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에 나타난 숫자 3의 상징성아기 돼지 삼형제는 부모님의 집에서 떠나 각자 집을 짓고 살기로 했다. 그 중 가장 게으른 큰형은 산에 오르기 힘들다는 이유로 산밑에 보릿짚을 가지고 가장 먼저 집을 짓고 놀기에 바빴다. 그리고 게으름쟁이 둘째형은 보릿짚으로 집을 지으면 바람에 쉽게 날라 갈 것이라 생각하고 산 중턱에 통나무로 집을 지었다. 하지만 부지런한 막내는 바람이 불거나 폭풍우가 닥쳐와도 끄떡없는 벽돌집을 짓는다. 집이 다 완성된 다음날 굶주린 늑대가 찾아와 큰형의 집을 입김으로 날려버렸다. 둘째 집으로 도망간 큰형은 안심을 했지만 늑대가 집으로 달려와 몸으로 밀어버리자 집이 부서져 버렸다. 첫째와 둘째는 늑대를 피해 막내의 집으로 도망갔다. 늑대는 이번에도 몸으로 부딪쳐 보기로 하고 망치로 쳐보았지만 집은 부서지지 않았다. 화가 난 늑대는 사다리를 가지고 와서 굴뚝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막내는 난로에 불을 지펴 물을 끓였고 굴뚝을 타고 내려오던 늑대는 끓는 물 속에 빠져 엉덩이에 큰 화상을 입고 도망을 갔다. 그 후 형들은 막내를 본받아 벽돌집을 짓고 사이좋게 살았다.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하지만 다정하게 살아온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천사가 와서 세 가지의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했다. 부부는 오래 살게 해 달라고 할까,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할까,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부부는 저녁을 먹으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내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소시를 구우며 좀 더 큰 소시지를 구워 먹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자 식탁 위에 큰 소시지가 갑자기 나타났다. 아내는 하나의 소원을 큰 소시지를 얻는데 써버린 것이었다. 그런 아내에게 화난 남편은 그 소시지가 당신 코에 붙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해버리자 그 소시지가 부인의 코에 딱 붙어버렸다. 남편은 마지막 남은 소원으로 아내의 코에 붙은 소시지를 떼 달라고 했다. 그 후로 부부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다.열심히 공부를 한 선비는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나무 밑에 쉬고 있는 선비는 큰 구렁이가 까치 새끼들을 잡아먹으려는 모습을 보고 까치 새끼를 구해주기 위해 큰 구렁이를 잡는다. 다시 길을 떠난 선비는 날이 어두워져 산중 어느 초가에 들어가게 된다. 흰 소복을 입은 여자는 선비가 자도록 방을 내어준다. 잠을 자던 선비는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고 눈을 떠보니 낮에 선비가 죽였던 큰 구렁이의 아내 구렁이 한 마리가 선비의 몸을 감고 있었다. 살려 달라는 선비의 말에 구렁이는 오랫동안 울리지 않은 종이 있는데 그 종이 새벽이 오기 전에 3번 울리면 잡아먹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새벽이 되어 구렁이가 선비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순간 종소리가 3번 울려서 선비는 살 수 있게 되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종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보니 종 밑에는 수많은 까치들이 피를 흘리고 떨어져 있었다. 그 후 그 까치 무덤이 있는 산을 치악산 이라고 부르게 됐다.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에서 첫째 아기돼지는 아주 게으른 큰 형으로 나타나있고 둘째는 큰형보다는 게으르지는 않지만 게으른 돼지로 나타난다. 하지만 막내 돼지는 집을 짓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첫째, 둘째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부지런한 돼지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에서 선비는 구렁이에게 목숨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종소리가 3번 울려 퍼져 선비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세 가지 소원 이야기에서는 천사가 소원을 3번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이처럼 동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숫자 3의 상징성을 보면 대체로 완성, 안정, 조화, 변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1과 2를 지나 3에 오면 1과 2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롭고 완성된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를 만나는 느낌을 받는다. 아기 돼지 삼형제 에서 볼 수 있듯이 게으른 첫째와 둘째형들 사이에서 마지막 셋째로 태어난 아기돼지는 게으른 형들과는 전혀 다르게 매우 부지런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 에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종소리를 들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선비를 죽이기 위해 목을 조르고 있던 구렁이가 종이 3번째 울렸을 때는 거짓말 같이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이밖에도 셋째 딸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한다. 