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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행정학의 발달과정 평가A좋아요
    제 2 장 행정학의 발달과정第1節 古典理論*배경19c말 20c초의 세계는 제국주의 전쟁과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에너지를 효율화 하지 못하고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주요관심이 에너지와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조직체제와 절차 그리고 합리적인 관리기술의 개발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여망에 부응하여 19세기 후반에서 1920년대까지 발달한 이론이 고전이론이다.1. 과학적 관리론가. Taylor의 과학적 관리론과학적 관리론의 기본신념은 인간을 효율적인 기계와 같이 프로그램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관리운동이 창시자는 Taylor였다. 그는 작업과정을 분석하여 과학화하면 능률과 생산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믿고 시간연구(time study)와 동작연구(motion study)등을 통해 체계적인 공장관리론을 발전시킴으로써 과학적 관리론의 기초를 세우고 체계화 하였다.? 초대의 1일 작업량 : 모든 노동자에게 명확하게 규정한 최대의 1일 작업량을 정해 주어야 한다.? 표준화된 조건 : 노동자들이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작업조건과 도구를 표준화해 주어야한다.? 성공에 대한 높은 보상 : 노동자들이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경우에는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실패에 대한 책임 : 노동자가 과업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손해를 감수하도록 해야 한다.? 과업의 전문화 :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과업은 일류 노동자만이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어려운 것이어야 한다.이러한 과학적 관리론은 조직과 이간관리의 과학화를 주창함으로써 능률을 극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생산과정에서 인간을 단순히 기계적?합리적?비인간적 도구로 취급함으로써 오히려 자발적인 생산성을 저하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나. 과학적 관리론과 교육행정학20세기 초 모든 분야와 영역에서 경영관리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기술과 원리로 과학적 관리론이 확산되었다. 따라서 교육의 영역에서도 학교의 비효율과 낭비를 제거하고 관리의 효율을 극대화하기위해 에 가장 크게 기여한 학자들이다. POSDCoRB라는 약어로 표현되는 행정과정을 제시하였다. 이 POSDCoRB는 Gulick 등이 Fayol의 행정관리 5요소를 확장?발전시킨 것이다.기획(planning)조직의 목적을 당성하기 위해 행동의 대상과 방법을 개괄적으로 확정하는 일조직(organizing)공동의 목적을 당성하기 위해 공식적 권한구조를 설정하고 직무 내용을 배분?규정하는 일인사배치(staffing)설정도니 구조와 직위에 적격한 직원을 채용?배치하고 작업에 적합한 근무조건을 유지해 주는 일지휘(directing)조직의 장이 의사결정을 하고 그것을 각 부서에 대한 명령과 지시 등의 형태로 구체화하는 일조정(coordinating)각 부서별 업무수행의 관계를 상호 관련시키고 원만하게 통합?조절하는 일보고(reporting)작업 진척 상황에 대한 기록, 조사, 연구, 감독 당을 통해 조직의 장이 자신과 하위 직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일예산편성(budgeting)조직의 목표 달성에 소요되는 제반 예산을 편성하고 회계, 재정통제, 결산 등을 하는 일Gulick 과 Urwick은 행정관리론을 조직이론으로 발전시켜 조직에서의 인간관리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명령 통일과 통솔 범위의 제한, 막료조직의 활용, 권한과 책임의 위임 등의 필요성을 제시하여 행정이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다. 행정관리론과 교육행정학행정학자행정과정의 요소Fayol(1916)계획조직명령조정통제Gulick & Urwick(1937)계획조직인사지시조정보고예산Newman(1950)계획조직배치지시통제Sears(1950)계획조직지시조정평가AASA(1955)계획배치자극조정평가Gregg(1957)결정계획조직전달영향조정평가Campbell, et al.(1958)결정계획자극조정평가Newman & Sumner(1961)계획조직선도측정/통제Johnson, et al.(1967)계획조직전달통제위의 학자들의 견해는 행정가의 과업을 체계적으로 분류해주는 유형론에 불과하고 그 자체가 이론이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교 전문화와 분업의 체제를 갖추고 있다. 즉, 초?중등학교의 분리, 교과지도와 생활지도활동의 구분, 수업과 행정의 분리 등은 학교의 전문화 요구에 따른 것이다.? 학교조직은 인화단결을 자주 내세우지만 조직관계에서 보면 몰인정성의 원리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학교조직은 기구표 내지 직제표상 명확하고도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는 권위의 위계를 가지고 있다.? 학교조직은 조직 구성원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과업수행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하여 규칙과 규정을 제정?활용한다.?교사들은 전문적 능력에 기초해서 채용되며, 대부분의 경우 전문적 경력으로 이어진다. 승진은 연공서열과 업적에 의해 결정되고 경력에 따라 일정한 급여를 받는다.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전문가로서 교육에 대한 자유재량권과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행정가의 일사불란한 통제가 어렵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몰인정적 이라기보다는 인간적으로 맺어져 있다. 따라서 학교는 관료적 특징과 전문적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第2節 人間關係論*배경과학적 관리론은 인간을 합리적 경제인으로 설정하고 가들의 행동은 경제적?물질적 동기에 의해서만 촉발되는 것으로 전제하였다. 기계적 효율성만을 강조하여 인간의 사회적 ? 정서적 ? 심리적 측면을 무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민주적으로 방향을 점차 변화되고 노동자들의 교육 정도와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노동자들은 당당한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요구하게 되었다. 결국 인간을 기계시하는 경영철학은 한계를 나타내었고 새로운 인간관계론적 접근이 요청되었다.1. Mayo와 Roethlisberger의 호손실험실험의 주된 목적은 조직 내의 인간적 요인에 의해 생산성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밝히는데 있다.가. Hawthorne 실험의 주요내용1) 조명실험작업현장의 조도와 노동자의 작업능률과의 관계를 분석하기 우한 실험으로서 작업장의 조도를 높으면 작업능률도 올라갈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하는데 목적이 있다.? 1단계 : 3개 부서의 조도 수준을 일정 간격으로 높이면서 생을 건반배선 작업 관찰실에 배치하고 1명의 조사원을 함께 배치하여 작업행동을 관찰하였다. 이 실험은 전화계전기 조립실험과 매우 유사하지만 14명의 남자노동자들의 감정, 태도, 상호관계 등이 아무런 인위적 조작 없이 관찰?분석되었다는 점이 다르다.이 실험의 결과는 생산성이 직공들의 능력과 기술보다는 비공식조직에서 정해 놓은 비공식적 작업표준량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었다. 14명의 직공들은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상호 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2개의 비공식 집단을 형성하였다. 비공식 집단에서는 집단을 유지시키는 비공식적인 규범이 나타났으며, 그 규범이 구성원의 행동을 규제하고 집단을 통제시키는 기능을 수해한다. 즉, 그들은 높은 생산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비공식적으로 자기들이 낮게 정해 놓은 생산수준을 일관되게 유지하였다. 