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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학]‘계층이동통로’로서의 대학 - 대학입시제도를 중심으로
    ‘계층이동통로’로서의 대학 - 대학입시제도를 중심으로Ⅰ. 들어가며Ⅱ.대학에 대한 북한 주민의 인식1. 계층이동통로로서의 대학교육2. 대학에 따른 선호도Ⅲ.북한의 학생선발제도1. 북한의 입시제도 변화2. 정예교육을 위한 혁명학원 체계Ⅳ. 나가며Ⅰ. 들어가며예부터 우리민족은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하여 중요시 여겨 왔다. 이것은 남북이 분단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교육목표가 '공산주의적 인간양성'인 것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북한은 교육이 인민들의 사상을 고취시키고, 체제를 선전하고 유지하는데 큰 힘을 발휘한다고 보고 있으며 따라서 교육을 매우 중요시 여기며 그만큼 인민들을 교육하는데 지대한 관심을 쏟아 왔다. 이렇듯 어느 사회든지 교육은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기능하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다.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보면 교육을 '신분 상승의 통로'라고 볼 수 있다. 유교국가의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 민족의 교육열은 상당하며, '입신양명' 즉,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을 추구해 왔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이 대학 진학을 희망할 것임은 당연하다. 그런데 북한에서 대학입시는 얼마나 평등하게 치러지고 있는 것일까?대학 입시는 차후 그 세대를 이끌어갈 엘리트 선출의 통로가 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제도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용되고 있는지의 여부는 그 사회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육이 사회적 계층의 재배치에 기인한다고 볼 때 북한 교육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입시'의 투명성을 알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북한 주민들의 대학에 대한 인식을 먼저 살펴보고 북한 입시제도가 북한에서 계층이동통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Ⅱ.대학에 대한 북한 주민의 인식1. 계층이동통로로서의 대학교육)대학교육은 계층이동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부, 권력, 사회적 위신이 모두 직업이라는 유일한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에 논물관리공이 되고 보니 이제까지 쌓아 온 노력의 탑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하였다.)단편소설 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대학 진햑이 개인의 행복한 삶을 성취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과 대학 진학에 부여하는 가치 지향의 정도를 알 수 있으며 노동자로서 국가에 충성하려는 것은 순진하다는 구절을 통해서 북한사회의 지배적 가치가 오히려 조롱당하고 있음을 잘 읽을 수 있다.“(상략) 사회생활이란…더구나 이제는 군대생활과 다르잖아요. 가정두 있구…제발 부탁해요. 그 순진성에서 벗어나세요. 당신은 무역상사에서 얼마간 일하다가 대학에 가야해요. 원산 경제대학 같은 데 말이에요. …더 행복한 생활은 앞에 있어요. 둘이 함께 그 행복을 쟁취하자요.”)단편소설 는 자식을 대학에 보내어 박사학위를 따서 학자로 키우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한결같은 소원임을 잘 알 수 있게 한다.그저 뭐니뭐니 해도 제일 그리운 건 손주녀석들이다. 곽룡세한테는 손주 다섯이 있다. 그중에 둘째한테서 본 손자 둘은 제 애비가 군사복무를 하고 있는 전연지구에서 살고 집에는 맏이네가 본 손자녀석 하나와 복술강아지 같은 귀여운 두 손녀가 있다. 곽룡세는 그것들을 공부시켜 집안에서 농학박사나 그러루한 학자가 한둘쯤 나오는게 큰 소원이다. 그렇게 못될 리도 없다. 큰며늘애가 학교 때 머리좋기로 소문이 났다더니 그한테서 본 맏손자 녀석은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이 여간 아니다. 그 녀석이 보고싶다.)단편소설 은 북한에서 결혼을 잘 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나와야 할 만큼 대학교육이 높은 사회적 신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전 해외에 나가 있으면서 늘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라에선 대학까지 공부를 시키고 과학연구기관에 배치해 주었는데 그 길에서 해놓은 일이 없으니까요. 어느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나의 대학졸업증도 시집을 잘 가기 위한 지참품으로 되고 말았지요.”)단편소설 은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대학을 못간 동료들에 대하여 우월의식을 느낀다는 사실을 잘 부각시켜 주고 있다.그러니 나도 이제 대학생이 된면서 평양시로 편입돼 현재는 평양시 은정구역에 소속되어 있다. 1980년까지 북한최고의 두뇌집단이 모인 곳으로 명성이 높았지만 과학자에 대한 홀대와 경제난으로 이과대학의 인기가 추락했다. 최근에는 출신성분이 좋지 못해 김일성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주로 이과대학에 진학한다.김일성대의 경우 자연계는 비교적 실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지만 인문계는 당, 정, 군 고위 간부들의 자녀들이 대거 입학해 특혜를 인정받기도 한다. 북한 지도자 김정일도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다.김일성종합대학은 실력이 아무리 우수해도 집안 및 출신성분이 좋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평양 외국어대학은 김일성대학보다 더 인기가 높아 주로 고위층과 부유층 자녀들이 몰린다. 반면에 학생들이 가장 기피하는 학부는 핵관련 학과나 화학과, 지질학과 등이다. 핵물리학과는 영변 등에서 평생 격리생활을 해야 하고, 화학과도 지방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높으며, 지질학과 등은 대부분 탄광이나 광산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외국어대학이나 국제관계대학 등은 고위층에서 인기가 높고 상업대학 등 먹는 것과 관련된 대학은 일반층에서 인기가 높다. 의대는 상대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지원하지만 북한에서 의사는 돈을 버는 직종이 아니기 때문에 인기가 없다. 북한에서 인기가 높은 학부나 대학은 해외에 나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다. 