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좋아하는 한국인과 미국인에게 “너 축구를 좋아하지 않지??”라는 똑같은 질문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한국인은 “아니, 난 좋아해.”라고 대답할 것이고, 반면에 미국인은 “Yes, I do.”(그래 난 좋아해.)라고 대답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축구를 좋아하는데 한국인은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미국인은 “Yes.”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차이는 물론 단순히 영어와 한국어의 언어적인 차이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언어적인 차이가 발생하는 근본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이것을 분석해보면 한국인의 “아니오.”라는 부정적인 대답은 “좋아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하는 상대방의 입장이 고려된 것이고 미국인의 대답은 질문에 대하여 긍정적인, 자신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기에 “Yes."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부정적인 질문에 대한 한국인의 대답은 상대방의 입장, 그리고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를 고려하는 태도와 관계가 깊으며 미국인의 대답은 자기중심적인 태도, 그리고 자신과 주위 환경을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이러한 차이는 비단 미국인과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서양인과 동양인에게도 나타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이 동서양 두 문화에서의 자기 개념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동양인의 자기 개념은 가족, 사회적 위치 등과 같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 환경과의 관계성에 기초해서 나 자신이 정의된다는 생각이며 서양인의 자기 개념은 자신과 주위환경은 서로 독립적이며 자신의 내재적 성격만이 나를 정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자기 개념의 차이는 동 서양, 두 문화권의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의 차이를 가져온다. 따라서 우리는 위에서 예를 든 언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도 동양과 서양의 자기 개념의 차이로 인한 많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문화 중에서도 이러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 중에서도 동양과 서양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차이점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작품들을 가지고 분석을 하는 것은 다소 난해할 뿐만 아니라 오류가 발생할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정확하고 객관적인 비교를 위해서 시나리오가 동일한 두 작품을 선정하였다. 즉, 한 작품은 원작이고 나머지 작품은 그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동일한 이야기 흐름을 가지는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더 명확하게 자기 개념에 의한 차이를 분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분석을 해볼 두 작품은 1987년 미국에서 제작된 ‘OVERBOARD’ 라는 영화와 2006년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여 한국에서 제작된 ‘환상의 커플’ 이라는 드라마이다. 두 작품 모두 전반적인 내용을 설명하자면, 한 마디로 오만하고 버릇없는 한 귀부인의 개과천선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즉. 거만하고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한 귀부인(두 작품 모두 안나 조)이 사고로 기억을 상실하면서 어느 한 남자(장철수, 딘 프라핏)와 동거를 하게 되고 그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이전의 못된 성미를 버리고 개과천선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두 작품은 동일한 시나리오를 기본으로 한 만큼 내용이나 연출 구성에 있어서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데 자기 개념이라는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몇 가지 부분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이 스토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안나 조’라는 이름의 귀부인인데 두 작품 모두 도입부에서는 이 주인공의 괴팍한 성미를 묘사하는데 주력한다. 얼핏 보면 두 작품 모두 별다를 것 없이 안나 조의 버릇없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잘 관찰해보면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먼저 환상의 커플에서는 안나 조의 예의 없고 거만한 행동을 보여주되, 그러한 행동을 하는 동안 그녀와 상호 작용하는 주변 인물들을 모두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는 성격의 사람으로 설정하였다. 예를 들어, 그녀의 남편과 비서는 모두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향이 있으며 그녀 앞에서는 항상 소극적이며, 마치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행동한다. 반면에 OVERBOARD에서는 환상의 커플과는 달리 그녀의 주변인들이 그녀와 대비된 성격을 가지지 않으며 그녀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떳떳하게 행동한다. 이렇게 두 작품에서 주변 인물들의 성격설정이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동양과 서양의 자기개념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동양의 자기 개념에서는 관계성이 중시되기 때문에 어떠한 인물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그의 주변 사람들의 성품이 어떠한지도 중요한 배경이 된다. 즉, 환상의 커플의 연출자는 안나 조의 비서나 남편이 그녀의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악질적인 성품을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서양의 관점에서는 개인의 성격은 그의 내재적 성질일 뿐 그의 주변인물이 어떠한 성품을 지녔으며, 어떻게 행동하는지 와는 관련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OVERBOARD의 연출자는 단순히 버릇없는 행동을 표현하는 것에만 주력한 것이다. 결국 환상의 커플에서는 관계성이라는 동양적인 자기개념에 근거하여 인물의 외적 관계 정보에 주목하였고, OVERBOARD에서는 독립성이라는 서양적인 자기개념에 근거하여 인물의 내적 정보 표현에 무게를 둔 셈이다.)이번에는 작품의 연출적인 측면이 아니라 내용상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 모든 드라마나 영화들이 그렇듯이 이 두 작품에서도 두 인물 간의 갈등이 나타나는데 이를 해소하는 방법에서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환상의 커플의 내용 중에서 장철수가 안나 조와 말다툼 후에 자신의 오해가 있었음을 깨닫고 안나 조에게 미안해하는 부분이 있다. OVERBOARD에서도 그와 비슷한 갈등이 나타난다. 