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제출자 : 사학과 , 20020065 , 황성진제출일 : 2003. 6. 10담당교수 : 박진태 교수님『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라는 책을 읽기 전에 먼저 그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대부분의 책들은 그 제목을 보면 내용을 알 수 있듯이 이 책도 제목에 대한 뜻을 알면 안에 들은 내용도 어느 정도 추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하워드 진은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달리는 기차라는 것은 이미 계속 일을 하고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중립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논하고 있는 2차 대전과 흑인 민권운동, 베트남 반전시위 등의 여러 가지 일, 사건들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중립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고 기차가 달리는 방향, 즉 대중들이 원하고 이끌어 가는 방향에 서야한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인 하워드 진이 말하고있는 것이 아닐까싶다. 이러한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듯이 이 책은 저자인 하워드 진이 겪어 온 자신의 삶을 역사에 반영하여 감동적이며 생동감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저자인 하워드 진이 겪어왔던 생애를 총 3장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각 장의 내용을 짤막하게 설명하고자한다.제 1장인 `남부와 운동`에서는 저자가 법적으로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절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열심히 투쟁을 하였던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지금 현재에도 법적으로는 인종차별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흑인 또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아직까지 미국에는 남아있다. 현재의 상황도 이러한데 법적으로 인종차별을 하였던 당시에는 생각해보지 않아도 뻔할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경험한 인종차별의 사례는 당시의 사람들이 분노하기에 충분하였고, 그 분노가 흑인들과 일부의 백인운동가들의 여러 차례에 행해지던 시민운동들은 저자의 분노를 표현해주고 있다. 이러한 저항은 완료가 된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는 진행형이다.다음장인 제 2장인 `전쟁과 평화`에서는 전쟁의 올바르지 못한 면과 이러한 올바르지 못한 면을 올바르게 둔갑시키는 국가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자기 자신을 아직 성숙하지 못하였다고 비판하면서 그 당시에 이 전쟁을 파시즘에 맞선 성전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인식을 주도하고 위선을 떨었던 당시의 서방국가들을 이 책에서 그 당시 자신의 생각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당당하게 비판하고 있다. 당시의 연합군은 히틀러만 악당으로 선전하여 만인의 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자신들은 어쩔 수없이 전쟁을 하여야 한다는 것처럼 비춰지게 하였다. 그래서 저자는 당시의 구체적 상황을 설명하면서 연합군은 오로지 자국의 이익에만 매달렸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였다. 또한 마찬가지로 베트남전쟁도 2차 세계대전과 같이 미국정부에 대한 위선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뿐만 아니라 경제에 영향을 끼치거나 압력을 넣어 그 나라의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린 나라나 회사들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하고 있다.마지막 제 3장인 `풍경과 변화`에서 저자는 국가와 시민간에 대결을 설명하고 있다. 국가는 오로지 정부의 이념만 주입시키려하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대결을 저자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서술하고 있다.이렇듯이 저자는 자신이 부당하고 억지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으면 그것대로 행동하라고 말하고있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그래왔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행동하라고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흑인들의 권익 보장을 위해 `앉아있기 운동`을 하고, 미국의 전쟁관을 온몸으로 반대하며 반전운동을 펼쳤듯이 사회나 정부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였을 때 그가 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이 책에서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저자의 용기있는 행동들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그 누군가가 방해를 하더라도 자기가 옳다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자신감, 그런 자신감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할 용기가 아닐까 생각하였다."좋지 않은 시대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낭만주의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잔혹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공감, 희생, 용기, 우애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라는 말을 저자는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라는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좋지 않은 시대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을 단지 낭만으로만 생각한다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밝은 미래를 버리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좋지 않은 시대를 벗어 날 수 있는 문이 되는 것이고,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우리나라가 어렵던 IMF시대에 모든 국민들이 희망을 갖고 단결되고 하나가 되어서 마치 보이지 않았던 빛을 비출 수 있게 한 것처럼. 또한 저자가 인종차별에 대항하여 평등을, 대학 당국의 독선에 반대하여 민주주의를, 제국주의적인 침략전쟁에 반대하여 평화를 온 몸으로 실천하여 세상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고 절망으로 다가온 것 같지만 그 와중에 희망을 잃지 않으면 저자가 이 저서를 통해 꾸준히 말해 온 것처럼 단시간에 역사는 변하지 않지만 인류가 이루어낸 장기적인 변화를 응시하여 반드시 변화는 이루어 질 꺼라 생각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를 읽고..2분반 20020065 황성진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대충 조금씩 사람들에게서나 대중매체를 통해서 주워들은 것이 다였다. 