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립정권 이론분석을 통해 본 일본 호소카와 내각의 함의)정치외교학과 2003310114 최유미Ⅰ. 서론왜 1993년 8월에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연립정권이 아니라 비자민 일곱 개 정당의 연립정권이 발족했는가? 그 연립정권이 왜 불과 8개월 만에 붕괴했는가? 수십 년간의 일당지배로부터 연립정권으로 바뀌어 마치 일본정치는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즉 호소카와 연립정권의 탄생과 종언은 일본정치에 있어서 가장 신선한 정치적 사건이라고 생각되었고, 우리나라의 정치구도와는 다른 일본의 정당정치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다.Ⅱ. 내용요약의회제 민주주의 다당제에서의 연립정권에 관한 연구는 상당한 이론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사례’를 주된 분석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사회 ? 문화적 균열구조를 지닌 정당체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한계성이라든지, 연립정권의 ‘내부’보다 그 ‘형성’ 매커니즘에 치중함으로써 나타난 ‘전체 구조’의 구성에 대한 이해 불명확성, 또는 기존 이론 틀에 입각한 분석이 실제 이론 모델과의 불일치로 생겨난 정치적 실태에 대한 해명 불충분성 등의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이러한 때 일본의 ‘55년 체제)’가 붕괴하고, 호소카와를 수상으로 한 연립정권이 성립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후 일본정치는 단독정권이 ‘일반적 정권형태)’로 인정되어 왔기 때문에, 이 거대한 분수령이자 현실정치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호소카와 내각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는 기존 연립정권 이론을 재검토 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본 논문은 ‘정치적 상황 ? 정당의 동기 ? 정당의 조직’을 통해 연립정권 이론을 설명 한다). 즉 이 세 가지 변수에 기초해서 연립정권의 내부 매커니즘의 변화과정과 원인을 설명한다.정치적 상황을 구성하는 변수로는 정치적 위기, 경제구조 변화, 득표율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정당이 연립정권에 참여하는 이유와 관련해, 중요한 변수는 정당의 동기 ― 보상과 자기보존의 욕구 ― 이다. 즉 이는 정당목표의 추구와요한 것은 정당의 응집성이 높고 지도력이 확립되어 있는 경우에 정당 간의 연합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이러한 세 가지 변수에 기초하여 지금까지의 정당간의 경쟁이 비타협적에서 타협적인 것으로 혹은 그 역의 상황으로도 변화될 수 있다. 나아가 구체적인 교섭이 진행되었을 때, 교섭의 핵심 대상은 ‘연합정책협정의 내용’과 ‘포스트의 할당’이다. 첫째, 연립정권을 형성하기 위한 협상에서 각 정당의 정책과 정책지위를 엄격하게 논하면 난관에 부딪히게 되므로 ‘그다지 지장이 없는’ 대의명분을 전면에 내걸게 되는데, 이는 후에 연립여당의 정책 불일치와 내각분열의 복선을 의미한다. 둘째, 어느 정당에 어느 정도 각료 포스트를 할당하며, 어느 각료 포스트를 ‘어떤 정당’이 점해 ‘누가 장관’이 되는가하는 문제이다. 각료 포스트는 정당이 관심을 가진 정책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적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연립정권은 각 정당의 당수와 주요 간부를 전원 입각시켜 내각일치체제를 확립하려 한다. 그러나 연립정권의 조정기관에서 여당의 대립을 유발하는 정책은 타협점을 찾기 어려우며, 연립여당내의 대립과 주도권 다툼을 초래한다. 이후 연립정권에서 정책전개의 패턴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는 연립정권 형성의 대의명분과 공통의 정책목표가 중시되어, 가능한 한 정책 타협과 양보가 행해지는 단계이다. 이어 정책전개의 둘째 국면이 시작된다. 이는 연립정권 형성을 가능하게 한 정당간의 공통목표가 그 의미를 상실하거나 혹은 개별 정책목표를 둘러싼 연립여당 간 대립이 심화되었을 때이다.연립정권과 자당의 정책과의 차이는 당내의 대립과 균열을 초래한다. 이것은 ‘정당 동기의 해석’과 ‘연립정권 참여 비용’을 둘러싸고 정당의 전략과 밀접하게 뒤얽혀 당내의 대립을 한층 심화시킨다.정당 내 ? 연립여당간의 대립은 내각과 그 조정기관에서의 주도권 다툼을 초래하고, 이것은 ‘각료의 경질과 내각개조문제’를 낳는다. 연립정권에의 참여는 연립에 참여한 정당에게 차기 총선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은 연립정권전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정당은 ‘대안적 연립정권’을 고려한다. 그 결과 연립여당내의 대립은 더 심화되고 연립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의미를 잃어버린다.이와 같이 연립여당간의 대립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연립정권은 외인적 요인(exogenous shocks))에 의해 붕괴한다. 지금까지 연립정권 붕괴를 그 형성의 구조적 요인에 초점을 맞춘 이론과는 달리, 외인적 요인 모델은 연립정권이 ‘왜’ 혹은 ‘어떻게’보다는 ‘언제’ 붕괴하는가에 초점을 둔다. 즉 연립정권 붕괴가 구조적 요인과 체계적 관련이 없음을 보여준다.‘55년 체제’의 일본은 80년대 말부터 자민당 정권이 각종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정당성의 상실과 지지기반의 이탈을 초래하자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또 국내정치 ? 경제적 상황은 냉전종결에 의해, 일본정치를 분단시켜온 보 ? 혁 진영의 이데올로기 대립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고, 보수 일부와 중도 ? 