함흥 수리대학의 경우 아프리카 등에 관계수로 공사 지도를 위해 이 대학 출신들을 많이 선발하자 지방에서 가장 인기있는 대학으로 떠오르기도 하였다.평양무용대학과 평양미술대학, 평양연극영화대학, 조선체육대학 등 예체능 대학도 고위층이나 부유층에서 인기가 높다. 김정일이 예술계통에 관심이 많자 자녀들을 이곳에 보내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공부는 하고 싶지만 실력이 부족하거나 여건이 안되는 학생들은 방송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한다. 방송대학은 라디오 등을 통해 강의되며 일년에 두 번씩 시험을 치르고 합격되면 자격증을 준다.이밖에도 각 도마다 당 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한 공산대학지 북한의 대학 입학제도는 주로 추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당 기관에서 추천을 하면 추천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학별로 입학시험을 치루게 된다. 대학 자체의 전형을 통하여 입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인데, 선발 과정은 지원자의 출신성분, 조직생활, 시험성적을 고려하여 선발한다.입학시험 과목은 학교별로 전공과목에 따라 필답고사와 면접으로 구성된다. 사회과학 분야는 당정책사 국어, 외국어, 수학, 체육, 물리, 기타 선택과목이다. 자연과학분야는 당정책사, 외국어, 수학, 물리, 화학, 체육, 기타 선택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교원대학의 경우 공산주의도덕이 시험과목으로 포함되어 있다. 필답고사는 주로 주관식으로서 논술형의 문제가 출제되고 있으며, 필답고사에 이틀정도, 면접에 하루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이렇게 하여 입학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고등중학교 졸업 당해 년도에 대학에 입학한 학생으로서 직통생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당과 행정기관의 간부 자제이거나 특별히 수재로서 능력이 인정된 학생들이다. 둘째는 제대군인으로서 고등중학교 졸업 후에 군대에 입대하여 2~5년간 복무한 자로서 군대 내의 당 책임자로부터 추천을 받은 자이다. 셋째는 직장근무자인데, 이들도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직장에서 2~5년간 근무한 자로서 직장 당 책임자의 추천을 받은 자이다. 1970년대까지 이들 세 부류의 비율은 제대 군인 70%, 직통생 10%정도, 직장 근무자 20%정도로서 제대군인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만큼 북한에서는 대학 진학의 통로를 모색하기 위하여 군 입대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2) 국가 자격고사의 실시1979년까지 북한은 추천제를 중심으로 대학의 입학전형을 실시하였다. 대학별 시험을 실시하기는 하였지만 당 간부의 자녀 등 출신성분을 위주로 하여 대학 입학자를 선별하기 때문에 추천이 중심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천을 중심으로 하는 전형제도는 두 가지 지원자들이 국가자격고사를 칠고 난 후, 대학과 군대, 직장에서는 각 지역별로 할당된 대학 지원자수에 따라 시험성적, 출신성분, 조직생활의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대학별로 추천하게 된다. 각 지역의 행정위원회의 대학생 모집과는 지역별로 할당된 인원수에 따라 지원자를 추천한다. 이리하여 지원자들은 대학별로 입학시험을 치루게 되고 대학은 다시 대학별 시험성적, 출신성분 조직생활을 평가하여 최종적으로 합격자를 결정한다. 다만 특수영재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제1고등중학교 졸업생들은 국가자격고사를 치루지 않고 직접 개별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데 제1고등중학교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지난 1980년대 이후 대학교육의 질적인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중점대학을 중심으로 대학교육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학교육의 개혁 가운데 대학생의 선발방법에서 학생의 능력을 보다 엄격히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가자격고사를 실시하면서 대학은 입학생의 선발과정에서 학습능력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특히 학업을 전문으로 하는 중점대학은 학생의 학습능력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군인과 직장인의 비율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경향이다 국가자격고사제도를 도입한 이후에 대학 입학자 가운데 제대군인과 직장인의 비율은 20~30%수준이며, 평양에 소재하고 있는 중점대학의 경우에는 10%정도에 불과하다.또한 대학교육의 질적인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중심대학에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예비과정을 설치하고 있다. 신입생들이 대학에 입학한 후에 1년간의 예비과정을 두어 대학교육을 이수 할 수 있는 예비적인 실력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예비과에서는 정치사상 교육을 비롯하여 수학과 물리, 화학 등 자연과학과 외국어 과목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제1고등중학교 졸업생들은 예비과를 거치지 않고 직접 본과에 입학할 수 있다. 제1고등중학교 졸업생을 제외한 모든 신입생들은 1년의 예비과를 마친 후 시험에 합격한 학생만이 본과에 진급할 수 있다.이와 같이 학습능력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출신성)
    사회과학| 2006.11.22| 8페이지| 1,000원| 조회(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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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학]김정일 시대의 대외정책의 특징
