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과 서방 교회의 삼위일체론 비교조민호(M.Div.)6학차한세대학교 신학대학원목 차I. 들어가는 말1Ⅱ. 삼위일체론의 역사적 배경11. 니케아 공의회 이전22. 니케아 공의회33. 니케아 공의회 이후4Ⅲ. 동방교회의 삼위일체론: 위격(person) 중심의 삼위일체론51. 오리겐의 삼위일체론 - 종속론52. 캅바도키아 교부들의 삼위일체론7Ⅳ. 서방의 삼위일체론 : 본질(substantia) 중심의 삼위일체론111. 터둘리안의 삼위일체론112.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13Ⅴ. 삼위일체론 논쟁이 동?서방 교회에 미친 영향15Ⅵ. 나가는 말17참고문헌18동방과 서방 교회의 삼위일체론 비교I. 들어가는 말지금 시대를 일컬어 삼위일체 교리의 전성시대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삼위일체 교리는 조직신학 신론의 한 부분으로 취급되어져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근래에 일기 시작한 삼위일체 교리의 재부흥은 어떤 면에서 현대적 에큐메니칼 운동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동?서방 교회의 만남에서 연유한 바가 크다.이러한 삼위일체론의 신비에 접근함에 있어서 우리는 두 가지 가능한 사고의 출발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한 분 되심(oneness 혹은 unity)의 시각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각기 구별되는 삼위의 시각(threeness 혹은 diversity)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전자의 시각에서 삼위일체 교리는 ‘한 분 하나님 안에 삼위가 계신다’라고 진술될 수 있으며, 후자의 시각에서는 ‘삼위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다’라고 진술될 수 있다. 이 두 진술은 얼핏 보기에 비슷하지만, 실상은 이 둘 사이에 상당한 이해의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에서는 한 분 하나님의 본성의 통일성이라는 시각에서부터 삼위사이의 구별을 봄으로, 한 분 하나님 안에 있는 삼위 사이의 내적 관계와 활동에 강조점을 두었으며, 후자에서는 하나님의 사역이 겉으로 나타날 때, 분명히 드러나는 삼위의 각기 구별되는 속성과 활동의 시각에서부터 한 분 하나님의 본성을 봄으로 삼위 사이의 구별에 보존재한다고 간주하였다. 아리우스는 이 주장의 근거를 잠언 8:22에 대한 칠십인역에서 찾고자 했다. 잠언 8:22에 대한 칠십인역은 그가 자기 일을 위해서 태초에 나를 창조했다고 되어 있다.반면에 삼위일체 교리의 정립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교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경륜적 관점에서 성부와 성자를 이원론적으로 분리하는 아리우스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존재론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세 인격의 영원성과 통일성을 주장한다: 성부와 마찬가지로 성자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없다. 성자의 출생은 영원하다.) 성자는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태어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존재(본질)로부터 출생한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다. 또한 아리우스주의자들에 대한 반론의 제3권에서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주의자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그는 항상 존재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둘째,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빌 2:6)시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골 1:15)이시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본질(homoousios)이시다. 셋째, 아버지에게 속한 것들이 아들에게 속한다면 성자와 성부는 동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요 16:15) 그리고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요 17:10). 결국 니케아 공의회(주후 325년)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동일한 본질을 소유한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면서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임을 선언하였다.)3. 니케아 공의회 이후아타나시우스가 남겨놓은 문제는 세 명 캅바도키아 교부들에 의해 정리되었고, 이는 성령의 신성 문제 해명으로 연결되었다. 니케아 수용자들 중에도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불확실했고,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었던 마케도니우스(342-36 관계를 영원한 종속관계(subordination)로 발전시켰다.) 오리겐에 의하면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성육신 하시기 전부터 영원의 영역에서 아버지에 의해 ‘낳아지신 분'이므로 본질과 신분상에서 아버지와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성자가 성부께 종속된다면, 성령도 성자 아래 있다는 위계적인 종속론을 발전시켰다.)2. 캅바도키아 교부들의 삼위일체론1) ‘ousia(본질)’과 ‘hypostases(위격)’을 구분하기 시작했다.이 과업을 가장 선구자적으로 수행한 장본인이 바로 가이사랴의 바실이었다. 다른 두(나지아주스와 닛사의) 그레고리들이 바실의 과업을 완성시켰고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는 했으나, 그들은 분명히 바실에게 의존했다. 바실은 맨 처음으로 ‘ousia(본질)'와 ‘hypostases(위격)’는 용어를 정의했으며, 또한 맨 처음으로 각 ‘hypostases(위격)’의 특성들과 또 그들의 한 실체 안에서의 상호관계를 밝히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바실은 한 ‘ousia(본질)'가 동시에 세 ‘hypostases(위격)’로 존재한다고 진술한다.