혁신의 연립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개혁 관련 법안, 특히 선거제도 방식 차이를 계기로 미야자와 내각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통과시킨 야당은 자민당의 장기일당 지배체제 타도와 정치개혁 정권의 실현이라는 대의명분에는 대략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정치개혁 ? 외교 ? 방위 ? 경제정책을 비롯한 국가진로 및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책에 대해서는 각 당 사이에 커다란 정책 차이가 있었다. 즉 이 시점에서 총선 후 연립정권 구상을 둘러싼 각 정당의 동향은 아직 유동적이었다.이러한 가운데 실시된 93년 7월 총선은 정당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자민당의 장기일당 지배가 붕괴되었고, 또 사회당의 역사적 참패와 세 보수 신당(일본신당, 신생당, 신당사키가케)이 약진함으로써 야당이 정권을 잡을 기회가 왔다). 7당 1회파는 연립정권의 수상 후보로 호소카와를 정했고, 8월 5일 임시국회에서의 수상지명 투표에서 호소카와가 수상에 선출됨으로서 38년 동안의 자민당 일당정치의 종말을 맞았다). 7당 1회파에 의한 과소규모 한 것일 뿐 정책일치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이 정권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대표자회의가 연립여당의 정책조정과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특히 신생당이 이 회의를 주도하고 그것에 사회당이 이의를 제기하는 형태로 진행되자, 연립여당의 의견을 집약하고 합의를 형성하는 과정은 매우 불충분하고 그것이 연립여당내의 사회당에 깊은 불만을 초래하게 되었다.연립여당 내 대립은 정치개혁 관련 법안을 둘러싸고 이것의 정부안 작성과정에서 정수배분과 투표방식을 가지고 발생했다. 왜냐면 장래 정당체계의 재편성이 양당제가 바람직한가, 아니면 제 3세력이 존재할 수 있는 온건한 다당제가 좋은가라는 정당체계 본질에 대한 각 장의 입장이 정수배분, 투표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일본 신당 ? 신생당 ? 공명당 ? 민사당을 하나의 축, 사회당 ? 신당사키가케 ? 사민련을 다른 하나의 축으로 분단시켰다.호소카와 내각 정책전개의 둘째 국면은 연립여당 내에서 충분한 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 발표한 국민복지세 구상이었다. 즉 일부 여당 대표자와 대장성의 관료에 의해 추진됨으로써 연립여당내의 반대에 직면하여 입법에 실패하고 연립여당의 균열과 양극화를 초래했다.호소카와 수상이 94년 3월 내각개조를 단념함으로써 연립여당내의 대립은 일단 수습되었다. 그러나 연립정권 발족 이래, 국회내 통일회파를 결성했던 일본신당과 신당사키가케간의 균열이 심화되고 결국 해소됨과 함께 호소카와 연립정권의 성립기반의 일각이 무너졌다. 또한 반자민 연립정권 형성의 견인 역할을 수행했던 연합도 국민복지세 구상과 정계개편의 방향과 관련하여 호소카와 연립정권과 격렬하게 대립하게 되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일억엔 차입금 의혹’을 둘러싼 중의원 예산위원회 공전은 호소카와 연립정권의 붕괴를 촉진했다. 호소카와 수상은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의원 예산위원회를 단독 개회하려 했으나 자민당의 추궁에 의해 결국 국회운영이 난항할 것이라고 판단,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때문에 호소카와 연립정권의니까, 하나를 실현하면 다른 목표의 실현이 어려워지든지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있다. 장기적인 이익이 단기적인 이익과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현실정치세계에 있어서 전략의 선택은 ‘첫 번째 당선확보, 두 번째 정권획득, 세 번째 정책변경’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다.”) 전략의 복잡함을 무시하고 세운 정치이론은 별로 도움이 안 되며, 정치가가 당선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들의 행동을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 역사적 평가에의 관심, 현재의 권력을 포기하고 뒤에 더 큰 권력을 잡을 수도 있다는 전략적인 계산, 이런 것들은 모두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권력에의 집착을 압도하는 것이다.지금까지 본 논문은 연립정권이 형성 ? 유지 ? 붕괴를 기존 연구와는 다른 각도에서 ‘정치적 상황 ? 정당의 동기 ? 정당의 조직’이라는 세 가지 변수를 이용하여 호소카와 내각을 분석했다. 정치학적으로 말하면, “분석틀 → 그 이론적 실효성 검증 → 분석틀의 확증 ? 수정 내지 폐기”라는 순환과정을 통해 연립정권의 일반 이론에 덧붙일 만한 일곱 가지 이론적 성과를 추출했다.첫째, 정당과 연립정권 사이의 관련성에 관한 것이다. 정당의 통합 정도는 정당간 연합형성행동과 연립정권형성 ? 유지 ? 붕괴 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둘째, 정당이 표방하는 기본정책과 오월동주 정당간에 체결된 연합정책협정 차이에 의한 연립여당내의 대립에 관한 것으로 정책목표의 구체적 입법화 과정에서 연립여당의 정책 ? 이해관계의 조정이 연립의 유지 ? 안정에 있어 사활적인 중요성을 띤다는 점이다.셋째, 정당의 정책과 연립정권의 그것과의 차이에 의한 정당내의 대립에 관한 것으로, 연립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이 어느 정당내의 특정 파벌의 그것과 다른 경우, 그 정당내에서는 파벌항쟁이 분출하고 당을 분열에 이르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넷째, 각료 포스트와 연립정권의 정책전개 사이의 관련성에 관한 것으로 특정 정당이 어느 각료 포스트를 점하는가에 의해 정치적 영향력을 증가시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갈등 관계)정치외교학과 2003310114 최유미Ⅰ. 서론“21세기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지역은 동북아시아가 될 것이다).” 미국의 동북아 동맹전략은 한-미 ? 