    김정일 시대의 대외정책의 특징- 목 차 -Ⅰ. 들어가며Ⅱ. 북한 외교정책의 환경변화Ⅲ. 북한 외교정책의 목표Ⅳ. 북한의 대응전략Ⅴ. 나오며Ⅰ. 들어가며김일성 사후 북한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로 인해 김정일 체제의 대외정책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진영외교에서 벗어나 체제와 이념에 집착하지 않고 실리와 명분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세련되고 합리적인 외교정책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김정일 체제 출범 이후 북한의 대외정책이 종전의 수세적이고 폐쇄적인 대외정책 성격에서 벗어나 보다 실용주의적이고 공세적인 대외정책으로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 점을 주목하고, 김정일 체제 하의 외교정책의 환경 변화요인과 그 대응전략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럼 지금부터는 정책 변화의 요인으로서의 대내외적 환경요인을 살펴보고 이러한 환경 하에서 북한이 취하는 전략적 정책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북한 외교정책의 환경변화1. 대외적 환경요인외부적 환경요인은 1980년대 이후부터 급변하기 시작한 국제정세와 동북아 지역정세 변화 그리고 남북한 관계변화를 들 수 있다. 먼저 국제정세 변화와 관련해 보면, 1980년대 후반 급격한 국제질서의 변화는 제2차 대전 이후 반세기동안 국제질서를 규정해 왔던 냉전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탄생시켰다. 이른바, 탈냉전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도래한 것이다. 새로운 국제질서는 개별 국가들 모두에게 도전과 시련 그리고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적과 동지를 구분해 주었던 체제와 이념이라는 잣대가 사라지고 점차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개별 국가들 간의 국제관계가 보편화된 현상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북한의 경우도 동구공산권의 붕괴 및 기존 동맹국들과의 관계 변화는 도전과 시련의 극복이라는 새로운 대외정책적 과제를 가져다주었다. 한편 동구공산권 국가들의 붕괴와 체제전환, 중국과 러시아의 실용주의적 대외정책 추구 등 대외환경변화는 북한의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요인이 되었다.이러한 상황한의 대외정책 결정 및 추진에 있어서 부담요인을 가중시켰다. 이러한 대외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북한은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을 비롯한 일본과의 관계정상화 추진, 남북한 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등 새로운 차원에서 대외개방 모색 등 종전과는 다른 변화 있는 외교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3년 3월 12일 NPT 탈퇴 이후 북한외교정책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 4강 외교를 기본 축으로 하고 아시아 및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보조 축으로 하는 대외전략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대남정책과 대외개방 문제를 재조정하는 정책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1998년 9월 김정일 정권이 공식 출범하면서 북한은 종전보다 더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즉 김정일 체제 공식 출범 이후 다분히 체제 생존을 위한 실리외교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지속적인 대미?일 관계개선의 추구, 대중?러 유대관계의 복원 노력, 대서방 국가들과의 수교 및 경제협력 확대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동북아 지역의 대외환경 변화로서 냉전기 동북아시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미-러의 독점적 지위가 감소된 반면, 상대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증대되었다. 또한 북한은 그동안 중-러간 이념분쟁을 이용하여 나름대로 시계추 외교를 구사하여 이들 사이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으나, 두 강대국이 갈등관계를 청산하고 국제무대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1997년에는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선언하기도 함으로서 북한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동북아지역의 대외환경이 크게 변화한 것이다. 남북관계 역시 대북 정책에 있어서 전향적인 김대중 정부가 출범함으로써 북한은 더 이상 남한의 각종 대화 제의를 거부할 명분이 없어졌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북한은 줄곧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론'이 대북정책의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는 '통미봉남'의 대남자세를 견지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이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증대시키면서 민족통일을 달성해 나가려는 인식하게 된 것이다.2.대내적 환경요인먼저 내부적 환경요인으로서 정치 및 사상분야의 측면과 경제 및 사회분야 측면에서 이를 고찰해 보면, 정치 사상분야에 있어서 북한은 김일성 사후 부자간 권력세습이라는 전대미문의 권력승계와 이와 관련하여 그 정통성을 대내적으로 인정받아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를 위해 북한은 김일성 생존시부터 이를 위한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즉 김일성의 유훈교시를 강조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을 동일시하는 한편, 각종의 상징조작과 사상사업의 강화를 통해 김정일의 우상화 작업을 추진하였다.다음으로 경제 및 사회분야 환경을 보면, 북한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급격한 침체현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들어 더욱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경제회생을 위한 김정일 정권의 노력은 종전의 군사?중공업 우선정책에서 농업, 경공업 제일주의를 강조함과 동시에 '무역제일주의'에 따라 대외경제 개방과 관련한 자유경제무역지대의 활성화를 추진하기 위해 법 제정, 투자설명회 등을 개최하였다. 경제난 해소를 위해 자력갱생은 이미 그 한계를 인식하였고, 결국 그 해법은 외국의 자본과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가깝게는 남한과의 교류협력 강화, 서방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가 그 해법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Ⅲ. 북한 대외정책의 목표냉전기 북한 외교정책의 목표를 살펴보면 그 최소목표는 체제유지 및 발전이며, 최대목표는 한반도 공산화 통일과 전 세계의 공산화였다.) 그러나 동구 공산권의 붕괴 및 기존에 북한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던 국가들과의 관계변화 등 이른바 탈냉전시대의 도래는 북한의 외교목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북한은 ‘맑스-레닌주의’를 제8차 개정헌법(1998.9.5)에서 삭제함으로써 더 이상 맑스-레닌주의가 북한의 활동지침이 아님을 시사하는 동시에 제7차 개정헌법 제5조에 규정되어 있던 ‘전국적 범위에서 외세를 물리치고’라는 국가의 투쟁목표를 제8차 개정헌법 제9조에서는 삭제하였다. 