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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고와의 전쟁 이후 고려 사회의 변화 평가A좋아요
    § 목 차 §1. 13세기 동아시아의 정세와 여 ? 몽 관계2. 대몽 전쟁기 민중의 생활과 항쟁3. 삼별초와 대몽 항쟁4. 여 ? 원 연합군의 일본 정벌5. 고려양과 몽고풍6. 개혁정치의 시작과 실패1) 충선왕의 개혁2) 개혁위원회를 설치한 충목왕3) 공민왕의 개혁7. 권문 세족과 친원 귀족 세력8. 고려 말 사대부와 왕권과의 관계몽고와의 전쟁 이후 고려 사회의 변화13세기 동아시아의 정세와 여 ? 몽 관계몽고 평원에 자리잡은 유목 민족이었던 몽고족은 요?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 13세기 초 테무친이란 영웅이 등장하면서 주변의 부족을 통일하고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였고 테무친은 칭기즈칸 지위에 오른다. 당시 동아시아 정세는 중국 대륙의 남부에는 남송, 북부 및 만주에는 금, 몽고의 서쪽에 서하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칭기즈칸은 이들에 대한 정복 사업에 나서면서 먼저 서하를 정벌하고 금의 공격에 나선다. 한편, 이 무렵 만주에서는 금의 쇠퇴 속에 거란계인 야율유가(耶律留哥)가 봉기하여 요왕을 자처하고 나서고, 몽고의 거란에 대한 공격으로 거란이 몽고군을 피해 고려에 침입하고, 고려군의 반격 속에 거란족은 평양 동쪽의 강동성에 집결하고, 야율유가의 진압에 나섰던 금의 장군 포선만노가 패배한 후 금을 배반하고 자립하여 간도 지방에 동진국을 건설하는 등 어수선한 정세였다.이에 칭기즈칸은 이 때가 만주 제압의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카진 ? 쟈라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동진국을 정벌케 하였다. 정벌 후에는 “거란족을 토벌한다.”라는 명분으로 동진국 병사 2만과 연합하여 고려 동북면 지방으로 남하하여 거란의 주력 부대가 집결한 강동성에 다다른다. 이 때가 고종 5년(1218)이었는데, 고려도 강동성 공략을 추진 중이었다. 그리고 대설로 군량 보급이 어려워진 몽고?동진의 연합군은 식량 원조와 공동 작전을 고려에 제의하는데, 고려는 망설임 끝에 원수인 조충의 결단으로 군량미 1천 석을 지원하고 공동 작전으로 강동성을 함락하였다(강동의 역). 이것이 고려와 몽고의 첫 접촉이었 있었다. …4월, 도로가 비로소 통하였다. 병란과 흉년이 든 이래로 해골이 들에 덮이고 포로가 되었다가 도망하여 서울로 들어오는 백성이 줄을 이었다. 도병마사가 날마다 쌀 한 되씩을 주어 구제하였으나 죽는 자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 고려사절요 17권 고종 42년조 ]? 몽고의 대군이 침입하여 왕이 3군을 보내 방어하였다. 마산 초적의 괴수 두 사람이 스스로 항복하고 와서 최우를 보고 말하기를 정병 5천으로 몽고 군사를 공격하는 데 돕겠다. 하니, 우가 크게 기뻐하여 매우 후하게 상을 주었다. 최우가 사람을 보내어 광주(경기) 관악산의 초적이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 초적의 괴수 5명과 정예 50명을 설득해서 데리고 나와 우군(右軍)에 충당하였다.[ 고려사절요 16권 고종 18년 ]? (김윤후는) …뒤에 충주산성 방호별감(防護別監)이 되었다. 몽고병이 와서 포위한 지 무릇 70여 일 만에 식량이 거의 다 바닥나 버렸다. 윤후가 병졸을 설득하고 독려하면서 말하기를 만일 힘을 합하면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두 벼슬을 내릴 것이니 너희들은 믿어 의심치 말라. 하고 드디어 관노의 장부를 거두어 불살라 버리고 소와 말을 잡아 나누어 주었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으로 나아가니 몽고병이 차츰 기세가 꺾여 다시 남진하지 못하였다. 김윤후는 공으로 감문위 상장군에 임명되었으며 그 나머지 군공이 있는 자는 관노비나 백정에 이르기까지 벼슬을 차등 있게 주었다. [ 고려사 103권 열전 김윤후전 ]몽고 지배하에서의 농민의 피해는 고려의 봉건적 지배를 받는 것보다 훨씬 가혹하였다. 왜냐 하면, 기존의 지배 외에 공녀와 환관 같은 사람의 공납까지 요구하는 등 몽고의 요구가 가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몽고 침입 때 최씨 무신 정권이 정권 유지에 급급하면서 여전히 강화에서 사치와 향락을 누리고 있을 때에도 반봉건 항쟁에 앞서 대몽 항쟁에 적극 나선 것은 민중이었고 마산?관악산의 초적조차 대몽 항쟁에 나설 정도로 민중의 손에 의해 대몽 항쟁은 수행되었다. 그었다. 배중손이 야별초 지유, 노영희 등과 더불어 난을 일으켜 사람들로 하여금 나라 안에 부르짖기를 몽고병이 크게 침입하여 인민을 마구 죽이니 무릇 나라를 돕고자 하는 자는 다 모이라. 고 하니 잠깐 사이에 사람들이 크게 모였다. 혹 달아나 사방으로 흩어지며 배를 다투어 건너다가 익사하는 자도 많았다. 삼별초가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강을 순시하면서 크게 부르짖기를, 무릇 양반으로 배에 타고 내리지 않는 자는 다 목을 베어 죽인다. 고 하니 이를 들은 자가 다 두려워하여 내렸다. 간혹 배를 내어 개경으로 향하려고 하는 자는 적이 작은 배를 타고 쫓아와 쏘니 모두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성 중의 사람들이 놀라 흩어져 수풀에 숨었으며, 어린이와 부녀자의 울음소리가 길에 가득하였다. … 적이 이미 탐라에 들어가 안팎에 성을 쌓고, 때로 나와 노략하며 주군을 횡행하고, 고을의 수령을 죽이니 해안 지방이 떠들썩하였다. 왕이 김통정의 조카인 김찬과 오인절 등 여섯 사람을 보내어 그를 회유하니, 김통정이 김찬은 머무르게 하고 나머지는 다 죽였다. 원종 14년 (1273년)에 또 김방경에게 명하여 이를 치게 하니, 김방경이 흔도 등과 함께 나아가 공격하였다. 적이 크게 무너지고 김통정은 70여 명을 거느리고 산 속으로 도망가 매어 죽으니, 탐라는 마침내 평정되었다. [고려사 130권 열전 배중손전]? 김통정 부인의 시북쪽 하늘(몽고병) 검은 진운(陣雲)남쪽 향해(고려) 내려 왔네나라 기운은 쇠약한데바람 앞의 등불이라구국의 횃불 삼별초군의거가 강도(江都)에서중과부적, 강도를 이별하고항몽의 큰 파도가진도로 옮겨 갔네 몽고와 괴뢰 도당진도 성도를 불사르고 인민을 죽였네하느님이 탐라로 인도하시니항성의 달빛이 밝구나슬프다원하옵건대 송도를 기필코 해방시켜 주옵소서 [ 문선희 삼별초의 넋 ]치안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야별초가 확대되어 만들어진 삼별초는 민란 등 반무신 정권의 움직임을 저지하면서 무신 정권의 비호 세력 역할을 담당한다. 