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론1)주제선정의 배경과 목적2)조사방법 및 레포트 방향2.본론1)대기오염의 개념2)대기오염의 현황 및 증가요인3)대기오염물질의 종류4)대기오염현상5)대기오염관리대책과 방지기술3.결론1)결과 및 정리2)소감3)참고문헌1.서론1)주제선정의 배경과 목적1972년 유엔인간환경회의(UNCHE)에서 국제 환경보호 인식이 대두되었으며 1992년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는 의제21을 채택하여 무역과 환경을 연계시키기 시작하였고, 각종 국제환경회의에서 채택된 환경관계선언 및 유엔환경계획(UNEP)과 같은 국제기구의 권고 또는 결정에서 자원관할권 개념의 변화, 제한적 영토주권론과 국가 간 책임, 국제협력 및 환경오염 저감원칙 등으로 국제규범의 이행 강제성이 강화되고 있다.대기오염물질은 국가 간 이동하는 특성 때문에 한나라의 환경정책과 기술만으로는 환경오염방지를 위한 실효성을 거두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뿐인 지구`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하게 된다. 중국은 산업의 재배치에 따른 급격한 공업화 과정을 밟고 있다. 따라서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인접해 있는 우리로서는 매년마다 봄철, 중금속물질이 섞인 황사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피부로 느끼며 대기오염에 관한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서울은 이미 세계적으로 대기오염이 심각한 대도시로 꼽히고 있으며 대기오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스모그 현상도 자주 일어나고 있고 대기오염 농도도 높기 때문에 급기야는 오존경보제도가 도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환경관련기구의 확대와 함께 환경예산도 매년 증액되고 있고, 그런 GNP 개념을 도입하여 우리나라도 20조가 넘는 예산을 계획적으로 투입할 예정이며 대기환경기준도 WHO 수준으로 강화하고 총량규제 실시도 검토되고 있다. 이제 대기오염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한 국가의 성장과 번영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가 된 것이다. 성장 일면만을 추구해 오던 정책기조의 변화, 범국가적인 협력체 조직 및 시각의 수렴화등 요즈음이 대행도로는 미포장 상태가 많고 건축폐자재의 노천소각, 대단위 공사장의 경우에는 자동세륜시설을 설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PM-10: 먼지 중에서 입경의 크기가 10㎛ 미만인 미세먼지를 말하는게 이는 인체의 폐, 기관지 및 폐포에 침착률이 높기 때문에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가 크다. 따라서 이들 미세입자의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기준을 80㎛/m/년, 150㎛/m/일로 정하고 있다.②SO2SO2 농도는 에 제시한 바와 같이 전국 7대 도시에서 전반적으로 지난 10년간 꾸준히 감소하여 ‘05년에는 연평균 오염도가 0.004~0.008ppm의 범위였다. 승합차와 화물차의 등록대수와 무연탄을 제외한 대부분의 연료에 대한 사용량이 증가 추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SO2의 농도는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저황유와 LNG 등 청정연료의 공급확대, 배출 규제 강화 등을 포함한 정부의 지속적인 연료규제제도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주요도시의 연도별 SO2 연평균 농도③NO2NO2 농도는 ‘90년 이후로 서울, 부산, 대구 등의 지역에서 다소 증가하였으나, 연간변화를 보면 농도 값의 증ㆍ감소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안정화단계의 경향이 보이고 있다. ‘05년에는 7대 주요도시 중 자동차 등록대수 및 통행량이 가장 많은 서울의 연평균 농도가 0.034ppm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었으며, 상대적으로 보유대수와 통행량이 적은 광주와 대전의 농도가 각각 0.021ppm과 0.020ppm으로 최저치를 보였다. 주요도시의 연도별 NO2 연평균 농도④ O3O3은 ‘90년대 초반과 비교하여 주요도시에서 농도 값의 증가가 있었다. 그러나 연간변화에 있어 뚜렷한 증가추세를 보이지는 않았으며, 전반적으로 안정화 단계에 있다고 판단되어진다. O3 농도는 오염물질 배출량 이외에 기온, 강수량, 오염물질 확산정도, 대기안정도 등의 기상 요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좀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이들과 오존농도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어져야고 있지는 않았으나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 현상의 주 원인가스로 밝혀짐에 따라 지구환경문제의 중요한 규제대상 물질이 되고 있다. 현재 지구 대기중 평균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320ppm 정도이다. 탄산가스의 연간 증가량은 0.7ppm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대기 속에서 탄산가스의 수명은 100년 정도가 되기 때문에 앞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다른 대책이 추진되지 않을 경우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또한 일산화탄소는 탄소(연료)의 불완전연소로 생성된다. 이 가스는 무색, 무취, 무자극성으로 인체에 매우 유독하다. 일반적으로 일산화탄소의 가장 큰 배출원은 자동차이며 배기가스에는 다량의 일산화탄소가 포함되어 있어 고속도로 주행차 내에서의 일산화탄소 농도는 대략 25~50ppm 정도이다.