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천국에 가다감 독 : 윤태용국 가 : 한국상영일 : 2005영화가 개봉하고 며칠이 지난 후 마침 영화가 보고 싶던 차에 딱히 볼 영화가 마땅치 않아서 별다른 기대 없이 이 영화를 고르고 극장의 어둠속으로 파묻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기대치가 낮은데 대한 반대 급부였던 걸까? 달콤한 불량식품을 먹을 때의 쾌감을 떠올리게 했던 이 영화. 기대 이상이었다. 평소 영화관에서 직접 수고를 들여서 접한 영화에 대해서 굉장히 인색한 평가를 내리곤 했던 나였지만 영화 보다는 차라리 동화같은 이 영화는 나에게서 비판을 할 만한 여지와 여유를 앗아가 버린것이다.뭐랄까, 신선한 충격이었다. 딱히 재미있는 것 같지도 않지만 눈에 남고, 귀에 머물고, 가슴속에 잔잔하게 파장을 일으키는 뭔가가 있었다. 이제껏 보아왔던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예쁜 영상(아름다운 영상이 결코 아니다!!)과 색깔, 흔치 않은 이야기 전개, 무언가 석연치 않으면서도 딱히 흠잡을 곳도 없는 독특한 구성과 설정, 그리고 제일 크게 와닿았던 음악적 요소까지. 잘차려진 정찬이 아니라 갑자기 입맛이 돌대 찾는 매콤한 떡볶이 같은 맛. 모범생은 아니지만 생각지도 않은 이쁜 짓을 톡톡 발현하는 골칫덩어리 아이 같은 느낌. 이 영화, 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강하게 끌어 당겼던 걸까?앞서도 말했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한 것이 전체적인 스토리는 아니었다. 물론 미혼모의 아들인 13세 소년이 엄마를 불시에 잃고 나서 그 앞에 나타난 미호모-또다른 미혼모, 부자-를 운명이라 여기며 사랑한다는, 그래서 그 미혼모의 아들인 기철을 구하려다 불구덩이 속에서 대신 죽게되고 저승사자의 잘못으로 80년이나 일찍 천국에 온 것이라 남은 인생을 하루를 1년으로 쳐서 60일간의 삶을 살기로 합의를 본 후 20일 후에 33세의 몸으로 인간 세상에서의 삶을 살면서 딱 60일간만 자신의 사랑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는 그리 흔한 내용은 아니다.더군다나 하루에 한살씩 늙어 간다니... 더 황당한 건 네모가(네모는 이 소년의 이름이다) 60년의 삶을 포기하고 60일간만 살기로 하는 건 부자의 아들인 기철이를 위해서라는 것인데 이런 결정이 가능 했던건 네모가 아직은 어린, 그래서 욕심을 모르고 계산할 줄 모르는 13세의 소년에 불과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보게 된다. 극중 네모보다 딱 10년을 더 오래 산 내가 만일 네모의 입장이었다면 부자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들 귀하디 귀한 내 삶, 내 생명과 맞바꾸려는 일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10년이라는 세월은 그만큼 무섭다. 그런데 네모는 60년을 60일만에 살아버린다. 네모의 정신 속 시계는 60일을 가리키며 돌아가고 있지만 그의 신체 속 시계는 60년을 바라보며 돌아간다. 네모가 끝까지 순수한 사랑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정신과 신체적 나이의 괴리에서 오는 격차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딜레마에 슬쩍 빠져보기도 한다.거기에 더해서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과 약속된 시간이 고작 60일 뿐이었기에, 내 생명이 '고작' 60일 뿐이었기에 네모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들보다 몇배나 압축된 시간을 가진 만큼 자신의 감정도 몇배나 압축된 '진국'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보면 네모의 60일은 '고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순간의 소중함을 모른채 가치없이 흘려보내는 60년'씩이나'되는 우리의 시간이 더 '고작' 그것밖에 안되는 값어치를 지닌게 아닐는지...각설하고, 이렇게 괜찮은 스토리를 그저그런 것으로 여기게 만들 정도로 이 영화의 '무언가'가 나를 혹하게 했던 것인데 그 무언가가 바로 너무나도 예쁜색감과 음악이었다. 몽환적이고 판타지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화면속 컬러들은 판타지 로맨스라는 스토리 라인을 너무나도 잘 살려주는 훌륭한 배경이 되었다. 이전의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 형형색색의 원색적인 색칠을 하고 그 위에 파스텔로 한번 더 덮은 듯한 화면은 꿈꾸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어쩌면 이런 화면이 가능했던 것이 바로 주인공인 13세 소년 네모의 순수한 아이적 관점에서 바라 본 세상을 표현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들의 눈에는 유치하게 보일지도 모를 그 세상이 사실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억눌러 놓았던 잠재된 어른들의 호기심, 유치함, 모험심, 이상에 대한 동경과 환상 등등. 