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집. 맛집목 명 : 학 과 : 학 번 : 이 름 : 제 출 일 :목차맛 집 어디 있을까? 무엇을 먹어야 하나?(메뉴) 장사 잘 되는 이유가 있다.(장점) 맛있으니까 이정도 쯤이야.(단점) 나의 맛집 추천 일기맛 집의 위치(구) 송원백화점이랜드(아동복)중앙시장짬봉집2. 맛 집의 메뉴옆에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6개가 메뉴에 전부이다. 하지만 간략하게 정리하면 메뉴는 고작 2개이다. 라면과 탕수육 탕수육- 1000원 짬뽕라면 – 1500원 치즈라면 – 1500원 만두라면 – 1500원 떡 라면 – 1500원2. 맛 집의 메뉴첫 번째 추천메뉴 : 가장 값이 싸고 사람들이 즐겨먹는 탕수육이다. 일 인분에 1000원 ,2000원만 있어도 탕수육만 배불리 먹고 나올 수 있다. 맛도 괜찮고 보기도 괜찮고 가격대비 정말만족할 만한 메뉴이다. 모든 사람이 항상 에피타이져로 시키는 메뉴. 아저씨가 가게 앞에서 바로 튀겨주는 모습이 더 일품이다. 길을 지날 갈 때 탕수육의 고소한 냄새와 아저씨를 보면 그냥 지나 칠 수가 없다.2. 맛 집의 메뉴두 번째 추천 메뉴 : 바로 이 분식점에 핵심 메뉴인 라면이다. 그런데 사실 모든 라면은 똑같다. 그냥 치즈 라면은 치즈만 들어갈 뿐이고 만두 라면은 만두만 들어간다. 깔끔하고 얼큰한 맛인 짬뽕라면이 제일 낫다. 가장 큰 특징은 신선한오징어를 바로 그 자리에서 듬뿍 넣고 뿔지 않은 꼬들꼬들한 면발 맛이 최고 가격은 1500원 어디 가서 이 돈 주고 이 맛을 맛보기란 아주 곤란하다.3. 맛 집의 장점가격이 싸다 – 거의 모든 메뉴를 2000원 이내에 해결 가능하다. 맛 있다 – 탕수육은 1000원치고는 너무 맛있고 라면은 1500원 치고 너무 훌륭해 먹기 죄송하다. 3. 보리차 – 다른 분식점은 보통 생수를 주지만 보리차를 준다. 보리차를 선호 하는 한 사람으로 가장 큰 장점이다. 고소한 보리차3. 맛 집의 장점4. 개방형 주방 : 주방이 따로 없다. 탕수육은 밖에서 아저씨가 만드시고 라면은 홀에서 아주머니가 만드신다.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 재미있기도 하고 기다리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5. 간결하고 명확한 메뉴 : 딱 2가지만 요리를 하기 때문에 손님들이 와서 메뉴를 고르는데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고 집중적인 요리 맛을 낼 수 있고 빠른 서비스와 특정 음식의 명소로 기억 되는게 가장 큰 장점이다.4. 맛 집의 단점지리적 위치 : 너무 골목길에 있어서 찾기 어렵다. 저녁에는 가로등도 없어 잘 보이 지 않는다. 2. 간판에 거짓말 : 라면하고 탕수육만 하는데 간판에는 버젓이 비빔밥 , 멸치 국, 쫄면이 써 있다 아마도 옛날에 했던 것 같다. 간판 교체가 필요하다.4. 맛 집의 단점3. 위생상의 문제 : 탕수육은 밖에 나와 있어 항상 먼지에 노출 되어 있고 주방은 세면대도 없이 호수로 물을 받아서 설거지를 한다. 주방 바닥은 엄청 더럽고 쥐가 지나다니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사장님은 설거지 를 대충하시고 천장, 선풍기, 형광등 곳곳에 먼지가 시꺼멓게 껴있다. 4. 화장실 문제 : 일단 남녀 공용이다. 그리고 불이 들어 오지 않는다. 너무 무섭다. 손잡이 또한 없다. 누군가 오는 소리가 나면 헛기침 소리를 내야 되는 게 관례이다.5. 나의 맛집 추천수 많은 맛 집이 있지만 내가 이곳을 택한 이유는 바로 가격 때문이다. 1000원 주고 이정도 먹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으며 또한 여자친구와 데이트 할 때 정말 좋은 코스로 추천해주고 싶다. 음식점을 찾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찾는 재미도 있고 데이트 하는데 금전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한 끼 식사를 하는 곳으로 제격이다. 여자친구에게 좋은 경험도 체험 할 수 있게 해주고 여자친구를 위해 맛 집을 찾아 낸 것 처럼 인심도 쓰고 벽에다 사랑의 증거를 남기고 돌아오면 그게 정말 데이트에 진정한 맛이 아닐까 싶다. 돈 없어서 당황하는 그대들이여 짬뽕라면을 먹어라. “팍” “팍”{nameOfApplication=Show}
환경호르몬의 심각성학습목표환경 호르몬의 정의를 알 수 있다. 환경 호르몬의 피해와 대책에 대해서 알 수 있다.환경 호르몬의 정의환경호르몬이란 말은 환경에 노출된 화학물질이 생체 내로 유입돼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환경호르몬의 종류약물성 내분비 교란 물질 DES (2) 자연성 내분비 교란 물질 (3) 환경성 내분비 교란 물질 다이옥신, PCB, DDT일상생활에서 노출되는 환경호르몬환경 호르몬이 우리의 몸에 어떻게 들어오나?환경호르몬에 의한 피해 사례북해 바다표범 몰살 플로리다 악어의 생식기 이상가마우지의 비뚤어진 부리환경호르몬에 의한 피해 사례환경호르몬의 대한 대책기본적 대처방안 (2) 구체적인 대응 방침(조사 및 연구)환경호르몬에 대한 대책유기 농산물을 먹는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자.