미-일 군사 동맹을 양자적으로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미사일 방어체계를 중심축으로 이 양자 동맹을 사실상의 군사 네트워크로 전환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새로운 동북아 동맹 전략은 ‘동맹의 안보 딜레마’를 부각시킬 개연성이 높다.) 그동안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안보딜레마라는 개념으로 보아왔던 한-미관계를 이 “동맹의 안보 딜레마와 포기-연루의 순환” 이라는 논문을 통해 새로운 이론적 틀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또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미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내용요약1953년 10월 1일에 탄생한 한-미 군사동맹을 바탕으로 한-미 양국은 여러 분야에서 협력적 관계를 증진시켜 왔으나, 여러 쟁점분야에 걸쳐서 주기적으로 갈등적 양상을 노출시켰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갈등의 근원을 동맹차원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국가들은 공동의 적에 대항하는 능력을 집중시켜 안보를 증대시키기 위해 동맹을 형성한다. 동맹의 구성국가들은 기회비용)의 편차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위기 시 동맹의 구성국가가 동맹을 탈퇴할 가능성과 그 자신이 원치 않는 갈등에 휩쓸릴 가능성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긴장감이 바로 포기와 연루의 위험성이자 동맹의 안보 딜레마를 구성하는 것이다.한-미 동맹의 안보 딜레마는 양국간의 국력의 차이 및 지정학적 차이라는 요인이 북한의 정치 ?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방식의 결합속에서 발생하였다. 이러한 동맹의 안보 딜레마는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간의 안보적 관계를 경색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특히 한국-미국-북한이라는 3자적 안보 상호작용에서 동맹의 안보 딜레마는 동맹의 구성국가들에게 포기와 연루라는 위험성과 두려움을 갖게 하였다.다극체제라는 국제안보환경에서 포기는 동맹을 야기 시키는 동맹국의 이러한 행태는 다른 동맹국에게 포기의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따라서 포기의 행태를 보인 동맹국은 포기의 두려움을 느끼는 동맹국에게 동맹에 대한 확고한 공약을 약속하고 외교적 지지를 보냄으로써 포기의 위험성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유사시 포기의 두려움을 느낀 동맹국가로 하여금 위협국가에 대해 보다 호전적이고 위험을 무릅쓸 정도의 강경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들며, 포기의 행태를 보인 동맹국가가 원치 않는 갈등에 연루될 위험성을 증대시킨다.연루는 해당국이 공유하지 않거나 단지 부분적으로만 공유하는 동맹국의 이익 때문에 분쟁에 휩쓸리는 것을 의미하며 동맹국의 이익을 위해 분쟁에 참여하는 희생보다 동맹에 남아있는 가치가 더 클 경우에 발생한다.포기와 연루의 위험성간에 균형을 이루는 것은 엄격히 말해 딜레마라기보다는 하나의 교환이다. 따라서 동맹의 안보 딜레마는 해결 불가능하고 단지 관리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양극체제에서는 다극체제에서와는 달리 포기의 위험성이 적다. 왜냐하면 동맹의 구성국가들이 기존 동맹에서 탈퇴하여 다른 동맹에 가입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할 만큼 다른 강력한 국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극체제에서도 포기의 위험성은 존재한다. 정치적 수준에서 포기의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초강대국가들간의 공모나 약소국가들의 핀란드화이다.양극체제에서 연루의 위험성은 다극체제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연루의 위험성은 초강대국들에게보다는 약소국가들에게 더 큰 관심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약소국가들은 초강대국들의 지구적 이익의 일부분을 공유하고 있고, 초강대국들의 행위를 제재할만한 능력이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이처럼 양극체제에서 동맹의 안보 딜레마 역시 포기와 연루의 위험성에서 발생되는 긴장의 연속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극체제에서와는 달리 동맹 자체는 안정적이다. 따라서 양극체제에서 동맹의 구성국가들간의 안보적 상호작용은 다극체제에서와 같은 흥정과정이라기 보다는 문제 해결과정의 성과 두려움은 미국과 북한간의 안보관계 변화에 따라 순환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포기-연루의 순환은 미국과 북한간의 안보적 관계가 개선되는 경향을 보일 때 나타난다. 이것은 포기-연루 모델에서 포기기의 출발점이 된다. 이 때에 북-미간 안보 개선은 양국간의 공모일지도 모른다는 한국의 의구심과 우려감이 생기게 되고, 한국의 미국에 대한 안보 재보장 요구는 표출기Ⅰ의 출발점이 된다. 이 단계에서 미국이 한국의 포기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키면 다시 처음 단계로 돌아갈 수 있으나, 그렇지 않고 미국이 한국의 요구 이상으로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경우, 이것은 미국과 북한간의 안보관계에 영향을 미쳐 한국에게 또 다른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이것은 한국이 느끼는 연루기의 출발점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북 강경노선과 보다 공세적인 독트린의 채택 등은 한국이 느끼는 연루의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킨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에게 정책을 변경하도록 압력을 가하는데, 이것이 표출기Ⅱ에 해당한다. 