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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험학습] 환경오염
    1. 대기오염(1) 영향① 산성비 : pH 5 이하인 비. 자동차가 배출하는 질소산화물과 공장· 발전소· 가정에서 사용하는 화석연료가 연소되면서 나오는 황산화물· 질소산화물이 빗물에 섞여 산성비가 내리게 된다. 이로 인해 세계 여러 곳에서 산림황폐 및 토양오염이 가속화되었으며 하천· 호수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이미 미국· 유럽에서는 공업지대 주변 침엽수림이 말라죽고 스웨덴에서는 9만 개 호수 가운데 4만 개, 미국에서는 전체 호수의 1/5 이상이 산성화되어 호수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또한 산성비는 눈과 피부를 자극하고, 금속· 건축물을 부식시켜 아크로폴리스 등 그리스· 이탈리아의 문화재도 훼손되고 있다. ② 지구 온난화 :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의 연소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지상 부근 대류권에 깔린 오존· 메탄가스· 이산화질소 등이 적외선복사열 방출을 막아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현상으로 흔히 온실효과라 한다. 온난화현상에 영향을 주는 기체는 이산화탄소 55%, 프레온가스류 20%, 메탄가스 15%, 이산화질소 6%, 기타 4%이다. 21세기 중반에는 지구온난화현상으로 극지방 빙산이 녹아 바다 수면이 2m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어 저지대 침수로 인한 <환경난민> 발생이 우려되고 있다. 또한 대륙의 수분 증발량이 늘어나 토양이 건조화· 사막화되고 농작물 수확이 감소되며 삼림은 황폐해질 것이다. ③ 오존층파괴 : 오존은 지상에서 50㎞ 이내 대기에서 서로 다른 농도로 존재하며 특히 20∼25㎞ 상공에서 고농도 오존층을 이루고 있다. 이 오존층의 역할은 태양의 자외선을 차단하는 천연필터로 작용, 지구의 생명체를 보호하고 지구의 온도를 적절히 조절해 주는 중요한 것이다. 오존층파괴는 질소산화물· 할론· 사염화탄소· 일산화이질소 등에 의해서도 일어나지만, 특히 냉장고· 에어컨디셔너의 냉매제나 헤어스프레이용 분무제 등으로 쓰이는 CFC(chlorofluoro carbon ; 상품명 프레온)가 주요 원인이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발표한 자료화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증가한다.(2) 대책대기오염물질은 일단 대기 중에 배출되면 제거할 방법이 없으므로 인체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발생원에 대한 지속적인 규제와 예방이 중요하다. 그 대책으로 대기오염 방지시설 설치, 원료· 연료의 전환 등 발생원 방제기술의 채용 등이 가장 유효하다. 즉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산업분야에서 대체기술을 개발하거나 아황산가스 오염도를 높이는 경유자동차 등을 무공해자동차로 대체해 나가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무공해· 무소음의 미래형 자동차인 태양전지자동차· 전기자동차· 수소연료자동차· 메탄올자동차·에탄올자동차· 신소재자동차 등은 세계 각국에서 개발이 진행되어 스위스에서는 1986년부터 전기자동차가 실용화되고 있으며 브라질에서는 알코올자동차 운행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91년 발간된 환경백서에 의하면 한국은 아황산가스오염도가 심각해 서울의 경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장한 건강기준치 0.022보다 2배 이상 초과한 실정이며, 아황산가스에 의해 발생되는 산성비는 90년 평균 정상비의 4∼6배나 산성화되었다고 한다. 이는 1980년부터 난방용· 산업용 연료를 연탄·고황유 등에서 액화천연가스(LNG) 등 청정연료로 전환하였지만 그 대책이 아직도 미흡함을 보여준다. 한국 대기오염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급속히 증가한 경유자동차의 배기가스를 들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무공해자동차인 에탄올자동차· 메탄올자동차· 전기자동차 등은 시제품이 선보일 정도로 개발이 진행중에 있으나, 아직도 핵심기술은 선진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 밖에 냉장고· 분무제에는 프레온가스 대신 액화석유가스(LPG)를 쓰고 있으며 프레온가스를 대체하여 흡수식냉방을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오염흡수력이 뛰어난 정화수(淨化樹)를 심는 시민운동도 벌이고 있다.(3) 현장 체험학습 활용방안숲은 총체적인 자연체험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그리고 자연체험을 통한 올바른 인성발달을 기대할 수 있는 적합한 곳이다. 왜냐하면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학생들은 자신의 환경을 모든 감각기능을 통한 놀이형식으로 체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흥미로운 사물을 만지고, 느끼고, 맛보고, 소리를 듣는 가운데 인식하고 파악하게 된다.▷ 애벌레의 나들이- 애벌레에 대한 설명을 한다.- 7-8명으로 모둠을 나눈다.- 신발과 양말을 벗는다.- 준비한 눈가리개를 나누어주고, 맨 앞사람(진행자, 보조진행자)은 눈가리개를 하지 않는다.-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어 천천히 간다.- 가능한 한 바닥의 다양한 것을 발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맨 앞사람 은 유도한다.