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남존여비사상과 그 영향학교 : 성균관대학교학과 : 사회과학계열학번 : 2003313992이름 : 김태현목차1. 남존여비사상의 실태2. 남존여비사상의 원인1)원시시대 최초의 역할구분a.원시시대의 여성b.모계제에서 부계제로c.계급의 발생과 남녀 지위의 변화2)조선시대, 유교 윤리의 여성 구속3.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4. 맺음말참고문헌http://chunma.yeungnam.ac.kr/%7Ej8300590/3man.htmhttp://column.daum.net/Column-bin/Bbs.cgi/equality/qry/zka/B2....http://my.dreamwiz.com/jutkim/rg-moral/Rg-007.html유교사상의 본질과 현재성,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최영진, 2002년 6월 25일유교의 자연과 인가, 세종출판사, 류태건, 2002년 8월 15일1. 남존여비사상의 실태몇 년 전, 한 TV드라마에서 어느 남성배우의 대사가 기억이 난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야 .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그 말은 바로 남자는 하늘같이 높고 땅이 우러러 봐야 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드라마에서조차 이런 말을 쓰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남녀차별 의식이 얼마나 심하지 알 수가 있다. 게다가 드라마에서 그런 말을 쓰니 사람들이 그런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 예로 나도 몇 년 전에나 본 드라마를 그 줄거리는 기억을 못해도 그 대사 한 마디는 기억하고 있다.옛말에 남녀 7세 부동석 이라는 말이 있다. 이말 또한 우리의 남녀차별 의식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옛 어른들이 만든 이 불문율은 남녀가 유별하다는 엄격한 유교적 산물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아녀자는 감히 남정네와 자리를 같이하고 참견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성차별의 계율이 숨어 있다. 나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항상 반장은 남자가 하고, 부반장은 여자가 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반장은 반의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여자인 부반장은 반장보다 중요하지 않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요즘 사회에서 큰 이목을 끌고 있는 호주제 문제가 남성에 비해 여성이 열등적인 위치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호주란 '집안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호주제도는 집안의 주인을 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한 가정을 이루게 되면 두 사람이 그 집안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호주제도에서는 남자만 주인이고 여자는 그에 속한 사람이라고 정해 놓은 것이다. 남편이 죽으면 아들이 호주가 되게된다. 아무리 어려도 아들이 어머니나 누나들의 호주가 되는 것이다. 아들도 일찍 죽고 어린 손자가 있으면 그 손자가 할머니 어머니 누나들을 대표하는 호주가 된다. 자신에게는 아들이 없고 남편이 외도로 낳은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이 호주가 된다. 아무리 찾아봐도 아들이 없으면 딸이 호주가 된다. 아들도 딸도 손자도 없을 경우에만 아내가 호주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다.호주라고 해서 특별한 권리나 혜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주제가 존재하는 것은 법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절대적으로 동등한 자격을 갖을 수 없으며 여성차별의 당당한 구실이 되어 주는 것이다.그리고 우리나라의 남존여비 사상은 직장에서도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우선, 직장의 사원들의 성비율만 봐도 감을 잡을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회사내의 고위직이나 간부급 인사들은 거의다 남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여성들의 집무능력이나 다른 요소들이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이고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사회의 풍토 때문에 여성들은 회사에 입사를 하기도 어렵고, 더군다나 고위직으로 올라가기는 더욱 어렵다. 게다가 회사에 입사를 해도 회사에서는 여성직원을 잘 인정해 주지 않는다. 갓 입사한 여사원에게 다른 남성사원들은 커피나 잔심부름을 시킨다. TV드라마를 보면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나오면 이러한 류의 대사가 나올 때가 있다. 미스 리, 나 커피 한잔 . 신입사원에게 커피정도는 부탁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왜 항상 미스 인가? 미스터 가 될 수는 없는가?{1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출현)부터 남자와 여자는 함께 살았다. 그들은 사냥이나 고기잡이, 나무 열매따기 등으로 먹을 거리를 마련하였다. 수십만 년전까지 그들은 남녀의 구분 없이 함께 일하고 함께 먹을 것을 나누었다. 또 종족을 보존하는 것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고, 특히 원시 시대에는 자식을 많이 낳아 인구가 증가하는 것이 곧 노동력 공급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는 매우 중요시 되었으며 신성시되기까지 하였다. 