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외교정책1. 미국의 거국과 외교 정책의 전통미국의 건국을 전후한 18세기 중,후반의 서양 국제체제는 서유럽의 경우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수많은 계승 전쟁 및 식민지 쟁탈과 관련되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동유럽의 경우에는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가 이익 추구를 위한 극심한 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에 있었다. 이러한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태에서 미국의 독립과 외교 정책에 관한 기본 구상은 미국이 현실적으로 국제 체제 내에서 생존 할 수 있는 그러한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의 독립과 외교 정책에 관한 기본 구상은 미국이 현실적으로 국제 체제 내에서 생존 할 수 있는 그러한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은 그 역사의 처음부터 서양국제 체제 속의 일원으로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국제 정치의 일반 가치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국가의 힘과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 균형이라는 개념으로 대표되었다.미국의 그러한 정책을 대변하는 초기의 전형적 예로, 미국이 13개 식민주의 상태에서 독립을 추구할 당시 영구의 숙적인 루이 16세에 의해 통치되던 프랑스와의 군사동맹, 그리고 그와 함께 부수적으로 동반된 스페인 및 네덜란드와의 외교 협력을 통하여 8년간의 독립전쟁(1775~1783)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그 당시의 미국이 영국과 같은 강적에 대해 자국의 군사력만으로는 승리가 불가능함을 인지하고 외교관계와 군사 동맹을 통한 자국의 목표 달성을 추진했다는 것은 미국이 사실상 국제 정치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며, 그러한 이해는 현실주의의 의미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뜻하는 것이었다.미국의 외교 정책은 자국 역사의 시작을 계기로 여러 가지의 혼합적 요소를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적극주의와 소극주의, 국제주의와 고립주의, 패권주의의 병행이었다.미국의 현실주의는 자국을 포함하는 세계의 어느 국가도 국제 정치의 역사와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며 따라서 세력 균형과 같은 기본 같은 해 12월 7일 지난 1년간의 미국의 행동을 비난하며 하와이의 태평양함대를 공격하였으며, 일본의 동맹국인 독일도 미국에 선전 포고함으로써 미국은 제 2차 세계대전에 공식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무력화되어 감에 따라, 이제 남은 문제는 일본으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사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확장세를 유지하여 중국에서 계속 승리하고 있었으며 동아시아의 많은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그러는 가운데, 트루먼이 루스벨트를 승계하고 일본에 원자탄 사용을 결정하여 제2차 세계대전은 종결되었다.미국이 이렇게 제2차 세계 대전에 참가한 정치적인 이유는, 미국은 이미 그 당시 외교, 경제력에 비추어 국제 정치에서의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수구 세력이었으며,수정주의 국가들이 세계의 세력 균형을 파괴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군사적으로는, 수정주의 국가가 전세계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방관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은 유럽 점령후 남미와 중동 지역으로 진출이 가능하고, 일본은 중국과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전역에 군대를 배치하여 세계가 그들의 수중에 귀속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영국의 동남 아시아 군사 기지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식민지, 그리고 영연방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위협하고, 또 미국의 군사 기지인 필리핀을 속박하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는, 독일과 일본이 세력 확장을 통하여 자급 자족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이 주장하는 자유로운 경제적 경쟁을 거부하고 미국의 번영과 진전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독일과 일본 양국은 자국의 영향권하의 지역에서 오일 등의 원료, 저렴한 노동력, 그리고 시장을 포함하는 자급 자족 경제 구축을 위한 움직임을 드러내고 있었으며,이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치명타로 간주되었던 것이다.제 2차 세계 대전의 종결은 전세계의 국제 정치 판도를 완전히 전환시켰다. 과거 세계 제 1이 패권국이었던 영국은 피폐하게 되었고, 그 도전자인 독일 역시 마찬기지의 상황에 처하 대량 보복의 개념에서 탈피하여 안정된 억지(stable deterrence)개념이 도입되어 전략적인 유연 대응전략으로 전환되었다. 안정되 억지 개념은 위기 또는 전쟁시 핵무기 사용이 강화되기보다는 절제되는 방향으로 핵전력이 배치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으로,미 소 양국이 사실상 상호 핵 인질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 개념은 미국으로 하여금 많은 핵 전쟁 대안을 고안하게 하였고, 그러한 상황에서 창출된 것이 핵전쟁시의 지구적 차원과 국지적 차원,그리고 민간인과 민간 시설의 공격보다는 군사 시설의 우선 공격 등의 방안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핵전쟁에서의 통제는 기술 발전의 이유로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고, 케네디와 맥나마라는 1963년경에 이르러 상대 적국으로부터의 기습 공격에 대한 2차 공격을 통하여 소련인구의 3분의1 그리고 소련 산업 시설의 3분의2까지의 파괴를 의도한 확증 파괴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러한 구상은 후에 소련의 핵능력 증대에 따라 상호 확증 파괴(MAD)개념으로 정착되었다.