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칠레간의 FTA에 따른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Ⅰ. 서 론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은 국가간의 상호 무역증진을 위해 물자나 서비스 이동을 자유화시키는 협정으로 경제통합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로서 일부 특정 국가들만 특혜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상호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역외국으로부터의 수입품보다 낮게 부과하거나 철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같은 특혜의 정도가 심화되면서 각기 다른 개별경제들이 하나의 더 큰 경제단위를 형성하며 결합되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유무역협정은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자유무역협정에 의해 회원국간 역내관세는 철폐되지만 각 회원국의 개별대외관세장벽은 그대로 유지된다. 둘째, 자유무역협정의 회원국들은 자국의 대외무역정책 결정권이 유지되기 때문에 독립적인 무역정책을 실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유무역협정의 경우 수입품이 가장 낮은 대외관세율을 갖고 있는 회원국을 통해 수입된 후 관세 없이 역내로 재수출되는 무역굴절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그와 같은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원산지규정(rules of origin)과 현지 부품조달의무가 부과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장이 크게 확대되어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의 수출과 투자가 촉진되고, 동시에 무역전환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협정대상국에 비해 경쟁력이 낮은 산업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된다.1998년 11월 대외경제조정위원회에서 칠레와 FTA추진을 결정하였고, 1999년 12월부터 6차례협상을 거쳐 2002년 10월 24일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인 한-칠레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되었으며 2003.2.15 정식서명 절차를 마쳤다.본 보고서에서는 한국과 칠레간의 FTA에 따른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고찰해 보겠다.Ⅱ. 본 론1) 한-칠레 FTA의 의의우리나라의 첫 FTA인 동시에 태평양을 사이에 둔(Cross- Pacific) 국가간의 첫 FTA로서 세계 주요 교역대상국과 FTA를 대비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소규모 경제와의 FTA체결을 통해 FTA협상경험 축적, 전문 인력의 양성, 경제제도의 완비 등을 달성할 필요가 있다. 90년대 이후 체결되는 FTA는 시장접근뿐만 아니라 투자와 서비스 등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경제의 거의 전 부문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우리나라 같이 지역무역협정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국가는 소규모 경제와의 FTA를 체결하여 경제운용의 노하우를 축적한 후 거대경제권과 FTA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호 호혜적 이익을 최대한 반영한 FTA라고 할 수 있다. 즉, 쌀, 사과, 배 등을 동 협정의 예외품목으로 하여 농업 부분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였으며 승용차, 화물자동차, 컴퓨터 등 대칠레 수출의 66%를 차지하는 품목에 대해 발효 즉시 관세철폐를 확보하였고, 칠레로서는 아시아국가와의 최초의 FTA를 성사시킴으로써 이 지역으로의 교역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우리 또한 칠레를 넘어 중남미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통상정책 수단의 다원화를 들 수 있다. WTO체제의 다자간 협상을 통한 무역자유화와는 별도로 우리 스스로 무역자유화 상대국을 선택하였으며, 우리 실정을 적절히 반영한 무역 자유화방식(FTA)을 채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 12위의 교역대국인 한국은 그 자체로 많은 국가들로부터 FTA 대상 후보국이다. 이번 FTA의 성공적 타결을 통해 우리의 대외신뢰도 및 개방 의지를 대외에 과시함으로써 향후 우리의 통상국익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결정적 모멘텀을 만들게 되었다.2) 한-칠레 FTA의 배경한국의 첫 FTA체결국으로서의 칠레 선정 이유는 우선 무역과 투자 면에서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만 보면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 동북아권 또는 EU 등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상기국가들과의 FTA 체결시 한국산업과의 상호보완성 여부에 대한 심층검토가 선행되어야 하고 국내 취약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 마련이 FTA 국내여론의 사전 지지도 확보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들 거대 경제권과의 FTA 추진여부는 장기적으로 신중히 검토해 나가면서, 무역과 투자 면에서의 효과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한국산업과의 상호보완성과 지역거점으로의 활용가능성 등이 큰 지역들을 종합 검토하여 다수의 소규모 FTA를 먼저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칠레는 상기 요건들을 골고루 충족하고 있는 바람직한 상대국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칠레는 원부자재 위주의 수출구조와 제조업 위주의 수입구조를 보유하고 있어 한국과 산업의 상호 보완성이 매우 크다. 