- 5-10분 정도의 체험 후 눈가리개를 벗고 어디로 왔는지 확인을 하 면서 되돌아 간다.2. 수질오염(1) 영향① 인체 : 수질오염의 원형은 병원생물에 의한 식수원의 오염이다.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등 소화기계통 전염병과 간디스토마· 회충 등 기생충증은 오염된 물을 마신 사람들에게 집단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는 구리· 납· 망간· 크롬· 수은· 카드뮴 등 중금속에 의한 급성· 만성중독증상이 있으며 물 속 중금속농도가 낮아도 이러한 물질이 고농도로 축적된 식물이나 어류를 먹으면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대표적 예로 미나마타병·이타이이타이병이 있다. 미나마타병은 공장에서 배출된 수은을 흡수한 부유생물을 먹은 어패류에 수은이 고농축되어 이것을 먹은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유기수은중독증이고, 이타이이타이병은 카드뮴이 용출된 하천수를 농업용수로 사용했을 때 토양에 축적된 카드뮴이 쌀에 유입되어 중년 여성에게 나타나는 골연화증이다. ② 생활환경 : 인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도 부유물질에 의해 탁도가 증가되어 자연경관을 해치고, 유기오염 및 부영양화(富營養化)도 수영· 낚시· 보트 등 물에서 즐기는 여가활동을 저해한다. 또 오염이 지나치면 대량으로 퇴적된 진흙에서 악취·유해가스가 발생하여 대기성 질환이나 문화재· 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③ 어패류 : 어패류내 유해물질 축적, 독극물에 의한 양식어의 떼죽음, 산란장·어장 오염에 따른악화되며 물 속의 유기 성분과 염소의 반응으로 THM(trihalomethane) 생성량도 증가한다. ⑤ 하수도 : 하수도는 수질오염 방지에 필수적인 시설로 산업폐수 중 중금속·기름 등이 하수처리장의 생물처리기능을 방해하지 않도록 배수기준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하수도가 오염원이 된다. ⑥ 농업 : 농약· 화학비료 사용량 증대로 농업폐수도 오염원의 하나가 되고 있다. 종래에는 광공업폐수로 인해 농작물이 급성· 만성피해(고사· 퇴색, 수확량 저하, 오염된 쌀 생산)를 입었고 농업용 수로가 도시폐수로화되어 질소과다의 영향(도열병, 벼의 도복, 수확량 감소)을 받게 되었다. ⑦ 지하수 : 지하수는 유동이 느리므로 일단 오염되면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토양의 정화기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오수의 지하침투나 폐기물처리장의 빗물침투는 지하수를 오염시켜 실제로 미국에서는 1만 4000개의 우물·지하수가 과거의 합성화학물질 매립으로 오염되어 주민건강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켰다.(2) 대책수질오염문제가 더 이상 국가의 일률적 시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또 지금까지 하수도정비가 오염방지의 기본대책이었으나 하수정화를 거쳤어도 하수처리장의 방류수 중에는 미생물의 배설물이 포함되어 이것이 정수장의 THM생성능력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오염대책은 공공수역에서의 피해가 두드러진 뒤에야 이루어져 왔으나, 앞으로는 오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과학자들의 계획적 연구가 필요하다. 한편 오염과 그 영향의 인과관계 규명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므로 이 사이에 잠재오염이 진행된다. 따라서 바다보다 호소·하천 정화의 필요성이 지적되는데, 이것은 가까운 오염원을 막으면 오염의 범위가 확대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은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자는 것이다. 유럽 각국에서는 여러 가지 대책에도 불구하고 수질오염이 점차 더해가자 엄격한 수질기준 채택과 함께 새로운 폐수정화법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가장 를 정화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공장폐수의 페놀 제거에도 유용하다는 것이 증명되어 실용화되고 있다. 또 비교적 싸고 흔한 자원인 이탄·갈탄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탄 속의 토양입자가 오염물질과 화학적 합성을 일으켜 폐수 속의 유기물질을 흡수하는 것으로서 이미 실용화되고 있다. 한국의 수질오염은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급속도로 진전되어 91년 3월 낙동강페놀방류사건으로 심각성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300여t의 페놀원액이 구미(龜尾)공장에서 낙동강으로 고의적으로 방류되어 대구시 전역 수돗물에서 심한 악취가 나고 부산 등 낙동강 수계 1000만 주민들이 발암 공포에 떨었던 사건으로 한국 수질관리정책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91년 환경처(지금의 환경부)에서 발간된 《환경백서》의 수질오염도(BOD기준)를 보면 영산강이 81년 3.8, 86년 5.2, 90년 6.7, 금강이 81년 2.0, 86년 3.0, 90년 3.1, 낙동강이 83년 3.1, 88년 3.9, 90년 3.0으로 대체로 계속 나빠지고 한강만이 81년 5.2, 88년 4.3, 90년 3.4으로 조금 호전되고 있다. 특히 70년대에 축조되어 수자원 공급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대규모 인공댐의 일부 호수에서는 가을철에 조류(藻類)가 과잉번식하는 수화현상(水華現象 ; 물꽃 번식현상)이 발생하여 이를 상수원으로 이용하는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또한 최근 자료에 의하면 하수처리율 30%, 축산폐수처리율 30% 정도로 실적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투자가 적극 요청되고 있다. 