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뫼르소가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 “입관은 했지만 보고 싶으시다면 뚜껑을 열어 드리지요” 관 앞으로 다가가려는 그를 나는 가로막가로 막았다.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네”-> 죽음에 무덤덤함.* 그러자 문득 이렇게 일요일 또 하루가 지나갔으며, 어머니의 장례도 끝이 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결국 달라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모드는 것은 언제나와 같았다. -> 죽음도 일상의 한 사건일 뿐 특별한 것이 되지 못한다.* 나는 처음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자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을 알고 있다, 뭐 누구나 다 한 번씩 겪는 일이 아니냐고 했을 떼에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 누구나 한 번은 겪게 되는 보편적인 일.* 물론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으나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단 말인가. 또한 건전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어느 정도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바랄 때가 있는 법이라고 나는 덧붙여 말했다. ->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바란다?* 나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으로서 그 비정한 메커니즘으로부터 벗어난 예가 있는지, 가령 사형 집행을 당하기 전에 종적을 감추었다든가 탈출을 해 버린 예가 있는지에 대해 수없이 자문해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형 집행을 당하기 전에 종적을 감추었다든가 탈출을 해 버린 예가 있는지에 대해 수없이 자문해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형 집행에 대한 이야기에 무관심했던 것이 몹시 후회스러웠다. 그런 문제에는 항상 커다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하게 될 지 모르는게 아닌가. -> 평소에는 죽음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죽은 후, 사람들은 나를 곧 망각하리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죽고 나면 사람들은 더 이상 더 이상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그런 일은 생각하기 괴로운 일이었다고,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라도 나중에는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 죽고 나면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이다.2. 뫼르소는 무엇에, 왜, 반항하는가?* 나는 아직 선임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반드시 세워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사건이 간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흔히 감정보다 육체적인 욕구가 우선하는 일이 많다는 나대로의 사정을 그에게 강조했다. -> 보편적인 사람들의 태도와 반하는 행동임.* “아무튼 양로원의 원장과 직원들이 증인으로 출두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에게 상당히 불리한 결과가 초래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지금의 내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나는 역설하였다.* “당신은 왜 이미 죽은 시체를 또 쏘았습니까? 도대체 왜?” 그 질문에는 나도 답변할 수 없었다. ...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고의로 죽인 것이 아니었음.* 나는 잠시 생각을 하고 난 후 뉘우친다기보다 차라리 귀찮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기를 꺼림.* 종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함.3. 뫼르소의 죽음에 대한 태도 변화에 대해 살펴보자.(실존주의가 무엇인지.)* 최소한 한 번쯤은 운명의 바퀴가 멎어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전락 속에서 우연한 행운을 한 차례쯤은 만날 수 있을 텐데. 단 한번만이라도, 어떠한 의미에서건 그것만으로 내게는 충분하였으리라. 그 나머지는 나의 마음으로 넉넉히 보상될 수 있었을 것이다. ->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함.*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그들이 그 일을 하기 위해 흔히 선택하는 시간이 내가 알기로는 불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자정이 지나면서부터 나는 그들을 기다린다.-> 긴장함.* 결코 나의 심장은 터지지 않고 다시 한 번 나는 24시간을 얻을 수 있다.* ‘그래, 죽을 수밖에 없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죽을 것은 당연한 사실이겠으나, 그러나 인생이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결국 나이 삼십에 죽든지 육십에 죽든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사실쯤은 나도 모르지 않는다. 어떤 경우든 그 후에는 다른 남자들, 다른 여자들이 살아갈 것은 마찬가지요, 그리고 그것은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죽건, 혹은 20년 후에 죽건 나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그 때 그러한 나의 지론에 있어서 약간 거북스러웠던 것은, 앞으로 올 20년의 생활을 머릿속에 그려 볼 때, 마음속에 일어나는 무서운 용솟음이었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함.