언젠가는 꼭 한번 읽으려고 마음을 먹고있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던 참에 이런 `문학과 신화`라는 강의가 개설되었기에 주저 없이 선택하였고, 그리스 로마 신화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우선 책의 첫 머리말을 보면은 저자는 이 그리스 로마 신화가 삶을 살아가는데 유익한 지식이 된다고 한다. 이 말에 아주 동의하는 바이다. 소설 또는 영화와 같은 것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유하거나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아주 많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나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아주 많았기에 답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듯이 우리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변에서 많이 접할 수는 있었지만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던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책들이나 여러 가지 매체에 나오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봐야 하는 필독서 인 것 같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쉽게 접하기에는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 바로 많은 등장인물이 있다는 점이다. 등장하는 신들이나 영웅들이 각각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억하기가 아주 힘들다. 물론 그 시대의 신과 영웅들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것이 가장 큰 걸림돌 일 것이고, 나 또한 그랬다. 몇 몇의 유명한 신과 영웅들말고는 매번 등장할 때마다 앞의 내용을 다시 되새김을 해야 이해 할 수 있기에 쉽게 접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었다. 이 점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소설책보다도 더 흥미와 재미를 주고 있다.몇 백년 혹은 몇 천년전의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사실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 로마 신화이야기는 허구의 이야기이다. 물론 몇몇의 영웅들은 실제로 존재하였지만 약간 과장된 부분이 많다. 이 책의 저자인 벌핀치도 `인류가 지어낸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꾸며낸 이야기에 사람들은 왜 숭배하고 열광을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내용자체가 워낙 흥미와 재미가 있긴 하지만 이런 점은 일반 소설도 같다. 아마도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인간의 삶의 모습을 요약하여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고, 뿐만 아니라 그런 이야기 속에서 많은 교훈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독자나 읽어보지 못했더라도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랑의 이야기인데 남의 부인을 빼앗거나 여자를 억지로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면 인과응보로서 반드시 신들이 벌을 내린다. 현대의 삶에서 법이 그런 일을 하듯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신들이 벌을 내린다. 이외에도 흉악한 인간들이나 무턱대고 자기의 자신을 믿고 신들에게 도전하는 자들도 신에게 벌을 받는다. 물론 아주 선량한 일을 하거나 신에게 감동을 받는 일을 하면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인간의 삶과 비슷하기에 거기에서 사람들은 그 이야기들에서 교훈을 얻고 지식을 쌓아갈 수 있기 때문에 요즘에 와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많이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부분이 바로 우리가 흔히 쓰고 있던 많은 단어의 기원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아킬레스건이라는 `약점`이라는 말이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에서부터 나왔고, 우리가 흔히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하는 말도 미다스(midas)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또한 `야누스의 얼굴`이라는 상반된 얼굴을 가지고 있는 뜻이라는 것도 야누스에서 나왔다. 평소에는 그냥 뜻만 알고 넘어갔던 단어들이 생겨난 배경을 알 수 있으니 더욱더 그 뜻이 명확해지고 쉬워졌고 점점 이런 것들을 알아가니 이 책을 접하는 것이 흥미로워졌다. 이렇듯이 여러 가지의 말의 기원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중국 고대의 이야기들로부터 현재 우리가 흔히 쓰는 사자성어로 되었다는 점에서 동양이나 서양에서도 선조가 삶을 살아가면서 쓰던 표현들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전해져온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이다.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수많은 신과 영웅들이 나온다. 만물을 지배하는 제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등의 많은 신들과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등의 영웅이 존재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영웅의 이야기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 부분이 많이 궁금했었다. 그래서 이왕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우는 김에 좀더 확실하게 알고자하여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인터넷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찾아보았더니 그리스 로마 신화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내용은 모두 다르지만 성경에서 시작되었다는 설, 등장인물이 모두 실제인물인데 후손들이 사실을 부풀이고 과장했다는 설, 사람들이 모두 지어냈다는 설, 자연현상들의 의인화시켜서 시켰다는 설 등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로 이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보이는 설은 자연현상을 의인화 시켰다는 설이다. 우리의 선조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하늘에 있는 신에게 기우제를 지내고, 먼 항해를 떠날 때에도 바다에 있는 신이 노하지 않게 출발 전에 제물을 받치곤 했었다. 그리스인들도 마찬가지로 신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들이 신들을 화나게 하면은 자연현상을 보내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신전을 짓고 신들이 노하지 않게 하였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지었던 신전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사진으로 보니 기원전인 그 당시에 그런 엄청난 건축물들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신들은 우러르고 존중했다고 생각한다.