최근에는 생분해속도를 향상시킨 저공해세제가 개발되었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중심으로 축산폐기물 및 분뇨의 안정화처리, 아파트 및 공공건물용 오수 정화시설 개선, 단독주택용 정화조 개선 등 수질오염 방지기술이 계속 연구· 개발되고 있다. 특히 유독한 난분해성 석유화합물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인 슈퍼버그(superbugs) 개발은 폐수를 정화하는 데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교육학| 2005.05.29| 8페이지| 1,000원| 조회(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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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교육]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를 읽고
    편입 19반 윤리교육과 20042403 최진아‘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를 읽고...이번 학기 미술교육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접해 본 미술치료 영역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책들 가운데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란 책을 선택해 읽게 되었다. 수업 중에 직접 피검자가 되어서 실시해 본 HTP검사의 실시방법, 아동 그림의 해석, HTP와 KFD의 구조적 해석, 실제 사례 해석 등이 자세히 쓰여진 글을 읽으며, 이러한 검사들이 ‘아동의 내면세계에 대한 진단과 이해를 위해 참 유용하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특히나 아이들의 그림을 통해 마음에 상처를 가진, 마음이 아픈 아이들의 드러내지 못하는 슬픔과 아픔, 고통, 갈등 뿐 만이 아니라 소망과 희망을 발견하고 극복해 나가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하루 빨리 현장에 나가서 활용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성격적으로 결함이 있다거나 학습장애, 주의산만 등을 보이는 아동에게 겉으로 나타내 보이는 행동만을 가지고 판단하고 낙인찍는 것보다는 아이가 그러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아이도 모르는 무의식 중에 작용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인지를 그림을 통해 분석하고, 아이와의 심층 면담과 기타 자료 등을 이용해 근본적인 문제에 한 발짝 다가가서 이해하고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동화 검사의 목적인 것 같다. 그것이 또한 교사의 역할 일 것이다.아동의 그림은 성인의 그림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이는 그림을 통해 자신이 내면적, 외면적 세계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낸다. 아직 언어를 쉽게 표현할 수 없거나 또는 표현될 수 없는 감정 및 생각도 그림을 통해 자유롭게 또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동화 검사란 아동이 그린 그림을 통해 아동의 지적수준과 심리적 특성을 밝혀내는 검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동화를 통해 아동을 이해 ? 평가해야 할 것이다.미술치료가 최근 들어 유행처럼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아동화 검사를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늘 조심하고 신중한 태도가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특정한 그림의 특성 하나만으로 아동을 결정적으로 진단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아동에 대한 다른 정보와 검사 결과들을 함께 고려하며 종합적인 판단을 할 때만이 아동의 내면세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 아동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다.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치료보다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켜 더욱 마음을 닫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다. 미술치료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림을 못 그려서 자신감을 잃은 아동에게 미술지도를 잘하여 성취감과 함께 자신감을 주었다면 그 또한 미술치료의 기능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편입 19반 윤리교육과 20042403 최진아재작년 이맘 때 쯤 초등학생 아이 둘을 과외로 공부를 가르쳐 본 적이 있었다. 한 아이는 4학년의 남자아이였고, 다른 아이는 3학년의 여자아이였는데, 두 아이 모두 학교 공부는 상위권에 있는 우수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남자 아이는 상당히 폭력적이고 과격하며 산만한 학습태도를 보였다. 