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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물 모방춤 - 사자무
    예로부터 한?중?일은 같은 동아시아권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인접해있기 때문에, 문물과 문화의 이동이 쉽게 이루어져 활발한 교류가 유지되어왔다. 삼국의 이러한 관계는 문화의 일면을 차지하고 있는 무용의 관계 역시 서로 밀접하게 유지하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술적 발전을 추구해왔다.전통적으로 이어온 수많은 동물모방춤 중에서, 삼국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자무에 대해서 알아 보겠다. 방법으로는 각국의 문헌자료와 관련 연구물을 분석하여 사자무를 각각 역사적 배경과 변천과정, 종교적 의미, 춤동작의 특징으로 나누어 세 가지 방향으로 접근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한국 전통무용의 올바른 전승 방향과 전통무용에 대한 의식개선, 전승교육 및 학교교육에서의 전통무용의 필요성과 위상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었다.첫째, 사자무의 역사적 배경과 변천과정서역으로부터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사자무는 백제를 통해 일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은 조선시대까지 불교적 색채가 나타나는 사자무가 활발하게 계승되었으나,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민간신앙과 습합되어 다양하던 사자무가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중국의 사자무는 한대까지 서역의 방식이 그대로 전래되었으나, 남북조시대를 거쳐 당대에 이르러서 인도춤의 색채와 영향을 받게 된다. 삼국 중에서 가장 다양하면서도 기교가 풍부하고, 세련미가 가미된 중국 고유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일본은 불교의 유입과 발전에 따라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사찰을 중심으로 전파되었고, 연이어 무악의 사자무가 유입되어 민간으로 번성하면서기악의 사자무는 쇠퇴되었지만, 현재 일본 전역에 300여종이 넘는 사자무가 전래되어 사찰과 민간에서 연행되고 있다.둘째, 사자무의 종교적 의미사자무는 삼국 모두 공통적으로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물론 도교나 유교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전개나 상징 부분에서 불교의 영향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해서탈춤에서는 승려에 대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제시되었고, 봉산탈춤에서도 전체적으로 불교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사자무 역시 부처를 보위하고 숭상하는 사자무가 연행되었다. 이러한 사자무의 행위 자체는 종교적으로 주술적인 기능을 가지게 된다. 사자무를 통하여 악귀와 잡신을 쫓는 벽사진경과 사자를 신격화하여 민중의 소망과 행복을 기원하는 수단으로 삼았다.셋째, 사자무가 가진 춤동작의 특징삼국의 사자무는 음양오행설의 오방사자로, 사자를 인도하는 사자랑이 존재한다. 사자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한 입사자의 동작이 포함되는 것이 공통적이나, 그 춤사위를 나타내는 묘사나 표현은 조금씩 다르다. 한국의 사자무는 기본적 동작과 춤사위에서 사실적인 묘사와 희로애락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여유로움의 미를 지닌다면, 중국은 춤사위가 다양하면서 기교적이고 곡예적인 면이 뛰어나고, 때문에 무예단련의 수단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일본은 무대를 극화하여 사자의 특이성을 살려 실제 색깔과 머리털의 특징이 나타나도록 다양한 가면을 사용한다.넷째, 사자무의 종류와 내용① 궁정사자무사자무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출연하는데, 동쪽에는 청사자가 서쪽에는 황사자가 위치하여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내용이다.이 궁중정재의 사자무는 평안남도 성천지방의 잡극이 궁중에 들어와 연희된 향악정재로, 청사자와 황사자의 놀이 내용은 현재의 북청사자놀이의 형태와 유사하다.② 북청사자놀음한국의 사자무 중에서 사자무가 중심이 되는 유일한 단독형 사자무로, 북청사자놀음의 사자는 몸에 털이 있고 기본적으로 갈색 계통이다. 이 놀음은 한국전쟁 이후 월남한 연희자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전래되어 오다가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전승되고 있다. 민속놀이의 하나로 정착된 북청사자놀음은 삼국시대 이래로 행하여 온 가면놀이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대륙계?북방계의 사자무로 보여 진다.북청사자가면의 유형은 호랑이나 고양이 모습, 귀면모습, 용 비늘을 그린 모습으로 구분된다. 북청사자놀이는 애원성 마당과 사자놀이 마당으로 나뉘는데, 사자무는 초?중?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장과 중장은 별다른 등장인물 없이 사자무가 중심이 되며 승무가 곁들여진다. 이것은 사자가 신격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신통력을 과시하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승무가 등장하는 것은 사자가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음을 의미한다.북청사자놀음은 정월 14일 밤에 시작해서 새벽까지 놀고 난 다음 16일 이후에 초청하는 유지가를 번갈아 돌면서 연희한다. 퉁소의 연주가 주가 된 독특한 가락에 맞추어 추어지는 이 놀음은, 사자머리 쪽에 한 사람,뒤쪽에 한 사람 이렇게 보통 두 사람이 사자 몸속으로 들어가 연희하는데, 앞쪽 연희자가 뒤쪽 연희자의 어깨 위에 올라타 솟기도 하고, 앞쪽 연희자가 먹이인 토끼를 어르다가 잡아먹는 시늉을 하기도 하여 어느 사자무보다 다채롭고 힘찬 동작을 한다.북청사자놀이는 제의적 성격?곡예적 성격?