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E P O R T국제경영세미나학 과 : 무역학과학 번 : 199803878이 름 : 한 병 석< 목 차 >{■ 세계적 브랜드가 된 이유■ 7,80년대 어려움을 이겨낸 이유■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 경영전략(현재직면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별지(할리의 매출·역사, 참고자료)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치고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이름을 안들어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일제 오토바이들이 전세계 모터사이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가운데, 독특한 디자인과 전통으로 아메리칸 스타일 모터사이클의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는 할리 데이비슨은 'Easy Rider'나 '터미네이터'등 스크린상으로도 자주 출연하는 모터사이클의 단골손님이며, 우리나라의 도로에서도 이젠 제법 많은 수의 할리 오토바이를 볼 수 있다.자전거를 좀더 편하게 타기 위하여 연구를 시작한 윌리엄 할리와 아서 데이비슨이 만들어 낸 최초의 바이크가 할리 데이비슨의 시초가 된다. 할리 데이비슨이 현재 이렇게 유명한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바로 세계대전에서의 활약이다. 약 20,000여대의 할리 데이비슨이 전쟁에 참가했는데 그 배경에는 첫째로, 할리 데이비슨은 가장 편안하고 내구성 있게 디자인 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시 각 장치는 가장 낙후한 환경에도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고 기동력 있게 만들어져야 하며 날씨에 구애받지 않아야 하는 등 이런 점에서 그 실용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둘째, 표준화의 필요성이다. 기기뿐만 아니라 공구까지 모든 기술적인 부분의 표준화는 전시에 둘도 없이 중요한 사항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할리 데이비슨은 세계대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것을 발판 삼아 세계에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까지 경쟁자가 없던 대형 모터사이클 시장에서 할리 데이비슨은 혼다, 스즈끼, 그리고 야마하 등의 일본기업들의 저가-고품질 마케팅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급속도로 하락했다. 75% 이상을 유지하던 수치가 10% 이하로 떨어지면서 80년대 중반 한때 부도위기를 맞았다. 이 위기에 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디자인과 부품 고급화를 통해 예술성을 강화시켰고, 기존의 할리 데이비슨이 가지고 있는‘터프함·거친’이미지를 부각시켜 일본제품과는 다른 차별화 전략을 추구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독특한 배기음이다. 그리고 몇년후 할리 데이비슨은 마침내 시장의 선두 자리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88년부터 93년까지 5년간 모터사이클 사업부의 매출액은 연간 21%씩 증가했고 수익은 91년부터 93년까지 30%씩 늘어났다.또한 할리 데이비슨이 80년대의 불황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The Harley Owner Group(=H.O.G)의 창단이다. 일본제품에 비교해 비싼 가격을 고수하면서도, 동시에 마니아층의 지속적인 수요를 위해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시도했다. 그중 하나가 HOG로 소비자에게 할리를 사면‘오토바이’란 상품만을 사는게 아니라,‘할리 데이비슨 문화’를 즐기는 커뮤니티에 들어갈 수 있다는 로열티를 심어줬다. 할리 소유자 모임인 HOG 커뮤니티 회원은 전세계 72개국에 약 50만명에 달할 정도로 유대감이 깊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오토바이를 즐기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회사측은 판매점의 실내 장식까지 참견할 정도로 브랜드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본사 허가 없이는 로고를 사용할 수 없고, 간판이나 제품 진열까지 회사측의 룰을 따라야 한다. 또 오토바이와 관련된 부품과 장식품 등 1만여 품목을 함께 취급, 소비자에게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으로 HOG 회원들은 할리 데이비슨의 '판촉첨병'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주고 있다. 두번째는 할리 데이비슨에 준비된 여러 가지 소품들이다. 열쇠고리와 뺏지, 지포라이터, 시계등이 있고 매니아들을 위한 할리 데이비슨만의 의류와 헬멧, 마스크, 고글, 벨트등 다양한 품목들이 있다. 이러한 물건들이 할리 데이비슨의 오토바이와 절묘한 결합을 이루어서 할리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은 위의 소품들을 착용·소지함으로 독특한 할리 문화를 창출해 할리 데이비슨의 매출에도 상당중 37위를 하였다. 