기본 생활 습관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으며 공부하는 도중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무엇인가가 있었을 때는 연필을 부러뜨리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일삼았다.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셨던 아이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보다는 할머니를 비롯한 다른 여러 사람의 손에 커오면서 어머니와의 친밀감, 안정감이 형성되지 못한 듯 보였다. 어머니를 함부로 대하면서도 편안한 상대로 여기지 못하고 두렵고 어려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한편 여자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고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였다. 사고 현장에서 사고 난 차를 함께 타고 있었던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나이에 비해 정신이 훌쩍 커버렸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했다. 되도록이면 아이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같이 놀아 주려고 했던 나는 하루 3시간 과외 수업 중간에 휴식 시간을 가졌으며, 그 시간에 아이들이 원하는 것들을 같이 해 주었다. 대개 아이들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여 종종 그림을 같이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독후감/창작| 2005.05.29| 2페이지| 1,000원| 조회(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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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2 평가B괜찮아요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Ⅱ▶화륜거(화륜거)구르는 소리가 우뢰와 같아▶철도의 두 얼굴, 두 얼굴의 근대화▶끊어진 철로 다시 잇기▶우리에게 근대의 의미는?▶박규수, 베이징을 다녀오다1. 19세기의 저녁, 21세기의 아침1)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화륜거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이해되어 이를 운행하려는 노력이 전개 됨.? 1899년, 노량진에서 제물포 사이에 건설된 경인선(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운행) → 일본 인의 손으로 만들어짐.? 철도가 개통되면서 사람들의 삶도 크게 달라짐.→ 근대화의 상징. 수많은 근대 문물과 사람들을 나라 안팎으로 실어 나름.→ 가난한 사람보다는 부자 들을 더 많이 실어 날랐고, 조선인보다는 일본인에게 더 필요 한 것이었음.(일본이 우리나라의 자원과 식량을 수탈하고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데 봉 사)? 1945년 9월 ‘해방자호’라는 이름의 열차도 생겨남.(건설의 희망과 성공을 향한 꿈이 실 려있음.)? 철도는 자주 부강의 상징.? 자주적 근대화의 실패와 주권 상실, 해방과 분단, 그리고 새로운 건설! 철도의 역사 속에 는 우리 민족의 비극과, 비극 속에서 일구어 낸 성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음.2) 우리의 근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조선이 자주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물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 수많은 고을에서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켜 개혁을 요구하였지만, 조정은 그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대원군의 등장▶프랑스와 미국의 침략을 물리치다▶대원군과 박규수▶ 이 난국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세도정권 무너뜨림. 조세제도 개혁(환곡제 폐지), 군역제도 개혁(양반에게까지 군포를 물 림), 서원 철폐(양반들이 민중을 수탈하지 못하도록 함), 경복궁 재건(수많은 농민들이 세금과 강제 노동으로 큰 고통 겪음)? 천주교 탄압(전통 풍속 지킴), 서양인과 내통하지 못하도록 함.? 1866년, 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것을 구실로 프랑스 군대 가 강화도 침략, 사과와 손해 배상, 통상 요구 서를 불태움. 토지를 골고루 나눌 것을 주 장? 조정에서도 조세 행정을 고치고 탐관오리를 내쫓으며 신분제를 폐지하는 등 농민들의 요 구를 받아들인 개혁을 추진 ⇒ 농민 전쟁은 겉으로 드러난 잘못된 행정을 고치는수준을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혁명이 됨.? 농민들은 ‘나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농민 전쟁을 통해 이룩한 혁명의 성과를 지키기 위 해’ 다시 일어섬 → 끝내 성공하지 못했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무너뜨려 개화파 관 료들이 근대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듬.5) 자주와 근대화의 갈림길? 개화파 정권(김홍집, 유길준 등)은 특별 개혁 기구로서 군국 기무처를 조직. 군국 기무처 의원들은 동등한 자격으로 토론에 참가하고 다수결 방식으로 정책을 결정하면서 수많은 개혁 정책을 만들어 냄(1894. 갑오개혁)⇒ 양반과 상민 ? 