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はわれ목차1.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2. 헤이안(平安) 시대의 미의식3.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はわれ’의 어원과 쓰임새4.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はわれ’란 무엇인가5. 모노노아와레論6. 노리나가本居宣長의 론에 대한 근대 이후 선학자들의 몇몇 견해1.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겐지이야기일본 헤이안시대[平安時代]의 장편소설로서 여류작가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978∼1016]가 지은 것으로 황자(皇子)이면서 수려한 용모와 재능을 겸비한 주인공 히카루 겐지[光源氏]의 일생과 그를 둘러싼 일족들의 생애를 서술한 54권의 대작이다.이 작품은 3부로 나누어지며, 1부는 기리쯔보[桐壺]에서 후지노우라하[藤裏葉]까지의 33권이다. 겐지의 탄생에서부터 결혼, 여성편력, 유배, 부귀영화 등이 그려진다. 특히 겐지가 계모와 밀통하여 레이제이 천황을 낳는 센세이셔널한 사건이 다루어진다.2부는 와카나우에[若菜上]에서 마보로시[幻]까지의 8권으로 이루어진 권34의 봄나물에서 권41의 환상까지이다. 겐지의 정실인 온나산노미야가 다른 남자와의 밀통으로 가오루를 낳는다. 겐지의 젊은 날에 대한 죄의식과 고독한 만년이 그려진다.3부는 니오우노미야[?宮]에서 유메노우키바시[?浮橋]인 꿈속의 다리까지의 13권으로 되어 있는데, 겐지가 죽은 후에 후일담과 그 자손들의 이야기이다. 출생의 비밀로 괴로워하는 가오루와 주변 인물들의 연애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부는 후세사람의 작품이라는 설도 있다.겐지이야기는 3대에 걸친 귀족사회의 사랑과 고뇌, 이상과 현실, 예리한 인생비판과 구도정신(求道精神)을 나타낸 작품이다.2. 헤이안(平安) 시대의 미의식일본 고전문학에서이 미의 이념은 古代와 中古의 두 시기로 나눈다. 400백년의 태평세월을 유지한 中古에 해당하는 헤이안 시대는 섬세한 정취를 존중하는 귀족적이고 여성적인 국풍문화가 발달한 시대이다. 이 시기의 문인들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되고,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가 지닌 깊은 마음의 세계가 독자적인 미학을 낳은 시대였다. 예컨대 ‘모와레’가 비애가 된 것과 같이 ‘오카시’는 점차로 익살의 뜻으로 사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카시’는 감상과 익살의 두 가지 뜻이 있다. 감상이 되는 것은 대상에 가치가 있음을 뜻한다. 대상을 관조하여 흥겨워함으로써 온 정신이 해방된 것 같은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가치 있는 것이나 결점 있는 것이나 ‘오카시’의 대상은 가볍고 작은 것이어야 한다. 거기에 ‘아와레’와의 결정적인 상이가 생긴다. ‘아와레’는 화조풍월)과 같은 것이라도 중대한 존재로서 돌이켜 보아야 한다. 우미의 ‘오카시’는 헤이안 시대와 같이 문화의 세련된 미야비みやび)의 세계에 성해지고, 익살의 ‘오카시’는 에도 시대와 같은 서민의 힘이 자유롭게 뻗어 나간 세계에 성하였다.2) 다케다카시(たけ高し)‘다케다카시’는 숭고하고 장대 미려한 미의 개념이 가해진다. 격조가 높고 장대한 느낌을 말하며 또한 유려한 聲調上의 긴장감이 인상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을 말한다.3.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はわれ’의 어원과 쓰임새‘아와레’라는 말은 기기시대記紀時代(古書記?日本書紀)에서부터 사용되고 있으며, 라는 말이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기실지紀實之의 「도사土佐일기)」이다. 그러나 이말이 문예용어로서 처음으로 체계화된 것은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1730~1801)에 의해서이다. 노리나가는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해석하면서 이 작품에는 가 탁월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규정하고 모노가타리의 本意는 를 표현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의 이른바 론이 전개되는 것이다.)노리나가에 의하면 의 란 원래는 감탄사이다. 라는 것이다. 는 라는 감탄사와 라는 감탄사가 결합되어 가 되고, 그것이 한편으로는 가 되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세에 이르러 특히 를 자로 표시하여 이를 마치 悲哀의 뜻인 양으로 보고 있으나, 「아와레는 비애만이 아니라, 기쁜 일, 재미있는 일, 즐거운 일, 이상스런 일 등. 어떤 경우에나 아아와레ああはれ라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아와레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술하고 있다.4.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はわれ’란 무엇인가)노리나가는 헤이란(平安)시대의 문예, 특히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통해서 ‘모노노아와레’의 사상을 발견했다. 