또한 칠레는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 및 캐나다, 멕시코 등과 FTA를 체결하여 지역거점으로의 활용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한국으로서는 칠레의 FTA 체결경험을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편, 칠레는 농산물 수출 국가이긴 하나 주로 일부 과일류에서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취약산업인 국내 농업에 미칠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며, 마지막으로 칠레는 적극적으로 한국과 FTA 체결을 희망하고 있다. 반면, 칠레는 한국과 물리적 거리가 먼 단점이 있기는 하나 교통, 통신의 발달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최근 들어서는 세계적으로도 먼 거리에 있는 국가간의 FTA 체결 사례(예: 멕시코-EU FTA)가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한국과 칠레간의 경제관계를 보면 칠레는 1949년 5월 중남미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승인하였으며, 1962년 4월 양국간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칠레는 전통적으로 한국에 대해 우호정책을 견지하고 있으며 UN 등 국제무대에서도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지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경제무역면에서는 주요 수출대상국인 아시아 태평양권과의 관계강화를 위해 한국중시정책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대칠레 연간 교역규모는 수출 약 4~6억 달러, 수입 7~11억 달러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대칠레 무역수지는 연간 약 3~5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 2000년 칠록하고 있지만, 우리의 수출품목이 통신기기, 자동차, 화학제품 등 공산품 일색인 반면, 수입품목은 전체 수입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구리를 비롯하여 펄프ㆍ목재, 광석 등 우리 경제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원자재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칠레는 세계최대의 과실 수출국 중 하나라는 점에서 칠레와의 FTA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으나 과실을 제외하고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수출농산물이 별로 없고 세계의 농산물 수출액 중 칠레의 비중은 0.6~0.7%선에 불과하며, GDP에서 농림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5.9% 정도(우리나라의 농림업은 2000년 기준 4.2%)이고 또한 농업계가 요청했던 사과 배를 자유화의 대상에서 완전 제외하였다.3) 한-칠레 FTA에 따른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우선 우리기업의 칠레시장 진출이 확대될 것이다. 칠레의 관세율이 한국보다 높으며(9%: 2000년 기준, 한국의 평균실행관세율은 6.89%임) 경제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최근 칠레가 멕시코 및 중남미 국가 등과 FTA를 체결하여 한국기업이 상대적인 차별을 받아 왔기 때문에 양국간 FTA가 결성되어 상당한 이익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타이어 같은 많은 제조업 품목에서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캐나다나 멕시코의 경우, FTA 체결을 통해 특혜관세를 부여받고 있어 상대적으로 한국 기업의 대칠레 수출에 장애가 되고 있던 요인이 해소되게 될 것이다. 특히 한국과 유사한 산업구조를 가진 멕시코가 칠레와 FTA를 체결한 이후 대칠레 수출이 1992년 1억 8천만 달러에서 1996년 9억 3천만 달러로 급증한 사례를 보더라도 FTA 체결은 대칠레 수출증대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번 FTA에서 칠레는 우리 공산품에 대해서는 자동차, 기계류, 휴대폰, 컴퓨터 등 대칠레 수출의 66%를 차지하는 품목에 대해 발효 시부터 즉시 관세가 철폐되며, 자동차부품, 폴리에틸렌 등은 향후 5년 동안 균등 철폐키로 하였다. 따라서 칠레가 EU, 캐나다, 멕시코 재 한국이 일본(36%)에 이어 칠레시장 점유율 2위(26%) 이지만, FTA발효 이후에는 일본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칠레 경제는 미국 경제부진 여파와 내수 침체 및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인근 국가의 금융불안 등으로 국내 경기의 회복이 지연되고 있어 우리나라의 대칠레 수출이 단기간에 급증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지만 이번 협정 타결로 내년부터 칠레와의 교역이 5-10% 내외 정도 신장세가 기대되며, 향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성장, 안정의 궤도로 돌아서고 칠레의 내수시장이 회복될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매년 10~20%까지의 높은 수출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칠레 정부는 이번 한-칠레FTA타결로 양국간 교역규모가 향후 2005년도에는 지금보다 두 배로 대폭 증가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그리고 칠레의 내수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한국과 칠레간 자유무역협정체결이 한국의 제조업 부문의 생산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수송 장비, 금속제품 및 전자제품 등의 생산은 소폭 증가하고, 나머지 제조부문의 생산규모는 감소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으나 자동차를 포함한 수송 장비를 제외한 나머지 제조업부문의 생산규모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금액기준으로 가장 높은 생산증가를 보이는 품목은 수송 장비부문으로 3억 5천만 달러의 생산증가가 예상된다. 생산 감소가 예상되는 부문으로는 피혁제품, 의류, 목제품, 섬유, 비철금속 등이며, 금액기준으로 볼 때 생산감소폭이 가장 큰 부문은 비철금속이 될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생산감소액은 8,700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나머지 부문의 생산감소액은 4,000만 달러 미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소비패턴에 대한 영향도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되나, 생산에서와는 달리 소폭이지만 제조업 모든 분야에 대한 소비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화학, 고무 및 플라스틱산업을 제외하고는 소비증가액은 3백만 달러 미만이 될 것으로 나타났다. 칠레와의 FTA가 한국의 소비패턴에 있다.