최진사댁에 세 딸이 있는데 그 중에서 막내인 세쨋 딸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시케는 공주였는데, 세 딸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녀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녀를 새로운 미의 여신(비너스)으로 삼고자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숫자 3을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 숫자에 어떤 힘을 부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동·서양을 막론하고 3은 완성, 최고, 신성, 장기성, 종합성 따위로 인식되고 있으니 우리만 3을 중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고시레' 풍습에서 3을 확인 할 수 있고 그밖에도 3세판, 삼신할머니, 천·지·인, 삼강오륜, 삼족오, 삼두일족응 등을 보면 상징이 암시하는 바가 바뀌었을 뿐 민족사에 걸쳐서 3이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먼저, 서양에서 보는 3을 살펴보면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숫자 속에 우주의 심오한 의미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여 숫자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 중에 숫자 3은 1(하늘의 일체성)과 2(지상의 다양성)가 합쳐진, 모든 실재를 가리킴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영어로 3(three)은 나무(tree)라는 말에서 파생되어 나왔다. 나무는 풍요 또는 번영이나 안정의 상징을 나타내고 나무의 삼각형 구도는 완벽한 것과 같은 단단한 느낌을 준다. 숫자 3의 어원에서 볼 수 있듯이 3은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한 조화를 말하고 많다는 의미보다는 완벽하거나 조화롭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우리나라 사람에게 숫자 3은 특별한 숫자이다. 오랜 옛날부터 3은 길수 또는 신성수라 하여 최상의 수로 여겨져 왔다. 그러면 왜 3을 최상의 수, 수 중의 수로 여기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살펴보기로 하자. 3이란 숫자가 지닌 깊은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숫자 1과 2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및 제재 분석을 통한 대안 제재 구성■ 분석 대상 : 3학년 2학기 1. 약속과 규칙■ 제재의 지도 핵심약속이나 규칙을 지켜야 하는 까닭의 인지적 측면을 지도하고, 약속이나 규칙을 지키지 못했을 때나 지켰을 때의 경험을 통해 약속과 규칙을 잘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도록 하고, 실천 연습을 통해 약속과 규칙 지키기가 생활화되도록 한다.■ 제재의 목표약속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 까닭과 마음가짐을 알고 이를 실천할 수 있다.■ 제재의 구성과 흐름수철이의 고민약속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까닭 알기경원이의 약속은주의 후회학교 생활의 규칙약속과 규칙약속과 규칙을 지키려는마음 다지기일상 생활의 규칙약속을 지킨 안창호 선생규칙을 지켜야지약속을 잘 지키기 위한 다짐놀이학습(선택활동1)처칠과 경찰과(선택활동2)약속 규칙 지키기실천 계획 세우기(선택활동3)마음에 새겨 둡시다■ 제재 분석▲ 교과서 4∼5쪽 삽화 그림▷ 삽화의 모습은 남녀의 아동들이 짝을 지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있는 그림.▶ 그림 속에 남자아이들은 모두 반바지를 입고 있고 여자아이들은 모두 치마를 입고 있다. 심지어 여교사까지 치마를 입고 있는데, 이런 그림을 아동들이 자칫 잘못 이해하게 되면 '여자들은 치마만 입어야 하고 남자들은 바지만 입는 것이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수정이 되어야 하겠다.그리고 이 그림을 통해서 학생들이 질서 있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찾아 볼 수도 있겠지만 교사의 지도아래 들어가는 모습이 왠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실제 아동들이 생활하는 학교에서는 등·하교시 또는 운동장에서의 활동 후 교실로 들어갈 때 교사가 학생들의 출입을 안내해 주는 광경은 보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학생 스스로 질서를 지키는 모습이라기보다는 교사의 지도아래 들어가는 모습에서 학생 스스로의 질서 의식에서가 아닌 교사라는 권위에 의해 줄을 서서 들어가는 모습으로 보인다.◈ 대 안아동들이 쉽게 느낄 수 있는, 직접 경험해 봤던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닌 도덕 시간이라고 봤을 때 이런 단어의 사용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사회생활, 동포, 수상, 의사(義士)가 무엇이냐고 물어봐도 어떤 의미라는 것은 어렴풋이 떠올리기야 하겠지만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아동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하물며 3학년 과정 도덕 교과서 예화 내용으로 이런 단어가 나온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도덕 교과의 수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문제 상황이 파악이 되어야 하며 문제 사태에 관련된 규범의 의미를 파악하여야 하는데, 교과서에 나오는 어려운 단어들로 하여금 아동들이 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면 시작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아동들의 읽기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예화의 내용으로 인해 이러한 활동이 제약을 받는다는 것은 크게 잘못됐다고 본다.