** 토의 주제1. 중용에 나타난 중요 개념인 천명, 천도, 성, 교, 도, 중, 화의 의미에 대해서 논의하자.天命(천명): 하늘의 명령天道(천도): 하늘의 뜻. 자만하면 손실을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받는 것이 천도이다.성城 도덕실천과 관련된 단어이다. 우리가 스스로 성찰하여 볼 수 있는 것이다.인의예지와 도덕의 본성이다.性 천명과 천도로부터 성을 제시하였으므로 절대 보편 것인 것이다.주자는 이, 요한은 로고스가 성이라고 했다.敎(교): 배워서 아는 것. 진실 무망함으로 말미암아 선에 밝아진다는 것은 진실무망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道(도): 형이상학적인 규율이며 만물의 본성이다. 모든 존재물이 준수해야 할 법칙이다.중화다. 겉으로 드러나되 반드시 정도껏 드러난다. 기울지도 치우치지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中(중): 희노애락의 감정이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는 순수한 본연의 성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천하 모든 것의 가장 큰 근본이다. 중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무나 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안에 완벽하게 질서 지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중은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은 상태,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이다.역경에서는 二와 五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효를 좋은 위치 혹은 바른 위치 혹은 바른 위치로 삼고 있다. 역전에서 중을 덕으로 삼고 있다.안으로 사려하여 마음을 다하는 것이며 스스로 그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즉 진심을 추구하는 것이다. 합당과 합리의 의미이다.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중절하는 활동에서 초월적 체증을 통하여 파악한 것이다.和(화): 희노애락의 감정들이 모두 일어나 모두 절도에 맞는 상태이다.천하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도이다.본성에 따라 행하면 자연스럽게 달도인 화에 이르게 된다.화의 경계는 인간 본성이 인위적인 조작없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상행이며, 한점의 기괴하고 특이한 점도 없는 곳이다.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 서도를 전개하면 도덕본성은 자연스럽게 현현되어 응사접물시에 어떠한 괴리도 발생하지 않고 모두 도리에 합치할 것이다. 이 때 보여지는 천지만물은 모두 화목하고 대립이 없는 천지 만물일 것이다. 이 경계가 중화의 화이다.2. 중용에 나타난 天命(天道) 과 人性(德)의 관계와 윤리적 의미에 대해서 논의하자.천도: 城으로써 설명한다. 진실 무망한 것이다. 영원히 활동을 멈추지 않는 실체이다.초월적인 면에서는 인간존재의 본체이며 내재적인 면에서는 인간의 본성이다. 동시에 절대 보편적인 것이다. 천도는 하늘 뜻에 따라 살려는 것이다. 덕이란 것은 마음이 올바르고 인도에 합당한 일과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일을 말한다.천도와 덕은 서로 별개의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하나의 원리에서 출발한다. 겸손할 수 있어야 그만큼 덕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도를 따르는 것이 인간의 도라면, 천하 만민이 함께 인간의 도를 실현하여 평화와 행복을 찾게 하는 것이 정치의 도이기 때문이다.3. 하늘의 속성인 誠과 인간의 인간다움으로서의 誠之에 대해서 논의해보자.城 은 충의 또 다른 표현이다.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성찰하여 진심하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진실무망한 정신이 표현되는데 이것이 바로 城이다. 모든 일에 정성 된 것, 또는 성실한 것으로 사람의 바탕 또는 성품이다. 즉, 하늘의 도로서 올바른 도를 지키기 위하여 미리미리 대비하는 것, 곧 정성 됨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성이란 하늘의 도이고, 성을 실현하기로 하는 것을 사람의 도리로 생각했다. 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을 강조한다. 선을 배우는 것은 성이 실현을 위한 것인데 이 성이야 말로 중용의 중심이 된다.대학에서는 생각을 건실 무망하게 하는 수양공부라고 하였다.城之: 아직 진실무망하지 못하매 진실무망하기를 바라는 것을 일컫는 말. 사람이 마땅히 할일이다. 하늘의 길에 도달하고자 하는 행위이다. 정성되게 하는 것이다. 정성됨은 하늘의 도라 했는데 도는 마음 또는 근본 이치에 따라 발휘되는 것으로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 인간다움으로서의 성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효도나 우애, 맡은 일에 대한 성실함 들을 갖추는 일에 노력을 한다면 성지를 실행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성지를 실현하면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고 남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극한 정성을 갖춘 사람은 없다고 한다. 성지의 실현을 위해서는 성을 따르는 것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내용배우지 않은 지언정 배울 바에는 능치 못함을 그냥 두지 않고묻지 않을 지언정 물을 바에는 알지 못함을 그냥 두지 않고바라지 않을 지언정 바랄 바에는 없이 못함을 그냥 두지 않고가리지 않을 지언정 가려낼 바에는 밝지 못함을 그냥 두지 않고행하지 않을 지언정 행할 바에는 착실치 못함을 그냥 두지 않아서남이 한 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열 번하고남이 열 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천 번한다.가 城之의 내용이다.이 같이 삶에 임하면 그 바라는 바가 미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아쉬울 것이 없다. 城 之의 삶을 산 대표적인 분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4. 중용의 의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mentotes)을 비교하여 논의해보자.* 동양의 중용-주자: 어디에도 편벽되거나 치우침도 없으며, 또한 지나침과 모자람도 없는 평상적인 도리라고 했다. 도리는 평범한 것이지만 군자만이 실현 할 수 있다. 광대하고 고명한 것이기에 지덕이라고 하였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요약1.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이유구원이란 포괄적인 개념으로 모든 악과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러한 악과 고난의 상태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의 대가로 죽음의 결과를 얻게 되는데 죄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옳지 않은 태도이다.