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2008년 3월에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대학 방송연예과 3학년으로 편입하게 된 나는, 많은 관심과 인기를 얻는 교양 과목인 ‘댄스스포츠’ 수업을 너무나 듣고 싶었다. ‘댄스스포츠’는 무용과 음악 그리고 더 나아가 연극적 요소가 함께 어우러진 종합예술로 정서함양에 도움이 되며 건강한 신체를 가꿀 수 있기 때문에 방송연예를 전공하는 나에게는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과목이었다. 2학기 수강신청기간동안 ‘댄스스포츠’의 인기는 정말 하늘을 찔렀고 모니터 앞에서 수강을 정정하는 인원이 나오길 간절하게 바란 끝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수강신청에 성공하였다. ‘댄스스포츠’ 수업을 들으면서 매주 쉬는 시간 동안 교수님께서 비디오로 댄스스포츠대회경기를 보여주셨다. TV를 통해 댄스스포츠를 시청하면서 경기장의 뜨거운 함성과 참가자들의 노력과 열정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중간고사기간이 다가올 때 쯤 교수님께서는 보고서 과제물를 주셨고, 과제는 댄스스포츠대회관람한 후 선수들 생생한 인터뷰을 하는 것이었다. 경기관람에 앞서 사전에 댄스스포츠의 지식에 대해 공부를 하고 관람을 한다면 경기의 흐름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선수와의 인터뷰에서도 유추해낼 수 있는 질문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댄스스포츠의 개념과 특성 그리고 장르에 대해 알아보았다. 댄스스포츠는 댄스와 특성과 스포츠의 특성을 동시에 공유하고 있는 종합 예술적인 스포츠이다. 기본적으로 스포츠의 면모를 포함하고 있으며, ‘춤’과 ‘음악’이 함께 잘 융화된 것이 바로 댄스스포츠이다. 댄스스포츠는 대근육을 사용하는 활발한 신체활동이며, 다른 커플보다 잘 추기 위해서 서로 협동하는 가운데 경쟁해야 하는 스포츠의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가치를 모두 갖추고 있는 훌륭한 스포츠이다. 또한 댄스스포츠는 예술성이 풍부한 실내스포츠인 동시에 생활체육의 한 분야로 정의되며, 본질은 전통에 의한 예의와 질서로 이루어진 도덕적 가치관을 지닌 인격표현의 선진형 윤리문화이다. 오늘날과 같이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생활하는 현학교 총장배 전국댄스스포츠 선수권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동인관으로 향하였다. 오후 2시쯤 동덕여자대학교교문을 들어서자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와 경쾌한 음악 소리가 내 귀를 흥겹게 하였다. 빠른 걸음을 재촉하며 동인관으로 들어서자 1층과 2층을 꽉 메운 사람들과 가지각색 눈에 띄는 색상과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제작된 화려한 댄스스포츠 의상을 입은 남녀선수들이 눈에 확 띄었다. 많은 사람들로 메워진 체육관을 보며 댄스스포츠의 높은 인기를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선수들은 경기관람을 하면서도 다음차례의 경기를 위해 연습을 하기도 하고 휴식시간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는 2시부터 15분정도 진행된 고등부 라틴아메리카 3종목 (차차차, 룸바, 자이브) 준결승전이었다. 특히 3종목 준결승은 결승으로 진출하는 결정권이 되기 때문인지 경기장의 열기는 대단히 치열하였다. 남녀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팀(2-heart)들은 경기장에 발을 들여놓고 다른 파트너들과 춤을 추면서 부딪쳐서 상해를 입지 않도록 편안하고 안전한 자리를 확보한 후 심사위원들과 관람객들을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음악에 자신들의 몸을 맡기었다. 정말 놀라웠던 점은 선수들이 그 힘겨운 스텝과 손, 몸동작에도 불구하고 바른 자세로 밝고 큰 함박웃음을 잃지 않고 그 순간을 파트너십을 발휘하여 함께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선수들의 등골은 똑바로 펴있었고 신체를 허리로써 버티는 자세로 서서 턱을 당긴 후 여자의 왼손은 남자의 어깨에 살짝 올려놓고 균형 잡힌 신체 즉 발과 상체의 밸런스가 올바르게 유지된 자세를 취하였다. 그리고 시선은 정면을 향하며 남자파트너에 몸을 맡긴 여자선수들이 Spot Turn을 균형 있게 돌며 돈 후에도 시선을 잃지 않았고 열정적인 표정을 지었다. 화려한 의상과 더불어 빛나는 몸동작을 보고 있으면서 관람하는 동안 흥분하였고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3종목중 제일 처음에 선보인 차차차를 라틴아메리칸 댄스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춤이며 여대특성상 남자파트너가 아닌 자의 진행에 따라 재즈음악이 흘러나오면서 격렬한 춤의 대명사 자이브가 소개되었다. 