프랑스의 와인에 대하여...1. 서 론프랑스와 관련된 보고서를 쓰기에 앞서 주제가 너무나 방대해서 주제를 설정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것은 에펠탑, 개선문 같은 건축물이나 예술, 관광, 패션, 영화 등 수없이 많은 것들이 있으나, 뭔가 남들보다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결국 여러 번의 고심 끝에 결정하게 된 것은 프랑스의 와인이다. 와인을 적당량 마시게 되면 건강에 좋다는 말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자, 그럼 프랑스의 와인을 한번 음미해보자.2. 본 론(1) 와인이란?넓은 의미에서의 와인은 과실을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 함유 음료를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신선한 포도를 원료로 한 포도주를 의미하며, 우리나라 주세법에서 역시 과실주의 일종으로 정의하고 있다.와인의 어원은 라틴어의 비넘(Vinum) 으로 포도나무 로부터 만든 술이라는 의미로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와인을 뜻하는 말로는 이태리의 비노(Vino), 독일의 바인(wein), 프랑스의 뱅(Vin), 미국과 영국의 와인(Wine) 등이 있다.와인은 다른 술과는 달리 제조과정에서 물이 전혀 첨가되지 않으면서도 알코올 함량이 적고, 유기산, 무기질 등이 파괴되지 않은 채 포도 성분이 그대로 살아 있는 술이다. 실제로 와인의 성분을 분석하면 수분 85%, 알코올 9-13% 정도이고 나머지는 당분, 비타민, 유기산, 각종 미네랄, 폴리페놀로 나뉘어 진다. 따라서 와인의 맛은 토질, 기온, 강수량, 일조 시간 등 자연적 조건과 포도 재배 방법 그리고 양조법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나라마다, 지방마다 와인의 맛과 향이 다른 것이다. 서구 문명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와인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플라톤의 말처럼 인간에게 신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2) 와인의 역사기원전 6000년경 과일 압착 시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유물과 기원전 4000년경 와인을 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로 보아 와인의 역사는 기원전 4000년경 전에 시작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포도재배과정이 그려진 고대 이집트의 벽화와 아시리아의 유적, 페르시아의 진흙 그릇 등을 통해 기원전 약 3500-3000년경에는 와인이 많이 음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와인을 '신의 축복'이라 말하는 그리스는 기원전 600년경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포도와 와인을 전해 받은 유럽 최초의 와인 생산국이었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뒤를 로마가 이어나감으로 포도재배지역은 확장되어졌다. 특히 로마는 식민지를 넓힐 때마다 포도재배와 와인양조를 하게 하였고 와인양조기술을 발달시켜 대량 생산을 가능케 했다중세시대에 와서는 교회의 미사나 성찬용 또는 의약용으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포도재배나 와인양조기술이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대형 와인공장이 생기고 교회에서 필요한 양보다 많은 양을 생산하여 주된 수입원이 되기도 하였다. 한편 영국에서는 와인소비가 갑자기 급증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헨리 2세가 보르도의 앨러너 공주와 결혼하면서 보르도가 영국령 같이 되어 와인이 세관 통관 없이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의 와인은 배고픔과 통증을 잊게 해주는 하나의 수단인 동시에 물 대신 마시는 음료로 사용되어졌다.근대에 들어서는 생활의 향상과 명문 와인의 등장, 병에 넣어 보관하는 방법, 편리한 운반 등으로 인해 와인의 보급은 물론 소비량 역시 크게 늘어났다. 또한 1679년 프랑스 동 페리뇽 에 의해 샴페인 제조법이 발견되었고 와인병의 마개로 코르크의 사용이 일반화되어졌다. 이 때부터 품질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으며 유럽 전 지역뿐만 아니라 신대륙에서도 와인의 수요가 급증하여 주요한 무역상품이 되었다.한편 18세기 후반 미국에서 수입된 야생포도나무의 뿌리에 있던 피록세라선충 이라는 기생충이 유럽전역의 포도원을 황폐화시키는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저항력이 강한 미국산 포도묘목과 유럽 포도묘목의 접붙이기로 해결할 수 있었고, 1860년 미생물에 의해 발효와 부패가 일어난다 는 사실이 파스퇴르에 의해 발표되어 효모의 배양, 살균, 숙성에 이르는 와인제조방법이 크게 발전을 이루었다.포도 재배와 압축기, 여과기 등 양조기술의 발달로 훌륭한 와인이 많이 생산되어졌는데, 1935년 프랑스에서는 와인에 대한 규정 AOC를 제정하여 와인의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해 세계적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잇따라 이태리, 독일, 미국, 호주, 스페인 등이 비슷한 와인법을 시행해 와인의 품질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또한 교통의 발달로 와인의 생산과 교역이 활발해졌고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발전됨에 따라 이들 지역에도 와인이 확산되고 있다.