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의존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의존한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종을 하지 않고 인간이 자기 주장의지를 갖고 독립을 한다면 극도로 제한된 자원 속에 갇히게 된다. 자기주장의 의지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의지이며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든다. 죄는 하나님, 이웃, 진정한 자아로부터의 소외를 가져 오며 죄의 종류로는 원죄와 실행 죄가 있다. 스스로 닫아 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거리가 생기고 고난의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구원이란 인간이 이러한 악과 고난의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구원에 대해서 살펴보겠다.2.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만일 인간이 스스로의 자원으로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고 영위할 수 있다면 구원받아야 할이유가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 밖에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의 힘이 와야 한다. ‘복음’은 이러한 제한된 자원 속에서 죽어 가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 밖에서 우리를 위하여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다는 ‘기쁜 소식’이다. 그 구원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다.3.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구원의 사건이다.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 예수님께서는 죽고 부활하심을 통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기를 원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자로 오셨다. 그리고 인류의 죄를 짊어지는 대속 제물이 되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 은 예수님이 옮았다는 것을 뜻한다. 부활은 동시에 예수님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복음의 유일성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속에 있다.4. 예수의 구속적 죽음에 대한 해석의 성경적 범주들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십자가에서 일어났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사건 안에서 발생한 구원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신약성경은 이 구원을 구약의 배경 속에서 구약의 구속 방법을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제사구약의 속죄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구원에 대한 그림자였다. 그림자였기 때문에 구약의 그 제사는 매년 되풀이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속죄적 죽음을 그러한 구약의 제사 그림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제사는 죄를 덮고 죄에 대한 하님의 진노를 풀어 버리는 기능을 한다. 이것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속죄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화해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덮고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버린 결과로 일어난 것이 ‘화해’이다. 하나님과 우리가 더 이상 갈등하지 않는 관계를 갖게 된 것이다. 하나님과의 화해 결과로 인간은 하나님과 친구 관계가 되어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끌어다 쓰게 되었다.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 것이다.- 구속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에 대한 몸값을 치르게 되었다. 죄의 노예가 된 우리의 대가를 예수께서 지불하고 사셔서, 우리를 죄와 사탄과 율법과 죽음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 시키셨다. 그 구속의 결과로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 새 언역새 언약은 우리가 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 자녀임을 뜻하는 것이다. 새 언약은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영원히 내 것으로 누리면서 살 수 있게 해준다.5. 하나님의 구원의 주관적 적용우리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일어난 하나님의 객관적인 구원 사건이 우리에게 효력을 발생하게 하는 수단이며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구원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은 선포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내포된 의미를 하나의 극으로 표시한 것이 세례이다. '주관적 구원사건‘에 대한 성경의 은유들을 살펴보겠다. 의인 됨이란 심판관에 의해 무죄 석방을 받는 것이며 죄에 대해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진정한 의인이 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굴복하고 하나님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 이루신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 곧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화해함은 하나님과 인간의 적대하는 관계에서 친구 관계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객관적인 화평 상태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더 이상 두려하지 않는 주관적인 평안함이 유래된다. 