존슨 행정부도 기본적으로 케네디와 마찬가지의 정책을 구사하였다. 존슨 행정부가 소련과의 데탕트를 추구하기 시작했다고는 하나 군사적으로는 역시 과거처럼 군사력 증강을 계속하였다. 존슨 행정부의 국방 정책은 아직도 확증 파괴의 개념에 근거하여 소련과 중국이 감히 공격할 수 없도록 핵능력을 보유하는 것이 핵억지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전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미국은 GNP의 8퍼센트 수준에 달하는 국방비를 책정하였다.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행정부닉슨 행정부가 등장했을 당시의 미국의 국내외 정세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우선 미국은 국내적으로 3조 달러에 이르는 정부 재정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베트남 전에서의 철수 여론이 급등하였다. 국제 정세는 미국과 소련이 세계 각지에서 핵 과잉 살상의 극단적인 대립을 계속하는 가운데 양국이 주도하는 서구 민주와 공산 진영에서 분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중국은 소련이 중국과의 협의 없이 중거리 핵미사일의 폐기가 아시아에 배치된 SS-20에 확대 적용되고, 또 고르바초프가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에서 아태 군비 통제에 대한 세부안을 제시하였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놀라운 일일 이었다. 50만 소련군 병력의 일방적인 감축 선언, 극동 지역 전략군구의 오호츠크 해 기지 어로의 전략 목표 재조정, 그리고 1989년의 소련의 동구 자결권 인정 등 계속되는 소련의 발적 영향력 축소 정책은 미국으로서는 소련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일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더 나아가 1989년의 몰타 정상 회담에서 NATO와WTO의 정치 기구화,화학 무기 폐기, 중해 해군 감축 등의 합의를 도출하였다.1990년에는 중부 유럽 군 규모가 19만 5.000명으로 감축되도록 합의되었으며, 1990년에는 독일의 통일과 통일 독일의 NATO 잔류가 용인되어 서방의 큰 승리로 기록되었다. 미국은 1991년의 걸프 전에서도 소련의 협력을 유도하여 이라크를 무력화시켰으며, 1991년의 WTO 해체와 START I 체결, START I 에서 미국의 잠수함 발사 순항 미사일(SLCM) 제외, 소련보다 많은 SLCM 장착,전략 방위 계획(CLS)의 제외, 그리고 종국적으로 소련의 붕괴와 독립 국가 연합(CIS)으로의 재편을 달성하여 40여 년 간의 냉전 수행에 대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4. 탈냉전 시대의 외교 정책1991년 말 소련의 독립국가 연합으로의 재편과 러시아의 출발이라는 시점과 거의 동일하게출범한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 정책은 그 목표로 4가지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그 세부사항은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지역 위협 규제와 대량 살살 무기 확산 금지, 미국의 경제력 회복, 그리고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규정되고 있다. 우선, 지역 위협 규제는 이라크, 이란, 리비아, 그리고 북한 N등의 반미 이데올로기를 주창하는 국가를 제압하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국가들은 대부분 대량 실상무기확산 금지의 대상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패권을 위하여 이렇게 지역 위협 규제 와 대량 살상 무 6년, 그리고 하원 의원은 2년이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 임기가 절반이 되는 2003년 1월까지는 일부 결원을 고려한다고 해도 현재와 같은 공화·민주 구성 비율이 유지될 것이다. 공화당이 약간 우세한 하원과 공화·민주 양당의 의석이 50대 50 동수의 상원이 구성되었다. 상원에서 어떤 안건이 50대 50으로 가부 동수가 되면 상원의장인 부통령이 캐스팅 투표(casting vote)를 행사하기 때문에 상원 역시 공화당이 다수당이라고 본다. 이와 같이 앞으로 2년 동안은 상·하원에서 공화·민주 양당이 의석 수에 있어 비슷하기 때문에 양당이 사사건건 충돌하여 국정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외교 분야에 있어서 급격한 변화는 사실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내 정책에서는 세금 감축안과 같은 경제 분야와 낙태 허용 여부와 같은 사회 분야 등에서 팽팽한 대립이 예상되지만 외교 정책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상·하원 표결이 각 선거구의 이해를 반영하기 때문에 당 지도부의 지시라는 것은 없다. 각 의원들의 투표 결과는 기록으로 남으며 주요 정책의 대부분은 의회 청문회, 언론의 찬반 토론, 관련 단체들의 시위나 주장 표명 등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다. 이에 반하여 외교정책은 양당의 견해차이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입장이 상반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미국 외교는 초당적 지지를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례가 많다.부시 외교정책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중국문제이다. 금년 중으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실현되고 미·중간의 무역과 동아시아 정책에서의 협조가 증대될 것이지만 NMD나 TMD(전역미사일방위)를 둘러싼 갈등은 불가피하다.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부시 행정부에서는 ‘전략적 경쟁자 관계’로 칭하지만 실제 정책 추진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NMD 체제 구축을 둘러싼 양당의 논쟁은 계속될 것이지만 국무부와 상무부의 이해관계가 조정되고 그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음악과 생활]기말고사 시험문제 정리▶1◀ 고전음악: 단선율 [그리스, 로마 음악의 특징]그리스: 단선율적, 화성과 대위범이 없다. 즉흥적연주, 화련함, 복잡한 형식, 음악의 규제가 강함로마 : 수적관계, 물질과 하모니 중심, 순수하고 자유스러운 선율, 즉희적 연주악기: 1)리라:아폴로, 고전적, 정적 2)아울로스:디오니소스, 세속적, 쾌락적, 동적=>계속해서 19세기 낭만주의까지 간다.Alessandro Moreschi(1858~1922)카스트라토(남자):거세한 남자가수, 여자알토의 소리를 냄▶2◀ 찬트들의 특징1)그레고리안 찬트 : 로마카톨릭 대교주 그레고리안1세가 만듬, 단순율에 의함, 로마의 음악이 후진성을 띄어서 만들어짐, 313년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개종교와 재산이 증식되면서 사회적 통재를 위해, 각지방으 각지방으 찬트를 모아서 만듬, 감정표현이 없다. 