이때 인류는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결혼 제도도 없어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가 짝을 이룰 수 있었다. 이것을 난혼제라고 한다.그러는 동안에 불을 발견하면서 생산력이 발전하게 되고 남녀간의 분업이 생겨난다. (50만년전 베이징인이 불을 사용함) 여자는 주로 식물을 채집하게 되고, 남자는 사냥을 하게 된다. 이것을 제 1 차 사회적 분업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이 다시 흐른 뒤 식물 채집에 종사하던 여성은 우연히 씨가 땅속에 묻혀 싹을 틔우고 다시 열매를 맺는 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오늘날 고든 차일드, 보울딩 등 대다 수의 인류학자들은 농업을 발견한 것이 여성들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또 여성은 임신, 출산, 육아의 필요성 때문에 어느 기간동안 정착 생활을 해야 했다. 이리하여 여성은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정착하고 남성들은 사냥을 하며 여전히 이동 생활을 하는 시기가 잠깐 존재한다. 이 시대를 나타내는 증거로 소위 통근혼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남자가 여자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혼인하는 결혼의 모습이다. 아직 결혼 상대자가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인류가 난혼시대를 빠져나온 후 가장 오래된 결혼의 모습이다. 중국의 고전에 그 어머니를 알고 그 아버지를 모른다는 말이 있는 것은 이러한 통근혼의 풍습을 말한 것이다.b. 모계제에서 부계제로여성의 지위 변화는 새로운 생산력과 분업의 발달에 따라 일어났다. 기원전 6천년에서 기원전 3천년 사이 신석기 중기에 제 2 차 기술 혁명이 일어났다. 그고 한다. 전쟁과 제 2 차 사회적 산이 많은 자와 적은 자,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자와 그들을 위해 일하는 자로 나누어 진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성별 분업도 당연히 재편되어 여성은 가사 노동을 전담하게 되었다. 이는 여성이 채집이나 농경을 담당하던 제 1 차 분업과는 달리 여성의 지위를 약화시켰다.농업과 전쟁에서 남성이 담당하는 역할이 커지게 되자, 이전까지 여성의 소유물로 생각되던 토지와 가구, 생산물은 남성의 소유로 바뀌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수천년 간에 걸친 변화이다. 이리하여 많은 생산물을 갖게 된 남자들은 차츰 재산을 자기의 자식에게 상속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다.당시 모계 사회에서는 남자는 자기 자식을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또 알 수 있다 해도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아이에 대한 권리가 없기 때문에 모계사회에 불만을 갖게 되고 사회는 차차 부계 중심으로 바뀌어 간다. 당연히 혼인 제도도 바뀌게 되는데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가는 데릴사위 혼에서 여자를 데려오는 식으로 바뀌어진다. 따라서 한쌍의 남녀가 결혼하여 그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들을 자기들의 자식으로 삼는 가족 제도로 변하게 되었다.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아버지의 혈통이 확실한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한다는 목적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여자에게는 철저한 정절이 요구되나 남자는 별로 그런 구애를 받지 않으며 오히려 여자 노예나 부인을 여럿 거느리는 것이 부와 권력의 상징인 듯 생각되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여성의 외도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죄악이나 남성의 외도는 훨씬 너그럽게 여겨지고 있다.어쨌든 이렇게 모계제에 기초한 공동체는 붕괴되고 남성 중심의 부계 사회가 확립된다.정리해 보면 생산 노동에서 여성이 부차적인 위치에 놓이고 이로 인해 재산 소유에서 권한이 없어 되자 여성은 가족내에서도 남성에게 종속되었다. 남성은 사유 재산에 기초해서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자기 자식에게 상속시키기 위해 기존의 모계 사회를 뒤집고 부계제를 확립했다여왕이 있을 정도이니 여성의 지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를 이은 고려 사회도 여성에게 매우 관대한 사회였다. 우선 남. 녀 자식에게 모두 균등하게 유산을 물려주었고, 또한 남녀간의 사랑이 자유로웠다. 왕실에서조차 재혼이 가능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남녀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랴. 그러나 고려 말,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우리는 점점 여성 억압적인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먼저, 원의 침입으로 여성들은 원에 붙잡혀가고 남성들이 전쟁에 나간 사이에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게 된다. 이로 인해 남성들은 여성들을 통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것이 성리학이 아닐까 싶다. 사회 교체세력은 시민들을 하나로 모으고, 이끌 새로운 종교를 필요로 했고,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도 맞물려 사람들에게 (특히, 남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을 것이다. 