시장점유율 또한 30%대까지 상승했다. 또 2000년 이후 매년 10% 안팎으로 증가하는 전세계 대형모터사이클 시장의 40% 이상을 독식했다. 현재 30%가 조금 넘는 시장 점유율을 감안할 때, 계속적으로 성장시장을 선점한다고 하면 꾸준한 점유율 증가를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영업실적을 보면 할리 데이비슨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그러나 할리 데이비슨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큰 문제에 봉착해 있다. 왜냐하면 현재 할리의 주력 소비자들은 베이비붐 세대로 그들이 늙어가면서 이미지도 점차 노쇄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점을 해결하기 위해 할리 데이비슨은 최근 새로운 시도를 보이고 있다. 기존의 고객(=베이비붐 세대인 40대)들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소비자들인 여성들과 젊은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뜻하는 것은 할리의 오래된 전통적 이미지인 stylish하고 파워풀한 오토바이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젊은층과 여성들이 선호하는 부드럽고, 유연한 이미지를 추가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할리 데이비슨은 몇 가지 전략을 선보였다. 그중 하나는 새로운 고객들을 위해 오토바이를 약간 변형한 것으로 핸드그립을 작게 하고, 클러치 페달을 밟기 쉽게 하고, 좌석을 낮추는 등의 변형이 그것이다. 둘째는 Rider's Edge라는 교육 프로그램인데 이것은 어려서부터 운전법을 가르쳐 주는 등 운전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면허 취득에 도움이 되도록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어려서부터 할리 데이비슨의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그들이 훗날 성장해서 할리 데이비슨의 소비자가 되도록 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좀더 파워풀한 엔진을 달되 차체는 좀더 가볍고 튼튼한 재질을 씀으로써 힘은 더욱 강력해 지고 운전조작을 좀더 쉽게 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일례로 버지니아에서 보험원인 존 엠마는 Sportster (할리 데이비슨의 모델중 최경량 모델)를 처음 탔지만 이제 STATEMENT(단위 : 천 달러){2*************99H.D Motorcycle$3,161,046$2,671,314$2,280,929$1,890,932Parts & Accessories629,202509,624450,301362,598General Merchandise231,503163,909151,438132,705Buell Motorcycle66,94961,67258,05363,474Defense and Other2,2702672,6263,2304,090,9703,406,7862,943,3462,452,939Domestic3,422,2042,818,4922,361,8291,919,489International668,766588,294581,517533,4504,090,9703,406,7862,943,3462,452,939{1998199719961995H.D Motorcycle$1,595,415$1,382,809$1,199,163$1,038,335Parts & Accessories297,140241,940210,229192,093General Merchandise114,48495,05590,713100,248Buell Motorcycle53,52740,30524,38014,154Defense and Other3,3902,4606,7425,6362,063,9561,762,5691,531,2271,350,466Domestic1,566,5591,304,7481,110,527949,415International497,397457,821420,700401,0512,063,9561,762,5691,531,2271,350,466{1994199319921991H.D Motorcycle$890,578$729,183$662,489$548,145Parts & Accessories161,928127,803103,58694,319General Merchandise94,38371,21552,14636,023Buell Motorcycle5,791---Defense and 사는 바이크 설계사무실의 제도공으로 일했던 21살의 윌리 암 할리가 원형 제작자인 아더 데이비슨(Arthur Davidson)과 함께 내연기관을 단 자전거를 스스로 만들어 보고자하는 의지에서 그 신화가 시작됐다. 그 후 Arther의 형제인 윌리암 데이비슨(William Davidson, 당시 공작기계 제작공)과 월터 데이비슨(Walter Davidson, 당시 철로공)이 합류했다. 이들의 첫번째 캬 브레이터는 양철깡통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끊임 없는 연구개발과 시행착오를 거쳐 곧 최초 의 할리 데이비슨 시리즈인 'Silent Gray Felow' 가 시제품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들은 Davidson의 헛간에서 처음 작업을 시작했 고, 1906년에는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든 후로는 윈스콘시의 밀워키 Milw aukee 38번지로 작업실을 옮기게 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최초의 할리 데이비슨 공장부지가 됐다. 