강화 천도 후 유격 전술 등으로 몽고와의 항쟁에 나서 돌아가 농사 짓게 하였다. [ 고려사절요 19권 원종 15년조 ]? 지추밀 원사 송송례와 추밀원 부사 기온에게 명하여 정동군을 더 뽑게 하니 각 영과 부에서 다투어 동반의 산직인(散職人)과 백정을 잡아서 고하였는데 간혹 개인의 종을 잘못 잡아 오기도 하였다.[ 고려사절요 19권 원종 15년 5월 ]? 원나라의 중서성에서 전함 9백 척을 만들라고 명하였다.[고려사절요 20권 충렬왕 5년 6월]몽고가 많지 않은 병력을 가지고 유라시아 대륙에 광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그들의 독특한 병력 확보 전략이다. 몽고는 한 지역을 정복하면 그 지역 병력과 연합군을 결성한 다음 지역 정벌에 나서는 전략을 택했다. 강동의 역 때 동진국 군사 2만 명을 동원하여 거란군을 공격한 것도 그러한 예이다.이러한 그들의 전략에 따라 몽고는 고려와 남송을 정복한 후 고려?남송군을 차출하여 일본 정벌에 나서는데 2차 정벌의 경우는 몽고군 3만, 고려군 1만, 남송군 10만에 전함만 4,400척이 동원된 대규모 원정이었다. 그러나 1차, 2차 모두 태풍으로 실패하였고 그 후에도 계획과 준비를 반복하다 세조 승하 후인 1294년에야 종결된 것이 일본 원정이었다.일본은 당시 일본을 구해 준 태풍을 가리켜 신풍(神風:가미카제)이라 하는데,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도 본토 공습의 위협 가운데 자살 특공대가 다시 일본을 구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자살 특공대의 이름을 가미카제라 붙이기도 하였다.고려양과 몽고풍몽고는, 우랄 알타이 어를 사용하면서 인종적으로 몽골리안 인 한국인과 유사점이 많다. 게다가, 몽고가 고려를 80여 년 간 지배하면서 양국의 다양한 문화가 교류되어 양국은 풍속에서도 비슷한 점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명절 때 친지를 방문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든지, 조상의 초상을 모시고 향을 피우며 음식을 바친다든지, 식당에서 신선로를 사용한다든지, 설렁탕과 순대를 즐긴다든지, 신발이나 버선 등에 코가 서 있다든지, 천의 구김살房)을 폐지, 권신이 소유한 광대한 토지를 몰수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군제(軍制)?세제(稅制)를 정비하고 원나라에 대해서도 자주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로 원나라와의 사이가 원만치 못하였고, 곧 이어 원나라 사신에게 국새(國璽)를 빼앗기는 사태가 벌어져 선위 7개월 만에 왕위는 다시 충렬왕에게로 돌아갔다.백성의 환호 속에 시작된 개혁은 불과 4개월 만에 좌절되고 만다. 개혁대상인 권문세족들의 집요한 저항 때문에 세자는 원나라로 쫓겨났다. 이 때 간신 왕유소(王維紹) 등이 충선왕을 아주 폐하고, 그 대신 서흥후(瑞興侯) 전(琠)을 그 후사(後嗣)로 삼으려는 공작을 했다.1305년(충렬왕 31) 원나라의 성종(成宗)이 죽고, 그 후 황위(皇位) 쟁탈전이 일어났는데, 충선왕은 승자가 된 무종(武宗)을 도왔으므로 그 세력의 힘으로 왕유소 일당과 서흥후 등을 제거하였다. 1308년 심양왕(瀋陽王)에 봉해졌고, 같은 해에 충렬왕이 죽자, 귀국하여 다시 왕위에 올랐다.권문세족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안고 원나라로 쫓겨간 세자는 3년 후 복위하게 되면서 다시 개혁작업을 벌이게 된다. 기강의 확립, 조세의 공평, 인재 등용과 공신자제(功臣子弟)의 중용, 농?잠업의 장려, 동성결혼의 금지, 귀족의 횡포 억제 등 과단성 있는 혁신정치를 단행하였다.충선왕은 27조에 달하는 즉위조서에서 개혁대상인 권문세족을 「세가(勢家)」 또는 「호활(豪猾)의 무리」라고 강력히 비판하면서 박전지, 오한경 등의 4명의 사대부를 개혁의 주체로 기용한다.사실 충선왕이 원나라에 있을 무렵 고려에는 개혁적인 재상 홍자번(洪子藩)이 있었으나 그의 신분이 권문세족이었으므로 자연히 개혁대상은 지방의 수령이나 아전 등이어서 본질이 아닌 지엽에 집착한 개혁이었다.그러나 충선왕의 두 번째 개혁도 8개월만에 좌절되고 말았다. 개혁대상인 권문세족들이 또 다시 원나라의 힘을 빌려 충선왕을 끌어내린 것이다. 충선왕은 10년 후에 다시 즉위하지만 두 번의 좌절을 겪은 그는 이번에는 그다지 강력
    인문/어학| 2007.01.09| 10페이지| 2,000원| 조회(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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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디얼리즘소설의 구조와 특성
    Idealism소설의 구조와 특성Ⅰ. 서론철학에서 관념론이라고 부르는 것이 문학에서는 대체로 Idealism에 해당한다. 관념론은 실재가 궁극적으로는 정신 또는 관념이라고 하는 주장이다. 문학에 있어서 Idealism은 이와 같은 관념론적 세계관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 태도이다. 그러나 관념철학을 대변한다고 해서 반드시 Idealism 문학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 문학적 Idealism은 그보다도 인간성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면을 되도록 높이고, 인간성의 물질적, 동물적 면모를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무시하거나 부인할 때 나타난다. 초기 낭만주의 시대의 인간 예찬적 문학은 Idealism문학이었고, 영웅적 인간의 고귀함을 고취하여 이를 본받기를 호소한 로망 로랑의 문학도 Idealism적이었다. 이광수 등의 계몽주의 역시 Idealism적 면모를 내포하고 있다. 본론에서는 Idealism에 기반을 둔 소설의 구조와 특성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는데 구조는 소설 구성의 3요소인 인물과 사건, 배경에 맞추어서 살펴보도록 한다.Ⅱ. 본론1. Idealism소설의 구조1) 인물Idealism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을 살펴보면 지식인이나 선구자, 선각자와 같은 상층부 계급의 인물을 주로 그리고 있다. 