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ment 18The Emitter Follower1. Objectives1. To measure the input and output impedances of an emitter follower.2. To measure the power gain of this amplifier.3. To observe the phase relationship between the input and output signal voltage.2. TheoryThe Emitter Follower- 입력 Impedance 크다.- 출력 Impedance 작다. -- Impedance Matching 용으로 사용한다.EX) Amp1의 출력 Impedance=∞, Amp2의 입력 Impedance=0라 할 때,입력이 ∞이고, 출력이 0인 Emitter-Follower를 Amp1과 Amp2사이에 삽입한다.- 컬렉터 접지증폭기 또는 Emitter Follower라고 한다. 입력 루프에 대해 전압 방정식을 쓰면(1)입력 신호 Vi 을 Vbe 보다 크게 하면(2)이고 출력 전압은 거의 입력 전압과 같다. 출력전압은 입력전압을 따른다.전압 이득 Vo /Vi 는 1보다 작지만 크기가 1과 거의 같다.- 위 그림은 B, C, E 단자 사이에 트랜지스터의 gm모델을 넣어 얻게 된 것이다.에미터 회로의 부하로부터(3)입력회로에서 이고 이 식들을 식 (1)에 대입하면(4)증폭기의 입력 저항은 을 가정하면(5)저항 Ri 는 트랜지스터만의 hie에 비해 상당히 크다.전류 이득은 부하 전류로부터 구해진다.(6), (7)전압 이득은 식 (5)에서 구한 와 함께 식 (7)의 일반식을 이용해 구할 수 있다.전력 이득은포트 2, 2에서의 출력 저항은 독립 전원 Vi = 0으로 하고 부하 RL위치에 Vo를 삽입하여 만들어구한다. 출력 포트에서의 회로는 다음과 같다.- 위 회로에서이 값은 트랜지스터의 hie보다 작은 양이다.- 에미터 폴로워는 저저항 부하에 전력 매칭하며 높은 입력 저항을 제공하는 단위 이득 임피던스변성기이다. 이것은 CB회로와 반대되는 동작이다.< Emitter Follower Output Stage>Q1 - Common Collector AmpQ3 - Emitter Registance = Re - Active LoadQ2, Q3 - Current mirrorRL//RE : RL이 크면 상관 없지만, 작으면 감소한다.RL이 Short되면 TR이 파손되고, → IC파괴된다. → Short-Circuit Protection이 있다.3. 실험 DATA and 분석Vout(V)Vin(V)Gain =Vab(V)Iin(A)Rin(Ω)(w)150mV148mV1.0153.2mV5.32E-62.78E47.86E-7Table 18-1 Voltage Gain. Input Impedance, and Input Power.Vout(V)Vout / 2(V)RL=Rout(Ω)Vout^2 / Rout(w)PowerGain100mv50mv3113.21E-540.80Table 18-2 output Impedance, Output power and power gainWave formInputOutput4. Discussion이번 실험은 The Emitter follower(common-collector amplifier) 의 원리를 실험해 보고 circuit 이 갖는 gain값을 찾아보고, 파형을 관찰 해 보는 실험이었다. 데이터는 구하였고, 실험이 요구하는 값들도 측정은 하였으나, 실제로 그 작동원리 및 그 쓰임 등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실험 전에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시면 안될까요?)
:간단한 게임 프로그램을 C++를 이용하여 구현하여 본다. 이 과제를 통해 템플릿 클래스의 이용 방법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은 자동차가 땅에서 움직이거나 비행기가 하늘을 날라 다니면서 장애물들을 피하며 목표물을 총으로 공격하여 제거하면서 게임을 진행해나가는 방식이다. 또한 목표물들이 제거되면 점수가 올라가는 방식의 게임이다.
I. 서론1. Background‘소유의 종말’ 12장 ‘문화의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에서는 접속의 시대 즉 탈산업화 시대에는 자본주의와 문화가 함께 적절한 생태학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세계 자본주의 선진국에서는 탈산업화로 인한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하여 과거의 인간적인 만남과 친밀감, 공동체 등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또한, 인간 삶의 근본으로 자리 잡고 있는 문화가 시장과 정부의 새로운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은 기존의 지역문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탈바꿈시켜 새로운 유행을 창출해왔고, 앞으로는 퓨전문화라 이름 붙여진 상품들을 등장시킬 것이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유지시켜 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의 상업화는 과거 지역 공동체에 남아 있던 그들만의 정신적인 일체감을 약화시키며 문화의 다양성을 저해하므로 자본주의는 그 기반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2. Significance자본주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새로운 세계 체제를 미리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월러스타인과 같은 자본주의 비판가들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붕괴를 예고하며 앞으로의 세계가 격동과 무질서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1세기 자본주의를 조망하면서 전쟁, 대중적 히스테리, 생명을 위협하는 기술의 진보, 저개발국의 인구 팽창 등의 문제들을 꺼내어 해결할 수 있느냐에 의문을 던질 수 있다. 환경 문제 때문에 성장을 정지시켜야 하거나, 자본의 국제화가 각국의 정치적 독립성을 침해하여 경제적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을 말하는 논리에는 비과학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21세기 자본주의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참여 사회가 어떤 주체에 의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지, 빛나는 국가적 과업과 사회 분열의 양면을 어떻게 함께 해결해 갈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남북, 동서 모두를 포함한 한반도 통합을 지향해야 하는 입장에서 서구적 근대화가 초래한 자본주의로의 급격한 변환으로 인한 혼란과 그동안 지역?