우리 내면에 투영된 진실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일 것이다.아무튼 기묘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야기 구조와 맞물리는 이런 화면을 보면서 친근감도 느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 영화보다 조금 앞서 개봉한 팀버튼 감독의 을 보고난 후라 나도 모르게 그 영화와 동일 선상에 감정이입을 시켰던 듯하다. 팀버튼이라는 천재 감독 특유의 몽환성을 에서 다시 발견하게 된것이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간과 공간이 딱히 정해져 있지도 않고, 우리가 어느때 어디라고 확실히 말할 수도 없는 그런, 가상과 현실의 중간쯤 되는 세계.윤태용 감독이 팀버튼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알수는 없지만 두 감독의 영상이 같은 세계에 떠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런 스타일의 화면이 본인의 감성과 매우 잘 맞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가슴 깊이 인상이 남았을테고. 어린왕자를 동경하고 빨간머리 앤의 초록지붕 집과 메리포핀스의 하얀 우산을 선망하는 나의 감성이 이성과는 상관없이 반응해 버린것이다.그리고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음악들. BGM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극중에서 부자와 네모가 직접 불렀던 바로 그 노래들을 말하는 것이다. 분명히 이전에는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던 노래들이었건만은 이상하게 알알이 속을 에이는 그런 힘과 익숙함, 편안함이 있었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모두 70~80년대 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이라고 한다. 21C를 살고 있는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부모님 세대 감성과 낭만의 재발견이었다. 몇십년이 지난 이 노래들도 전혀 다른 세대를 살고있는 나에게 늘 입어왔던 옷을 걸치듯 딱 맞을 수 있구나.
굿바이 레닌감 독 : 볼프강 벡커국 가 : 독일상영일 : 2003.10.041978년 여름, 동독은 달에 첫 탐사대(그는 뒤에 나오게 될 ‘지그문트’다.)를 보내고 알렉스네 가족은 아버지가 서독과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적대계급으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엄마는 말문을 닫아버리고 얼마 후 그녀는 완전히 변해서 사회주의 조국과 결혼이라도 한 듯 분노와 열정으로 가득한 열성적인 공산당원으로서 활동한다.그리고 10년 후 1989년 10월 동독건립 40주년 기념일. 시대는 변했고 동독에선 기갑차가 마지막 행진을 마쳤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자유를 쟁취하기위한 행진을 시작하고 그곳에 함께 있던 알렉스가 폭력적인 진압대에 의해 끌려 나가는 광경을 목격한 엄마는 쓰러지고 만다. 심장발작이었고 이후 8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서 깨어나지 못한다. 엄마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 되는 것도 호네커의 퇴진과 첫 선거에 의한 헬무트 총리의 당선도, 알렉스의 서독으로의 첫 여행도, 여동생인 아리안이 돈을 벌기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버거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엄마는 학교에서 해고되었고, 알렉스는 위성방송안테나가 붐을 이루던 그때 그와 관련한 업체에 취직했다. 1990년 6월에는 이미 장벽이 무의미해져 있었다.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고 마침내 자본주의의 승리가 이루어졌지만, 엄마만은 사회주의의 이상을 간직한 8개월 전 기억 그대로였다. 그리고 엄마가 깨어났다. 정신적 혼란과 장단기 기억의 혼재, 그리고 아주 자그마한 충격이나 흥분에도 멈춰버릴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심장과 함께.이때부터 엄마를 위한 알렉스의 거짓말이 시작되었다. 엄마에게 동서독 통합은 너무나도 큰 충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동독 식으로 방을 꾸미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상점은 하루사이에 화려하게 바뀌어 있었다) 옛 동독의 상품인 ‘스프리우드 오이지’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엄마가 TV를 보고 싶다고 하자, 옛 동독시절과 같은 양식으로 직접 뉴스를 촬영하기 까지 한다. 엄마 생일 때 초대할 친구들은 미리 섭외해서 입을 맞춘다.