이들은 각 시대의 극소수 인물들로서 행동을 동반하고 있는데 그에 반해 하층부 인물들은 피상적으로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예를 들어 이광수의 『무정』에 나오는 이형식과 영채는 1910년대의 신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의 모습으로 근대문명에 대한 동경, 신교육사상, 자유연애의 찬양 등 계몽주의적인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2) 사건Idealism소설에서의 특징 중에 하나는 바로 소설의 기능 중에 교훈적 기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작가가 목적을 가지고 의도한 주제를 지면에 노출시켜 바로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고 하는데 이로 인해 Idealism소설에는 갈등양상이 첨예하게 드러난다.예를 들어 고대소설에서는 선과 악의 대립에서 선이 승리함으로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사상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이는 신소설이나 P ? T 소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신소설에서는 신구(新舊)의 대립에서 신(新)이 승리함으로 계몽의식을 드러내고, P ? T소설에서는 빈부(貧富)의 대립에서 빈(賓)이 승리함으로 계급타파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유미주의소설에서는 미추(美醜)의 대립에서 미(美)가 승리함으로 미의식을 드러내고 있는데 김동리 ? 이효석 ? 김동인의 소설이 Idealism소설에 포함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Idealism소설에 이렇게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나기에 내용은 흥미위주로 나아가며 따라서 위기와 절정이 잘 드러나고 있다. 플롯 중에서 B형 플롯이 주로 나타나고 작가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에 1인칭주인공시점 또는 전지적 시점, 다시 말해 작가 관여자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많다.3) 배경Idealism소설에서는 현실성보다는 이상지향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배경은 주로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배경이 많이 등장한다. 이인직의 『혈의 누』에서는 옥련이 약 7세(1894년) 때부터 17세 때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그 공간적 배경은 조선 평양에서 일본, 미국, 그리고 당시 평양으로 광범위한 공간을 왔다갔다하며 그려내고 있는데 이외의 많은 Idealism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일대기와 같은 긴 시간과 넓은 공간이 배경으로 나타난다. 또 작품을 사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사상적인 배경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계몽소설에서는 서울, 동경, 역 등과 같이 당시 신문명적인 성격을 띤 공간적 배경에서 스토리가 전개되고 P ? T소설에서는 공장, 보리밭, 농촌, 빈민굴과 같이 노동자들의 수탈의 현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함으로 주제를 드러낸다.이렇게 Idealism소설의 구조를 소설 구성의 3요소에 맞추어 살펴보았다. 이를 다시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Idealisn 소설Realism 소설인물비현실적 인물현실적 인물갈등갈등이 뚜렷함갈등을 관조함plot흥미위주현실성시점작가 관여자 시점작가 소멸자 시점배경추상적(비현실적) 배경구체적(현실적) 배경화자화자중심등장인물 중심문체서술체묘사체주제선험적경험적기타이상지향적 소설현실주의 소설2. Idealism소설의 특성문예상의 Idealism은 미적 조화적인 것을 서술하며, 관념적 유형을 중시하고 선택적 수식적인 것이 특색이다. 말하자면 Idealism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공상적인 방법으로 Realism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Idealism적인 경향의 작품군들은 다음과 같다. 이광수의 이나 이청춘의 , 조이스의 , 헤르만 헷세의 , 까뮈의 , 생 떽쥐 페리의 와 같은 작품을 들 수 있다. 이들의 경우에 작품에 담겨 있는 내용성은 현실과 간접적으로 굴절된 경우가 많다.Realism소설에서는 시대의 의미나 풍속화적인 인생의 현실을 반영하고 생활의 발자취에 얼룩진 역사의 흐름을 보여 주는 반면, Idealism소설에서는 현실에 대한 풍자나 촌극에 의한 미래 지향의 새로운 의식의 발현과 이상적 세계의 형상화로 보다 상승하려는 삶의 지표를 보여준다. 결국 소설은 인생과 현실의 인식과 미적 구조에 의한 인간존재의 해명과 그러한 인간이 살아갈 삶의 지표의 제시에 의한 낙원추구의 지향성으로 집약된다.)소설의 지향성은 오늘과 내일의 의미로 압축된다. 오늘은 인간존재의 해명과 관련되고 내일은 작품이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헨리 제임스(H. James)가 그의 소설의 기술에서 경험은 한정적이고 완전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마음의 위기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갈구한다. 보다 알차게 꿈을 가꾸어 웃음을 웃으며 살 수 있는 그날을 그리며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한다. 그러나 그 내일은 언제나 한발 앞서가 손에 닿지를 않는다. 손에 닿는다고 보면 그것은 내일이 아니고 오늘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내일이 나타난다. 그 내일은 한 계단 앞에 있어서 우리는 그 내일을 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기에 오늘의 현실은 인생의 의미를 형성하는 토대요, 내일은 비상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의미한다. 여기에 오늘과 내일이 서로 견인하면서도 또 상승하려는 의미가 있다.)