처음 연 생산대수는 불과 3대에 불과했다1907년 : Harley-Davidson Motor Company는 법인 조직을 설립하고 정식사업체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 연간 생산대수 150 대1909년 : 최초의 'V-Twin' 엔진을 개발, 이를 장착한 'Model 5'가 나왔으며, 연간 생산 대수 5,625대에 육박하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룸..1912년 : 상업화된 클러치를 개발, 시장에 대한 주요 돌파구로 이용.1913년 : 처음으로 오토바이 레이싱 경기에 참여했으며, 영국에 최초의 할리 데이비슨 지사를 설립. 연간 생산대수 12,904대1915년 : 최초의 3단 변속 장치를 개발, 시장에 공급하기 시작함. 1900년도 초반은 India n, Merkel, Excelsior, Thor, Yale 등 모터사이클 제조브랜드이 급성장한 시기 이다. 이 중에서도 인디안과 할리 데이비슨은 내구성과주행성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점점 더 인지도를 높여갔으며, 특히 할리의 V형 2기통 엔진은 힘과 신 뢰도에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제 1차 세계대전 중 부{
{Term Paper인 사 행 정 론학 과 : 무역학과학 번 : 199803878이 름 : 한 병 석{< 목 차 >Ⅰ. 서 론Ⅱ. 본 론1. 인사관리의 전문성·효율성 제고2. 공직의 전문성·경쟁력 강화3. 투명·공정한 인사운영4. 균형인사 구현Ⅲ. 결 론{8 -{8 -{{8 -Ⅰ. 서 론2003년 2월 25일 새정부 참여정부 가 시작의 문을 열었다. 국민의 정부 를 뒤로하고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가는 참여정부 의 인사정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노대통령이 진보세력을 대거 발탁하자 '참신하다'는 시작에서부터 '불안하다'는 시각까지 다양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주목되는 인사는 청와대에서 이정우 정책실장과 문재인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보좌관, 이호철 민정비서관,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등이다. 내각에선 윤영관 외교장관, 강금실 법무장관, 김두관 행자장관, 이창동 문화관광장관, 지은희 여성장관, 권기홍 노동장관, 허성관 해양수산장관 등이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외부 발탁인사들로 꼽힌다. 교수출신들은 각종 진보학술단체에서 활약했으며 강금실 장관은 민변, 이창동 장관은 노문모(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인 모임)출신이다. 그러나 문제는 참신성만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럴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미래지향성, 국제적 안목이나 국제 경쟁력과 같은 글로벌한 분위기, 여기서 생길 수 있는 일류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이 승복한다. 진정한 ‘참여공화국’이 되려면 인재풀도 다면적이어야 한다. 제대로 다면평가를 해야지 한가지 잣대로는 인재를 모을 수 없다. 넥타이부대, 모범적인 관료 등과 같이 정통적인 경력을 쌓아온 사람들이 참여하기 거북한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된다.얼마전 문화일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참여정부 100일‘국정우수분야’를 묻는 질문에서 1위에 인사정책이 꼽힌 바 있다. 이는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중앙인사위원회를 방문, 적재적소의 인사원칙을 천명하고, 공직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인사개혁 로드맵’을 가장등 개방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의한 공정한 인사 구현○ 균형인사 원칙- 지역, 성별, 출신 등에 편중되지 않는 균형인사 실현현정부의 인사정책의 특징을 요약하면 위와 같다. 그럼 지금부터 각 항목에 대한 정부의 인사정책에 대해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1. 적재적소 원칙첫 번째 항목인 적재적소 원칙을 좀더 확대한 개념으로 인사관리의 전문성·효율성 제 고 측면에서 살펴보면 아래의 정책들을 들 수 있다.(1) 인사교류 활성화정부·민간간, 부처간, 국가·지방간 인사교류를 활성화하여 적재적소의 인사운영 및 범국가적 인적자본의 효율적 활용을 촉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개방형직위제도, 직위 공모제도, 민간근무휴직제도, 계약직 공무원제도 등을 적극 활용한다.1) 현황 및 문제점기존의 정책은 다양한 교류방식이 제도화되어 있으나 활용실적이 미흡(개방형직위 외부임용률이 15.9%, 민간근무휴직자가 12명에 불과)2) 추진방안1 민간·학계·정계 ↔ 정부간, 부처간 인사교류 가능분야 적극 발굴- 국가적 사업 추진 또는 주요 TFT 구성 : 상호파견·겸임- 민간의 시각과 경영기법 도입 필요분야 : 개방형임용, 민간근무휴직- 공기업·산하단체 임직원과 관련부처 공무원간의 상호 교차근무- 상호협력·이해가 필요한 부처간의 상호 교차근무2 민간파견 및 민간근무휴직 요건·절차 개선- 인사교류절차 간소화 및 관련 규제 완화3 교류 수요와 공급을 연계하는 인재교류지원센터 설치4 개방형직위의 합리적 재조정 및 외부임용률 확대- 개방형직위를 과장급으로 확대하는 한편, 직무분석 등을 통하여 외부임용 가 능직위를 적극 발굴·지정- 개방형직위 외부임용비율을 참여정부내 30%까지 확대(2) 부처별 인사행정전담부서 설치각 부처별로 인사행정 전담부서를 설치하여 인적자본 관리가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한다.