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을 줄인다. 쓰레기를 최소화한다.환경호르몬에 대한 대책플라스틱 용기를 전자레인지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염소 표백한 세정제.위생용품의 사용을 줄인다. 환경 호르몬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캠페인에 동참한다.요점 정리환경 호르몬이란? 환경호르몬의 피해 환경호르몬에 대한 대책1. ( )란 말은 환경에 노출된 화학물질이 생체 내로 유입돼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 졌다. 2. O.X 로 답하라 ▷ 환경호르몬은 호르몬과 같은 내분비계 물질이다.( ) ▷ 인간은 먹이사슬의 제일 위 단계로 환경호르몬 피해가 가장 적다.( ) ▷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의 사용은 매우 안전하다.( ) ▷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에 농약 살포 작전은 낙엽제이다.( ) ▷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것은 환경호르몬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 ▷ 환경호르몬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염소표백제를 사용한다.( ) 3. 환경호르몬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않은 것은? 수입과일에도 환경 호르몬이 존재 할 수 있다. 환경 호르몬은 대기 중으로 확산이 가능하다. 교실먼지에도 환경호르몬이 포함 되여 있다. 환경호르몬의 종류는 수십 가지에 이른다.내 용학과 : 학번 : 이름 :형 성 평 가{nameOfApplication=Show}
제1부 신화와 교육1. 단군신화와 홍익인간 교육사상단군신화는 우리의 문화사상의 원형과 그에 입각한 원시시대 교육사상을 이해하는 귀중한 근거.신화는 桓因 - 桓雄 - 檀君 으로 이어지는 삼대기-초월적 세계에 대한 믿음이다.-인간세상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천상과 인간세계의 일치이다 (천인합일사상)홍익인간은 현대 한국교육이념의 원형으로 삼았다. 단군을 창조하는 천지인의 조화된 세계에서 무엇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사상을 엿볼 수 있다.자연은 인간이 정복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하는 대상이다. 그러므로 홍익인간은 ‘크게 온누리를 이익되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오늘날 강조되고 있는 생태적 교육인간상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2. 그리스 신화와 인본주의 교육여성의 주술적?종교적인 위력과 그와 연결된 사회적 우위는 지모의 모습이라는 우주적인 원형을 지니고 있다. 신들의 세계 역시 인간 세계와 마찬가지로 희비극을 지니고 사회 윤리를 갖춘 무대였던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의식하기 위해 신들에게 어떤 힘을 부여해 놓고 그 힘에 대한 외경심을 갖는 것과 동시에 인간적인 신에 대해 부단히 도전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공동재산으로서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는 것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이다. 또 그리스의 전설은 인간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대가 그대의 능력에 부치는 일을 행하고 싶거든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처럼 행동하라. 올바르고 용감하라. 그러면 그 일에 성공을 거둘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고도로 발달한 그리스 문화를 창조하였고, 나아가서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내재한 세계관에는 인본주의 정신이 내재하고 있다. 이는 신들의 세계를 인간의 세계와 동질화시켜 표현한 점. 신을 통해 인간의 욕망의 문제를 제기하고 비극과 불의 그리고 부도덕을 고발하고 있는 점, 신들을 통해 용기와 도덕적 삶을 추구했다는 점. 그리고 신들을 통해 더 좋은 세계에 의식, 금욕 등 신학 자체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던 루터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계기로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정문에 게시함으로써 종교개혁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저작과 설교에 나타나는 교육사상은 아동의 취학 의무화 사상, 공교육 제도의 확립, 학교 교육과정에 있어서의 풍부한 교육과정과 교수방법의 개선을 요구하였고, 사물 자체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였으며, 아동은 신의 선물이라고 하여 아동의 인격을 존중하고, 교직의 중요성과 고귀성을 강조하였다.3. 