연극적 성격이라는 복합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한 아이를 사자에 태우거나 사자털을 베어다 두면 무병장수한다는 내용은 사자놀이의 종교적 성격이 가미된 모습을 보인다. 이 놀이의 주목적은 벽사진경에 있으며, 잡귀를 쫓고 안과태평을 비는 것으로, 가가호호를 순회하며 벽사하고 출선된 기금은 동리의 공공사업?장학금?빈민구제?경노회 비용 및 사자놀음 비용 등에 충당되어 왔다.북청사자놀이는 일 년에 한번 명절을 맞이하여 마을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전승되는 대동놀이로서 마을의 단결과 협동을 도모하는 사회적 통합의 기능도 갖고 있다.③ 통영오광대통영오광대는 남부지방 일대에 분포된 산대도감 계통의 영남 형이라 할 수 있다. 오광대는 초계 밤마리 장터의 직업연예인인 대광대패와 선창신반의 대광대패?진주의 솟대쟁이패?남해 화방사의 중매구패 등의 오광대와 하동의 목사당패의 탈놀음이 각지로 영향을 미쳐 경남내륙과 해안선 일대로 전파되어 나갔다. 통영오광대는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통영오광대놀이는 고을 사람들이 큰 거리를 사또놀이 행렬로 두루 누빈 다음 미륵산기슭 용화사의 잔디밭에서 밤을 새워 노는 것이다. 놀이판은 길놀이판과 탈놀이판의 둘로 나누어지고 전체는 5과장으로 나뉜다. 그 중 5과장에 속하는 포수?담보?사자무는 포수의 행동이 강조되어 과장의 명칭을 포수탈이라고 했다.오광대에서 사자무의 의미는 인간이 사자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굿거리 장단으로 포수와 사자, 담보가 등장하여 싸우다가, 사자가 담보를 잡아 먹는다.포수가 나타나서 사자를 총으로 쏘아 죽인 다음 기쁨의 춤을 추며 퇴장한다. 통영오광대에 나타나는 춤사위 유형은 덧배기 춤사위, 문둥이 춤사위, 누름새 유형이 있다. 통영오광대는 연희자들의 흥미와 민중들의 지지를 받아 연중행사처럼 행해지다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해 점차 퇴색되었다.④ 강령탈춤조선왕조 말 한일합방 때 해주 감영소속 교방의 가무인들과 통인청을 중심으로 모여 있던 탈꾼들이 해산되자 그 일부가 강령으로 모였다. 또한 강령부근에 재인 부락인 광천리가 이웃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 탈춤의 발전에 크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강령탈춤은 해주탈춤계에 속한다. 봉산탈춤과 과장구성이 비슷하며, 흰 사자가 나와서 춤만 추고 들어간다. 강령탈춤의 주제 역시 다른 탈춤과 마찬가지로 첫째, 벽사의식, 둘째, 파계승 풍자, 셋째, 지배층 풍자, 넷째, 일부처첩의 가정비극 및 서민생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강령탈춤은 5월 단오 3일 동안 연희되었는데, 그 때에는 도내 각지에서 모인 탈춤패들이 함께 그 기능을 겨루었기에 볼거리가 풍부했다. 또한 10일이 지난 뒤에 뒤풀이라 하여 다시 놀이를 벌리었는데, 놀이가 끝난 뒤에 탈들을 모두 태워버렸다고 한다.
    예체능| 2008.06.11| 3페이지| 1,000원| 조회(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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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물 모방춤
    동물 모방춤은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춤은 농경생활이나 세시풍속으로 생활화되어 있다. 즉 노동에서 얻게 되는 피로를 춤으로 풀어주는 동시에 효율적인 결과를 고무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연극적인 춤이나 사람 또는 동물의 흉내를 내는 춤과 놀이적인 춤을 보면 동작?몸짓?노래 등이 현실성과 모방성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고대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주위환경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해왔기 때문에. 주위의 동물들에게 받는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동물들의 모습이나 행동에 주의를 기울였던 것은 당연하다. 동물의 움직임에 접근하다보니 오히려 동물로부터 인간사회의 표준을 삼기도 하였으며, 나아가서는 선악정사의 판단이나 미래의 행동에 대한 예시를 얻고자 하였다. 이러한 고대인들의 토속사상은 천체의 움직임이나 동물의 이변ㆍ식물의 변태 등에 상징성ㆍ암시성 등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다.그들은 영혼을 가진 동물이나 인간과 매우 흡사한 존재를 신앙의 대상으로 여겼으며, 인간과 동물 사이에 영혼이 환생ㆍ윤회한다는 사상은 실로 많은 종족들에게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동물에게는 인간이 갖고 있지 못하는 커다란 힘이 있다고 생각했고, 동물들을 관찰하여 그 동작을 따라함으로써 그 힘을 얻고자 했다. 이로서 동물들의 춤 비슷한 동작으로부터 고대인들이 춤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춤동작과 매우 닮은 듯이 보이는 의식의 동작을 날짐승?동물?심지어 물고기들이 하고 있는 예가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테미즘적인 의식으로 인해 동물을 흉내 내는 동물 춤을 춤으로써 인간과 동물간의 신비스러운 결합을 완성하고자 했다. 즉 그가 표현하는 사람ㆍ동물ㆍ정령ㆍ신은 춤을 춤으로써 그 일부인 외면적 형태의 모방하고, 상징적으로 그의 육체를 지배하게 되면서 실제적으로도 감각적인 희열을 체험하게 된다.1.한국의 동물모방춤한국의 춤에는 상고시대의 이른바 토테미즘의 영향으로 동물모방에 관한 춤이 많다. 농악의 경우, 전라도 여천 지방의 백초 농악에서 잡색으로 연희한 호랑이ㆍ곰ㆍ닭ㆍ말과 같은 동물려를 통하여 들어온 오방사자놀이 같은 계통의 가야 사자기, 백제 기악의 오방사자놀이, 서량기의 영향을 받은 산예 등이 어우러져 성립되었다.‘사자’에 대한 최초 문헌기록은 신라시대 지증왕 13년에 이사부가 목우사자를 이용하여 우산국을 정복하였다는 삼국사기의 신라본기편에 나타나 있다. 진흥왕 12년에 가야국의 가실왕이 우륵에게 명하여 12곡을 지었는데, 그 중 8번째 사자기가 있다. 여기에 나오는 사자기로 미루어보아 그 당시에는 사자무가 이미 존재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문헌 이외에 신라 때의 고분출토 유물 중에 사자와 비슷한 형상의 목조가면이 발견된 것이 있는 바, 이 전통은 북청사자놀음에서 그 유형을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의 사자무는 고려 말 이색의 한시 구나행에서 오방귀무?