(3) 기관장 인사운영권의 하부위임 실시실·국장에게 과장급 전보추천권 및 5급이하 전보권을 부여하고, 정원범위내에서 업 무 단위별 인력배치 및 조정권한을 부여한다.(4) 전자인사관리시스템(PPSS) 활다.(2) 빈번한 순환전보의 지양1) 한 직위에서 가급적 장기간 근무하도록 함으로써 행정의 전문성을 높인다. 이를 통 해 전문성이 필요한 직위 등을 전문직위로 적극 지정하여 장기 재직하도록 운영함 으로써 관련 전문가를 양성한다. 이를 위해선 승진·교육 등 인사상 우대조치로 보 직이동 욕구를 완화해야 하는 점이 선결되어야 한다.2) 능력·전공·적성에 따라 개인별 전문분야를 지정 운영하는 전문분야별 보직경로제 를 운영함(3) 공무원 처우개선 및 보수체계 개편1) 현황 및 문제점1 공무원 보수는 민간중견기업(100인 이상)의 94.8% 수준이며, 그간 생계비 보장차 원에서 하후상박원칙 의 처우개선 추진 (장관은 공기업 사장의 65% 수준, 국장급 은 민간의 71% 수준에 불과)2 보수가 공직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인센티브 기능 수행 미흡.3 직무와 성과보다는 계급과 경력에 의하여 보수 결정2) 추진방안1「참여정부」임기내 공무원 보수를 민간중견기업과 대등 수준 실현 (2004년까지 100% 수준을 목표로 추진)2 계급간·직종간 직무특성에 따른 적정한 보수 지급- 상위직의 책임과 직무 중요도에 부합하는 보수 책정- 직종간 직무 특수성을 보수에 합리적으로 반영3 보수체계를 직무와 성과중심으로 개편- 실·국장급은 직무값에 기초한 직무급체계로 전환 추진- 특정직 및 과장급은 연봉제를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 열심히 일한 자에 대한 보상인 성과상여금제도를 활성화3.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운영(1) 인사청탁의 철저한 배격1) 소속장관은 직원교육 등을 통하여 인사청탁을 철저히 배격하고 실적과 능력에 입각 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함. 이를 위해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인사청탁을 한 자의 명단과 청탁내용을 공개하고, 향후 인사에서 실질적인 불이익조치를 취한다고 발표2) 투명한 인사추천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누구든지 특정직위의 적임자를 자유스럽 게 인사부서에 추천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함. 이를 위해 인사부서는 추천된 내용 을 정기적으로 전 직원들(또는 적극 활 용하도록 함(4) 직위공모제도 적극 시행전문성이 특히 요구되는 직위, 주요 선호직위, 인사잡음이 자주 발생하는 직위 등에 대하여는 직위공모를 적극 실시함. 해당직위별로 직무수행요건을 설정하고 부처내에서 폭넓은 경쟁과 공정한 심사를 거쳐 적격자를 선발·임용함(5) 공무원 충원방식의 다양화·개방화1) 현황 및 문제점1 상위직 공무원은 대부분 고시라는 획일적 경로를 통해 충원 (최근 3년간 5급 신규 채용(1,120명) : 공채 83%(926명), 특채 17%(194명))2 중앙에서 일괄 채용하여 각 부처에 배치하는 현행 방식은 부처별 다양한 행정수 요에 맞는 적격자의 적기 충원 곤란2) 추진방안1 고시선발인원의 점진적 축소시험은 실질적인 공무수행능력 측정방식으로 전환하며 2004년부터 공직적 격성 시험(PSAT)을 고시에 단계적으로 도입2 인턴제 도입방안 검토부처 수요파악 → 대학별 추천 → 최소한의 자격 검증 → 해당부처에서 인턴으 로 일정기간 근무 → 채용3 전문자격증·학위소지자 등 민간전문가 경쟁채용 확대4. 균형인사 원칙(1) 인사편중 예방1) 직업공무원의 인사는 실적주의와 적재적소의 원칙에 기초함2) 주요 정책결정 직계라인 등에 특정 지역·학교 출신이 편중되지 않도록 운영함(2) 정부 인적자본의 균형있는 활용1) 여성공무원의 임용을 확대하여 양성평등의 인사를 구현함1 06년까지 5급이상 관리직 공무원중 여성비율이 10%이상이 될 수 있도록 부처별 여성관리자 임용확대 5개년 계획 을 적극 추진함1 모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함2) 장애인공무원의 의무고용률 2%가 달성 또는 유지될 수 있도록 장애인 채용을 활성화1 소속장관이 실시하는 신규채용(공채·특채)에 있어 채용인원의 5%이상을 장애인 으로 선발하는 등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채용함1 채용후 장애정도에 따라 적합한 업무를 적극 발굴·보직함3) 과학기술공무원이 승진, 보직 등에 있어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적극 관리해 나감1 행정·기술 복수직위(특히, 4급이상할 수 있게 했다는 점, 참여정부 출범내각은 개혁장관 對 안정차관 원칙에 따라 구성했다는 점등이 있다.둘째, 각 부처 인사운영의 자율성 강화 및 능력과 실적에 입각한 공무원 인사운영 도모 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1급 이하 인사의 경우 장관 및 처·청장에게 기본원칙에 입각 하여 인사의 자율성을 부여하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했고, 다면평가 및 직위공모 제를 활성화했다.