그리고 제8차 개정헌을 위한 ‘경제개방 외교’-체제안정을 위한 ‘정당화 외교’-유리한 국제환경 조성을 위한 ‘공세적 거점외교’에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은 기본방향으로써(1) 혁명외교의 완화와 실리외교 강조(2) 남조선 해방을 위한 이른바 ‘해방외교’에서 북조선 사회주의 체제유지를 위한 ‘수호외 교’로 방향전환(3) 진영외교를 단기적으로는 비동맹외교로, 장기적으로는 개방외교로 전환(4) 냉전기 중국과 소련사이에서 ‘자주외교’를 전개한 반면, 중-소 화해로 인해 ‘유인외교’ 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한편 북한은 “모든 노선과 정책은 주체사상으로부터 출발하고”, “모든 정책과 활동의 확고부동한 지침”도 주체사상으로부터 나온다는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북한은 그들의 외교정책의 목표와 목포를 수행하는 행동지침이 실천 이데올로기로서의 주체사상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언제나 분명히 하고 있다.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외교정책 목표는 최근 그 추구하는 종래의 방식과는 달리 명분보다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맞춰 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현실주의 노선을 더욱 중시하고 있다. 이는 김정일 총비서 취임 이후에도 계속되는 자연재해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과 관계 개선에 노력하는 한편,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복원에 힘쓰며, 대남관계에서는 실리와 명분을 적절히 병행하는 양상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김정일 체제 하에서 대외정책 목표는 체제유지를 염두에 둔 외부로부터의 경제협력 및 지원확보, 미국으로부터의 체제보장 확보, 중-러와의 관계회복, 대남관계에서의 명분과 실리 추구, 대서방권과의 협력 강화 등으로 요약된다.Ⅳ. 북한의 대응전략1. 선군외교전략북한은 김정일 체제 하에서의 자신의 외교전략을 ‘선군외교전법’이라는 용어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의 근간은 김정일이 혁명과 건설에서 구현해 나가는 기본정치방식인 ‘선군정치’인 것이다. 특히 북한은 김일성 사망 직후부터 김정일은 권력서열에서 군부 인사의 중용, 군부대 시찰 및 군 관련 행사참석, 력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외교의 배경에는 정치, 군사, 경제적 힘이 있다고 전제하고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항상 견지해야 할 입장은 “추호의 양보도 없이 혁명의 근본리익을 고수하는 강경한 자세”)라는 것이다.이와 같은 기본 입장과 함께 북한은 선군정치는 외교전에서 필승의 담보이고 자위적 국방력은 제국주의자들에게 커다란 공포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선군정치의 성과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북미 기본합의문 채택을 들었고,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 낸 것도 역시 김정일의 선군정치의 산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북한은 2002년 4월 1일자 [로동신문]사설에서 “선군정치는 우리 시대 반제투쟁의 위력한 무기이다”를 통해 선군정치에 따른 외교전략의 의의를 보다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외교에 관해서는 외교전의 배경에는 정치 군사적 힘이 있다고 강조하고, 북한의 외교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않는 자주적인 외교이며 배짱과 담력으로 맞받아 나가는 강경한 외교이다‘라고 규정하였다. 북한은 김정일 정권 출범 이후 수교국 확대 등 외교정책 활성화 성과를 ’선군외교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2002년 10월 김정일의 당 총비서 추대 5주년 기념행사에서 전병호는 보고문을 통해 그간의 대외정책 성과가 김정일의 독창적인 ‘선군외교전략’과 탁월한 대외활동에 의해 이루어 진 것으로 칭송하였다.)2. 벼랑 끝 외교 전술1993년부터 북한은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개발을 위협수단으로 하는 위기조성전술을 통한 위기대응을 기도하였다. 즉, 북한은 대량파괴무기의 확산을 저지하고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미국과 한국의 전략을 이용하여 핵과 미사일 개발의 중단을 대가로 체제보장, 대북경제제재 완화, 식량제공, 수교 등을 요구하는 “벼랑 끝 외교전술”을 반복하였다.)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단독으로 통치권을 행사하면서 북한의 군사우위정책은 강화되었고, “벼랑 끝 외교”도 계속 내지 강화되었다.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벼랑 끝 외교전술”이 군사력을 앞세우는
    사회과학| 2006.11.22| 6페이지| 1,000원| 조회(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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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제3의 물결 요약 평가B괜찮아요
    제3의 물결- 목 차 -Ⅰ. 들어가는말- 작가 약력- 서론Ⅱ. 책의 내용제1부 부딪히는 물결제2부 제2의 물결제3부 제3의 물결제4부 결론Ⅲ. 결론※ 작가 약력1928년 뉴욕에서 출생하였다. 1949년 뉴욕대학교를 졸업한 뒤 중서부 공업지대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노동조합 관련 잡지에 글을 기고하여 문필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처음에는 백악관 담당 정치·노동 문제 기자로 일했으나 차츰 비즈니스 분야로 활동의 터전을 넓혀 1959년부터 1961년까지 《미래(未來)》지의 부편집자로 활동하였다. 1964년에 쓴 《문화의 소비자》에서 날카로운 통찰력이 주목을 받았으며, 《미래의 충격》(1970)으로 그 위치를 확고하게 다졌다. 대표작은 1980년에 출판된 《제3의 물결 The Third Waves》, 1991년에 출판된 《권력 이동》등이 있고, 최근 를 출판하였다. 뉴욕대학교·마이애미대학교 등 5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코넬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서론사람들은 누구나 삶의 양식을 가진다. 각자가 가진 삶의 양식은 개인적일 수도 있지만 철저히 해당 사회의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오래된 말을 빌리지 않고서도 이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80년 너무도 짧았던 서울의 봄을 느끼고 있었던 우리나라 밖, 미국에서 한 학자는 지금의 사회를 ‘제 3의 물결’이라 부르며 새로운 삶의 양식이 시작되었음을 발표했다. 