사자무?서역의 호인희?처용무?불토해내기?칼삼키기?인형극?백수희 등의 놀이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 이 사자무는 벽사적 의식에서 추어졌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중국의 나례에서 벽사적인 동물로 사자무를 추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신라시대의 유습을 계승한 팔관회와 연등회 같은 행사가 공연예술 발전의 기틀이 되었으며, 삼국시대부터 계승된 산대희에서 사자무가 연출되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사자무에 대한 기록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성종 때 명나라의 동월이 지은 ?조선부?에는 중국사신의 영접 시에 평양?황주?서울의 광화문에서 산대를 가설하고 사자무가 포함된 산대잡희를 공연하였다고 기록되어 진다. 또 송만재가 지은 ?관우희)?에는 어룡만연지희?줄타기?불토해내기?처용무등과 함께 사자무가 묘사되고 있다. 김홍도가 그린 와 화성성역의궤의 에도 사자무가 보이는데, 낙성연도에는 세 명의 몰이꾼이 사자와 호랑이 한 마리를 놀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또한 정조 때의 유득공의 경도잡지성기조에 나타나는 산희부에도 사자무가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까지 사자무가 여러 형태로 추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사자무는 신라 이후 지방의 민속무로 남아 내려오다가 궁중정재로 채택되었다. 윤는 탈춤 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춤 형태로 나타나는데 탈춤에 나타나는 다른 동물 즉, 원숭이?두꺼비?범?담보?학과 같은 동물들 중에서도 사자는 특히 벽사적 기능을 대표하는 존재로 역할을 해왔다. 전국 각지에서 행해지는 사자무를 발생지역별 또는 형태별 등으로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궁중정재의사자무를 발생지역별로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첫째, 북부계통(북청사자놀음)의 사자무는 5가지 색깔의 오방사자로, 사자 안에 보통 두 사람이 들어가고 두 마리가 등장한다.둘째, 서부계통(봉산?강령탈춤의 사자무)의 사자무는 백색의 사자로, 사자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간 한 마리의 사자가 등장한다.셋째, 남부계통(수영야유?통영오광대의 사자무)의 사자무는 사자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간 한 마리의 사자가 등장한다.이러한 구분을 그 종류별로 자세하게 분석하겠다. 특히 본 연구대상은 한국의 사자무에 관한 내용으로 한정하므로, 각 춤의 기원이나 변천과정은 추후 연구에서 보다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과제로 남긴다.사자무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출연하는데, 동쪽에는 청사자가 서쪽에는 황사자가 위치하여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내용이다.이 궁중정재의 사자무는 평안남도 성천지방의 잡극이 궁중에 들어와 연희된 향악정재로, 청사자와 황사자의 놀이 내용은 현재의 북청사자놀이의 형태와 유사하다.② 북청사자놀음한국의 사자무 중에서 사자무가 중심이 되는 유일한 단독형 사자무로, 북청사자놀음의 사자는 몸에 털이 있고 기본적으로 갈색 계통이다. 이 놀음은 한국전쟁 이후 월남한 연희자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전래되어 오다가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전승되고 있다. 민속놀이의 하나로 정착된 북청사자놀음은 삼국시대 이래로 행하여 온 가면놀이 중에서도 가장대표적인 대륙계?북방계의 사자무로 보여 진다.북청사자가면의 유형은 호랑이나 고양이 모습, 귀면모습, 용 비늘을 그린 모습으로 구분된다. 북청사자놀이는 애원성 마당과 사자놀이 마당으로 나뉘는데, 사자무는 초?중?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장과 협동을 도모하는 사회적 통합의 기능도 갖고 있다.③ 봉산탈춤봉산탈춤은 해서지역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탈춤 중의 하나로 황해도 봉산군에서 전승되어오다가 1915년 경 사리원으로 옮겨 전승되던 북방계의 영향을 받은 해서탈춤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가면극으로 속칭 산대도감놀이?산대도감?산대놀이?산두나례도감으로 불리던 놀이 중의 하나이다. 봉산탈춤은 연중행사로 5월 단오날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다음날 새벽까지 연희하였다. 그 외에 관가의 사, 특히 중국사신을 영접할 때도 이 탈놀음을 벌였다.봉산탈춤의 형식은 1과장(四상좌춤),2과장(덕중춤),3과장(사당춤),4과장(노장춤),마지막 5과장(사자무)로 나뉘어진다. 이처럼 봉산탈춤은 단순한 마당놀이 형태가 아닌 공연예술적 가설무대 형태를 가졌다. 마지막 5장에 있는 사자무의 사자는 2인 1조로 만들며, 잦은 타령과 굿거리 장단에 맞추며 현존하는 탈춤 중 가장 연극성이 높다는 평을 받고 있다. 봉산탈춤에 나타나는 사자무의 의미는 문수보살의 사자로, 힘에 복종하고 동일시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탈춤에 나타나는 사자무는 힘찬 도약과 움직임의 폭이 크고 표현이나 동작이 매우 과장적이어서 사자의 위력적인 성격과 심판자로서의 사자 성격이 춤 전체에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봉산탈춤의 반주 악기는 피리?젓대?북?장구?해금에다 때론 꽹과리와 징이 추가되며, 사용되는 가면은 종이와 나무를 사용하여 제작하며 전신은 보통 흰색으로써 등뼈부분만 밤색이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사자의 눈동자에 테니스공으로 만들어진 검은색과 금색의 채색을 한 공을 2개 달아준다. 이렇게 완성되어 만들어진 사자탈은 옛날의 경우에 공연이 끝날 때마다 다른가면들과 함께 태워졌으나, 오늘날엔 공연 후 태우지 않고 보관하였다가 반복 사용하고 있으며, 단지 일 년에 한 번 정도만 하나의 형식적 행사로써 태워버린다고 한다.