그런데 환상의 커플의 장철수와 OVERBOARD의 딘 프라핏이 사과를 하기 위하여 취하는 행동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먼저 환상의 커플의 경우를 살펴보자. 장철수는 안나 조와 말다툼을 한 후 이웃의 농사일을 돕다가 안나 조를 다시 만나게 된다. 안나 조와의 말다툼이 자신의 오해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을 표시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그 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농사일을 같이 돕고 있는 그녀의 일손을 거들어줌으로써 미안함을 표시하려고 한다. 미안하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호의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이제 OVERBOARD의 경우를 보자, 딘 프라핏은 안나 조와의 말다툼 후 밖에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안나 조를 발견한다. 이 때 그가 그녀에게 다가가서 건네는 첫 마디는 바로 “미안해”이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미안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결국 우리는 이 두 작품의 감정 표현 방식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동양의 환상의 커플에서는 감정을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 행동으로 간접적으로 우회하여 표현한 반면, 서양의 OVERBOARD에서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직접적이고 명백한 언어로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는 동양과 서양의 자기개념의 차이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가능하다. 동양의 관계적, 상황적 자기 개념은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상황에 따른 함축적인 의미들이 잘 통하는데 영향을 주었고 서양의 내재적인 자기개념은 애매한 의미보다는 직접적이고 확실한 의미 전달을 주요한 의사소통 방식이 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전달 방식의 차이는 비단 위에서 제시된 예에서 뿐만 아니라 작품 전반에 걸쳐서 잘 나타난다. 환상의 커플에서 감정표현을 위한 행동과 대화는 대체로 간접적이고 고 맥락적인 반면, OVERBOARD의 대사와 행동들은 확실하고 직설적이다.
일반 사람들이 현대음악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먼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대중음악일 것이며, 음악에 대하여 보고 들은 것이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뉴 에이지 음악 정도까지는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쇤베르크의 ‘3개의 피아노 작품 3번’이나 슈톡하우젠의 ‘소년의 노래’를 들려주고 나서 “이것도 현대음악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분명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필자도 ‘소년의 노래’를 처음 접하였을 때 적잖이 당황한 경험이 있다. 이처럼 일반대중들이 가지는 현대음악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도그럴것이, 우리는 정규 음악 교육과정에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고전시대의 작곡가들이나 그들의 작품에 대하여는 조금이라도 배운 경험이 있고, 또 이런 음악들을 미디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반면에 고전시대 이후의 소위 현대음악에 대하여는 제대로 배워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란 정말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현대음악을 전혀 접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즐겨듣는 블루스, 발라드, 락 음악 등의 현대의 대중음악 장르도 현대음악의 범주에 속하며, 심지어 컴퓨터 게임의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여러 가지 전자음도 현대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시하고 싶은 것은 현대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이러한 최근의 대중적인 음악에만 치우쳐 있기 때문에 독자적인 예술성을 추구한 음악들, 그리고 고전에서 현대로의 연결고리가 되는 시기의 음악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현대음악들은 웅장하고 화려한 고전음악과, 세련되고 대중적인 성향의 현대 대중음악에 가려져서 제대로 빛을 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현대음악의 정의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지만 대체로 고전, 낭만시대가 끝나가던 19세기 초부터 현재까지의 음악을 일컫는다. 현대음악이 어떠한 음악인지를 한마디로 특징짓기란 쉽지 않다. 다만 간단히 표현해본다면, 현대음악은 고전시대의 정형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시작되었 조성체계에서 벗어나려고 한 현대음악 초기의 무조음악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크로스오버음악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형식의 음악이 나타났다. 근대이후의 급격한 정치, 경제, 사회적 발전과 함께 음악 또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여러 가지 형식이 나타나고 음악에 나타난 음악가의 정신성은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들이 기성 음악가 및 일반 사람들에게 항상 환영받지는 못했다. 특히, 급격한 형식의 변화, 과감한 실험성을 가지는 음악, 대중과의 소통보다는 예술가 자신의 내적 표현만을 중시한 음악들은 기존의 형식, 조성체계에 익숙해져 있던 대중에게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대표적인 예가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이다.무조음악은 이전까지 음악계를 지배하고 있던 조성체계를 완전히 무시한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연 음악형식이다. 하지만 이 음악형식은 무질서, 극단적 대조, 선율의 부재, 강렬함, 긴장감 등과 같이 기존의 음악체계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는 급격한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에게 거부감을 주었고, 이 때문에 음악회에서도 일반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였으며 결국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도 못했다. 무조음악의 이러한 특징은 쇤베르크의 표현주의적 미학관에 기인한다. 쇤베르크는 예술가 내면의 표현을 예술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전통적인 형식이나 미의 기준에 연연하지 않는 주관적 욕구표현에 충실한 작품을 원했고 그 결과가 바로 무조음악이었다.) 