 필수요소로 자리한다. 이때 배우와 관객은 공연상황에서 감정의 변화를 공유할 수 있고 감정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생산적 관계를 맺는다. 공연과 관객의 상호 작용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연극만이 가지고 있는 현장성과 일회성이 불특정다수인 관객과 소통이 가능케하기 때문이다. 불특정다수와의 소통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소통의 수단, 매개체의 기능을 연극공연의 배우, 무대, 조명, 의상, 분장 등의 영역에서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한적인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연극적인 혹은 연극만의 기호와 수단은 관객의 상상력과 구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연극을 미디어 즉 소통의 측면에서 본다면 작가->공연 요소->관객의 도식화가 가능하다. 텍스트를 배우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은 연극의 기원부터 현대까지 세습되어 왔다. 텍스트의 절대적인 권위와 문자의 권력은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근대의 연극은 텍스트가 본체였고 배우와 기타 디자인 부분은 하부영역이거나 본체에 부속된 영역이었다. 관객은 배우보다 고려되는 대상이기는 했지만 작가의 위상에 버금갈 정도는 아니었다. 관객, 배우보다 작가의 위상이 높았던 것은 연극이 문화를 끌어가는 미디어로서의 역할이 아닌 작가의 입으로 대체되었고, 때문에 작가의 말을 잘 뱉어내고, 잘 듣고, 잘 이해하는 것이 연극공연에 바람직한 자세로 강요되었다. 바로 텍스트에 대한 이해로써만, 텍스트를 재밌는 기계로 되풀이해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기능을 하는 예술로 추락한 것이다. 연극이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이슈를 끌어내고 사회질서 유지나 문화적 소통의 역할을 했던 고대 그리스에서의 기능과는 다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의 연극은 연극의 본태적 기능인 사회, 문화적 소통의 창구 즉 미디어의 역할이 거세되었던 중세극의 형태로 존재했다.근대의 사회적 소통의 영역은 연극이 아닌 다른 미디어-인쇄, 출판에서 이루어졌다. 근대의 미디어인 언론과 출판은 연극과 달리 의식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물론 철학의 영역에서 먼저 일어났던 의식은 텍스트로 변환되어 인쇄되고 출판되었다. 구술로 생각을 전달했던 시대에서 생각의 저장은 개인의 몫이었다. 그러나 인쇄가 발명된 후 생각의 저장은 문자의 몫으로 바뀌었다. 출판물의 대량 생산이 소비를 촉진시켰고 이로써 개인의 생각은 드디어 공론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공론화는 곧 공표의 자유(언론의 자유)와 공지성(公知性)의 초기 단계를 부추겼다.
「에 나타난 욕망과 공간의 관계」목차Ⅰ. 서론Ⅱ. 본론1. 의 공간분석① 극적 연속성으로써의 공간② 인물의 상승의지와 공간2. 의 욕망과 공간① 지하공간 - 욕망과 자기애② 지상공간 - 욕망과 기만③ 지표공간 - 욕망의 분출과 확인Ⅲ. 결론Ⅰ. 서론유럽의 16세기 이전의 문화와 예술의 주제는 ‘신에 의한 구원’ 즉 기독교에 대한 것이었다. 르네상스가 도래하면서 문화와 예술에 있어서 그 주제가 변화했다. 바로 ‘인간’에 대한 관심이 그 주제로 나타난 것이다.16세기 영국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은 ‘민족성의 고양’으로 나타났다. 당시 영국은 튜더왕조(Tudor dynasty)의 마지막 왕,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33- 1603)의 통치기간이었다. 이 기간 중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쾌거를 이루고 명실공히 서유럽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무적함대의 격파는 영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켰고, 극작가들은 이것을 작품에 차용시켰다. 당대의 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역시 그가 쓴 역사극에서 이 효과를 다루었다. 