오늘날 사자무가 봉산탈춤의 단독 과장으로 연희되어지면서, 봉산탈춤과 함께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전승되고 있다.④ 통영오광대통 해산되자 그 일부가 강령으로 모였다. 또한 강령부근에 재인 부락인 광천리가 이웃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 탈춤의 발전에 크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강령탈춤은 해주탈춤계에 속한다. 봉산탈춤과 과장구성이 비슷하며, 흰 사자가 나와서 춤만 추고 들어간다. 강령탈춤의 주제 역시 다른 탈춤과 마찬가지로 첫째, 벽사의식, 둘째, 파계승 풍자, 셋째, 지배층 풍자넷째, 일부처첩의 가정비극 및 서민생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강령탈춤은 5월 단오 3일 동안 연희되었는데, 그 때에는 도내 각지에서 모인 탈춤패들이 함께 그 기능을 겨루었기에 볼거리가 풍부했다. 또한 10일이 지난 뒤에 뒤풀이라 하여 다시 놀이를 벌리었는데, 놀이가 끝난 뒤에 탈들을 모두 태워버렸다고 한다.강령탈춤에서 사자무는 제1과장에서 나타난다. 잡귀를 쫓는 의식무로서 상징적인 백수의 왕 백사자 두 마리를 등장시켜, 야수의 본성을 표현한 힘차고 웅장한 춤을 춘다. 마부는 천한 인간으로 백사자를 마음대로 부린다는 의미에서 인간을 한층 더 높였으며, 인간과 가장 흡사한 원숭이를 등장시켜 인간과 대조시킴으로써 만물의 영장인 것을 강조하였다.사자탈은 대나무와 광목, 종이로 제작한다. 음악은 굿거리 타령장단이 사용되며 깨끼리춤과 굿거리춤이 실연된다. 놀이판을 깨끗이 하고 잡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가진다.⑥ 은율탈춤은율탈춤은 황해도 서쪽 평야지대 끝에 자리한 은율장터에서 놀아오던 춤이다. 은율탈춤은 전체 6과장으로 나뉘는데,1과장에 사자무가 행해진다. 사자놀이 마당에서 길놀이가 끝나면, 세 명으로 구성된 백사자가 등장하여 타령과 잦은 돔부리장단 등으로 한바탕 춤을 춘다. 다른 사자무에 비해극적인 연관성이 약하지만, 타령과 잦은 굿거리로 장단에 맞추어 역시 사자를 모방하는 활달한 춤을 한바탕 추게 된다. 은율탈춤에서의 사자무는 의식무로써 전체 탈춤의 흥취를 돋우는 역할을 한다.197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⑦ 수영야유수영야유는 대광대패의 오광대에서 영향을 받아 생성되었으며, 수영에서 다시 동래와 부산진으로 전
    예체능| 2008.06.11| 9페이지| 1,500원| 조회(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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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과 원예
    생활과 원예원예의 정의○ 인간이 생활하는 공간 속에서 녹색의 식물을 통한 취미 및 오락, 감상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 생활원예와 일반원예의 차이- 원예활동의 목적- 원예활동의 대상식물- 원예활동의 노동력○ 단순 식량생산의 원예 ㅡ> 오늘날의 생활원예원예의 역사○ 고대중국- B.C. 6~10세기 채소류, 5~6세기 과실류○ 인도- 4000여년 전 꽃나무와 연꽃, 무굴시대 꽃식물○ 그리스- 도시공원, 개인정원 등 오늘날의 보편적인 생활원예- 아도니스 신 경배 ㅡ> 포트재배○ 로마시대- 돌로 만든 화분재배(지붕,테라스,안뜰,수영장, 연못)○ 백제, 신라시대- 궁궐 안 연못을 파고 정원을 만들어 꽃 가꿈○ 조선시대- 꽃식물과 채소류 재배○ 1970년 산업화 촉진으로 도시의 과밀화 현상과 주거형태의 변화로 생활공간내의 생화원예 발달○ 선사시대- 6만년된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에서 발견된 꽃가루 분석 결과 서양접시꼬츠 톱풀류, 마황 등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을로 짐작되는 식물들이 존재- 동물을 관찰함으로써 특정 식물의 사용법을 배웠는데 제비는 새끼들의 눈을 보이게 하기 위해 야기똥풀의 즙을 발라주고 거북이는 뱀에 물리면 마요라나를 먹으며, 족제비는 루타의 꽃을 먹음으로써 병을 고침○ 고대- 고대인들에게 약초로서 큰 힘- 중국은 기원전 5000년, 이집트는 2800년, 바빌로니아는 2000년경에 사용-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토된 점토판에는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의 목록이 새겨짐- 로마시대 학자 디오스코리데스가 기원전 1세기에 저술한 약학, 의학, 식물학의 원전인 '약물지'에는 600여 종- 히포크라테스는 저서에 400여 종의 약초를 수록하고 타라곤은 뱀과 미친 개에게 물렸을 때 사용○ 중세- 12세기 식물학자 허벌리스트들의 '허벌'에는 각종 약초 그림과 약효 기록- 수도원에서는 정원에 약용식물, 과수류, 허브 재배하였는데 이것이 허브 가든의 시초- 허브가든은 처음에는 단순히 실용 목적이던 것이 점차 체험하기 위한 '플라워 가든'이나 식용을 목적으로 한 '키친 가든으로 발뒤 1년 이내에 생을 마치는 한해살이로 대부분 꽃이 화려하고 동시에 피기 때문에 화단이나 용기에 심어 관상- 춘파일년초 : 봄에 씨를 부려 그 해에 곷이 피고 열매를 맺는 종류- 추파일년초 : 가을에 씨를 부려 화단, 온실 등에서 어린 싹의 상태로 겨울을 난 뒤 이듬해 봄에 꽃을 피움? 분꽃 : 분꽃과. 오후에 피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시듦? 샐비어 : 꿀풀과. 늦여름, 초가을에 붉은색 꽃이 개화. 군시그 경재식용? 나팔꽃 : 메꽃과. 화분재배나 울타리? 맨드라미 : 꽃의 모양이 '수탉의 볏' 꽃이 시들어 잘라주면 다시 나옴? 밀집꽃 : 국화과. 만지면 종이처럼 바스락거려서 종이꽃. 바스라기라고도 부름? 코스모스 : 국화과. 13시간 이하의 단일에서 개화? 봉선화 : 봉숭아과. 꽃이 머리와 날개를 펴고 펄떡이는 봉황새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 해바라기 : 국화과. 해바라기 기름을 이용 식용이나 제과용이 목적으로 재배됨? 과꽃 : 국화과. 꽃이 국화와 비슷하며 풀 전체에 횐 털이 나있음? 천일홍 : 비름과. 가지 긑 공모양의 앙증스런 꽃? 채송화 : 비름과. 꽃은 맑은 날에만 피고, 오후 일찍 시든다? 주머니꽃 : 현상과. 꽃이 주머니 모양을 하고 있음? 팬지 : 제비꽃과. 5매의 꽃잎으로 내한성이 강함. 추파일년초이나 가을까지도 개화? 데이지 : 국화과. Day`s eye? 시네라리아 : 국화과. 다채로운 꽃빛깔? 프리뮬라 : 앵초과. 꽃모양이 벚꽃과 비슷하여 일본인들은 앵초라 부름? 센타우레아 : 국화과. 우리나라 말로 수레국화○ 2년초- 두해살이화초. 파종 후 1년이 지난 후 개화? 