그는 ‘모노노아와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まづすべてあはれといふはもと, 見ゐものきく物ふゐ?사に, 心の感じて出ゐ, 歎息の聲...あはれは, 悲哀にかぎらず, うれしきにも, おもしろきにも, たのしきにも, すべてあ?はれと사 はるは, みなはわれ也)“우선 아와레라고 하면 보는 것, 듣는 것, 접하는 것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솟아나오는 탄식한 소리...아와레는 悲哀에 한정되지 않고 기쁜 것도, 즐거운 것도, 우수운 것도 모두 마음으로 깊이 느끼는 것은 아와레이다.”이와같이 ‘모노노아와레’란 어떤 사물에 접하여 감동하는 마음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즉 보는 것, 듣는 것, 접하는 것, 마음으로 느끼는 것, 모든 것에 저절로 느끼는 것이고, 기쁜 것, 흥겨운 것, 즐거운 것, 그리고 슬픈 것 모든 것이 감동의 심정으로 솟아나오는 것이다. 그것을 노리나가는 ‘자연의 모리’라고 정의하고 사람은 누구나 이유 없이 감동하는 것에 대해 감동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모노노아와레’를 아는 마음의 작용이 사물을 접해서 감동할 뿐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는 공감이나 동정을 일으키고, 절대적인 것에 의속依屬이나 순종順從의 작용도 일으킨다는 것을 밝혔다. 기쁜 것은 물론이고 슬픈 것에도 이러한 절대적인 것에 의속 혹은 순종이 생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리나가는 유교나 불교에 있어서 특히 윤리, 도덕은 위선이고 자연이 아닌 인위적인 것으로서 배척하는 것이다.5. 모노노아와레論)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가 말하는 『겐지모노 가타리源氏物語』의 주제는 도덕적인 교훈을 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를 표현한데 있다는 것이었다. 노리나가는 다음과 같이 『겐지모노 가타리源氏物語』의 내용은 를 인식한다는 한마디의 말로 총괄 할 수 있다고 했다.표현동기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가타리는 작자가 생활세계의 여러 가지 사물을 접하고 감동한 것을 귀로 듣고 만져보고 그 모든 사항들의 취지를 맛보고 그 모든 사항들의 본질을 내 마음에 깊게 이해하는 것이 사항?행위의 본질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사물의 본질을 아는 것이고 를 아는 것이다. 그 중에는 더욱 자세하게 나누어 본다면 분별하여 아는 것은 사항?행위의 본질을, 사물의 본질을 아는 것이다. 분별해서 事?物의 본질의 종류에 맞춰 거기에 알맞은 감정이 움직이는 것이 이다. )다시 말하지만 가 인간의 情感보다 우선적으로 존재한다고 노리나가는 생각했다. 사람이 접하게 된 대상세계의 를 인식하고 느끼려고 한다는 것은 그 와의 만남에 있어서 그 를 통해서 나타나는 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해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노리나가가 말하는 를 인식하고 느낀다는 것은 단순히 의 차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노리나가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인식작용전부가 를 안다(知る)고 하는 것은 애초부터 인간에게 진실된 人情(實情)이 전제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세계 내부의 다양한 일들과 인간과의 상호적인 관계에서 구성되는 감성적인 구조를 의미한다고 생각된다.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노리나가는 모든 인간의 진정한 情(실정)을 어리석고 연약한 것이라고 하고 가타리物語는 그 사람의 말하는 것이고, 를 자세하게 표현한 것이라고도 했지만, 노리나가의 이 말이 가타리物語로서 표출되는 것이 자연적인 내면의 感動의 유로流露)로서의 實情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실정實情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서는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동을 전달하기 어려운 것이다. 감동(아와레)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표현하는데 있어서 허구가 필요하다. 가타리物語는 작자가 느낀 감동을 허구의 상황과 대상을 설정하므로 해서 보다 깊이 표현한 것이다. 작자는 자신이 감동했다고 해서 그 감동을 그대로 표현해서는 감동이 잘 전달되지 않으므로 자신의 감동의 과장, 강조, 수식 등의 허구를 가함으로 해서 감동이 더욱 잘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그래서 이렇게 허구에 의해 가공된 감동을 접한 사람(독자)은 작자의야 할 바의 궁극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여 아와레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읽는 사람의 마음은 이 이야기에 묘사되어 있는 바를 「지금의 나의 몸에 견주고 비교하여」이야기 속의 인물의 「모노노아와레에 공감해주고 내 처지를 거기에 비교해봄으로써 모노노아와레를 알고, 그의 걱정을 위로하는 데」있다고 말한다. 