②탄화수소류탄화수소(HC)는 휘발유, 경유 등을 사용할 때 증발되어 나오는 각종 휘발성 물질과 석유, 알코올, 기타 유기산 등을 태울 때 불완전 연소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미연소물질 및 산소를 포함하는 그 유도체와 자동차배기가스 등에서부터 유기용제를 사용한 도색, 제조 등 각종 공정에서 발생하는 물질들을 총칭한다. 탄화수소는 광화학반응을 통하여 오존 등의 2차 오염물질을 생성한다. 탄화수소 중 대기오염 측면에서 특히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는 지구온난화에 연관된 자연발생물인 메탄류와 벤젠, 벤조피렌 등의 다핵탄화수소이다.③황산화물황산화물은 아황산가스(SO2), 무수황산가스(SO3) 등이 있는데 오염물질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황산가스이다. 아황산가스는 황이 포함된 연료를 연소시킬 때 발생한다. 아황산가스는 과거 런던 등 세계 대도시의 대기오염 사건 발생물질로서 대기오염 지표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황산가스로 인한 황산은 부식성이 매우 강하며 생물체조직, 나일론, 대리석 등을 쉽게 파괴하며 황산미스트는 대기 중에서 직경 1~4마이크로미터의 미세한 액적을 형성하기 때문에 폐의 깊은 부분까지 침투하여 천식 등 건강장애를 일방출되는 것으로, 해염입자·토양입자·연소입자 등이 있다. 2차입자는 발생원에서 대기 중에 방출된 가스상물질이 광화학·열화학 반응을 하면서 생긴 입자로서 성분은 주로 황산염·질산염·암모늄염 및 유기물질이다.대기 중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입자들은 크기·발생원·성상에 따라 티끌(particle)·에어로솔(aerosol)·먼지(dust)·작은물방울(droplet)비산재(fly ash)·안개(fog)·증기(fume)·연무(mist)·매연(smoke)·스모그(smog)·검댕(soot) 등으로 구분해 부른다.(3)특정유해물질사람의 건강, 재산이나 농작물 등의 생육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위해를 줄 우려가 있는 물질들을 말한다. 특정대기유해물질의 정의는 사람의 건강, 재산이나 동·식물의 생육에 직접 도는 간접으로 위해를 줄 우려가 있는 대기오염물질로서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물질을 말한다. 특정대기유해물질을 배출하는 시설은 입지 등에 따라 설치에 제한을 둘 수 있으며 환경관리인 선임 및 자가 측정 횟수 등에 있어서 규제가 강화되어 있는 등 일반 대기오염물질 보다 엄격한 관리를 요하고 있다. 현재 지정된 특정대기유해물질은 납, 벤젠 등 25개 물질로서 아래와 같으며 단계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특정대기유해물질 : 카드뮴 및 화합물, 시안화수소, 납 및 그 화합물, 폴리크로리네이티드 비페닐, 크롬화합물, 비소 및 그 화합물, 수은 및 그 화합물, 프로필렌 옥사이드, 염소 및 염화수소, 불소화물, 석면, 니켈 및 그 화합물, 염화비닐, 디옥신, 페놀 및 그 화합물, 베릴륨 및 그 화합물, 벤젠, 사염화수소, 이황화메틸, 아닐린, 클로로포름, 포름알데이드, 아세트알데이드4)대기오염현상(1)열섬현상: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구조물로(열용량이 큰) 뒤덮여있는 도심은 인근교외 지역에(녹지가 많은 지역)비해 태양열로 쉽게 달궈지며 도시 내에는 공장, 주택, 자동차 등이 많아 연료를 연소시킬 때 많은 열이 발생하므로 주변의 다른 지역보다 2∼5℃ 가량 높은 온도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때 기온이 같은원지는 중국과 몽고의 사막지대(타클라마칸, 바다인자단, 텐겔, 오르도스, 고비지역, 만주)와 황하중류의 황토지대이다. 이런 중국의 서북 건조지역은 연강수량이 400㎜ 이하(우리나라의 연강수량은 약 1100~1700㎜)이고 사막이 대부분이어서 모래먼지가 많이 발생한다. 발원지에서 배출되는 먼지 중 보통 30%가 발원지에 다시 가라앉고, 20%는 주변지역으로 수송되며, 50%는 장거리까지 수송돼 한국, 일본, 태평양 등에 침전된다.건축공사 현장에서는 쌓아둔 모래가 바람에 날리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물을 뿌리거나 그물망으로 덮어놓는다. 마찬가지로 여름이나 가을에는 비와 식물의 뿌리가 모래를 붙잡고 있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봄에는 겨울 내내 얼어있던 건조한 토양이 녹으면서 잘게 부서져 크기 20㎛ 이하의 작은 모래먼지가 발생한다. 이렇게 발생한 모래먼지 위에 저기압이 지나가면 강한 상승기류에 의해 3천∼5천 m의 높은 상공으로 올라간 뒤 초속 30m 정도의 편서풍과 제트류를 타고 이동을 한다. 이후 풍속이 느려지는 한국과 일본에서 하강하고 간혹 미국(1998년 4월)까지도 이동하기도 한다. 발원지에서 한반도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일 정도이다.사막지대의 황사에는 큰 모래가 많고, 황토지대의 황사는 대부분 그 크기가 작다. 20㎛보다 큰 입자는 구르거나 조금 상승하다가 부근에 떨어지고, 그보다 작은 입자는 부유하여 상층까지 잘 올라간다. 한반도와 일본에서 관측되는 황사의 크기는 1∼10㎛정도이다. 1㎛ 입자는 수 년 동안, 10㎛ 입자는 수 시간∼수 일 정도 공중에 부유할 수 있다. 사막지대의 황사는 석영(규소)이, 황토지대의 황사는 장석(알루미늄)이 주성분이다. 철 성분도 많이 함유되어 있다.(4)시정장애 및 가시도 감소: 시정장애란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서 가시거리가 줄어들어서 먼 곳을 볼 수 없거나 먼 곳을 보고자 할 때 지장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17C 영국에서 측정을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연구되었다.시정장애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도 하다