집단 간 쌓여온 불신으로 점철된 한국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21세기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신뢰’와 ‘공동체 의식’의 측면에서 제시할 것이다.II. 본론1. 자본주의 하의 노동소외 및 양극화 현상1.1. 산업화 시대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 양극화 및 소외계층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자본이 생산수단을 창출한다. 자본을 가진 사람은 그를 이용해 생산수단을 창출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 귀속된 채 가치 창출의 수단이 된다.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특성에 의하여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많은 부를 영위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발달해 감에 따라 지식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자본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지식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고급 인력으로의 성장을 가능케 하는 지식 또한 자본 없이는 얻기 힘든 존재가 되어 가진 자가 더욱 가지게 되는 구조적인 악순환이 고착되고 있다.다위니즘, 즉 적자생존의 원칙에 입각한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가지지 못한 자는 사회적인 약자로써 가진 자에 비해 많은 권리를 상실한다. 보다 많은 권리를 상실한 극빈자들은 사회의 소외계층으로 전락하여 어렵게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고 있다. 자유와 평등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유무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계층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로써 새로운 경제체제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이다.1.2. 탈산업화 시대의 자본주의: 누구나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세상산업화 시대 자본주의의 기본적 개념은 ‘소유’였다. 개인이 물질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부의 척도가 결정되었고 그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것이 달랐다. 하지만 교통?통신의 발달로 시공간의 장벽이 사라지고 ‘정보’가 부의 수단으로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굳이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소유하기 보다는 자신이 원할 때 자유롭게 ‘접속’하기를 원하게 되었다.시장의 수요가 소유에서 점차 접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식은 무형자산이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부나 비영리 단체에서 이러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제공할 수 있다면 지식의 편중 현상에 의한 부의 격차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GNU), Wiki) 등 여러 비영리단체에서 정보 공유를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그러나 여전히 “세계 인구의 65퍼센트가 평생 전화를 걸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들이고 40퍼센트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에서 살고 있는” 실상을 볼 때, 네트워크의 제공에 앞서 먼저 누구나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인프라스트럭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정부의 복지정책으로 가능하다. 비록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가능한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작은 정부’를 원하지만, 공리를 위해 기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서의 탈피 및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이를 통해 그동안 소외받았던 계층이 사회 표면에 떠오르고,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생활 가능한 최소한의 부를 창출해갈 수 있도록 각계의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의 비영리재단 OLPC(One Laptop Per Child)는 2006년 11월, 100달러짜리 노트북PC를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무상 지급할 목적으로 공개했다.) 이런 식으로 그들에게 정보 접근의 기회와 환경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다.2. 한국의 자본주의: 혼란과 불신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로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자본주의는 부채 상환의 연기와 구제 금융 공여에 대한 대가로 경제 전체를 미국식으로 개조하라고 IMF로부터 요구받았다. 이전의 한국 자본주의는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 경제 주체의 윤리성 강조, 그리고 장기적인 거래 관행 존속 등의 측면에 있어 독일 ? 일본의 자본주의에 더욱 가까웠다. 하지만 미국의 자본주의가 뒤섞이면서 독일이나 일본처럼 자신들의 체제를 안정적으로 재생산하지 못했다. 한국 경제에서 치열한 경쟁은 성장과 효율을경에 이르렀다. 양창삼은 이에 대한 기술적 해답으로 글로벌 케인즈 주의를 말한다.) 어떻게 시장과 국가를 다른 사회 제도들과 결부시켜 실패를 최소화하면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경제 체제를 만드는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한국 자본주의 위기의 두 번째 원인은 외환 금융위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신뢰 상실이다. 인사정책, 교육정책, 농업정책 등 여러 영역에서 계속해서 실패하면서 신뢰를 잃은 측면도 있지만 지역간 불신과 대립으로 불신은 가속화되기만 한다. 