천민의 차별을 폐지하고 귀천의 구별 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할 것이며, 지방민들이 고을의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고 선언. 농민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조세 행정을 고치고 부패한 관료들을 몰아냈으며, 과거 제도를 폐지하고 중앙 정치 제도를 개혁? 개혁에 불만을 품은 왕실과 일부 세력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에 의존한 개화파 정권을 무너뜨리려 하자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왕비를 살해하고(1895. 을미사변) 새로운 정권 을 세움.? 새 정권은 양력 사용, 단발령 시행, 의복 제도 근대화 등의 조치를 발표 → 개화파 정권은 이제 친일 정권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것은 반발의 대상이 되 고 있었음.▶서울에서의 피난▶38도선으로 조선을 분할하자▶독립 신문과 독립 협회▶대한 제국의 성립▶자주 독립 국가의 조건은?▶대한국은 만세 불변의 전제 국가3. 주권을 지키기 위한 항쟁1) 38도선으로 조선을 분할하자? 청 ? 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개혁을 내세워 조선을 보호국으로 삼으려 함. 이에 양반 유학자들과 민중들이 의병을 일으키는 등 일본에 반대하는 운동이 크게 일어남. 일부 개 화선물기 위한 활동 전개.?‘나라는 망해도 민족이 살아 있으면 언젠가 나라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라 말과 나라 역사를 연구하고 보급하려는 운동이 크게 일어남.4. 일제의 강점과 뒤틀린 근대화1) 감천리 금수강산 지옥이 되어?1910년 8월,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조선 총독부가 설치되어 우리나라를 통치 하기 시작.?“한국의 황제 폐하께서는 대한제국 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한 영구히 대일본 제국 천황 폐하께 넘겨 준다.”는 조약 문안을 들이밀며 조약 체결 선언.?일제는 적국 곳곳에 군대를 주둔. 한국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 그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어긋날 경우에는 가차없이 폭력이 가해졌고, 심지어 학교의 교사들조차 칼을 차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 (무단통치)?군대와 폭력을 동반한 무단 통치에도 독립 운동은 끊이지 않음.?3 ?1 운동이라는 민족적 저항에 부딪힌 일제는 1920년 이후, 이른바 문화 정치라는 새 로운 정책을 내세움 → 한글 신문 생겨나고 여러 단체들이 조직되었으며 다양한 사회 활 동이 전개 됨. 그러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자유는 친일파들에게만 보장되었을 뿐 일제 통치 정책에 반대하거나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는 폭력적 탄압이 계속 됨. 일제의 문화 정치는 친일파를 육성함으로써 민족을 분열시키고나 하였던 또 하나의 죄 악.2) 일제, 그리고 지주와 소작인?일제는 1911년부터 근대적 토지 소유 제도를 확립한다고 떠들어 대면서 이른바 토지 조 사 사업을 실시 → 왕실과 공공 기관의 토지, 여러 사람이 함께 주인이던 토지 등 수많 은 토지를 빼앗아 일본인들에게 헐값으로 되팔음 → 대대로 누려왔던 농민들의 경작권을 부정하고 지주들의 소유권만 보장함으로써 농민들은 지주의 딸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소▶지주들의 태평천하▶고향을 떠난 사람들▶도시의 사람들▶방송이 처음 시작되던 날▶새 것과 오래된 것작인이 되어야 했음.?지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 농민들을 저항.“경작권을 인정하라! 소작료를 내자!?1921년 3월,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이광수가 서울로 압송. 조선 총독부에서 그의 귀국과 취직을 주선 하였음. 이처럼 일제는 독립 운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친일파로 만들어 민족 운동을 분열시키려고 함.▶“조선 독립 만세!!”▶단결하여 투쟁하자▶광주 학생 항일 운동,그리고 신간회▶인간을 사냥하는 침략자들▶조선 민족은 사라지고 말 것인가?1926년,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이 세상을 떠남. 이에 사회주의자들로 조직된 조선 공산당 과 학생 단체에서 순종의 장례식을 기해 전국적인 만세 시위 운동을 추진. 일제의 삼엄 한 경계 속에서도 서울의 곳곳에서는 만세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독립을 향한 우리 민족의 의지가 유감없이 과시(1926. 6 ?10 만세 운동).?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조직한 최대의 항일 운동 단체, 신간회가 탄생 (1927).?신간회는 야학을 설립하고 웅변회와 연설회를 열어 민중들의 투쟁 의지를 드높였으며 농 민, 노동자들의 이익을 해치는 일제의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고, 청년 학생 단체 의 활동을 지원.?1929년 11월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남. 이 사건은 통학 열차 안에서 일어난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사이의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 학생들의 투쟁은 전국 곳곳으로 확산 되어 3 ?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운동으로 발전.6. 해방의 그 날까지1) 빼앗긴 조국, 끌려간 사람들?