실학주의 교육사상가. 시대적 배경르네상스와 지리상의 발견, 종교개혁으로 극대의 동이 튼 유럽은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절대왕정시대를 맞게 되었다. 이 시기는 유럽근대사회 성립의 초기 단계로서 절대왕정을 중심으로 근대국가의 체계가 갖추어지기 시작하고 근대문화의 확고한 토대가 구축되었다. 종교개혁운동의 결과 신학에서 과학으로, 초자연에서 자연으로, 교권서 자유로 변화하였으나, 교육의 방법과 내용은 여전히 언어주의, 암기주의, 서적주의, 형식주의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연과학과 철학의 발전에 힘입어 새로운 교육내용과 방법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물 그 자체를 알고, 사물 그 자체를 탐구하여야 하며,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배운다는 실학주의적 교육관은 종래 중세의 예속적 인간상에서 탈피하여서 자기 자신이 이성을 찾고자하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다.나. 실학주의 교육의 성격1) 인문적 실학주의(humanistic realism)인문적 실학주의는 고전의 연구를 통해 현실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문적 실학주의는 실학주의 초기 단계에서 나타난 것으로 실학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대표적 학자로는 라블레(Francis Rabelais, 1483-1553), 밀턴(John Milton, 1608-1674) 등이 있다.2) 사회적 실학주의(social realism)사회적 실학주의는 고전을 연구하는 교육보습학교"를 설치하여 오늘날 부속학교의 효시를 이루었다.2) 교육 목적"강한 도덕적 품성의 형성"으로 진실하고 신뢰성 있는 도덕적 성격이 인간의 최고의 목적이며,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도덕이란 의지와의 관련성 속에 내재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다음 다섯 가지 실천적 도덕이념으로 파악하였다.가. 내면적 자유의 이념(Idee der innern Freiheit)자신의 통찰에 의해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내면적 의지에 의해 실천으로 옮기는 것.나. 완전성의 이념(Idee der Vollkommenheit)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의지가 나약한 의지보다 더욱 완전한 것으로 건전한 정신과 신체가 조화를 이룸으로써 완전성을 추구다. 호의의 이념(Idee der Wohlwollens)자신의 의지로 남을 돕는 것라. 정의의 이념(Idee des Rechts oder der Rechtschaffenheit)서로 양보하고 상호 존중함으로써 상이한 두 의지의 충돌을 피하고자 하는 이념을 뜻한다.마. 보상 또는 공정의 이념(Idee der Vergeltung oder Billigkeit)일정한 의지에 따른 행동에 대하여 언제나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 헤르바르트는 이상 다섯 가지 기본이념이 서로 결합하여 실현되는 성질이 도덕적 품성이라 보았으며 이를 육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보았다3) 교육 방법가. 관리본래 교육의 전단계로써 어린이의 욕망을 억제하고 외적 질서를 유지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교육 받을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여 주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관리의 구체적 방법으로는 위협, 감시, 권위, 사랑 등을 들 수 있다.나.교수사고권(思考圈)을 형성하고 확장하여 감정과 의지를 일으켜 그것에 따라 도덕적 품성을 형성하는 교육방법으로 헤르바르트의 교육방법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교수란 인간의 도덕적 품성 도야를 목적으로 한 것이므로 헤르바르트는 이러한 교수법을 교육적 교수(Erziehender Unterricht)라고 하였다.다.훈육관리, 교으로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2) 초,중등 교육목표는 사회주의 교육의 원리를 구현하여 새세대들이 혁명적 세계관의 골격을 튼튼히 세우고 현대과학과 기술의 지식을 심오하게 학습하며, 한 가지 이상의 기술을 가지고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3) 북한의 고등교육은 궁극적으로는 공산주의사회 건설의 선구자로서의 인텔리를 육성하는 것이며, 노동계급과 유리되지 않고 노동계급의 인텔리 또는 혁명적 인텔리로 북한식 사회주의 계승을 주도하는 인재를 목표로 삼고 있다.