예술의 의미가 ‘감상 또는 주관을 표현하는 인간의 활동’이라는 것에 비추어볼 때 주관적 표현에 충실한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은 충분한 예술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무조음악은 음악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무조음악은 1920년대 들어서 통일성을 갖춘 12음 기법으로 체계화되었으며 50년대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총렬음악의 전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와 같이 무조음악은 20세기 현대음악사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렇게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음악이 청중과 융화되지 못한 의 주관성을 제대로 표현하기만 하면 그 역할을 다했다는 생각이다. 철저하게 예술성만을 추구한 쇤베르크의 미학관은 음악 형식에 있어서 전통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낳았고 이러한 파격적인 변화를 청중들로서는 이해하기 버거웠을 것이다. 쇤베르크의 치열한 음악적 고민과 내면의 표현의 결과였던 이 음악들이 청중들에게는 단지 아무 생각 없이 손 가는대로 만든, 음악이라기보다는 소음에 가까운 곡이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이러한 취급을 받았던 현대음악은 비단 쇤베르크의 음악만이 아니었다. 현대음악사에서 예술성에 무게를 둔 나머지 대중과 괴리된 음악형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쇤베르크의 제자인 베베른과 베르크의 작품도 쇤베르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무조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1910년 전후에 나타난 음악적 미래주의 또한 전통에의 완강한 거부, 자유로운 음악적 운율을 통한 자율성을 추구였다. 이러한 자율성이 고전적 전통의 기준에 머물러 있는 청중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또한 1950대의 베베른을 중심으로 한 아방가르드적인 경향의 총렬음악들은 또다시 청중들이 현대음악과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이것들 외에도 우연성 음악, 구체음악, 컴퓨터 음악, 음향음악 등 대중의 기호와 반대되는 음악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것들 중에서 케이지의 4분33초는 이러한 경향이 극에 달한 작품 중에 하나이다. 이 곡은 케이지의 실험정신이 잘 나타난 곡으로서 연주될 때 악기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피아니스트 또한 4분 33초간 침묵을 유지한다. 케이지가 의도한 것은 피아니스트의 침묵에 대한 관중들의 반응, 그리고 주위의 모든 잡다한 소리들, 이런 것들을 음악으로서 간주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음악가와 연주자의 청중에 대한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청중과 주위환경이 모두 음악적 요소가 되는 ‘참여음악’이라는 용어가 이 곡의 궁극적인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참여음악’이라는 의도 또한 전통적인 음악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꿔버렸다는 것에서 일반 청중의 수긍을 얻기에는 너무나도 난해음악은 12음 기법으로 체계화되면서 이후 50년대의 총렬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음악적 미래주의는 아방가르드적 음악의 실현에 기초가 되었다. 또한 총렬음악은 우연성 음악의 등장과 전자 음악, 음향 음악 등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이와 같이 무조음악을 비롯한 일련의 파격적인 형식의 음악은 현대음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존 전통세력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시도, 도전이 없었다면 현대음악의 발전은 더뎌졌을지도 모른다. 즉 예술성에 초점을 둔 음악형식은 현대음악사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한편 현대음악이라고 해서 대중성이 결여된 음악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20년대 음악계에 나타난 신음악 2세대가 바로 그 대표적인 음악가들이다. 이들은 기존의 현대음악의 특징이었던 예술가의 내면 표현만을 위한 음악, 음악만을 위한 음악을 비판하였다. 대신에 음악의 기능성, 청중과의 소통을 중시하였으며 대중적인 실용음악을 시도하였다. 자연히 이들의 음악경향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형식을 따르게 되었고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가벼운 느낌의 일상적 삶을 주제로 한 음악이 주로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이들의 음악 중에 특징적인 것이 재즈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신음악 2세대는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던 재즈를 유럽 예술 음악계에 들여와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는 전통적인 예술음악에 대한 반발로써 나타난 자유롭고 새로운 표현수단의 추구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신음악 2세대의 음악들 중에서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는 이러한 음악 경향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바일은 이 오페라를 통하여 대중성과 예술성의 화합을 추구하였다. 여기서는 오페라라는 예술적인 장르와 재즈와 춤곡이라는 서민적, 대중적인 장르를 결합시킴으로써 예술적인 가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청중이 쉽게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1930년대에 소련과 독일의 정치 사회적 배경 속에서 나타난 음악도 대중성에 큰 비중을 두었다. 물론 이러한 강한 음악이 많이 등장하였다. 또한 독일에서는 민중을 위한 예술을 창작한다는 나치정권의 요구에 따라 현재까지도 미디어에 자주 인용되고 있는 ‘카르미나 부라나’와 같은 대중적인 호소력을 가지는 음악들이 많이 작곡되었다.)이와 같이 대중성이 가미된 현대음악은 그 예술적 가치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청중이 현대음악에 좀더 친숙해지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이상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현대음악의 흐름에서는 지극히 예술적이어서 청중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음악이 있기도 한 반면에 대중성과 예술성이 조화를 이루어 청중과 함께하는 음악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 두 가지 경향의 현대음악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발전해왔다. 