일제는 강점과 동시에 우리 땅을 빼앗고 자원을 약탈, 우리 민족의 발전을 가로막고 사 상과 문화의 발전을 왜곡시킴. 1930년대에 대공황이 전세계를 휩쓸자 일제는 우리 민족 에 대한 수탈을 더욱 강화.?일본이 만주와 중국을 침략하고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조선인을 전쟁 물자의 생산, 전투 시설 구축에 강제 동원. 지원병, 징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젊은이들을 그들의 전 쟁터로 끌고 가 목숨까지 내놓도록 강요. 수많은 공장과 일터에 여성들을 배치하고 군대 위안부로 동원, 성노예 생활을 강요.?일제는‘전시 총동원 체제’라는 이름 아래 폭력적인 통합은 “1947년 11월의 인구를 기준으로 남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게 총선거를 실시 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 정부를 구성한다.”는 안을 결정.?북한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는 사회주의 체제가 자리잡고, 남한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자본주의 체제가 자리 잡게 됨.?1948년 5월 10일,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실시.▶고단한 생활 전선▶미 군정 시기 남한의 노동 ? 토지 정책▶소 군정 시기 북한의 토지개혁▶깊어지는 남북간의 적대감?헌법 제정(1948. 7. 17.), 헌법이 정한 절차와 형식에 따라 간접 선거를 통해서 이승만 이 대통령으로 선출. 1948년 8월 15일, 이승만이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건국을 선포 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수립.?북한에서도 최고 인민 회의 대의원을 선출하고(1948. 8. 25) 이어 북한 헌법을 채택하였 으며, 1948년 9월 9일 헌법에 정한대로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 화국을 선포.4) 해방된 조국, 생활 전선은 힘들다?일제 식민 통치 몇 해 동안 전쟁에 시달리느라 민중들의 생활은 매우 어려워졌으며, 해 방 후 사회가 혼란 상태가 되면서 쉽사리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음.?미군정은 좀 더 수월하게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행정 경험이 있는 친일파를 불러들였고, 노동자와 농민들을 탄압하며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정책으로 나아감.?1946년 9월, 미군정의 잘못된 식량, 노동 정책에 항의하여 전국의 노동자 약 50여만 명 이 파업에 나섬.?민중들은 “공장은 노동자들에게, 농토는 농민들에게”라는 구호를 외치며 일본인 지주 와 친일 한국인 지주들의 땅을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라고 주장했지만 미 군정은 “일본인 소유의 모든 재산은 미군정에 귀속된다.”고 선포.?북한은 1946년에 접어들면서 전국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는 토 지 개혁을 실시. 일본인, 친일 자본가 소유의 공장과 경제 시설을 몰수하여, 90% 정도를 국유화 함.8. 전
    교육학| 2005.05.29| 26페이지| 2,000원| 조회(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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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1
    1. 역사는 왜 배우나요1) 역사와 나역사의 사(史)자는 역사가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의 참된 뜻은 어제의 사실을 그저 지난 일이나 흥미 있는 이야깃거리쯤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오늘의 교훈으로 삼고 내일을 설계하는 디딤돌로 만드는데 있다. 이 과정에서 여기저기 널려 있는 사실들을 촘촘히 연결하고 다듬어서 우리 삶에 보석 같은 가르침으로 만드는 것이 역사가의 몫이다. 이러한 과정을 어느 역사학자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과거 사실과 역사가의 대화’라고 말하였다. 참된 세계화란 우리 조상의 훌륭한 전통을 두둑한 밑천 삼아 당당하게 우리를 소개하고 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적어도 우리 역사와 문화를 간단히 소개할 정도의 지식과 자부심은 가져야 할 것이며, 국사는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2. 우리 역사의 새벽1) 동굴에서 들녘으로신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유적으로는 조개더미가 있고, 이것은 오늘날 신석기 시대를 살피는데 훌륭한 타임캡슐 노릇을 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 유적, 유물은 강원도 양양이나 서울 암사동처럼 바닷가나 강가에서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구석기 시대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움집에서 함께 살았음을 말해준다. 