1. 서론(1) 주제선정의 배경과 목적(2) 레포트의 방향2. 본론(1) 해안사구란?(1)사구의 정의(2)해안사구의 개념2. 우리나라 해안사구의 현황3. 해안사구의 형성과정4. 해안사구의 기능5. 우리나라의 대표적 해안사구와 훼손현황(1)신두리 해안사구(2)동해안의 해안사구6. 해안사구의 보존(1)복원대책(2)외국의 사례3. 결론(1) 정리 및 나의 생각4. 참고문헌가. 서론1. 주제선정의 배경과 목적어린 시절 부모님과 모래성을 쌓으며 즐거워했던, 혹은 연인과 분위기에 취해 걸었던 그 모래사장이 말 그대로 추억으로 매장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현실에 쳐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그만큼 여가시간도 늘어나게 되어 해안사구는 피서지로 각광을 받았고 그에 따라 해안가는 무분별한 난개발의 상처를 입게 된다.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속에서 해안에 간척을 하고 옹벽을 치고 그 위에 위락시설 등을 지어 관광객들에게 즐거움과 편안함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즐거워하고 개발업자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그 순간에도 해안사구는 끊임없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해변의 모래는 옹벽, 방파제등의 설치로 인해 해수 흐름의 변화로 해안의 모래들이 바다로 유출되고 모래언덕도 남아있는 곳이 없다.이에 단순히 위락에 지나지 않던 사구의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해안사구를 좀 더 면밀하게 알아보고 대책 및 보존책에 접근해보고자 한다.2. 레포트의 방향우선 해안사구가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리고 무슨 기능을 하는지에 대하여 알아보고 또한 우리나라 사구가 어디에 얼마나 존재하는지 대표적인 사구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사해 보고자 한다.말미에 가서는 해안사구의 훼손실태와 그에 대한 보존방향을 해외사례와 덧붙여 제시해 보고 나의 생각을 끝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사진1. 신두리의 해안사구 ]나. 본론1. 해안사구란?(1)사구의 정의사구란 바람에 의해 운반되는 모래가 따로 모여 형성하는 각종형태의 지형으로 사막을 대표하는 지형의 하나이다. 사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빈의 뒤에는 해안사구가 길게 발달한다. 해안사구는 사빈에서 불려오는 모래로 이루어지며, 사초를 비롯한 각종 식생이 모래의 집적을 돕는다.(2)해안사구의 개념해안사구는 흔히 우리가 바닷가에 가서 모래 언덕이라고 부르는 것과 그 뒤에 산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계속적으로 작용하는 해류 및 연안류의 반복에 의해 모래가 사빈으로 운반되고, 탁월풍의 작용에 의해 육지 쪽으로 불려가 언덕처럼 쌓이는 것이다. 보통 해안사구라 하면 사빈에 인접하여 전사구(1차사구)가 형성되고 그 뒤에 전사구보다 규모가 크고 식생도 안정된 이차사구가 발달하며, 그 뒤를 보호해 주는 배후산지로 형성되어 있다. 배후산지 후면에는 주거지가 형성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해안사구의 기능에 의해 만들어진 지하수가 있기 때문이다.서해안의 경우 조석간만의 차가 커 해안사구가 형성되기 좋은 조건으로 대부분의 우리나라 해안사구는 서해안과 남해안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해안사구는 조간대, 갯벌, 사빈, 배후산지 등과 함께 해안지형을 형성하며, 해양과 육상의 점이지대로 조류 및 파랑 등에 의하여 해양 퇴적물이 갯벌 및 사빈 지역으로 반입되고 햇볕에 의한 건조 후 바람에 의해 퇴적물이 사구지역으로 이동하여 사구가 형성된다.1차적으로 형성된 사구는 사구식물의 침입에 의해 모래의 집적율이 높아지며 시간적 식생천이과정 및 모래이동을 통하여 사구 안정화 및 성장이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사구는 해안선과 평행하게 성장하며 모래의 공급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고 가정할 때 사구열을 형성하기도 한다2. 우리나라 해양사구의 현황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 우리나라는 해안사구가 전 연안에 발달하여 있고 특히 환경적 특성에 의하여 서해안에 집중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서?남해안의 섬 지역을 제외하고도 133개의 해안사구가 있습니다. 지역별로 보면 충청남도가 42곳(31%), 강원도 32곳(24%), 전라남도 21곳(16%), 제주도 12곳(9%)등에 산재해 있다.전국의 해안사구는 대부분연안으로 밀려 쌓이게 되면 햇볕에 의해 건조된 물질들이 바람에 의하여 육지 쪽으로 밀려나게 된다. 연안 근처에 육지 쪽에서 쌓여서 언덕의 형상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전사구이고 전사구의 퇴적물이 다시 바람에 의하여 육지 쪽으로 불려가 언덕모양으로 쌓이게 되면 이것이 이차사구가 된다. 해안사구에는 통보리사초, 좀 보리사초, 갯그령 등의 식물이 싹터 점차 식생이 안정되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해안사구가 이동하지 않고 안정되게 된다.4.해안사구의 기능해안사구의 역할 및 기능으로는 첫째, 해안사구는 모래의 창고이며, 자연적인 방파제이다. 해안사구는 해안시스템의 하나의 유기적인 요소로, 사구하나만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단 말이다. 사구는 사빈으로부터 공급되는 모래를 저장하고 있다가 태풍 등의 자연재해에 의해 사빈의 모래가 유실되면 저장하고 있던 모래를 다시 사빈으로 공급한다. 사구의 포락을 막기 위해 인공 방파제를 설치하는 것은 모래의 이동을 차단하는 것이다. 사구의 포락을 막기 위해 모래의 이동을 차단하는 방법보단 사구에 유실된 모래를 공급하는 것이 보다 올바른 방법이라 할 수 있다.둘째 해안사구는 지하수의 저장고이다. 