자이브는 중간고사가 끝난 후 배우게 되는 과정이므로 나는 유심 있게 선수들을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선수들은 좀 전의 룸바의 애절한 춤사위는 온데간데없이 에너지 넘치는 듯 한 동작을 취하였다. 자이브의 음악에는 악센트가 있었고 흐름은 매우 빠르고 정열적이었으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선수들은 전혀 힘겨워 보이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힘이 솟아보였다. 이어진 삼바종목은 마치 브라질을 연상케 하는 강렬함과 독특한 동작, 그리고 생동감이 넘치는 춤이었다. 그리고 유연하고 경쾌한 움직임을 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선수들은 무릎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였다. 5종목의 마지막인 파소도블은 남성은 투우사를 나타내었고 여성은 투우와 망토를 나타내며 투우에서의 성난 황소와 투우사의 결투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독특한 행진곡풍으로 상당히 강렬한 춤이었다. 음악과 함께 투우와 투우사간의 긴강된 순간에 일어나는 긴박하고 절묘한 드라마틱한 선수들의 표정연기는 나에게 희열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주위의 관람객들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으며 라틴아메리카 댄스 5종목으로 인하여 모두 다 같이 한마음이 되어 있었다. 대회장을 정리하는 동안 2가지 경우의 인터뷰를 통해 선수들이 파트너에게 심적으로 어떠한 갈등을 느꼈으며 어떠한 경험을 해보았는지 비교를 해보았다. 우선 2층에 올라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첫 번째 여자선수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시도하였다. 그녀는 댄스슈즈를 벗고 있었으며 흰색과 초록색 그리고 금색으로 잘 어울려진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었고 헤어스타일은 단정한 느낌인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작고 요정 같은 깜찍한 이미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시원한 포도음료수를 건네며 그녀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당신의 이름과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제 이름은 김아름이고요. 올해 17살로 실업계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예요.언제부터 댄스스포츠를 접하게 되었고 참가(선수)경력은 상태를 말하며 즉 서로의 힘의 상태가항상 같아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 텐션이 연습하는 과정에서 상대방과 잘 맞지 않아 다투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면 큰 싸움으로까지 번져 파트너가 해체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두 번째로는 대회를 앞두게 되면 심적으로 혼란스럽고 연습 할 때에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그럴 때일수록 서로 챙겨주고 양보를 해야 하는데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며 갈등을 할 때가 많아요. 연습하는 과정에서 스텝이 엉키거나 춤의 형태가 망가지면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싸움으로 번지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세 번째는 파트너끼리 연습과정에서 싸운 것을 계속해서 마음에 담아두고 서로 말도 주고받지 않으면서 대회에 참가 할 때가 많은데 이 경우에는 파트너 호흡이 맞지 않아서 결국엔 점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댄스스포츠와 같은 파트너댄스는 서로 간에 약간씩 양보하면서 서로를 역할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답니다. 혼자서 잘하면 충분한 다른 댄스들과는 다른 것이죠. 서로 문제점에 관해서 또는 잘 안 되는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문제 원인을 찾아가고 또한 서로 항상 즐거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죠. 잘못된 원인을 항상 파트너에게서만 찾고자 한다면 발전할 수 없답니다.”