일정한 마디가 없다. 일정과 리듬과 박자가 없다. 무반주, 단선율 음악(하나의 선), 변성기 이전의 남자만 부름(가사는 라틴어), 리듬은 도약기능이 없다., 종교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2)암브로시안 찬트: 암브로스1세에 의해, 한음절에 여러개의 음표가 주어지는 장식적인 형식, 주로 8마디로 되어있음, 유절형식을 갖고 있음, 단수나면서도 선율적이고 정교함, 가사가 성경뿐 아니라 자유로운 가사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마틴루터에 영향을 줌, 개인적인 감점을 노래함, 장단에 따라 엑센트와 리듬이 강조, 가사와 음악의 관계에 변화를 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을 중요3)시리아 찬트 : 기독교 찬송가의 시작과 발전의 본고장, 음절적 행식, 그레고리안 성가보다 더 리듬적이다. 암부로시안 찬트에 영향을 줌4)비잔틴 찬트: 비잔틴 제국에서 사용 , 헬라어 사용, 그리스음악보다 유대교적이고 시리아적인 음악이 많고 가사는 성스러운 의미의 시를 사용했다.5)갈리아 찬트: 프랑스교회에서 8세기까지 사용, 그레고리안 찬트로 바뀌기 전까지 사용, 여기에서는 비탄티음의 요소를 모두 포합6) 스페인의 모자라베 찬트: 스페인 교회에서 중세11세기까지 사용 , 지금은 약 20곡정도 남아있음, 당시의 사회상에 의해 알그레고리안 바뀌기 까지 사용됨, 연결의 역할만 하고 음악사적 비중이 없음▶3◀미사에 대해1)고유문 : 기운기도 , (유변)때와 시기에 따라서 항상 내용이 다르다.2)통상문 : (불변) 정해져 있다. 5가지[끼리에, 끄레도, 끌로리아, 쌍뚜스, 아누이데이]내용이 절대 변하지 않는다.▶4◀Guido d'arezzo에 대해(995~1050) 찬트가 부르기 쉬위지게함,4선 6음 만들어냄(도~라) 계명화, 종교음악가1670년 : ut ->do로 바뀜 1600년부터 Ti(시) 사용=>7음 4선보,장조,단조가 생김기보법-손가락을 이용해서 음정을 만들었다.▶5◀기용드 마소에 대해 [프랑스, 14세기 서양음악의 첫 번째 등장하는 작곡가 겸 시인]특징: 세속음악 120곡, 그중 종교곡은 딱 1개 (미사곡) " 노트르담 미사"=4성부 등장통상문(끼리애+끄레또)이런식으로 떨어진 것을 뭉쳐두었다. 아로스노바 새로운 음악의 리듬을 충실히 사용, 3박자와 2박자를 모두 사용, 당김음을 많이 사용, 지방성당이름[노트르당미사] 미사의 통상문(변하지 않은것)을 5성부로 최초의 곡통상문[끄레도,끌로리아, 쌍투스,아노스데이]=>하나로 작곡(단성이 아닌 다성 음악)▶6◀세속적인 음악(중세)종교음악(그레고리안 찬트 이외의 것들) 이외의 것들 중세의 세속음악종류:1)성악:주로 귀족들이 즐겼고 계층 높은 사람들 2)기악:평민 귀족 모두 대부분 춤곡형식은 가사가 궁전의 사랑에 대한것들, 유형별로 분류가 없다. 가사에 사용된 시의 형식에 따라 분류▶7◀ 밀레뜨레 첸또(14세기): 이태리 종류의 3가지1)마드리갈 : 이탈리아 노래중 가장 먼저 등장한 형식, 14C 크게 유행, 2개~3개의 반복구가 있다, 3행절과 반복절을 갖고 있으며 2성부가 일반적이다. 가사내용:자연과 사랑이 주내용2)카치아 : 돌림노래, 극적인 표현적 강조, 반복구를 가지고 있음, 한성구가 단성구를 끌어가는 것처럼, 사냥하는 장면을 대화체로 묘사한 가사, 사실적 표현, 3성부(2성부는 멜로디, 1성부는 반주형식)로 이루어짐돌림노래, 반복구를 갖고 있다.3)발라타 : 14C 밀레뜨레첸또에 등장, 몇 개의 단성노래, 궁정의 사랑을 나타낸 가사, 2~3성부로 작곡됨, 프랑스 마쇼형식와 같은 형식 반복구가 있다. 발라타만 정형적 형식임▶8◀ 귀용 뒤 파이 [15세기]ten, alto, base 구분 시킨 사람▶9◀바로크음악의 특징:대비,콘체르토 양식, 숫자저음1)opera : 큰무대 필요, 의상필요, 연기, 관현악등 음악 필요, 전선적, 세속적 가사, 드라마적 , 종합적
바람직하지 못한 훈육의 예Ⅰ. 서론초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의 문제 행동들은 일선교사가 항상 직면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문제 행동에 대한 교사의 훈육이 학급의 질서 유지는 물론 학생의 학업 성취, 사회성, 및 도덕성의 발달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훈육은 학급경영에서 매우 중시되는 활동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의 문제 행동에 직면했을 때 효과적인 훈육방법을 찾지 못하고 벌과 통제 위주의 구태의연한 훈육 방법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특히 초임 교사의 경우에 흔히 볼 수 있듯이 혼란과 갈등을 일으켜서 훈육의 교육적 효과를 충분히 거두지 못하고 있다.이처럼 훈육과 관련된 부정적인 결과들이 야기된 것은 무엇보다도 훈육을 "훈육=체벌"이라는 비교육적인 활동으로 그릇되게 인식하여 왔고, 교사들에 의한 효과적인 훈육의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학급경영에서 필요한 다른 활동들에 비해 소홀히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다.학급 경영의 주요 활동으로 기초·기본 생활 습관 형성이라는 초등교육의 목적과 함께 전인적 인간의 완성이라는 교육의 목적을 완성하는데 바탕이 되는 훈육이 학급경영의 실제에서 바르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훈육의 교육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람직한 훈육의 특징이나 교사의 자세를 숙지하고 교사 자신이 담당한 교육 환경에 알맞은 훈육의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이에 본고에서는 훈육에 대한 그릇된 오해로 빚어진 바람직하지 못한 훈육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분석하여 봄으로써 바람직한 훈육의 기본 방향과 시사점, 훈육시 초등 교사로서의 주의 사항 등을 얻어보고자 한다.Ⅱ. 