패랭이꽃 : 석죽과. 꽃 모양이 패랭이같음? 디기탈리스 : 현상과. 꽃이 줄기끝에서 이삭모양. 아래부터 피어올라감? 캄파뉼라 : 초롱꽃과. 조그만 종 모양의 꽃? 접시꽃 : 아욱과. 꽃은 겹처서 말리고 접시같은 열매가 열림○ 다년초- 파종 후 여러 해 동안 살아남아 개화 결실하는 것. 숙근초라고도 함? 거베라 : 국화과. 꽃모양과 잎새의 대조가 매우 아름다운 꽃? 카네이션 : 안텀봉선화채송화저 광 도고 광 도잎커짐작아짐엽 색짙어짐옅어짐엽육두께감소증가줄 기마디가 길어짐마디가 짧아짐꽃수와 향기 감소수와 향기 증가엽록소증가감소기공밀도감소증가과도할때수관 엉성, 낙엽과도한 호흡으로 생육억제,잎의 황화(2) 광질? 실제 식물재배에 있어서는 태양광선을 받게 되므로 광질이 문제가 되지 않으나 실내재배에 있어서는 인공광을 사용하므로 광질을 고려해야 한다.? 인공조명으로는 보통 백색 형광등을 이용하며, 현재 이것은 다른 전등보다 광도가 높고 필요한 광질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어 식물의 생육에 효과적이다? 음생시물이나 열대산 관엽식물은 대부분 형광등 아래에서 매우 만족한 재배를 할 수 있어 실내에서 재배, 관상이 가능하다.- 자연광 : 자연광은 파장의 길이에 따라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으로 구분하며 식물 생육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광선은 가시광선이다. 자외선은 적당히 받아야 꽃색이 잘 발현되고 적외선은 꽃이 피고 꽃눈이 맺히는 것에 간여하므로 모든 차장이 골로루 섞인 자연광에서 식물을 가꾸는 것이 좋다- 인공광선 : 실내에서 부족한 빛을 형광등과 백열등을 이용하여 보충해 준다. 형광들은 비교적 광도가 높고 열 발생이 적으며 수명이 길어 식물 생육에 적당하나. 백열등은 열이 나고 최소한 식물과 15cm 떨어진 곳에 두어야 하며 식물이 웃자라는 경향이 있다.(3) 일장일장은 식물의 화아분화와 개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단일성 식물은 차광처리를 하고, 장일성 식물은 보광, 광중단등의 인광광 처리로 개화를 촉진하거나 억제시킨다. 일장에 대한 식물의 개화반응은 식물의 종류에 따라 일반적으로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장일식물 : 봄, 여름에 꽃이 피는 대부분의 식물, 낮의 길이가 긴 장일조건이 생장가 번식에 영향. 페튜니아, 아이리스, 상추, 시금치 등- 중성식물 : 낮의 길이에 관계없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꽃이 피는 식물로 장미, 군자란, 제라니움, 무궁화 등- 단일식물 : 낮의 길이가 짧은 가을에 꽃이 피는 식물. 국화. 포인세티아, 칼랑코에 등○ 지상부의 생장을 촉진시키고, 공기습도의 저하는 심할 경우 잎끝이 마르는 현상을 일으킨다.② 토양습도? 강우, 관수, 지하수위, 온도 등과 직접적이 관계가 있는 토양습도는 유동하는 중력수, 토양에 스며들어 있는 모세관수, 토립에 흡착되어 잘 떨어지지 않는 결합수 등의 형태로 존재하며, 이들 중에서 식물의 뿌리가 이용하기 쉬운 것은 모세관수이다. 토양의 수분함량은 토성에 다라 차이가 있다.? 토양수분의 증가는 토양 중의 공기함량을 저하시켜 뿌리의 생장을 억제시킨다.(2) 수분 요구도① 수생식물 : 대개의 잎은 물이 응결되어 부착이 잘 안되어 기공과 같은 역할을 하며 물 위에 뜨게 한다. 물옥잠화, 연, 수련 등)② 습생식물 : 비교적 습한 토양에서 잘 자라고, 건조하면 생육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수분공급을 조절해 주어야 한다. 천남성과, 꿀풀류 및 토란③ 건조식물 : 공기습도가 높다 하더라도 토양이 건조한 곳에서 잘자라는 식물로서 선잉장과 같은 다육식물이 이에 속한다. ㅡ> 잎은 퇴화하여 대개 가시로 되고, 면적당 기공수가 적다.④ 중생식물 : 수생식물과 건생식물의 준간 성상. 일반 화훼식물의 대부분)(3) 수분관리① 수질? 산성비 - 식물의 각피층 용해, 질소화합물의 생성 저해.? 염소 또는 불소가 많이 첨가된 수돗물 - 드라세나 또는 행운목의 잎끝이나 가장자리를 마르게 허눈 피해.② 수온? 주로 토양이나 기온과 차이가 심하지 않은 온도의 물을 이용? 화분식물이나 온실 내의 식물 - 수온이 비교적 높은 물을 사용해야하므로 물탱크에 물을 일시 저자아였다가 사용.? 저장 중의 물 - 직사광선을 쬐는 것이 소독과 수온면에서 유리.? 겨울철 온실관수 - 10℃? 여름철 포장관수 - 25℃? 겨울철의 찬물과 여름철의 더운물의 관수는 피할 것.③ 관수? 식물의 상태와 종류, 강우량, 토질, 기후, 지하수 등에 따라 관수량이 다르다? 초본류는 목본류보다 더욱 충분한 관수 요? 초본류에 있어 봄에 파종한 것은 가을에 파종한 것에 비해 뿌리가 얕게 분포하므로 관수량수, 비료성분은 전혀 함유되어 있지 않음.? 유럽에서 미구그 일본 등지에서 많이 이용.? 카네이션, 장미, 국화, 양란류의 재배에 이용⑤ 수태? 물이끼류를 건조시킨 것으로서 고산지대의 한랭한 습지에서 생산?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물주머니가 이어 거눔ㄹ중의 10~20배까지 흡수 가능? 강산성인 수태산 때문에 잘 썩지 않고 pH 3.5~4.0 정도? 건조시키면 매우 가벼워 수송과 저장 용이? 식충식물과 동양란류의 식재재료⑥ 부엽토? 낙엽활엽수의 잎이 완전히 부숙된 것? 섬유질의 많은 밤나무, 참나무, 플라타너스 등의 부엽이 적당? 보수력과 보비력 우수, 통기성 양호? 식물에 이로운 토양미생물의 활동 왕성? 혼합토의 기본 재료⑦ 바크? 전나무와 소나무 껍질을 잘게 부수어 만든 것? 서양란류의 식재재료의 혼합토 제조용 재료? 강우시 : 토양의 유실 방지하는 토양피복제? 건조시 : 수분증발을 막기 위한 재료⑧ 기타톱밥, 왕겨, 훈탄. 숯, 화산회토. 오스만다. 클레이볼 또는 하이드로볼, 스티로픔(3) 원예용 배양토배양토란 각족 토양을 알맞게 혼합하여 식물에 알맞은 조건을 부여한 것.- 배양토의 공통점? 비옥하고, 배수와 통기가 좋으며 보비력 및 보수력이 강하고 잡초의 종자 및 병충 등이 없어야 한다.? 특정한 식물이 요구하는 토양 환경을 부여하기 위해서 그에 알맞은 배양토의 조성이 필요? 같은 식물이라도 유묘시에 가벼운 토양으로서 배수가 잘 되는 모래 위주의 배양토를 마련하고 식물이 자람에 따라 무거운 토양으로 변화시킨다.○ 비료(1) 비료의 성분- 비료의 3요소 : 질소, 인산, 칼리1) 질소- 식물체의 단백질과 엽록소 및 각종 생장물질의 기분 물질- 잎의 비료 : 잎이 자라는데 많이 이용- 대부분의 식물은 공기중의 질소를 고정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뿌리를 통해 질소를 흡수ㅡ> 화훼류 : 질산태질소(-NO3)의 형태로 흡수난과ㅡ 소나무과 철쭉과 식물 및 일부 수생식물 : 암모늄태질소(-NH4)의 형태로 흡수- 결핍증상 : 잎이 황화, 생장 억제2) 인산- 탄수화물과다.