    인문/어학| 2007.01.09| 3페이지| 1,500원| 조회(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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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의 성립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의 성립Ⅰ. 서 론한국 고대국가는 왕을 정점으로 하여 활발한 영토확장을 통해 우리 민족국가의 영토적 완성을 이룩하였다. 불리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면서 중국세력을 저지한 고구려는 한반도와 만주에 걸치는 제국을 완성하게 되는데, 그 첫 단계가 태조왕의 동해안 진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강 유역의 경제적 이점을 바탕으로 한 백제는 일찍부터 서해안을 통해 국가를 발전시켰다. 고이왕 때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후, 근초고왕 때 정복국가로 성장하면서 서해세력권을 장악하여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또한 신라는 지리적 폐쇄성에서 후진사회를 면치 못하였으나, 5세기 이후 고구려의 간섭을 벗어나면서 6세기의 법흥왕 ? 진흥왕 대에 이르러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통일의 기반이 마련되었다.이러한 삼국의 성립하고 발전하는 과정 중 본론에서는 삼국의 성립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한다.Ⅱ. 본 론1. 고구려의 성립고구려의 발상지인 독로강 및 혼강 유역을 포괄한 압록강 중류 일대는 깊은 계곡과 산이 많으며, 평야는 계곡을 따라 흐르는 하천 연변에 좁게 형성되어 산재해 있다. 이 지역은 서쪽으로는 혼하(渾河)를 거쳐 요동 방면까지 이르고, 동으로는 독로강을 거슬러 올라 개마고원을 넘어 동해안으로 빠져, 동서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있었다. 한편 청천강 상류 지역을 거쳐 평양 방면으로 나아갈 수 있고, 북으로는 혼강 상류를 거슬러 용강산맥을 넘어 송화강 유역으로 연결될 수 있다.주변 환경 또한 중국세력과 부여에 둘러싸여 주변 국가들과 생존을 위한 싸움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무적이고 호전적인 나라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고구려는 성립 때부터 나(那)집단이나 나부(那部) 등 여러 정치 집단 간에 갈등 ? 병합이 전개되어 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안으로 독립적인 군소국가를 통합 ? 정복하여 하나의 집권국가로 성장하는 어려움과 밖으로 중국세력의 침략을 저지하면서 자신을 지켜야 하는 두 가지 힘든 싸움을 전개하지 않을 수 郡治)는 집안이고 당시의 토성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석성인 국내성의 성벽 아래에서 확인되었다. 현토군은 요동(遼東)의 혼하 상류에서부터 동해안의 옥저(沃沮)에 이르는 동서 교통로를 중심으로 설치되었으며, 그 중심지가 집안 일대였다. 그런데 『한서』 지리지에서는 현토군의 인구를 4만 5,006호, 22만 1,845명으로 보았, 소속현으로 고구려 ? 상은대(上殷臺) ? 서개마(西蓋馬) 등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토군 소속현이 셋이라는 것은 당시의 낙랑군(樂浪郡)이나 요동군과 비교해볼 때 매우 적은 수이다.이는 곧 『한서』 지리지에 나온 현토군의 인구는 전(全) 현토군 때의 것이고, 현의 숫자는 현토군이 퇴축된 뒤 압록강 중류 방면에 있던 현 가운데 일부를 요동 방면에 옮겨 설치했을 때를 기술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현토군이 설치될 당시에 이미 고구려 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3) 고구려족의 저항현토군의 설치에 따라 압록강 유역은 한나라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때 중국인과 토착민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없다. 그런데 낙랑군 지역에서는 중국 방면의 유이민과 토착민으로 이루어져 연합 정권의 성격을 가진 위만조선 때와는 달리, 토착민과 한인(漢人)이 뚜렷이 구별되어 민족적 이중구조 하에서 지배와 피지배 관계 나타났다.또한 종래의 8조의 금법이 군현제가 실시됨에 따라 급속히 60여 조로 늘어난 데서 알 수 있듯이 급격한 사회 변화가 일어났다. 법의 급격한 증가는 토착사회에 의해 선진 중국의 문물이 수용됨에 따라 일어나는 자기 사회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취해진 조처는 아니다.춘추 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고도로 사회 분화가 이루어졌고, 산업이 발달했던 한대의 문물과 조직이 상대적으로 소박한 단계의 사회 구조와 문화를 지녔던 동방 사회를 무력으로 침공해 일방적으로 강요됨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여겨진다. 곧 이는 토착사회의 전통적인 사회 질서와 문화가 급속도로 와해되고 혼란에 빠졌음을 나타낸다.이에 따라 기존는데 그 아이는 외모가 출중하고 영특하였으며 체격도 좋았다. 특히 활을 아주 잘 쏘았다. 그래서 그 아이 이름을 주몽이라 지었다.