놀랍게도 그의 예리한 통찰력은 상당 부분 현실에 나타났으며, 30년이 넘은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제3의 물결제1부 부딪치는 물결제1장 내일을 향한 대투쟁- 인류 문명의 흐름제 1의 물결: 유목민이 정착하여 농경을 하게 된 시기(완성되는 데만 수천년)제 2의 물결: 산업혁명에 따라 시장경제를 전제로 한 사회성립(300년, 아직 쇠퇴하지 않음)제 3의 물결: 오늘날의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사라지는 데에 수십년도 안걸릴지 모름)제2부 제2의 물결제2장 호의존도가 높은 노동을 떠맡고, 여자는 낡고 뒤떨어진 노동형태 즉 제1물결의 노동형태가 고수되는 가정생활을 맡음으로써 남녀의 역할분리 및 분열이 심화제4장 규범의 내용제2물결 문명을 구성하는 원리(표준화,전문화,동시화,집중화,극대화,중앙집권화)들이 행동규범을 형성하게 되고 이러한 원리 6가지는 상호 연관되어 관료주의를 육성제5장 권력의 전문가산업주의에 따라 분해된 지식들의 통합의 필요성에 따라 주도권자는‘통합자’였으며거대정부는 제2물결시대 문명과 체제 전부를 통합하는 최대의 조정자그러나 제3물결의 변화(경영참여, 의사결정분담, 노동자와 소비자 그리고 시민에 의한 관리 등)로 인하여 권력체계가 균열을 보임제6장 숨겨진 청사진산업사회의 정치체제1. 기계가 지닌 힘과 능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에 따라 산업기계와 유사한 측성을 지닌 정치제도를 만들어냈다.2. 제 2물결의 정치제도는 의원대표제 위에 구축3. 의회와 선거가 생겨나고 따라 법령이나 규칙이 제정. 이는 경제라는 채널에 연결되어 자기 관할 범위를 넘어서 외부로 영향을 미침4. 의원대표제에 의한 정부는 정치에 있어서 위로부터의 명령에 의한 통합결정을 생산하는 공장이며 불평등을 고정시키기 위한 산업 주의적 기술로서 작용제7장 광란하는 국가- 하나로 통일된 경제위에 일체화된 통합 정치기관은 제2물결의 한 현상으로 나타남- ‘황금의 굵은 못’ - 철도 : 각 나라는 19세기에 철도건설에 열중하였는데 철도는 각 나라의 정치적 경계선을 결정제8장 제국주의로 가는길- 식민지의 모든 원료 등을 빼앗아와 가공한 다음 대개 그 제품을 다시 식민지에 팔아 거액의 이익을 챙기는 제국주의가 발생.- 대량생산이 발달하고 큰 시장과 새로운 투자선의 필요에 따라 식민지를 점점 더 늘려감- 백인의 인종적 우월성에 따라 제국주의적 침략을 유럽인의 신성한 의무로 여겼으며 식민지인을 야만스럽고 미개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그들을 몰살함- 국제 분업이 모든 나라를 풍족하게 한다는 리카도(David ricardo)의 주장과 육성- 우주나 자연 뿐만 아니라 사회나 인간도 정해진(예측 가능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이 새로운 인과율은 경제도 조작할 수 있고 정치운동이나 정치기구도 구성할 수 있으며 한 개인의 행동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 이것은 인류를 고대 신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과학에도 기적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자체가 새로운 감옥제10장 홍수 : 제2물결의 예기치 못한 부작용- ‘산업주의적 현실’에 의거한 자연에 대한 일그러진 견해, 증대되는 인구, 가차 없는 과학기술, 끊임없는 확장의 필요성 등으로부터 온 광범위하고 회복되기 어려운 환경파괴 문제- 제국주의로 인한 인종차별과 소규모의 자립경제가 강제로 세계 무역의 흐름에 흘러들어가는 문제- 재생 불가능한 제2물결의 에너지원(석유, 석탄 등)의 고갈위기- 위 부작용들은 제 3의 물결의 혁신으로 해결 가능성 존재제3부 제3의 물결제11장. 새로운 통합제2물결 문명 : 문제를 그 구성요소들로 분해하는 인간의 능력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며 종합보다는 분석에 익숙제3물결 문명 : 스케일이 큰 사고방식, 일반이론, 조각의 재구성 등으로 복귀하는 경향제12장 변모하는 주요산업1. 에너지- 석유파동 등 에너지위기로 기술영역에서의 혁명이 가속화되고 새로운 에너지 모색- 이는 기존 제2물결의 에너지 기반에 기득권을 가진 세력과의 충돌이 예상되지만 결국 제3물결이 승리할 것- 새로운 에너지의 특징① 고갈되지 않고 재생가능한 자원에서 생성② 넓은 지역에 산재한 다양한 자원③ 탈중앙집권화된 에너지 생산기술을 결합④ 소수의 방법과 자원에만 의존하지 않는 매우 다양한 형태2. 내일의 도구 - 제3물결 시대의 중추적인 4가지 산업군- 전자공학과 컴퓨터산업 : 생산비용감소로 인한 컴퓨터의 급속한 보급으로 영업, 노동의 성격과 가족의 구조까지 변할 것임. 전자공학산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에너지 절약형의 전자폭발 (컴퓨터, 전자공학, 광섬유체제, 반도체 물리학 등)이 예상- 우주산업 : 중력의 영향이 없는 우주공장의 설치로 인하여 고도기술 물질들을 취급 가능- 해대중화하게 됨에 따라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보다 많은 정보가 요구됨제14장 지적 정보가 가득 찬 환경- 제3물결문명의 새로운 정보영역을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컴퓨터가 주역으로 부상- 제2물결의 기술이 인간의 신체적 힘을 강화해 준 것처럼 컴퓨터는 인간의 정신적 힘을 강화 : 제2물결에서 기본능력 상실자로서 고용시장에서 제외되었던 문맹의 경우도 컴퓨터의 음성데이터 입력 등으로 제3물결에서는 그 고용이 가능- 컴퓨터는 단속적 자료들로부터 의미 있는 ‘전체상’을 종합하도록 도와줄 수 있으므로 순간영상 문화의 해독제 역할을 하여 인간이 지금보다 더 지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이 클 것- 컴퓨터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론, 이데올로기, 여러 방면의 혁신들을 가능하게 해줌으로서 역사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제3물결사회의 다양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을 제공제15장 대량생산의 저편에 있는 것- 제2물결 제조업의 본질은 수백만개의 동일하고 표준화된 제품의 장기적 생산이지만, 제3물결 제조업의 본질은 부분적 또는 전면적인 ‘주문제품의 단기적 생산’- 더 많은 기능을 더욱 더 소수의 부품들 속에 통합하여 여러가지 부품들을 대체하게 되는 프레스토 효과를 목격- 전자사무실로의 이행이 가속화, 비서의 여러 기능이 소멸제16장 전자주택- 일자리가 제2물결 사회의 공장이나 사무실로부터 가정으로 되돌아감- 컴퓨터 등의 통신시설을 전제로 가내근무가 가능- 가내전자근무 가능요인① 운송과 원격통신 사이의 경제적 득실 : 교통비용은 급등하는 반면 원격통신비용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추세② 작업장의 이전 및 통근의 감소는 부동산비용을 감축시키며 환경오염을 완화③ 근무시간에 대한 통근시간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직장으로 왕복하는 과정은 불합리한 수고가 되고 통근에 대한 근로자의 저항이 높아지면 사용자는 통근 근로자들에게 상여금을 증액해야 함④ 가내전자근무체제가 도입되면 남편과 아내, 심지어 자녀들까지도 작업단위로서 함께 일할 가능성이 증가-가내전자근무체제로 인한 각 부분에의 영향① 공동체에 대한 영향: 이사하는 일 두명의 외부사람을 가정내에 편입시키는 새로운 형태를 이룰수도 있을 것제18장. 