특히 그는 역사적 사건에서 영국 국왕이 가져야할 ‘왕의 정체성’과 ‘왕의 신분이 그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주로 다루면서 민족성과 애국심을 고취시켰다.엘리자베스 시대에서 왕은 그 몸이 첫째, 인간으로서 유한한 몸과 둘째, 정치가로서의 몸, 두 가지로 나뉘었고, 이 두 가지의 몸을 모두 지닌 자가 왕위계승의 정당성을 지니고 있었다. 피셔-리히테의 주장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시대에 있어 왕에 대한 관점은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중 와 , 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에서 리차드의 캐릭터는 왕의 두 가지 몸은 구체적인 기형으로 시각화된다. 리차드는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고, 정치적인 몸 역시 가지고는 있으나 부적절한 신체로 대변되는 유한한 몸이 있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낙오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리차드는 왕위에 오를 수단으로 정통성을 지닌 앤과 자신의 거짓 신앙심을 의도적으로 보여대와 영국에서 있었던 여관 뜰 무대의 공연 관습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겠다. 각 맨션에서 행해지는 중세시대의 공연은 관객의 시각과 청각을 제어하는 제한된 공간이 아니었다. 또한 여관 뜰 무대는 흡사 중세 무대가 교회나 건물에 기대어 무대를 구성한 전례를 따른다. 무대 활용이라는 기능적인 면에서 공간의 규칙성보다는 부스(booth)를 지탱할 목적으로 지어졌던 것이 여관 뜰 무대다. 여관의 창이나 문, 복도는 객석으로 이용되며 여관의 앞마당은 서서보는 장소로 이용되었다.야외극장이었던 글로브 극장은 실내에 위치하고 지붕이 있었던 ‘사설’극장과는 대조적인 ‘대중’극장이었다. 당시의 대중극장은 모양과 크기가 다양했다. 사각형의 극장이 아니라 다각형의 외관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 영국의 극장들의 특징이었다. 빗셔의 판화 부분(약 1616)년빗셔의 판화에서 볼 수 있듯 글로브 극장의 외관 역시 다각형이다. 글로브 극장의 다각형 외관은 객석내부로 쓰였다. 글로브 극장의 또 다른 특징은 ‘피트’(pit) 혹은 ‘야드’(yard)라고 불리는 중앙의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지붕이 없이 뚫려있고, 지붕이 있는 객석인 갤러리들로 둘러싸여 있다. 중앙의 뚫려 있는 공간은 서서보는 객석으로 활용되었다.돌출된 무대가 주된 연기 공간이었던 글로브 극장의 무대 공간은 타이어링 하우스를 배경벽면으로 하여 두 개의 기둥과 단상무대로 이루어져있다. 타이어링 하우스는 3층의 벽면 공간으로 배경구조물의 역할을 하며, 2층 중앙의 악사갤러리, 그 양쪽에는 ‘영주석’(lord's room)이 위치했다. 2층의 공간은 때에 따라 연기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는데 특히 발코니 장면이나 성벽 위에서 진행되는 장면 특히 에워싸는 장면 등 극중 높은 장소를 나타내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한쪽 벽에서부터 돌출된 단상무대는 지붕이 없는 중앙의 피트 쪽으로 나와 있다. 여기에 두 개의 큰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부분의 지붕이 무대의 일부를 덮었다. 관객은 이를 다면에서 둘러쌌다. 극장을 에워싼 객석(gall엘리자베스 시대의 공연관행은 프롤로그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에서 프롤로그는 리차드가 담당한다. 프롤로그를 맡은 당대의 작가나 다른 배우들의 관행에 따라 리차드는 관객석에 가까운 무대 전면에서 그의 몸과 심리를 드러낸다. 그는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과? 심리, 앞으로 전개할 사건과 계획을 단상무대전면에서 궁성 앞에 있는 관객에게 밝혀준다.리차드: (…) 그러나 나는 이 즐거움을 맛보도록 생겨먹지도거울을 들여다보며 치장을 해도 소용없는 인간.사랑의 여신의 축복 없이 흉물스럽게 빚어져어여쁜 여인 앞에는 설 수조차 없는 인간.(…): (…) 이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즐거움도 주지 못하니나는 인간들을 명령하고 위압하기 위하여왕관을 꿈꾸는 것으로 나의 천국을 만들겠다.내 머리 위에 왕관이 놓이기 전까지는나는 이 세상을 지옥이라 생각하겠다.