음악가의 자유롭고 개성이 넘치는 표현을 중시한 ‘예술적인’ 현대음악은 음악 외적인 요소에 구애받지 않고 거침없이 내면을 표현하며 음악의 내용과 형식의 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편 예술성과 대중성의 조화를 중시한 ‘대중적인’ 현대음악은 음악이 예술적 표현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대중도 그것을 느끼고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예술적인’ 현대음악의 경우, 음악사의 발전을 앞장서서 이끌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음악의 인기에 밀려 대중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음악의 상업주의가 가속화된 최근에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선도적 음악가의 치열한 고민과 새로운 시도를 통한 예술적인 기반이 없었다면 현재의 대중음악도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예술음악은 여러 가지 새로운 음악적 형식의 내용의 과감한 시도를 통하여 대중음악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어왔다. 따라서 이러한 예술적 음악이 소외되는 최근의 현상이 음악계의 발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물론 ‘예술적인’ 현대음악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관심은 자연히 그들의 기호에 맞는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고 이 기호와 예술적 현대음악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대중음악의 뿌리가 무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양한 예술문화의 홍수를 경험하고 있다. 조각, 회화, 건축 등과 같은 전통적인 예술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등의 현대 대중 예술까지 여러 가지 예술 작품들이 우리 주위에 혼재해 있어 이제는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은 예술이 아닌지조차 모호해졌다. 비록 우리가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우리에게 예술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우리는 공원에서 여러 현대 조각 예술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잠깐 보면 이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아무리 봐도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여러 가지 기이한 모양을 가지는 것들도 많다. 이런 것들은 의미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에 감상자의 느낌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예술가가 어떤 특정한 반응을 기대하고 창작한 작품이 아니라 감상자 나름의 반응을 의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감상에 정답이 없다는 것은 감상자에게 난해함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난해함은 어쩌면 현대예술의 한 가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들에서는 이러한 난해함을 찾아볼 수 없다. 예술가가 의도한 것이 고스란히 감상자에게로 다가오고 감상자는 누구든 거의 동일한 감흥을 느낀다. 즉, 현대 조각 예술을 감상할 때는 감상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는 반면, 고대 조각 예술을 감상할 때는 표현된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예술의 형식은 조각으로서 같지만 시대에 따라서 그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은 비단 조각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형식에서도 나타난다. 이처럼 예술의 형식과 내용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이러한 예술의 형식과 내용의 관계 변화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낸 사람이 있었다. 바로 18~19세기의 철학자 헤겔이다. 그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예술의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놓고 “예술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라는 예술의 종언론을 내놓았다. 예술형식이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고 결국 예술의 시대는 종언을 고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이론에 대해서 신중히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정말 예술의 시대가 끝난 것일까? 이 이론은 예술의 내용과 형식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술의 형식과 내용에 초점을 두고 예술의 발전과정을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대 이집트 예술을 먼저 살펴보자. 이 시기의 예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세계와는 근본적으로 그 주제와 목적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이집트 예술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심미적인 즐거움이나 예술가의 개인적 예술세계의 성취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죽은 자를 위한 예술, 즉, 죽은 자의 안위를 보장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술정신 자체가 성숙되지 않았던 만큼 그 정신을 표현하기 위한 예술형식 또한 세련되지 못하였다. 이집트의 회화나 조각품들을 보면 인물이나 사물을 표현할 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것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정도에 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예술작품을 살펴보면 어딘가 모르게 표현이 부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예술의 내용이 형식의 한계에 부딪혀서 제대로 나타나지 못하였고, 결국 이 시기의 예술은 예술양식이 아직 완전히 정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일종의 상징으로서의 표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헤겔은 이 시기의 예술을 예술의 발전과정 중 상징적 예술이라고 칭했다.) 그는 상징적 예술은 정신이 성숙하지 못하여 물질에 압도당한다고 하였다. 즉, 예술의 내용과 형식이 아 직 통일을 이루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 예술은 이러한 특징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준다.이제 고대 그리스 시대로 가보자. 고대 그리스 시대의 예술은 고대 이집트 시대의 예술의 영향을 다소 받기는 했지만 독창적으로 발전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전제정치의 고대 이집트와는 다르게 공동체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누렸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인본주의 그리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완전성의 추구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인들의 정신적 성숙은 예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리스 예술은 인간 중심적이고 합리적인 속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스의 조각품은 인간의 아름다운 신체적 미를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해 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신적 성숙은 신체적 아름다움을 조각이라는 형태를 통해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결국 예술의 내용은 형식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게 되었고 형태와 내용은 완벽하게 일치했다.