[비디오 감상문]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제출자 : 사학과 , 20020065 , 황성진제출일 : 2003. 6. 4담당교수 : 박영철 교수님우리들이 알고 있는 중국 고대 진나라 시대의 유명한 건축물인 만리장성도 로마의 도로보다 백 년 후의 것이라고 한다. 도로는 한 나라를 선진화시키는 방법이자 그 나라의 발전의 척도를 알아 볼 수 있다고 한다. 만리장성은 하나의 방어물로도 볼 수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도로로도 볼 수 있다. 그렇듯이 로마의 도로가 만리장성보다도 백 년 전의 것이라면 로마는 우리들의 생각보다 한층 더 발전된 국가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로마의 도로는 로마를 로마 자체로 고립시키지 않고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하나로 잊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팍스로마나(Pax Romana)라고 불리는 로마의 전성기는 이 로마의 도로로부터 시작했고,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시기에 다른 무엇보다 먼저 고속도로를 건설하여서 물류운송, 자원운송 등을 하여 선진화를 이룩한 예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예와 같이 로마도 벌써 약 2000년 전에 전쟁에 여러 나라를 식민화 시키고 거기에서 얻는 여러 가지의 자원들을 로마 본국으로 옮기고, 그 정복한 국가들을 쉽게 관리하기 위해서 도로라는 것을 건설한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에는 로마인들이 바다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드는 배를 이용하지 않고 굳이 도로를 이용하기 위해서 그런 이유도 물론 조금은 있다. 도로를 건설함으로 식민지 국가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모든 국가에게 로마의 강력한 권력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있다. 어느 나라이던 간에 남들보다 뛰어난 문화나 문명이 있다는 것은 자국의 국민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고, 다른 나라들에게는 그 나라를 함부로 덤빌 수 없는 강한 힘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로마의 도로는 로마를 오랫동안 지탱할 수 있었던 하나의 상징이었고, 뿐만 아니라 로마시민들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힘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에서의 로마의 도로는 도로 하나만을 칭하는 것이 아니다. 도로, 목욕장, 하수도, 다리 등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이다. 비디오 감상 시에 이 중 무엇보다도 나의 흥미를 이끌었던 것은 다리와 목욕장이었다. 무엇보다도 로마의 다리를 상상을 초월 할 정도의 것이었다. 지금도 남아있고 아직도 이용한다는 점, 그리고 생김새에서도 현대의 다리와도 견주어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 점에서 새삼 로마의 다리는 정말 놀라웠다. 우리나라도 수많은 문화유적들이 남아있지만 로마의 다리처럼 아직도 이용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로마의 다리처럼 약 2천년전의 문화유적을 사용한다면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은 따로 생각하고 공부하지 않아도 자기의 선조나 옛 사람들로부터 많은 교훈을 몸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도 그런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기에 로마의 다리는 로마의 건설기술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중요한 유적인 것이다. 로마의 다리말고도 흥미를 끄는 것은 바로 로마의 목욕장이었다. 로마의 목욕장은 비록 비디오 자료로는 볼 수 없었지만 교수님의 설명만으로도 실로 대단할 것 같았다. 엄청난 크기의 목욕장에는 수많은 시설들, 즉 미술관, 도서관, 체육관 등이 있는 것을 보면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로마의 목욕장에는 신분의 구분이 없이 들어 갈 수 있다고 하니 정치가로서는 모든 시민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고, 시민들은 이런 목욕장이지만 작은 평등을 얻어서 기쁠 것 만 같다. 이렇듯이 로마의 다리, 목욕장이 엄청나니 그 외의 것인 하수도, 도로 등은 실제로 보지 않아도 어림짐작으로라도 그것들은 대단할 것 만 같다.현재나 과거의 국가들은 도로나 국가의 기초시설들을 짓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세금을 걷어서 그것들을 건설한다. 하지만 로마는 좀 다른 방식으로 도로나 기초시설들을 건설하였다. 바로 왕·부호들이 돈을 기부하여 그 돈으로 건설한다. 그렇기에 그 자금으로 도로나 시설들을 건설하면 그 자금을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건물에 세기거나 도로에도 마찬가지로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이정표에다가 적어서 세우기도 하였다. 왜 로마는 이런 방식으로 자금을 얻어서 도로나 시설을 건설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로마인들은 이름을 알리는 것을 중요시하였기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기부를 많이 하였기에 국가에서는 굳이 국민들에게 세금을 걷을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또한 로마의 도로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노예들과 평범한 시민들에 의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국가 소유의 노예들이 있을 수도 있고, 그냥 돈을 벌기 위해서 노동을 한 시민들도 있을 것이다. 엄청난 길이의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 얼마 많은 사람들이 동원이 되었을 지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로마의 노예나 시민들로는 인원이 충당이 되지 못했기에 로마는 다른 국가의 시민들의 노예로 삼아 건설현장에 투입시키기 위해서 정복전쟁을 끊임없이 벌인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기도 한다.