(4) 대학교육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경제적 측면에서 과학기술교육을 강화함으로써 공산주의사회 건설의 ‘사상적 요새와 물질적 요새를 점령하기 위한 인텔리 육성’에 기본목표를 둔다.4. 북한 사회주의 교육이념의 한계 및 전망북한은 지난 50년동안 사회주의 공산주의 혁명과 건설을 실현한다는 목표아래 전체사회를 하나의 집단으로 조직하고 당의 방침대로 모든 주민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이른바 사회주의이념화 교육정책을 강행해 왔다.북한의 교육정책은 무엇보다도 전체 주민들을「당과 수령」,「김일성·김정일」에 충실한 맹목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데에 그 목적이 설정되어 있다 하겠다. 이같은 교육의 목적은 체제위기를 맞고 있는 오늘날 더욱 강조되고 있다.하지만 북한의 교육정책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퇴색된 오늘날 그 목적달성이 어렵고, 또 북한의 경제·사회질서가 혼란해진 현실에서 북한식 교육의 방향, 내용 및 교육의 성과 역시 의문시되고 있다. 오늘날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교육재정의 뒷받침이 사실상 불가능한 실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와 질병, 공포와 절망 속에 체제 충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국가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징표라고 할 수 있다.결국 이같은 조건들은 북한식 교육정책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한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는 북한의 교육환경의 변화, 그리고 이른바 「사회주의 교육학의 원리」의 변화에서 더욱 가속화 할 것으로 전망된다.제5부 한국교육 역사와 사상제.1장 국선도 이념은 인재 양성과 유교적 도덕 함양이었다 .교육 제도로는 태학과 경당이 있었다 .태학은 소수림왕 2년에 설립된 최초의 관학이며, 귀족 자제를 대상으로 한국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경당은 평민의 자제를 대상으로 교육을 담당했던 최초의 지방의 사학이다.(2)백제백제는 중국과의 잦은 교섭으로 직접 유교 문화를 수영하였지만, 유교 관련 교육에 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백제에도 고구려의 태학같은 고등교육기관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3)신라 - 화랑도 교육유학 사상은 신라에 들어온 이후 봉건제적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이념으로 작용하였으며, 통치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를 신라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인 화랑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2)통일 신라의 교육신라에 있어 유교는 삼국통일 이후 통치 이념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불교의 종교적영향이 컸지만 정치와 교육부분에는 유학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컸다. 경덕왕 때의 승려인 충담사는 향가 ‘안민가’에서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어미요 백성은 어린아이’라고 비유하고, 군, 신, 민 각기 자기 본분을 다하면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다고 읊었는데, 이것은 유고의 정명사상에 근거한 것으로서, 국가 윤리를 유교의 가부장적 윤리관으로 표현한 것이다.3)고려시대 교육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수용하였지만, 성종 시대를 맞이하여 유교가 꾸준히 보급?발전되어 왔다. 고려 초기 광종 958년 유교 경전을 시험하여 관리를 뽑는 과거제도가 시행되었고, 성종 987년에는 전국의 지방에 학교를 세워 유교교육을 확장하였다. 문종 때는 한국의 공자로 일컫는 최충을 비롯 12명의 유학자들이 ‘12도’라는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유교 교육이 육성되었다. 또한 인종때 묘청이 난 이후에는 유학자들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고려말에는 신유학인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다.다. 조선시대 대표 사상가1)이황의 교육사상퇴계는 단순한 사대부로서가 아니라 송一원?명대의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정리 집대성한 성리학의 대가
