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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의 미래 전망
    {유대인.. 이 수업을 듣기 전까지 나는 유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그 동안 텔레비전과 신문, 책 등 여러 언론 매체에 나온 유태인들은 자녀를 성공으로 이끄는 훌륭한 가정교육법을 가진 민족, 고대 모세의 인도에 따라서 이집트에서 탈출한 사람들, 미국의 경제를 쥐고 있는 숨어있는 거물급의 인사들, 비록 나라는 없지만 지혜롭고 성실한 사람들,,, 나는 손바닥 만한 모자를 쓰고 텔레비전 교양프로그램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고 있던 그 유대인들은 정말 훌륭한 민족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에 비해서 팔레스타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그리 좋지 않은 기억속에서 유독 팔레스타인의 기억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언론매체에 등장한적이 있었나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 볼 만큼,,, 팔레스타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어떤 장점을 지니고 있는 민족이라고 소개되는 자리는 별로 가져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뉴스의 영상에서나 간간히 본 그 민족들은 어두운 표정에 코가 크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무서운 사람들이었던 것같다.수강신청을 할때 2년마다 개설되는 강좌인데다가 9.11 테러 이후로 중동에 대한 관심이 생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 미지의 문명을 수강하기로 하였다. 첫 수강날, 난 교수님의 기독교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 조금은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난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그저 한 사도라고 낮춰 버리는 그런 해석은 수업이라고 해도 듣기 거북한 말이었다. 그렇지만 수강날이 지나면서 이슬람 문명과 중동에 대해서 해 주시는 얘기가 점점 재밌게 들려왔다. 아마도 모르던 곳에 대한 앎이 생겨서 그런것이라,,,이슬람교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부가 이루어진 후에 선생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대해서 하나 둘씩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하셨다. 시작할 때 마다 조금씩 지각을 한 탓에 앞 부분부터 듣지 못한게 매우 아쉽지만 선생님께서 내 놓으시는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가득 안은 이야기들이 대부분 이었다. 내겐 좋은 이미지만 가지고 있던 유태인들이 그리고 별로 좋지 않고 무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팔레스타인들의 이미지가 그대로 무너지는 이야기들이었다.19세기 부터 중동 지역은 제국주의의 미명아래 강대국들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었다. 20세기 초반 중동에서 영향력을 가지시 시작한 영국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세력을 가지기 쉽게 하기 위해 후세인 가문을 이용하여 다른 세력들을 제거해 나려고 하였다. 그 즘에 발발한 세계 1차 대전은 중동을 영국과 프랑스 등의 유럽 식민지로 만들었다. 1914년 오스만 제국이 독일 편에 가담하여 영국과 대항하자 영국은 아랍인들을 이용하여 사우디 아라비아의 후세인에게 그들의 요구를 지지한다는것과 독립 아랍 국가를 지지한다고 약속하는 대신 오스만 투르크와 싸울 것을 독려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맥마흔 서한이다. 1916년 6월 후세인의 아랍반란이 시작되었다. 오스만 터키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영국에서 지원받은 신식의 무기도 전쟁에서 사용하였다. 10월달에는 모든 아랍인의 왕 이라고 선언하면서 메카 지역에서 터키를 몰아 낸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후세인을 메카의 왕이지 아랍의 왕은 아니라고 인정하지 않았다.하쉼가의 전통성을 지니고 있던 후세인가는 당연히 자신들에게 모든 아바리아 반도의 지배권이 넘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국을 도왔다. 그렇지만 후세인가문이 전쟁을 하는 사이 반도의 운명은 이미 사이크스 피코협정에서 강대국들의 이익대로 나눠져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세 나라가 공동으로 통치하기로한 조약을 지킬 수가 없었다. 이 곳은 전략적 요충지 인데다 스웨즈 운하는 막대한 금전적 이익을 남기는 수입원이였기 때문이다. 이런 영국은 어떻게든 스웨즈 운하를 독점하기 위해서 막강한 경제 지배력을 가진 유대인들을 끌어 들인다. 그리곤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고 있던 그들에게 유대인의 민족향토를 건설하는데 지지해 주겠다 라는 말로 그들을 유인해 마침내 1917년에 밸푸어 선언을 하게 된다. 영국은 유대인을 방패로 삼았던 것이다.결국 양자에 대해 팔레스타인을 내주겠다는 모순된 약속은 후에 큰 분쟁의 씨앗이 된다. 산레모회의 통해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팔레스타인 등 아라비아 반도 이외의 아랍인 지역을 위임통치하에 두고, 밸푸어 선언을 인정하는 것이 채택되었다.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들어가고 팔레스타인에는 국가 재건을 약속 받은 많은 유대인들이 대량으로 내주하면서 이곳에 정착하고 있던 아랍인과 충돌하게 되면서 분쟁은 시작되었다. 분쟁이 격화되자 영국은 문제를 국제연합기구에 위임하고 혼란한 정세에서 빠져나온다. 1947년 제2차 국제연합기구 총회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아랍인과 유대인들에게 분할하는 결의를 채택하였고1948년 5월 14일에 영국군인이 철수함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독립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분할과정에서의 불공평한 영토분할을 끝내 중동지역에 무려 4번에 달하는 전쟁을 몰고 온다. 전쟁의 결과는 아랍인들에게 더 불리하였다. 