만약 미국이 한국의 이러한 요구에 부응한다면 한국이 느끼는 연루의 두려움은 완화되고 동시에 미국과 북한간의 안보적 관계는 협상과 대화로 바뀔 수 있다.1993년 북한은 회원국의 중대한 국가이익 보호를 위해 탈퇴를 허용한다는 NPT조항을 언급하면서 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 상황에서 미국-북한의 안보적 상호작용은 한국에게 동맹의 안보 딜레마에 따른 포기와 연루라는 안보적 두려움을 반복적으로 갖게 만들었다.여기에서 북한의 입장은 국제적 고립감, 안보에 대한 우려감, 경제난 3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핵무기 개발을 선택한 것이고, 이를 통하여 미국으로부터 북한에 대한 승인과 안전보장, 경제적 이익을 얻어내려고 한 것이다.북-미 양국 모두 파국상황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북한의 NPT 탈퇴 발효의 최종시한인 6월 12일 하루 전인 6월 11일에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또 이는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북미 합의문 서명까지 이어졌는데, 일련의 사건은 북한과 미국간의의문 서명이후 한국의 포기의 두려움은 대북 경수로 지원사업과 관련해 한국형이 채택되지 않고 한국이 중심역할을 못할 때는 한 푼도 안내겠다는 입장 표명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북-미 준고위급회담에서 한국의 포기의 두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였으나 북한의 잠수함 침투 사건은 한국의 포기의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은 포기의 두려움을 표출했으나 미국은 미온적 반응을 보였고 이것은 또 포기의 두려움을 더욱 증폭 시켰다. 이 때에 북한의 사과 성명 공식발표를 통해 한국의 포기의 두려움은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었다.북핵 문제를 둘러싼 포기-연루 모델의 순환에서는 한-미 동맹간의 안보적 상호작용이 북한에게 안보 딜레마를 촉발시킨 측면보다는 북한의 내부 사정 변화가 오히려 한-미 동맹의 안보 딜레마에서 연루기를 촉발시켰다고 볼 수 있다). 즉 김정일의 ‘강성대국’으로 인하여 미국은 대북 강경정책으로 선회하였고, 한반도의 긴장은 고조되었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으로 인해 한국이 갖고 있는 연루의 두려움을 강하게 표출하였다.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연루기의 출발은 북한의 일방적인 군사력 시위가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초래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연루의 두려움 표출은 미국에 대한 불만 표출의 형태가 아니라 한-미간의 대북 정책을 조율하는 형태(98년 11월 한-미 정상회담)로 나타났다. 미국은 한국의 대북 포용 정책지지, 한국과의 긴밀한 협조체제 유지 합의 등 대북 강경책을 조정하였고, 그 결과 한국의 연루의 두려움은 완화되었다.동맹의 안보 딜레마가 한국의 대미 안보정책에 시사해 주는 정책적 함축성은 다음과 같다. 동맹의 구성국가들이 동맹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느냐의 문제와 동맹의 구성국가들이 전략적 이익의 측면에서 서로를 어떻게 인식 ? 평가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들은 동맹국가들간의 지리적 요소와 국력의 차이이다.한국은 동맹에 따른 포기-연루 모델이 한국의 안보정책에 시사하는 정책적 함축성은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미간의 안보적 갈등은 동맹의 안보 딜레마의 부산물로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한국은 한-미 동맹의 안보 딜레마를 우리의 이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관리할 수 있는 관리 능력을 극대화 할 필요가 있다. 둘째, 포기-연루 모델은 국제체제의 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지역적 ? 세계적 구조에 대한 올바른 판단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미국-한국-북한의 전략적 삼각관계, 장기적으로는 미국-한국-중국이라는 삼각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즉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맞게 현재의 한-미 동맹관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주변 강대국과의 보다 긴밀한 관계설정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Ⅲ. 결론원래, 동맹의 안보 딜레마에 따른 포기-연루의 위험성은 냉전시대 유럽의 안보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일단의 학자들이 사용한 개념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적실성이 입증되었다고는 하지만), 포기-연루의 순환은 학자의 견해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나왔던 포기기와 표출기Ⅰ의 경우도 항상 그런 매커니즘대로 작동한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미 관계개선 시에 한국은 두려움만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다. 즉 한국은 북-미 관계의 개선을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한반도 내의 냉전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전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북-미, 혹은 북-일간의 관계 개선을 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포기-연루 모델은 기간과 시기를 알 수 없는 것이 단점이다.그러나 얼마 전 이 모델로 설명할 수 있는 사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라크 파병이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은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가? 아니면 한-미 동맹 관계이기 때문에 파병을 해야 하는가?우리가 국익을 위해 파병을 하는 것이라면, 파병에 대한 전제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국익과 동맹은 별개의 문제이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국이기는 하지만, 국익 차원에서