또한 신석기 시대에 들어와서 흙그릇(토기, 도기)을 만들었다는 것은 먹고 남는 음식이 있어 다음을 위해 저장해 두었다는 뜻으로, 그만큼 더 넉넉한 생활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신석기 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농사를 직접 지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먹이를 찾아 떠돌던 인류가 한 곳에 머물러 살게 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문화를 발전시키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임을 의미한다.2) 고인돌을 만드는 세상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었으므로 신석기 시대보다는 농경이 훨씬 발달하였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인 농사 도구로는 발달 모양의 돌칼이 있다. 청동기 시대에는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 인간 불평등, 즉 계급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대변하는 것이 족장의 무덤인 고인돌이다.3) 우리 겨레 첫 나라고조에서 승리함으로써 고구려를 확고한 동북 아시아 최강국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광개토 대왕 시기 고구려의 팽창은 한반도에 새로운 전운을 몰고 왔다. 강력한 고구려의 남하 정책에 맞서 백제와 신라는 나제 동맹을 맺었다.5) 신라의 도약, 이어지는 전쟁신라의 국력은 지증왕, 법흥왕 때에 차곡차곡 정비되어 진흥왕의 빛나는 시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진흥왕은 고구려와 백제를 밀어 제치고 한강 유역을 쟁취함으로써 신라가 다른 두 나라를 통합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 냈다. 그는 개척한 영토 곳곳에 순수비를 세워 이를 기념하고 신라 국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었다. 진흥왕 대에 신라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이로써 고구려, 백제, 신라의 다툼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게 되었다.6) 고구려, 수?당의 침입을 물리치다.신라가 한강 유역을 장악한 6세기 후반 이후 삼국간의 전쟁이 더욱 숨가쁘게 진행되는 동안 중국의 수나라가 거대한 중국 대륙을 통일하였다. 바짝 긴장한 고구려가 발빠르게 대책을 마련해 나가는 속에서 수의 침입이 거듭되었으나 을지문덕이 이끈 고구려 군대는 살수(청천강)에서 수의 대군을 물리쳤다. 수를 이은 당은 또한 고구려를 침입하였으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추위가 닥쳐오자 고구려 산성을 뒤로 한 채 군사를 되돌렸다. 고구려는 통일 중국의 거듭된 침략을 물리치면서 민족사의 빛나는 시기를 장식하였지만, 그 영광의 뒤안에는 엄청난 국력의 손실,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가 뒤따르게 되었다.4. 삼국에서 남북국으로1) 남북국 시대가 열리다백제의 정부가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허둥대는 가운데 백제의 여러 곳에서 백제를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이 강렬하게 일어났으나, 백제군은 황산벌을 빼앗기고 수도 사비성도 함락되었다. 고구려 또한 거듭되는 전쟁으로 국력이 점점 기울어지고 농토가 황폐해져 갔으며 재정은 바닥이 드러나면서 마침내 쓰러졌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였지만 신라에게 온전한 승리의 기쁨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은 그 땅에도인 경주마저 점령하고 이를 구원하러 온 고려의 대군을 공산에서 크게 격파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왕건이 겨우 목숨을 구해 달아날 지경이었으니, 통일 전쟁의 주도권은 후백제에게로 넘어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왕건은 신라를 끌어안는 정책을 추구하는 한편, 호족들을 설득하여 고려의 편으로 돌려 세우는데 노력하였다. 그리고 군대를 착실하게 준비하여 후백제군을 크게 무찔렀다. 대결의 주도권은 고려로 넘어왔다. 935년, 신라는 스스로 나라를 고려에게 넘겼고 견훤이 아들 신검을 피해 고려로 탈출함으로써 자신이 애써 키운 나라를 무너뜨리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마침내 왕건의 고려군은 후백제의 서울, 완산주에 이르렀고 삼한이 통일되었음을 선언하였다.2) 나라의 기틀을 다듬고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여러 호족의 도움을 받았으나, 호족은 참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치열한 왕위 다툼을 지켜보며 왕이 된 광종을 호족을 억누르기 위해 호족들이 불법적으로 소유한 노비를 해방시키도록 하였고, 과거제도를 실시하여 호족 출신이 아니어도 벼슬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광종이 죽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호족들은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다툼이 있었으므로 모두들 왕과 신하가 조화롭게 정치를 펼 수 있는 대책을 바라게 되었다. 성종은 ‘왕의 지위는 신하들이 존중하되 왕도 겸손한 자세로 신하들과 함께 정치하여야 한다,’는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이고 나라의 기틀을 만들어 나갔다.3) 고려, 거란의 침략을 물리치다고려가 새로운 정치 제도를 마련하면서 국력을 정비하고 있을 무렵, 거란(요 나라)은 북중국과 만주 지역을 차지한 다음, 압록강 부근에 군사 기지를 만드는 등 고려 침략을 본격화하고 있었다. 993년, 거란은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였다. 