나는 웃으면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에게만족의 미소를 지어볼일 수고 있다.이 얼굴을 거짓 눈물로 적실 수도 있고때에 맞는 온갖 표정을 연기할 수도 있다.마치 카멜레온처럼!그러고도 왕관을 가질 수 없다고?하! 아무리 먼 곳에 있다 하더라도 손에 넣고 말테다.나는 내가 최상의 자리에 갈 때 까지나 자신을 악으로 간주하겠다.(32-33)리차드는 관객 앞에서 자신을 악으로 간주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왕이 되기 위해 연기를 하겠다고 천명한다. 그에 대한 정보를 관객에게 프롤로그에 이미 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은 ‘누가’, ‘무엇을’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리차드가 ‘어떻게’ 왕위에 오르는지에 관심을 가지된다. 더욱이 셰익스피어는 리차드의 신체적 기형을 보여주어 왕위 계승의 부적절함을 시각적으로 암유한다. 때문에 관객은 극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가 ‘어떻게’ 왕위에 오르고, 몰락하는지에 집중하도록 유도된다.또한 리차드의 첫 등장부터 관객은 범인을 이미 알고 있는 무대 위 ‘사건의 관찰자’이자 ‘방관자’로 그와 관계 맺는다. 관객들은 리차드의 왕위 찬탈에 심리적으로 거부하지만 그들의 신체는 이미 범죄라도 구해보려 하지만 비참함만 돌아오는 욕망이 된다. 앤의 승낙을 받고 왕위를 찬탈한 이후에도 그에게 여자들은 ‘더러운 매춘부’, ‘사악한 왕비’, ‘어리석은 여자’, ‘천박한 여자’일 뿐이다. 그의 사랑을 승낙한 앤 역시 그에게 비웃음거리의 대상이 된다. 리차드에게 있어 욕구가 될 수 없었던 애정은 욕망이 되어 그를 비틀린 악의 화신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왕위 찬탈을 선언한 이후 1막 2장의 리차드는 랭카스터 최후의 태자 에드워드의 미망인인 앤을 찾아간다. 앤은 리차드의 살인과 함께 그의 신체를 비난하고 그에게 침을 뱉고 퇴장한다. 런던거리에서 앤에게 받은 망신은 리차드가 앤에 대한 소유욕을 확실히 드러낸다.1막 4장의 장면은 비로소 리차드가 앤을 설득해 결혼 승낙을 받는 납골당의 장면이다. 에드워드 태자의 시신이 있는 납골당에서 앤은 이전의 남편과 육체적으로 완전한 이별을 하고 새 남편이 되는 글로스터공인 리차드와 결혼을 승낙한다.앞에서 보았듯이 타이어링 하우스 1층에 위치한 발견 공간은 은닉장면이나 등, 퇴장로의 기능으로 쓰였다. 당시 관객석은 무대 전면에 있는 3층 건물에만 위치한 것이 아니라 타이어링 하우스 2층 양쪽자리인 영주석에도 위치했다. 발견공간에서의 장면을 영주석에서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무대 전면의 관객석 3층에서 관극을 했을 때 발견 공간 안쪽에 위치한 장면들은 시각선에 걸려 관극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이유로 1층 발견공간을 연기공간으로 장시간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대신 이 공간은 음모, 은닉, 숨겨야할 장면이나 대소도구, 대사로 이루어진 짧은 장면들에 이용되었다. 1막 2장 중 발견공간에서의 납골당 장면과 관객의 시각선1막 4장의 납골당에서 리차드는 앤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다. 그의 살해 동기는 모두 그녀의 아름다움에 있었다고 그녀를 탓하고 있다.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설명한 이후 리차드는 최후의 일격으로 그녀의 선택을 종용한다. 이후 이들의 대화는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납골당이라는 공간에서 앤과 할 수 있다. 이러한 가면놀이는 3막 5장 궁성 앞 광장에서 극대화된다.버킹엄: 어쨌든 공작을 뵈러오게 했으니까,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제가 청원을 드려도 공작께선 점잖게 거절을 하시면서겸양과 경건의 모습을 보이셔야 합니다.리처드: 연극배우 노릇을 하라?버킹엄: 판은 제가 벌일 테니 아주 멋들어진 연기를 보이셔야 합니다.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 등장 준비를 하십시오. (113)리차드와 버킹엄은 3막 5장에서 왕위 찬탈의 마지막 과정인 사회의 인증과정을 계획하고 달성한다. 버킹엄이 리차드를 위해 분위기와 상황을 만들어 냈지만 그 환경을 잘 조정한 사람은 리차드였다. 