기업 존립의 위기- 춤추는 통화 :유러달러의 급증으로 인한 혼란- 가속적인 빠른 경제속도로 인해 위기감이 더욱 고조- 탈대중화의 사회대량시장의 소시장화,전문점포의 등장,서비스 상품의 다양화,사람의 상호교환성 상실 등 지금까지 대중사회를 형성해 온 갖가지 힘들어 갑자기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족주의는 지역주의로 대체되고 새로운 인종주의가 생기고 매체도 문화를 탈대중화 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에너지 형태의 다양화의 출현과 대량생산의 다음단계를 지향하는 움직임과 병행하여 일어나고 있다.- 기업은 재평가되어 다목적 제도로 인식됨- 다섯가지 압력① 생물영역의 변화 : 생물영역은 각종환경오염의 극한 상황에 이르고 있으며 환경에 미치는 충격의 주된 생산자 역시 기업이므로 기업은 경제적 제도이면서 동시에 환경적 제도로 변모해야함② 기업의 결정은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됨 : 실업, 지역사회붕괴와 강제이전 등 기업이 저지르는 사회오염 은 즉각 적발되고 기업에게는 경제적 생산물뿐 아니라 사회적 생산물에 대해서도 전보다 더 큰 책임이 요구됨③ 정보영역의 변화 : 정보가 생산과정에서 중요해지고 기업의 정보담당 관리자가 산업계에서 부쩍 늘어남에 따라 기업은 정보환경에 대해서도 충격을 미치게 된다.④ 정치와 권력의 영역변화 : 사회의 분화는 정부의 분화도 가져오게 되고 기업은 이러한 정부의 전문부서를 상대하게 되므로 기업의 중요한 결정은 간접적으로 정치적 영향을 끼치게 될것임⑤ 도덕적 압력 : 기업의 윤리적 자세가 사회의 가치체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견해가 팽배해짐에 따라 기업이 도덕적 영향의 생산자로 간주6. 다목적 기업- 제3물결의 기업은 여러 변화 압력에 대응한 다목적 기업의 형태- 제3물결 시대의 기업은 순수익만이 아닌 서로 연관된 복수의 순이익(사회 환경 정보 정치 도덕면에서의 순수익)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받음- 이에 따라 사회업적지수, 연차사회보고서, 목표기 시작
    독후감/창작| 2006.11.22| 8페이지| 1,000원| 조회(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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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불교를 통해 본 한국의 차(茶) 문화 평가B괜찮아요
    ※불교와 한국문화 기말과제불교를 통해 본 한국의 차(茶) 문화-목차보기-Ⅰ. 들어가며Ⅱ. 차의 역사와 개념Ⅲ. 한국 다도 문화Ⅳ. 불가의 다도문화Ⅴ. 나오며Ⅰ. 들어가며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차 마시는 것을 즐겼다 우리의 다도역사는 불교가 융성했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며 1400여 년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고, 국가와 왕실의 의식이자 사대부의 의례, 여가문화였으며, 종교인의 구도생활이었고 서민의 번민을 다스리는 문화였다. 따라서 한민족의 대표적인 고급 문화로서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우리 나라의 다도는 이웃의 중국이나 일본과도 확연히 다르며 불교, 유교, 도교의 사상과 어우러져 승려들 뿐 아니라 유학을 공부하는 사대부는 물론이고, 일반 백성들까지도 차를 즐겼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숭유억불정책의 파급효과로 말미암아 그 문화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하여 상류계층이나 승려만이 향유하고 서민들은 대용 차나 그도 안되면 숭늉을 마셨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터지고 미국에 의해 커피가 급속히 확산되어 우리의 차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우리 고유의 차 문화가 우리 나라가 아닌 이웃 일본이나 중국에서야 그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최근 전통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일어나는 추세인데다가 건강과 환경 그리고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불교와 차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 차의 각종 기능성이 알려지고, 경제성장에 따른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차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몸에 나쁜 커피 대신 우리의 건강을 지키고 생명연장의 꿈을 이루어 줄 수 있는 미래식품으로서 차에 대한 기대치는 어떤 식품보다 클 것이며 기독교 국가의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은 한국의 불교 역시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차와 더불어 현대인의 심성의 건강을 지켜주는 데에는 그 기대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Ⅱ. 한국 다도문화(1) 역사와 개념차는 중국에서 수 천년 전부터 이용되어 오다가 전 세계로 전해졌는데 우리 나라에서는정확히는00년대부터 활발한 무역과 더불어 육로나 항로를 통해 다양하게 전해졌다. 그 중 영국은 가장 늦게 차가 전파되었으나 가장 화려한 홍차문화를 전개하였다. 화려한 외형 등 물질문화를 중시한 유럽의 차 문화와 달리 우리 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은 불교문화와 함께 차 문화가 발달하였는데 자연 그대로의 맛을 중시하고 구도를 추구하는 녹차문화가 주를 이루어 발전되어 왔다.차는 차나무의 어린 잎을 따서 만든 마실 거리의 재료이다. 즉 손질된 찻잎, 혹은 찻가루나 찻덩이를 말한다. 또한 마른 차가 물과 어우러져 만들어진 마실 거리인 찻물을 뜻한다) 우리가 흔히 ‘차(茶)'라는 개념과 같이 쓰고 있는 생강차, 유자차 등의 차는 ’대용차‘라고 해서 말 그대로 ‘차(茶)’를 쓰지 않고 차 대신 다른 재료를 써서 마시는 음료이다. 대용차로는 감잎차, 두충차, 돌외차(덩쿨차), 솔차, 모과차, 생강차, 유자차, 인삼차 등이 있는데 이러한 대용차와 구별하여 차(茶)를 작설차), 참차, 고유차, 혹은 전통차라 한다. 대용차는 약효가 있어 한두번 마시기에는 좋으나 실증이 나기 쉽다. 따라서 차의 당기는 맛과 각성작용이 없어 기호음료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2) 한국 다도문화의 특징우리 다도문화에 관하여 전반적으로 짚어 보고 중요한 사실이나 의식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것을 바탕으로 미래 지향적 다도문화를 꽃피우는 발판이 되며, 세계속의 한국 문화로서의 특성을 지니는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다도문화는 물론 불교라는 틀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민족의 시조신인 선신에게도 차를 바쳤으며 유학을 하는 선비들도 차는 덕이 있어 신체적 정신적으로 즐거움을 준다 하여 차를 즐겼다. 