훈육의 교육적 의미초등 학교에서 훈육의 대상이 되는 문제 행동으로는 '복도에서 뛰어다니기, 실내에서 떠들기, 친구 괴롭히기, 쓰레기 함부로 버리기, 욕설하기, 청소 안 하기, 학교 시설물 훼손하기, 정리 정돈 안 하기, 실내화 신고 밖으로 나가기, 인사 안 하기, 금품 갈취하기, 화장실 사용 후 뒤처리하지 않기, PC방 가 교수·훈육은 벌 및 보상을 통한 학생행동의 지시적이고 권위 적인 통제·훈육은 환경의 질서와 안정을 헤치는 학생의 행동과 관 계되는 교사의 행동에 초점을 둔 경영의 하위 행동·훈육은 학교에서 수용될 수 있는 행동을 하도록 학생을 돕는 교사의 행동·훈육은 일반 성인 사회의 모임과 과업 장소의 규범에 부 합되는 행동 규칙을 따르게 하는 것·훈육은 생산적인 학습을 하는데 충분할 정도로 질서 있는 학생 행동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방법들·훈육은 교육목적을 추구하는 활동(주로 교실수업)에 방해 되는 문제 행동을 예방·억제하여 교실 내, 학교 내에서 바람직한 풍토를 조성해 나가는 과정·훈육은 개인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내적 기제의 발달에 관심을 가짐·훈육은 아동이 인간성을 유지하고 사회를 돌볼 수 잇는 마음과 정신의 품성 그리고 이것을 발달시키는 전략【표1】훈육의 의미훈육의 한자어 '訓育'의 어원을 풀이해보면 '자식에게 이치와 도리에 따르도록 가르쳐 기른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우리말 큰 사전』에서도 훈육을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치고 기름'이라 정의내리고 있어 앞서 살펴본 'disco'와 같이 훈육에서는 교육·발달적 의미가 보다 강조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결국 훈육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도리와 이치에 부합되는 행동을 가르치는 활동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정의해보면 훈육은 사회 집단의 규범이나 과업 수행 및 상황이 요구하는 행동에 어긋나는 행동을 개선하는 방식이다.이러한 훈육의 범위를 학교나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범위로 한정시켜본다면 학교나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훈육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학생의 문제 행동을 예방·지도하는 것으로 학교 또는 학급 내에 교육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행위이다. 결국 , 학교(학급) 훈육은 학교의 질서를 유지하고 학생의 안전과 복지를 증진시키며 건설적인 학습 환경을 조성하여 문제행동을 예방하고 개선시키려는 학교(학급)의 경영활동이라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학교 훈육보다는 초등학생의 훈육지도가 담임 교사에 의해 가장 직실을 깨닫게 하고 그들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가르치는 일종의 방법이다.셋째, 훈육의 현대적인 개념이 지나친 허용(극단적인 허용, 완전한 자유, 무질서, 혼란)을 조장하는 뜻으로 변질되어 버린 경우이다.특히 이러한 훈육의 변질된 개념은 학교 훈육과 연계되어 훈육의 밑바탕을 이루어야 할 가정 훈육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 가정이 핵가족화가 되고 각 가정마다 1명 정도의 자녀를 두면서 부모의 자녀에 대한 훈육방식은 예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민주화되고 개방화된 사회와 가치간의 변화로 지난날 비민주적, 비인격적인 훈육에만 시달려온 기성세대들은 '미운 자식 매 하나 더 주고 예쁜 자식 떡 하나 더 주는' 훈육을 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오늘날 자신만을 아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학생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친 허용으로 개방된 훈육의 모습은 진정한 교육적인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 훈육은 본질적으로 지도(guidence)이다. 따라서 무한한 개방과 자율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 가능한 행동과 수용 불가능한 행동사이의 차이를 배우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권리와 소유권을 고려하여 행동을 결정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넷째, 훈육을 교육적 체험에서 필요하지 않은 비교육적인 분야로 보는 경우이다.학부모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훈육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점차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훈육을 힘을 위축시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 훈육의 담당자인 교사 스스로가 '훌륭한 교사는 아무런 도움 없이 그들 스스로 훈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확고한 훈육은 학생들에게 심리적으로 해가 된다. 문제 행동은 교육과정만 충분히 흥미로우면 없어진다. 학생의 잘못된 행동은 교사의 영향을 넘어서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문제가 원인이 된다' 처럼 훈육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주로 소극적인 훈육) 훈육에는 두 가지 다른 상황이 있다. 소극적 훈육과 적극적 훈육이 그것이다.소극적 훈육(negative discipline)이란 바람직하지 않은 학생의 행위에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이모씨(34·여·서울 송파구 잠실동)는 4일 성수(가명·7)가 운동장 벤치에서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친구와 다툰 뒤 사과하라는 담임교사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것이다.이씨는 또 평소에도 교사가 공책을 거꾸로 쓰거나 숟가락을 자주 떨어뜨린다며 복도로 쫓아내고 “아들을 데려가라”고 전화로 호통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수는 “선생님이 무섭다”며 대인기피증까지 보여 일단 휴학을 시킨 뒤 한 공익재단의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맡겼다. 이씨는 “훈육 차원을 넘어 어린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고 학대하는 교사들이 교단에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교권 침해 우려도 많지만 자질이 부족한 교사와 무성의한 수업태도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만도 크다. 최근 서울 A초등 2학년의 K교사는 심하게 떠든다는 이유로 남학생 5명의 바지를 벗기고 교실에 서 있도록 벌을 줬다. 그러나 “아이들만 피해를 본다”며 문제화를 꺼리는 일부 학부모의 반대로 유야 무야 넘어갔다.서울 C고 2학년 K군(18)은 지난해 특별활동 교사의 체벌에 못 견뎌 휴학했다. 한 학생이라도 지각하거나 결석하면 단체로 불러 세워 각목으로 때리는 등 체벌을 일삼았다. K군은 올해 다시 복학했지만 아직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1997∼2000년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에 접수된 상담 1922건을 분석한 결과 체벌, 촌지요구 등 교사의 문제로 인한 상담이 36%(687건)로 가장 많았다. 