하나님의 아들 됨은 가족 관계에서 오는 것으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됨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하나님의 풍성한 삶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죄에 죽고 새로운 삶으로 부활했다는 구원의 실재를 나타낸다. 즉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올바른 관계를 갖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6. 구원의 종말론적 구조구원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 시제가 있다고 하며 성경에서는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구원받을것이라고 미래형으로 기록된 곳도 있다. 구원의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도 알 수 있으며, 성령은 구원의 첫 열매에 대한 보증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와 인생의 무가치과 허무감에서 해방되어 기쁨과 평화와 앞을 바라보는 소망이 생긴다. 믿음은 하나님의 자원으로 살아가는 삶의 실재이며 고난은 믿음이 실재화되어 가는 과정이다. 제자도는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난은 믿음이 실재화 되어 가는 내 속의 옛사람이 죽는 과정이고, 제자도의 삶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된 그 영광의 형상을 점점 닮아 가는 과정. 곧 그리스도인의 성화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제자도의 고난은 동시에 우리의 속사람이 곧 새로운 부활의 새 생명이 날로 새로워지고 강건해 가는 과정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에 이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7. 예정과 지키심하나님의 구원의 처음과 끝의 관점으로 생각해보겠다. 우리는 구원을 논할 때 태초라는 시점에서부터 시작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원 사건부터 논해야 한다.예정은 태초를 논하는 것이며 예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올바른 관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예정 교리는 ‘역사의 중심’에서부터 논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계시의 빛에 비추어서 이해해야 한다. 환하게 안다면 잘못된 것일 가능성이 많으며 희미하게나마 나타난 그것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예정 교리는 성경대로 믿음의 현재라는 시점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진 현재에서 되돌아 봐야 한다. 요한복음에는 예정의 교리가 잘 나타나 있는데, 예수님이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기들이 구원으로 예정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거부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멸망으로 예정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다.예정교리는 오늘 복음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믿음의 현재에 의해 이해되어야 하는 교리이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예정의 교리가 없으면 믿음이 내가 하는 자유 의지의 결단에 의해 생기고 구원이 내 믿음에 달려있다. 예정의 교리를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로마서 8장은 구원의 첫 열매를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할 때까지 우리가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며 고난을 이겨서 그리스동딘들에게 위안과 확신을 주기 위해 선포되고 있다.
- 범우사* 감상문인간존재에 대한 생각어릴 때 봤던 만화에서는 변신이라는 말이 참 많이 나왔었다. 보통 때는 평범했던 주인공이 변신을 하고 나면 뛰어난 능력을 갖게 되어서 어려운 일을 다 처리하고 행복하게 끝나는 내용이 그 주를 이루었다. 그래서인지 변신이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그래서인지 카프카의 ‘변신’은 낯설게 느껴졌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면서 자신이 벌레가 되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멀쩡했던 사람이 한 순간에 벌레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끔찍하고 절망스러워서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반응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벌레가 된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그 자체를 걱정하기보다는 일에 대한 걱정을 했다. 집안의 생계를 다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데 일을 못하게 되니 걱정이 된다는 생각이 더 앞섰던 것이다. 그는 벌레로 변하기 전까지는 주변의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을 했다. 판매사원이라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맡은 일에 대해 회의적이기는 했지만 당장 갚아야 할 가족의 빚을 위해,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에 대한 압박감이 너무 지나쳐서 벌레가 되었을 때 특별히 놀라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딱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데도 이해 못할 만큼의 무딘 반응이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많은 가장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아버지는 하고 싶으셨던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직업에 종사하시고 성취욕도 있으신 분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보다나은 삶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면 죄송하고 미안하고 그런데 다른 사람들 중에는 더 힘든 사람들이 분명히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감당하기에는 벅찬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잊어버리고 편안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립해야 할 나이임에도 아직까지 부모님께 의존하고 그에 비해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적었던지라 반성이 되었다. 