성과급제도의 시행으로 생산량이 많으면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생산량을 높이려 하지 않았다. 이는 구성원의 행동이 경제적 유인체제보다는 비공식적 집단규범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나. 호손실험의 의의와 비판? 경제적 요인만이 중요한 동기유발 요인은 아니다. 비경제적인사회적 요인도 경제적 유인의 효과를 제한하고 감소시킨다.? 노동자들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비공식 집단의 일원으로서 경영자에게 반응한다.? 생산수준은 개인의 능력보다는 비공식조직의 사회규범에 더 영향을 받는다.? 조직을 분업화된 전문적 집단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작업집단을 만드는 방식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경영자의 자의적인 결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비공식조식을 활용한다.? 비공식적 조직과 경영자는 서로 영향을 미친다.? 통솔범위를 좁히는 것이 효과적인 감독의 전제조건은 아니다.? 비공식조직의 지도자도 공식적 지도자만큼 중요하다.? 개인은 기계의 톱니바퀴와 같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인간이다.? 경영자와 노동자간의 갈등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추상적이고 사소한 문제들에 치중하여 조직운영과 관련된 주요 문를 확대?발전시켰다. 그리고 조직의 유인과 구성원의 기여가 조화를 이루는 조직 균형에 관한 개념을 정립하였다.특히 그는 인간형을 의사결정 과정에서 최적의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economic man)과, 만족스러운 범위 내에서 제한된 합리성을 추구하는 행정적 이간(administrative man)으로 구분하고, 보다 객관적이고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제한된 합리성ㅇ르 토대로 결정하는 행정적 인간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경영의 입장에서 볼 때 최대의 이익을 찾기보다는 현실적인 적절한 이익을 찾는 것으로, 고전주의 경제학이론의 이상형인 경제인 대신에 행정인을 새로운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2. 행동과학론과 교육행정학가. 이론화 운동이론화 운동은 실제적 처방 중심의 교육행정학을 다른 사회과학처럼 이론 중심의 학문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교육행정 연구에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고 현장 중심의 사실 그대로의 관찰을 통해 교육행정이론개발을 모색하였다.① 교육행정을 연구하는 데 이론이 역할이 중요함을 인정하고 이론에 근거한 가설 연역적 연방법을 통해 교육행정을 연구해야한다.② 교육행정을 일반행정이나 기업경영 등과 다르게 보는 편협한 관점을 버리고, 행정 앞의 형용사와형용사와는 관계없이 행정은 행정 자체로서 연구되어야 한다.③ 교육은 사호체제로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는 것이므로 교육행정 연구는 행동과학적인 접근방법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나. 교육행정이론의 발달이론화 운동은 사회과학적 접근을 활용한 수많은 연구들을 촉발시키고 그를 통해 유용한 교육행정이론들을 산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교육행정 협동프로그램을 통해 저명한 사회학자, 심리학자, 행정학자들이 교육행정을 연구하게 되어 교육행정학은 모든 영역에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교육행정이론의 발전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경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① 교육체제를 하나의 사회체제로 파악하고 체제론적 관점에서 교육행 한다.
    교육학| 2004.10.19| 14페이지| 1,000원| 조회(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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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뉴스와 논평 (2004)
    < 2004년 일본 뉴스 >과 목 명 :담당교수 :학 번 :이 름 :제 출 일 :-2004년 5월까지의 일본 뉴스를 일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로 나누어 분류를 해 보았다.(1) 정 치< 日국민 53% '평화헌법' 개정 찬성 >[동아일보2004-05-02 18:47]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패전 이후 제정된 현행 헌법의 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세기 이상 지속된 '개헌 금기(禁忌)'가 깨지면서 일본 정계의 헌법 개정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53%가 '헌법 바꿀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조사에서 개헌 찬성 여론이 반수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역대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개헌 찬성 의견은 80년대 중반만 해도 30%에 못 미쳤지만 97년 처음으로 찬성(46%)이 반대(39%)를 앞지른 뒤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4월 초 요미우리신문의 조사에서는 개헌 찬성론이 65%인 반면 반대론은 23%에 불과했다. 81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찬성은 최고치, 반대는 최저치였다. 단 헌법 9조에 대해서는 '바꾸지 않는 게 좋다'는 응답이 60%로 여전히 많았지만 ' 바꾸는 게 좋다'는 비율도 31%로 3년 전(17%)보다 높아졌다.한술 더 떠 자민당 일각에선 징병제 부활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국방 의무' 조항까지 신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집권 자민당은 창당 50주년인 내년 11월까지 당 개헌안을 확정한다는 방침. 제1 야당인 민주당은 '시대 변화에 맞춰 헌법을 새로 만들자'는 취지의 '창헌(創憲)' 개념을 들고 나왔다. 연립여당이지만 평화주의 색채가 짙은 공명당도 '가헌(加憲)론'으로 가세했다.쟁점은 전쟁 포기와 자위대 격상=개헌론자들은 "헌법이 만들어진 지 50년이 넘었는데도 무조건 바꿔선 안 된다는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도 개헌에 찬성한 이유로 '새로운 권리와 제도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 26%로 가장 많았다.-헌법 9조는 전쟁 포기를 규정한 1항과 전력(戰사결과처럼 위헌 논의보다 언제, 어떤 식으로 개헌할지를 더 고민하는 모습이다.물론 개헌여론이 높아지게 된 원인에는 9조에 연관되지 않고 시대적 요구에 따른 추가적인 가헌(加憲)에 관련한 여론이 기인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선 주권을 가진 국민이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 생각하지만, 우익세력이나 보수우파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면 더욱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히노마루, 기미가요처럼 아이러니한 것이 일본의 자위대이다. 헌법에 당연히 위배되는 사항이지만. 40년 넘게 유지해오다가, 이제는 개헌을 통해 정당화 시키려하고 있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일본의 자위대를 인정하되 보다 구체적인 법조항으로 어느 정도의 규제를 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일본도 엄연한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그들의 자유와 평화를 지킬 자위권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범위가 중요할 것이다.과거 일본이 군국주의에 빠져 아시아를 지킨다는 나름대로의 자위권 해석으로 아시아는 큰 전란에 빠져야만 했다. 그러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주변국들은 더욱 경계하고 주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같이 정보와 지식이 개방된 사회에서 과거와 같은 파시즘체제가 부활하기란 힘들겠지만, 일본사회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편히 있을 수만은 없다. 