지식정보화 과정과 경제 위기 극복의 동시 진행은 계층간 불신과 대립을 더욱 악화시켰고, 과거의 불신을 해소하기는 커녕 새로운 사회적 신뢰기반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는 혈연관계와 연고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부정부패가 심각하게 나타난다. 독일을 비롯한 일본은 연고주의가 강하지 않고 부패상 또한 한국보다 덜하다.) 신뢰는 민주주의와 정부의 성과를 향상시키고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다). 이근식의 '자유주의 사회 경제 사상'에 의하면 한국의 개발 전략은 그 동안의 중상주의적 개발 전략에서 자유주의의 발전 전략으로 패러다임의 변환이 요구되는데 우선 중상주의적 정경 유착과 관치 경제를 청산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법 규정의 정신과 현실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존재하며, 규칙은 넘치지만 제대로 시행되는 것은 하나도 없어 국민 대부분이 국가부문과 법?제도 등에 대해서도 신뢰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 내부의 신뢰가 증진되면 개인간 ? 집단간에 협력이 증가하고, 불신으로 단절된 폐쇄적 사회가 개방적 사회로 발전할 수 있고 시민공동체가 발전하며, 민주체제와 시장경제의 성과가 향상될 수 있다. 신뢰를 증진하기 위해 법치주의의 확립, 공직자들에 대한 부패통제의 강화, 국가지도층의 도덕성 함양, 국가능력의 향상, 시민공동체의 육성이 필요하다.남북한 대립의 상황에서, 정부는 정권과 자본을 두루뭉술하게 묶어가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조직의 필요성은 명백하다.이 수훈은 한국 자본주의를 분석하면서 분단 체제 극복을 위해 남북 두 나라의 기계적 통합을 넘어서는 중도 공동체를 제시했다.) 남북뿐 아니라 동서를 포함한 한반도 통합을 지향하는 중도 공동체는 '너무 잘살지도 너무 못살지도 않는' 중도적 생활을 추구한다. 하지만 서구적 근대화가 초래한 정신적 가치와 공동체적 인간관계의 파괴를 극복하기 위해 민족 고유의 가치와 덕목을 복원하고 고양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회 전체가 깨어있고, 문화와 도덕이 중심 가치로 설정된 공동체가 자리 잡을 때에 한국 사회의 대안이 가능하다.III. 결론1. 요약 및 정리: 21세기로 나아가는 길21세기로 나아가는 현 시점에 있어, 더 이상 산업화 시대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시장 경제 체제에서 부의 척도가 되었던 ‘물질적 소유’가 네트워크 환경에서의 ‘접속’으로 변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과는 달리 무형자산인 ‘정보’는 훨씬 더 쉽게 공유될 수 있고, 정부 및 각계의 노력이 함께한다면 산업화 시대 자본주의의 문제인 부의 편중을 완화하는 동시에 소외계층의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아시아 경제 위기를 계기로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모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 가운데 한국은 가장 선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체제나 이념이 자발적으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강요된 것이 수세기 동안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긴박한 자신의 경제/사회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가 대안을 갖지 못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장 경제 지향 1년 만에 경제는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경제 불안은 여전하고, 깊은 사회 병리와 국민 분열에 빠져 있다. 사회가 분열되고서는 아무리 빛나는 국가적 과업도 제대로 이루기 어렵다. 사회통합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회복이다. 신뢰가 회복되었을 때 개인?단체간 협력이 증가하고 건강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으며, 사회는 더 개방적이 됨으로써 민주주의와 정부의 성과를 향.
지식의 증가와 미래서 론 : 지식정보사회의 출현“미국을 포함한 여러 선진국이 두뇌중심의 지식경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Alvin Toffler, 부의 미래)“정보와 지식은 유형자산이 중시되던 시대에서 탈피하여 무형자산이 부의 척도로 자리 잡아 가도록 하는 핵심적 요소이다.” (한상완 외, 지식정보사회에서의 정보활용)“인류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농경사회와 수공업 사회에서 산업사회라는 신세계를 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라는 신세계를 열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하인호, 지식사회로 가는 길)“단순히 도구, 생산공정, 상품이 아니라 상업화된 아이디어를 관리한다는 것은, 새로 부상하는 범지구적 규모의 기업형 공급자에게 지금까지 경제사회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유리한 지위를 부여한다.” (Jeremy Rifkin, 소유의 종말)인류의 문명사에 있어서 생활기반을 통틀어 바꾸어 놓는 혁명은 지금까지 단 두 번 존재했다. 수렵사회에서 농업사회로의 전환을 가져온 농업혁명,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을 가져온 산업혁명이 그것이다. 이제, 그 세 번째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지식정보가 사회의 중심이 되는 지식정보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 산업사회에서 중심이 되었던 유형상품중심의 경제와 산업이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자동차 산업, 반도체 산업, 가전제품 생산 산업 등이 침체될 것이라고 많은 미래학자들이 예견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무형상품인 지식을 활용하여 성공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일례로, 중국에서는 과거 1983부터 기술복제 수준으로 나마 기술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연구시설과 연구개발에 투자함으로써 20년만에 세계 경제를 내다보는 거대한 세력이 되었다. 