즉, 표현된 바의 「모노노아와레」에 동감하고 걱정을 위로하며 「마음이 긴장해지는」체험 속에 미의식이 성립되는 셈이라고 말한다.)草?正夫은 노리나가의 를 규정하여, 그것은 무슨 특정한 객관적인 미적 내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을 의미했을 뿐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노리나가의 입장은 미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순수 미의식의 입장에만 서 있는 것은 아니고라고 말하고 )라고 말하고 있다. 또 그는 와츠지데츠로(和述哲郎)의 평역에 동조하고, 그것은 「보편적인 것」「초월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이라고 정의하는 와츠지데츠로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또또한 는 평안조의 정신 내지 미의식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전체적으로 보면 그것은 감상적인 것이 아니고 )는 것이다. 草?正夫는 인간의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에서 「아와레」를 감지할 수 있으나, 라고 한 노리나가의 말에 주목하여 노리나가가 무의식적으로 예상한 것은 모노노아와레를 깊은 근원에서 시발하는 「哀感과 靜淑」으로 간주하였으리라고 그것은 )이면서 이 비극적인 감정은 )이라고 말하고 있다.西田正好는 모노노아와레를 인간의 감정일반이나 감탄사로서 규정하고 있는 노리나가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여 그것은 비애감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진술하고 있다.「모노노아와레」는 원래 세계존재의 소멸을 애소哀訴하는 비탄悲嘆의 마음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모노노아와레」는 분명히 일종의 고대적인 무상관無常觀의 심정적 表白이며「아와레」는 또 존재의 무상성을 개탄하는 비애감이나 비애미의 문학적 표상에 다름아니었다고 판단 할 수 있을 듯하다.)그러나 草?正夫가 이 무상관이라는 것을 다.
무위자연 無爲自然1. 중국미학에서 자연 개념과 무위의 미학2. 노자사상의 배경3. 무위자연의 개념1)무위2)자연4. 오래된 미래 ‘무위자연’1. 중국미학에서 자연 개념과 무위의 미학)자연미에 관한 논의는 동서양에서 공통된다. 종래 서구의 미학에서는 대체로 자연미를 자연대상에 속한 일정한 객관적 미적 성질(예컨대 균제, 비례, 조화 등의 형식적 미적 성질)에 기인한다고 보거나, 자연의 무한성 내지 비형식성에서 기인하는 숭고의 감정과 관련 지워 설명했다. 그렇지만 서구의 미학적 논의에서는 자연성이라는 성질이 일정한 미적 범주로까지 발전된 바 없다. 반면에 동아시아의 미학에서는 ‘자연’, ‘자연성’, ‘자연스러움’ 등은 서구의 미학과 구별 할 수 있는 특별한 미적 범주로까지 발전했다.역사적으로 볼 때 동양의 예술이 주로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자연을 노장의 무위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동양철학과 미학에서 노장의 ‘자연’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영역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동양철학과 미학의 흐름에서 또 다른 중심축인 유가철학과 상응해서 발전했기 때문에 이와 관련시킬 때 그 가치를 갖는다.노장철학의 자연과 무위는 유가의 도덕이성적 자연관에 대한 극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가의 도덕론에 왜곡된 인간의 자연성 회복에 있는 것인데, 그 지향으로서 자연에 내재되어 생명의 원동력이 되는 ‘도’를 추구한다. 도는 자연을 생성변화하게 하지만, 인위적 작위가 없는 무의식적인 즉 무위(無爲而無不爲)이다. 또한 무목적인 행위가 아니라 무목적적인 “스스로 그러한 것” “그러함을 알지 못하면서 그러한 것(不知然而然也)”, 즉 자연을 따른다. 그것은 시공간적으로 무시무종(無始無終), 무한무변(無限無邊)함과 함께 쉼이나 간격 없이 영원히 창조적으로 변화한다.자연성의 미학과 예술서양미학-비례, 질서, 균제-대상의 특질중국미학-외재적 자연: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자연 전체를 가리킴-내재적 자연: 왜곡된 내적 자연을 온전히 하여 인간의 無欲(무욕)?損(손)?虛(허)등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이 의식의 대상화 작용을 없앨 때 소박한 본성을 회복하기 때문에 노자의 이상인 무위자연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다음은 노자의 핵심사상인 무위와 자연에 대한 표현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구체적으로 노자의 경문(經文)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1)무위(無爲)노자의 경문(經文)을 통해 본 무위아래)는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 무위를 말한 것이다. 