학생끼리 서로 뺨을 때리는 체벌을 한 교사에서 교실에서 흡연하거나 수업 중 인터넷 바둑을 두는 교사까지 갖가지였다. 이런 불만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없다.【사례 2】끔찍하고 불쾌한 패륜적 사건이다. 군복무를 마친 24세의 대학생이 이렇게 반인륜적이고 엽기적인 살인행위를 했다니 상식으로는 믿어지지 않는다. 험난한 세상에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은 어버이날이 들어있는 가정의 달에 일어난 이 사건을 그냥 외면해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가정교서 학교운영위원장이 교장선생님께 전해 드리는 전수식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고 난 후 유행처럼 번져 요즈음 학교 현장의 체벌은 당연시 된 분위기이다.가정에서의 아동학대 또한 시민단체에서 벌이는 켐페인 사진을 보고 경악을 참기 어려웠으며 심각함을 알 수 있다.대학 입시를 위해서 획일적인 주입식의 재미없는 고통스러운 수업이 아침 이른 시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 한, 체력으로나 심리적으로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교실붕괴’는 필연이다. 이를 교사는 정당한 ‘당당봉’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체벌의 방법으로 다스리는 모습이 초·중·고등학교까지 흔히 있는 일이다.이처럼 가정과 학교에서는 변함 없이 아이들이란 항상 닥달하고, 들볶고, 윽박지르고, 회초리를 들어야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 그래서 일류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나라 거의 모든 교직자와 부모들의 생각이니 이 또한 식민교육의 잔재가 아닌가 싶다.그럼에도 체벌은 늘 교육이라는 명분과 ‘사랑의 매’로 미화되어 자행해 왔다. 그러나 과연 기대한 것만큼 교육적인 효과가 있을까! 오히려 반항심, 적개심, 증오심을 유발시키는 비교육적인 인간성의 황폐를 낳지는 않는 것인지 곱씹어볼 일이다. 자칫 체벌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굴욕적인 삶을 살던가 아니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비극을 맞을 수도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교육은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라도 소중히 여기는 생명존중사상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교육은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 중에 가장 고귀한 인간인 아이들에게,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행한 체벌은 폭력에 다름 아니며 반생명의 인격권의 침해요 야만이다.오죽하면 지난달 15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의 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의 체벌·조기·입시경쟁교육과 학벌중시 풍조까지를 포함해서 아동권 침해라는 지적을 했을까! 자성할 일이다.요사이 어린이들은 과거 어른들과 사뭇 다른 훈육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비판과 질책에도 】
한 국 전 쟁Ⅰ. 머리말.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을 종합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 本考의 목적이다. 전쟁을 누가 선제 공격을 감행하였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보다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국내외적인 문제를 고찰 분석함으로써 왜,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문제삼고자 한다.초기의 연구들은 한국전쟁을 냉전과 관련지어 연구하였다. 그 이유는 냉전이 어느쪽에서 먼저 시작되었는가 하는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전쟁의 기원의 논쟁이 가열되었기 때문이다. 전통주의 학파는 냉전이 소련에 의해 유발되었고, 한국전쟁 역시 소련의 냉전 확대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고 해석한다. 반면 수정주의 학파는 미국이 자신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戰後의 국제 질서를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국가의 통합이라는 방향으로 개편해 나갔다고 전제하고 미국의 이러한 대외정책은 자연히 소련을 압박해 소련의 대응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하면서, 냉전이 미국에 의해 시작되었듯이 한국전쟁 또한 미국에 의해 계획되고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그러나 이상의 것들은 한국전쟁을 미 소 냉전 관계의 산물로만 파악하고 국내외 요인들이 무시되고 있어, 곧 새로운 시각들이 일어나게 되었다.아래에서는 전통주의적 해석과 수정주의 해석을 살펴본 후 수정주의 자체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새로이 제기된 학설들을 살펴보겠다.Ⅱ. 전통주의 해석.한국전쟁의 기원을 Stalin의 침략적 제국주의에서 찾고 있다. 즉 Stalin이 한국전쟁을 지원하여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설명한다.북한이 Stalin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이 학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소련이 한국전쟁을 일으킨 원인을 보다 명확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① 소련의 주요한 공격에 앞서 미국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게 하려는 견제 행위였다는 것이고 ② 서방측의 약한 지점을 찾으려는 하나의 움직임이었다라는 '약점 지점 노림설'이고 ③ 소련이 공산주의의 팽창에 대한 미국의 저항 의지를 시험해 보려는 것으로서 '미국의 결의 시험설' 혹은 '저항력 시험설'이고 ④ 단지 소련이 자국의 강력함과 미국의 약함을 증명해 보이려는 일련의 무력 시위의 최초의 행동이었다는 '무력 시위설'이고 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실험이란 미국의 적극적인 정책을 와해시키려는 소련의 전략적인 행동이었다는 '델레스의 이론'이다.