사구에는 공극이 아주 많이 있어 빗물이 스며들기 좋으며 이렇게 스며든 빗물은 사구 아래에 저장되는데 바닷물이 침입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밀도 차 때문이다. 바닷물은 밀도가 높으며, 해수에는 민물보다 잡다한 이온(Cl-, Na+등)들이 많이 녹아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민물이 바닷물위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사구에 저장된 지하수는 순수한 민물이다. 사구의 규모가 클수록 지하수의 양이 증가한다. 이처럼 사구에는 많은 지하수가 포함되어 있어 사구의 배후에 습지가 형성되게 마련이다. 예로부터 이런 습지를 농지 등으로 사용해 왔기에, 사구위에 건물을 세우는 일은 막아야만 한다. 사구 위에 건물이 들어서면 사구가 건물의 하중을 받게 되어 사구내부에 저장된 지하수가 바닷물과 섞이거나 밀려나게 되어 지하수는 소금물을 많이 포함하게 된는데, 사구의 서식환경은 아주 열악하다. 강한 일조량, 강한 바람, 염분, 물 부족 등 환경은 매우 열악하여 일반 육상식물들은 감히 살아갈 수 가 없는 서식환경이다. 그래서 여기 살고 있는 식물들(갯잔디, 갯방풍, 갯메꽃, 모래지치, 통보리사초 등)은 여느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것이 많다.5. 우리나라 대표적 해안사구(1)신두리 해안사구-특성: 2001년 11월 30일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었다. 이 사구는 태안 반도 북서부의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규모는 해변을 따라 길이 약 3.4㎞, 너비 500m∼1.3㎞로, 사구의 원형이 잘 보존된 북쪽 지역 일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신두리 해안의 만입부에 있는 사빈의 배후를 따라 분포하는데, 겨울철에는 강한 북서풍의 영향을 받는다. 신두리 해안은 모래로 구성되어 있어 간조 때가 되면 넓은 모래 개펄과 해빈이 노출된다. 모래가 바람에 의해 개펄과 해변에서 육지로 이동되어 사구가 형성되기에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제일 큰 대광리 사구의 경우 각종 개발로 인해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나마 개발이 더뎌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황조롱이, 금개구리, 표범장지뱀 초종용 등의 각종 희귀 동식물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훼손현황: 신두리 해안사구가 훼손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입퇴적물의 감소이다. 해안사구를 형성하는 주재료인 퇴적물이 감소하고 있다. 주변 만입부에서 간척사업이 이루어지면서 바다와 육지 간의 퇴적물의 이동이 막혀 해안사구의 퇴적물이 침식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해안사구가 내륙 쪽으로 후퇴하고 있고 이는 해안사구 일대의 식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둘째, 식물 천이과정의 교란되고 있는 실정이다. 개발이 활발해 지면서 사구지형이 파괴되고 식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식생이 파괴되면서 사구의 이동의 안정성을 위협하면서 사구형성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또한 외부토양이 개발에 의하여 유입되면서 외래식물이 침입하여 고유의 사구 식생체계를 위협하고 있다지해 있고 현재 행위제한 구역에서의 골프장 계획을 비롯하여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이다.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갈등 속에서 정부와 주민과 현재 개발업자의 입장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2)동해안의 해안사구-특성: 서해안과 마찬가지로 동해안에도 크고 작은 사구가 형성되어 있는 데 하천 하구부에 하천이 운반한 모래가 쌓인 사빈(Beach)이 형성되고 이 모래들이 전면에 사구를 형성하고 있다.동해안의 대표적 해안사구는 경포해수욕장과 포항 형산강, 송도해수욕장 등이고, 청간정에서는 사구열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대분의 동해안의 해안사구가 훼손되었지만, 그 중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의 해안사구 및 사빈은 심하게 훼손되어 대책이 절실하게 필요한 실정이다.-훼손현황: 동해안의 사빈과 사구의 훼손 실태를 보면, 첫째, 군사보호시설이 사구 훼손의 일부를 담당했으나 그래도 이를 보호한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또는 소규모 마을 해수욕장을 개발하여 사구를 무너뜨리고 있다.둘째, 규사광석 채취 및 해안관광도로 건설과 함께 횟집과 상가,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더욱 훼손을 가속화해 사구의 흐름을 방해하여 지형의 대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셋째, 해안사구의 훼손은 물론 옹벽 등 구조물의 건축자재와 이질적 흙 등에 의해 내륙의 육상식물이나 곤충 등이 침입해 해당화, 해안방풍 등과 생물, 종달새 등 조류의 산란장소 등이 소멸되었다.넷째, 해안사구의 훼손으로 인해 해류 및 연안류의 흐름을 변화시켜 사빈의 모래를 끌고가 수심을 깊게 하기도 하거나 또는 얕게 해 수중 암석을 노출시켜 해안 황폐화를 하는 등 심각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6. 해안사구의 보존(1)복원대책1)인위적 구조물(sand trap) 설치모래의 이동이 활발한 지역을 대상으로 바람에 의한 모래이동이 주로 일어나 는 지표면에 대나무나 그물 등으로 인위적 구조물(sand trap)을 설치하여 모래를 집적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구조물의 설치에 앞서 대상지역에 대한 지형요소, 기후(풍향, 풍속) 등이 고려되어야 하며, 구조물의 요하다.