춘추시대보다 더욱 어수선하고 전쟁이 극심했던 전국시대를 역사적 배경으로 한 장이다. 태사담 노자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종의 군수물자로 취급받고 있는 백성의 구제를 위한 절규가 담긴 내용으로 전국시대의 노자철학 사상의 무위에 대한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다.不尙賢,(불상현) 使民不爭,(사민불쟁)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음으로써 백성이 다투지 않게 하고,不貴難得之貨,(불귀난득지화) 使民不爲盜,(사민불위도)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백성이 도둑질 하지 않게 하며,不見可欲,(불견가욕) 使民心不亂.(사민심불란) 욕심낼 만한 것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백성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도록 한다.是以聖人之治,(시이성인지치) 虛其心,(허기심)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백성들로 하여금) 그 마음을 비우게 하지만實其腹,(실기복) 弱其志,(약기지) 强其骨.(강기골) 그 배를 채워주고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강하게 한다.常使民無知無欲,(상사민무지무욕) 使夫智者不敢爲也.(사부지자불감위야) 항상 백성들로 하여금 알고자 하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이 없게 하고, 저 지혜 있는 자(즉 작위할 줄 아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작위하지 못하게 한다.爲無爲,(위무위) 則無不治.(칙무불치) 무위를 하면 다스리지 못함이 없다.무위의 다스림은 사회적으로 높이는 것이 없을 때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볼 때, 능력과 재화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절대적인 경지에서 볼 때,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곧 대상화된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능력과무위를 말한다.是以聖人處無爲之事(시이성인처무위지사), 그러므로 성인은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 말없는 가르침을 실행한다.萬物作焉而不辭(만물작언이불사), 만물을 만들고도 관연하지 않으며,生而不有(생이불유), 성장시키고도 소유하지 않으며,爲而不恃(위이불시), 기르고도 제 능력을 믿지 않고,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 공을 이루고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夫唯弗居(부유불거), 바로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에,是以不去(시이불거)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다.노자의 인사(人事)를 처리하는 원칙에서 “萬物作焉而不辭(만물작언이불사), 生而不有(생이불유), 爲而不恃(위이불시)”에 기인한다. 자연은 만물을 만들고 성장시키며 공을 이루었지만, 수고롭다고 사양하지 않으며, 자기의 소유로 하지도 않으며, 공적을 자처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더욱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자연의 위대함을 체득케 하며, 시종 자연을 떠나서는 달리 생존할 수도 없다. 그래서 성인은 이러한 이치를 깨달아 자연법칙을 본 받고 인사를 처리하는 것이다.(해석))원래 사물은 그 속에 내재하는 작(作)→위(爲)→성(成), 즉 탄생→성장→완성의 순서에 의해 진행된다. 인간 세상의 모든 개념과 가치는 인위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그 사이에는 결국 주관적 집착과 독단적 판단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때문에 시비를 걸고, 시비를 다투는 등 끊임없는 논쟁이 일어난다. 도를 지닌 사람은 오히려 자의적으로 일을 하거나, 조작하지 않으며, 주관적 집착과 독단적인 판단을 초월하여, ‘무위(無爲)’로 일을 처리하고, ‘불언(不言)’으로 가르침을 행한다.하늘과 땅 사이에 만물은 스스로 생겨나 자라면서 각자 자신의 모습을 지니는데, ‘성인’)은 단지 옆에서 보조하며, 각자의 생명창달과 실현에 맡겨서 그 각자에 풍부히 내재된 것을 온전히 펼치도록 할 뿐이다. 성인은 만인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역량을 발휘하도록(생(生),위(爲),공성(功成)) 해줄 뿐 거기서 나오는 성과를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자신의 소유로 삼지 않는다.(불유(不有의 나투라(natura)에서 왔다. 나투라(natura)는 ‘태어날 때부터의 성질[本性]’ 이라든가 ‘타고난 그대로의 것[自然]’이라는 의미에서 나스코르(nascor,BC106~43)의 조어(造語)인데, 그는 그리스어 퓨시스(Phisis)의 역어(譯語)로써 만든 것이다. 