반대로 일본의 경우에는 발달된 정보기술을 이용하여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뤄냈으나, 지식사회로의 성공에 꼭 필요한 서비스 영역이나 유연성 부족으로 경제가 주춤하고 있다.(Alvin Toffler, 2004) 위의 예들은 지식기반사회로의 이양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은 예이다. 다시 말해, 지식의 중요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식기반 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접속의 중요성 증가하고 있다. 여기서의 접속은 단순히 클라이언트 서버에 전파 신호상으로써의 접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접속을 의미하며 이것은 사회의 어떤 것에 혜택을 보거나 어떤 것을 이용하는데서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Jeremy Rifkin, 소유의 종말) 우리는 이 글에서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지식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며, - 지식의 양은 과연 앞으로도 증가할 것인가? 그리고 인간의 한계범위를 넘는 지식의 넘침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여기서 정보의 접속에의 손쉬운 접속이라는 것이 어떻게 역할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 살펴 볼 것이다.본 론 : 지식의 양은 무한대로 증가할 것인가?‘과연 지식은 무한대로 증가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무한대로 증가하는 지식을 어떻게 인류가 습득할 것인가?’하는 물음은 누구든 한번쯤 가져보았을 법한 질문이다. 인류의 지식은 수천년전부터 누적되어온 인간문명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지식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예로 의무교육의 증가이다. 예전에는 초등교육까지만이 의무로 규정되었지만 현재는 고등교육까지 의무로 되어있는 국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삶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지식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기원전으로 내려가보면, 그 시절의 학자들은 대부분 여러 가지의 직업(전공)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우, 수학자 이며 과학자였고, 화가였으며 철학자였다. 하지만 현재에는 두 개 이상의 직업(전공)을 가진 사람을 찾기 힘들며, 한 개의 분야에 몸담고 평생을 바치는 경우도 많다. 이것도 역시 전체적인 지식양의 증가와 관계가 있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지식은 대부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증가해 왔다. 지식증가의 가장 대표적인 예를 보여주는 분야는 생물학이다. 40만 하더라도 생물학은 생물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써 존재하였지만, 지금은 유전학, 분자생물학, 생화학, 생리학, 면역학 등으로 세분화 되어있으며 분야 각각의 크기 또한 과거의 그것보다 크다.이렇게 지식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데는 인류가 자연에 대한 이해가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원인이 있다. 대표적으로 지식저장 수단의 변화를 예로 들 수 있다. 과거 인쇄술의 개발로 수명이 짧은 저장수단이나 기억에 의존했던 시대보다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에는 컴퓨터로 인해서 훨씬 더 많은 지식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도서관만한 자료를 저장시키는데 그저 손톱만한 크기의 메모리면 충분하게 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는 종이와 달리, 지식의 수명도 거의 무한히 늘어나게 되었다. 또,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손가락 움직임 하나면 지식의 복사, 이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더욱이, 지식의 저장매체 및 활용공간인 컴퓨터는 처음 나오면서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고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원인들의 결과로 지식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해 왔다.앞으로도 이것에는 크게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정 한계에 도달해서 더 이상 확장을 멈춘 분야도 있지만, 전체적인 지식의 크게 확대될 것이며, 인간이 살아가면서 꼭 터득해야할 지식도 그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간단한 예로, 첨단지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첨단지식은 무(無)에서 창조되는 것보다는 기존지식을 바탕으로 창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식에 적용하여 기존지식보다 한 차원 높은 지식, 첨단지식을 창출해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을 지식에 적용하는 일이 계속되면서 첨단지식은 계속 축적될 것이다. 결국, 증가되는 지식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인간의 정서를 변화시킨다. 바뀌어진 인간정서와 사회변화에 따라 일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인간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점점 더 요구하게 된다. 즉, 지식으로 변화되는 사회는 새로운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또, 사회상 현재보다 효율성 높은 지식을 요구한다. 현재만 보더라도 지구는 자원부족, 에너지부족 등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자원을 절약하면서 생산성을 배로 올리는 새로운 지식등을 필요로 한다. 이런 새로운 지식의 필요성에 의해 더욱 많은 지식들이 창출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이 지식을 낳고 필요가 또 지식을 낳음으로 해서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의 양은 증가 할 것이다.