    생활/환경| 2008.05.16| 23페이지| 2,000원| 조회(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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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무용, 한국무용, 발레
    1. 무용의 종류1) 무용의 정의무용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면 무용은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신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하지만 무용이란 것을 이 간단한 한 문장으로 모두 표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적 접근무용을 언어적으로 접근하면 영어의 Dance는 고대 고지독어로 뻗치다와 끌다라는 의미의 danson에서 유래되었다. 무용이란 말은 쓰보우치의 '신악극론' 명치 37년의 말미에 최초로 나타나 그 후 보급되었다. 무용의 우리나라식 표기는 '춤'이다. 춤자를 풀어쓰면 'ㅗ,ㅅ,ㅜ,ㅁ'인데 'ㅗ'는 하늘과 땅, 'ㅅ'은 만물을 의미하는 사람, 'ㅜ'는 작용 즉 동작을 의미하며 'ㅁ'은 기운이다. 즉 춤이란 천지이치를 인간이 조화시켜 그 기운을 동작으로 나타낸다고 풀이할 수 있다.? 주관적 관점과 객관적 관점무용에 대해 객관적 정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어떤 원칙과 절차가 있다. 객관적 접근의 일반적 예는 기술자가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으로 상태를 측정하는 것인데 무용의 경우에는 접근 불가능한 측정 방법이다.주관적 관점은 감정, 감동 그리고 느낌 등으로 주제에 대한 증명은 대상의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가치 판단'이라는 틀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 틀이 예술의 경우에는 '미적 판단'으로 그서은, 자유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며 증명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저자들은 항상 무용에 대한 그들의 정의를 제시하고 어떤 면에서는 자기 중심적이다. 더욱이 개인적 시각은 그 시각 자체를 전혀 구속받지 않으며 그것이 기본적으로 주고나 적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한 개인의 관점이라 할지라도 무용에 대한 것 이면 아무런 의문 없이 정의로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무용에 대한 어떤 한 주관적인 정의도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모든 정의는 통과되어지거나 혹은 논쟁을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무용은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무용에 대한 풍부하고 발전적이며 혹은 개인적인 모든 개념은 무용을 설명할 수 있는데, 역으로 초자연적인 힘, 즉 정령의 힘을 빌리기를 소망했고 이와 같은 힘을 빌리기 위한 수단으로 제사의식이 행해졌으며 주술이 생성되었다.즉, 무용은 제사에 수반되어 정령을 부르는 행위나 주술능력을 증가시키는 행위로서 인식되었고 이와 같은 무용은 점차 일정한 형식과 시기를 갖추면서 의식화되었다. 또한 천제 이외에도 수렵 ·전투 ·다산 등 다양한 의식에 사용됨에 따라 정형화되기 시작했다. 한국 무용의 시원은 환웅이 3천 단부를 거느리고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인간사회를 이룬 이래 제천과 숭배를 관장하는 집단가무를 행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 시기의 무용의 형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무용이 종교적 제천의식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① 고대무용한국무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부족국가시대의 고대 무용부터 시작한다. 고대 무용은 헌문의 결핍으로 상세하게는 알 수 없으나 중국 사서에 전하는 것으로 추지해 보면 단군이 3천 단부를 거느리고 신단수하에 강림하여 백성의 생명, 곡식, 병, 형, 선, 악 등 무릇 360여 종류의 사회사를 대신한 제천, 사신, 기곡, 요병과 상벌 등을 관리하였다. 이 중에서 제천과 사신은 자연히 집단적인 가무를 동반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한 민족의 고대무용도 다른 민족의 고대 무용과 마찬가지로 농경 생활을 영위해오던 부족 국가 시대의 종교적 제천 의식에서 비롯되어 발달해 왔다. 이때에는 반드시 음악과 춤이 큰 구실을 하였다.그리고 고대에 있어서는 음악과 시가와 무용이 전혀 구별되지 않고 종합 예술로서 성립하였을 것이다.② 삼한의 무용삼한은 제사장인 천군은 솟대에 큰 나무를 세워두고 방울을 울리면서 신을 섬겼다. 이러한 천군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무격의 시조라고 보아지며 동시에 신가를 짓는 시인으로 작곡과 연주를 겸한 음악가로 뛰어난 무용가라 할 수 있다. 삼한의 춤은 수십 명이 한 무리를 이루어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주로 타악기 반주에 맞추어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땅을 구르고 뛰어 솟는 흥겹고 경쾌한 군무였다. 그리고 오늘히 2월 보름을 연등회라 하여 그 달에 반드시 봉은사에 가서 행향한 후에 비로소 대회가 열리고 군신이 춤추며 노래하고 술 마시면서 동락하는 동시에 불덕을 기리고 천지신명을 즐겁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안태를 기원하는 것이었다.음악에 있어 향악이 우리나라의 고유한 음악인 것에 대하여 당악은 중국에서 전래한 중국 음악을 뜻한다. 