그리고 '약속을 지킨 안창호 선생'의 예화는, 이 글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의 역사적 지식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지만 초등학교 1∼3학년 과정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한 내용이 없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통치하던 그 때의 상황을 모른다면 이 지문에 대한 이해는 떨어질 것이다.물론 특정 몇몇의 아이들은 전기문이나 책을 통해서 이런 내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봉길 의사가 일본 장교에게 폭탄을 던진 일이나 왜 목숨을 걸고 독립 운동을 하는지, 안창호 선생은 왜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 운동을 했는지,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은 왜 일본군을 피해 다녀야 했으며 잡히게 됐을 땐 어떻게 된다는 것 등의 내용은 초등학교 3학년 교육과정에 없는 내용으로써 아동들이 모두 다 알고 있다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그렇다고 도덕시간에 이 사건들을 설명하기란 시간적으로 벅찰 것이다.이렇게 사회교과 교육과정의 내용을 간과하고 도덕교과서에서 아직 배우지도 않은 역사적 사건을 제시함으로써 전체적인 내용의 이해에 많은 어려움을 아동들에게 줄 수 있다.◈ 대 안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는 아동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필요하겠다. 아동의 교과 과정의 흐름을 좀더 살펴보고 예화를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교과서 예화 '경원이의 약속'의 내용이 논리적이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부적절한 내용이다.▷ 경원이가 몸이 약해 자주 결석하는 민수를 위해서 사회과 자료 조사한 것을 주기로 약속.▶ 예화의 내용 중에 '경원이네 반 친구인 민수는 몸이 약해 자주 결석을 합니다. 지난주에도 몸이 아파 내내 결석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공부는 열심히 합니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곧 '몸이 아파 결석하는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몸이 아파 결석하는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경원이 친구인 민수는 몸이 아파 결석을 많이 하지만 공부는 열심히 한다라고 말한다. 이런 논리는 자칫 몸이 아파 결석하는 아이는 모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뭔가 문제가 있는 친구로 오해하기 쉽다.그리고 민수가 '사회과 자료 조사 과제 좀 가르쳐 줄래? 1주일이나 결석을 했더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라고 부탁을 했을 때 이 부탁에 대한 해석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깐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줘'와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참고 할 수 있게 네가 조사한 자료를 보여 달라'는 말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경원이의 대답에 의하면 전자 쪽 의도라기 보다 후자 쪽에 가까운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마침 만들어 둔 자료 목록과 자료가 좀 있는데', ' 민수가 부탁한 자료를 찾고 정리해야 했지만'이라는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그러면 문제가 생긴다. 분명히 이번에 해야 할 사회과 과제는 자료 조사다. 사회교과에서 중요한 교육 활동은 자기 자신이 직접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에 맞는 자료를 직접 찾아 분석하고 탐구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그 단원의 수업 목표에 대한 지적 안목이 형성되는 것이고 경원이 담임 선생님도 이와 같은 의도에서 과제를 제출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화에서는 민수가 직접 해야할앞세우고 남편과 다시 세차하러 왔다. 그 옆에 남학생도 있었다. 그녀는 "세차 때문에 남편은 회사에 일주일 휴가를 냈고 남동생은 수업이 끝나고 바로 이곳으로 왔어요"라고 했다.아버지와 차 주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갓난아기를 가진 딸과 휴가를 낸 사위가 애쓰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이 글에서 본받을 점은 무엇인가요?▣ 약속이 중요한 이유를 써 봅시다▣ 나의 생활 중에서 약속을 어긴 경험이 있으면 써 봅시다.