헤겔은 이 시기의 예술을 고전적 예술이라 칭하며, 예술사에 있어서 정점의 시기라고 표현한다.) 그는 이 시대에 이상적인 미가 조각이라는 형식을 통해 완벽하게 실현되었으며 예술의 최고점을 그리스 시대라고 보았다. 즉, 예술의 내용과 형식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은 이후 시대의 예술은 내용과 형식의 조화가 깨지고 내리막길, 즉 종언을 향해 간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관점에서는 고대 그리스 이후에도 예술은 계속해서 발전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예술에 대한 헤겔의 관점은 어떠한 것이었으며, 그가 말한 예술의 종언, 즉, 예술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고대 그리스 이후의 예술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나올 것이다.중세 시대로 오면서 예술은 다시 한 번 변화를 겪게 된다. 중세 시대는 종교의 시대였고 따라서 예술의 초점은 인간에서 신으로 옮겨갔다. 자연히 예술은 사실적이고 합리적인 표현보다는 내세적이고 초월적인 표현을 중요시 할 수밖에 없었다. 신의 절대적 권위와 초월적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정해진 규칙과 형식에 의거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예술에 있어서는 현세의 밑에 깔린 초감각적 세계를 어떤 형식으로 눈에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과제였다. 즉, 중세의 예술에는 내용도 있었지만 형식이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예술의 내용과 형식, 정신과 물질의 중요성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다.중세시대가 인간성을 없애고 신의 권위만을 강조해 왔다면 르네상스 시대에는 억압된 인간성을 되찾고 인간중심의 생활을 다시 찾으려는 의지가 빛을 발했다. 따라서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러 예술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로운 예술로서 마음먹은 대로 대상을 표현하고 자유롭게 주관대로 표현하는 특징을 갖게 된다. 사람들 스스로가 인간성에 대한 자각을 하였고 이것은 예술작품을 성직자의 독자적인 생각에 따라서 제작하던 것에서 예술가의 개성과 감성에 따라 만들게 되었다.예술가의 자유로운 정신를 통하여 새로운 예술 형식들이 등장하였다. 특히 미술에 있어서는 원근법과 명암법이 등장하여 회화 표현 형식의 혁신을 이룬다. 이러한 자연의 변화와 원리에 대한 이해에 입각한 과학적이고 확실한 표현기법은 작가의 느낌에 따라 대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근대적 화풍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예술가의 정신성과 주관성뿐만 아니라 작가의 주관이 풍부하게 표현된 작품들을 나름의 의식을 가지고 감상하는 감상자의 개인적인 정신성도 중요시하는 결과를 낳았다.헤겔은 르네상스 이후의 예술을 예술 발전의 마지막 단계로서 낭만적 예술이라고 칭하였다.) 이는 정신의 성장으로 내용이 단순히 예술형식과의 조화 안에 머물 수 없게 되어 내용과 형식의 통일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즉, 예술의 시대는 저물어 가지만 정신은 점점 더 성숙해져 간다는 뜻이다. 그는 이렇게 자율성과 자유를 의식하는 예술의 정신성의 발달 때문에 예술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가 생각한 예술의 참된 역할은 고대 그리스의 예술처럼 절대적 진리와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절대 진리를 더욱 더 잘 표현해주는 종교와 철학의 등장으로 앞으로의 예술작품은 더 이상 우리의 절대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헤겔의 말처럼 예술은 고전시기를 지나면서 역할이 축소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예술의 역할을 축소시킨 인간의 정신적 성숙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술형식의 발전을 이끌었다.17세기 바로크 시대로 오면서 르네상스의 고전주의는 막을 내리고 예술가의 주관성은 한층 더해져서 화려하고 동적이며 격정적인 표현이 발달한다. 고전주의가 영원불멸하고 정적이라면 바로크 시대는 동적이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변화와 생성 속에서 어떤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변화한다는 것이 가치를 가지기 시작하였고 변화하고 생성하는 인간적 모습에 더욱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예술은 점점 더 깊숙한 인간 내면의 표현과 인간심리를 담아내게 된다. 근대 이후의 표현주의 예술가들은 작품에 더욱 큰 긴장감과 대담한 색조, 그리고 충동적이고 탁한 분위기를 불어넣음으로써 훨씬 극적이고 격정적인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사물의 외형이나 객관적 특징을 표현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예술 형식은 예술가의 정신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유럽축구에 대하여 관심이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헤이젤 참사’에 대하여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1985년 5월 29일 벨기에의 브뤼셀의 헤이젤 경기장에서는 유럽 내 축구 클럽 간의 대항전인 유러피언컵 결승전이 열리고 있었다. 결승전이었던 만큼 경기장내의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어 있었고 결승에 오른 두 팀, 잉글랜드의 리버풀과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의 응원단도 극도의 흥분상태에 있었다. 그러던 중 유벤투스 응원단 쪽에서 누군가 리버풀 응원단 쪽으로 무언가를 던졌고 이에 리버풀의 서포터들은 쇠파이프와 흉기를 든 폭도로 돌변하여 유벤투스의 서포터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중들에게까지 무차별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관중들은 순식간에 경기장 출구 쪽으로 몰리게 되었고 이 압력에 콘크리트 벽이 무너져 내려 39명이 사망하고 454명이 부상당하였다. 이를 헤이젤 참사라고 하며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억되고 있다.과연 무엇 때문에 스포츠 경기에서 500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는 참사가 벌어졌을까? 누군가가 상대편 응원단 쪽으로 던진 것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단지 터지기 직전의 풍선을 살짝 건드린 것에 불과했다. 경기장안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은 이미 극도의 긴장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축구경기, 그리고 자기가 응원하는 팀에 대한 몰입은 사람들을 관중에서 폭도로 돌변시켰다. 이렇게 축구는 사람들의 감정, 정신상태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한다. 