아프리카의 경제통합과 그에 대한 고찰1.서론(1) 주제 선정이유 및 개관2월 초 쯤, 인터넷 뉴스를 통해 후진타오주석의 잠비아 방문 뉴스를 들으면서 중국이 그 동안 쏟아 부은 대 아프리카의 외교력과 엄청난 규모의 공적 원조제공이 드디어 빛을 발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 보면서 우리가 아프리카 경제에 너무 안일해 하고 있는 것은 아 닌지 하고 생각해 봤었다.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퇴보와 절망의 땅이었던 위기의 대륙 아프리카가 새로운 변 화의 흐름을 타면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기회의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의 근거에는 민주화의 진전과 경제개발과 시장개방경제로의 전환, 전 세계인들의 시각 변 화가 자리 잡고 있다.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 세계적인 지역경제 블록화 추세의 영향에 말미암아 아프리카에서 도 지역 경제협력체의 활성화 및 부활이 촉진되고 있다. EU나 NAFTA에 비해 우리에게 생소한 아프리카의 경제통합체에 대해 알아보면서 아프리카의 경제와 경제통합체에 접근 해보고 그를 평가하며 문제점 또한 분석해고자 한다.우선 아프리카 각 지역별 경제통합 내지 협력 움직임은 크게 식민지시대와 탈식민지시대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세 시기로 나누어 고찰되어질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를 굳이 분류한 이유는 아프리카단결기구(OAU)가 그해 4월 라고스 행동계획을 채택하였 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엔 아프리카경제위원회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이 시점을 전후로 주요 경제통합움직임이 일어났다. 가령 1975년 서부 아프리카제국경제공동체(ECOWAS), 1980년 남부아프리카개발조정회의(SADCC), 1981년의 동남부 아프리카특혜무역지대 (PTA), 1981년 경제-통화동맹을 목적으로 형성된 감비아와 세네갈 국가연합(Sene), 끝 으로 1983년에 채택된 조약을 바탕으로 중앙 아프리카국가경제공동체(ECCAS)등이다.한편 아프리카의 지역경제통합움직임은 시기를 기준으로 구분이 가능하지만 그 외에도 과거 식민지세력에 따라 불어권(서부 아프리카지역), 영어권(동부 정부수반으로 구성되는 최고의결기관으로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이사회 와 그 밑으로 외무장관회의, 특별장관위원회, 그리고 이사회 밑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총장이 있다. 관련 사항을 보다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해 5개 분과위원회가 1988년 6월 13~14일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재정 관세분야 위 원회, 경제정책분야위원회, 교육문화 및 정보분야 위원회, 사회 및 공공문제 분야위원회, 그리고 기관 및 구조문제분야 위원회 등이 있다6)최근 활동상황: 1993년 초 북아프리카동맹 회원국은 4개의 농업협정을 체결하였 으며, 물 자원 개발과 환경에 관련된 조약의 내용을 현재 검토 중에 있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볼 때 북아프리카지역 국가들은 기존의 양자 간 관계에서 벗어나 다자간 조율 및 지역통합을 통한 장래 상호관계개 선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여 진다.(3)서부아프리카 지역1)개관: 이 지역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경제통합움직임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 을 뿐 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다양한 지역적 경제기구들이 병존하고 있는 상태 이다. 전체적으로 봐서 불어권 아프리카 국가 간 경제협력이 일찍부터 발생 하 였으며, 그 후 영어권과의 제휴가 이루어졌다. 이하 몇몇 주요한 지역적 경제 통합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지역적 경제기구들을 살펴본다.2)서부아프리카제국 경제공동체(ECOWAS: 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①설립조약: 1975년 5월 25일 채택된 라고스 조약이며 14장 65조로 구성되어 있 다.②회원국: 현재 15개국으로 가나, 기네비소, 기니, 까뽀베르데, 나이지리아, 니제르, 라이베리아, 말리, 모리타니아, 베넹, 부르키나파소, 세네갈, 시 에라리온, 코트디부아르, 토고③설립목적: 설립헌장 제2조 1항에서 “국민생활수준의 향상, 회원국 간의 유대강화, 아프리카 대륙의 발전을 위해 공업, 운송, 통신, 에너지, 자원, 교역, 통화 및 금융문제, 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발전과 상호간의 협력” 을 목적으로 규정하고ary Agency로 전환되면서 이 지역의 경제 및 통화통합 및 지불 등의 부문에서 더욱 많은 진전을 이루게 될 것으로 기 대된다. 이 외에도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회원국내 상수도의 확 충, 해상수송의 확대 및 통신망의 확대 등의 추진을 들 수 있 다.이처럼 ECOWAS는 관련 지역의 산업화를 최대목표로 설정하 는 경제적 기구로서 아프리카 지역적 경제통합움직임중에서도 가장 운영이 잘 되고 있을 뿐만아니라 그 외도 정치적 연합과 1981년에 채택된 상호방위원조의정서를 바탕으로 한 군사방위 기구의 색채도 역시 일부 띄고 있다. 그러면 ECOWAS는 마치 유럽공동체처럼 초국가적 형태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ECOWAS가 안고 있는 문제로서는 역내 잘사는 나라 와 못사는 나라간 또는 공업화-비공업화국간에 이해의 충돌, 영 어권 대 불어권 국가 간의 마찰, 역내교역촉진 및 확대에 필수 불가결한 하부구조의 마비 및 회원국 간 수출 구조상의 유사성 등으로 인하여 추진실적의 부진 등을 꼽을 수 있다. 