그에 반해,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은 일정하므로, 인간이 살면서 습득해야할 지식은 날이 갈수록 점점 증가한다는 결론 - 일반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면 전공이 결정되어 전공에 대해서만 지식을 습득함에도 불구하고 - 에 이르게 된다. 결국 언젠가는 인간이 한계에 도달해 일평생을 바쳐도 한 분야, 또는 특정 지식 - 예를 들면 살면서 꼭 필요한 지식들 - 을 전부 습득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암울한 결론 - 결국 발전이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다는 결론 - 까지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지식과 그것을 습득하는 인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은 지식의 ‘Overflow'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미래의 지식 습득 : 제안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의 지식의 양은 끊임없이 증가해 왔으며, 앞으로도 증가할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지식은 일정하므로 언젠가는 한 분야의 지식이 한 사람이 습득하기에 불가능한 부분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해 보았다. 그럼 언젠가는 뛰어난 지식 습득능력을 가진 천재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올 것인가? 실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서론에서 잠시 등장했던 접속의 개념을 다시 등장 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접속의 기회가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 - 물론 이것은 인터넷만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방면에 있어서 접속의 기회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 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소유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고 제안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말처럼 서도 소유의 개념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앞으로의 교육이라는 것은 사는데 꼭 필요한 몇 가지 지식만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나머지 지식은 인간이 직접 습득한다기 보다, 기억장치 - 특히 컴퓨터 - 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그때그때 꺼내어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할 것이다. 우리는 유명한 영화에서 이 예를 찾아 볼 수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Allan Spielberg)의 영화 A.I.에서는 주인공이 ‘만물박사’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파란천사’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에 나온 것처럼 지식의 양이 방대한 미래에는 가까운 편의점, 아니면 손바닥에 있는 PDA에서 이른바 ‘만물박사’라 부를 수 있는 정보의 집합체가 언제든지,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를 궁금한 부분부터 상세하게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사실 이러한 경향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금도 지식을 접속을 통해 이용하는 경우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10년전만 하더라도 종이 수십장을 사용하여 풀어야 했던 미분방정식 - 심지어 미분방정식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없이도 - 을 몇 초만에 답을 구할 수 있다. 우리의 예측과 비슷하면서도 재미있는 견해가 또 있다. 조엘 바커(Joel A. Barker)가 예견한 바에 따르면 미래에는 지식을 눈에서 습득하여 머리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알약형태로 되어있는 지식을 입으로 섭취하여 머리에 저장하는 방식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Joel A. Barker. 미래 시나리오) 다시 말해, 알약 형태의 약을 섭취하면 원하는 지식이 머리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빠르게 증가하는 지식과 더불어 인간에게 지식습득 속도, 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한계로 다가올 것 같지만, 그럼으로 인해서 인간의 지식습득 방법 - 지식이 소유의 개념에서 접속의 개념으로 바뀜 - 이 눈과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변할 것이고, 이것은 현재 초기단계가 진행중에 있으며 머지않아 현실로 드러날 .
자본주의 보완을 위한 미래사회 모델링- 20세기 역사의 쟁점 제 2차 보고서-物理學科 20031195 尹 美珍(윤 영목)物理學科 20041229 金 秀蘭(김 수란)化學工學科 20041242 姜 在敏(강 재민)序論Ⅱ. 세계 정부의 수립Ⅰ. 문화와 교육의 개혁, 진흥結論序 論자급자족의 봉건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나타난 자본주의는 산업혁명과 함께 상업자본주의에서 산업자본주의로의 모습을 갖추게 되며 그 체제가 더 견고해 지고 세계로 팽창되었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생산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사회체제이며, 현재까지 인간이 만들어온 사회체제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은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의 소유는 타인을 배재하는 권리이며, 소유는 더 많은 자치, 자유를 보장하게 되어, 모든 개인은 더 많은 소유를 위한 경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 결과, 산업의 발전과 함께 효율성과 성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가치로 인식되게 되었다. 