이처럼 교사는 교과서에 나오는 예화 외에도 수업과 관련된 많은 예화 자료를 수집 해 두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맞는 적당한 예화를 제시하는 것이 수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과서 9쪽 삽화 그림▷ 한 아이가 컴퓨터가 있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그림▶ 요즈음 가정에 컴퓨터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어 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와 같이 초등학교 3학년 아이 방에까지 컴퓨터가 있는 집은 잘 없다. 더군다나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해 밥도 못 먹는 아이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라는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교과서에서 이런 그림은 아동들에게 빈부격차의 위화감을 조성 할 수 있다.그리고 3학년이라고 하면 몇몇의 아이를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이용한 문서 작성이라든지 정보 검색을 위한 용도가 아닌 오락용으로 많이 쓰고 있다. 이처럼 이런 그림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현실적인 문제로 인식 될 것인가라는 것도 의문이다.◈ 대 안이 문제에 대한 대안은 위에서 언급한 예화의 적절성 문제에서의 대안과 비슷하게 적용해 볼 수 있겠다. 예화의 내용이 적절한 것으로 변한다면 삽화도 바뀔 것이다. 물론 아동들의 생활 환경을 고려한 그림이 되어야 하겠다.왼쪽의 사진은 '약속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 까닭을 알아봅시다'의 수업 목표를 위한 대안 예화에서 사용 해 볼 수 있는 삽화 그림.▲ 교과서 10쪽 삽화 그림으로 본 예화 오류▷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에 은주는 계단을 뛰어내려갔습니다.'뛰어 내려가는 아이와 올라가는 아이가 부딪치는 그림▶ 예화의을 더 넣어보는 것이다. 예화의 내용은 은경이는 좌측 통행을 해야함을 알고 있었지만 학교 규칙을 무시하고 자기가 가고 싶은 쪽으로 가다가 뛰어 내려오던 은주와 부딪쳐 후회하는 내용의 글이다.하나의 사건 속에서 양쪽 모두의 잘못을 서로 다른 시점으로 보여 준다면 우리가 규칙을 잘 지켜야 하는 까닭을 좀더 쉽게 아동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생활의 길잡이 '운동회날' 예화와 학습목표의 내용과 다름▷ 생활의 길잡이에서 '운동회날' 예화의 학습 목표는 '약속과 규칙을 지키려는 마음을 다져 봅시다'이고 다음은 '운동회날'의 간략한 내용이다.두리와 한나는 친한 친구이다. 그런데 승부욕이 강한 두리가 달리기를 잘하는 한나를 이기기 위해 운동회날 달리기를 하면서 팔꿈치로 한나의 왼쪽 어깨를 밀어 한나는 넘어지고 두리는 1등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두리를 나무라는 친구들 사이에서 한나는 1등을 하기 위해 자신을 밀어낸 두리를 오히려 변호를 하고 둘 사이의 관계는 회복된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운동회날 달리기를 할 때, 누구나 한번쯤 1등을 하고싶은 마음에 이런 생각을 해봄직한 내용을 이야기함으로써 약속과 규칙을 지키려는 마음을 다져보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로 갈수록 '약속과 규칙을 지키려는 마음'을 다져보기 보다 '친구와의 우애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결말에 가서 두리는 오히려 자신을 변호해 주는 한나의 모습을 보고 미안해하고, 한나는 '그때는 화가 났지만, 지금은 괜찮아. 친구들이 너한테 심하게 하는 것을 보니 속상했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학습목표와는 다른 '약속과 규칙'이라는 덕목이 아닌 '타인 배려', '경애 '의 덕목을 설명하기 위한 예화가 아닌가 한다.그리고 이런 생각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있는 박스 안의 질문 내용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2번에 '한나에게서 우리가 본받을 점은 무엇일까요?'인데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한나에게 본받을 점이라고 한다면성
- -J. Dewey의 견해에 대한 나의 생각(Ⅱ)듀이의 견해는 아동들의 기초 학력의 저하를 가져 올 수 있다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물론, 듀이도 전통적 교과의 중요성을 경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 교과의 중요성을 경시한 루소의 교육론을 비판하고 있다. 듀이는 교과의 중요성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주지주의 전통에서와 같이 교과를 주입될 대상이나 목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지적 성숙을 위해 동원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였다.여기서 기초학력의 뜻을 살펴보자. 기초학력이란 연령에 따르는 학력의 발달 단계에 있어서 장래 발전을 촉구 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학력을 말한다. 