아울러 서 부 아프리카는 1991년 통계로 아프리카 전체 외채의 45%인 783억달러를 지고 있어 경제적 부담이 상당하다. 그리고 설립 헌장 제27에 명시되어 있는 역내주민의 자유로운 이동과 거주 권을 구체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1979년5월에 채택된 의정서에 도 불구하고 1983년1월 나이지리아정부는 자국 영토에 있던 주 변 아프리카인들을 대규모 추방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던 사실은 역내에 불안정한 요소가 항상 존재하고 있음을 반증한다.3)서부아프리카 경제공동체(CEAO)①설립조약:1973년 4월 아비잔에서 채택된 조약②회원국: 7개국으로 니제르, 말리, 모리타니아, 베넹, 부르키나파소, 세네갈, 코트디 부아르③설립목적과 추진 현황: 서부 아프리카의 불어권 국가를 중심으로 역내경제통합을 추구하는 경제협력기구로서 교역부분에서는 비공산품 역내 관세철폐, 비공산품교역 특혜대우로 교역증대를 유도하고 있다. 그리결기금의 조성 및 역내 주민의 자유로운 이동보장을 추구하고 있다.④활동: UDEAC는 UDE가 추구해왔던 기존의 정책에 덧붙여서 수입세 및 관세품 목의 통일, UDEAC 구역 내에 공동관세사무소의 설치, 투자코드의 통일, 내 국세 및 국내발전계획의 조화를 꾀하였다. 회원국 상호간에 특별한 자유무 역정책과 단일관세를 적용해 오고 있으며, 역내 간에는 상호주의에 따라서 수입품에 대한 관세, 수입과징금을 통일시키고 있다. 아울러 중앙아프리카 제국은행(BEAC)이 1960년대 초반부터 설립되어 역내 공동발전이나 경제발 전이 뒤진 회원국에 대한 재정적 원조를 하고 있다. 그러나 UDEAC는 1968년에 중앙아프리카 공화국과 차드가 탈퇴의사를 표시함에 따라 큰 혼 란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경제협력으로 얻어질 수 있는 이 익배분에 대한 강력한 불만에 기인한다. 이 두 국가는 모두 해안선이 없는 내륙국으로서 대규모 공장이 해안국가에 세워지는데 대해 불만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단일세제로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⑤문제점: 운송, 통신등 사회간접자본의 마비와 각 회원국의 관세율 조정의 부진으 로 말미암아 교역증진이 지연되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역 내 경제발전계획이 콩고, 가봉, 카메룬에만 집중되어 있어 내륙국인 중앙 아프리카와 차드의 반발을 샀기 때문에 결국 여기서도 경제통합에 대한 관심과 경제협력으로 얻어지는 이익과 혜택의 균형적 배분이 관건으로 등 장한다.2)중앙아프리카 경제공동체(CEEAC:Economic Community of Central African States)이 기구는 1983년 조약으로 창설되어 1993년1월 현재 10개국으로 구성되어 있 다. 구체적으로 부룬디, 카메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 가봉, 적도기니, 르완다, 상토메프린시페, 차드, 콩고민주공화국 등이 참여하여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경제통 합을 목적으로 설립되였다.(5)동부아프리카지역1)동부아프리카공동체(East African community)1967년 을 통해 유럽공동체와 같은 공동시장의 실현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역내 회원국 간의 양자협력관계개선, 수송망 확보, 인적자원개발 등을 구체적 방법 으로 도입하고 있다. PTA는 회원국 간의 경제력 상이, 교역품목의 빈 곤 및 회원국 간의 이해대립 등으로 인하여 특혜관세제도의 실시, PTA 여행자수표의 사용 등 많은 분야에서 난항을 계속하여 당초 숙원인 역 내공동시장구축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꾸준히 역내의 경제개발을 위하여 철강, 비료의 공동생산계획을 세계은행의 자금지원 하에 추진 중에 있으며, 1989년 회의에서는 공동 금속연구소의 설치 등을 결의한 점과 세계적인 지역경제 블록화 추세에 비추어 PTA지역 내 국가 간의 경제협력은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전 망된다. 한편 역내관세율인하에 관해서는 1984년 자국민지분율에 따라 차등과 세율을 적용하기로 결정한 후 PTA는 COMMON LIST에 대해 10%에서 70%까지의 양허관세율 및 자국민지분율에 따라 0%에서 100%까지의 관세특혜비율을 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남아프리카공화국 및 선진국에 대한 경제의존의 탈피를 위해 공동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현지인 출자기업을 우대하고 외국인기업 또는 외국상품에 대해서는 차 별대우정책을 펴고 있다. 현재 PTA는 남부아프리카 개발공동체와의 통 합문제가 논의되고 잇다.(6)남아프리카 지역1)개관: 20세기 초부터 식민경영세력의 주도로 경제협력의 초기적형태가 형성되었다. 19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실상의 관세동맹과 통화동맹이 존재했었고 이 후 1950년대 이후 로데지아가 역시 위 국가들과 유사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항하는 경제협력체의 형태인 SADCC가 나타났으 나 정치적 조류의 변화로 이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포함하는 포괄적 움직임 모색으로 나아가고 있다.2)남부 아프리카 개발협력회의 (SADCC)→남부 아프리카 개발공동체 (SADC)남부아프리카 개발조정협의회(Southern African D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을 읽고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시각에 얽매여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주변의 강대국에 억눌려 살아왔다. 