(그 당시에는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주몽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자 금와왕의 왕자들은 주몽을 시기하고 질투하였다. 금와왕은 왕자들의 말을 듣고 주몽을 마 굿간지기를 하게 하였다. 현명한 주몽은 명마를 굶겨서 삐쩍마른 말을 만들었는데 왕은 그 말을 필 요 없다고 하여 주몽에게 주었다.그러나 금와왕의 맏아들 대소태자는 계속 주몽을 죽이려 하자 주몽은 어머니와 아내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임신한 아내에게 칼을 두 조각 내어서 증표로 주면서 "일곱 모난 돌 위 소나무 아 래 둘 것이니 아들이 나거든 그 증표를 찾아서 오게 하라." 고 말하고 오리, 마리, 협부의 세 친구와 함께 명마를 타고 부여를 떠났다. 그런데 대소태자의 군사가 쫓아 왔지만 강에서 자라와 물고기들이 다리를 만들어 주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으며 졸본 부여에 도착하게 되었다.졸본 부여의 왕은 주몽의 뛰어남을 알아보고 둘째 공주를 시집보내어 사위로 맞아 그의 뒤를 이 어 왕이 되게 하였다. 그리하여 주몽은 나라 이름을 '고구려'하고 나라를 세우니 이때가 주몽의 나 이 22살이었으며 자신의 성을 '고'라고 지어 '이름이 '고주몽'이 되었다.초기에는 소노집단(消奴集團)이 우세했다가 뒤에 계루집단(桂婁集團)이 점차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다. 『삼국사기』에서 나오는, 부여에서 이주해 온 집단의 대표인 주몽(朱蒙)과 혼강 상류 비류국(沸流國)의 송양왕(松讓王) 사이에 벌어진 투쟁을 전하는 설화는 그러한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송양은 특정 개인이라기보다 소노집단의 장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계루집단의 기원에 대해 『삼국사기』나 광개토왕비문 등에서 전하는 걸 보면 이 집단은 북부여(北扶餘)에서 갈라져 나왔다.그런데 길림을 중심으로 하는 부여의 묘제는 석관묘와 토광묘였는데, 이에 반해 압록강 중류 지역의 묘제는 적석총이어서, 이른 시기부터 고구려와 부여병을 강제로 동원했던 사실은 중국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 말해준다. 서기 47년 1만여 명을 이끈 잠지락(蠶支落)의 족장 대승(戴升)이 낙랑군에 투항한 사례는 한군현의 분열 정책에 따라 고구려 연맹체 내부에서 일어난 원심 분리현상의 한 예이다.이어 1세기 후반 모본왕이 피살되는 등 고구려 내부에서는 장기간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었던 같다. 이러한 상황하에서도 고구려 사회 내에서는 한편으로는 외세의 작용력을 극복하고 한편으로는 나 집단간의 통합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꾸준히 진행되었다.5) 부체제(部體制)의 성립대체로 1세기 종반 2세기 초 태조왕 때에 이르러 고구려족 전체를 포괄하는 강력한 통제력을 지닌 고대 국가 체제가 확립되었다. 이는 대내적으로는 그간 진행되어 온 나 집단들 상호간의 통합의 움직임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나 집단들은 유력한 나 를 중심으로 서로 병탄해 나가면서, 보다 큰 단위세력을 형성해 갔다.계루집단에 의한 조나(藻那)?주나(朱那) 및 개마국의 병탄이나 1만여 명의 부여계 집단이 연나(椽那)로 합병된 사실들은 그러한 움직임을 나타낸다. 이들 다수의 나 들은 점차 다섯 개의 유력한 나 로 통합되고, 다섯의 나 가 계루집단의 우두머리이기도 한 고구려왕을 정점으로 강력한 중앙 정부의 통제력 아래 귀속되어졌다. 이에 고구려의 5부가 확립되었다.각 부(部)는 대내적인 자치권은 인정되었으나, 대외적인 무역권 ? 외교권 및 전쟁권은 박탈당하였다. 나아가 각 부가 자체적으로 임명한 관인의 명단을 왕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각 부내의 동향까지 왕실에서 통제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대외적으로 중국 군현과의 교섭은 중앙정부에서만 취급해 교섭 창구를 일원화하였다. 현토군과의 경계에 세운 책구루(岫溝鷺)는 그 교역 지점이었다.이는 곧 중국 군현의 분열?회유책을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고구려는 한군현의 간접적인 영향력 하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나아가 태조왕 때부터 왕의 지휘 하에 중국 군현에 대한 조직적인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였다. 또한 옥저 방면 등에 대한 정복 활동이 하여 안거할 수가 없어 되돌아 왔다. 돌아와, 위례에 도읍이 바야흐로 자리 잡히고 인민들이 편안히 살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마침내 부끄러움과 후회로 하여 죽고 말았다.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 백성들이 즐거워했다고 해서 그뒤 국호를 로 고쳤다. 백제의 세 계는 고구려와 함께 다같이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를 라고 했다. 뒤에 성왕 연대에 이르러 도읍을 사자에 옮기니 지금의 부여군이다.