한국의 정부 또한 과거사를 거울삼아 앞으로 일본의 영향력 증대에 따른 파급효과와 유사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앞으로 일본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선진, 경제대국으로서 진정한 아시아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선택을 바랄뿐이다.(2) 경 제< PDP 기술특허 10건 침해 >삼성 "한국업체 견제 목적"일본 후지쓰가 PDP의 기본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삼성SDI를 미국과 일본 법원에 제소했다고 이 7일 보도했다.세계 최대 PDP 업체인 '후지쓰 히타치 디스플레이'를 합작설립한 후지쓰는 도쿄 지방법원과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지법에 삼성 관련 회사들을 상대로 삼성SDI PDP의 수입·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후지쓰는 삼성G는 일본 대기업 못지않은 부스를 가지고 일본기업들과 경쟁을 했는데, 제품 또한 박람회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90년대까지만해도 한국의 기업들은 일본제품 다음정도로 취급받는 2, 3류의 제품이었다. 1류 제품으로 세계시장에서 우의를 점한 일본기업들은 틈을 보이지 않을 만큼 1류 제품을 만든다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바뀐 21C에 한국기업에도 기회는 있었다. 아낌없는 투자와 노력으로 이제 일본의 일류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보다 우위를 점하는 분야도 생겨나고 있다. 물론 기술력부족이었던 한국기업에 일본이나 미국의 선진 기술이 밑바탕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세계의 초우량 기업들을 이기고 선전하고 있다는데 대해서 한국인의 한명으로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요지에서 조금 벗어난듯하여 각설하고,일본기업들은 그만큼 한국의 도전에 긴장하고 있다. 위 기사의 PDP사건 또한 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부사정이야 알 수는 없지만, 한국기업의 연구개발 성과와 그에 따른 시장점유율 증가로 일본 기업, 정부는 긴장하고 있다. 또 이례적으로 일본 정부는 이번 제소를 통해 삼성의 PDP의 통관을 금지시키는 발 빠른 조치를 취하기까지 했다.(보통은 제소되어도 통관금지까지는 하지 않는 게 관례이다.)오랜 장기 침체와 불황으로 힘들어하는 일본에게 그들의 주 수입원이었던 전자관련 산업까지 외국기업에게 밀려나고 있어 일본은 지금 위기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앞으로의 양상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소리 없는 전쟁에 비유될 만큼 큰 지각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1류의 자리는 그만큼 지켜내기 힘든 것이다.(3) 사 회< 車결함 은폐 '日 미쓰비시푸조' 前회장 체포 >[동아일보2004-05-07 19:07]일본 미쓰비시그룹의 상용차(버스 트럭) 계열사인 미쓰비시 푸조의 전 회장 등 간부들이 차량 결함으로 일가족 3명이 사상(死傷)한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이들은 사고 원인이 차체서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33건이나 발생한 점을 들어 "차량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했을 때 곧바로 조치를 취했다면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며 '사실상의 살인행위'라고 비판했다.4월 중 미쓰비시 자동차의 일본 내 판매대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줄었고 딜러들의 이탈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경영악화에 이어 '차량결함 은폐'라는 악재까지 터지면서 미쓰비시차는 회사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미쓰비시는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이다.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부터 일본의 근대사를 이끌어온 전통 있는 거대 기업이다. 유명계열사로는 미쓰비시 중공업, 은행, 상사, 자동차 등이 있고, 2차 세계대전에서 유명한 제로센 전투기나 야마토 전함을 만든 곳도 이 미쓰비시 기업이다. 이런 일본의 전통기업이 왜 일본인의 외면을 받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국민을 기만한 ‘도덕적 해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전통적으로 화(和)를 중시해온 일본의 국민정서에 큰 충격을 줄만한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미스비씨 수뇌부는 즉각적인 뒷수습을 했지만, 이미 일본국민의 분노를 피할 길은 없었다.미쓰비시 자동차는 70년대 그룹에서 분리된 회사로 자동차를 만든 지는 90년이나 될 정도로 전통인는 회사였다. 현대자동차의 모태가 될 정도로 초기 현대자동차에 많은 기술을 전수한 기업으로 한국에는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누적된 판매부진과,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증자참여 거부로 인해 기업의 존폐 위기에 설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도덕적 책임을 회피한 사건은 국민의 외면까지 받는 기업의 큰 위기까지 불렀다.이 사건은 기업윤리와 리더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또한 부도덕한 기업은 국민의 질타와 외면을 받게 돼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큰 교훈을 안겨주었다.(4) 문 화< 日 열도 배용준에 '열광' >[문화일보2004-04-05 11:37] 노성열기자nosr@'용상(樣)'이란 애칭 이어 매주 토요일 밤 11시에 총 20회가 방송될 예정이다.< 아무로 나미에 첫 내한공연 >[스포츠조선 2004-5-16]'아무로 나미에 쇼크'가 한국 연예계를 강타했다.지난 13,14일 첫 단독 내한공연에 이어 15일 한국 가수 비와 합동 콘서트를 가진 일본의 최고 여가수 아무로 나미에(27)는 탁월한 가창력과 스테이지 매너로 한국 가요계에 적잖은 반향을 미쳤다. 많은 연예인들과 함께 가요계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한 방송사 PD는 "아무로 자신의 능력은 물론이고 백밴드의 연주력이나 무대의 구성 등 모든 면에서 일본 대중음악의 높은 수준을 보여줬다"며 "아무로를 음정도 못 맞추는 한국의 아이들 스타들과 동격으로 취급하던 한국 연예계의 반성을 촉구하는 공연"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한편 일본 언론은 비와의 15일 공연을 한ㆍ일 양국 가요계의 정상이 만난 '서미트 콘서트'라는 표현을 쓰며 대서특필, 일본 음악계에서 아무로가 갖는 위치를 확인시켜줬다.일본 호치신문과 산케이 스포츠 등 주요 스포츠지들은 일제히 "아무로가 서울에서 3회 콘서트를 통해 2만5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큰 성공을 거뒀다"며 "아무로가 '네버 엔드'의 마지막 가사를 한글로 노래해 한국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2004년 1월 1일 일본문화 4차 개방으로 영화, 음반, 비디오, 게임에 이어 일본 방송이 전면 개방되었다. 2006년 마지막으로 개방될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전 분야의 일본대중문화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물론 몇몇 분야의 제외된 항목들은 있다) 초기 일본대중문화 개방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계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해 적잖은 우려를 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생각보다 문화적인 충격은 적었다. 오히려 한국의 드라마, 영화가 일본에서 선전함으로써 일본 대중문화 관계자들을 긴장케 했다.분명 일본은 애니메이션, 게임 등 세계 1위를 자랑할 만한 문화 컨텐츠들을 몇몇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국내 시장 또한 한국시장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세계적인 규모의 큰 시장과 거대 자금을 형성하고.