이러한 당악의 하나인 당악정재에는 죽간자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죽간자란 봉죽간자로 홀기에 나타나는데 춤의 향도적 구실을 하는 일족의 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반드시 2인으로 한 쌍을 이루는데 독무에는 없고 복수 이상의 군무에 있으면 언제나 좌우 끝 사람의 앞에 자리하고 처음 배열에서부터 벌려 서서 들어가기도 하며 또 떨어져 들어가고 무대 전면에 자리하면서 간격과 그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다.⑦ 고려시대의 민간무용고려일대에는 찬란한 궁중정재를 창출했을 뿐만 아니라 흥겨운 민간 무용을 일으켜 자랑스러운 전통을 드리웠다. 이런 민간 무용의 발달은 가무백회의 산실인 팔관회로 인하여 가속화되었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이미 신라시대때부터 전승되어 온 팔관회는 고려에 와서 실로 국가 사천의 최고의 전례로 준행되었으므로 가무백회가 이 국가의 비호와 보장 아래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더욱 연말이 되면 궁중 나례에 가무백회를 궁중에까지 불러들이는 일이 자행되어 이것의 존립과 세위를 북돋은 것이다. 여기 북방의 거란, 여진, 몽골 등의 호악, 회회까지 섞여들어 가무백회의 내용은 한결 섬세하기만 하였다.민족무용의 가장 대표적인 것을 들면 농악을 말할 수 있다. 이 나라에 농업 생산이 비롯된 때부터 소박하고 유치하나마 농악놀이가 시작되었다. 그것이 중세 고려에 이르면 많은 발달을 보게 되어 차츰 정비되고 재미있는 놀이로서 정착하였다. 농악은 농사에 노고를 덜고 노동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었고, 유사한 때에는 곧 군사의 사기를 고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었다.농악에 사용되는 악기가 거의 군중 고취에 사용하는 악기들인 것도 주목된다. 다만 농악만들어 바쳤다는 익종에 의하여 황금기를 이루었다. 궁중무용은 유형적 형태에 따라 당악무용과 향악무용으로 나눌 수 있다. 당악무용은 고려 문종 때 송나라로부터 도입된 춤으로 춤의 시작과 끝을 죽간자가 인도하고, 한문으로 된 창사를 부른다. 향악무용은 한국 고유의 춤으로 조선 세종 이후 체계화되었으며, 무원들은 죽간자의 인도 없이 무대에 등장하여 한글 가사로 된 창사를 부르다가 면복흥퇴(꿇어앉아 엎드려 절하고 일어나서 퇴장함)의 형식으로 퇴장하는 춤이다. 그러나 조선 말에 이르러서는 죽간자의 유무에 관계없이 무원의 동작이 같아졌고 한문 창사가 보편화되는 등 각 정재에 따른 독특한 진행과 대형은 있지만 전대까지의 향악무용?당악무용의 구별은 없어졌다. 이것은 춤다운 춤, 즉 민족적 정서를 살린 한국 고유의 예술성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ⅱ) 의식무용줄을 서서하는 일무(팔일무, 육일무)가 있고 불교의식 무용으로 바라춤, 나비춤, 법고 등이 있다.ⅲ) 민간무용민간무용중의 민속무용은 민속의 특수성과 향토의 특색을 갖추고 옛날부터 전해지는 전통 무용. 예술무용에 대응되는 말이다. 민속춤이라고도 하는 이 무용은 특정한 사람에 의하여 안무되는 무용이 아닌 점, 기록방법이 없다는 점, 특정인에 의하여 늘 공연되거나 관중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향토색이 짙다는 점, 민속의상을 입는다는 점 등의 특징을 지니며, 이러한 점에서 민족무용과의 차이점은 별로 없다. 그러나 민족무용이 특정민족의 예술무용(여러 궁정무용도 포함)과 민속무용을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것인 데 비하여 민속무용은 민중의 생활에 더욱 밀착된 춤을 가리킨다.전통무용에는 승전무, 검무, 가면무용 등이 있다.승전무라는 이름은 춤의 창사내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춤은 사방색인 청 ?홍 ?흑 ?백의 단삼을 입은 원무 4사람과 흰 치마를 입고 12방을 뜻하는 협무 12사람으로 구성된다. 무고와 마찬가지로 중앙에 큰 북을 놓고 두드리면서 춤을 추지만 원무를 둘러싸고 있는 협무들은 춤은 추지 않총회도 함께 열렸다.는 덕망이 높은 사람을 모의 삼도통제인 사또로 뽑아 원님놀이를 하는 민속행사로, 이 놀이의 끝판에 오광대가 진행되었다. 이 놀이는 다른 가면극과 마찬가지로 춤이 주가 되고 몸짓 ?대사 ?노래 등이 따르는 연극이다. 반주음악은 꽹과리가 주도하며 장구와 북 등 타악기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색이다. 가면은 원양반 ? 말뚝이 ?문둥탈 ? 팔선녀탈 ? 영노(비비새) ? 비비양반 ? 제자각시 ? 봉사 ? 포수 ? 담보 ? 사자탈 등 모두 31종이 사용된다. 첫째마당이 문둥탈춤, 둘째마당이 풍자탈놀이, 셋째마당이 영노탈놀이, 넷째마당이 농창탈놀이, 다섯째마당이 포수탈놀이로, 다른 오광대놀이와 같이 5장으로 나누어진다.2) 현대무용20세기에 발생한 새로운 무대무용으로 서양에는 16세기이래 발레라는 유일한 무대무용이 있었으나, 발레는 지나치게 기교적이고 형식적이어서, 그 인습과 질곡을 벗어나 인간의 정신과 내재한 영혼의 소리를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무용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기운에 부응하여 생긴 것이 모던 댄스이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프리댄스‘, ‘익스프레싱 댄스‘라고 불렀고 독일에서는 ’노이에 탄츠’ 라고 하였다. 그 후 모던 댄스라고 총칭하게 되었고, 이를 현대 무용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① 현대무용의 탄생배경ⅰ) 던컨 이전의 미국19세기에서 여성 자체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얽매여 있었다, 그만큼 코르셋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춤추는 신체는 새로운 충격이 되었다.살색 타이츠를 신은무용수들이 인기를 모았고 이 스펙터클은 대히트하였고, 그 이후 여성 무용수들은 극장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어쨌든 발레리나가 통속적인 쇼에 나왔다는 것이 여성무용수가 일반 극장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미국에서는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사상이 있었다. 이것이 아름다움과 예술에 높은 가치를 두는 근대적인 관념과 연결되어 이 유행하게 되었고 그리스 조각의 포즈를 하는 체조가 유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델사르트의 무용론이 미국에 .