그런데 특히 축구라는 스포츠는 다른 어떤 스포츠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감정에 큰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에 끼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종교가 무엇이냐?’ ‘종교는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느냐?’하는 질문에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종교를 이야기하는 한 가지 관점을 꼽아보자면 ‘종교는 사회와 문화 및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하고 인간생활의 각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 세계가 미친 듯신적, 육체적 연계성을 갖는 활동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본다면 축구에 나타난 종교성을 찾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축구로 해가 뜨고 축구로 해가 지는 대륙, 유럽전 세계에서 축구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은 유럽대륙이다. 축구 문화, 이는 이미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유럽에서는 축구가 스포츠라는 굴레를 벗어버린 지 오래다. 오죽하면 ‘유럽대륙에서는 축구로 해가 뜨고 축구로 해가진다.’ 라는 말이 있겠는가.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서 축구는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다.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시에서 주말 저녁이 되면 시내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어진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선수인 박지성이 소속되어있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팀이 경기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시민들은 경기가 있을 때면 만사를 제쳐두고 축구장을 찾거나 술집에 모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경기를 관전한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을 하자면 이 때는 맨체스터 시 전체가 축구경기 하나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맨체스터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잉글랜드의 모든 지방, 더 나아가 축구경기가 열리는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모습에서 매주 주말마다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연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사람에게는 집단적인 행사나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어쩌면 종교의식도 이러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생겨나고 발전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종교의식은 이러한 사람들의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예배나 의식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종교의례행위를 통하여 서로의 동질성, 그리고 소속감을 확인하며 정신적인 안정을 찾았다.유럽인들에게 축구경기는 이러한 종교의식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사람들은 축구경기장, 혹은 술집에 모여서 자신들의 축구팀을 매개로 하여 아주 강력한 정신적 유대 의식을 형성한다. 그들르며 자신들의 팀의 승리를 기원하고 이기면 함께 기뻐하고 지면 함께 슬퍼한다. 이러한 경기장 내에서의 일련의 집단행동들이 마치 종교의식처럼 각 개인들의 마음속에 동질감, 소속감을 심어준다는 것이다.이런 집단행동은 비단 경기장 내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경기가 벌어지기 몇 시간 전부터 경기장 주변, 아니 도시 전체는 축제 분위기가 된다. 주중에 공장, 학교, 상점 등 각자의 일터에서 단조로운 반복생활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주말의 축구시합은 일주일중 오직 한 번뿐인 해방의 순간이다. 그렇지 않아도 축제를 좋아하는 유럽인들이 이 순간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자신들의 팀을 상징하는 문양이나 문장이 들어간 깃발을 흔들고 함께 함성을 지르고 경기에서의 승리를 기원하는 응원가를 부르며 축제를 만끽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런 행위들이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거기에는 자신들의 팀이 이기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마음속의 어떠한 소망을 기원하는 종교적 축제와 그 맥락이 비슷하다. 또한 축제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존재와 자신의 존재, 그리고 자신이 그 공동체 속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국가대표 축구팀에 열광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은 클럽중심의 축구문화가 형성되어있다.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속한 클럽 팀에 대한 애정은 가히 절대적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홈경기를 응원하는 것은 기본이고 다른 지방으로의 원정경기,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경기까지 따라가서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또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축구팀인 FC 바르셀로나 팀은 14만 명에 육박하는 ‘소시오’ 라고 하는 시민 구단주들이 자발적으로 낸 돈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축구 구단이 유럽에는 적지 않다. 응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번 돈으로 축구클럽의 운영비를 대는 것이다. 연고팀에 대하여 사람들이 이러한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하는 이유는 결코 그 팀이 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응원과 지원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러한 유럽인들의 연고지 팀에 대한, 어떻게 보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맹목적인 애정은 마치 종교인들의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한 독실한 신앙 같다.유럽인들의 이러한 클럽에 대한 애정과 신앙은 유럽축구클럽의 역사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각 지방에서는 일찍이 1800년대 후반부터 지역을 연고로 하는 축구클럽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지역대항 경기가 벌어지게 되었고 이는 축구클럽에 있어서 지역간 경쟁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과적으로 지역민들의 자기 지역을 연고로 하는 클럽에 대한 애정의 강화로 이어졌다. 