    인문/어학| 2004.06.12| 7페이지| 1,000원| 조회(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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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근대사] 조선인 도고 시게노리
    < 평화를 외쳤던 세계인 도고 시게노리 >과 목 명 :담당교수 :학 과 :학 번 :이 름 :제 출 일 :-도고 시게노리를 만나다얼마 전 신문에서 ‘이등박문’에 관한 책 광고를 보게 되었다. 이토의 생애와 정치역정 등을 메이지 유신 이후 이토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술한 책이었다. 일본근대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 과제로 이등박문을 조사해보고자 결정을 하고 서점에 들르게 되었다. 하지만 인기 있는 신간 이어서였는지 책은 품절되고 없었다. 그래서 근대사 관련 책들을 무심히 이것저것 보다가 눈에 띈 책이 도고 시게노리에 관련한 책이었다.제목이 ‘일본의 역사를 바꾼 조선인’ 그 제목은 나의 눈을 한 번에 잡아끌었다. 조선인으로서의 그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기에 일본의 역사를 바꿨단 말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책이란 것이 상업적 목적으로 출판사에서 조금은 과장된 표현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호기심과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이등박문 같이 일본근대사에 있어서 굵직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도고 또한 일본근대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을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 같은 생각에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방송PD 출신으로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중 못 다한 이야기를 부연하기 위해 책으로 출판했다고 한다. 전문작가가 아니어서 문장력이 그리 매끄럽진 못했지만 잘못된 역사의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려 했던 작가의 열정적 모습은 글에서 잘 표현이 되었다.기술방식은 책을 주로 참고하여 도고의 행적을 따라 시대적 세계정세의 흐름을 짚어가는 식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도고의 뿌리와 성장과정먼저 도고의 출생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다. 도고의 선조들은 정유재란을 통해 일본으로 강제 이주된 조선도공들이었다. 이들은 나에시로가와 (현 미야마)에 정착했고, 그 곳에서 사츠마 번주의 보호와 철저한 격리 속에서 조선의 습속과 이름 등을 그대로 쓰며, 도자기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러한 정책에 인해서 조선도공들은 1800년대 후반까지도 그들만의 세는 매우 어지러웠으며, 1차대전과 2차대전이라는 큰 전쟁과 군국주의에 빠져 아시아를 삼키려했던 일본의 야심으로 평탄치 않은 외교업무를 해야만 했다.외교관으로서 그의 첫 부임지는 중국의 만주였다. 일본이 만주경영을 막 시작한 시점으로 그 당시 중국을 둘러싼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할 때였다. 그가 비록 평화와 조화를 이상으로 삼았지만, 시대의 물결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제국주의자들과는 뭔가 다른 평화적 방법을 간구했다. 그가 부임한지 얼마 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일본은 이를 틈타 독일의 조차지 산동성과 청도를 점거한다. 일본의 강압적인 21조 요구는 결국 중국인의 반일 감정을 부추겼고, 반일운동의 시발점이 된다.도고는 이때 신설 발령지인 스위스로 가게 된다. 스위스는 중립국이라는 이점과 독일, 오스트리아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를 하는 스위스를 감명 깊게 보았다. 그가 두고두고 마음속에 묻어둔 이상향의 나라였다.1차대전이 종결 되고 독일에 대한 연합국의 전쟁피해 보상 파리강화회의가 열렸는데 이때 도고가 우연한 기회로 일본의 외교팀으로 합세하게 된다. 도고는 중국에 대한 21개조 요구에서 인종평등문제를 집중 요구하지만 무시당하고 그는 국가 정책에 대해 크게 실망하게 된다. 파리강화조약에도 불만을 가졌는데, 독일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연합국을 비판했다. 결국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병합하고 식민지화 시키는 등 연합국 모두가 전쟁의 장본인으로 보았다. 이후 독일에게 내려진 엄중한 처벌은 나치즘의 발생 원인이 되었다.독일이란 나라는 그에게 있어서 특별한 나라였다. 독일문학을 전공했고 그를 통해 세계에 눈뜨게 한 나라가 독일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입국을 명령받은 도고는 그 곳에서 그의 생의 반려자인 에디를 만나게 된다. 자식을 다섯이나 둔 미망인이란 것과 당시의 통념으로써는 힘들었던 서양인과의 국제결혼이란 난관이 있었지만 도고의 끈질긴 신념으로 부모님을 결국 설득하게 되고, 결맹렬히 비판했으며, 정부의 반성을 촉구하는 발언을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이후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하는데, 몇몇 강경론자들의 외교활동과 군부의 독자적 움직임으로 일본은 큰 곤경에 빠질 것이고 미국과의 전쟁 가능성도 예견했다.도고는 1933년부터 4년 반을 외무성의 국장으로 재직했다. 중요 사안으로는 북만철도 매입, 런던 해군군축 회의 문제, 독일과의 방공협정 등이었다. 이중 독일과의 방공협정은 도고가 반대한 사안임에도 체결이 되었다. 히틀러의 나치집단을 일본에 득이 되지 않을뿐더러 세계평화를 파괴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 그는 생각했지만, 국제연맹탈퇴로 외교적 고립상태에 있던 일본은 독일의 협력 제안이 반가웠을 것이다.외무성 국장직을 마치고 독일의 대사 임명을 받게 된다. 독일은 그가 좋아했던 나라지이만 그곳에서의 대사 생활은 도고에게 치욕을 남긴다. 