자연이란 말은 ‘스스로 그러하다’(쪽의 해석)는 개체적 의미와 ‘저절로 그러하다’(쪽의 해석)는 전체적 의미의 두 뜻을 모두 가지고 있다.)우리말의 경우에는 자연의 자(自)는 ‘스스로’보다는 ‘저절로’ 쪽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 예컨데 김인후(金麟厚. 호는 河西. 1510~1560)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자연가(自然歌)」에서,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산 절로 수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아마도 절로 난 몸이라 늙기조차 절로 절로 [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山自然水自然 山水間我赤自然/已矣哉自然生來人生自然與然老]”)라고 할 때의 ‘절로(=저절로=자연히)’에 해당하며 ‘인공, 인위가 가해지지 않은 것’을 형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노자의 경문(經文)을 통해 본 자연다음은 노자가 말한 절대적인 ‘도’는 그것의 본성인 ‘자연’을 모범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故道大(고도대), 그러므로 도는 크고,天大(천대), 하늘은 크고, 地大(지대),땅은 크고, 人亦大(인역대), 사람도 크다.域中有四大(유중유사대), 우주 안에는 네가지 큰 것이 있는데而人居其一焉(이인거기일언), 사람도 그중의 하나를 차지하네.人法地(인법지),사람은 땅을 본받고,地法天(지법천), 땅은 하늘을 본받고,天法道(천법도), 하늘은 도를 본받고,道法自然(도법자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위 경문에서는 우주의 네가지 큰 것을 말하면서 유가(儒家)에서 중시하는 천지인 삼재(三才)를 나열하고 다음으로 가장 근본인 ‘도’를 절대적인 크기로 하고 있다. 결국 천지인 삼재는 도를 본받아서 운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도’는 그것의 본성인 ‘자연’을 모범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자연의 의미 역시 그러한 물리적 관점에서 비롯된 足下 (천리지행 시어족하)爲者敗之, 執者失之 (위자패지 집자실지) 無執故無失 (무집고무실)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愼終如始, 則無敗事 (신종여시 칙무패사)是以聖人欲無欲, 不貴難得之貨 (시이성인욕무욕 불귀난득지화)學不學, 復衆人之所過 (학불학 복중인지소과)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이보만물지자연이불감위)안정된 곳은 유지하기 쉽고, 조짐이 없는 것은 도모하기 쉽다. 무른 것은 가르기 쉽고, 미세한 것은 흩어지기 쉽다, 싹트기 전에 처리하고, 뒤틀리기 전에 대비한다.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만한 싹에에서 생겨나고, 구층의 누대도 한 삼태기 흙에서 시작되면, 천리길도 발밑에서 시작된다. 인위로 시작하는 자는 실패하고, 고집하는 자는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작위가 없으니 실패가 없고, 집착이 없으니 상실이 없다. 사람들이 일을 할 때, 늘 다 될 무렵에 실패한다. 끝을 삼가기를 처음처럼 한다면, 실패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욕심없기만을 바라고, 얻기 어려운 보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무식하기를 배우고, 뭇 사람들에이 간과하는 도로 되돌아온다. 이렇듯 만물의 자연성을 도울 뿐 감히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다.)여기서 자연의 의미는 인위나 고집, 작위나 집착의 반대 개념이다. 또한 자연의 의미는 ‘본래가 이와 같음’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짐이 없고, 싹트기 이전의 상태, 처음의 원형생태가 바로 자연의 성질을 의미하고 있다. 자연은 이렇듯 자연과학이나 자연학파에서 말하는 자연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세속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버리는 것은 가장 소박하고 본원적인 것이다. 그것은 자연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도가 성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념은 유가 성인이나 또는 기타 속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념과 전혀 다르다. 도가의 성인이 추구하는 것은 일반인이 추구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들은 일반인이 귀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뜬구름처럼 여기는데, 이것은 도가의 반전통적 또는 반세속적인 가치취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가치관념이 행동으로 구현된 것이 ‘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