이상의 해석은 명백하게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 내지 자료가 발굴되거나 존재하지 않아서 오직 정황들에 의한 분석만이 가능할 따름이었다. 그런 가운데 1970년 후루시초프의 『回顧錄』이 간행되면서 소련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가 시도되기에 이르렀다. 그의 회고록에서 후루시초프는 비록 소련이 북한에게 남침의 청신호를 준 것은 인정했지만, 남침은 원래 김일성의 생각이었고 공격을 위한 최종 계획안을 작성한 것도 북한이었다고 주장하였다. 1949년 3월과 1950년 초, 김일성이 모스크바로 가서 남침 계획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자 Stalin은 계획은 신중하게 세워야 한다고 설득하였고, 두 번째 방문시에는 마오쩌뚱(毛澤東)과 상의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후루시초프의 회고록에 나타난 설명은 '한국전쟁은 內戰이었다'는 소련측의 주장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후루시초프는 1949-50년 겨울이 되면 북한군의 戰力은 소련의 원조에 힘입어 남한군의 전력에 비해 월등히 우세하게 되었는 데도 군사 원조 부분을 언급하고 있지 않았다. 또 소련의 군사 고문단이 북한에 잔류하면서 남침을 위한 최종 계획안 작성을 도왔으며 북한군이 남침할 때 38선에 있었으며 북한군의 작전 진전을 예의 주시했었다. 결국 소련은 한국전쟁을 주도하거나 지시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북한의 남침을 지지, 후원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전통주의 해석은 진부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국제 문제에 있어서 Stalin의 태도가 호전적이지 못하였다는 사실과 당시 한반도 내 남북한간에 고조되어 가던 심각한 대결 구도의 형성 과정 등의 중요한 국내적 요인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Ⅲ. 수정주의 해석.한국전쟁은 미국과 이승만 정부가 음모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전쟁을 도발하도록 함으로써 일어났다던지 혹은 미국이 이승만의 북진 통일론을 지지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선제 공격을 하도록 유혹하여 있어났다고 하는 수정주의 해석은 미국과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이러한 수정주의를 처음 주장한 사람은 Issac F. Stone인데 그는 1952년에 출간된 『한국전쟁 비사』(The Hidden History of Korean War)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하여 전쟁이 일어나기를 원했던 것으로 추론하면서, 이승만이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관한 보고를 의도적으로 묵살하였다. 따라서 북한의 남침은 이승만과 미국측의 침묵에 고무되어 일어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방관한 이유를 미국이 대외 개입의 폭을 넓히고 국방비 증액을 도모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이러한 Stone의 해석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당시 이승만 정권이 전쟁을 필요로 할만큼 위기에 처해있었는가라는 것과 남한이 북한의 기습 공격을 사전에 알고도 의도적으로 무시했었는가라는 문제점이 해결되어야 한다. 前者에 관하여 메릴은 이승만 정권의 생존에 관한 장기적인 전망은 어두웠을지라도 즉각적인 붕괴의 위험은 없었다. 그리고 미국의 지원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이 도와 줄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오히려 북한은 남한에서의 상황의 호전에 위기의식을 느꼈으며, 더 늦기 전에 한반도를 공산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後者의 문제 역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에 공격을 받은 남한측이 충격, 두려움 그리고 패배감 속에서 굉장히 당황해 하고 허둥대었다는 사실은 남한측이 북한의 침략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허구임을 증명해준다. 따라서 Stone의 '침묵의 음모설'은 설득력이 희박함을 알 수 있다.그 외 수정주의자로는 인도의 캘커타 대학의 Karunakar Gupta교수와 Joyce Kolko and Gabriel Kolko를 들 수 있다. Gupta교수는 한국전쟁은 남한이 북한으로 하여금 전면적인 반격을 하도록 유인하기 위하여 38선 상에서 잦은 분쟁을 일으킴으로써 일어났다는 '남침 유도설'을 전개해다. 그가 증거로 제시한 남한군의 해주침입은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또 Kolko부부는 북한의 선제 공격을 인정하면서도 북한군의 진격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는 것을 지적하여 이것은 남한군의 고의적인 퇴각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승만은 북한의 남침을 이용하여 남한의 붕괴를 막기위해 미군이 투입되도록 유도하였다고 설명했다.그러나 Kolko부부의 주장은 당시 실제 상황과 합치되지 않는다. 미국의 확실한 의지를 모른 채 고의적인 퇴각을 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당시의 전투 진행 상황이 남한군의 퇴각의 속도를 결정지었지 고의적인 퇴각은 아니었다.이와 같이 수정주의자들의 논리가 많은 문제점이 있음이 차차 공인되자 한국전쟁에 대한 입장에도 차차 변화가 일어났다. 즉, 북한의 남침을 인정하는 수정주의자들이 늘어났고 소련에서 조차도 북한의 남침을 인정하기도 하였다.Ⅳ. 그 밖의 학설.⑴ 북한측의 주장.한국전쟁의 한쪽 당사자인 북한측은 남한의 이승만 정권이 미국의 명령을 받아 북침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여러 가지 문서와 이론을 종합해서 검토해 볼 때, 북측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고 오히려 북한 자신의 남침을 합리화하려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하겠다.⑵ 지역 정치설.이 해석은 한국 전쟁을 동북 아시아의 지역적인 상호 관련성을 중시하고 있다. 