바실은 ‘ousia(본질)’과 ‘hypostases(위격)’ 의 차이에 관하여 설명하는 ‘Ep. 38’)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특별하고 특이한 방식으로 말해진 것이 위격들의 이름에 의하여 지시된다. 가령 우리가 ‘한 인간’이라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 단어의 불명료한 의미가 약간 모호한 의미로 우리 귀를 울린다. 그 본성이 지시되기는 한다. 그러나 실재하는 것과 또 이름에 의하여 특별하게 지시되는 것이 명백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면 우리가 ‘바울’이라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 이름에 의하여 지시되는 것에 의하여, 그 본성이 실재한다고 진술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위격’ 또는 ‘아래 섬(under-standing)’이다. 이것은 본질이나 실체의 불명료한 개념이 아니다.)그러니까 바실에 의하면, ‘본질'(essence)이나 ‘실체'(substance)는 일반적인 것이 의미되기 때문에 ‘존속’(Standing러한 개념상의 정립과 더불어 그레고리는 세 캅바도키아 교부들의 특징적인 신앙공식으로 인정받고 있는 ‘세 위격 내의 한 실체’의 의미를 더욱 명확히 했다.그런데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의 접근방법의 특징은 삼위일체의 세 위격 사이에 있는 유일한 구별점이 각각의 기원을 언급하는 것에만 한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은 본질이나 본성과는 전혀 무관하며 각 위격의 기원을 밝히는 데에만 관계된다. 이상의 내용에서 볼 때,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가 삼위일체론에서 크게 공헌한 것은 위격 상호간의 관계를 각 위격들의 기원을 통하여 구별한 데 있으며, 또 성령의 나오심을 아들의 ‘출생’과 구별하여 ‘발출’로 확정한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는 성자와 성령의 관계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다.4)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라는 상호침투적 용어를 사용하였다.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라는 말은 ‘다마스커스의 요한’이 사용한 이후 동서교회 양쪽에 걸쳐 삼위 하나님의 일체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닛사의 그레고리는 그의 논문 ‘삼신이 아님에 관하여’에서 세 위격들의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에 대한 진술을 한다. 이 글에서 닛사의 그레고리는 신격의 활동들(operations)이 시간의 표지(mark of time)나 분리된 행위의 구분없이 함께 행위하면서 셋 모두에 의해 행해진다고 설명한다.) ‘활동의 단일성’은 필연적으로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원리에로 유도된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하여 성령에로 전달되는 선한 의지의 한 운동과 성향(disposition)이 있다.원래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라는 개념은 닛사의 그레고리를 포함한 캅바도키아 교부들 외에도 로마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 of Rome)에 의해서도 가끔씩 설명되었다.) 캅바도키아 교부들이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삼신론을 비롯 한 개인이 여러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는 논거에 의하여 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구별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통일성을 주장하였다. 즉 3개체는 하나이면서 나눌 수 없는 본질을 소유하면서 서로 방해받지 않고 3개의 개체로서 존재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셋은 지위에 있어서가 아니고 정도에서이며, 본질에서가 아니고 형식에서이며, 능력에서가 아니고 그 양상에서 나뉜다. 그렇지만 그 분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이러한 정도들과 형상들과 외양들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면 여전히 하나의 본질이며, 하나의 조건이며, 하나의 능력을 갖는다. 그에게 있어 삼위일체는 본질적으로 통일되나 이차적으로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혹은 3개체가 다 신성을 갖기 때문에 통일체로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터툴리안은 한 분 하나님이 그 자체 안에 셋으로 구분되어 있음을 이렇게 요약한다- 1) una substantia-trespersonae(한 실체-세 인격) 2) distinct, non divisi, discreyi, non separati(구분되어 있으나 나누어지지 않고, 구별되어 있으나 분리되어 있지 않음) 3) trinitas(삼위일체).터툴리안은 경륜적 삼위일체(economic)에서 한 분의 하나님이 셋으로 사역하심을 예수의 말씀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요 10:30)라는 예수의 말씀에서 하나(One)를 “혼자”(single) 혹은 “개인적”(individual)이 아닌 “한 본질”(una substantia, One Substance)이라고 말한다. 즉, 한 하나님은 어떤 숫자적이나 개별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구별되어지는 한 본질(una substantia)인 것이다.그러나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은 다소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니케아 신조 이전의 초대 교부들의 삼위일체적 경향이 경륜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y)라면,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도 너무 경륜적 삼위일체(Eco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