독일 방공협정을 반대했던 그를 독일이 좋아했을 리가 없었고, 독일과 긴밀한 관계유지를 원했던 정부에게도 그는 걸림돌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도고는 경질되고 소련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대소 외교의 달인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소련외교에 전문가였던 그는 소련에서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는데, 부임한 시기에 양국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있었다.일독 방공협정 체결로 인한 소련의 배신감과, 군부(관동군)의 독자적 노선으로 인한 노몬한 사건(소련군과의 충돌)이 발단이었다. 일소의 관계 개선을 위해 도고는 소련 측 외상과의 교섭을 통해 사태를 무마시키려 노력한다. 소련의 몰로토프 외상과 도고는 소신에 있어서는 유사점을 발견하고, 협상 테이블을 통해서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키워나갔다.그러던 중 나치의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세계는 전란에 휩싸이게 된다. 그 당시 소련의 입장이 전세에 있어서 매우 중요했는데, 독일과 연합군은 소련 영입외교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과거 독소간의 분쟁으로 소련 측의 동맹을 자신했던 연합군은 독일의 발 빠른 외교에 뒷통수를 맞게 된다. 독소간 불가침 조약이 체결된 것이다. 대해 미국의 분노를 샀고,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 동맹 역시 도고의 예견대로 금이 가고 있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난세였다. 미국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어, 내각이 사퇴하는 결과가 이어졌고, 새로운 내각의 외상 또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는 어떤 힘도 쓰지 못했다.미국의 강경한 개전 입장에 일본은 난처한 상황이었다. 이에 도고를 외상으로 첫 취임 그에게 미국과의 교섭을 부탁한다. 이 당시 도고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외상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의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내각의 외상이 된 그는 가족은 물론 고향마을 사람들에게 매우 자랑거리가 되었다. 조선인이라는 차별 속에서도 그는 굳건히 자기를 갈고 닦으며, 노력하여 결국 일본의 외상자리에까지 올랐다. 나에시로가와의 조선인들에게 있어선 이 날의 감격과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을 것이다.도고는 외상직 취임과 동시에 곧바로 미국과의 교섭에 몰두했다. 그동안의 교섭내용을 검토한 도고는 매우 악화된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미국과의 교섭을 하나하나 풀어나 갔다. 그에게 있어서 교섭의 대상은 비단 미국만이 아니었다. 국내의 강경파들은 그의 의지대로 풀어가기엔 너무나 큰 산이었다. 주로 중국에 주둔한 일본군 철수 문제가 화두였는데, 도고는 일본을 위해서 철병을 주장한다. 하지만 군부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즉각 개전을 요구했고, 회의는 난항을 거듭했다. 결국 도고는 사퇴까지 결심하게 되지만, 주위의 만류로 외상직에 머무르게 된다. 그 마저 포기한다면 일본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역시 마지막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때 나온 것이 ‘헐 노트’이다. 헐 노트는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 헐의 제안서였는데, 여기에는 일본 측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강경한 요구 조건으로 미국 측의 미일교섭의지가 없음을, 일본 측에게는 사실상 개전의 의미로 받 종전을 위해 노력했다. 일본이 유리한 입장일 때 평화적으로 종전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군부에겐 도고의 의견은 용납될 수 없는 반역이었다. 군부와의 계속되는 마찰과 도죠 수상과의 대동아공영권을 둘러싼 대립 등은도고를 더 이상 외상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게 했다. 그동안의 외교활동으로 몸도 많이 쇄약해진 상태라 도고는 사임을 결심하고 결국 물러나게 된다.-일본을 구하기 위한 외상 재취임도고가 떠나고 2년이 넘는 사이 유럽에서는 동맹 국가였던 이탈리아가 항복한 상태였고, 독일 또한 패전 직전이었다. 일본의 전세 또한 악화되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런 소식들은 일본을 더욱 힘들어하게 했다.일본의 군대는 점점 밀리기 시작하여 이제는 본토에서의 항쟁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연합국 측의 움직임은 1943년 루즈벨트, 처칠, 장개석은 카이로회담을 열고 종전 후의 아시아 개편문제를 논의했고, 1945년에는 미, 영, 프, 소의 얄타회담으로 독일의 전후처리와 소련의 대일 전쟁에 참가를 결정하게 되어 일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되었다.고향에서 쉬고 있던 그에게 정부는 다시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한다. 종전외교의 전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수상은 해군대장 출신의 스즈키였는데 도고를 신임하여 그의 입지를 넓혀 주었다. 도고는 열세에 놓인 일본을 구하는 길은 소련과의 협상이라고 생각했다. 소련과는 아직 중립조약이 체결된 상태라 소련을 이용한다면 영국과 미국에 어느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무조건적인 항복, 불평등 조약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전세가 더욱 불리해지기 전에 외교적으로 일본의 이익을 챙기고자 한 것이다. 한편 당시의 유럽에선 히틀러의 자살로 전쟁이 종결되었고 이에 소련은 동부전선으로 병력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읽은 도고는 상당한 정도의 대가를 소련 측에 제시하며 재협상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제동을 건 것은 군부였다. 강경파 군부에서는 아직 일본은 전쟁수행 능력이 우수하여, 본토에서의 전쟁 시 했다.