셋째, 정부산하단체 인사운영의 쇄신했다는 점인데 이것을 통해 산하단체의 성격을 고려 한 인선기준을 마련했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효율성 중시기관은 해당기관 내· 외를 대상으로 경영마인드 등을 갖춘 인사를 폭넓게 선발하고, 공공성이 중시되는 기관은 내부 또는 공공분야 유관인사를 중심으로 관리능력이 우수한 인사를 충원하며 개혁성 중 시기관은 개혁성과 전문능력을 갖춘 인사를 발굴·인선한다는 것이다. 또한 후보자 추천 채널의 다양화 및 적격성 평가를 강화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 임명직위의 경우 삼고초려 를 통해 공개 추천을 받아 소관부처 및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인선을 실시하며 각 부처 장관에게 인사권이 있는 산하단체장의 경우에도 자체 실정에 맞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인선절차 마련·운영하게 했다.넷째, 참여정부 국가인사시스템 개혁을 위한 Roadmap을 마련했다. 이는 참여정부의 인사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개혁의 전체적인 청사진과 분야별 추진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정부 출범초기의 단기적·피상적 개혁이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에서 인적자원관리 시스템 을 단계적으로 혁신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8 -< {붙 - 4 -참고사항 >. 지역편중 인사 관련 논란 사항정무직-영남(34.6%), 호남(27.9%), 경인(18.3%), 충청(11.5%), 강원(4.8%)순임- 인구모집단과 비교할 때, 특별한 지역편중현상은 나타나지 않음-국민의 정부 말기와 비교, 영호남간 불균형(영남 과소 ↔ 호남 과다)이 완화되는 과 정에서 호남지역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작용* 영남 24.3 가능
신화와 종교R E P O R T< 목 차 >Ⅰ. 헤라여신과 아프로디테여신1. 헤라여신2. 아프로디테Ⅱ. 페넬로페Ⅲ. 메데이아Ⅳ. 헬레네와 클뤼타임네스트라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Ⅵ. 아마존과 아탈란테1. 아마존2. 아탈란테Ⅶ. 그리스 동성애Ⅷ. 이브의 하나님신화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 또는 인간이 만든 허구적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인 경험 또는 한 집단이 경험했다고 믿는 사실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화속에는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역사 문화적 경험뿐만 아니라 그 집단이 지향하고 있는 무의식적 이상도 포함되어있다. 이런 모든 것을 종합해서 논리정연하게 체계화시킨 것이 바로 요즈음 신화학자들이 주장하는 신화의 정의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저자 : 문윤덕이 중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선사시대부터 부분적으로 형성되어 미노아문명, 미케네 문명, 아크로폴리스 등과 같은 이주민과 그리스 본토의 선주민의 문화가 섞인 것이다. 그리스 신화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해주고 있는 것중 대표적인 것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오뒷세이아」)이고, 가장 뛰어난 형태로 전한 것은 3대 비극시인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그리고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이다. 또한 후대에 와서 좀더 체계화된 작품을 남긴 헤시오도스의「신통기」와 로마시인「오비디우스」가 쓴 변신이야기가 있다.그리스신화는 크게 신과 인간의 관계, 영웅이야기를 담고있고, 로마신화는 그리스신화에다 이름만 로마식으로 바꾼 것이라고 생각하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록 야누스신과 같은 로마신화에서만 나오는 신이 있기는 하나 이는 특별한 예일뿐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리스신화와 로마신화는 동일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태초의 신인 카오스, 에레보스, 가이아 등과 자연의 신 우라노스, 폰토스, 퀴클롭스 3형제등 또한 티탄12신족을 거쳐 우리가 대표적으로 알고있는 제우스, 헤라 등의 올림포스 신들로 넘어가는 이야기와 그 해당하는 시기의 에피소드 등을 담고 있다. 태초의 그리스 로마신화는 어나서 다른 시각으로 신화를 해석하고 있다.여지껏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해오면서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생각들이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느끼고 공감했던 것과 이것은 내 생각과 다르다 하는 것을 책 내용 중 몇 개를 통해 피력해 보겠다.Ⅰ. 헤라여신과 아프로디테여신1. 헤라여신헤라는 올림포스의 권력자 제우스의 정실 부인이다. 