과제전공학번학년이름지구화된 국가목차1. 서론2. 본론(1) 세계정치이론(2) 지구화의 원인 -냉전종식의 측면에서(3) 지구화된 국가 (결과적 측면)3. 결론4. 참고문헌1. 서론오늘날 세계는 국제화, 세계화 되어간다고들 말한다. 여기에서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와 세계화(혹은 지구화, Globalization)는 중심주체가 누구인가에 차이가 있다. “국제화란 세계질서의 기본단위인 국민국가를 바탕으로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인 접촉, 교류가 증대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비하여, 세계화는 국민국가를 포함하여 초국적행위자(국제기구, 다국적기업등), 지방, 비정부기구, 대체정부조직, 그리고 개별시민들이 국경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적 교환, 교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국제화가 국민국가를 기본으로 하는데 비해서 세계화는 보다 다양한 행위자를 기초로 하고 따라서 국가주권, 국경개념이 약화되어 가는 현상을 포함하는 것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개념정의의 논의가 활발했던 것에 반하여 현실화 되어가고 있는 세계화 속에서, 세계화의 원인에 대하여 알아보고, 국민국가의 위상과 또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세계화’라는 번역보다 경제, 평화, 인권, 환경 등 지구적 의식이 증대되고 지구촌화되어 간다는 점에서 지구화라는 용어가 보다 적절하다는 견해에 따라 본고에서는 ‘지구화’라는 어휘를 선택할 것을 미리 밝혀둔다.)2. 본론(1) 세계정치이론우리는 세계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현실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공부하였었다. 1980년대에는 흔히 말하듯이 패러다임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들 세 이론은 동일한 세계에 과한 상이한 견해라기보다는 상이한 세계에 관한 세 견해 이기 때문이다. 즉 달리 말하면 세 이론은 세계정치의 부분적인 그림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무엇처럼 생겼는지에 관한 견해들인 것이다. ‘그것’(세계정치)이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은 일치하지 않는다.이 이론들 어느 것도 지구화 시대의 세계정치를 설명하는 데 있어 모든 해답을 준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각 이론이 지구화에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관해 약간 언급할 수 있을 따름이다. 아울러 지구화의 기원에 대해 얘기하고, 현대 세계정치를 서술하는 데 지구화가 어떤 강점과 약점을 갖는지 생각해 보겠다.* 세계정치이론에 대한 정의는 다음 글의 일부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존 베일리스 ? 스티븐 스미스 편저, 하영선 外 역『세계정치론』, (서울 : 을유문화사, 2003) pp.16~17현실주의자들이 볼 때 지구화는 세계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 즉 세계가 민족국가로 영토적 분할을 이루는 상태를 바꾸지 못한다. 경제체와 사회의 상호연결성이 증대하면서 민족국가들은 더욱 상호의존적이 될 수도 있지만, 국가체제(states-system)의 경우도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가는 주권을 보유하며, 지구화는 국가간의 정치권력 투쟁을 쇠퇴시키지 못한다. 지구화는 폭력사용의 위협이 갖는 중요성이나 세력균형의 중요성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지구화는 사회 ? 경제 ? 문화적 삶에 여향을 미칠 수 있어도 국가들의 국제정치체제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자유주의자들은 현실주의자들과 아주 상이한 견해를 갖는다. 그들은 지구화를 세계정치의 오랜 변용의 최종 결과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지구화는 세계정치에 관한 현실주의자들의 설명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킨다. 지구화는 국가가 예전과는 달리 더 이상 중심 행위자가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관련 문제영역에 따라 중요성이 따른 무수한 행위자들이 국가를 대신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특히 지구화로 대변되는 기술통신 혁명에 관심을 갖는다. 사회들 간의 경제적 ? 기술적 상호연결성이 증대되면서, 이전에 사라져버린 세계정치 관계의 아주 다른 양상이 출현해 있다. 국가들은 더 이상 지난날처럼 봉인된 단위가 아니다. 그리하여 세계는 현실주의의 국가모델이나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계급모델보다는 거미집의 관계처럼 보인다.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에게 지구화는 얼마간 허구다. 지구화는 특별히 새로운 것도 아니고 단지 국제 자본주의 발전의 최종 단계일 뿐이다. 지구화는 세계정치의 질적 전환을 나타내주는 것도 아니고 기존의 모든 이론과 개념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국제자본주의의 발전을 단순 확장시키는 서구 주도의 현상이다. 