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개론 (실천과 수행)들어가며지금까지 세미나를 통하여 종교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기능, 인간관, 세계관, 의례 형태 등 종교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 시간에는 종교의 실천과 수행에 대하여 이야기 할 것이다. 각 종교의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요청되는 실천과 수행은 무엇인지 대표적인 4종교를 통해 알아보자.? 그리스도교그리스도교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근거로 하여 이루어진 종교로서, 즉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인간의 주님이시며 구원자 완성자'라는 믿음을 그 신앙의 기초이자 중심 진리로 믿으며 생활하는 종교를 말한다.그리스도교는 바로 이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두 제자들을 선정하시고, 이들에게 당신의 삶과 죽음, 부활 그리고 모든 권능을 넘겨주시고 보존해 주심으로써 이 세상에 세우신 종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몸소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가르침이며, 동시에 이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삶은 영원한 구원의 삶을 준비하는 모습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생애를 매순간 자기가 처해 있는 그 곳에서 살아야 하는 의무와 권리가 있는 것이다.1. 그리스도인의 소명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여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보다 아름답고 사랑이 가득하고 정의가 있는 세상이 되도록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또 그들은 자신이 들은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며, 그 복음의 기쁨 속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마침내 구원의 삶에로 인도할 소명을 받고 있다. 평소에 깊은 기도 생활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그 뜻에 겸손히 순명하고 매사를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웃에 봉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참다운 모습이다.2. 전도 (막 16:15, 행 1:8)1)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전도란 낙심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험한 세상 속에서 좌절을 느끼며 죄와 사망 속에서 사는 불신자들에게 예수님이 에게 복음을 전파하라"하신 예수님의 부탁에 대한 응답이며, 복음전도는 하나님의 권하시는 그의 뜻이다.3. 기도-(금식)1)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이며 교제이다.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지엄한 분이 아니라 친근한 아버지이시다.성도는 기도를 통하여 친근히 아버지께 나아가 그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하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자신의 고통, 슬픔, 번뇌, 기쁨 등 모든 것을 창조자이시며 완전한 인격체이신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 형편을 헤아리신다. 또한 기도하는 이를 통해 그 뜻을 이루어 가신다.)2)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요청이며 간구이다.기도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생활이라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무력함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사람은 아무런 힘도 없고, 연약하기 때문에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고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님께 대한 신뢰이며, 주님의 도움을 구하려는 담대한 마음, 곧 신앙이다.3) 기도는 성도들 간의 사랑의 교제를 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동일한 기도제목을 갖고 동일한 장소에 모인 성도들은 서로가 한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고 부모형제와 같이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된다. 기도는 성도들 간의 진실한 사랑을 맺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4) 기도는 거듭난 자의 호흡이다.육신이 코로 숨을 쉬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같이 거듭난 영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호흡운동이며 호흡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인 것처럼 기도하지 않는 영혼 역시 죽은 영혼이다.4. 예배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믿음 있는 응답이며, 구체적인 행위이다. 