리차드는 그가 만들어낸 가면 중 가장 큰 가면을 쓰고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 3막 5장 광장 앞 성벽, 리차드의 왕위확정과 배우들의 시각선위의 그림에서 보는바와 같이 신하들과 런던 시민들은 리차드를 올려다보는 위치에 있다. 리차드는 가장 큰 가면인 신실한 기독교인을 분해 이들을 내려다보게 된다. 당대 글로브 극장의 타이어링 하우스 2층 중앙 공간은 성벽장면, 높은 발코니 장면들에 배당되었다. 이 공간은 따로 창문이나 벽 위 혹은 도시를 둘러싼 성벽의 장면에 할당되었다. 때문에 이 공간은 ‘창문’(window), ‘벽 위’(on the wall) 혹은 ‘테라스’(the Tarras)등으로 불렸다.3막 5장에서 성벽위의 리차드는 이미 왕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궁성의 주인 자격으로 자신의 형이 지냈던 왕궁에 이미 들어와 주인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 사제를 옆에 둠으로써 종교인의 모습까지 갖추고 있다. 그는 이미 정치적인 몸과 종교적인 몸까지 획득한 것이다.리차드, 두 신부와 함께 성벽 위에 등장버킹엄: 오, 경건한 인간을 수호하는 도덕의 두 기둥입니다.손에는 저렇게 기도서까지. (…)리차드: 버킹엄 공작,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오히려 예배에 열중한 나머지찾아오신 여러분을 소홀히 대한 제가 용서를 빌어야지요.(…)리처드: 결국 내게 이 짐을 지우겠다고?공작을 다시 불러들여.나라를 위한
서사의 삭제와 이미지의 절합- 관객에게 요구되는 정신적 노동연극은 배우, 무대, 소품, 의상, 분장 등의 매개체를 사용해 하나의 이미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예술이다. 작가의 언어와 문자를 공간 안에 나열되는 이미지를 통해 관객에게 제공되는 연극을 전통형식의 연극이라고 하자. 이때 서사는 사실 막과 장, 즉 장면으로 나열되어 관객에게 제공된다. 서사의 구조가 인과관계의 선형적 구조로 이어지기 때문에 관객은 이야기의 원인과 결과를 확인하는 작업만을 수행한다.전통적인 선형적 서사 예술이 관객집단에게 요구한 것은 다수의 이해였다. 다수의 이해가 옳고 그름을 선택하듯 예술작품에 있어서 다수의 이해는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더구나 특정 공동체의 집합이 아닌 익명이 전제된 불특정 다수의 집합에서 옳고 그름의 문제는 더 강력해진다. 개별적인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 익명의 불특정 다수에게는 모둠의 크기가 곧 옳고 그름의 겨루기가 되기 때문이다. 모둠의 크기가 곧 옳고 그름을 가르고 그 크기에 따라 힘이 배분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선형적 서사 예술에서 관객과 예술창작자에게 요구된 것을 바로 옳고 그름의 문제였다. 따라서 이러한 예술품들은 이데올로기라는 거대 담론 안에서 그 담론을 확인시키거나 이해시키는 매체로 작용하는 것이다.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을 포함한 현대 예술에서 요구되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를 확인시키는 전통예술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다수와 소수의 구별이 무의미해지고 다른 생각 그자체가 작품으로 전달된다.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의 전복, 위반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그 자체로 전달하기도 한다.목적과 목표가 다른 현대 예술은 따라서 전통적인 예술형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예술형식에서 각 장르의 특징은 명확했고 각 영역과 경계가 뚜렷했다. 정의하기와 개념부여하기의 시대를 거치면서 예술작품은 단일한 완성품으로서 제공되어야했다. 이와는 달리 현대예술은 예술형식의 경계와 영역이 모호해지고 겹쳐진다. 단일한 완성품이 아니라 작품의 과정을 관객과 함께한다. 현대 예술에서 형식은 관객에게 작품의 이해를 요구했던 전통적인 선형적 서사 예술과는 다른 형식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연극에 있어 서사가 강할수록 관객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동화와 감정이입이다. 서사형식의 연극은 인물과 밀착되어 인물의 정서에 몰입하고 공감하는 것을 요구한다. 서사는1960년대의 미국연극이나 유럽의 아방가르드 연극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전통적인 연극형식이다. 