오늘날 와인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 전통 와인 생산국들과 미국, 칠레,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 약 50여 개국에서 연간 250억 병이 생산되고 있다.(3) 와인의 제조과정와인의 제조과정은 크게 포도를 수확해서 열매를 분리 및 파쇄하는 과정, 포도쥬스를 만들고 발효하는 과정, 숙성과 와인의 병입 과정으로 이루어진다.1 화이트 와인의 제조과정화이트 와인은 잘 익은 청포도와 껍질을 나중에 제거하는 적포도로 만드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포도 수확(포도원) 공장 제경, 파쇄(줄기를 골라내고 포도 으깸) 압착 쥬스 발효 앙금 분리(걸러내기) 숙성 여과 병입 코르크마개 병저장 출하2 레드 와인의 제조과정레드 와인은 적포도로 만든다. 화이트 와인과 달리 붉은색이 중요하므로 포도껍질에 있는 붉은 색소를 많이 추출해서 와인을 만들어야 하므로 화이트 와인 제조 방법과 좀 다르다.포도 수확(포도원) 공장 제경, 파쇄 전발효 압착 후발효 앙금 분리 숙성 여과 병입 코르크마개 병저장 출하(4) 와인의 종류와인의 색깔, 맛 향은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이렇듯 다양한 와인의 종류를 몇 가지 기준에 의해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1 색깔에 따라- 화이트 와인(white wine)화이트 와인은 잘 익은 청포도는 물론이고, 일부 적포도를 이용하여 만드는데, 포도를 으깬 뒤 바로 압착하여 나온 쥬스를 발효시키므로 맛이 순하고 상큼하다. 일반적인 알코올 농도는 10-13% 정도이며, 8 정도로 반드시 차게 마셔야 제맛이 난다.- 레드 와인(red wine)적포도로 만드는 레드와인은 붉은색이 중요하므로 포도껍질에 있는 붉은 색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씨와 껍질을 그대로 함께 넣어 발효하므로 붉은 색소뿐만 아니라 씨와 껍질에 있는 타닌 성분까지 함께 추출되므로 떫은 맛이 난다. 일반적인 알코올 농도는 12-14% 정도이며, 상온(18 -20 )에서 제맛이 난다.- 로제 와인(rose wine)핑크색을 띠는 로제와인은 레드 와인과 같이 포도껍질을 같이 넣고 발효시키다가 어느 정도 색이 우러나오면 껍질을 제거한 채 과즙만을 가지고 와인을 만든다. 보존기간이 짧으면서 오래 숙성하지 않고 마시게 되는 로제 와인은 색깔로는 화이트 와인과 레드와인의 중간이라 하지만, 맛으로 보면 오히려 화이트 와인에 가깝다.2 식사 시 용도에 따라- 식전용와인(apertif wine)본격적인 식사를 하기 전에 식욕을 돋구기 위해서 마신다. 한두 잔 정도 가볍게 마실 수 있게 산뜻한 맛이 나는 화이트와인이나 샴페인, 셰리 등을 마시면 좋다.- 식사중와인(table wine)보통 '와인'이라고 하면 식사중와인을 의미한다. 테이블와인은 식욕을 증진시키고 분위기를 좋게 하는 역할 외에도 입안을 헹궈내어 다음에 나오는 음식의 맛을 잘 볼 수 있게 해준다.- 식후용와인(desert wine)식사후에 입안을 개운하게 하기위해 마시는 와인으로 식사 후에 약간 달콤하고 알콜 도수가 약간 높은 디저트와인을 마신다. 포트나 셰리가 대표적인 디저트와인에 속한다.3 당분에 따라맛은 포도즙 내 당분이 완전 발효되지 않고 남게 되는 잔당에 의해 느껴진다. 레드와인은 대부분 드라이한데 색깔이 짙을수록 드라이한 경향이 있고, 화이트와인은 색깔이 엷을수록 드라이한 성향을 띤다. 그 중 크게 단맛의 유무에 따라 분류해 볼 수 있는데 드라이 와인과 스위트 와인, 그리고 중간격인 미디엄드라이 와인으로 나눌 수 있다.- 드라이와인(dry wine)포도 발효시 천연 포도당이 모두 발효하여 단맛이 거의 나지 않는다.- 미디엄드라이와인(medium-dry wine)드라이와 스위트의 중간으로 약간의 단맛이 난다.- 스위트와인(sweet wine)드라이와는 반대로 발효시 천연 포도당이 남아 단맛이 난다. 주로 식후 디저트와 함께 마신다.(5) 프랑스 와인의 특징와인의 질과 양에서 세계 제일을 자랑하고 있는 와인국가인 프랑스는 와인의 전통 기술유통 식문화에 대해서도 최대의 선진국으로 세계 와인의 기준이 되고 있다. 보르도, 부르고뉴, 샹파뉴, 론느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산지가 갖가지 타입과 개성을 가진 와인을 만들고 있어, 타국가들의 추월을 허락치 않고 있다.프랑스 와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포도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기도 하지만, 일찍부터 품질관리체계를 확립하여 와인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와인은 지방행정부의 법률에 의해 규제를 받는데, 이것이 1935년에 제정된 유명한 원산지호칭통제법(AOC)이다. 이 제도는 전통적으로 유명한 고급 와인의 명성을 보호하고 그 품질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 유명한 포도밭의 포도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그 지명을 도용하는 행위나, 반대로 유명한 포도원이 다른 곳에서 포도를 구입하여 와인을 제조하는 행위를 통제하여 정직한 업자를 보호하고, 소비자에게 올바른 와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랑스 영화 100년1. 프랑스 영화의 특징프랑스 문화의 다양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프랑스 영화계를 지켜볼 때 주제, 기호, 인적자원 이 세 가지의 다양성만은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많은 프랑스 영화 중에서 색다른 여러 가지 주제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가끔씩 일반적인 상상 밖의 오리지널한 주제가 발견된다. 여류감독 로랑스 페레라 바르보사 의 '난 사랑이 싫어'가 좋은 예이다. 한 여의사가 환자들과 겪는 일상적이고도 독특한 모험을 통하여 에이즈와 사랑, 죽음에 대한 고찰을 담은 영화이다. 이 영화의 독창성은 마치 현미경을 들고 세계를 관찰하는 듯한 감독의 형안과 세밀함에 기인한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 가 '확대(Blow up, 1967) 에서 돋보기를 들고 사회를 연구한 것에 비교한다면 지나친 일이지만, 적어도 그러한 주제에 관심을 갖는 감독의 관찰력만큼은 높이 살만하다. 이러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시선과도 관련이 없지 않기에 관객들의 기호도 거론되는 것이다.파리의 소극장은 영화의 발전에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을 남겼다. 