상담을 마치고......시작은 심리학의 이해 의 실습시간으로 상담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MBTI와 에니어그램을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MBTI를 수업시간에 하는 바람에 MBTI를 바꿔야 했다. 다시 들른 학생생활 연구소에서 시간이 맞는, 하고 싶은 집단상담이 없었다. 원래도 상담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꿩 대신 닭으로 개인상담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개인상담은 내가 한 학기동안 변하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상담을 하기 전까지 나의 학교 생활은 그야말로 도망가고 싶은 하루의 연속 이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도망갈 곳도, 도망갈 힘도, 도망갈 용기도 없었다. 다만 가끔 친구의 품에서 울거나 혼자서 스트레스를 풀 뿐 이였다. 그러나 상담을 하고 난 나는 한층 더 성숙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학기 초 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변했고, 웃음이 많아졌으며, 생각하는 사고의 차이가 다른 아이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져서 학교 생활에 훨씬 잘 적응해 가는 나를 발견하였다.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 나의 생활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몰랐다. 고등학교 때 나는 만사에 긍적적이고 웃음이 많고, 모든 일에 열정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열등감일까? 아니면 나의 대한 실망감일까?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는 점점 더 소극적이 되어 갔다.단지 원하는 대학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것뿐이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생각했던 대학교 생활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학문을 탐구하고 모든 학생들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도서관에서 생활하며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는 그야말로 공부로 시작해서 공부로 끝마치는, 적어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오는 곳인 줄 알았지만 내가 보고 생활하는 대학생활은 그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놀려고 하고, 교수님들은 첫 강의 시간에도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또 모임은 왜 그렇게 많은지 거의 한 달이 술자리였다. 물론 술자리는 가지 않으면 그만이었지만 선배들도 신입생들과 다른 것이 없었다. 모두들 술에 대해서는 관대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원하는, 열심히 그려왔던 대학생활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대학교 란 곳에 와서 처음 본 중간고사를 봤을 때 나의 실망은 극에 달했다. 컨닝은 말할 것도 없었고, 더 화가 나는 것은 컨닝을 하는 아이들에게 관대한 교수님들이었다. 뻔히 보이는 컨닝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제제도 가하지 않으셨고, 그냥 말 한마디로 모든 처벌은 끝나는 교수님들이 대부분, 말 한마디하지 않으시는 교수님도 계셨다. 시험 종료 후 아이들에게 들은 말은 컨닝을 할 수 있는 데 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여기서는 정상이 비정상이 되었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것이었다. 컨닝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 심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난 꿈을 가지고 있다. 그 꿈은 여지 것 나를 이 자리까지라도 오게 한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꿈이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심했다. 이런 것들이 나를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고 스스로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데 한 몫 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혼자가 외로웠던 것은 아니다. 