헤라는 가정과 결혼의 신으로 남편인 제우스의 여자들에 대한 복수가 헤라여신의 에피소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책에서 나오는것과 같이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명제를 대변해 주듯이 제우스의 바람끼의 상대방의 여자에 대해 질투를 하며 복수를 한다. 예전에는 헤라가 가정과 결혼의 신으로 정식결혼의 수호자 이기 때문에 정식결혼을 위협하는 바람을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헤라가 질투를 하고 복수를 하는 것을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책에 서술되어 있는 헤라가 바람을 피운 제우스가 아닌 그 상대방 여자를 공격하는 것이 가부장제가 만들어놓은 하나의 여과장치) 「신화속의 여성, 여성속의 신화」, p33이고, 여성은 항상 유혹자라는 이데올로기를 표현한 것이라는 것에 공감을 하였다. 또한 헤라 여신은 남편이 있어야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여신이라는 소리가 괜히 나온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또한 헤라여신이 본래부터 제우스의 아내였던 것이 아니라 제우스보다 훨씬 이전의 신으로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숭배하던 대지모신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이 특징이 그리스의 가부장제 문화에 의해 왜곡되고 변형된 형태가 되었다는 점에서 문학작품을 읽을때나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사초를 분석할 때 그 시대의 특성을 생각하여 가릴 것은 가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2. 아프로디테아프로디테는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그리스 신과 별개의 셈족 계통의 신으로 팔레스타인에서 동부 지중해 일대에 숭배되어오던 신이었다. 본래 아프로디테는 우주전체를 지배하는 신으로서 다산과 성장을 주관하는 신이었으나, 그리스에 유 해도, 또 남신들 뿐만 아니라 여신들까지 와서 본다고 해도 아레스의 자리에 있겠다고 응수했다. 또한 여신들은 그 광경을 보고 외면을 해버렸다) 이윤기 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위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아프로디테의 불륜을 고발하고 웃음거리로 만들고자 하였던 헤파이스토스의 계획은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오히려 아프로디테의 불륜을 눈감아 주는 결론으로 나게 되었다. 이는 가부장제에서 부인의 불륜을 용서하지 않는 사고방식과는 별개의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이는 그리스의 가부장제의 도덕적 잣대를 대는 것은 아니라고 사려된다. 책에서도 살짝 언급되어 있듯이 아프로디테와 헤파이스토스의 결합의 의미는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뜻하고,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결합의 의미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커다란 2가지의 열정인 사랑과 전쟁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Ⅱ. 페넬로페페넬로페는 오뒤쎄우스의 부인으로서 20년이상을 오직 오뒤세우스의 귀환만을 고대하고 그 사이 여러남자의 구혼을 뿌리친 여성이다. 페넬로페의 이야기를 보면서 춘향전이 떠올랐다. 이는 우리나라의 부계중심사회가 그리스의 부계중심사회와 비숫하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꾹 참고 기다리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오뒤쎄우스 영화를 보면서 같이 보았던 다른 사람에게서 페넬로페가 영화와 신화와는 달리 다른 신화로 보면 오뒤쎄우스가 20년간 다른 곳을 전전하며 다른 여자(칼립소등)와 관계를 맺은것처럼 페넬로페도 오뒤쎄우스만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는 사담을 들었다. 이런 사담을 들어왔던 터라 페넬로페의 이야기는 그냥 미화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한국의 가부장적 사회에 길들여져 왔던 탓인지 페넬로페의 이야기가 그저 성춘향의 이야기 처럼 여자로서 가장 최고의 덕목을 지킨 어떻게 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어떻게 보면 옛날 여자로서는 당연한 일을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오뒤쎄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가부장적 사회의 희생물인 것을 알게 되었다.이 황금양피를 가질 수 있도록 지혜를 빌려주고, 같이 콜키스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이아손을 위해 펠리아스를 계략으로 죽이기까지 하였으나 끝내는 권력욕에 눈이 먼 이아손에게 버림받고 복수를 위해 자기 자식을 죽이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그런 여자로 나온다. 이 책을 접하기 전 메데이아에 대한 생각은 한마디로 정말 독한 마녀이였다. 