뉴욕의 대부분의 소극장들이 문을 닫은 지금, 파리의 소극장들이 아직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은 한마디로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기호가 다양하다는 증거이다. 핀란드의 시인 아끼 가우리스마끼 , 미국의 할 하틀리 , 이란의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등의 감독들은 적어도 파리에서 만큼은 흥행실패를 겪지 않는다. 캐나다의 아톰 에고이얀 과 미국의 짐 자무쉬 의 고정 관객 확보능력도 무시하자 못한다. 이러한 관객기호의 다양성은 관객들의 수준 외에 영화유통 구조의 활발함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다양한 영화인력 확보도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아주 가끔 엉뚱한 곳에서 뛰쳐나오는 감독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재작년 공장에서 일하던 두 노동자가 보잘 것 없는 제작비로 장편영화 '차가현상서(Etat des lieux, 셋집에 들 띠의 장소 조사) 를 만들어 화제가 된 일도 있다. 올 깐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웨스턴'의 도 갖은 잡일을 다했던 노동자 출신의 쁘와리에 는 이 영화에서 소박한 세계를 멋진 정치영화로 만들어 내 올 프랑스 영화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손색이 없는 영화가 되었다. 배우 출신의 브리짓트 루앙 도 영화에는 뜻을 두지 않았던 정치학도였다. 프랑스 최고의 정치학부인 씨앙스 포(Science-po) 를 중퇴하고 배우의 길로 뛰어들어 , 등의 많은 영화에 출연하였다. '교미 후, 슬픈 동물' 은 '바다 저편(Outremer, 1990) 에 이은 그녀의 두 번째 연출 작품이다. 이러한 다양한 인력들은 영화와 대중의 밀접한 관계의 산물임에 틀림없다고 보여 진다. 정부의 지원도 큰 역할을 한다. 지금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영화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에 제작비를 오청하고 있다.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영화의 문이 침체를 딛고 일어선 프랑스 영화의 강점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2. 프랑스 영화의 역사1) 1890년대-뤼미에르와 멜리에스(Les Lumiere et Georges Melies)뤼미에르 형제와 조루주 멜리에스 에 의해 시작된 프랑스 영화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먼저 영화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1829년 '잔상'이라는 생리적 현상이 알려지면서, 많은 과학자들은 잔상의 효과를 전달하는 기계인 카메라의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최초의 실용적인 키네토스코프라는 카메라를 에디슨이 발명했지만 연구실안에서의 연수로 그쳤다. 자신의 발명품인 원통형 축음기에 시각적 부수물을 덧붙이려는 바램으로 카메라를 발명한 그는 영사기에는 무관심함으로 대중성을 무시하고 무한한 상업적 가능성도 생각 못했다. 그 후에 '시네마토그라프'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는 거리로 나가 실제 생활을 찍었다. 영화의 상업적인 면을 간파한 그들은 최초의 영화유료 상영을 해내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찍으며 일본, 중국 등지에도 영화를 보급시켰다. 뉴스나 르포처럼 사건 그 자체를 그대로 반영하는 영화의 의식을 정립한 그들은 다큐멘터리의 정신을 개척하여 현실임직함(vraisemblance)을 추구하였다. 뤼미에르 형제는 1895년 (Sortie des usines Lumiere), (Arrivee de congressistes a Neuville-sur-Saone), 등 여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멜리에스 는 영화에 최초로 극적인 이야기 요소를 가미하였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인 눈속임을 이용해서 페이드/아웃, 디졸브 등의 다양한 편집 기술을 개발하였고 트릭 영화의 초기 장르를 열고 특수효과의 무한한 발전의 기초를 닦았다. 손으로 필름에 직접 염색을 하는 방법을 개발한 그는 마술사 출신답게, 특별한 상상력을 가지고 그것을 영화라는 매체에서 자유롭게 펼쳤다. 멜리에스는 (L'Escamotage d'une dame chez Robert Houdin, 1896), (Le voyage dans la lune, 1902) 등을 발표하여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2) 1900년대-파테와 고몽 그리고 필름 다르(Pathe, Gaumont et Film d'art)이에 자극을 받아 영화의 기업성에 착안하여 파테사 와 고몽 등의 여러 영화제작사가 설립되었다. 특히 파테사는 1910년경까지 멜리에스를 능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영화사까지도 앞지르는 맹렬한 기세로 영화산업을 정착시켰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필름 다르사 도 발족하여 코메디 프랑세즈(Comedie fracaise)의 배우들을 출연시키는 영화를 제작, 대중적인 흥행물로부터 영화를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리면서 새로운 관객층을 확보하는데 이바지하였다. 제1회 작품은 1907년에 제작된 (L'Assassinat du juc de Guise)이었으며, 같은 해에 에밀 콜 은 최초의 에니메이션영화를 만들었다. 1909년의 단편 란데 의 (Zigomaar), 1913년 발표된 루이 푀이야드(Louis Feuillade) 의 (Fantomas)는 활극영화의 효시로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파테사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영화계도 거대한 미국 영화 자본의 공세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3) 1910년대-포토제니(Photogenie)1917년 루이 델뤼크 는 '영화는 그 시대의 다른 예술, 미학 운동과 결합시켜야 한다. 영화도 시나 미술처럼 예술로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포토제니 이론을 제창하면서 '포토(사진)'와 '제니(정령)'의 통합을 주장하였다. 영화는 빛과 그림자에 의한 오케스트레이션, 곧 시각에 호소하는 음악이 내적인 생명을 불러일으킨다는 포토제니파 를 형성하였다. 