    사회과학| 2004.06.12| 7페이지| 1,000원| 조회(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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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책학] 호스피스제도의 실태및 개선방안 평가B괜찮아요
    Ⅰ. 序論“호스피스” 나에게 있어 좀 생소한 단어이다. 호스피스를 처음 듣게 된건 몇달전뉴스에서 였다.[뉴스 9]말기암 환자위한 호스피스 확산 절실[속보, 사회] 2003년 09월 26일 (금)⊙앵커: 오늘 심층취재에서는 임종을 눈 앞에 둔 말기 암환자와 그 가족들이 호소하고 있는 고통을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이 문제를 취재한 이영진 기자는 죽음을 앞둔 말기 암환자들이 마지막길을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이제는 호스피스 시설이 많이 확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기자 :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석 달째 입원중인 이 60대 환자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생명을 부지하고 있지만 회생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가족들은 집으로 옮기고 싶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습니다.⊙암환자 부인 : 말이라도 해보고 집에 가서 두어 달이라도 계시다 가셨으면 원이 없겠어요.⊙기자 : 같은 폐암말기지만 어떤 환자는 호스피스병동에서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생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정성스럽게 마사지를 해 주고 마음의 안정을 위해 성경도 읽어줍니다. 병원측은 가능성 없는 치료보다는 고통을 줄여주는 데 중점을 둡니다.⊙폐암 말기 환자 : 여기 오고 너무 마음이 편하고 좋았어요. 오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이 많이 (확대)됐으면 좋겠어요.⊙기자 : 가족들도 언제든 편히 환자를 볼 수 있어 만족합니다.⊙암 환자 동생 : 심리적인 안정과 고통없이 편안하게 가족들과 마지막을 지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기자 : 하지만 국내 호스피스 시설은 80여 군데뿐이어서 수용환자는 전체 말기 암환자의 2%인 1000여 명에 불과합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비용이 한 달에 2,300만 원이나 들지만 그래도 중환자실에서 계속 치료를 받는 것에 비하면 쌉니다.⊙중환자실 입원환자 가족 : 중환자실에 있으니까 비용이 만 만치 않아요. 지쳐서 못 살겠어요.⊙기자 : 실제 중환자실 등에서 치료를 받다 숨지는 환자는 전체 말기암사망자의 40%에 달하고 진료비를 사망 전 두 악해야 한다. 우리 나라 호스피스 프로그램과 운영현황 등을 고찰해보고 앞으로의 호스피스 프로그램에 대한 정책방향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Ⅱ. 本論1. 호스피스의 정의근래에 들어 말기 환자에 대한 진료, 즉 호스피스는 의료분야에서 하나의 독립된 형태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있다. 호스피스의 특징으로는 기존의 의학 및 의료시스템에서는 임종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반해 호스피스에서는 임종을 자연스런 삶의 한 과정으로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환자 개인의 존엄성을 고양하고 주어진 삶의 내용을 보다 충실히 하려고 노력함에 있다.호스피스는 죽음의 문제를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긍정하는 것이며 이것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가치관과 문화를 창출하게 된다. ‘고통과의 싸움’,‘비탄에 잠김’,‘수동적 안락사’등등이 죽음에 대한 현재의 개념이며 이러한 태도는 사회적 퇴행과 개인의 소외를 야기 시킬 수 있다.이와 같은 환자의 죽음과 관련된 인간화 문제에 대한 각성 이외에 전반적인 사회, 경제적 구조의 변화 역시 호스피스를 촉진케 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즉, 호스피스의 초기에는 환자를 중심으로 한 철학적, 종교적 가치관과 개념이 주가 되었으나 의료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현재에는 본래의 철학적 개념보다도 호스피스의 경제적 효율성에 더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현재의 호스피스 방향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게 일고 있다.호스피스 프로그램에는 수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를 정의하기가 힘들며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호스피스를 정의하고 있다.-‘말기 환자 및 그 가족에 대한 전인적 간호’ (Mount, 1983)-‘인위적으로 수명을 연장시키거나 단축시킴이 없이 자연스런 임종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 (Cohen,1979)-‘신체적, 영적 그리고 정신적 간호를 통하여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죽음을 인간답게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Franco,1979)-‘한계수명을 가진 환자에 대해 병원 진료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작은 자매 수녀회가 설립되어 말기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여 환자와 가족들을 돌보았으며 이것은 오늘날 Calvary Hospital(갈바리 의원)으로 발달되어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고 있다.또한 Irisn sisters charity의 수녀들은 1900년 런던으로 건너가 St. Joseph Hospice를 설립하였다.이는 곧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협력을 얻어 1922년에는 70개의 병상규모로 확대되었다. 20C초에는 결핵이 가장 큰 사인이었기 때문에 주로 결핵으로 죽어 가는 환자를 돌보았으나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가 증가함에 따라 현재에는 만성 질환자를 위한 독립병동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1967년 이르러 C. Saunders가 런던에 St. Christopher's Hospice를 설립함으로써 현대적 의미의 호스피스가 설립되었고 이것은 후에 미국과 캐나다의 호스피스의 모델이 되었다.이 호스피스에서는 초기의 호스피스에서 제공하였던 간호의 영적, 정서적 지원뿐만 아니라 말기 질환과 관련된 증상조절에 중점을 두고 있다.St. Christopher's Hospice에서는 가정간호가 주요 업무로 실시되고 있으며 특히 외래 팀은 다른 병원 및 보건 사업소와 합동으로 매주 목요일마다 정기적인 클리닉을 실시하고 있다. 병상은 62개이고 직원은 모두 400명, 이 가운데 240명은 의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목사 그리고 사무직원으로 구성되고 나머지 160명은 자원봉사자로 이들은 4주내지 6주의 교육과정을 거치며 교육기간 중 주 1회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을 통하여 그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현대사회의 영국의 호스피스는 원칙적으로 환자는 경비를 부담할 필요가 없다. 단지 증상이나 가족상황 등 객관적인 조건만으로도 입소를 할 것인가 아닌가의 판단을 하는 것이 영국 호스피스의 자랑이기도 하다.시설측에서는 정부의 보건서비스 부분으로부터의 보조금으로 많은 곳은 예산의 50%이며 평균적으로 30%정도 받고 있으며 모자라는 부분은 자신들이 모은 는 미국과 유사하며 호스피스가 도입된 초기에는 법적인 제도나 지원이 없어 재정상의 곤란을 겪고 있었으나 의학 및 간호교육에 호스피스를 포함시키고 일반인 정부 그리고 의료계 전반을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한 결과 1990년부터 호스피스 기관과 완화요법 센터가 정부의 인과와 함께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되었다. 호스피스 환자들에게 지급되는 개인별 1일 보험급여는 35,000엔이 지급되고 있다.또한 일본에 있어서도 호스피스 활동을 전개한 것은 기독교 관계자들이 있다. 1981년 말기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가 성예삼방병원(聖隸三方炳院)에서 시작하여 많은 병원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으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기독교 관계의 병원인 것이 현실이다.