이는 한국의 불교문화가 우리민족의 시조 신으로부터 발전하는 선도문화와 중국에서 유입된 도교와 유교문화가 결합되어 중국의 것을 모방하지 않은 독특한 예법을 지니게 된다.여기서는 불교 속에서의 차를 살펴보기 전에 철학적 관점에서 한국 다도문화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첫째로 다도는 사 사상과는 상관없이, 지혜로운 사람이나 덕을 닦는 현자들이 차를 즐겨왔고, 나아가 군자, 성인과 선인, 부처등 이미 그 대자연의 진리를 터득한 사람들도 좋아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즉, 차를 마시는 일은 도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신을 수양하는 공부에 기여하는 역할이 컸다. 이는 차(茶)가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적 능력을 증대시키며, 올바른 정신을 굳게 지니도록 수련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이 점은 현대에서도 인정될 수 있겠다.둘째로 우리의 다도관은 종교를 초월한다. 한국다도는 여러 종교적 특성과 교리를 지니면서 그 자체에 구속받지 않아 범 종교적이고 종교초월의 성격을 지녔다.신라시대 조주보다 반 세기 앞선 승려 다인인 충담은 왕의 요청으로 왕에게 차를 바치게 되는데 이 때 왕이 다탕을 마신 후에 백성을 잘 다스리는 법을 알고자 했고, 그것을 향가로 듣기를 원했는데 이것에 대한 충담의 답이 바로 안민가이다.임금은 아버지요신하는 사랑을 베푸는 오머니요백성은 어린아이로다 하신다면,백성이 사랑을 알 것입니다.구물구물 사는 중생이를 먹여 다스리니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시렵니까?하신다면나라안이 유지됨을 알 것입니다.참으로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입니다.이를 듣고 난 임금은 충담을 왕사로 봉하게 되는데 이 시는 유교적 관점도 나타나 있어 종교인이면서 여러 종교를 차별없이 수용했던 충담의 모습을 보여준다.셋째, 우리 다도의 철학적 특징으로서, 고선도(古仙道)를 주측으로 하는 풍류도(風流徒)사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풍류도는 선사에 기초를 두면서 선인(仙人)단군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오랜 사상이다. 이는 한국정신의 원류라 할 수 있다. 또한 본래의 풍류도는 자연속에서 노니는 것 만이 아니었다. 모든 생명체를 기르고 다스리는 공기와 물 즉, 천지자연을 경배하고 사랑하는 종교였다. 이 풍류적 선도에 도가적 영향이 미치면서 더욱 발달 해 온 것이다.넷째, 우리나라는 조물자이자 절대자인 신이 차를 무척 좋아한다고 인식하였다다례로서 대접하였다.Ⅳ. 불가의 다도문화불교와 차는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련을 지니어 왔는데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불교로 인해 음다풍습이 더욱 성하였다. 비록 조선시대 중기에 오면 ‘억불정책’)등으로 불교의 다도 또한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불교는 우리문화의 맥을 이어옴에 있어서 유가못지않게 큰 공헌을 하였고, 중요한 자리를 지켜왔다.불교와 차가 긴밀한 연관을 갖게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차의 효능은 불가에서 교리공부를 하거나 선 수행시에 잠을 좃고 각성시키는데 매우 중요하였다. 즉 차에는 배부를 때 소화를 돕고 각성효과가 있으며 불발하게 하는 세가지 덕이 있는데 특히 각성효과를 중시했다.둘째, 차는 승려들의 기호음료였다. 불자오계(佛子五戒))의 다섯 번째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므로 승려들끼리 혹은 속가의 손님을 맞았을 때 술을 대신하는 음료로서 매우 요긴하다. 따라서 돌아가신 승려의 제사를 지낼 대도 술 대신 차를 썼다.셋째, 다탕(茶湯)은 부처나 신명(神明)이 매우 좋아한다고 믿어, 중요한 불전 공양물로 오랫동안 자리잡아 왔다. 이는 공경의 표시이자 불법을 따르겠다는 수행이었다.다섯째, 불가에서 차를 중요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차를 끓여 마시는 일과 참선(參禪)은 마음상태와 분위기가 유사하므로 하나에 익숙하면 둘 다 자연스럽게 체득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차 문화는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다.(1)승려들의 차 생활승려들이 차를 달이고 마시는 것은 공부나 수행(修行)과 같다고 여긴다. 차를 마신 후 앉아서 고요히 생각하는 것 뿐 아니라 차를 끓이고 마시는 행위도 선에 포함시켜 폭넓게 생각하였다. 이는 ‘삼매의 솜씨(三昧手)’라 일컬었으며, 한가지 일에 몰두하여 행하는 솜씨, 즉 익숙한 솜씨로 차 끓이는 일에만 열중하다보면 망념이 사라지게 되는데 귀한 차의 본성을 살려 끓이려면 잠시도 딴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정신적 수행과 반복된 전다수련을 거친사람만이 차 끓이는 솜씨가 삼매경에 달할 수 있을 것이다.오도(悟道)할 수 있음은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범인에게는 무척 더디고 재미가 없으며 어렵다. 깨달음의 진전을 방해하는 요소로는 탐욕, 증오, 무기력, 근심, 회의 등으로 이는 현실에 집착이 있기 때문인데 차를 끓여 마시는 과정은 이러한 요소를 소멸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다.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의 폭과 깊이를 늘이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매일의 반복되는 음다 생활은 점진적 깨달음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차를 마시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다도의 대가 쥬꼬우는 말하기를 “다삼매에 들어가서 자신의 마음을 파악하고 대자연에 순응함으로써 자신이 부처가 됨을 깨달아 안다”고 하였다.또한 차는 승려들의 기호음료이기도 했다. 자연인의 자세로 벗과 더불어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면 차를 권하였으며 공부하는 여가에 차를 마셨다. 또한 불공이 끝난 후에도 차를 마셨다.(2)불가(佛家)의 다례불교는 조선 건국 초기부터 출가한 승려들에게 유교적 상례(喪禮)를 따르도록 강요하였고 불가의 제사다례도 다분히 유교적이었다. 불가의 다례는 부처, 나한, 삼보 등에 차를 올릴 때와 돌아가신 스님의 제사를 지낼 때 행해졌으며 탑이나 부도에도 다례를 올렸다. 다례가 있을 때는 다게를 읊었다.)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 중 차는 매우 중요하였다. 부처님의 사리를 옮길 때나 불상을 점안할 때 괘불)을 옮길 때에도 차를 올리고 다게를 읊었다. 부도에도 차를 올렸는데 부도다례라고 하며 음력 9월 9일에 큰절스님 뿐 아니라 주변 암자의 모든 스님들이 함께 부도다례를 지내기도 한다. 세벽예불 전에 법당의 부처님께 차를 올릴 때는 차를 끓여 받침에 받쳐서 법당에 들어가며, 다기를 들고갈 때는 왼쪽 어깨 위 눈높이 정도로 올려 들고 가 차를 부처앞에 올린 후 반배를 하고 뒤로 물러나 조용히 꿇어앉아 있으면 아침예불이 시작되었다. 이때 다게를 다같이 읊었다고 한다. 다기를 모시는 자리는 부처님 앞 중앙에 있는 향로의 왼쪽이었따. 스님이 돌아가셧을때와 제사 .