무대 위에 있는 모든 물질이 그 자체로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을 요구했다. 관객에게는 그 이미지 안에 있는 서사와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요구되었다.관객과의 소통, 교감을 통해 상호작용을 하려 했던 1960-70년대 연극은 진정한 상호작용에 있어서는 사실 회의적인 결과를 나았다. 물론 연극에 있어 다양한 매체사용의 범위를 확대시켰다는 점에 있어 당시의 실험은 현대연극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관객과의 교감을 적극적으로 원했던 그들의 목적은 사실 실패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작품들은 서사성을 띠고 있고 관객참여의 형태에서 관객들은 서사에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당대 연극인들의 함정은 사실 스스로 판 무덤에 있었다.현대의 연극에서 서사의 문제와 관객과의 소통 문제는 앞의 시대와는 다른 행보를 나타낸다. 서사의 필요성을 인지한 후 서사를 삭제하려는 노력에서 탈출한 것이다. 이제 예술가들이 집중하는 것은 이미지이다.
영웅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미셸 오슬로의 Ⅰ. 영웅의 모험과정영웅은 개인적, 역사적 제약 즉 혼란한 상황을 보편적으로 타당한 즉 안정된 세상으로 환원시키는 역할을 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영웅의 모험에는 각 집단공동체들의 존속이유가 숨을 쉰다. 영웅들은 대개 민족적, 문화적,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칭송받는다. 영웅의 일대기나 모험, 그들의 삶의 궤적을 전승함으로써 각 집단공동체의 자존감이 고취되기 때문이다. 즉 한 집단을 존속시키는 욕망이 신화, 전설, 민담이 전승되는 이유일 것이다. 영웅이야기에 전제되어 있는 것은 집단공동체의 무의식이다.일찍이 융은 집단무의식에 대해 언급한바 있다. 융은 집단 무의식에 인류의 무수한 경험이 각인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 없는 신성한 기원과 신의 존재까지도 집단 무의식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집단 무의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은밀한 인류 의식으로서, 거기에는 온갖 존재와 역사적 사건들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융은 광범위한 집단적 세계가 개인을 초월하는 무의식으로 신화와 연결될 수 있다고 정의한다.집단 무의식의 원형들에 관한 구조는 인류의 신화나 동화에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 신화의 이야기는 자연현상과 인간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무의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의식의 원형들은 신들이 나오는 모든 요소들, 예를 들어 태양, 물, 불, 대지, 바다, 동물, 나무 등과 같은 자연의 구성 요소뿐만 아니라 영웅, 현자, 어린이, 어머니, 아버지, 연인, 아들, 왕자, 공주, 등 인간들에 관한 요소들도 포함한다. 이 모든 요소들이 완전히 개별화되지 않은 채 원형의 형태로서 무의식에 담겨져 있다. 특히 영웅의 이야기는 원형중에서도 우주적 질서,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 민족적 정의, 이성과 본능 등을 영웅의 모험을 통해 집단공동체에 있어 존속해야하는 질서를 제시한다. 이때 영웅에게 전제되는 것은 일상과 환상을 넘나들 수 있는 소파의 고정점이다.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벗어나 환상의 세계를 계는 ‘귀환’으로 영웅에게 필연적이 단계가 되며, 초자연적인 후원자의 지원이 따른다.영웅들은 대부분 태생부터 평범한 인간들과는 구별된다. 영웅들은 태어날 때부터 신에게 영웅의 지위를 부여받거나, 아버지에게서 세습을 받는 등 일반인간들과는 차별이 되고 구분된다. 부여받은 권한을 인지하거나 혹은 인지하지 못하거나를 떠나서 영웅의 지위는 타의적으로 부여받는다. 범상치 않은 행동, 초자연적인 수호, 몸의 흔적 등을 그 예인데 이 부여받은 조건은 영웅을 평범한 삶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조건을 받아들여 자신이 영웅의 삶을 인지한 그 순간 영웅은 영웅으로서의 각성을 하고 그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인간의 본능을 저어버린 영웅은 고통스러운 모험을 시작한다. 