온조 중심의 건국설화에서는 졸본부여의 둘째딸과 주몽 사이에서 온조와 비류가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부여에서 주몽의 아들인 유리(琉璃)가 찾아와 태자가 되자, 온조와 비류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비류는 미추홀(彌鄒忽)에, 온조는 위례에 정착하였다가 비류가 죽자 그 무리가 온조집단에게 통합되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비류 중심의 건국설화에서는 비류와 온조가 해부루(解夫婁)의 서손인 우태와 졸본부여 연타발의 딸 소서노(召西奴)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우태가 죽고 소서노가 졸본으로 망명해 온 주몽과 결혼한 후 그의 고구려 건국을 도왔으나, 주몽이 부여에 두고 왔던 아들 유리가 왕위를 잇자 비류와 온조가 미추홀로 이주해 와 백제를 건국했다고 한다.설화의 내용으로 보아, 백제를 건국한 중심세력은 북에서 내려온 부여?고구려계의 이주민 집단이었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실은 백제 역사의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데, 백제 왕족의 성(姓)이 부여(夫余)씨이고, 고구려의 무덤양식과 유사한 대형무덤이 한강유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점도 그 중 하나이다. 또한, 5세기 중반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에는 백제가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하였으며 6세기 전반 성왕 때에는 일시적으로 국호를 남부여라 칭하기도 하였다.비류와 온조가 이주해 온 한강 유역에는 기원 전후부터 상당수의 부여?고구려계인들이 꾸준히 내려와 정착하고 있었다. 또한, 건국설화에서는 비류와 온조가 함께 남하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이들은 각기 다른 시기에 남쪽으로 이주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인문/어학| 2007.01.09| 10페이지| 2,000원| 조회(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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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문법 범주 실현의 통시적 변화 평가A좋아요
    문법 범주 실현의 통시적 변화1. 문장 종결? 문장 종결법은 문장종결어미에 의해 결정된다.? 중세 국어의 문장 종결법에는 평서문, 감탄문, 의문문, 명령문, 청유문이 있다.? 문장 종결법은 상대 높임법과 상관 관계를 맺고 있다.구분형 태평서형 종결 어미- ‘-다, -라’감탄형 종결 어미- ‘-ㄹ셔, -ㄴ뎌, -어라, -애라’- 느낌의 선어말 어미 ‘-돗-’에 의존의문형 종결 어미- 판정 의문문의 경우 : -니여, -녀, -리여, -려, -ㄴ가, -까, -가- 설명 의문문의 경우 : -니오, -뇨, -리오, -료, -니꼬, -고- 2인칭 주어일 경우 : -ㄴ다, -ㅭ다- 반말체 : -니, -리명령형 종결 어미- ?라체 : -라- ?쇼셔체 : -쇼셔- 반말체 : -고라, -고려청유형 종결 어미- ?라체 : -새, -쟈스라, -져- ?쇼셔체 : -사이다경계형 종결 어미- -ㄹ셰라 의구형 종결 어미)(1) 평서문① 실현 : 평서형 종결 어미 ‘-다, -라’에 의해 실현예) ① 이 道? 이젯 사?? ?료? 흙?티 ??다. (두시언해 25, 56)② 나 … 百年t 한 病에 ?올로 臺예 올오라. (두새언해 10, 35)(2) 감탄문① 실현㉠ 감탄형 종결어미 ‘-셔, -ㄴ뎌, -어라, -애라’에 의해 실현된다.㉡ 느낌의 선어말 어미 ‘-돗-, -옷-, -ㅅ-’에 의존하여 실현된다.예) 내 아?리 어딜셔. (월인석보 2, 7)?힛 마리신뎌. (악학궤범, 정과정)우러라 우러라 새여 (청산별곡)몰라 보애라.(3) 의문문① 실현㉠ 판정 의문문 종결 어미 ‘-니여, -녀, -리여, -려, -ㄴ가, -ㄴ까, -가’㉡ 설명 의문문 종결 어미 ‘-니오, -뇨, -리오, -료, -고, -니꼬, -고’㉢ 주어가 2인칭 주어일 경우에는 의문사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 ‘-ㄴ다, -ㅭ다’㉣ 반말체 ‘-니, -리’② 종류㉠ 판정 의문문㉮ 개념 : 가부(可否)를 물어 ‘예, 아니오’라는 긍정과 부정의 대답을 요구하는 의문문㉯ 실현 : ‘-니여, -녀, -리여, -려, -ㄴ가, -ㄹ까, -가’등을 사용예) 앗가? ?디 잇?니여.便安히 잇?가.하나빌 미드니잇가.이 ?리 너희 죵가.㉡ 설명 의문문㉮ 개념 : 의문사를 동반하여 설명하는 대답을 요구하는 의문문㉯ 실현 : ‘-니오, -뇨, -리오, -료, -ㄴ고, -ㄹ꼬, -고’예) 네 어드러로 가?니오.몃 間ㄷ 지븨 사?시리잇고.얻논 藥이 므스 것고.㉢ 주어가 2인칭 주어일 경우에는 의문사의 존재 여부와 같이 ‘-ㄴ다, -ㅭ다’를 취한다.예) 네 엇뎨 안다.그뒤? 그를 보디 아니??다.네 엇던 혜?로 나? 免케 ?다.㉣ 반말체 ‘-니, -리’예) 聖人神力을 어? 다 ??리.이제 엇뎨 怨讐를 니?시?니.(4) 명령문① 실현㉠ ?라체 : 명령형 어미 ‘-라’㉡ ?쇼셔체 : 명령형 어미 ‘쇼셔’㉢ 반말체 : 명령형 어미 ‘-고라, -고려’예) 첫소리? 어울워 ?디면 ??쓰라.이 ?들 닛디 마?쇼셔.生生애 내 願을 일티 아니케 ?고라.(5) 청유문① 실현㉠ ?라체 : ‘-새, -쟈스라, -져’㉡ ?쇼셔체 : ‘-사이다’예) 山水 구경 가쟈스라어서 가압사?다2. 시간 표현(1) 현재시제1) 동사 어간 + 선어말 어미 ‘-?-’(‘-?-’는 동사에만 결합)예) 네 이제 ? 묻?다. (월인석보 23, 97)2) 형용사, 서술격 조사 : 시제 표시 형태소 없음. (기본형이 현재시제임.)예) 내 오? 