그런 편향적인 시각으로 훈련된 역사에만 갇혀, 왜곡되거나 변질된 모습을 진실이라 여기는 과오를 범해 온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중세에서부터 불거진 ‘유럽중심주의’의 예를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서구인들은 맹목적으로 추진하던 진보와 발전의 환상이 깨진 오늘날, 일그러진 왜곡과 망상의 거울의 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 주장하며 유럽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외부의 시각에 주목하지 않고 스스로 우월주의에 빠져버린다면 어떠한 정신적, 물질적 가치의 획득도 요원한 것임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편향적인 시각에 빠지지 않고 좀 더 넓은 시야와 세계관을 가지기 위해서 우선 선행 되어야 할 것이 바로 나와 한국 그리고 한국의 문화를 알아가는 정체성의 확립이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정체성이 그려짐으로써 나와 우리나라의 존재가치와 발전가능성에 대한 대답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나 특히 한국의 정체성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 것도 내가 사는 현시대가 아닌 100여 년 전의 한국을 말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나와 타인의 눈에 비친 나와의 비교해 보면 그 속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나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좀 더 쉬울 것이다.100년 전 서세동점의 거센 흐름을 타고 우리 곁에 다가온 서양인들은 의도야 어떻든 간에 그들의 눈으로 우리를 보고, 그들의 사고로 우리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들의 목격담은 우리의 좋은 것을 북돋아주고 모자람을 타일러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오류나 왜곡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허물이나 잘못된 가치관을 성찰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기에 자기성찰의 거울이 된다. 100년 전 비숍은 조선의 모습을 외국인의 눈을 통해 철저히 실증적이고 분석적으로 파악하여 기록하였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덧붙임으로써 그 진실성을 더 했다. 우주막들을 전전하며 신중하고 사려깊은 목격자의 눈으로서 자신이 접한 모든 것을 생생한 묘사로 기록했다. 호기심만은 현지 주민들에게 온갖 봉변을 겪었고, 삭풍한설 몰아치는 평안도 산간에서 굶어죽을 뻔하기도 했으며, 청일전쟁이 발발한 직후에는 거지와 다름없는 처지로 만주를 헤매기도 했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은 이 같은 체험과 관찰로 재현한 100년 전 한국의 모든 것이다.한국의 첫인상은 부산에 닻을 내려며 만나게 되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그곳은 중요한 영사관들, 은행들, 많은 일본식 상점들과 다양한 영국식, 일본식 주택이 있는 넓은 거리를 갖추고 언덕과 바다 사이에 빽빽이 들어찬 꽤 아름다운 마을이다. 거기엔 견고한 옹벽과 제방이 있으며, 자치 당국의 비용으로 배수시설과 점등시설, 도로 건설 등이 수행되어 있다. 전쟁 이래 개별 가구당 100푼 씩의 할당으로 징수된 돈으로 상수도가 가설되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도시 위쪽에 급속히 채워지고 있는 일본군의 군인묘지였다.외국 상품 수요가 창출된 지 13년도 채 못 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한국인들이 외제품에 의존하고 있는 정도는 놀랄만한 것이다.부산의 외국 무역은 너무나 급속히 성장하였다. 등유, 성냥 등이 놀라울 정도로 인기를 얻었으며 확실하게 정착되었다. 가죽, 콩, 건어, 광삼, 쌀, 고래살 등이 주요한 수출품이다. 1883년 일반 외국 무역에 공식적으로 개방되고 난 이후에야 부산은 그 성장이 매우 현저해졌다. 개방되던 해에 그곳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1500명이었는데 1897년에는 5564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한다.어느 면으로 보나 부산의 거주지는 일본풍이다. 5508명의 일본 인구 이외에도 8천명에 달하는 일본인 어부들의 유동인구가 존재한다. 일본 총영사관은 세련된 유럽식 가옥에 기거하고 있다. 은행 기관들은 도쿄의 일본제일은행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우편 전신부 또한 일본인들에 의해 갖추어졌다. 일본인들은 거주지를 청결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업들을 소개하기도 했는데도에도 필적할만했다.비숍은 서울을 밤낮으로 조사하면서 그 왕궁과 빈민가를, 빛바래가는 왕조의 광휘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이 궁핍한 삶을 보게 된다. 또 목적 없이 빈둥거리는 군중들과 그들의 중세적인 행렬을 본다. 작가는 서울의 군중들에서 오랑캐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완강한 행렬,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중세를 해제시키려는 세력들의 면전에 좁은 길을 가득 메우고 그들의 예법과 관습과 중세적인 군주국의 수도로서 정체성을 지키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을 하고 있는 행렬을 본다. 그 진가를 깨달으면서 서울이라는 도시가 세계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수도들 가운데 하나이며 이만큼 좋은 입지조건을 가진 수도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그 당시 조선의 가옥에 대한 비숍의 시선은 가난과 불결로 보여진다. 