한편 1986년 10월 경도(京都)에서 경도불교청년회가 주최가 되어 ‘의료에 있어서의 불교의 필요성에 대하여’라는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지금의 불교는 대중과 함께 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가 하는 반성과 위기감이 심포지엄을 개최하게된 동기가 되었다.경도불교청년회는 1984년 약 20여개 종파의 60여명 젊은 승려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조직으로써 불교 본연의 자세를 찾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그리고 그 첫 단계로써 의료에의 협력을 내걸고 병원이나 양호(養護), 노인홈(질병을 가진 노인만을 위한 양로원과 일반 양로원으로 나뉘어져 있음) 등지에서 법회를 갖고 자원봉사를 실천하는 활동 등을 계속 하고 있다.현재 일본불교에서 가장 활발하게 호스피스 케어를 전개하고 있는 단체는 정토진종(淨土眞宗)의 「佛敎者 비하라(Vihra)」최초로 田官仁氏는 장강시(長岡市)의 서장강병원(西長岡病院)내에 1992년 「비하라병동」을 개원했다. 특히 불교자비하라회나 경도비하라회는 의료나 복지관계자들을 대상으로 (生老病死)의 불교관을 이해시키기 위해 불교교리 강좌를 개최하여 의료와 복지 그리고 종교의 통합을 꾀하고 있다.이렇게 의욕적인 불교인의 활동에 힘입어 다른 불교 종단도 호스피스 못하며 호스피스를 정식으로 인정하는 법이 없어 한 개인이 호스피스 기관을 설립하려해도 적용할 적절한 법규가 없는 실정이다. 호스피스는 통증을 포함한 말기 환자의 육체적 증상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동시에 환자가 가지는 영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신적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하므로 의학적 측면과 사회복지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따라서 이의 적절한 법적 뒷받침을 위해서는 의료적 측면은 의료법으로 사회복지적 측면은 사회복지법의 테두리에서 해결되는 것이 타당하고 어느 한쪽의 법만 가지고 양쪽 측면을 해결하기에는 적합치 않은 점이 있다.근자에 일부 호스피스 종사자들이 사회복지법으로 호스피스 관련법을 입법화하려던 시도는, 의사의 참여 없이도 신고만 하면 호스피스 설립이 가능하고 지방자치 단체의 재정 보조를 받으며 마약 처방과 사용방법이 현재의 체계와 다르게 구성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의사들의 참여가 없어 현실적인 호스피스의 인가가 불가능하고 활동이 어렵다는 이유로 호스피스 대상 환자들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는 데에 필수적인 의료적 측면을 소홀히 하고 호스피스 기관을 수용시설과 구분이 안되게 정의하는 등의 복지 시설화 하려는 의도가 엿보여, 이런 방법이 당장의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장차는 호스피스 전체에 큰 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심히 우려되는 바이며, 의사들의 무관심과 불참이 이러한 시도를 촉발한 측면이 없지 않음을 인정 할 수밖에 없겠다.또한 호스피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반 병동에 비하여 인적 자원이나 건물의 넓이 시설등이 많이 필요하여 의료 원가의 면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어 현행 의료보험 체계로는 그 것을 충당하기 어렵고 유럽의 국가들과 같이 기부금의 사회적 관행이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실정에서는 재정적 적자를 감수하지 않고서는 호스피스를 운영하기 어렵고 호스피스 수가가 별도로 책정되어야 하겠다.현실적으로 호스피스 개념이 없는 의료 시설에서 말기까지 환자의 증상 조절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검사를 시행하거나, 다.
    사회과학| 2003.12.14| 14페이지| 1,000원| 조회(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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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과정및 교육평가] 수행평가 개념 및 수행방안 평가A좋아요
    목 차교육과정 및 교육평가1. 수행평가의 개념- 수행평가의 정의- 수행평가도입의 필요성- 수행평가의 특징- 수행평가와 기존의 평가 방식 비교- 수행평가의 주요 유형2. 수행평가의 시행방안- 수행평가를 시행하기 위하여- 수행평가의 시행 절차- 수행평가의 긍정적 사례와 부정적 사례- 내가 생각하는 수행평가의 시행방안수행평가의 개념 및 시행방안21세기 사회는 정보화세계 또는 지식 기반의 사회라고 한다. 새로운 세기는 학습자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의 양보다는 지식을 수집하고 조직하고, 활용할 수 있는 학습자의 능력을 더욱 중요시 하게 되었다. 교육은 지식의 습득보다는 지식을 구성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의 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교육개혁의 방향도 ‘학습자 중심의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개발’을 강조하게 되었다. 교사는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전수자가 아니라 학생이 지식을 재구성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 또는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교육의 패러다임의 변화로 학습 관과 평가 관에도 변화를 일으키게 하였다. 학습관은 분절된 지식의 습득을 강조하는 행동주의에서 벗어나 구성주의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성주의에 의하면 학습관은 교사의 일방적인 교수(instruction)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경험하면서 이것들을 기존의 사고 틀에 받아들이거나 변화시켜나감으로써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가체제 역시 학습자가 얼마나 잘 지식을 재구성하고, 조직하고, 활용할 수 있느냐 하는 능력을 평가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하게 된 새로운 평가의 패러다임이 바로 수행평가(performance assessment)이다. 수행평가는 학습자의 참(authentic) 능력을 평가할 수 있으며, 학습과정을 이해할 수 있고, 고차적 사고능력을 평가하는데 적절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학교 현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시행될 것이 요다는 것이다. 또한 지식은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존의 평가 패러다임의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선택형 검사와 표준화 검사를 대표하던 과학적 패러다임 대신에 교육 성취를 평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상 논술형 수행평가를 위한 채점방법들의 비교 지은림, 2000)1) 21세기 지식 정보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하여 교육부 홍보용 자료, 1998- 미래 정보화 사회에서는 단편적 사실적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능력보다는 정보의 담색, 수집, 분석, 비판, 종합, 창출 능력, 자기 주도적인 평생 학습 능력, 효율적인 의사소통, 합동적 문제 해결 능력 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최근 세계의 교육 선진국들에서는 이런 능력을 타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수행평가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추세이다.2)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현재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비정상성은 ‘교육목표-교육방법-교육평가’ 간의 연계가 부족한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고등정신능력, 바람직한 태도 및 정서 함양 등 전인적 인간 양성을 교육목표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교육방법과 평가는 이러한 능력이나 품성 함양을 위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수행평가는 교육부가 ‘교육비전 2002 : 새 학교 문화 창조’실천 운동에서 지향하고 있는 학생평가 방식으로서, 전인적 인간 양성이라는 교육목표의 달성 여부를 평가하는 데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3) 수업과 평가의 긴밀한 연계를 도모하기 위하여- 학교의 교육목표는 구체적으로 교실 수업을 통해서 실현된다. 