그러자면 그 기초 수준을 어디에 두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사회생활에 필요한 최저의 학력, 즉 최저수준에 관련하여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의 학력이라는 뜻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듀이도 기초 학력이라는 것은 주위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것들이며 이러한 것들은 생활 속에서 많이 접하게되므로 기초학력은, 기초학력을 최저수준에 관련하여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의 학력이라는 뜻으로 생각할 때 그런 경험들로 충분히 학습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이유로 듀이의 교육 방법에 있어서 기초학력의 저하는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생활 속에 내재해 있는 수많은 것들, 기초 학력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어떻게 다 배울 것인가라는 물음을 가질 수 있는데 이에 듀이는 기초 학력이라는 것이 많을 필요도 없다라고 말하고 정말 생활에 필요한 것들만이 필요함으로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초학력이라는 것을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하나의 교과를 학습함에 있어서도 그에 필요한 기초학력이란 것이 인정되지만 필요한 교과를 학습하기 위해 그 기초가 되는 특정교과에 대한 학력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수학에서 기초가 되는, 단순히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것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기초 학력이 형성 되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과학적 이론의 학습에 있어서는 이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미분, 적분을 모르면 풀리지 않는 것들도 있고 옴의 법칙을 모르면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생활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미·적분을 몰라도 우리는 생활함에 있어서 전혀 불편함이 없다. 그리고 미·적분은 생활 속에서 개념이 없으면 찾아보기도 힘들다. 하지만 어떤 과학적 이론에 있어서는 이러한 것들은 기초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개념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식의 구조를 알아 나가야 한다. 하지만 듀이는 결과를 보여주고 역으로 흥미를 유발시킨 후 원인을 알아가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1, 2, 3, 4, 5라는 체계의 지식 구조가 있다면 아동이 5에 대해서 흥미가 있어 5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면, 물론 5를 알기 위해선 앞선 과정을 알아가야 풀리는 것들도 있겠지만 5로 그냥 끝나게 된다면 1, 2, 3, 4의 지식은 건너뛴 지식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1, 2, 3, 4, 5라는 지식에서의 기초적인 지식, 즉 기초 학력은 낮아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기초 학력의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말이 틀려 질 수도 있는 문제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교육 방법에 비해, 예를 들어 전통주의적 교육방법이나 피터스가 이야기하고 있는 교육방법과 같은 교육방법에 비해 '하나의 교과를 학습함에 있어서 그에필요한 기초학력이란 것이 인정되지만 필요한 교과를 학습하기 위해 그 기초가 되는 특정교과에 대한 학력을 의미하는 경우'에서 생각해보면 기초 학력의 저하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더 생각해 보면 수학과 같은 과목은 사고의 성장에 매우 도움이 되는 과목이다. 실제로 수학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공식들은 실생활에 그리 활용도가 높지 않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선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공식들을 이용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가면서 좀 더 높은 단계의 사고, 다양한 사고를 가지게 되고 그런 가운데 다른 과목의 학습함에 있어서도 여기서 얻은 성장된 사고의 과정으로 높은 단계의 내용을 학습 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보면 수학에 있어서 단지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일만 기초 학력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달되는 것들의 성장은 다른 과목에 있어서는 기초 학력이 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그리고 온고지신이라는 말에서 그의 주장의 난점을 살펴보자. 옛 것을 배우고 익혀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라는 뜻이다. 즉 전통과 역사적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라고 말 할 수 있다. 물론 듀이도 사고의 틀 속에서 그것들을 발견하고 재조정해 나간다고 말하고 있지만 수천년에 걸쳐 내려온 역사와 전통을 모두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듀이는 모든 것을 알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고 자기가 생활함에 있어서 생활에 필요한 것만, 흥미 있는 것만 학습하면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생활 속에서 자신이 발견한 정보, 흥미를 가지고 학습한 정보. 