비로소 영웅으로 살아갈 단계를 밟는 것이다.영웅의 모험담은 전설, 민담, 설화, 신화 등의 종류로 전승된다. 동화나 민담의 영웅과 신화의 영웅은 그 활동 영역에서 구분이 되지만 융이 언급한바와 같이 공동체 의식에 미치는 영향과 민족적 영웅의 청사진은 같다는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동화, 전설, 민담, 신화의 원류를 공동체의 정신적 원형으로 전제한다면 이 분류의 정신적 뿌리는 같다고 추정할 수 있겠다.대개 동화 속의 영웅과 신화 속의 영웅은 다음과 같이 구별된다. 동화속의 영웅은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소우주적 승리를 거두고 신화의 영웅은 세계사적, 대우주적 승리를 거둔다. 또 동화속의 영웅은 젊은이,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되지만 육체적인 조건에 의해 경멸당하는 아이이거나 고귀한 태생의 귀족, 이들이 둔갑한 동물이 그 주인공이다. 동화 속의 영웅들은 자신을 압제하던 상대를 이겨내는데 그치는 것이 신화 속 영웅과 구분이 되는 지점이다. 또한 동화를 읽는 대상이 어린이들이기 때문에 영웅들의 나이는 대개 어린이들과 같은 또래로 상정된다.반면, 신화 속의 영웅은 모험을 통해 자기가 속한 사회 전체의 소생에 필요한 수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예를 들면 종족적 혹은 국지적 영웅들, 즉 테세우스, 페르세우스, 이아손 등뿐만이 아이후 카라바를 찾아가 질문을 하고 마을로 돌아옴.2. 마을에서 무시와 질타를 받음.3. 카라바가 마을아이들을 잡으러 보낸 보트와 나무에서 그녀에게 잡힌 아이들을 구하고 칭송을 받음.4. 귀환한 마을에서 다시 무시와 질타를 받음. 동시에 마을에 물이 없는 것을 자각함. 질문이 다시 시작됨.5. 저주받은 샘으로 들어가서 샘의 괴물을 처치함. 마을에 물이 다시 흐르는 대신 키리쿠는 기절함. 이를 어머니가 다시 살림. 살아난 키리쿠를 마을사람들이 칭송을 함.6. 귀환한 마을에서 다시 무시와 질타를 받음. 동시에 재난의 근원인 카라바에 대한 질문이 시작됨.7. 할아버지인 숲의 현자를 찾아가는 동안 지하와 지상에서 모험을 겪음.8. 카라바의 은신처로 가서 카라바를 끌어냄. 마녀가 가진 분노의 근원인 등 뒤의 가시를 뽑아 마녀의 분노를 없앰.9. 카라바의 키스를 받고 성인이 되어 마을로 돌아옴.10. 성인이 된 키리쿠를 못 알아보지만 어머니의 증거로 마을구성원에게 인정받음. 그러나 카라바와 결혼한 키리쿠를 마을 사람들은 적대함.11. 현자와 저주가 풀린 남성들의 귀환으로 키리쿠와 카라바는 마을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마을구성원들은 모두 어울려 춤을 춤.키리쿠는 소영웅으로 자신이 속한 마을의 재앙-보트, 나무에 갇힌 아이들을 구하고, 저주받은 샘에 물을 흐르게 하고, 마녀의 분노를 상쇄하는 등-을 해결한다. 소영웅의 모험을 시작하기 전 키리쿠에게 선행되는 것은 바로 질문이다.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은 키리쿠가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에게 요구했던 것이다.소영웅에게 전제가 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특별한 탄생이다. 키리쿠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부터 내보내달라는 요구를 한다. 그에게 어머니의 도움은 처음부터 부재한다. 키리쿠는 태어나는 것부터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한다. 어머니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키리쿠는 자의로 세상에 출현하는 것이다.캠벨은 몬타나의 블랙핏족의 젊은 영웅 쿠토이스(Kutoysis)의 예로 영웅의 탄생을 언급한다. 쿠토이스는 처녀인 어머니의 뱃속에서 물다. 여기에서 그는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이 모험은 영웅을 일상의 세계로부터 분리시키며, 그의 힘과 지혜를 깨닫게 하는 과정이 된다.키리쿠는 먼저 저주받은 샘에서 죽기 직전의 고통을 받고 다시 소생한다. 여러 홍수신화에서 증명하듯 물은 죽음과 생명의 태고적 이미지다. 홍수를 통해 ‘옛 사람’은 죽고 재생된 새로운 존재가 태어난다. 키리쿠가 샘에서 소생한 것은 영웅으로서 최후의 각성을 한 필연적 모티프가 된다. 최후의 각성을 치루고 난 키리쿠는 드디어 마녀를 대면할 준비를 하고 조력자인 숲의 현자를 찾아간다. 