지구화에 의해 세계는 더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중심부, 반 주변부, 주변부 사이의 분열이 더욱 심화된다.(2) 지구화의 원인 -냉전종식의 측면에서1990년대는 지구화 시대라고 불릴 만큼 세계가 지구화 현상을 세기적인 계기로 받아들인 시기였다. 이에 대해서는 학자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보통 지구화 현상을 냉전 종식의 결과로 이해한다. 그 이유는 지구화 현상이 주로 지리적 확대를 의미한다고 보면, 지구화 현상의 확산 과정이 냉전시기에 존재 했던 시대 특징의 변화 혹은 소멸과 동시에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차원의 자본주의, 지구 차원의 커뮤니케이션, 지구 차원의 문화 계발에서 그 동안 배제되었던 지역이 지구화 현상의 확산에 따라 새로운 네트워크에 급속하게 편입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냉전 구조가 청산된 것을 지구화 현상의 확산을 가로막았던 장벽이 무너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무너진 장벽의 효과는 그동안 세계무대의 뒤편에 머물러 있던 이른바 제 2세계 즉 사회주의 세계에 속했던 국가들에게 주로 돌아갔다.지구화 현상이 확산된 데에는 냉전의 종식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여기서 우리는 지구화 현상이 확보하고 있는 영역과 범위를 냉전 시대와 탈냉전 시대의 세계를 구분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렇게 판단하는 데에는 물론 큰 위험성이 있다. 만일 지구화 현상을 단순하게 냉전 종식의 결과로 간주하면 지구화 현상 자체가 냉전이 종식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구화 현상은 단순히 냉전 종식의 결과로 볼 것이 아니라 냉전 시기와 탈냉전 시기가 서로 접목될 수 있는 혹은 지속성을 유지하는 공통분모로 간주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3) 지구화된 국가 (결과적 측면)많은 사람들이 지구화 현상을 현대 질서를 정의하는 요소로 간주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구화 현상이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역사적 추세이고, 그렇기 때문에 20세기 의 종말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화가 국제질서를 대체하는 현상이 아니라 부가적 현상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부가현상으로서의 지구화는 분명히 탈냉전 질서의 성격을 규정할 때 좀 더 다른 차원에서 그 의미가 충분히 있다.지구화 현상은 그 동안 국가들이 전통적으로 행사해 왔던 행위 범위를 변화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다. 또 전통적인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초월하게 만들지도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지구화는 질서의 형성 혹은 변화 요인으로 간주되기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구화 현상은 다른 한편으로 국가 성격 자체를 변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즉 지구화는 전통적인 국가가 자신의 관할 범위와 주된 관심을 바꾸도록 촉진한다는 측면에서 질서 변화의 요인이 된다. 다시 말해, 지구화는 국가 변혁 차원에서 하나의 질서 형성 요인이다. 이런 점에서 성격 변화가 이루어진 국가를 지구화된 국가라고 명명하고 그 개념을 개발해 내는 일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고 그 현대적인 모습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물론 지구화 현상으로 인해 국가나 전통적 국제 질서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구화된 국가들이 새로운 국가 형태로 등장하면서 우리는 대신에 “지구화된 국제질서(globalized international order)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할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지구화된 국가의 등장에 걸맞는 국제질서에 대한 관념이 필요하다.
맹자(孟子)- 왕도정치 사상을 중심으로한국정치사상사교수님2004. 5. 11목차Ⅰ. 들어가기Ⅱ. 본론-왕도정치 그리고 혁명사상.Ⅲ. 나오기-맹자사상의 현대적 의의Ⅰ. 들어가기『논어』, 『맹자』, 『대학』, 『중용』은 유학의 기본 교과서로 동양 고전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책이다. 보통 사서(四書) 라 불리는 이 네 권의 책은 유학의 근본이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동시에 제각기 강조점이 다르고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중『맹자』는 사서 가운데 가장 정치적인 책이다. 맹자는 공자의 예와 인 사상에 의(義)라는 개념을 더하여 자신의 왕도(王道)사상을 전개해 나갔다. 여기서 왕도(王道)정치란 곧 덕으로 다스리는 덕치(德治)이자, 민본주의(民本主義)적 역성(易姓) 혁명 사상을 뜻한다. 맹자는 인을 실천하는 것이 의이므로 무릇 제왕이라면 당연히 인의(仁義)를 국가 경영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은나라의 포악했던 주왕(紂王)이 신하에게 죽음을 당한 일에 대해 제 나라의 선왕이 맹자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인을 해치는 자를 도적〔賊〕 이라 이르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악〔殘〕하다 고 합니다. 잔악하고 도적 같은 사람을 일개 필부 라 하는데, 일개 필부 주의 목을 베었다 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 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맹가 지음, 안외순 역『맹자』, 「梁惠王」下 8장, (서울 : 책세상, 2002), p.44이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배자마저도 인의의 아래에 놓여야 한다는 글이 담겨 있을 만큼 『맹자』는 혁명적이다. 