요즘 가족을 위하는 마음을 조금씩 기르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속도와 깊이를 확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잠자가 변신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부모는 그에게 별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누이동생이 그를 챙겨주게 되었다. 그가 특히 예뻐했던 동생은 처음에는 그를 잘 챙겨준다. 음식도 챙겨주고 방도 정리해준다. 그렇긴 했지만 그를 예전의 인간일 때와는 다르게 대하며 점점 그를 귀찮아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오빠로 인정하길 거부하며 그가 죽어버리기를 바란다. 부모들도 그를 귀찮아하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도 음식을 거부하면서 죽어버린다.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한 순간에 필요 없는 존재, 방해되는 존재가 되어버렸고 가족들의 태도를 통해 소외를 나타내었다.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의 고독과 소외를 나타낸다고 사람들은 얘기한다. 그게 이해는 된다. 사회에는 필요할 때는 이용하다가도 그렇지 않으면 소외시켜버리고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깐 말이다. 그렇지만 그게 절실히 와 닿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가장가까이에 있는 우리 부모님은 나중에라도 나에게는 필요한 존재이실 거라는 확신도 있고 가까이에서 소외의 경우를 접해 본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두려운 것은 내가 나중에 그런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다. 사실 잠자의 경우는 극단적인 경우이니 벌레로 까지 치 닫을 일은 없을 것이고 필요 없는 존재를 얘기하는 것인데 일단은 필요 없는 존재까지 이르지 않도록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약한 위치에 놓이게 되더라도 자립할 정도까지는 준비를 해두어서 불쌍한 존재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변신은 어려웠고 별로 와 닿지도 않긴 했지만, 가족과 내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유익했다.* 토론과제 풀이1. 그레고르가 ‘갑충’으로 변한 까닭은 무엇인가?변신에서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한다. 그레고르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혐오스럽다. 만약에 그레고르가 벌레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변했다면 그의 가족들도 그레고르의 편에 섰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상만 해도 소름 돋고, 쓸모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방해까지 되는 벌레라면, 아무도 선뜻 그의 편이 되어 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도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외면한다. 그로 인해서 그레고르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을때의 주위로부터의 고립이나 소외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갑충’으로 변한 존재를 그렸다고 생각한다.어떤 의미에서 가족들이 주인공을 따듯하게 대하고 감사히 여기는 것이 오로지 그가 유용한 역할을 했을 경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수단이라 생각된다. 그가 이제까지 해 왔던 모든 일들과 노력들은 주인공이 갑충으로 변한 이후부터 잊혀 졌고, 단지 거추장스럽고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언제나 가족들만을 생각하면서 그들은 부양해 왔던 위치에 있던 그레고르가 변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냉정한 대우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이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에 속해 있는 한, 이 가정의 이러한 모습, 즉 어떤 기능을 할 경우에만 유용한 인간으로 바라본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2. 그레고르와 가족관계를 통해 현대가족의 문제를 살펴보자.* p.91 '너무 일찍 일어나서 이렇게 바보가 되어 버린 거야. 부모님 때문에 이렇게 참고는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벌써 사표를 던졌을 거야. 부모님이진 빚을 갚을 수 있는 돈만 모아진다면- 그렇게만 되면 나는 단연코 결행할 거야...‘-> 일을 열심히 하며 가족의 생계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일 자체에 대한 의욕은 없으나 생계를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지속하고 있다.* 부모님과 누이동생의 일도 걱정됩니다.-> 가족들을 생각한다.* 벌레로 되었으나 특별히 좌절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동안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누이동생은 영리하다. 누이 동생이 그를 위해 울어주었었다. 돈을 모아 음악학교에 보내려고 했다-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하다.* ‘ 동생은 먹을 것을 갖다 주었다. p.114 그레고르 전용으로 정해놓은 음식인 모양이었다.~ 마음 편하게 식사하라는 그녀의 신호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배려해줌.질려서 죽어주기를 바랬다.-> 현실적임* p.123 처음에는 두 주일이 지나는 동안 부모님은 감히 그의 방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p.125 가구를 치워 버리거나 하면, 우리가 그 아이의 회복을 아주 단념해 버리고, 마치 우리가 더 이상 그 아이에 대하여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이지 않니?... -> 아들이 본래 상태로 돌아오기를 희망함.* 129 소파위에 쓰러져 꼼짝도 않았다.-> 아들의 변신한 태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음.* p.131 그런데~ p.132-> 그레고르의 변신전에는 짐과같은 수동적인 존재였으나 후반에서는 직장을 갖게 되었고 생계에 관여하게 되었음.* p.132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첫날부터 아버지는 그를 최대한으로 엄격하게 다룰 작정인 듯했다. ... 바로 그때 그의 바로 옆에서 무엇인가가 날아오더니 그의 앞으로 굴러갔다. ... 아버지는 폭격을 가할 결의를 굳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 피해를 주는 존재가 되자 매우 싫어함.