하지만, 변화와 개방의 물결이 감춘다고 해서 감춰지는 게 아니다. 문틈으로 연기가 들어오듯이 그렇게 아무리 꼭꼭 싸매도 꼭 닫힌 엄마의 방에까지 침투하는 것이다. 엄마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본주의의 상징, Coca Cola. 아들은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또 거짓 뉴스를 촬영한다. 그러는 사이 하지만 거짓말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알렉스에 거짓말에 동참하는 가족들도 갈등을 일으켜 가고 최고의 위기는 엄마가 위급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아빠를 보고 싶어 하는 데에서 일어난다. 엄마는 알렉스에게 아빠와 계속 연락하고 있음을 밝힌다. 아리안은 버거킹에서 재혼한 아빠를 만났음을 이야기하고 알렉스는 이제는 택시기사가 된 최초의 우주인 지그문트의 택시를 타고 아빠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부모님의 재회…….이제 여름은 갔고 알렉스는 모든 연극을 끝내기로 했다. 그리고 엄마를 위한 마지막 거짓말을 준비한다. 사회주의 기념일을 챙기기로 한 것이다. 엄마가 위급해서 4일 앞당긴 10월 3일에 영상을 준비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날 통일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미 라라에게 사실을 들어 알고 있는 엄마는 모르는 척 넘어간다. 아들에게 “결국엔 너도 받아들여야 할 거야. 서독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엄마는 엄마만의 동독에서 3일을 더 사셨고 행복하게 돌아가셨다. 엄마의 유해는 로켓에 담아 쏘아 올려 사방에 퍼뜨렸다. 엄마는 저위에서 그들을 작은 점으로 쳐다보실 것이다. 지그문트가 달에서 그랬던 것처럼... 비록 현실 속 나라는 아니라 해도 엄마는 그 안에서 계속 사실 것이라 알렉스는 믿는다.영화에서 동독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최초의 우주인 ‘지그문트’는 통일독일에서 한갓 평범한 택시운전기사로 삶을 연명해간다. 지그문트의 경우야 말로 통일 이후 동독 사람들의 위치와 삶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표본이다. 서독의 마르크화가 밀려왔으며 화폐는 1:2의 비율로 교환되었고 그마저도 날짜가 지나버리면 바꿀 수 없는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그런 식으로 동독에서의 노동력의 가치가 부정을 당하기도 했다.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차직도 한다. 넘치는 자유는 때로 통제되지 않는 방종으로 흐르기도 한다.
REPORT「스크루테이프의 편지」-C.S.Lewis과목제출일교수님학과학번이름-목차-PrologueTextEpilogue§Prologue...이 책의 저자 C.S.루이스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성공회의 평신도 신학자이다. 또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철학과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친 지식인이기도 하다. 부모의 사망을 계기로 무신론자가 되기도 했지만, 가톨릭 신자인 제레미 톨킨의 영향으로 1929년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여 성공회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평생 신앙생활하였다. 그는 개신교, 성공회, 가톨릭 등 기독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한 기독교 변증과 소설, 특히 로 유명하다.현재 는 2편까지 영화화한 상태다. 영화속에는 그의 종교적 가치관이 선명하게 잘 나타나있다. 특히 아슬란으로 상징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예수의 존재론적 의미까지. 이 작품은 수많은 기독교적 메타포로 숨막힐 듯 채워져있다. 그래서, 아직까지 여전히 기독교적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나와 같은 초신자에게 신앙과 예수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부드럽게 돌이켜 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로 대중성을 획득한 C.S.루이스의 또다른 저서인 (원제 : The Screwtape letters)는 허약하기 짝이없는 신앙생활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고 있는 나의 한쪽 손에 교회 오빠가 살풋 쥐어준 책이다.가 판타지 소설의 형식을 빌린 은유적 종교작품이었다면(그래서 2편과는 달리, 1편이 영화화되었을 당시 불신자였던 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기독교와의 어떤 연관성도 느끼지 못했다) 는 아예 작정하고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돕기위해 혹은 비판하기 위해 쓴, 누가봐도 기독교와 관련된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종교서적이다.