이 예배는 인위적인 행사로 되는 것이 아니며, 성경 말씀의 증거와 성례전 가운데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보여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깨닫는 믿음 가운데서 이루어짐을 말한다, 그리고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예배의 목적과 내용은 인간 중심적인 것이 될민', 이슬람에 입교한 사람을 '모슬렘'이라고 부르므로, 이것들 모두가 이슬람교 신자의 호칭이다.2. 이슬람 신앙의 요소이슬람 신앙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음의 셋으로 분석된다. 첫째는 '지(知)'인데, 이것은 알라의 계시를 잘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언(言)'인데, 마음으로 알고 또한 믿는 바를 말로 표현하는 일이다. 셋째는 '행(行)'인데, 이슬람교도로서의 의무(즉 5주 등)를 열심히 실행하는 일이다.3. 오주(五柱)모슬렘에게는 실행해야 할 중요한 의무 다섯 가지가 있다. 이것을 오주라 하며, 이들 의무를 다함으로써 알라에게 봉사하는 일을 '이바다트(奉化 또는 勤行)'라고 한다. 《코란》에서는 희사와 단식(斷食)을 중요한 봉사로 들고 있으나, 후세에 이르러 다음의 다섯 가지를 가리키는 것이 상례로 되었다.① 증언 또는 고백(샤하다): "나는 알라 이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합니다. 또 나는 마호메트가 알라의 사자임을 증명 합니다"를 입으로 왼다. 신도는 어릴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증언을 고백하게 되어 있다.② 예배 또는 기도(살라트): 일정한 시각에 규정된 형식에 따라 행하는 예배를 말하며, 개인적으로 수시로 행하는 기도는 '두아'라고 부른다. 예배는 하루에 다섯 번을 일출, 정오, 하오, 일몰, 심야에 하며, 특히 금요일 정오에는 모스크에서 집단예배를 행한다. 예배를 드릴 때는 반드시 메카가 있는 쪽을 향하고 행한다.③ 희사(자카트) 또는 구제: 국가재정의 근간을 이루며, 비이슬람 국가에서는 선교기반이 이루어지는 데 필요불가결한 모슬렘의 의무중의 하나이다.④ 라마단 금식(샤움): 성년인 모슬렘은 매년 라마단 월간(月間:제9월) 주간(晝間)에 음식, 흡연, 향료, 성교를 금하고, 과격한 말을 삼가며 가능한 한 《코란》을 독송한다. 단 음식은 흰실과 검은실의 구별이 안 될 만큼 어두워진 야간에는 허용된다. 라마단 월이 끝난 다음 새 달이 하늘에 떠오르면 단식완료의 축제가 시작되는데, 화려한 의상을 입은 군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은 행하여도 보상도 없고 벌도 받지 않는 것, ④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이것은 행하여도 벌을 받지 않지만 그래도 행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 ⑤ 금지된 것으로 이것을 행하면 알라의 벌을 받는 것이다(하람, Haram:이슬람법 용어). 예를 들어 돼지고기를 먹거나 음주하거나 하는 일은 하람 ⑤에 해당한다. 그러나 하람에 대하여는 시대와 지방에 따라 의견의 차이가 있어 약간은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중세 이래 모스크는 교도의 생활중심이 되어 왔으나 11세기 투르크가 각지에서 지배권을 장악한 뒤부터는 오로지 예배장소로만 되고, 그 밖의 기능은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스크를 생활의 중심으로 삼고, 한편으로는 샤리아에 따라 규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이슬람교도의 일상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힌두교힌두교는 세계의 종교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하며 다양한 종교적 믿음과 관습으로부터여러 가지 요소를 선택, 흡수하는 절충주의 혼합주의적 성격을 가진다.힌두교 최고의 신(神) 브라만을 온 우주의 궁극적인 실체로, 또한 영원한 존재로 믿는다.(비인격적, 사변적, 추상적 존재) 브라만 외에도 많은 신들을 수용하는 다신론이다.힌두교의 목표점은 무한한 윤회의 과정(즉, 탄생과 죽음과 재생의 영원한 굴레)에서 벗어나 평온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단 해탈하기만 하면 누구나 충만하고 완전한 세계에 들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목표점에 이르기 위한 수행으로는 첫째 자신이 정한 특정한 신에게 헌신하고 복종하는 것이고, 둘째 규정된 종교의식과 관례들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해탈, 요가, 명상 등이 있다.구체적인 실천과 수행해탈은 업과 윤회)를 지속하는 인간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더 이상 자신의 전생의 업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으며 다음 생을 살지 않아도 되는 해방으로 가는 것이다. 이 윤회의 세계는 끝없는 괴로움을 인간에게 주는 것으로 인식되며 이것을 벗어나는 것이 제일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선법이며 많은 이들이 따르는 방법이며 지금도 행하여지고 있는 방법이지만 붓다는 이것을 거부했으며 자신의 깨달음을 타 존재에 의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현대 종교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신에 의해 요구되기도 한다. 특히 기독교 경전 에서는 특히 구약에서는 의례적으로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은 선한일로서 심지어는 신의 충실함을 시험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제물로 요구하기도 한다. 