    예체능| 2008.05.16| 14페이지| 2,000원| 조회(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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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햄릿
    뮤지컬 햄릿을 보고...오셀로, 리어왕 맥베스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햄릿... 창피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4개의 작품 중 유일하게 읽어 봤던 햄릿...비록 너무 어렸을 때 본 작품이고, 또 지금처럼 책을 심취해서 읽지 않았을 때라 그때의 기억은 별로 없지만 처음에 뮤지컬 햄릿을 보게 되었을 때 그 두근거리던 가슴을 진정시키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평소 뮤지컬을 좋아하지만 같이 볼 사람도 없고 그리고 아직 학생인지라 자금적인 여유도 많지 않아서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도 참는 편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할인된 가격으로 볼 수 있어서 기대가 매우 컸었습니다.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요? 솔직히 만족스럽지 못한 작품이었습니다.평소에 비록 약간뿐이지만 작품을 보기 전 그 작품에 대해 알아보고 보던 때와는 달리 이번 작품을 보기 전 이 작품에 대해서 전혀 알아보지 못해서 처음 유니버셜 아트센터에 갔을 때 익숙한 이름에 깜짝 놀라며 과연 저분들이 전문 뮤지컬 배우가 아닌지라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유명한 작품에 캐스팅 되었으니 ‘잘 하시겠지’ 란 생각을 하며 감상을 하러 들어갔으나 처음 느낀 것은 불편하다 그리고 무대가 좁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유니버셜 아트센터가 자리가 불편하고 음향시설이 안 좋다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그래도 이정도 불편함쯤이야 라는 생각으로 감상을 했습니다.평소 뮤지컬을 감상할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뮤지컬 전체를 보는 편입니다. 무대장치, 조명장치, 음향시설, 배우들의 연기와 배우들간의 호흡, 춤, 연출 등 작품 전체를 부면서 평가하는게 버릇이 되어 버려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계속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첫 인상이 안 좋아서 인지 계속 안 좋은 부분이 보였습니다.먼저 무대장치로 좁은 무대에서 회전을 이용해 장소를 변화 시키는 아이디어는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처음에는 계속 회전되는 무대에 지겨움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었고, 볼수록 너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전에는 장례식장이었던 곳이 결혼식장이 되고 또 침실도 되었다가 그냥 성 밖이 되기도 하는 그런 모습에서 어이없음을 느껴야 했습니다. 특히 햄릿과 오필리언이 사랑을 나누던 침실은 성문에 단지 이 불등을 깔아서 침대로 표현했을 땐 웃음밖에 안 나왔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표현할 것이라면 그 문을 잡아주던 쇠사슬이라도 가려주던가...또한 뒤쪽 무대에서 갑자기 촛불이 켜지면서 빛이 새어 나와서 이제 저쪽으로 회전하겠구나 라는 예상을 미리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있었습니다.그리고 무대가 회전할 때마다 보이던 무대 뒤의 검은 그림자는 정말 작품에 몰입하는데 방해되는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조금 더 조심해서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었습니다.하지만 정말 그 좁은 무대에서 제한된 무대에서 여러 장면을 표현하기 위한 무대 활용도는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됩니다.그리고 조명도 너무 단조로웠습니다. 꼭 화려하지는 않아도 되지만 너무나 단조로웠던 조명은 작품의 재미와 볼거리를 떨어뜨리는 것 같았습니다.얼마 전에 감상했던 뮤지컬 ‘대장금’에서 한국의 미를 조명을 이용해 표현한 것에 정말 감동을 받았던 저에게는 정말 실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한 가지 특이한 점은 햄릿의 꿈속에서 선왕이 나와 자신의 죽음의 비밀을 말해주며 복수해달라고 부탁하는 씬에서 정말 놀라웠습니다.이런 방법이 다른 작품에서도 쓰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한 방법이라 참신하고 새로웠습니다.그리고 음악... 음악은 이 작품이 락 뮤지컬이라는 것을 잘 표현하듯이 들리는 일렉과 드럼의 소리는 흥쾌하기도 하면서 그 씬의 상황과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었습니다.음악부분만큼은 정말 흠잡을 때 없이 최고였습니다.또한 배우분들의 연기 역시 훌륭했습니다. 햄릿역의 김수용씨와 앞에서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정말 맡은 역을 잘 소화해내신 폴로니우스의 김도향씨, 거투르트의 신효범씨의 연기 모두 훌륭했습니다.단, 햄릿이 제가 기억하던 햄릿보다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햄릿은 여러 가지로 고뇌하는 무게감 있는 역할이었는데 여기서의 햄릿은 복수에만 눈이 먼 철부지 같은 모습이 보이곤 했습니다. 이건 연기가 안되는것보단 이 작품에서의 연출이 그런 것으로 보였습니다.그리고 저의 좌석이 A석이라 그런 건지 그 곳의 시설이 그래서 그런 건지 대사 전달이 제대로 안되는거 같았습니다. 끝날때까지 햄릿과 오필리언을 제외한 다른 배역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였습니다.하지만 그밖에 노래는 정말 좋았습니다. 대사의 대부분을 노래로 처리하는데 역시 뮤지컬 배우답게 엄청난 가창력은 부러움을 살만 했습니다. 특히 커투르트의 그 엄청난 고음처리는 저에게 소름이 다 돋게 만들 곤 했습니다. 햄릿 역시 뛰어났으나 이 뮤지컬이 막바지로 다다르고 있어서인지 가끔씩 쉰 목소리가 나곤 했습니다.춤.... 이 작품에서는 춤이란 요소가 별로 들어 있지 않는 것 같았다. ‘42th street’를 감상한지 얼마 안되어서 인지 화려한 춤을 보고 싶었지만 볼 수 가 없었습니다.기억나는 춤은 폴로니우스가 He`s crazy를 부르면서 췄던 코믹송 정도입니다. 폴로니우스가 ‘미쳤어~ 돌았어~’ 를 부르면서 췄던 춤은 아직도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며 그 생각을 하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곤 하게 합니다.
    독후감/창작| 2007.11.26| 4페이지| 1,000원| 조회(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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