아벨 강스(Abel Gance)는 대표작 (La Roue,1923)에서 기관차가 질주하는 속도를 역동적으로 컷백 하는 등 시각적 표현기법을 구사하였고, (Napoleon, 1925)에서는 3면 스크린을 사용하여 대형영화를 지향하는 대작도 완성시켰다. 루이 델뤼크(Louis Delluc)도 (Silence, 1920), (Fievre, 1922)을 통해 자신이 주창한 이론을 구체화시켰으며, 여류감독 제르멘 뒬리크(Germaine Dulac) 는 (La Fete espagnole, 1919)를 발표하여 완전영화 또는 순수영화를 지향하면서 영상의 순수성을 추구하였다.4) 1920년대-전위 영화운동(L'avant-garde francaise)1920년대의 시각주의는 문학이나 연극과도 또 다른 영화의 독자적인 미학 추구였지만, 그와 동시에 회화나 문학에 있어서의 다다이슴(Dadaisme)이나 쉬르레알리슴(Surrealisme)의 영향을 받아 영화가 전위 영화운동으로까지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무의식의 세계, 꿈이나 환상, 공포 등 내적인 비전을 표현하고 의식의 합리적인 측면을 대상화하는 쉬르레알리슴 영화는 르네 클레를 의 (Entr'acte, 1924), (Un chapeau de paille d'Italie,1928), 만 레이(Man Ray)의 (L'Etoile de mer, 1928), 루이스 부뉘엘(Luis Bunuel) 과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의 (Un chien andalou, 1928) 등 많은 작품을 낳았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운동은 발성 영화의 출연과 함께 쇠퇴하였으나, 그 전위적인 실험정신은 영화사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5) 1930년대-시적 리얼리즘과 유성 영화의 황금기1930년대는 세계적인 경제 공황이 시작된 뒤, 독일에서는 나치스가 대두되어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시대에 해당되면, 이 시기를 통해 영화 또한 드라마 속에 자기의식을 투입해 갔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커져가면서 사람들은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최초의 유성 영화인 가 성공한 것도 변화하는 관객들의 관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이다. 프랑스에서도 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갔고, 그 결과 유성영화가 탄생하게 된다. 당시의 감독 르네 클레르(Rene Clair) 는 유성 영화의 첫 작품 (Sous les toits de Paris, 1930)을 감독하였고, 이어서 (A Nous la liberte, 1931), (Quatorze Juillet, 1933), (Le Dernier Milliardaire, 1934) 등 사회 풍자극과 서민 영화로 변모해갔다. 또한 이 시기를 통한 연극인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 이나 사샤 기트리(Sacha Guitry) 등의 영화계 진출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점차 그 속도를 더해가는 영화 기술력의 발전과 탄탄한 자본력, 그리고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프랑스 영화는 발전에 가속도를 붙이게 된다. 1930년대는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로 이 당시 제작된 영화들은 프랑스다운 리듬과 프랑스만의 독특한 색깔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장 비고(Jean Vigo) 는 시적 리얼리즘(Le realisme poetique)의 대표 주자로서 (Zero de conduite, 1933), (L'Ataiante, 1933)을 제작했다.또한, 자크 페데르(Jacques Feyder) 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현재와 미래1. 서 론우리나라는 자원빈국으로 전체 에너지수요의 98% 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체 수입액의 16% 이상을 에너지수입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에너지 수요증가율은 연 10% 에 달하여 경제성장을 초월한 증가세를 보여 왔다. 여기다 계속되는 경제 성장과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에너지 소비는 더욱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에너지수요의 증가는 에너지 부분이 국민경제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에너지수입국으로서 양적 경제성장을 추구해온 우리나라가 가질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앞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선진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더 많은 양과 질 좋은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 요구되고 있다. 이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에너지 관련 분야의 개척, 기술개발, 그리고 정책적인 대응이 필수적으로 보인다.본 보고서를 쓰기에 앞서 주제 선정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현재 배우고 있고 좀 더 익숙한 대체 에너지에 대하여 써볼까 하고 고민도 많이 했지만, 고학년으로써 좀 더 생소한 에너지 정책에 대하여도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아서 고심 끝에 에너지 정책에 관한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본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대안을 제시해보도록 하겠다.2. 