아버지의 축구클럽에 대한 애정은 그것을 함께 경험한 아들에게로 대물림 되었고 또다시 손자에게 전수되었다. 따라서 누군가 어느 한 지방에서 태어나면 당연히 그 지방 연고팀의 서포터가 되는 것이었고 그것은 자신이 선택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것이었다. 마치 어떤 아이가 기독교신자인 부모님을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나가면서 자연히 기독교를 믿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클럽 팀에 대하여 신념을 가지고 애정을 쏟는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응원해오던 팀을 버리고 새로운 팀의 서포터가 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어릴 때부터 쌓아온 신념을 바꾼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 신념이 종교적 신념이든지 자신의 클럽에 대한 신념이든지 말이다.2002년 6월, 대한민국 종교가 통일 되다?2002년 6월은 대한민국의 축구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둔 적이 없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은 명장 히딩크 감독의 지도 아래 단번에 4강까지 올라가 버렸다. 이 순간 대한민국의 종교는 하나로 통일되었다. 바로 히딩크교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히딩크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열광을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언론에서는 히딩크 예찬론이 쏟아져 나왔고 축구경기장 관중석과 그 유명한, 붉은 통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강화시키며 신에게 자신의 소망을 기원한다. 2002년 6월에 대한민국에서 히딩크는 신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월드컵에 쏠려있었고 그들의 소망은 오직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월드컵 16강 진출이었다. 히딩크는 이 소망을 이루어준 것도 모자라 4강까지 올려놓았으니 그가 신과 같이 떠받들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축구는 11명이 뛰는 단체 경기인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한 사람을 영웅, 신으로 만드는 것에 탁월하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서 각광받는 선수는 숭배의 대상이며 때로는 구세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 첼시라는 이름의 잉글랜드 클럽팀에 소속되어있는 안드레이 쉐브첸코라는 축구 선수가 있다. 그는 첼시로 오기 전에 이탈리아의 AC밀란 소속으로 있었다. 스트라이커였던 쉐브첸코는 AC밀란에 있을 당시 득점기계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거의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의 첼시로의 이적소식이 전해질 즈음에 뉴스에 한 장의 사진이 떴다. ‘가지마세요.’ 라는 제목의 그 사진은 한 AC밀란의 팬이 쉐브첸코를 부여잡고 우는 장면이었다. 그 한 장의 사진은 축구팬들이 축구에 있어서 그들의 영웅에게 정신적으로 얼마나 깊게 의존하는지 보여준다. 축구에서 한 사람에 대한 숭배를 보여주는 예는 이것 외에도 많다. 그 중에 한 가지를 소개하겠다. 앞에서 설명한 쉐브첸코 선수와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드로그바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가 있다. 이 선수 또한 스트라이커로서 팀이 어려울 때 골을 넣어주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 뛰어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며 종종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골을 성공시키기도 한다. 급기야 대한민국의 네티즌들은 그에게 ‘드록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에 이르렀다. 그의 이름 드로그바와 전지전능하다는 뜻의 신을 합친 것으로 그의 경기력에 대한 숭배와 경기에서 구세주로서의 역할을 뜻하는 단어이다. 물론 한국 인터넷 문화의 특성상 이러한 별명 짓기에는 다분히 코믹적인 요소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의 능력에 경의를 표하는 사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들 중에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바로 변화와 혁신이다. 오늘날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기존의 것보다 발전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의 등장으로 사회문화적인 트렌드들도 항상 새롭게 바뀐다.이러한 변화와 혁신의 물결 속에서 살아가는 주체인 우리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중의 하나가 바로 창조성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현재 우리주위에서는 창조성이라는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각 기업들이 요구하는 인재상들 마다 창조성이라는 덕목은 거의 빠지지 않는다. 초, 중, 고등교육의 초점도 과거, 지식의 전달에서 오늘날에는 점점 창의성을 키워주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기업이나 교육계의 창조성 계발방법을 잘 살펴보면 기업의 성과주의 운영, 소수영재교육 등 개개인의 창조성에 많이 의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천재한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 라는 말도 있듯이 소수의 천재들에 의한 개인적인 창조성 발현은 지금까지 사회에 큰 공헌을 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발전의 경향은 지식과 재화의 편중과 같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또한 언제까지나 개인의 능력에 의존한 창조성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는 의문이다.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고찰해보기 위해서 먼저 창조성의 개념이 어떠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현재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알아보고 이러한 창조성의 현대적인 개념에 비추어 앞으로 창조성의 발현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창조성, 또는 창조라는 개념은 고대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든다.’ ‘제작한다.’ 라는 정도의 개념이 있었을 뿐 오늘날 우리가 쉽게 머릿속에 떠올리며 말할 수 있는 창조라는 개념은 없었다. 중세시대에 와서 창조성이라는 개념이 태동하기 시작하지만 이때에도 창조는 절대자, 즉, 신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능력이라고 여겨졌다. ¹)창조성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인간 세상에 적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근대사회부터이다. 