‘ 나쓰메 소세키’ 의 마음부자관계를 통해 나타난 세대간 갈등 연구과목담당: *** 교수님이 보고서를 기말고사 대체 보고서로 제출합니다.****년 * 월 * 일 * 요일**** 대학교 ****대학***** 전공***목차제 1장 서론---------------------------------------------------------------31. 연구의 목적 및 방법-----------------------------------------------------32. 선행연구---------------------------------------------------------------3제 2장 본론 --------------------------------------------------------------41. 마음의 시대적인 배경 ---------------------------------------------------41) 메이지시대의 상황 -----------------------------------------------------42) 작가와 시대상황--------------------------------------------------------42. 인물과 부자관계---------------------------------------------------------41) 양친과 나의관계 -------------------- --------------------------------4-52) 선생과 선생의 아버지와의 관계-------------------------------------------53) k와 k의 아버지와의 관계------------------------------------------------6제3장 결론--------------------------------------------------------------6-7참고문헌------------------------------------------------------ 하기도 했다. 생전이나 생후나 일본인들에게 많은 사람을 받아왔으며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이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일본 사회를 잘 그려내면서 올바르게 비평했으며 근대인의 고뇌를 잘 담아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는 [산시로], [도련님], [꿈 열흘밤] 등 많은 작품을 썼는데 그의 작품 중에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 [마음]은 소세키 문학의 결집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 , , 이렇게 세편으로 이루어져있다. 가족 안에서의 관계인 부분관계, 부자관계, 형제관계, 친척관계를 담고 있으며 애정이나 우정에 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연애소설, 교양소설, 동성애 소설 등 다양한 해석이 있어 왔다. 그러한 다양한 해석들을 좀 더 살펴보고 본서에서 다루고 싶은 내용들을 논의해 보겠다.2. 선행연구소세키의 [마음]은 작품의 근거지인 일본을 주축으로 해서 국내에 이르기까지 상당수의 연구 자료와 논문이 발표된 상태이다. 주인공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어 근대 지식인의 고뇌를 다루기도 했으며 메이지 유신 당신의 상황에 초점을 두어서 해석하기도 했다. 등장인물의 에고이즘을 다룬 작품도 있었으며 고향이 지닌 의미에 대해 다룬 연구 자료도 있었다. 그리고 각 세대별로 인물을 나누어 해석한 경우도 있었고 가족 관계 중 부모자 관계를 다룬 자료도 있었다. 본문에서는 부자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서 살펴보겠다. 그리고 작품을 다루기에 앞서 작품이 쓰인 배경과 작가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다.제2장 본론1. 마음의 시대적인 배경1) 메이지 시대의 상황[마음] 은 청일전쟁(1894~1895) 직후부터 메이지 천황과 노기 대장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메이지 유신 시대의 끝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노기 장군님께 죄송하구나. 정말이지 면목이 없어. 아니죠. 저도 곧 뒤를.......,” p.132그 집이란 어느 군인의 가족, 아니 유족이 살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집주인은, 들리는 바로는 청일 전쟁 때인가 언젠가에 죽은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p.162~163그런데 한창 더운 여름에 메이지 천황이 서거했습니다. 그때 나는 메이지의 정신이 천황에서 시작되어 천황에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강하게 메이지의 영향을 받은 우리가 그 뒤에 살아남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라는 생가기 들었습니다. 나는 아내한테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웃으며 상대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나한테 그럼 순사라도 하면 되지 않느냐면서 놀렸습니다.등을 통해 알 수 있는데 메이지 유신은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하나의 대 혁명이었다. 근대 시기로 넘어 과도기적인 시기였으므로 혼란의 시기였다. 이런 시대의 변화는 많은 일본인들에게도 변화와 혼란을 가져왔으며 소세키도 그 영향을 받은 한 사람이었다.2) 작가와 시대상황작가는 시대의 어려운 상황을 잘 짚어냈으며 여러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해서 인간들의 문제를 그려내었다.많은 인간들의 관계가 나타나는데 그 중 부자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겠다.2. 작품에서 나타난 부자관계1) 양친과 나의 관계중편 [양친과 나]에서는 매끄럽지 않은 부자관계가 나타난다.