그리고 실제 교실 수업이 평가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따라서 교실 수업과 평가가 긴밀하게 연계되지 않으면 교육목표의 효과적인 달성은 불가능하다.- 전통적인 지필 식 검사는, 수업한 결과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수업과 연계된다. 그러나 수행 평가는 수업의 과정에서 교수-학습 활동과 평가 활동을 접목시키는데 가장 적절한 평가방법이다.4) 보다 의미 있는 평가 결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것으로서 선택형 지필평가 이외에 단답형, 완성형, 서술형, 논술형 등의 주관식 지필 평가를 포함한 다른 모든 방법으로 평가하는 방식을 정의할 수 있다.(단, 완성형과 단답형 문항이 단순 암기력만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면 수행평가에 해당되지 않는다)최근 여러 선진국에서 교육 개혁의 중요한 방법의 하나로 시행, 강조되고 있는 평가 방식으로서 그 의미가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어 하나의 문장으로 명확하게 정의하기가 어렵다. 이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문제나 특정의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체계적 시도로서 실제 또는 모의 상황에서 피평가자들이 나타내 보이는 반응들을 전문가인 평가자가 직접 관찰하고 판단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평가방식"(Stiggins and Bridgeford, 1992).- "피평가자들이 특정의 산출물을 만들어 내거나 구체적인 활동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능력을 직접적으로 나타내 보일 것을 강조하는 평가방식"(Haertel, 1992).- "피평가자의 반응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평가자의 관찰과 전문적인 판단을 특히 중시하는 평가 방식" (Mehrens, 1992).- 수행평가란 "학생들의 작품이나 활동을 직접 관찰하고, 관찰된 결과를 전문적(주관적)으로 판단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수행평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하면 "선택형 검사 이외의 다른 모든 방법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미국식 정의)수행평가의 특징1) 정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답을 작성(서술 혹은 구성)하거나 행동으로 나타내도록 한다.2) 교육 목표의 달성 여부를 가능한 한 실제 상황에서 파악하고자 한다.3) 교수 학습의 결가뿐만 아니라 과정도 함께 중시한다.4) 학생 개개인의 변하 발달 과정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전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강조한다.5) 집단에 대한 평가도 중시한다.6) 학생의 학습 과정을 진단하고 개별 학습을 촉진하려는 노력을 중시한다.7) 하여 그 결과(보고서)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동료 평가(peer-evaluation)란 동료 학생들이 상대방을 서로 평가 하도록 하여 그 결과(보고서)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9) 연구보고서법연구보고서법이란 각 교과별로나 통합교과적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 종합하여 연구 보고서를 작성 제출하도록 하여 평가하는 것이다.10) 포트폴리오(portfolio)법포트폴리오법은 피평가자 자신이 작성하거나 만든 작품을 지속적 체계적으로 모아둔 개인별 작품집 혹은 서류철을 이용한 평가 방법이다.2. 수행평가의 시행방안수행평가를 시행하기 위하여1) 수행평가에 대한 전문적 소양을 갖추도록 한다.- 현장의 교사가 수행평가에 대하여 전문적인 소양을 갖추고, 수행평가의 시행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에 수행평가는 학교 현장에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2) 수행평가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도록 한다.-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완전한 수준의 수행평가를 일시에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시행의 초기 단계에서는 선택형 지필검사와 병행하여 시행하는 등 가장 간단하며 시행이 가능한 수준에서부터 수행평가를 도입하도록 하고, 여건이 성숙되는 과정에 맞추어 수행평가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도록 한다.3) 평가목적에 가장 알맞은 평가 방식을 선택하도록 한다.- 선택형 지필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행평가의 교육적 가치가 높은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학교 현장에서 시행되고 있는 모든 평가방식을 수행평가 방식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평가에서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을 왜 평가하고자 하는가를 명확히 한 후 이러한 평가목적에 가장 적합한 평가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4) 평가의 신뢰도보다는 타당도를 더 중요시 하도록 한다.- 수행평가의 결과를 신뢰롭게 채점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는 수행평가 자체의 교육적 가치를 위협할 만큼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 채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도가 우한 문제는 덜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일단 긍정적인 사례를 들자면 2003년 11월 23일 한겨레신문에 난 기사를 들어 보겠다.“……중략……저는 교육을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는 좀 더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료를 수집하고, 학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수업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서비스가 있는 교육’은 학생을 교육의 중심에 두고 교사가 아이들에게 먼저 한 발 다가설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전남 목포 영흥고 임광찬 교사(국어)의 교육관은 좀 독특하다. 아이들 요구에 맞는 수업을 위해 교사들이 기꺼이 ‘서비스맨’이 돼야 한단다.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국어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20년째 학교에 몸담고 있는 임 교사가 오랜 연구와 실천 끝에 내린 결론이다.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실천적 제언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아이들에게 교육 서비스를 하고 있을까 우선 그의 국어수업은 모두 국어수업 전용교실인 ‘말글살이 뜨락’에서 이뤄진다. 학생들이 책을 펴놓고 얌전하게 앉아 교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여느 수업과는 달리, 이 곳에서는 임 교사가 만반의 수업준비를 해놓고 학생들을 맞는다. 임 교사가 쉬는 시간 동안 다음 수업시간에 쓸 음악과 시, 인터넷 자료 등을 40인치 텔레비전에 연결된 컴퓨터에 미리 띄워놓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책·걸상이 가지런히 교탁을 향해 놓여 있는 다른 교실과는 달리 이 곳에는 모둠용 탁자가 군데군데 놓여 있다. 모든 수업이 모둠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임 교사는 그 탁자들 사이에 서서 아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수업을 진행한다. ………중략……… 수행평가는 임 교사에게 국어교육의 처음이자 끝이다. 학생 평가도 수행평가 점수만 활용한다. 지필고사는 전혀 치르지 않는다. 그는 “수행평가를 제대로만 활용하면 우리나라 교육을 확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임 교사가 이렇게 수행평가를 강조하는 것은 ‘앎을 통해 아이들의 삶을 자유롭게 하자’는 그의 교육졌다.
    교육학| 2003.12.14| 12페이지| 1,000원| 조회(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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