대부분 연습하는 과정에서 파트너와 가장 많이 다투며 서로의 의견차이로 갈등이 생기게 될 경우 심적으로 영향을 끼쳐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첫 번째 질문을 통해 댄스스포츠는 자신 혼자만이 하는 댄스가 아닌 파트너와 환상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춤인 만큼 서로를 아껴주고 챙겨주어야 하며 의견차이가 넓어질 경우 진지한 대화를 통해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째 질문(문항) 댄스스포츠에 참가하면서 지도하시는 선생님과 어떤 갈등이나 불만 등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갈등이나 불만이 있으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갈등이나 불만 등이 있었는가를 말해주시기를 바랍니다.“지도하시는 선생님에게 불만사항보다는 원이 훨씬 넘는 의상 값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 이예요. 특히 저는 댄스스포츠 특기생으로 대학입시를 보기 때문에 대회참관을 많이 해야 해요. 의상값뿐만아니라 대회를 참가할 때도 20만원에서 30만 원 정도 들어요. 두 번째로 경제적문제로인해 예술고를 지원하지 않고 실업계를 지원했어요. 저는 예술고를 희망하였지만 부모님과의 마찰로 인해 실업계를 지원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학교에는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하는데 저는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 수업을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연습은 보통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8시간가량 연습하며 전지훈련을 하게 되면 연습시간을 더 늘려야 하기 때문에 학교를 안 가게 되는 경우도 있죠. 담임선생님께서는 대학을 가기위해서는 공부도 중요하다며 부모님께 저의 성적에 관련된 상담을 많이 하십니다. 부모님께서는 저에 대해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시기 때문에 꾸중 듣기도 하고 저 또한 댄스스포츠를 포기할 수 없기에 반항도 하게 되죠. 그렇게 되면 부모님과 갈등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연습할 때 영향을 미치게 되죠”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와 같이 전공이 아닌 교양수업으로 댄스스포츠 과목을 듣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혹시 차차차 배우시나요? 저는 차차차종목을 가장 좋아 해요. 댄스스포츠는 성격이 활발해지고 자세가 반듯해지고 균형 잡힌 몸매를 만들어줍니다. 때문에 자신감 있게 수업에 응하시고, 댄스스포츠는 무엇보다 파트너와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의견을 조율해가며 즐거운 수업되시길 바랍니다.”김아름양의 인터뷰가 끝난 후 그녀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포즈를 담아 사진촬영을 하였다. 나는 갑자기 다른 남녀파트너들에게도 궁금증이 생겼다. 2층에서 내려와 1층 강의실에서 시상을 한 뒤 쉬고 있는 남녀커플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 댄스 중등부 3종목에서 1등을 한 커플이었다. 남자의 등번호는 90번이었으며 둘의 사이는 너무나 좋아보였다. 이 둘에게 시상을 축하하면서 시원한 이온음료수를 건네고 편안한 자리를 찾아서 앉은 후 인터뷰의 승낙었다.
ReportTitle:『 저속과 과속의 부조화, 페미니즘』에 대한 서평.목차>>>>>>>>>>>>>>>>서론..③Ⅱ본론 ...............④ - ⑭1.가정주부의 탄생과 진보를 향한 발걸음.............④ - ⑤2.국가를 위하여……. 질서의 회복과 혁명의 큰 꿈....⑥3.상황의 일시적 호전........⑥ - ⑦4.남성들의 일자리와 스페인 여성들의 힘겨운 싸움.........⑦ - ⑧5.전쟁에 동원된 여성들과 학살된 여성들.......⑧ - ⑨6.가정의 의무에 저항한 투표권....⑨7.가정주부의 행복.....⑨8.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과 해방된 여성.............⑩ - ⑪9.자기 몸의 주인 되기와 낙태 투쟁 ...⑪ - ⑫10.여성 해방과 가속화된 여성 해방......⑫11.가족의 변화..있는 가정주부의 의미와는 달리 여성들은 남편에게 여성들이 가정에서 노동하는 ‘가정주부’라는 역할은 보편적이며 생산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세기의 전환점에서부터 주부들은 ‘무직’으로 분류되고 있다. 산업화와 더불어 농업 노동과 가내 고용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여성들은 공장이나 사무직 노동을 하며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는 곧 농촌에 거주하는 미혼 여성이나 독신 여성, 일부 미망인들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외부 고용주의 집에 기거하며 고용주들을 위한 가내 노동 그리고 일 외에의 가사 노동을 하며 전일제 고용인 혹은 공장 노동자로 일하게 된다. 