즉, 소련이 최소한의 위험부담으로 독자노선을 걸으려는 중공을 자국의 영향력하에 복속시키고 일본에서의 미국의 지위 강화를 좌절시키려는 의도에서 북한의 남침을 지지, 후원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북한의 남침을 철저한 소련 영향아래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George F. Kennan, Charles S. Bohlen, Adam B. Ulam같은 사람들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전반적으로 그 지위를 강화하려고 했고, 소련은 그것을 막기 위해 한반도를 선제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 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Wilbur Chaffee, Harrison Salsbury, Edgar Snow등은 소련이 중공을 자국의 영향력하에 두려는 의도에서 한국전쟁을 이용했다고 주장하였다.이러한 주장은 중공과 북한간의 관계를 너무 경시하고 있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전쟁 당사자의 국내 요인을 무시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 양 적대 정권간의 대결의 격화 과정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⑶ 북한 지도자의 권력투쟁설.북한 지도자들간의 권력투쟁이 남침과 관련있다는 이 해석은 당시 북한의 최대 파벌인 김일성파와 박헌영파 사이의 권력투쟁에서 박헌영이 김일성을 제압할 목적으로 남한 내의 게릴라 활동과 무력 남침을 촉구했다는 것이다.당시 이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므로 이 해석은 한국전쟁의 기원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갈다. 그리고 북한 최고 지도층의 정책 결정 분석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인간복제 대해서쪧ⅰ.서론인간복제, 나와 같은 또다른 나를 만들어내고 똑같은 아이를 열이건 스물이건 만들어낸다는 개념의 인간복제는 그 상상만으로도 사람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첫째 아이가 아프면 똑같은 아이를 하나 더 복제해서 그 장기를 떼어내 사용한다든지, 요즘 사람들이 기피하는 힘든 노동을 대량생산된 복제인간들에게 시킨다든지, 소설과 같은 이야기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이러한 인간복제의 가능성이 현실화되면서 종교계는 말할 것도 없고 시민단체와 일부 과학자들조차 인간복제가 가져올지도 모를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과학자들은 주로 복제기술이 가져올 지도 모르는 예기치 못한 결과 때문에 염려하는 반면 종교인들은 "신의 영역"인 생명창조에 인간이 개입한다는 사실 자체를 혐오하고 있다.인간복제의 불법화를 선언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하여 주요 국가들의 지도자들이 반대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고, 우리 나라도 지난 97년 생명공학육성법 중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 제기되어 현재 국회 계류상태에 있다. 이제 시민단체와 전문가 등의 공청회를 거쳐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것과 관련한 법안이 곧 법제화될 것이라 한다. 이처럼 논란을 거듭하며 발전하는 생명복제기술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ⅱ.본론1. 들어가며인간의 복제를 반대한다. 이후에 설명이 된 실험 과정상에 일어나는 여러 문제 때문이기도 하고 인간을 유전자로 보는 환원주의적인 시각에 대한 반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의 복제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와 윤리적인 문제를 구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얽혀 있는 문제이다. 최근 WHO에서는 인간의 복제를 금지하고 동물의 복제는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복제 기술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다. 우리가 가진 질문들 ... 우리에게는 아직 물음표가 많은 단계이다. 우리는 그에 알맞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복제 기술로 들떠 있는 사회를 볼 때 인류의식의 발전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rdon이 이러한 핵 이식 실험을 통해서 성장한 개구리를 얻을 수가 있었다. 완전한 개체의 발생은 Dolly와 같은 완전히 분화가 된 체세포가 아닌 아직은 덜 분화가 된(올챙이 전까지의 세포들) 세포의 핵이식을 통해서만 얻을 수가 있었다. cell type마다 다른 양상을 보였는 데 특히 내장 세포에서 완전한 개체를 얻을 수가 있었다. 1983년에는 McGrath와 Solter가 발생 초기의 세포를 이용하여 쥐를 완전히 복제하는 데 성공을 했다. 포유 동물을 가지고 한 핵이식 실험에서는 발생 초기에 있는 세포들은 totipotent하며 점점 발생이 진행 될수록 totipotency는 떨어지는 것을 확인 할 수가 있었다. 반면 소와 양에서는 쥐와는 달리 이런 경향이 덜한 사실을 알아내었다. 월머트 박사가 복제의 첫 대상으로 양을 택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한다. 1990년에는 복제 송아지가 만들어 졌다. 복제 개체를 만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위의 설명과 같은 핵을 이식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발생하고 있는 핵들을 인위적으로 발생 초기에 떼어놓아서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개체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송아지의 복제와 최근에 발표가 된 원숭이의 복제는 후자를 이용한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방법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으로서 전자는 어버이의 유전자형이 완전히 똑같이 전달이 되는 것이며 후자는 어버이의 유전자와는 다르나 발생이 된 개체들간에는 유전자형이 동일하다.인간에 대한 복제 실험은 1993년 10월 13일 미국 조지 워싱턴대 메디컬 센터 시험관 수정 프로그램팀인 제리 홀과 로버트 스틸면 교수가 인간의 배자(embryo-수정란이 분열을 해서 하나의 얇은 배모양을 세포를 이룬 상태...이 상태에서 자궁에 착상이 된다.)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불임 치료를 위해 인간 배자에서 세포를 분리시킨 뒤 여기에 난세포의 투명대와 비슷한 물질을 입혀 영양을 공급했다. 이 방법은 위의 후자와 같은 방법이다. 따라서 불임 부부는 체외 수 보통 난자의 상태는 세포 주기상 세포 분열의 과정에서 멈추어진 상태로 있으며 보통의 체세포는 분열이 끝난 상태에서 다음의 분열을 준비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이 두 과정의 주기를 맞추어서 이식을 했으며 Dolly얻게 된 것이다.4. 