메데이아는 콜키스를 빠져나온 이후에도 다른 곳에서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간질을 하다 또 쫓겨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욕심을 위해 자식까지도 죽이고 버림받고도 정신을 못차린 구제불능의 독한 여자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이아손이 메데이아에게 입은 은혜를 입고도 메데이아를 버린 것은 남자답지 모하고, 심한 일이긴 하나 그녀의 독하고 악랄한 성품을 이기지 못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벌인 일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메데이아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메데이아가 보통의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언급된 것처럼 악랄하고 독한 여자가 아닌 지혜를 가지고 있는 보통의 여자보다 비범한 여자로 표현되어 있고 이런 비범함이 가부장적인 그리스사회에서 용납 되어지지 않아 왜곡되고 잘못 표현된 것으로 나와있다. 또한 메데이아의 자식살해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메데이아가 복수의 여신들인 에리뉘에스의 복수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책에서의 다른 해석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Ⅳ. 헬레네와 클뤼타임네스트라헬레네와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버지가 다르고 어머니가 같은 자매이다. 헬레네는 제우스의 딸이고, 클뤼타임네스트라는 레다의 남편 튄다레오스의 딸이다. 헬레네와 클뤼타임네스트라는 남편을 배신한 부도덕한 여인이라는 점에서는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같았지만 헬레네는 모든 것을 용서받고 행복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최고의 악녀로 불행하고 잔인한 운명을 살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신화속의 여성, 여성속의 신화」P119이는 책에서와 같이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자신의 인생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그리스의 사회가치관을 가리키는 말로 프로이드가 인간의 성격이 어떻게 형성, 발달하는 가를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또한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스위스의 심리학자 보드원이 만들어낸 용어로서, 딸이 아버지에게는 애정을, 어머니에게는 반감을 갖고 적대시하는 심리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상반되는 내용이다.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의 아들로서 나중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신탁을 받은 자이다. 그는 그런 신탁을 두려워 한 라이오스왕에 의해 버려지게 되고 장성한 후에 라이오스를 자신의 아버지임을 모르고 살해하고, 스핑크스를 퇴치한 공로로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그는 후에 이 사실을 알게되고 두 눈을 멀게하여 참회의 길을 떠났다. 그는 후에 에리뉘에스 사당에서 지난날의 죄를 깨끗이 씻고, 죽어서 신들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엘렉트라는 자신의 어머니인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전쟁에 나가있는 동안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 아가멤논이 돌아온 후 아이기스투스와 합세하여 아가멤논을 죽인 것에 분노하였다. 엘렉트라는 자신의 동생 오레스테스를 시켜 어머니인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투스를 살해하였다.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그냥 프로이드가 설명한 용어로서 아버지를 적대시하고 어머니를 독차지하려고 하는 심리를 말하는 것으로만 알았지 그 용어가 어떤 방식으로 도출되었는 지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신화속의 여성, 여성속의 신화」책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도출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지극히 남성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알게되었다. 프로이드가 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그 자체 만으로는 불완전하고, 거세콤플렉스와 연관하에서만 제 기능을 할 뿐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은 자신의 영역과 권위를 침범할 때는 남근을 잘라버리겠다는 아버지의 위협에 의해 억압된다. 아이는 어머니의 남근이 되고 싶은 욕망과 아버지가 자신을 거세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사이에서, 결국 어머니에 대한 성적욕망을 포기하고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