학교 졸업을 보통 사람이면 당연하게 하는 걸로 생각하고 있던 나는, 졸업을 생각 밖으로 기뻐해 주는 아버지 앞에서 민망스러웠다. “졸업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아버지는 이 말을 되풀이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의 이 말과, 졸업식이 있던 날 밤 선생님 댁 식탁에서 “축하합니다.”라고 말했을 때의 선생님 표정을 비교해 봤다. 나로서는, 입으로는 축하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별것 아닌 걸로 생각하는 선생님 쪽이, 대단한 일도 아닌 걸 대단한 일인 것처럼 기뻐하는 아버지보다 오히려 품위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중에는 아버지의 무지에서 오는 시골티 나는 구석에 불쾌감을 느꼈다. “대학 따위 졸업했다고 해서 그렇게 대단할 것도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은 매년 몇 백 명씩 됩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말했다.아버지의 생각모습을 보면서 작은 일에 기뻐한다며 불평하고 창피하게 생각한다. 세대 간의 교육정도에 관해서 생각의 차이가 드러난 것이다.공부를 시키면 도대체 이유가 많아져서 탈이다. 하지만 나는 이 간단한 한마디 속에서 아버지가 평소 나한테 품고 있던 불만의 모든 것을 보았다. 나는 그때 내 말이 건방졌다는 것을 모르고 아버지의 불평만을 억지라고 생각했다.시골에 사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문물에 대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교육의 큰 가치는 깊이 이해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 이전에는 큰 교육 없이도 삶을 잘 살아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해 가르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실질적인 효용성은 와 닿지 않는 아버지와 신 지식인 아들의 갈등이 나타난다.“하지만 졸업한 이상,. 최소한 독립해서 생활하지 않으면 우리도 곤란하다. 남들이 당신데 둘째 아들은 대학 졸업하고 나서 무엇을 하고 물어왔을 때 대답을 할 수 없어서야 나도 체면이 서지 않으니까.”아버지는 교육을 받은 아들이 번듯한 직장을 갖기를 바라신다. 교육을 출세의 한 수단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좋은 환경인 직장을 구해서 독립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래야 이웃들에게도 체면이 선다고 하신다. 이웃에게 체면을 차리는 모습은 아들이 졸업한 후 고향에 내려왔을 때도 나타난 모습이다. 동네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아들의 졸업 잔치를 하기를 바라는 모습에서 엿보이는 것이다. 교육 받은 사람들이 많지 않은 환경이니 부모가 자랑스러웠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가까이 사는 이웃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 옛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니 이웃에게 체면을 차리는 태도도 아버지 입장에서는 필요했다. 그렇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대학교육이 자랑으로 여기는 상황이라면 부끄럽게 생각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동급생들도 많은데 자기만 특별취급 된다면 불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대사회로 갈수록 개인의 실속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집안에서는 이웃의 체면을 생각해서 추진하려고 했으니 그것도 탐탁치 않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했다.이다.‘나’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바라보는 태도도 조금 틀렸다. 아버지의 병세에 관해서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이왕 죽을 거라면 빨리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도 약간은 있었다. 그것은 구세대의 퇴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이렇게 아버지와 나는 여러 측면에서 갈등관계였는데 그 주된 원인은 근대혁명기를 사이에둔 세대 간의 대립으로 보인다.2) 선생과 선생의 아버지의 관계[선생님과 유서] 이야기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선생은 어릴 때 부자로 태어났다. 부모님께서는 그가 어린 시절일 때 돌아가셨는데 전형적인 시골 집안이었다. 옛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신식문물을 접하면서 생활하시는 그의 동생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아들인 선생도 신식교육을 받게 하셨다. 그렇게 아버지께서 자랑스러워하시던 선생의 작은아버지도 결국은 돈 때문에 배신을 하게 되고, 선생은 여기서 인간에 대한 불신과 신문물에 대한 회의를 동시에 품는다.옛것의 좋은 점을 갖춘 아버지와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아들이 지속적으로 교류했더라면 시대변화에 순조롭게 대처해 나갔을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이를 통해서 알게 된다.이를 통해 당시의 교육에 대한 세대 간의 관점들을 알 수 있다.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는 ‘나’가 작은 아버지의 딸과 결혼하기를 바란다. 정혼상대를 지정해 주고 따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선생은 사랑 없이 결혼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정혼을 반대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자유연애를 통해서 결혼을 한다. 이것도 근대적인 생각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3) k와 k의 아버지와의 관계k는 선생의 단짝친구로 선생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는 인물이다. k에게는 두 명의 아버지가 있었는데 k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살펴보겠다. k는 승려의 아들로 의사집안에 양자로 입양된다. 의사집안에서는 대를 이어주기를 바라면서 교육비를 대 주었지만 그는 의학공부대신 다른 공부를 택한다. 일본은 오늘날까지도 대를 이어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당시에, 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