또한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자유로운 소비를 통해 심리적 행복을 추구하는 물질주의가 도래했다. 이러한 물질주의는 자본주의 초기의 금욕주의에서 점차 소비지향적인 쾌락적 물질주의로 이 사회의 뚜렷한 모습이 되었다. 이러한 무한 경쟁적 탐욕은 현대인의 눈을 멀게 만들었고, 개인은 좀 더 나은 가치가 아닌 물질의 축적에 삶의 목표를 두게 되면서, 가치의 전복이 일어나게 되었다.자본이 자본을 불러들이면서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이로써 물질의 소유 정도에 따라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급이 생기고, 저소득층의 불만은 심화되고 있으며, 재산의 대물림으로, 가난과 부도 함께 대물림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은 개인의 소유를 보호해주는 정도로 축소되며, 고른 분배를 위한 노력은 개인의 소유권 보장이라는 이름아래 무력해 질 수밖에 없었다.탈산업화 시대에서의 특징은 자본주의로부터 나온 병폐들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산업사회로 인해 생겨난 지역공동체의 해체와 함께 대두된 자본주의의 상업적, 도구적 인간관계로어 기존의 문화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중심을 잃은 문화는 다양성을 잃고 점점 획일화 되며 고갈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기존의 자본주의의 한계와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새로이 드러난 자본주의의 한계들은 반드시 극복해야할 대상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자본주의의 존속을 기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새 시대의 새로운 기술과 시민의 깨인 인식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보완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 기대해본다. 앞으로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보완을 문화, 교육적 측면과 정치, 체제적 측면으로 나누어서 그 방편을 생각해 보자.Ⅰ. 문화와 교육의 개혁, 진흥문화의 향유는 자본주의의 효용성의 강조와 상업화에 따라서 그 의미가 축소되어 버렸다. 하지만 문화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며 생산성과 자본의 축적과는 상관없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인간성과 연관되어 있다.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치이며 상호 신뢰성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문화가 그 의미를 잃어간다면, 이는 자본주의가 몰락해가고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로 발전해가게 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문화의 장려와 인간이 추구해야할 궁극적 가치를 바르게 교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문화의 장려는 다음과 같은 요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을 제안해 본다.지역성을 잃은 문화, 획일화된 문화는 문화의 고갈을 가져오는 심각한 원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개발은 지역적 문화 개발에 초점이 맞추어 져야 한다.어떤 지역의 문화 개발은 그 지역 사람들, 문화의 정신적 핵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거쳐 이루어져야한다. 문화의 상업화가 가속화 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들이 세계적으로 유통되게 되었다. 그러나 상업화를 통해 가공된 문화는 문화의 핵심적 메시지(공유하는 가치, 역사적 유산 등)를 잃어버렸고, 이로써 문화는 공감을 위한 것이 아닌,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얄팍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러한 병폐를 맡기 위해서 타 지역에서 다른 지역의 문화 개발을 할 때, 그 문화의 원산지 지역 사람들이에 대해 몰랐던 사람도 축제를 몸소 즐기며 그 문화를 가슴 깊이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문화의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문화는 소비될 뿐만 아니라 재생산 되어야 한다. 문화는 함께 부대끼는 사람들과의 가치공유와 정신적 공감에서 창출되어진다. 이를 위해서 동호회의 활성화를 제안해 본다. 동호회는 상업적 목적을 위한 만남이 아니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놀이를 위해 만나는 것이다. 이런 자발적 모임과 오프라인의 실제적 만남을 활성화는 문화의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 된다. 또한 국가적, 범국가적 차원에서 문화에의 물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은 문화를 누리기 위한 비용이 굉장히 비싸다. 무엇이든지 무(無)에서 나오는 것은 없다. 문화를 접하고 누려본 사람만이 문화의 즐거움을 알고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역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전통 문화를 강조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지역성을 살리고, 문화가 자신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경쟁과 물질주의의 추구로 전복된 가치를 바로 잡기위해서는 올바른 가치의 교육이 필요하다. 이 시대의 교육은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우선순위, 행복의 길이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실현에 있고,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과 함께 삶을 영위하고 누리는 것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 방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해 본다.기본적으로는 진정한 가치의 교육을 위해 기초적인 욕구에 대한 국가의 보장이 우선되어야한다. 