한편 도시 가정에서는 여러 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공간 확보가 어려웠기에 한 세대 혹은 두 세대로 축소되면서 주거 공간의 변화가 잦아지기 시작하고 가정을 매일 비워두어야 했으므로 일터가 삶의 기준이 되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 직면하여 여성의 역할이 강조되고 출산과 양육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충분한 건강을 유지하며 더불어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가족 구성원들에게 뒷바라지를 하고 자식들을 교육하는 어머니로서 여성의 역할의 중요성은 모든 담론의 중심이 된다. 한편 영국과 독일에서는 미혼여성만이 사무직에서 종사하였으며 기혼의 여성들은 모두 사회적 권리도 갖지 못하였고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편의 임금을 보충하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여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당연시되면서 이는 곧 이중의 속임수를 가지고 여성 노동을 착취하는 구실로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가정주부들은 가정에서 남성의 보호에 의존하며 자연적으로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를 가질 수 없었으며 기혼여성과 미혼여성들은 모두 투표권을 갖지 못하였다. 이 시대에 여성의 권리는 남편을 복종하며 부부의 의무를 무조건 순종하고 강요받게 된 여성들은 절대 남편의 허락 없이는 노동을 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득을 누릴 수도 없었으며 법적 증명서에 서명을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1789년 7월 프랑스 대혁명에 의해 여성은 구체화된 개인이라는 인식을 얻게 된다 사람만이라도 이혼을 원한다면 이혼 증명서를 우편으로 보내는 것만으로도 이혼이 가능해지기 시작한다. 또한 사실혼은 법률혼과 똑같이 인정받았는데 이에는 이중적인 목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혁명적 가족 모델에 대한 관심을 더 끌게 하려는 시도였으며 두 번째는 아이들과 남편에게 버림받은 수많은 여성들을 보호 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사실혼일 경우 이혼할 때에 법률적으로 주택 공동 소유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기를 수 있도록 양육비는 받을 권리는 인정하였다. 한편 1936년은 신(新) 가족법에 의해 낙태의 자유가 폐지된 해였다. 이때부터 이혼을 하려는 부부들은 굉장히 복잡한 소송 절차를 밞아야 했고, 소송비용도 부담해야 했으며 이혼 후 여성에게 주는 양육비의 비용이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1944년에는 출산 장려 정책과 가족주의 정책이 강화되면서 이혼 소송 절차는 더욱 까다로워지고 사실혼은 폐지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68년에 다시 제정된 신(新)가족법은 부자 관계의 확인과 결혼 후 아이를 가지지 않거나 자식이 없을 경우 호적등기소를 통하여 합의 이혼 조항을 다시 복원한다.3. 상황의 일시적 호전제 1차 세계대전으로 남성들이 전쟁터로 나가고 난 후 여성들은 남성들이 담당했던 거친 직업에 종사하였다. 여성들은 자유를 경험하고 남성과 같은 의상을 착용하고 직장에 나감으로서 여성의 지위는 향상되었고 사회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계몽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1918년, 전쟁이 끝나고 남성들이 돌아오자 일자리를 떠나게 된 여성들은 많은 여가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스포츠와 여행을 즐기고 사회활동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1920년부터 1929년까지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여성들에게 있어 외모를 가꾸게 되는 눈여겨볼만한 현상이 일어난다. 여성들은 외모를 가꾸기 위해 다이어트를 실시하였고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자르며 더불어 미니스커트가 생겨나고 때론 남성들처럼 바지를 입기도 하였다. 여성다움에 대한 개념에서 출발한 일종의 복장혁2차 세계대전 당시 여인들의 죽음의 수용소로 잘 알려진 독일의 라벤스부르크에서는 오랜 시간의 중노동으로 심신이 지치고 소량의 식사로 겨우 연명하며 9만 6천여 명의 어린이와 여성이 희생되었던 곳이다. 