본 론(1)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현실과 문제점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은 1960년대 초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실시 이후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데 중점을 두고 추진됨으로써, 1960년대에는 정유산업의 시작과 국내 무연탄의 개발로 경제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한 에너지 산업의 기초를 구축하였고, 1970년대에는 2차례의 석유위기를 거치면서 1978년 동력자원부가 발족되어, 에너지원의 다원화와 해외자원개발 등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정책과 에너지절약 및 이용합리화 정책 등이 체계적으로 수립·추진되기 시작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석유와 무연탄 중심의 에너지수급구조에서 원자력, 천연가스 등으로 에너지원의 다원화 시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에너지절약 및 효율향상정책과 해외자원 및 대체에너지개발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1990년대에는 도시가스, 지역난방, 송유관 등 전국적인 에너지 공급 망이 형성되었고, 1993년에는 상공자원부 발족으로 산업정책과 효율적으로 결합되었으며, 화석에너지의 사용에 따른 국내외의 환경규제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국가 및 지역단위의 종합적인 에너지계획이 수립·추진되기 시작하였다.90년대 초까지 에너지정책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국민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공급하는데 중점을 두고 추진되어 왔다. 이에 따른 양적 확대에 치우친 공급중심의 에너지정책은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고, 에너지생산 및 공급, 비축시설을 확충하는데 기여하였으나, 높은 석유의존도를 가져왔고 장기적으로 많은 투자가 요구되는 해외 자원개발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결과를 야기하였다. 또한 에너지산업의 특성상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개입이 불가피하였으며, 이는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에너지절약정책은 소비부문에 대한 절약 및 효율향상 등에 집중되었고, 80년대 후반 이후 집단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에너지효율향상 정책이 산업, 교통, 도시계획 등 관련부문과 효율적으로 연계하여 추진되지 못하였다.사회경제적 요인을 고려하여 낮은 에너지가격정책을 지속함으로써 에너지과소비 구조를 초래하였고, 정부의 가격규제에 따라 에너지산업의 경영효율 저하 및 투자재원의 부족문제를 야기하였다.에너지산업은 대규모 투자비가 소요되는 장치산업이므로 전력, 가스 등은 공기업형태로 운영하고, 석유산업에서의 진입규제를 실시함으로써 초기에는 자원의 효율적인 동원과 안정공급에 기여하였으나, 경제성장에 따라 일부 에너지 산업에서는 규제 및 경쟁 제한에 의한 비효율성이 초래되기도 하였다.(2)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개선책1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변화현재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첫째, 공급위주의 에너지 정책에서 수요관리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한전에서 내놓은 장기전력 수급계획을 보면 2015년까지 국내 발전설비를 지금보다 두 배인 8천만KW 규모로 건설하고 이의 일환으로 고압송전선로도 현재보다 1.8배 증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부족한 에너지를 계속 신규 발전소를 지어 무한정 공급하겠다는 공급위주의 에너지 정책은 대폭 수정되어야 한다. 범국민적 에너지절약 운동의 추진,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과감한 투자 확대, 산업구조의 에너지 저소비형으로의 전환,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 등의 엄격한 수요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야 한다.둘째,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와 원자력발전 위주의 정책을 벗어나 대체에너지의 개발과 보급을 확대해야 한다.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문제 등 심각한 환경문제의 발생과 부존자원의 고갈, 원자력발전으로 인해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능누출과 인류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체르노빌과 같은 중대사고 등의 위험으로 새로운 에너지원의 확보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에 화석연료나 원자력 에너지의 의존성을 줄이고 재생가능하며 자연 순환형인 태양광, 풍력 등의 대체에너지 개발에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여 적극적으로 투자하여야 하며 대체에너지 이용을 확대하여야 한다.셋째, 장거리 에너지 송전정책을 탈피하여 수요지 중심의 지역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현재 원자력발전소 등 대규모 발전소의 경우 300km에 가까운 지역을 송전선로를 통해 송전하게 됨으로써 절반에 가까운 에너지 손실이 생기게 되어 막대한 국부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으며 또한 송전탑 건설로 인해 잘 보전된 산림자원의 심각한 훼손, 전자파 피해, 지역공동체 파괴, 엄청난 추가예산 발생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곳에 대규모 발전단지를 세워 먼 거리를 송전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수요지 중심의 소규모 발전을 하는 지역에너지 정책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2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로의 전환우리나라는 경제규모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지나치게 큰 편인데 주원인은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전체 에너지소비량 중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55.8%로 일본(43%), 미국(26.1%), 프랑스(30.1%)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은 한국의 산업구조가 얼마나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한국사회가 에너지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산업구조가 에너지저소비형 구조로의 전환이 급선무임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음에도 얼마 전 고유가 대응방안에서 내 놓은 정부의 대책은 소비절약과 통제 측면에 의존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잘못된 산업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3 에너지 절약형 생활양식으로의 전환앞에서 정부와 기업들의 잘못된 방향에 대해서 많은 비판을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 시민들이 정부의 정책변화만을 바라보면서 뒷짐을 지고 있기에는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에너지문제는 너무나 심각하다. 