그 정도의 정보로 온고지신의 뜻처럼 새로운 것을 알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반문에 듀이는 흥미를 통해 생활 속에서 사고의 틀이 확립되면 옛 것을 배우고 익혀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방법보다 자신의 사고로 알아 가면 되지 않겠냐고 얘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통과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사고할 수 있는 범위를 줄임으로써 좀 더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의 전쟁 역사를 돌아보면서 현재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고 과거의 국가들이 범했던 실수를 비슷한 상황에 왔을 때 똑같은 실수를 범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것 또한 좀 더 넓게 생각해서 바라보면 생활 속에서 필요한 기초학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마지막으로 아동의 흥미에 의해 나중에 직업을 가지게 된다고 치자. 그럼 그 흥미에 의해 아주 다양한 직업을 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아주 가난한 한 아동이 있다고 하자. 이 아이가 커서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깨끗하게 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고 결국 나중엔 청소부가 되었다. 이 사람에게는 아내가 있다. 그리고 아이가 있다. 아이는 학교에 가야한다. 생활비는 없다. 부모님은 아파 병원에 가야한다. 그러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과연 이런 모습을 보고 환경 미화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돈벌이가 되지 못하는 직업에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인가?
피터스 견해에 대한 나의 생각R. S. Peters의 '교육'과 '교육받은 사람'의 개념을 검토함으로써, 그의 주장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난점들을 지적하고자 한다.Peters의 교육받은 사람의 이상은 인지적 이해 등의 자질들을 높이 평가하지만, 감정이입, 양육과 부양, 타인에 대한 배려, 연민 등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전형적인 여성적 자질들로 여겨져 온 특성들을 경시했다는 비판을 할 수 있다. 특히, 물질문명, 기계문명이라고 불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감정이입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연민 등의 교육이 더욱더 절실하지만 그의 견해에선 이를 찾아 볼 수 없다.물론 그도 '정서는 인지적 핵심, 다시 말해서 정서에 수반되는 신념의 차이에 의하여 구분된다..........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정서를 표현해야 한다....'(p26∼27)라고 하면서 정서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하지만 여기서 도덕적 관념과 도덕에 관한 관념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서 그의 주장을 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도덕적 관념'이란 어떤 관념이든 행동에 영향을 주어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향상시키는 관념이라고 말하고, '도덕에 관한 관념'은 도덕적으로 무관할 수도, 비도덕적일 수도, 혹은 도덕적일 수도 있다라고 영국의 한 철학자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덧붙여 도덕에 "관한" 관념이나, 정직, 순수성, 친절 등에 "관한" 정보는, 그 자체로서는 자동적으로 좋은 성격과 행동으로 변화되어질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다시 정서교육으로 돌아와서 생각을 해보면 Peters는 정서를 교육함에 있어서 정서에 관한 지식의 전수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자동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 연민 등과 같은 정서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정서교육이라고 하면 분야를 가르지 않고 통합적으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의 잠재적인 창의력과 수준에 맞는 정서를 꾸밈없이 나타내도록 활동하는 것이 정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즉, 그는 '교육'을 '지식과 이해'에 너무 밀접하게 연관시켰기 때문에, 그의 '교육받은 사람'의 개념이 지나치게 인지적 측면에 의존하여 규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Peters의 이상은 실제의 교육적 활동을 이끌어 갈 만큼 타당하거나 포괄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어떤 사람이 교육을 통해 형성된 이상적 인간인가, 즉 '교육받은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합의된 답을 도출할 수 없다. 우선 교육이라는 행위가 문화의 유산이듯이 교육받은 사람 역시 특정한 사회와 문화의 소산으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받은 사람의 모습은 역사와 문화권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교육받은 사람'이라는 말 자체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고, 그 사람됨과 인격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