본 글에서는 맹자의 왕도정치, 역성혁명 사상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이 갖는 현대적 의의에 대해 논하여 보도록 하겠다.Ⅱ. 본론-왕도정치 그리고 혁명사상.맹자가 양 혜왕梁惠王을 만났다. 왕이 말했다.어르신가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겠군요.맹자가 대답했다.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 위의 책, 「梁惠王」 上 1장 , p.15양혜왕에게 인의의 군주가 되기를 권고한 이 구절은 맹자가 자칫 왕의 사적인 이익추구를 힐난하고 더 나가서 공리성을 배척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맹자의 논지는 이익추구에 대한 양혜왕의 관심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시에 양혜왕은 부국강병책에 편집되어 있었는데 맹자는 그에게 인의에 기초해서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부국강병을 이루는 우선적인 조치라는 점을 암시했던 것이다. 양혜왕은 패권경쟁에서 패퇴한 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부국강병으로 인식했다. 맹자는 그 현실적 방안을 제공한 것이다. 만약 군주가 도덕본성을 인식하고 실천한다면 군주의 사적 이익은 항상 인의에 부합하는 것이고 군주의 도덕확충에 의해 교화된 백성의 사적 이익도 또한 인의에 부합한다. 그럴 경우에 양자간의 사적이익은 일치하며 이들의 사적 이익은 공공이익으로 전환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양혜왕 자신이 도덕본성을 구현한다면 자연히 사회성원에게 확대되고 이는 군주와 신민간의 호혜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결과한다. 왜냐하면 군주의 도덕본성 계발은 군주 자신이 담당해야 할 정치적 의무이고 통치기능의 직임(職任)을 완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자간의 정치적 의무이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정치적 안정은 확보되며 부국강병의 기반이 된다. 맹자는 실질적으로 부국강병의 추구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이를 성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권고했던 것이다. 그는 왕정의 방식이 신민의 도덕본성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안정된 정치적 기반을 제공한다고 제시했다.힘으로 인仁을 가장하는 것이 패도覇道이다. 패도는 반드시 대국을 소유해야한다. 덕으로 인을 행하는 것은 왕도이다. 왕도는 대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 임금은 70리로 왕도정치를 행했고, 문왕은 백 리로 행했다. 힘으로 남을 굴복시키는 것은 마음으로 복종케 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모자라 복종케 하는 것이다. 덕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으로 기뻐서 진실로 복종케 하는 것이니 70명의 제자가 공자에게 심복心腹한 것이 그것이다.{ 위의 책,「公孫丑」 上 3장, p.63맹자는 왕정과 패정을 덕을 갖춘 군주에 의한 통치와 힘에 의한 통치로 구별했다. 이와 같은 구별이 담고 있는 우열의 어감은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 패정은 물리적 폭력을 수반하기에 힘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적, 군사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사회성원에 대한 조세와 군역의 부담을 가중시켜서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역기능을 초래한다. 이로부터 맹자는 패정을 감각본능과 도덕본성에 모두 위배되는 것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서 왕정은 군주의 도덕본성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신민의 도덕본성에 호소한다. 왕정은 사회성원의 본성에 부합하는 통치이기 때문에 호소력을 지니고 그들의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할 수 있다. 결국 왕정은 패정에 도덕적으로나 효율성에서 비교우위를 갖는다.가장 효율적인 통치방법으로 왕정을 제시한 맹자의 입장은 당시의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려고 했던 그의 현실감각에 기인한다. 그 단적인 사례가 제자인 공손추와의 문답에서 보여진다. 공손추는 제(齊) 나라 출신이기에 제 환공과 같이 패자가 구축해 놓은 사회질서에서 성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정을 효율적이고 실천하기 용이한 통치형태라는 맹자의 주장에 그는 의문을 제기했다. 공손추는 맹자의 주장대로 인정이 작은 규모에 빈약한 국력을 가진 군주가 선택해야 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통치형태라면 당시의 군주들이 인정을 시행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맹자는 공손추에게 왕정의 효율성을 다음과 같이 옹호했다.또 이렇게 오랫동안 왕자가 출현하지 않은 적이 없고 지금보다 더 심하게 백성들이 학정에 시달린 적도 없다.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주기 쉽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마련해주기 쉬운 때인 것이다.공자께서도 덕이 흘러 돌아다니는 것이 파발마로 전령을 전하는 것보다 빠르다 라고 했다. 지금과 같은 때 만승의 나라가 인정을 행한다면 백성들이 거꾸로 매달렸다가 풀려난 듯 기뻐할 것이다. 그러므로 일은 옛 사람의 반쯤만 하고도 공은 반드시 옛 사람의 두 배가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적절한 때이다.{ 위의 책,「公孫丑」 上 1장, p.57맹자는 부국강병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왕정이 패정보다 효율적이라고 주장했지만 단순히 효율성만으로 왕정과 패정을 비교하지 않았다. 그에게 왕정과 패정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은 바로 통합과 질서의 지향여부이다. 맹자에게 패권 장악을 목표로 한 각 군주의 통치행위는 패정이고 몽둥이나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처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 위의 책,「梁惠王」 上 4장, p.19