분할 된 영토중 22%만이 남게 되었고, 그동안 팔레스타인의 아랍인을 지지해오던 주변 아랍국들도 점차 그 지지가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이스라엘은 독립선언 직휘 아랍인들과의 분쟁에서 항상 우위를 다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뒤에는 미국이라는 세계 최고의 열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모든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다 미국의 원조가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다. 3차 중동전쟁이 끝나 후 1967년 11월 유엔 아보리 결의 이사회 242호가 채택되어 국제사회는 외교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였으나, 이스라엘은 자의적인 해석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수용한것과 점령지에서의 철군은 사실상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처럼 만들어 행동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매우 섬뜩할 정도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그들의 세력을 치밀하게 확장하고 있다. 그것을 잘 알수 있는 것이 바로 정착촌이다. 정부가 사람들이 잘 살수 있도록 마을을 만들고 있는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나, 이것은 자국의 영토를 넓히고 팔레스타인들을 추방하기 위한 무자비한 수단 중 하나이다. 정착촌을 짓기 위한 토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정부는 갖가지 법을 만들어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무력을 동원하고 죄가 있건 없건, 절차 따위는 제대로 밟지 않고 팔레스타이인들을 탑압하고 학살하였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모든 탄압과 제지, 등은 제대로된 보상을 받을 수 없었고 여기서 생겨나는 많은 토지들은 고스란히 이스라엘 정부의 소유가 되었다.1978년 9월 캠프 테이비드 협정이 체결되었으나, 이스라엘을 자유롭게 풀어놓아 정착촌만 활발히 전개할 수 있도록 고무시켜 놓았고, 1987년 말부터 시작된 인티파다로 이스라엘이 국제적인 비난을 받게되자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오슬로 협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드리드 회의에 관한 한 양측은 서로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평행선을 달렸다. 1993년 6월 미국은 팔레스타인 대표단에게 그들의 요구가 배제된 초안을 제안하였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대표단을 절대 받아들일수 없다고 거부하며 협상 테이블에서 물러난다. 2개월 후에 PLO가 오슬로에서 비밀리에 이스라엘 정부와 단독으로 임시 자치 정부 원칙 선언에 동의하였다고 발표한다. 그 발표는 마드리드 회의 초기의 노력들을 수포로 만들어 버렸다. PLO대표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사회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고 마드리드 과정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지했다. 이 협상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마치 평화의 공존을 모색한 듯이 보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이티파다도 종결되었고, 무장 공격을 중단하겠다는 공동선언도 채택되었다. 팔레스타인인들도 빠른 미래에 국가가 생겨나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협상이었다. 협상 직후 이스라엘은 더 빠르고 더 노골적으로 정착촌을 확장시키면서 영토를 확상시켜 나갔다. 정착촌의 강화와 안보를 이유 삼아 관통도로를 만들고 더욱 더 팔레스타인인들 주거지를 파괴하였다. 두 국가가 공존하는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은 2000년 캠프 데이비드 최종지위 협상이 격렬됨으로써 꿈같은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2002년 6월 24일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으 로드맵을 구상하는 유명한 연설을 하였다. 이스라엘 점령정책에 대항하여 2000년 9월 이후 계속되는 이티파다와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살 폭탄 공겨과 같은 저항때문이었다. 이스라엘과 같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민주적이며, 생존 가능한 팔레스타인 국가의 창설이라는 미래상을 제시하였다. 후에 이 로드맵은 총 3단계로 나뉘어 구성되어졌다. 그러나 이 로드맵의 단계를 정상적이며 합법적인 방법을 통하여 성취한다는 것은 현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1단계의 강제실행은 곧 팔레스타인사회의 분열 해체를 시키는 것이 된다. 이러한 로드맵또 또한 핑크빛 미래상의 제시라기 보다는 공존의 뜻이 없음을 알리는 한 표현으로 남게 되었다.선생님께 이-팔 분쟁에 대한 수업을 듣고, 숙제 준비를 하기 위해서 관련서적을 뒤적이는 동안 제일 처음 든 생각은 과연 이들이 하나님에게 선택받았다고 믿는 민족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책에는 남의 것을 탐하고, 약탈하고, 살인하는 이런 행위가 옳지 않다고 나와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만행을 자행하는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마치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학대를 잊기라고 한 듯 독일군과 비슷한 짓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행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이-팔 분쟁에 관한 서적들을 보면서 나는 과연 해결방안을 생각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들의 분쟁은 얽히고 얽혀서 나와 같은 미숙한 지식인이 풀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우리나라와 북한이 통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냐고 묻는 일과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과학| 2005.06.30| 4페이지| 1,000원| 조회(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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