월드컵을 축제의 광장으로 만들고 평화적인 촛불 시위로 초강국 미국 앞에 자존심을 세웠던, 세계 언론이 극찬한 빛나는 시민의식을 오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정부당국보다는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즉, 에너지 절약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 에너지절약은 구호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이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갈 때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우리는 중시해야 할 것이다.에너지절약적인 삶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텔레비젼 코드를 보지 않을 때 뽑아놓는 것을 비롯하여 가전제품을 켜고 끌 때 리모컨 대신 직접 손으로 작동하는 등의 노력만으로도 가정에서 쓰는 에너지의 약 10%를 절약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에너지절약이 바로 생활 속의 작은 실천과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생활에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에너지절약 방안은 현재와 같이 기름 값이 비쌀 때 특히 효과를 볼 수 있는 연비가 높은 승용차를 이용하는 방안과 승용차 주행거리를 절반으로 줄이는 운동, 혹은 자발적으로 승용차 10부제 운행에 동참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확대하는 등의 수송에너지 절약 운동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에너지 효율이 1등급인 가전제품을 구입하고, 모든 가정에서 사용하는 조명기구를 절전형으로 교체하는 등의 에너지 효율화를 높임으로써 20% 정도의 에너지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의 전원을 반드시 끄고 플러그를 뽑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실천 방안이다.
생활과 화학 레포트[1] 한줄기 백색광을 유리 prism에 쪼일 때 나타나는 결과를 표현하라.태양이나 전구에서 나오는 빛이 백색광이다. 이것은 그 빛이 전자기 스펙트럼의 가시광선 영역 전체를 차지하는 모든 파장의 광이 섞여 있음을 의미한다.한줄기 백색광을 유리 prism에 쪼이면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이 유리 속에서 다른 속도를 가지고 통과하게 된다. 그 결과로 백색광은 그 성분 색깔로 빨간색을 긴 파장 쪽의 끝으로, 보라색을 짧은 파장 쪽의 끝으로 하는 성분들로 나누어지게 된다.색분해 현상이 공기 중의 물방울을 통과하는 빛에 의해서 일어나면 무지개가 생기게 된다.[2] X-ray와 U 방사선에 대해 논하라.X-ray와 U 방사선은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 둘 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사진 인화지에 작용한다. 그리고 우라늄의 방사선과 X선은 공기에 전기를 띠게 한다. 그러나 우라늄의 방사선은 X선만큼 장애물을 쉽게 통과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진 인화지에 싸는 검은 종이나 알루미늄의 얇은 판 같은 것은 통과할 수 있지만 사람 몸이나 문, 바람벽 같은 것은 꿰뚫지 못한다. X선이라면 이러한 장애물도 꿰뚫을 수 있다. 즉 이것은 투과성이 클 뿐만 아니라, 물질에 따른 투과성이 다르므로 물질 내부의 사진을 찍는 데 이용될 수 있다. 또한 X선은 전장이나 자장에 의해 굴절되지 않으며, 이의 파장이{{ 10}^{-10 } m정도인 전자기파이다.[3] propane gas의 연소 결과로 나타나는 생성물의 단순한 확인법을 기술하라.propane gas가 연소할 때 burner위에 찬 주전자를 올려놓으면 주전자 바깥쪽에 물방울이 생긴다. 이것은 propane의 연소배기 속에 수증기가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또, 이 배기를 모아 석회수속을 통과시키면 뿌옇게 흐려진다. 석회수 속에 빨대를 꽂아 입김을 불어넣어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이것은 이산화탄소가 석회수속의 칼슘이온과 결합해서 탄산칼슘의 백색 침전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H}_{2 }O ~~+~~ { Ca}^{ 2+}~~+~~ { CO}_{2 }~~ ~~ { CaCO}_{3 }~~+~~ { 2H}^{+ }이런 과정을 통하여 propane gas가 연소할 때 propane 과 산소가 결합하여 수증기와 이산화탄소를 생성 하면서 동시에 열이 발생함을 확인 할 수 있다.{{ C}_{3 }{ H}_{8 }~~+~~ { 5O}_{2 }~~ ~~ { 3CO}_{2 }~~+~~ { 4H}_{2 }O[4] 위치 에너지와 화학 에너지에 관하여 비교 고찰하라.높은 산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이것은 지구의 인력으로 물이 낮은 데로 끌어당겨지기 때문이다. 이물의 흐름으로 일을 시킬 수 있다. 시냇가에서 물레방아를 돌리는 것과 수력발전소에서 터빈을 돌려서 발전을 하는 것도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물이 높은 곳에 있을수록 많은 일을 시킬 수 있다. 즉, 높은 곳에 있는 물은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갖는 것이다. 이것을 위치에너지(potential energy)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