광고에서의 전유 -KTF적인 세상이 세상을 바꾼다?이동통신시장에서 SK Telecom의 '011' 만이 부동의 1위라고 호언장담했던 시절은 이제 과거속의 사실일지 모른다. 비록 PCS에 불과하지만 그 한계를 극복하고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 꿋꿋이 자리 잡은 KTF. 이렇게 KTF가 소비자들에게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략의 성공, 광고의 성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게 성공을 이끈 KTF광고가 과연 긍정적으로만 평가될 수 있는지, 이 글에서는 KTF의 많은 광고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광고 한편을 해석해보려 한다. (광고 설명은 다음 장에 있습니다.)이 광고는 기존의 발상에서 벗어난, 창의적이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개척정신을 보여준다. 최근 각 부문에서 보보스{ 보보스[ bobos ]는 부르주아(bourgeois)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Bohemian)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는 미국의 새로운 상류계급을 가리키는 용어로써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합성어이며, 정보화 시대의 "뉴 엘리트 계층" 을 지칭하는 말이다. 보보스 계층은 경제적으로 많은 소득을 올리면서도 과거의 경제인들처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사치를 부리지 않고, 오히려 1960년대의 히피나 보헤미안처럼 자유로운 정신을 유지하면서 예술적 고상함을 추구하는데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보보스의 대표적인 특징은 1 정보에 강하고 2 자신만의 독특한 소비 감각이 있으며 3 자유롭게 사고하고 4 유행에 개의치 않으며 5 엉뚱하고 기발하며 6 일을 즐기고 7 여유가 있으며 8 적극적이고 9 돈이 많더라도 낭비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열풍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들을 타겟으로 한 다양한 마케팅이 선보이고 있지만, 대체로 고소득자이면서 독특한 소비패턴을 가진 보보스의 성향에 맞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보이는 수준에 불과 했다. 그러나 이 KTF 광고는 이들의 창의적이고 자유롭고 진보적인 사고방식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이 광고를 시작으로 보보스의 열풍은 한층 고조되었고, 정우성과 고소영을 모델로 한 삼성카드 역시 이러한 점을 공략한 '보보스' 광고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KTF 의 보보스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광고를 성공으로 이끈 요인이다.그러나 바로 여기에 이 광고의 문제점이 있다. 이 광고에서는 광고가 흘러가는 동안 계속해서 이른바 보보스 라는 것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멋진 것인지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젊음 을 대표하는 것이며, 이는 다시 KTF를 이용하는 젊은이 로 이미지화 되면서 KTF적인 생각만이 세상을 바꾼다. 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따라서 자동차를 타고 온 늙은이는 바뀌어 버려야 할 존재 로 전유되는 것이다.광고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렇게 성공적 이었다고 평가받는, 즉 그만큼 많은 대중들에게 인정받은 광고에서의 전유현상은 잘못된 이데올로기(허위의식)를 보다 용이하게 전파한다. 위에서 분석했던 KTF 광고의 예만 보아도, 이 광고의 주요 타겟 층인 젊은이들은 보보스 라는 이미지로 차용된 젊음 , 새로운 것 , 창의 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함으로 인하여, 오래된 것 , 중년 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우리는 KTF의 광고가 상업적으로는 훌륭한 성과물을 이룩했을지는 몰라도, 그 내면에는 잘못된 지배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하겠다.{광고 설명분주한 아침 출근길.고급차 뒷좌석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한 중년. 제법 나이도 들고 사회적 지위도 상당히 높아 보이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 사업상 중요한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 때, 언제나 처럼 바삐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헬멧에 롤러블레이드를 신은 한 남자가 그 고급차 옆을 지나친다. 고개를 들어 롤러블레이드 탄 남자를 쳐다보는 그 신사. 그의 눈엔 왠지 모를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침 출근길에... 저런 걸 타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란...' 하는 듯한 그의 표정과 함께 뜨는 자막 한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