상류층의 집도 별 볼일 없다하니 뭐라 더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상점들 역시 서울의 인상을 초라하게 느끼게 하는데 단단히 한 몫 한다. 그냥 상점이고 구경할 만한 아무것도 없고 상점들은 글자 그대로 별 볼 일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시선에는 먼저 서구화된 일본을 먼저 다녀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서구인이었기 때문이라는 데에 기인하고 싶다. 물론 뒤에 나오지만 유교문화에 대한 완전한 이해도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비숍여사는 한국에 머물면서 거둥이라는 것도 경험하게 된다. 거둥은 한국 국왕이 5세기 동안 한국의 왕위를 차지해 온 왕가의 사당에 제사를 드리러 가는 장엄한 행렬이다. 거둥의 행로에는 수만 명의 민중들이 경건한 정적 속에서 자발적으로 운집한다. 그리고 그들의 태도는 이 훌륭한 연중행사가 최대한 빛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 같았다.앞서 설명했던 단조로운 모습의 서울을 비숍은 그에 대비되어 거둥은 태양처럼 빛난다고 극찬했다. 슬프게도 이 초라하지만 매력적인 수도는 문명화로 향해 가는 최근의 조치들 속에서 이런 유일한 장관을 폐지되고 만다.비숍은 거둥의 광경을 시차로 아주 자세하게 적고 있다. 자신이 본 순계에 머물러 있었다. 비숍여사는 이 같은 오만한 이국정취를 혐오했다. 여사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맨발의 성찰을 통해 한국은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한국은 저대로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는 비범한 인식을 제시한다.소중한 진전을 얻은 금강산 여행 뒤 비숍은 원산으로 가서 그곳에서 캐나다인 게일의 집에 머문 뒤 배를 타고 6월 21이 제물포로 돌아왔다. 원산에서 이미 동학혁명에 대한 소식을 들은 여사는 이때 제물포에 상륙해있는 일본군 대부대를 목격하고 놀란다. 13장 청일전쟁이 임박한 무렵의 제물포가 그것이다. ‘한국 어딘가에 애국심의 맥박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농민들의 가슴 속 뿐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코 앞에 닥친 전쟁을 깨달은 여사는 영국 공사관의 지시에 따라 한국을 탈출, 중국 산둥반도에 위치한 체푸에 상륙한다. 이어 잉쿠, 펭티엔, 베이징, 옌타이를 답사하고 일본의 나가사키로 돌아온다. 이 중국 령 만주 여행에서 여사는 땡전 한푼 없는 처지가 되어 전전긍긍하고, 전염병에 걸려 고열로 신음하며, 두 팔이 부러지고, 마적의 습격을 받는 등 온갖 고생을 다 겪는다.나가사키로 돌아온 비숍여사는 다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 이 여행에서 여사는 한국인 2만 여 명이 러시아 정부의 지배아래 정착하고 있는 포시만 인근의 프리모르스크, 노보키예프를 방문하고 두만강까지 여행, 돌아오는 길에 중국 령 훈춘을 방문한다. 이어 여사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따라 니콜스코예, 스파스코예를 거쳐 우수리 강까지 동시베리아를 답사한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배를 타고 원산, 일본, 나가사키, 부산을 거쳐 1895년 1월 5일 제물포에 도착한 여사는 서울에 들어와 한국 주재 영국 총영사 힐리어의 집에 투숙한다. 이숍 여사는 힐리어의 집에 5주간 머물면서 언더우드 여사의 소개로 네 차례에 걸쳐 고종과 명성황후를 알현한다.이 같은 알현이 있은 지 1개월이 지난 후, 비숍여사는 서울을 떠나 중국의 중부와 남부지방을 여행하고 다시 일본을 답사했다. 약연민을 피력하던 비숍여사는 평양에 와서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평양은 매우 부유하고 부도덕한 도시였다. 평양은 오래전부터 기생과 고급 창녀, 요설가로 우글거렸고 부와 파렴치한 비행으로 전국에 악명 높았다. 여사가 묵었던 집은 집주인의 중개사업의 대상이 되는 상인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오락은 일상생활 되어있었다.비숍여사는 영국 왕실과 연결된 지체 높은 성직자 집안의 딸로 한국 방문 당시 영국 영사가 직접 제물포까지 마중 나오고 고종이 특별히 양식을 만들어 식사를 대접할 정도의 상류층 인사였다. 그런 저자에게 소돔의 안개에 비견될 만한 전설 같은 눈부신 도시로 그려지는 1890년대 중반의 평양은 구한말 찌들고 무기력하고 가난한 이미지만을 가진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이는 물론 문학적인 수식이지만 여사를 놀라게 한 평양의 부유함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있다. ‘몇몇 공적인 인사는 집을 항상 개방해 두고 손님들에게 좋은 오락을 제공하기 위해 하루 60달러에 상당하는 돈을 그들의 하인들에게 지불한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당시 60달려는 1920냥이다. 이 무렵 농가의 가장 큰 재산이자 농작물 외 농가 수입의 80%를 차지하던 황소 한 마리 가격이 20원, 즉 100냥 내외였음을 대조하면 그 액수의 다과를 짐작할 수 있겠다.이렇게 북부 내륙지방으로의 여행을 끝낸 여사는 그 해 12월 25일 한국을 떠나 중국의 양자강 상류 등 서부지역을 6개월간 여행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3개월간 체류한 뒤 다시 서울을 찾아 1897년 1월 23일까지 서울에 머물렀다.비숍 여사는 나룻배와 조랑말 혹은 걸어서 한반도 곳곳을 여 행하면서 위로는 고종부터 아래로는 최하층 빈민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책 속에 담긴 한국의 식생활 요리 양념 빨래 결혼 장례식 등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조랑말의 습성과 먹이, 상품들의 품질과 가격, 숙박요금, 기생과 무당의 춤, 당시의 유행가, 한국 귀신들의 내력 등에 관한 꼼꼼한 기록은 최초의 한국에 대한 인문지리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