힌두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제사와 공덕으로, 어찌보면 가장 쉬운 해탈의 길을 찾고자 한다. ?박티 요가세번째로 박티이다. 박티는 자신이 이미 받았거나 아니면 예정된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느 특정 신격을 지성껏 봉헌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남신이든 여신이든 그 신격에 대해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그 신격에 정성껏 복종하고 봉헌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힌두교인들은 이 박티를 통하여 해탈에 이를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붓타와는 다른 입장이지만 기독교의 유일신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그들에게 구원을 준다는 사상과는 매우 흡사한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 즉 해탈에 이를 수가 없으므로 신을 통하여, 그에 대한 자신을 사랑을 증명함으로써 윤회의 사슬을 끊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실제로 신화 속에서 신들에게 기도하여 천상으로 들려짐을 받은 인간이라든지, 소원성취라든지 하는 내용이 상당히 들어있다. 이것은 어찌보면 일반대중의 나약함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르마(karma) 요가? 유교선비의 인간상을 연구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선비의 그 일반적 행실에 대하여 최초로 자상하게 정리된 글은 예기의 유행(儒行)편이다. 다음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예기의 유행편 원문을 쉽게 풀이한 것이다.일반적으로 유교인은 상석에 앉혀야 되는 진귀한 인물로 초빙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유교인은 밤낮으로 열심히 학문을 연구하여 질문하여 오기를 기다리고, 충성심과 신의를 가지고 선거하여 뽑히기를 기다리며, 배운 것을 힘차게 실행하여 발탁되기것이다.
김동인 문체 분석‘감자’에 나오는 문장들은 거의 간결하다. 문장이 짧게 끝나고 수식이 적으며 서술이 단정한 문체로 복잡한 인생살이를 간단하게 재단했다.어쩔 수 없이 주어진 운명에 끌려다니게 마련이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봤자 전혀 소용이 없다는 소극적 체념적 태도가 ‘감자’뿐 아니라 김동인 작품세계를 지배하고 있다.사회악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생활 바탕에는 건전한 인간성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감자’에는 냉정한 객관적 묘사, 생활난에서 오는 경제적 조건, 부도덕한 관능적 행실, 사랑의 복수, 살인, 음모 등 삶의 어두운 요인이 드러나 있다. 부도덕을 드러내는 바탕에 그것을 극복하려는 윤리의식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예술 가치도 주지 못한다. 김동인의 작품 세계에는 도덕관이 없다. 김동인은 탐미적 이상주의(퇴폐주의)로 시종일관한 작가이다. 이는 인간성을 부정하고, 일제 하의 민족의 현실을 망각하고 도피한 자의 자기 합리화로 성립된 미학이다. 김동인은 춘원 문학의 계몽적 공리성을 배격하고 문학 그 자체를 강조하여 유미주의 문학관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김동인은 부유한 집안에서 편애에 가까운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이러한 환경이 그를 유아독존의 생각을 심어주게 되었고, 후에 그가 도덕이나 윤리를 생각지 않고 유미주의 문학관에 매달리게 된 결과가 이런 환경에 의한 것이라 생각된다.‘감자’에서 복녀가 왕서방에게 대들다 죽은 것은 예기치 않던 질투심의 결말이다. 복녀의 죽음이 대수롭지 않게 취급되고 흥정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세상은 그만큼 냉혹하니 헛된 기대를 걸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김동인의 소설은 사실주의와 구별되는 자연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복녀가 매음녀로 전락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환경 때문이다. 특히 송충이 구제사업 현장에서 감독에게 몸을 맡긴 뒤 급격히 변모해가는 복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가난이 압도적인 힘으로 인간을 파괴시켜 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감자’에 그려진 가난은 초시대적이고 보편적인 가난의 모습일 뿐,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식민지 수탈정책 때문에 구조적으로 강요된 조선 민중의 가난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복녀가 가난한 것은 남편이 무능하고 게으르기 때문이지 당대 사회와 아무 관련이 없는 우연한 개인 문제인 것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시점 분석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는 화자가 등장 인물로써가 아닌 작품외적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선 3인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소설을 보면 ‘나’라는 등장인물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명백히 1인칭이라 할 수 없다.