난 혼자가 좋았다. 그렇지만 대학이라는 반사회적인 것은 혼자를 용납해 주지 않았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신경이 쓰였고,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이런 저런 이유인지, 핑계인지 모르게 나는 혼자서 힘들어하는 날들이 많아져 갔다. 이런 나에게 모르는 상태로 만나서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힘을 주었고 내가 무슨 일 이든지 긍정적이고 밝아지도록 도와주었다.개인상담 처음 하던 날, 낯선 선생님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처해져 있는 상황과 어떤 고민이 있는지, 어떤 것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관심을 가져주셨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딘지 모르는 낯설음이 말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지만 상담선생님은 이런 나까지도 이해해주시고 내 모든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셨다.우선 처음에 물어본 것은 이 상담이 끝난 후 내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냐는 질문 이였다. 난 다른 사람들과의 생각 차이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나는 배를 앞서가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1학년인데 선배들은 나를 보면 취업을 앞둔 4학년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런 생각이 없이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힘이 들었다. 내가 잘못된 것인지, 선배들이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그런 말을 하는 선배들을 볼 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을 이루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노력해도 힘든 것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힘들어하는 것도 선생님은 내 말에 동의해 주었고, 또 다른 질문으로 내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밖으로 꺼내주셨다.나는 집이 싫었다. 싫다기보다는 집은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은 곳 이였다. 아빠와 엄마의 나에 대한 사랑은 사랑을 뛰어 넘어서 구속으로 변했다. 언제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누구와 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해야했다. 또 대학생활을 하는데도 고등학교 때와 다름없이 나는 통금시간이 있었고 엄마는 회사를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실 때 나를 꼭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이런 나에게 사람들은 초등학생이나 꼬맹이라는 별명으로 날 부르곤 했다. 나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구속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지 난 알 수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고등학교 때부터 가져온 해군이란 꿈은 일종의 도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집은 더 이상 나에게 사랑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구속이 가득한 곳이었다. 덕분에 나의 반항심은 극에 달해갔다. 하지만 나에게는 반항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와 힘이 없었다. 힘보다는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아빠가 무서웠고,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이 싫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는 어느새 또 엄마, 아빠 말을 잘 듣는 해야가 되어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에 의해서 착한 딸, 말을 잘 듣는 딸, 속 썩이지 않는 딸이 되어있었다.