    인문/어학| 2006.06.09| 6페이지| 1,000원| 조회(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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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감상문]독서감상문 판게아의 지도
    “대다수 사람들은 타인들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따라서 특정 이슈에 대한 태도에서 지배적인 의견에 자신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확신이 생기면 공공연히 견해를 표방하지만 소수에속하면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노엘레 노이만(Noelle Neumann)의 침묵의 나선 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이라는 주장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이 이론이 소설에 대한 나의 집중을 방해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매스미디어이론중 하나인 이 이론은 필경 미디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듯 하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일상생활의 전 부분에서 이 미디어의 이론에게 지배받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소설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이 소설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다루듯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선에서 판게아의 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역시나였다.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보았지만 도깨비도로에 대한 설명은 오직 하나로 귀결되었다. “착시!!” 그것뿐이었다. 누구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소설의 어느 한 구절처럼 우리는 우리의 눈 즉, 감각보다는 책과 전문가의 권위를 맹신한다. 그리고 그렇게 길들여져 왔다. 감히 의심하지 못한다. 이렇게 길들여진 나에게 이 책은 “너의 그 애늙은이 같은 고리타분한 생각의 틀에서 얼른 나와! 너에게는 젊은이다운 패기도 이미 없어진거냐?”며 다가왔고, 나는 무언의 반성을 하는 듯한 자세로 그 책을 조심스럽게 펼쳐들었다.이 소설은 폭우로부터 연유한다. 도깨비도로가 시작이라고 해도 아니면 그 이전 광상이 묻히게 된 이유인 화산폭발이 시발점이라고 해도 그것도 아니면 판게아의 지나친 호기심이 그 발단이라고 해도 할말은 없지만 그 계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하는 논의는 이쯤에서 접어두기로 하자.폭우는 제주도의 도깨비도로에도 어김없이 내리친다. 그곳에서 우리는 판게아와 만나게 된다. 판게아는 폭우가 몰아치는 그날, 그저 폭우를 하염없이 내려보고 있었다. 그는 정말 개성 만점이다. 요즘 시대에 도통 보기 힘든 인물이다. 매우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신혼여행으로 도깨비 도로에 와본 이후 도깨비도로의 신비에만 몇십년을 전념한 괴짜이다. 마침내 그는 지하에 묻혀져 있던 고대인의 문명을 발견하게 된다. 폭우가 몰아치던 그날도 그는 그 도로에서 역류하는 빗방울들을 보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에 한숨짓고 있었을 것이다. 때마침 한동원이란 소설가가 지나가게 되고 그는 판게아의 이론을 접하게 된다. 한동원은 그의 이론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아들 한이상으로 하여금 소설의 형식으로 이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며, 동시에 한이상을 한동원이 몸담고 있던 독서고존의 회원으로 받아들이려 한다.이 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특별하듯이. 독서고존도 그렇다. 살아있는 귀를 가지고 있는 마님과 너무나 박학다식한 기옥씨를 비롯하여 이선생, 고박사 그리고 한동원으로 구성된 독서고존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아니 비현실적이다. 그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현실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은 어떻게 보면 사치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 고매한 사람들이다.판게아의 주장에 따르면 제주도의 도깨비도로는 ‘착시’가 아닌 ‘중력이상’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믿어주던 아내의 믿음까지도 없어진지 오래지만 판게아는 쓸쓸히 그리고 묵묵하게 도깨비 도로의 비밀을 밝혀나간다. 여기까지가 1권의 내용이다.2권에서는 고대문명의 발굴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는 환인을 성서에까지 연결시키는 상상력에 기가 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수만은 논거와 추리, 논리가 더 놀라웠는데 문제는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진실임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 있다. 수메르인의 문명이 매우 많은 부분에서 우리민족의 그것과 일치한다고 하는 내용들은 나도 읽은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냥 넘겼을 뿐이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니 나는 왜 몽상 아니 망상이나마 그런 생각들을 하지 못했는지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긴 글쓰는 작가와 나는 분명 다르잖아’ 이렇게 위안을 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나의 상상력과 창의성의 부족함을 계속 탓하고 있던 터라 아픈 구석을 찔린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한이상과 선기옥 지관우와 그리고 남형두는 드디어 대시조전을 찾아 동굴안으로 들어간다. 위대한 고조선 아니 그 이전일지도 모르는 문명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되는 것인가! 드디어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것인가!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벅차고 설레는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너무나도 아버지가 보고 싶었고 책장을 넘기는 손은 빨라지기 시작했다. 난 이미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여느 이야기에서 처럼 이 소설에도 방해꾼이 등장했다. 고박사가 바로 그 배신자였다. 난 고박사의 배신에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기옥이 죽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핑 돌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히진 못했지만 그런 느낌은 초등학교 때 슬픈 동화를 보고 눈물을 ‘뚝뚝’ 흘렸던 때 이후 처음이었다. 그 순수하고 착했던 시절에 경험하고 다시는 흘리지 못했던 그 안타까움을 나는 스무살이 넘은 지금 경험했다. 그리고 판게아의 방대한 이론에 가려서 크게 드러나지는 못했던 한이상과 선기옥의 사랑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해야겠다. 워낙 놀라운 이야기 뿐이라 그리 비중은 차지하지 못했고, 독자들 또한 그다지 관심같지 않는 부분일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6.06.09| 2페이지| 1,000원| 조회(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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