또한 말을 듣지 않는 죄수들은 즉시 처형되었던 가스실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폴란드에 설치되었던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는데 루블린 근교 마이다네크의 가스실(室), 시체소각장에서는 노인, 병든 사람들, 자녀를 둔 여성들 등을 가스실로 데려가 죽이거나 생체 실험에 이용하는 등 13만 명의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는 노동력 공급원으로 이용되었고, 이 형태의 수용소가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갔다. 수용된 사람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 일해야만 했다.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굶어죽었고, 굶어죽지 않은 사람들은 과로 때문에 죽었다. 이런 제도는 점점 더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형태는 1940년 이후에 설치된 죽음의 수용소들이다. 유대인들을 멸종시키기 위한 죽음의 수용소는 주로 폴란드에 세워졌는데, 히틀러가 유대인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의 무대로 폴란드를 선택한 결과였다. 가장 악명 높은 죽음의 수용소는 아우슈비츠, 마이다네크, 트레블링카였다. 일부 수용소, 특히 부헨발트 수용소에서는 의학적 생체실험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수용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독소와 해독제를 투여하고, 새로운 외과 수술법을 고안했으며, 인위적으로 병을 일으킨 다음 그 결과를 연구했는데, 이 모든 실험이 살아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했다.6. 가정의 의무에 저항한 투표권페미니스트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여성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였지만 그에 따른 공로는 돌아가지 않았으며 변화의 방향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투표권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권리가 시민으로서의 권리까지 보장하지는 않았다. 책임감 있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메르)의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참고문헌 - 세계영화사 』프랑스와즈 사강은 본명이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coise Quoirez)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의 등장인물인 사강을 필명으로 삼아 『슬픔이여 안녕』의 소설을 18세 때 출간하여 '문학비평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슬픔을 모르고 자라온 열일곱 살의 소녀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알아가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뛰어난 심리 묘사를 통해 섬세하게 그리고 있으며 불쾌한 것으로 여겼던 성적 본능을 자연스럽고 순수하게 그려내었다. 이 작품은 누벨바그 영화가 묘사한 새로운 애정관계와 성생활을 추구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녀의 소설 여주인공들은 새로운 여성 모델에 부합되었다.9. 피임, 자기 몸의 주인 되기와 낙태 투쟁여성들에게 있어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은 당연 피임약이었다. 피임약은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섹스의 자유와 권리에 맞닿아 있을 것이다. 남성과는 달리 달력을 보고 날짜를 세거나 생리주기가 일정하지 않아 관계를 할 때마다 전전긍긍하기 일쑤였던 여성들은, 쾌락의 복수처럼 느껴지던 ‘임신’에게서 자유로워졌다. 좀 더 능동적으로 섹스를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이다. 1920년대에 남성용 콘돔 이외에 널리 알려진 피임 방법은 여성의 질에 삽입하는 살정제가 첨가된 페서리와 자궁경관용 피임 기구였다. 1960년 5월 9일,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세계 최초로 경구 피임약 에노비드(Enovid)의 판매를 승인했다. 첫 시판된 경구 피임약 에노비드는 미국의 내분비학자인 핀커스가 로크 등과 함께 개발되었다. 핀커스는 산아제한 운동가인 마가렛 생어의 지원으로 1951년부터 연구에 착수하여 멕시코의 야생 삼의 뿌리에서 배란을 막는 스테로이드 합성물질을 추출하는 데 성공하였고, 1960년 5월에 FDA(미국식품의약국)의 승인을 얻어 이를 먹는 피임약으로 상품화하여 시판하였다. 또한 1960년대 후반에 나온 초기의 먹는 피임약은 현재의 피임약보다 호르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