중세 봉건제도의 세습적이고 폐쇄적인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로의 발전은 개인의 사상과 행동의 자유를 북돋아주었고 이는 곧 개인의 창조성에 대한 감각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때부터 창조성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신에 의한 ‘무’로부터의 창조만이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고 ‘새롭고 색다른 것’이 창조라는 개념에 추가되었다. 이러한 개인의 창조성이라는 개념의 발견은 곧 예술분야에 적용되었고, 예술가는 곧 창조자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이러한 인식은 나아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술가는 특별한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비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고 이러한 소수의 사람들이 곧 천재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창조성의 인식은 근대후기까지도 예술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¹)서구의 근, 현대화 과정을 거쳐 현대에 들어와서는 창조성의 개념이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된다. 바로 창조성은 예술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적 행위와 제작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사회는 급속하게 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예술가가 창조한 것 이외의 새롭고 색다른 것들이 많이 생겨났으며 이것들이 전통적인 창조성의 속성인 ‘색다름’ 에 부합하여 창조성의 개념의 영역확장을 가져온 것이다. 결국 창조성의 현대적 개념은 소수의 천재들에 의한 것만이 아닌 모든 인간적 행위와 제작에서 나타난 색다름이라고 할 수 있다. ¹)이상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창조성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볼 때 중세의 신에 의한 창조로부터 시작되어 근대의 선택된 소수의 특별한 자들의 예술작품에 의한 창조로, 그리고 현대에 와서 모든 인간적 행위와 제작에 의한 창조로 발전되어 왔다. 이렇듯 창조의 주체는 일부 특별한 소수에서 평범한 다수로 확장되어 온 것이다. 또한 현대적인 의미의 진정한 창조는 현재를 초월한 한 천재의 산물이라기보다는 현실을 기반으로 시대와 호흡하며 생겨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수 개인의 창조성 발현만을 중시해서는 진정한 창조를 해내기 어렵다.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었지만 소수 선택된 개인의 창조성만을 중시한 지금까지의 세태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개인의 능력만을 중시하다 보면 개개인 서로 간에 경쟁이 심화되고 경쟁에는 항상 승자와 패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 결과 승자와 패자 간에 계급이 생기게 되고 이것은 곧 부와 지식의 편중, 더 나아가 사회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또한 소수 천재들의 창의성에만 의지하는 조직은 창조의 미덕인 색다름과 다양함을 이루어내는데 한계가 있다. 새로운 것들이 오직 소수의 두뇌집단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조직의 창의력이 몇몇 사람의 능력에 갇혀버리는 것이다.그렇다면 앞으로 창조성의 발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집단적인 창조성의 발현이다. 집단적 창조성은 이러한 개인적인 창조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우리가 흔히 접하는 것들 중 집단적 창조성이 가장 잘 드러난 예가 바로 인터넷이다. Cyber Space라고도 하는 인터넷은 여러 대중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는 매체이자 하나의 공간이다. 누구의 계급이 높고 낮음도 없이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정보를 얻거나 또 제공하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한 상호작용들이 모여 새로운 정보, 지식, 그리고 트렌드들이 생겨난다. 즉, 새로운 가치가 창조되는 것이다. 집단적 창조성이란 바로 이러한 것으로 서로간의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개개인의 의견이 존중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상호작용에 의해 창조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상의 네티즌들은 정보를 창조하기도 하고 소비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보의 창조와 소비는 여러 네티즌들에 의해서 하루에도 수없이 이루어진다. 물론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는 각종 정보와 지식들의 창조성을 소수 전문적인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창조성은 색다름과 다양성, 그리고 유연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인터넷상의 온라인 백과사전 중에 위키피디아라는 것이 있다. 이 사전은 기존의 백과사전들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제작한 것이 아닌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작성한 지식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사전이다. 이것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사전항목을 작성, 수정할 수 있다는 개방형 체제라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얼마나 효용성이 있을까 의문을 제기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백과사전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정보량과 사용자수를 넘어선지 오래다. 한 연구 결과에서는 “위키피디아의 정확도가 브리태니커와 비슷하다.” 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일반 대중들의 끊임없는 피드백을 통한 재생산이 정보의 가치를 전문가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지금까지 인터넷의 예를 통해서 사회 문화적인 집단적 창조성을 살펴보았고 이번에는 일본의 어느 한 기업의 예를 통해서 집단적 창조성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최근 TV에 소개되어 큰 화제가 된 한 중소기업이 있다. 바로 일본의 전기설비 제조업체인 미라이 공업이라는 회사이다. “일하지 마라.” “쉬어라.” 이 회사에서 사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들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다. 일본 내에서 유토피아 경영이라 불려지고 있는 이 회사 경영자의 경영 철학은 상당히 특이하다. 정년70세, 전원 정규직, 5년마다 전직원 해외여행, 연간휴일 140일, 일본에서 근무시간이 가장 짧은 회사, 동종업계 최고수준의 연봉, 이 모든 것들은 회사의 경영자가 내세운 방침이다. 여타 기업가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기업운영은 곧 회사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도 잇겠지만 현재 이 회사는 경상수익률 15%라는 높은 수익을 올리는 회사이며 일본의 동종업계 대기업인 마쓰시타 전기에 시장 점유율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