이 책은 최고위층 악마인 스크루테이프가 그의 조카이자 인간을 유혹하는데 있어 초보적 악마인 웜우드에게 인간을 유혹하여 자신들의 의도대로 타락시키는 방법을 코치하는 내용의 편지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C.S 루이스는 이 책을 통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일상에서 경계해야 할 점,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원적 본질과 성향, 그 자체에 대해 유쾌하게 에두른 필치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만일 크리스찬으로써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 뜨끔하거나 가슴이 서늘해지거나, 혹은 격하게 공감하여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로 배부른 방황을 저지르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나의 내면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였다. 내가 애써 외면하려 했던 나의 그릇된 행동, 내면적 모순을 일으키던 사실과 생각들을 그대로 나에게 보여줌으로써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명확하게 인식 할 수 있도록도와 준 것이다.연약한 신앙생활을 간신히 추스를 수 있게 해준 멘토와도 같은 존재. 이제 베테랑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음모를 획책하기 위해 초보악마 웜우드에게 보냈던, 인간이 봐서는 안될 은밀한 31통의 편지를 몰래 훔쳐보는 여행을 시작해보자.§Text- ‘그런 건 이미 다 알고 있어.’스크루테이프(이하 스크루)는 그의 조카 웜우드에게 보내는 첫 편지에서 현대사회에서 논증을 통해 환자(인간을 뜻하는 악마들의 은어)를 원수(신을 뜻하는 악마들의 은어)의 손아귀에서 구하는 것이 하수들의 방법이라고 얘기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했기에 논증이 먹혀들었지만, 현대의 환자들은 오랜시간에 걸친 악마들의 환경조작에 따라 어려서부터 수십가지의 철학이 머릿속에서 상충하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어, 참이냐 거짓이냐를 따지는 것 보다는 학문적이냐 실용적이냐 혹은 새로운 것이냐 낡은 것이냐를 따지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래서 현대의 환자들을 미혹하는 데에는 논증보다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한다. 진리 자체를 따지기 보다 진리의 실용성과 겉치레만을 따지게 하기 때문이다. 논증은 오히려 잠자고 있는 이성을 깨우는 무서운 상황을 초래 할 수도 있기에 위험한 방법이다.또한 스크루는, 환자의 시선을 보편적 진리가 아닌 감각적 경험의 흐름에 붙들어 두고 그것이 실제의 삶이라 믿도록 가르치라고 충고한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은 순수한 과학 서적을 읽지 못하도록 붙들어 두라는 것. 가장 좋은 것은 과학서적 따위는 하나도 읽지 않으면서 ‘그런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그럴 듯 하고 막연한 느낌만 심어주라는 것이다.이제 악마들의 계략이 조금은 감이 오는가?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초신자가 그리스도인에게 느끼는 실망감이란 ...스크루는 웜우드에게, 환자가 교인이 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찾아오는 실망감이나 맥 풀리는 느낌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충고한다. 원수는 환자의 노력이 문턱을 넘으려 할 때마다 이런 실망감이 찾아오는걸 허용하고 있다. 이런 실망감은 연인들이 마침내 결혼하여 현실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 찾아온다. 즉 실망감이란 삶의 모든 부분에서, 꿈으로만 간직해 오던 야심을 힘겨운 실천으로 옮길 때 나타나는 표시다.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환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 초신자들이 머릿속에 그리며 현실과 비교해 실망하는 교인의 모습은 대개 자신의 수준에서 그리고 있는 영적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이는 대부분 그림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인데 여기에 실망해 쉽게 교회에 좌절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초신자들은 아직 진짜겸손을 배우지 못했기에 ‘나같은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옆에 앉은 저들의 다른 결점만 보고 그들의 종교가 위선이자 인습에 불과하다고 단정 할 수 있겠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물론 악마들의 임무는 환자가 영원히 이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방해하는 것이다.