비로소 키리쿠에게 본격적인 모험은 시작된다.영웅에게 조력자들은 인간뿐만이 아니다.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조력이 없다면 이들은 행운이 따르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조력은 영웅이 영웅으로 그의 모험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조건이 된다. 단 자신의 소명을 자각한 영웅들만이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민담일 경우 노파, 요정, 동화에서는 동물, 난장이, 마법사, 은자, 목동, 대장장이, 신화에서는 스승, 사공, 저승의 안내자, 가령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르메스, 이집트 신화에서는 토트, 기독교에서는 성모 마리아 혹은 성령 등이 된다.에서 조력자는 다람쥐와 숲의 현자이다. 다람쥐를 도와준 키리쿠를 그들이 도와주는 것은 권선징악의 주제를 따르는 동화에 있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고 존중해야한다는 주제를 어린이 관객에게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그러나 영웅 신화의 영역에서 다람쥐들은 그를 보호하는 숙명적인 보호세력으로도 볼 수 있다. 다람쥐들이 키리쿠에게 여러 선물을 하는 장면, 그를 위해 후투티 새를 쫒는 장면들이 그 예가 된다. 이때 미장센은 마을이나 마녀의 안식처와는 달리 다채로운 색감, 여러 형태의 오브제들이 쓰인다.현자의 동굴은 영웅의 재탄생이 이루어지는 신화적 공간이다. 현로는 오노 고세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남성의 폭력성을 이야기 한다.오슬로: 산의 현자가 카라바에 대해 설명하며 키리쿠에게 ‘남자인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남성이 여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또 얼마나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이 애니메이션의 바탕에 깔려있다.오슬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는 여성에게 폭력적인 존재다. 나 자신도 이런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자도 키리쿠의 질문에 확실히 답하지 못한다. 그도 남성으로서 죄의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오노 고세이: 카라바가 과거에 남자들에게 폭행당한 장면이 짧게 암시적으로 나오는데?오슬로: 그 장면은 일부러 검은색과 붉은색만 사용해 확실히 알 수 없도록 그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강간 피해 여성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단지 인간적인 접근이었을 뿐이다.”마을사람들은 마녀 카라바를 악녀로만 받아들인다. 융의 이론으로 보자면 카라바는 집단 무의식 속에 나타나는 원형들 중 부정적인 측면을 보유하고 있는 그림자 원형(shadow archetype)이다. 그림자는 한마디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어두운 부분이다. 심리학에서 그림자는 보고 싶지 않은 자기인격의 어두운 측면 또는 자아가 전혀 모르는 혹은 별로 모르는 속성을 의미한다. 그림자는 우리들의 이면, 즉 우리들의 검은 형제를 의미한다. 검은 형제는 보이지 않지만, 생명형태가 조형적으로 나타나 보이려면 깊은 그림자를 필요로 하듯이 우리들의 곁에 항상 따라다닌다. 그림자의 내용물들은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이 힘은 감정, 강박관념, 집착, 자발성 등으로 나타난다. 그림자는 그 부정적인 인상 때문에 자아가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들이다. 그림자는 다른 어떤 원형보다도 인간의 기본적인 동물적 본성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원형 중에서도 가장 강하며,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하다. 그러나 그림자는 부정적인 측면이외에도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그림자가 분화되어 의식될 경우,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