實로 無情호라. (월인석보 21, 219)(2) 과거 시제1) 부정법에 의한 과거 표현① 개념 : 부정법이란 정해진 문법 형태소 없이 ‘영형태’가 되어 다른 형태소와 계열 을 이루어 문법적 기능을 표시할 때, 즉 시제 표시 형태도 없이 문맥에 따라 일정한 시 제가 표시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현대어에서 일기체에 기본형을 써서 과거를 나타내는 경우도 부정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예)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청산별곡)네 아비 ?마 주그니라. (월인석보 17, 21)사리불을 수달이 조차 가라 ?시다. (석보상절 6, 22)2) 선어말 어미 ‘-다- / -더-’에 의한 과거 회상 표현① 실현 형태㉠ ‘-더-’ : 일반적인 경우(주로 2,3인칭 주어와 호응)㉡ ‘-다-’ : ‘-더-’+ ‘-오- / -우-’의 결합인 경우(주로 1인칭 주어와 호응)㉢ ‘-러-’ : 서술격조사 ‘이’ 아래와 미래 선어말 어미의 ‘-리-’뒤에서예) 그딋 ?? 맛고져 ?더?다.龍과 鬼神과 위?야 說法?더시다.부텻나히 셜흔 세히러시니내 롱담?다라.(3) 미래시제1) 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 ‘-리-’에 의해 실현예) 聖神이 니?샤도 敬天勤民 샤? 더욱 구드시리이다.내 願을 아니 從?면 고? 몯 어드리라.?마 주글 내어니 子孫을 의논?리여.2) 미래시제 ‘-리-’에는 추측, 의도 등의 의미도 파악된다.예) 聖神이 니?샤도 敬天勤民 샤? 더욱 구드시리이다.3) 관형사형에서는 ‘-ㄹ’가 미래를 나타내기도 한다.예) 부텨 ?? 相이로다.(4) 동작상1) 형태 : ‘-아/-어 잇다’의 결합구조- 이는 보조적 연결어미 ‘-아/-어’와 보조용연 ‘잇다’의 결합형태이다.- 그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어 +잇 ⇒ 엣(축약)어 +잇 ⇒ 엇 (탈락)어 +이시 ⇒ 어시 (탈락)아 +잇 ⇒ 앳(축약)아 +잇 ⇒ 앗 (탈락)아 + 이시 ⇒ 아시 (탈락)2) 의미 : 동작의 완료와 진행을 나타냄.3) 용례① 완료상예) ?? 이 녯 ?올? ?갯?니라. (두시언해)② 진행상예) 王이 듣고 깃거 그 나모 미틔 가 누늘 長常 ?아 잇더라. (석보상절)3. 높임표현(1) 높임이 이루어지는 유형중세 국어 역시 현대국어와 마찬가지로 선어말 어미를 중심으로, 조사, 접사, 특수어휘 등에 기대어 높임법이 이루어졌다.1) 조사에 의한 높임 체계현대 국어에서는 주체 높임이나 객체 높임 등에서 조사에 의한 높임이 병행되나 중세 국어에서는 그 외에서도 조사에 의한 높임이 이루어진다는 특색이 있다.① 관형격 조사의 ‘ㅅ’과 ‘?/의’㉠ 유정 명사의 경우 높임의 명사 아래에서는 ‘ㅅ’을 높임의 대상이 아닌 명사 아래서 는 ‘?/의’를 사용했다.예) 부텻 모미 여러 가짓 相이 ??샤岐王ㅅ 집 안해 샹녜 보다니??미 ??며 하?히 놉고 납? 됫?람이 슬프니② 호격 조사의 ‘하’와 ‘아/이여㉠ 높임의 명사 아래서는 호격 조사로 ‘하’를, 높임의 대상이 아닌 명사 아래서는 ‘아/이여’를 사용하였다.예) 님금하, 아?쇼셔.?하, 노피곰 도?샤 어귀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아?아 보아라.2) 선어말 어미에 의한 높임 체계예) 王이 … 그 蓮花? ?리라 ?시다.?女ㅣ 하? 기?로 太子? ?려 안??天下애 안가? 거시 몸 ??니 업스니이다.3) 특수 어휘에 의한 높임 체계중세 국어에서도 현대국어와 같이 활용형에 의한 높임법 이외에 특수한 어휘에 의한 높임법이 존재한다.예) 문왕이 ? 번 뫼 자셔든.부톄라 혼 일후미 겨시고(2) 높임의 종류1) 주체 높임① 개념 : 주어 명사가 화자 또는 서술자에게 높임의 대상으로 인식될 때 이루어지는 높임법② 형태㉠ 자음 어미 앞에서 : -시-㉡ 모음 어미 앞에서 : -샤-예) 모딘 도?? 물리시니이다.野人ㅅ 서리예 가샤2) 상대 높임① 개념 : 화자가 청자를 높이거나 낮추는 높임법② 형태 : 평서형 앞에서는 ‘-?-’, 의문형에서는 ‘-?-’을 사용함.③ 종류(상대 높임의 등분)명령형등분형태소예??체아주 낮춤없음??다(평서문)?라(명령문)?다, ??다(의문형)?쇼셔체아주 높임-?--?-???다, 하니?다, ?리?다(평서문)??니?가, 미드니?가(의문문)?야셔체두루 낮추거나 높이는 것없음그리 아닝다.엇뎨 부텨라 하?닛가.반말체높이기도 낮추기도 어려울 때없음곶 됴고 여름 하?니聖人神力을 어? ??리3) 객체 높임① 개념 : 목적어 명사나 부사어 명사로 등장하는 상위자, 즉 객체에 관련된 동작, 상태를 나타내는 높임법② ‘?’을 기본 형태소로 하여 형태 음운론적 교체에 따라 ‘-?-/-?-, -?-/-?-, -?-/-?-’가 사용-?-/-?-어간의 끝소리가 ‘ㄱ, ㅂ, ㅅ, ㅎ’으로 끝나는 경우-?-/-?-어간의 끝소리가 ‘ㄷ, ㅌ, ㅈ, ㅊ’으로 끝나는 경우-?-/-?-울림소리 뒤에서⇒ 이는 현대국어 공손법으로 변화된다.예) ? ???로 뎌 부텨를 보?고? ???로 뎌 부텨를 보??라.내 아래 브터 부톗귀 어런 마? 몯 듣??며.몸이며 얼굴이며 머리털이며 ?? 부모? 받?? 거시라.4. 사동표현중세 국어에도 사동문을 세울 수 있는데, 현대국어와 마찬가지로 사동사에 기댄 파생적 사동문과 보조적 연결어미와 보조 동사의 결합에 기댄 통사적 사동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1) 파생적 사동문1) 형태① 동사 어근에 사동 접미사 ‘이, 히, 리, 기, 오/우, 호/후’ 등이 붙어서 이루어지며, 사 동접미사의 첨가는 통사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예) 한비 그치다.한비? 아니 그치샤(2) 통사적 사동문
    인문/어학| 2007.01.09| 8페이지| 1,500원| 조회(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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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인훈의 광장을 읽고