자 어떠신가? 가슴이 뜨끔해지지 않는가? 난 이부분을 읽으면서 미칠듯한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어쩜 그리 나의 그릇된 생각들을 콕콕 집어냈는지.- 가상의 어머니를 위한 기도와 실제의 어머니에 대한 이중적 태도스크루는 또 환자가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등한시 한 채 가장 어렵고 영적인 의무에만 마음을 쓰게 하라고 말한다.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막을 수 없다면 고도로 영적인 기도만 줄창 읊어 대도록 하면 된단다. 어머니의 류머티즘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면서 그 영혼상태만 가지고 노심초사하게 만들라고 덧붙인다. 환자가 스스로 창조해 낸 가상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할 때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이 실제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깊은 틈을 갈라 놓을 수 있다. 그래서 어머니의 영혼을 위해 그토록 열렬히 기도하던 환자가 실제의 어머니에겐 퉁명스럽고 불충한 태도로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아...! 이내용은 나를 떠 얼마나 자학하게 만들었던가! 실제 생활에선 부모님께 불효하기 짝이없는 자식이면서, 영적으로 고도로 경건한 척은 혼자 다하던 나에게 던지는 한줌의 돌. 맞아도 싸다.-환자가 ‘내가 알고있는 당신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이 알고 계시는 당신’을 향해 기도의 방향을 돌리지 않게 하거라-다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에만 줄창 매달려 현실을 외면하도록.-인간이 불변성에 가장 가까이 가는 길은 바로 기복(起復)의 과정을 거치는것이라는 사실을 숨겨라.-중용을 지키는 종교란 우리(악마)에게 무(無)교나 마찬가지환자가 자신의 영적 저기압 상태를 묵인하게 만든 다음 이런 상태도 뭐 그리 심각한 침체는 아니라고 스스로 설득해 가며 차츰 그 상태에 만족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스크루의 또다른 충고. 그렇게 한두 주일만 유지하면 회심했던 당시의 열정이 좀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 후 환자에게 만사에 중용을 지키라고 말해주라고 조언한다. 종교는 지나치지 않아야 좋은것이라고 믿게 만들면 그의 영혼은 우리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중용을 지키는 종교란 우리에게 무교나 마찬가지, 혹은 훨씬 흥미진진하니까.혹시 작가가 텔레파시로 내마음을 읽었던 건 아닐까. 지나치게 이성적인 나의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인 조심성을 제대로 짚어내셨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든다. 내가 보는 기준에서의 광시도들이 과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이런 질문 역시 스스로에 대하 비겁한 변명의도가 아주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이제보니 나는 해야할일도 하나 못하고 좋아하는 일도 하나 못한 채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구나환자가 교회는 꼬박꼬박 나가도 종교적 의무들은 점점싫어하게 되는 상태로 만들어라. 양심의 가책을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종교적 의무를 행하기 전에는 그저 남부끄럽지 않은 한도 내에서 가능한 한 조금 생각하고 의무를 끝내고 나면 가능한 한 빨리 잊어버릴것이다.이와 같이 우리 악마들이 마땅히 피해야 할 건강한 외향적 활동은 죄다 금지시키면서 그대신 할 만한 일은 아무것도 주지 말라. 그렇게 되면 언젠가 지옥에 오게 되었을때 “이제보니 나는 해야할일도 하나 못하고 좋아하는 일도 하나 못한 채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구나”라고 말하게 될것이다.마치 나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듯한 이번 본문의 내용은, 특히나 지옥에 왔을때 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것저것 피하다보면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고싶은 일도, 해야할 일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인생을 허비해 버리는 그런 사태.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