그리고 들은 이야기를 통해 소설이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구보라는 인물이 하루 동안 경험한 것을 서술했기 때문에 직접서술이라 할 수 있겠다.이 소설을 보며 1인칭인지 3인칭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구분 할 수 있었지만, 전지적 작가시점인지 제한 전지적 시점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구분 지을 수가 없었다.어머니, 구보(아들), 벗 이 주요인물로써 소설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전체적으로 볼 때에 화자는 아들과 어머니의 내면을 알고 있지만 벗의 내면은 알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제한 전지적 시점(고정된 서술이 여러개인) 으로 구분해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에 대한 많은 해석들은 ‘전지적 작가시점’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전지적 작가시점 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가는 부분들이 소설 곳곳에 많이 있었다.소설을 직접 살펴보며 이야기 하자면..소설의 처음은 어머니 중심으로 시작한다. 구보라는 이름이 언급되기 전까지는 철저히 어머니의 내면이 드러나고 아들 구보의 내면은 드러나지 않는다.-어머니는 다시 바느질을 하며....그런 것을 생각하여 본다.-어머니는 그가....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그것이 아들의 훌륭한 자랑거리라 생각하였다....이런식으로 화자는 어머니의 내면을 훤히 알고 있다.하지만, 구보라는 이름이 언급된 후 부터는 구보 중심으로 철저히 구보의 내면이 드러나고 있다.-어머니에게 단 한마디 ‘네’하고 대답 못 했던 것을 뉘우쳐 본다.-구보는, ... 의혹을 갖는다. -..무의미함을 새삼스러이 깨달은 까닭이다. -구보의 마음은 불안하였다. -갑자기 구보는 온갖 사람을 모두 정신병자라 관찰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이 외에도 구보의 내면을 보여주는 서술은 정말 많이 있다.등장인물이 이 둘뿐 이였다면 분명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 말하기 충분할 것이다.하지만 소설중에는 구보의 ‘벗’이 등장한다. 하지만 화자는 벗의 행동과 말을 서술 할 뿐 그의 내면은 알지 못한다.-벗은 구보의 그리 대단하지 않은 작품을 오직 한 개 읽었을 따름으로, 구보를 완전히 알 수나 있었던 것 같이 생각하고 있는 듯싶었다.-벗은 그 여급에게 흥미를 느끼지 않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이렇게 벗에 대해서는 구보의 추측뿐이 있고, 벗의 직접적인 생각이나 내면은 표출되지 않는다.이 세 인물에 대해서만 분석해 보더라도 전지적 작가시점은 아니라고 생각된다.그리고, 소설을 보며 맨 처음의 어머니 중심의 소설과 구보 중심의 소설이 분리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만약 어머니 중심의 소설이 없었더라면, 이건 3인칭 주인공(선택적 전지시점)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소설을 다시 살펴 본 결과, 또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보 중심의 소설만 보더라도 이 소설은 제한 전지적 시점의 모양을 띄고 있었다.소설 내용중 ‘가엾은 벗이 있었다..라고 시작하는 문단이 나온다. 이 중에서 이런 내용이 있다.-남자는 어느 틈엔가 그 여자에게 대하여 거의 완전히 애정을 상실하고 있었다.-여자는 어리석게도 모성됨의 기쁨을 맛보려 하였고, 그리고 남자의 사랑을 좀더 확실하게 포착할 수 있을 것같이 생각하였다.분명 화자가 남자와 여자의 내면의 상태로 알고 있다. 또한 광화문통에서 비 맞고 가는 여자를 바라보던 그 때에,-아이에게 근심은 없다.-그들은 지금 만족이다.이런 두 문장이 연이어 나온다. 이 두 문장을 보면서는 작가가 이 사람들의 내면의 상태를 알고 있는건지 아닌건지 확실치가 않았다. 하지만 앞뒤의 문맥을 살피지 않고 이 문장만을 봤을때는 분명 내면의 상태를 나타낸 것이라 생각했다.만약 이 두 문장이 내면의 상태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면, 위에서 언급했던 남자와 여자에게 보여진 내면의 상태는 오발탄에서의 명숙에게 나타난 비슷한 작가의 실수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의도가 구보의 내면만을 보이려고 했다면 말이다.여하튼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닌 고정된 서술이 여러개인 제한 전지적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러한 시점을 선택했을까?전체적으로 봤을 때 어머니와 구보의 내면은 알 수 있고, 벗의 내면은 알 수 없다.작가는 구보의 내면 표출을 통하여 1930년대의 나약한 지식인(자신)의 일상사를 드러내려 했다. 30년대에는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이지만, 일제에 반하는 글을 쓸 수 없는 당시 지식인으로써의 고뇌를 외출을 통한 구보의 하루를 통하여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독자의 상상적 참여를 제한하는 전지적 작가시점과는 달리, 제한 전지적 시점을 사용함으로써 구보 이외의 벗 등의 인물들에게는 제한된 객관적인 시점을 사용했다.그럼으로써 벗이나 여급들, 구보의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개입하여 그 상황을 해독해 갈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