소손녕과 서희는 담판을 벌였는데, 당시 거란은 고려에게 압록강 부근의 땅을 넘기는 대신 고려가 송 나라와 관계를 끊고 거란과 친해지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서희는 이런 속셈을 꿰뚫어 보 노비들의 항쟁도 뒤를 이었다. 이렇듯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무신 정권의 중심지였던 개경에서도 대규모 노비들의 항쟁이 추진되었다. 그 주역은 당시 집권자였던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이었다. 농민과 천민들의 항쟁은 최후의 승리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지방관들의 수탈이 줄어들고 향, 소, 부곡과 같은 특수 행정 구역이 거의 사라지는 등 나름의 성과를 갖기도 하였다.3) 몽고와 맞선 고려 사람들최씨 무신 정권이 안정되어갈 무렵, 나라 밖에서는 몽고가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 하였다. 거란을 무찌른 후 몽고는 고려에게 지나치게 많은 선물을 바치라고 요구하였다. 고려의 반응이 탐탁치 않자 몽고는 사신을 보내었는데, 그가 돌아가던 길에 압록강 근처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몽고가 고려에 침입해 왔으니, 이것이 기나긴 전쟁의 시작이었다. 비록 몽고에 밀리는 처지였지만 고려의 저항은 끈질겼다. 고려의 운명을 건 몽고와의 싸움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다름 아닌 민중들이었다. 고려가 비록 항복하였어도 고려의 이름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민중들이 보여 준 눈물겨운 투쟁 때문이었다.4) 권문 세족 활개치다몽고에 맞서 최후의 항쟁을 벌인 고려의 군대는 배중손 등이 이끈 삼별초였다. 삼별초는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러 해 동안 몽고군에 맞서 싸웠다. 삼별초 항쟁이 제압되자, 원(몽고)는 고려를 자신의 침략 전쟁에 끌어들이려 하였고, 왕의 이름도 원 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에서 ‘충’ 자를 맨 앞에 붙였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고 민중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져 갔다. 하지만 모두가 불행해진 것은 아니었다. 몽고의 침략에 협력하였거나, 왕이 원 나라에 있을 때 함께 생활하였던 사람들은 대부분 높은 벼슬을 얻고 큰 권세를 누렸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혼인 관계를 맺거나 이전부터 권세를 누려 왔던 문무 관리 집안과 혼인을 맺음으로써 고려 후기의 지배 세력으로 등장하였는데, 이들을 권문 세족이라 한다. 이들은 원 나라의 도움으로 과거 시험을 보지 않고도 높은 벼슬을 차지하려 시대와 달리 과거 시험에 합격하지 않고서는 관직에 나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많은 학생들이 과거 준비에 몰두함으로써 국왕을 충성으로 섬기려는 마음가짐을 갖춘 관리를 선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교 윤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될 수 있었다.3) 훈민정음을 만들다민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 정치, 즉 민본 정치가 가장 잘 실천된 시기가 바로 세종 때이다. 이는 세종이 뭇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민을 위하여 새 문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종이 새 문자를 만들 것을 선포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세종은 이들의 주장을 물리쳤다. 민은 나라의 근본이니, 민의 생활을 편하게 하는 것은 군주의 당연한 도리라 생각하였던 것이다.8. 대의와 명분이 중시된 사회1) 도적이 의적이 되는 세상민본 정치가 펼쳐지고, 훈민정음이 창제되던 바로 그 시기에, 나라 곳곳에 도적이 들끓고 있었다. 민본 정치가 강조되고, 조세 제도가 고쳐져도 농민들의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던 것이다. 세종이 죽고 그의 큰아들 문종이 왕의 자리를 이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나이 어린 세종의 큰손자(단종)가 왕의 자리를 이었지만 왕이 되고픈 수양대군은 나이 어린 조카를 내몰고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세조였다. 세조는 사대부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 그래서 나라일은 왕과 한명회를 비롯한 몇몇 대신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들을 훈구 대신이라 불렀다. 훈구 대신들은 점차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으며 연고가 있는 지방 수령과 짜고 공물을 정해진 양의 몇 배로 거두어들이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생활이 어려워져 세금 낼 능력이 없는 농민들은 몰래 고향을 떠나야 하였다. 어떤 이들은 깊은 산 속에 들어가 화전을 일구었고, 어떤 이들은 사람이 찾지 않는 섬으로 떠났으며, 또 어떤 이들은 도적이 되었다.2) 사림이 정치의 중심에 서다성종의 즉위와 함께 변화가 시작되었다. 성종은 훈구 대신을 견제하고, 그동안 관직에 나오지 않았던 이름다.
    교육학| 2005.05.29| 12페이지| 1,000원| 조회(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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