매슬로(Maslow)의 욕구 5단계 설에서 말하는 기초적 욕구인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가 우선적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불안감으로 인한 생존만을 위한 투쟁으로 더 나은 가치를 위한 교육은 공허한 외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교육의 방향은 지역 사회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나아가야 한다. 이로써 올바른 가치관을 갖게 되어 물질 사랑함과 동시에 타 공동체도 배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함께 만나서 하는 놀이 문화를 장려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과제를 내어야 한다. 그로써 사이버스페이스상의 모조된 관계에만 빠지지 않도록 하여, 직접인 관계를 통해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교육, 함께함으로 자신에 대해서 더 알고, 동시에 타인을 존중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공교육뿐만 아니라 교육의 시작인 가정교육에도 힘을 써야 한다. 이미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기성세대가 가르치는 아이는 부모를 닮게 되기 마련이다. 국가는 어린이들의 교육은 의무교육으로 정하였지만, 부모가 되는 교육을 지원 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앞으로 기술이 발달함과 동시에 노동시간이 줄어들면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면서 이에 따라 가정교육의 중요성도 더 늘어나게 될 전망이다. 복지적 지원책으로 부모로서의 역할과 자녀 교육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가정교육의 회복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지역 육아 커뮤니티의 활성화는 산업화되어 자녀를 돌볼 시간이 부족한 부모를 위해 좋은 대안 책이 될 것이다. 여기서 지역 육아 커뮤니티란 어떠한 지역 내의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서로의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두레’와 같은 시스템을 의미한다. 가정의 기능이 탁아소와 학교로 옮겨가면서 깊은 신뢰감 있는 관계를 키워주기보다는 경쟁을 조장하는 면이 있는데다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더욱 멀어 졌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공교육을 인정하는 동시에 부모의 역할을 확대하여 자녀들이 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관계를 경험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방법론적인 면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 단기적으로 보아 이러한 시스템을 회사와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성에 있어서는 손해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더 나은 교육을 통해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이렇듯 문화와 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관심을 통해 기존의 자본주의가 낳았던 병폐와 잘못된 가치관의 문제가 일어나게 되었다. 현재 국제적 조정을 위한 많은 국제기구들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기구인 UN을 포함하여, WTO(세계무역기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ICJ(국제사법재판소), IMF(국제통화기금), UPU(만국우편연합)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기구들은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 UN의 경우에는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들로 나누어져, 상임이사국은 거부권(vito)을 갖는 등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비상임이사국들은 이들 앞에서 커다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입장이다. 게다가, 이러한 국제기구들의 규칙을 위반했을 때 이를 강력하게 규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령 미국의 경우에는 1997년 대인지뢰를 금지하는 오타와 조약과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 협약안을 거부했으며, 2001년 교토 환경의정서를 무력화시켰다. 이라크와 관타나모에서의 아랍인 포로들에 대한 학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운용하는 세계 도처의 비밀감옥 존재의 확인 등은 국제 사회의 무법 성을 실감케 해준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이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공평한 국제 질서는 앞으로 중국 등 제3세계의 부상으로 말미암아 도전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여기서 세계정부의 수립 필요성을 제기해 본다. 민주주의 국가 내에서는 그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이 존재한다. 그러한 법은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서 뽑힌 국회의원들에 의해서 제정되고, 그 나라의 행정은 또한 투표로 뽑힌 대통령이나 총리가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독립적인 사법부가 존재하여,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만들을 해결해 준다. 이렇게 해서 그 사회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국내법처럼 강력하고 공정한 법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UN내에서도 상임, 비상임 이사국들 간의 차별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이고, NPT와 같은 조약에서도 조차, 몇몇 강대국들은 핵을 보유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있다. 국제 형사 재판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