올해의 한국영화를 보고..`오아시스`1분반 20020065 황성진올해의 한국영화 중에는 몇 몇의 작품들이 흥행을 이루었다. 몇 해전부터 우리나라에 불고있는 조폭이야기를 코미디화 해서 그린 작품, 그리고 가족의 풋풋한 사랑을 전해주는 작품 등 여러 작품이 있었지만, 올해의 한국영화 중에서 장애인과 삼류건달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오아시스`란 작품을 빼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평소에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나에게 `오아시스`란 작품은 정말로 오랜만에 가슴을 찡하게 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우선 먼저 말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사회에서는 얼마나 장애인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걸까? 영화에서도 종두와 공주가 음식점에 들어가도 주인은 음식판매를 거절한다. 설마 그런 일이 영화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지만 아마 실제로도 장애인들에게는 빈번히 일어나는 일 일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는 실제로도 많은 장애인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나 역시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장애인올림픽에서 어떤 시각장애인 높이뛰기선수가 말했다. 자신이 넘고 싶은 것은 160cm의 장애물이 아닌 사람들의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고 싶다고.. 이처럼 장애인들도 일반인들과 같이 아무런 편견 없이 지낼 날들이 곧 왔으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건 단지 내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단점을 누구나 하나쯤은 지니고 있을 것이다. 단지 장애인들은 그 단점이 단지 겉으로 들어 난 것이고, 정상인들은 겉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내면 속에는 장애인들보다 더한 단점이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뇌성마비 장애인인 `공주`와 일반인과는 다른 약간 바보 같은 `종두`의 사랑이야기. 종두가 약간 바보 같기 때문에 공주와의 사랑이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언젠가 이 강의시간에 감정을 모두 표현한 시는 좋은 문학작품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상인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보다 이렇게 겉으로 단점이 드러난 사람들의 남들이 알아주지 못하는 사랑이 더욱더 감동적인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들은 사랑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사랑을 알아주기는커녕 사랑이라고 인식하지 조차 않는다. 왜 그들이 사랑을 못한다고 생각하였는가? 아님 장애인은 사랑 같은 것은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일까.. 특히 마지막 장면이 종두와 공주의 첫날밤인 그 날 종두는 강간범으로 잡혀가지만 그들이 전혀 사랑을 나누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주에게는 제대로 묻지도 않고 그냥 넘어간다. 공주는 `아니요`라고 끝없이 외쳐댔지만.. 이 내용은 단지 시나리오이지만 나는 그들 종두와 공주에게서 완벽한 사랑만이 사랑이 아닌 이렇게 불행한 그들만의 사랑에서도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얻은 것만 같다.
`굿 윌 헌팅`을 보고..1분반 20020065 황성진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쉽게 친해지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그 사람의 마음을 열기는 쉽지가 않다. 강의시간에 보았던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윌`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대부분 쉽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대화나 활동을 같이하다보면은 어느 새인가 그 사람의 마음이 열려있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이란 쉽사리 열리지가 않는 법인데 영화에서는 `윌`이 쉽게 마음을 열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더욱더 반항하고 저항을 한 것 같다.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이 강의시간에서 배웠던 내용 중에 강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마음 속에는 어딘가 욕구불만이나 문제점이 있다고 한 적이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윌`도 가정적인 문제점을 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쉽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저항한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숀`이라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었다.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열기가 힘든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이 영화는 나에게 일상적인 대화의 중요성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의 능력만을 평가하고, 그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심리치료를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하지만 `숀`은 그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였고 마침내 그의 마음을 열었다. `숀`은 특별한 대화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에게 친밀감과 믿음을 쌓으려고 노력하였기에 마음을 여는데 성공한 것이다. 우리들도 중, 고등학교의 선생님이나 대학의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적인 대화가 아닌 공적인 대화만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학생이었던 사람들은 선생님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눈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선생님이라고 하면 우리와는 생각이거나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사람이라고 흔히들 생각하기에 선생과 학생은 벽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와 반대로 외국의 경우에는 선생과 학생의 관계는 공적인 관계가 아닌 사적으로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며 허물이 없이 지낸다고 한다. 그렇기에 외국에서는 자유로운 생각과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주인공인 `윌`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천재이다. 물론 영화이기에 이러한 설정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내 생각에는 누구나 한 사람씩 모두다 어느 한 분야나 어느 한 방면에서는 남보다 뛰어난 천재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처음의 `윌`처럼 그 소질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의 원인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 같다. 교육에서도 자기 자신의 독특한 분야가 아닌 남들과 다 같은 내용과 방식으로 배우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자신도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발견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보다 분명히 뛰어난 한 분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평생을 지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힘들겠지만 학생들의 장점이나 특기를 신경 써서 발굴하여 그것을 기르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비쳐보면 아주 먼 이야기일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