이러한 성리학의 보급으로 인해 여성들의 지위에는 또 한번 커다란 변화가 생겨난다.성리학은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상 체계였다. 이는 곧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나타났다. 조선시대 여성의 지위를 억압했던 것은 '남존여비(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비천하다)'와 '삼종(三從)의 도(여렸을 때는 아비를 따르고 출가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른다)'라는 악습이었다. "아들을 낳으면 상위에 누이고 구슬을 준다. 그러나 딸을 낳으면 상 아래 누이고 실패를 준다"는 말처럼 태어날 때부터 아들과 딸은 서로 다르게 길들여진다. 출생부터 귀천이 갈라지고 차별대우가 시작된다. 그러니 "딸을 낳으면 지나가는 새우젓 장수도 섭섭해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래도 딸이 부모 밑에서 자랄 때는 괜찮은 편이다. 여자로 태어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때는 출가한 다음이다. 이른바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해서 여자는 항상 말없이 남편을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남편을 손님처럼 받들고 '소금섬을 지고 물로 끌라'해도 남편의 말은 복종해야 한다. 남자들은 수탉같이 여러 명이다.
동양사상 입문 레포트과목명 : 동양사상입문담당교수명 : 송항룡 교수님학번 : 2003313992이름 : 김태현학번 : 2003313992 이름 : 김태현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는 시간이 무척 빨리 가는 것 같다고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거나 내키지 않는 일을 할 때에는 시간이 무척 더디게 가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이런 일을 누구나 다 겪는 일일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난 운동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책 읽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만약 같은 한시간 동안 한번은 운동을 하고 한번은 책을 한시간 동안 읽는다면 운동을 하는 한시간은 매우 빨리 지나갈 것이고 책을 읽는 한시간은 매우 느리게 갈 것이다. 이것은 바로 시간이라는 것은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상을 파악하는 자신의 의식현상에 의해서 인식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물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물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데서 시간과 공간 개념이 생겨난다. 시간과 공간이 있고 나서 존재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를 규정하고자 하는데서 시간과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는 존재문제에 있어서 존재형식으로부터 존재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이 존재에 선재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은 있는 것이 아니고 있는 것은 오직 물상만이 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단지 물상을 나타내기 위한 형식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존재하는 물상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일 뿐인 시간에 쫓겨서 살고 있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에 세뇌되어 정해진 시계의 자판위에 그어져 있는 눈금에 따라서 시간을 읽는다. 시계의 눈금은 일정하게 그어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일정하게 인식하고 있다.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 하지만 어떻게 시간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하게 느껴질 수 있단 말인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하루는 매우 빨리 흘러가지만 싫은 사람과 같이 하는 시간은 매우 더디게 갈 것이다. 이렇듯이 시간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공간도 이와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개념이다. 어릴때는 그렇게나 넓어보이던 학교 운동장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들어와서 다시 한번 보니 그만큼 좁아보이는 이유는 왜 일까? 그것은 공간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에 100세 사는 것은 옛날의 50세보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은 옳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은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해서 편한 생활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만약 100세를 사는 사람이 매일 일에 찌들리고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았다면 시간이 너무 늦게 흘러가고 재미없는 삶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옛날의 50세를 사는 것이 비록 외관상 시간으로 보기에는 짧아 보이지만 그 50년을 온통 즐거운 일들과 함께 살았다면 결코 짧은 삶이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