복제의 기술적인 한계현재의 기술적인 한계를 많다. 인간을 복제하여 장기를 이식한다든가 인간을 여럿 만들어서 범죄에 이용한다든지는 하기에는 한참의 시간이 더 있어야 한다. 뚝딱 하고 도깨비 방망이처럼 인간이 나오 는 것이 아니다.우선은 실험의 성공률이 낮다. Dolly는 277번의 실험 속에서 탄생하였다. 그 과정 중에 많은 개체들이 수정란에서 죽고 자궁에서 착상이 되어 죽고 태어나서 자라다가 죽었다.성공률이 낮은 원인은 우선 포유 동물은 세포의 주기를 맞추기가 힘들며 핵을 난자에 집어넣는 과정 중에 1kV의 전압을 짧은 시간동안 가하는 데 이 자극에 의해 핵과 난자가 녹아버려 5분 안에 엉겨 붙어 세포 융합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핵에 이상이 생길 수가 있다. 핵의 이상은 당장 발생의 과정 중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몇 대 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다른 하나는 종마다 발생의 특성이 틀리다는 것이다. 모든 체세포가 복제에 사용이 될 수가 없다. 어느 부분의 체세포가 적당한지는 일일이 각각의 조직 세포로 실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같은 포유류라고 해도 같은 기술(어느 부위를 어느 정도 언제.....등등의)을 적용 할 수가 없다.인간의 복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더 낮은 실패율을 보일 확률이 많다. Dolly에 쓰인 기술이 인간에 적용이 바로 될 가능성은 없다. 각 종마다 다른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복제의 과정 중에 생긴 인간 복제 실패작들은? 수정란의 과정에서 자궁에서 유산이 된다면? 그보다 태어났을 때에 유전적인 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이것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최근에 조지 타운 대학에서 시험관에서 배양을 한 인간의 배아에 대한 유전자 시험을 거쳐서 배아가 유전병을 일으키는 결함 유전른 속도로 성장을 해야만 한다. 1-2시간만에 어른이 되어야 한다. 기술적으로 개체를 빠르게 성장을 시킬 수가 없다. 한가지의 가능성은 어린 태아를 이용하는 것이다. 어린 태아를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일은 현재에도 행해지고 있다. 어린 태아의 조직은 분열의 과정이 활발하기 때문에 결함이 있는 부위에 이식이 되면 그 결함을 보충해 줄 수가 있다. 복제를 통하여 태어난 태아는 면역 체계가 같기 때문에 지금보다 넓은 범위에서 응용이 가능하다.6. 복제의 응용 가능성복제 기술은 응용의 범위가 넓고 그 파급 효과도 크다. 가장 먼저 응용 할 수가 있는 분야는 축산업이다. 우생학적인 측면으로 우수한 형질을 가진 가축을 원하는만큼 복제를 할 수가 있다. 우리는 그와 동시에 우수한 형질을 가지도록 가축을 조작할 수도 있다. 생물을 질적인 측면에서도 양적인 측면에서도 통제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이것은 식량 문제의 해결을 도모 할 수도 있고 의학적으로도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최근에 미국에서는 사람의 유전자를 이식하여 근육이 다른 쥐보다도 훨씬 많은 쥐를 만들어 냈다. 이 기술이 소에게 응용이 된다면 복제 기술을 써서 휠씬 많은 양의 고기를 얻어 낼 수가 있다. 사람의 유전자를 이식하여 인위적으로 사람의 단백질을 생산해 내는 양을 만들 수도 있으며 우리는 복제 기술을 통하여 훨씬 많은 양의 단백질을 추출할 수가 있다. 문제점은 있다.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다양하다. 이들 다양성 속에서 조화가 있으며 균형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복제하고 번식을 시키는 동물들은 우리의 입장에서 우성이다. 자연 상태에서 우성이 아니다. 획일화된 동물들은 지구의 다양성을 해치고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 할 수가 있다. 지구는 커다란 하나의 계이기 때문에 인간이 완전히 예측을 할 수가 없다.두 번째로는 장기 제공의 가능성이다. 사람과 동일한 면역 체계를 가진 동물을 복제하여 장기를 이식 시킬 수가 있다. 동물의 장기 이식은 대략 2000년에는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이외에 희귀 동물을 보기관과 뇌를 발달시키면서 외부 자극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여러 환경 정보를 뇌에서 처리한다. 이와 같이 인간은 물리적 사회적인 환경에 적극적인 작용을 하고 영향을 받는 역사적인 존재이다. 인간에게 일란성 쌍둥이는 서로 닮았지만 각기 독립적이며 존엄한 존재이다. 인간의 정체성과 역사성은 복제가 될 수가 없다.인간에 대한 환원주의적인 사고의 가장 핵심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80년대 말 미국 주도 아래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사업이 완성될 것으로 보이는 2005년까지 모두 30억달러가 소요가 되며 인간의 46개의 염색체의 서열을 밝혀 낼 것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모든 유전자를 찾아낼 수가 있으며 이 염색체를 자유자재로 합성을 하고 조작을 하여 유전자 치료도 가능하게 된다. 한마디로 인간의 생로병사를 관장할 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사업은 앞으로의 생명공학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줄 수가 있다. 현재 생명 공학은 경제적으로 큰 잠재력을 가진 부문이다. 유전자적으로 조작이 된 모든 생명체들은 특허를 받을 수가 있으며 자신이 밝혀낸 DNA의 서열도 특허를 받을 수가 있다. 따라서 인간의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이 되면 앞으로 인간의 유전자를 이용한 모든 상품에서 어느 정도의 로얄티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 먼저 서열을 밝힌 사람이 주인이다. 최근에 유네스코에서 추진 중인 인간 게놈 선언은 이런 염려를 담고 있다.'인간 게놈은 인류 공동의 문화 유산이다. 유전연구의 응용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고 건강과 복지를 개선 시켜야 한다.'현재의 상황에서는 생명 과학의 많은 부분이 자본과 관련이 있다. 로슬린의 연구소는 직원이 150명이다. 이들의 연간 수입은 3억 달러에 달한다. 생명 공학은 고부가가치의 사업이다.최근의 상황은 이런 면을 더 돌아보게 한다. 로슬린 연구소는 복제 기술을 계속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로슬린 연구소에서 낸 복제 기술에 대한 특허의 신청을 미국은 생명공학의 주도권이 영국으로 쏠릴 것을 우려하여 반대하고 있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