    최인훈의 『광장』을 읽고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이 들어찬 동지나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려져 간다.명준은 중립국으로 가는 타고르호의 배 위에 서 있다. 무엇인가 쫓기고 있는 그의 모습, 뭔가 생각에 가득 찬 명준의 모습을 보며 나는 궁금하다. 왜 명준은 중립국으로 가고 있는가? 그러한 궁금증은 아름다운 별밤, 선장과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레 과거의 기억 속으로 흘러간다.플라타너스 잎사귀가 떨어진 대학에 서 있는 명준은 철학과 3학년이다. 명준은 철저한 공산주의자 이형도의 아들로 이형도는 박헌영과 더불어 남로당을 만들어 활약하다가 이북으로 도피한 자다. 명준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 대치되어 있는 남북의 상황이 명준은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이북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가 방송을 통해 남쪽을 비방하는 선전을 하게되고 남의 치안당국자들은 명준을 불러와 심한 추궁과 고문을 한다.이런 일이 계속 되고 여자친구 윤애집에 머물면서 바닷가를 배회하던 중, 이북으로 가는 밀선을 알선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의 주선으로 명준은 북으로 간다. 밀실만이 존재하는 남한과 달리 인간적 확증을 얻을 수 있는 광장이 북한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에도 그러한 광장은 없었다. 명준이 그곳에서 본 것은 잿빛 공화국이었다. 오직 퇴색한 구호와 기계주의적인 관료제도가 판을 치고 있을 뿐이었다. 명준은 자기가 기댈 마지막 지점을 공산당원 발레리나인 은혜의 사랑에서 발견하지만 간호사로 6?25전쟁에 나깠던 은혜의 죽음으로 그 사랑도 끝나고, 명준은 UN군의 포로가 된다. 이후 석방이 되면서 남과 북을 선택할 기회 앞에서 그는 중립국을 선택한다."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중립국."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중립국."결국 그는 중립국으로 가는 타고스호를 타지만 어는 곳에서도 민족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바다를 푸른 광장이라 생각한다. 그날 명준이 탄 배에는 한 사람의 실종 사실이 선장에게 보고된다. 결국 명준은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를 모두 초월할 수 있는 광장, 이상적인 광장의 모습을 바다에서 발견하고 그 속으로 투신해 버린 것이다.광장. 우리 머리 속에 흔히 그려지는 광장은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나타나는 광장은 두 개이다. 하나는 독재주의를 이장하고 서구적 자유의 풍문으로 가득 차서 진실한 광장은 없고 밀실만이 존재하는 남한의 부조리한 광장이며, 다른 하나는 혁명이라는 풍문 속에 갇혀 있지만 진정한 혁명은 존재하지 않고 혁명의 화석만이 존재하는, 밀실은 인정되지 않고 허위에 가득 찬 광장만이 존재하는 북한의 광장이다. 명준은 이 두 개의 광장 모두에 대해서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 제 3국을 선택한다. 그러나 명준의 선택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최인훈은 도대체 이 광장과 명준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책의 서문에 보면 최인훈은 이렇게 말한다.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 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이명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는가. 그는 어떻게 광장에서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가. 나는 그를 두둔할 생각이 없으며 다만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가 풍문에 만족치 않고 늘 현장에 있으려고 한 태도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최인훈 「‘광장’ 저자 서문」중에서 -사람은 광장에서만 살 수 없다. 밀실에 갇혀서 살 수만 없다. 사람들과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 광장도 필요하고 은밀히 있어야 할 개인적인 공간, 밀실도 필요하다. 이러한 광장과 밀실에 남한과 북한의 현실을 비유하고 있다. 광장만 있는 북한, 밀실만 있는 남한. 어디 하나 편을 들고 있지 않다. 그냥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싶어한 명준을 그려낸다. 하지만 명준은 광장, 밀실 두 가지 증 하나만 선택하라는 물음 앞에서 도망친다. 도망치는 내내 그의 뒤에는 갈매기가 따라온다. 과거의 기억과 만나게 하는 매개체. 또는 허깨비처럼 명준을 계속 지켜보는 존재. 어떻게 보면 명준의 분신처럼 보이는 존재. 본문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인문/어학| 2007.01.08| 3페이지| 1,500원| 조회(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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