이번 심리학 수업 대신에 한 상담을 받으면서 나 자신에 대하여 많이 알게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 나에 대해서 생각도 많이 안 해보고 되는 대로 대충 살았었는데 그림을 그리고, 잡지를 오려 붙이는 것을 하면서 나 자신에 대하여 표현도 하고 생각도 할 수 있었다.나는 미술치료를 통한 자기성장 집단상담을 받았다. 교수님께서 하라고 하신 상담시간은 집단상담 8시간, 개인상담 6시간이었지만, 미술치료를 통한 자기성장 집단상담은 매주 목요일 두시간씩 7주 동안 총 14시간을 하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하고 싶어서 미술치료를 통한 자기성장 집단상담을 선택하였다. 다른 것도 많이 있었지만, 티비에서 본 미술 치료가 생각나서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선택을 하게 되었다.첫째 날, 집단 상담실에 갔을 때, 거의 시작 시간에 겨우 맞춰서 들어 갈려고 문을 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같은 과 애들이 7명이었고, 나머지 모르는 사람들이 13명이었다. 들어가서 앉았고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는데 상담 선생님께서 남자와 여자가 갈라져서 앉았다고, 자기는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지적을 하셔서 자리를 섞어 앉혀 주셨다. 나는 대학원생 누나와 상담 선생님 사이에 앉았다. 자리를 옮긴 후 먼저 한 것이 자신의 별명을 쓴 이름표를 만들어 목에 걸으라고 하셨다. 나는 기린이라는 별명을 썼다. 각자 별명을 쓰고 목에건 다음에 옆 사람과 대화를 통해 옆 사람에 대하여 알아보라고 하셨다. 내 옆에 앉았던 누나는 설향이라는 별명을 썼다. 왜 설향이냐고 물어봤더니 그 누나 집 마당에 설향이라는 꽃이 있는데, 꽃은 작은데 향기가 좋고 진해서 온 마당에 그 꽃향기가 나서 그 꽃이 좋아서 별명을 그렇게 정했다고 하였다. 서로 묻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파트너가 발표도 하였다. 서로 묻고 나서 집단 상담을 하면서 배워가거나 얻어가고 싶은 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하였다. 나는 사과바구니를 그렸다. 그 그림은 바구니 안의 여러 개의 사과 중에 하나가 특별한 것이었다. 그 그림을 그린 의도는 내속에 많은 나 중에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었다. 각자 자신의 그림을 대충 간단히 그리고 옆 사람에게 자기 그림을 넘겨주었다. 다른 사람의 그림에 보충해주고 싶은 것들을 그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려서 대충 해주었다. 한바퀴가 돌고 나서 나의 그림이 다시 돌아왔을 땐 처음 의도했던 것과 다른 그림이 되어서 왔다. 그림이 너무 이쁘게 되어서 왔다. 전부 자기의 그림을 받고 나서 한 사람씩 설명을 하고 질문을 받는 그런 식으로 발표를 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나는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하여 더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번째에는 가서 또 자리를 섞어 앉기 위해 게임을 하였다. 게임을 하고 자리를 섞어서 앉은 후 잡지를 오리거나 그림을 그려서 자신을 표현하라고 하였다. 나는 한참 잡지를 뒤지다가 피자, 햄버거, 케익을 잘라서 오려 붙였다. 시간이 12시가 거의 다되어서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붙였다. 그리고 나서 각자 자신이 한 것들을 발표하고 질문을 받고 끝났다.세 번째 갔을 때는 숫자가 반 이상으로 줄어있었다. 사람들이 아침시간이고 해서 잘 나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날은 자신의 속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했다. 나는 그 날 기분이 별로 안 좋아서 비 오는 그림에 사람이 우산을 쓰고 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옆엔 햇빛이 비치는 것을 그렸다. 비가 오는, 안 좋은 날도 있지만 머지않아 밝은 날도 있을 것이 라는 것을 표현했다. 그리고 발표를 하고 서로 질문도 하고 끝났다. 매 시간마다 서로 자기 그림에 대한 발표가 끝나면 그 날 느낌이나 배워 가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네 번째는 집에 부모님께서 올라오셔서 가지 못했다.다섯 번째는 가니까 5명밖에 없었다. 그 날은 선생님께서 여러 가지를 가져오셨다. 골판지, 솜, 풍선, 손수건 등을 가져 오셔서 이것들을 가지고 자신에 대해서 표현을 하라고 하셨다. 우선 모두다 선생님께서 하라는 대로 뚜껑이 없는 육면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 안을 꾸미라고 하셨다. 나는 우선 별 몇 개와 거북이 한 마리를 접었다. 그리고 상자 안에 솜을 넣고 노란 풍선을 불어서 알을 품는 그런 포근한 느낌이 들도록 한 후에 주변에 별들을 놓고, 상자를 파스텔로 면마다 다른 색으로 칠했다. 이날 작품설명은 시간이 없어서 다 하진 못하고 다음시간으로 미뤄졌지만, 여섯 번째에는 늦잠을 자서 가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