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음악의 이해1) 들어가는 말.이번 현대음악의 이해 기말 Report의 주제로써 MIDI음악과 영화음악 중에서 본인은 영화음악 쪽을 선택하였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 전공이 컴퓨터인 나 이지만 컴퓨터음악 쪽에는 평소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영화쪽이나 영화음악 쪽에 관심이 많았다. 영화음악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영화의 분위기나 관객으로의 느낌전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영화에 빠져들어서 느끼지 못할 뿐이지 영화음악의 역할을 대단히 크다고 하겠다.어릴 적에 티비에서 많이 보았던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에서도 죠스가 등장 할 때마다 깔리던 저음의 베이스 소리가 우리를 더욱더 극도의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갔고, 죠스가 등장하지 않을 때도 그 음악이 나오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우리는 긴장하곤 했다. 또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고 나서도 그 영화 음악으로서 그 영화를 다시 떠올리게 되고 어쩔 때는 영화음악이 그 영화의 기억을 대변 하기도 한다.예를 들어서 ‘러브 스토리’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영화는 지금도 그 영화 음악으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고 하얀 눈이 덮인 공원에서 두 연인이 눈싸움 하면서 노는 장면은 그 음악 없이 상상한다면 그 느낌은 밋밋할 것이다. 그리고 헐리웃 블록 버스터 영화들의 영화 음악을 들으면 그 영화의 영웅들이 떠오르면서 기분이 Up되는 느낌도 들 수 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스타워즈 시리즈, 슈퍼맨 시리즈 등은 영화음악 만으로도 그 주인공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영화에 쓰이는 음악에는 그 영화만을 위해서 전문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작곡한 곡을 쓰는 경우도 있고, 영화의 분위기에 맡는 기존의 곡을 골라서 영화에 집어 넣는 경우도 있는데 어느 경우 이던 간에 영화의 느낌을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은 영화음악으로써의 역할을 100% 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초의 영화였던 ‘귀여운 여인’의 경우 동명의 기존 곡을 주제곡으로 하여서 이 영화의 흥행에 많은 공헌을 했고 80년대 영화였던 ‘Flash dance.. what a feeling’ 의 경우는 동명의 팝송을 주제가로 사용하여 영화도 성공하고 이 노래 역시 빌보드 차트 넘버원을 기록하였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곡들이 영화음악에 쓰였고 지금 생각나는 좋은 영화 음악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많은 영화음악과 영화음악가들 중에서 그리스의 영화음악 작곡가인 ‘반젤리스’ 에 대해서 이번 Report를 쓰고자 한다. 그를 선택한 이유는 고등학교 때 영화음악 라디오 프로그램을 자주 들었는데 그가 작곡한 영화 음악들이 나의 감성과 맞았고 그래서 그의 음악을 사서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2) 반젤리스의 영화음악전문적인 영화음악가로 입문하는 인물들의 예는 수없이 많아서 그 예를 찾아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고 이들은 영화음악과 관련된 전문적인 과정을 수료하며, 영화음악의 특성상 음악외적인 요소인 영화마케팅과 같은 과정도 같이 학습을 한다는 점에서 이미 다른 음악가들과 충분한 차별점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영화, 또는 영상과의 공동작업에서는 해당매체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수반되어야만 동일한 상황에서 좀더 효율적인 결과물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수긍이 갈것이다. 반젤리스는 다수의 영화음악을 제작하는 과정의 배후에 전혀 다른 음악을 접하고 했던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였다.아프로디테스 차일드라는 밴드를 조직해 활동할 당시 그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몇몇 히트곡을 생산하면서 대중적인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특히 이 밴드의 후반기 작업에서는 매우 프로그레시브한 사운드를 들려 주면서 자신의 영역이 단순한 팝 뮤지션이상이라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반젤리스는 밴드활동을 잠시 접고 솔로활동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발표되었던 작업들은 하나같이 '실험'이라는 그만의 덕목이 충분히 발휘된 작업들이었고, 일반 팬들과 비평가들에게도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반젤리스의 최근 활동에서도 확인되듯이 그는 영화음악가라는 정해진 명칭을 거부하면서 이 당시의 활동과 다를 바 없는 왕성한 창작력과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반젤리스의 영화음악 작업들도 틀림없이 이런 실험과 창작력의 산물인 것이다.주목할만한 사실은 반젤리스가 영화를 관조하는 시점은 매우 독특하다는 사실이다. 한가지 실례를 들어본다면 반젤리스는 영화음악을 제작할때도, 개인적인 작업을 진행할때도 항상 명상을 통해 첫번째 정리를 한다고 알려져 있고 반젤리스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점은 정해진 시간이나 영화적인 개념들 - 이를테면 씬이나, 컷과 같은 - 과 무관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반젤리스가 작업했던 영화들을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했던 개념들과는 무관하게 음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가 영화를 이해하는 것은 '영화의 이미지를 이해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어찌보면 그의 비영화음악 작업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막상 영상과 맞닥들였을때의 감동은 한 두 사람의 것이 아니다.스트링 사운드를 항상 중요시하고 즐겨 사용하는 그의 음악스타일은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지만 영화에 따라 그 느낌이 명확하게 틀리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작업한 모든 영화음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들인 ‘불의 전차’ ,’1492 콜롬부스’ ,’블레이드러너’ 에서의 그의 음악은 너무나도 강렬해 전문 영화음악가들의 역할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1981년 아카데미 영화상 베스트 스코어 부문을 수상한 ‘불의 전차’ 는 육상 트랙의 영웅들이 펼치는 불굴의 인간승리를 그린 영화다. 아름답고 역동적인 영상과 휴머니즘이 넘치는 감독(휴 허드슨)의 시선이 스타 출연진 하나 없이 그 해 아카데미를 휩쓴 이 작품에서 반젤리스는, 해변을 달리며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정신과 번민하는 내면을 신서사이저만이 낼 수 있는 리듬의 강약으로 심장의 박동을 보여줬다. 이것은 스토리 공간이나 화면의 리듬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내면적인 감정의 깊이를 대위적으로 표현한 것의 모델이 된다.1982년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칠레의 군사쿠데타 상황을 고발한 영화 ‘의문의 실종’은, 정치적 이유로 3,000명이 살해되었던 칠레의 긴박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다큐멘터리처럼 전해주는 카메라와는 대조적으로 오히려 차분하고 평온하기까지 한 반젤리스의 건반을 통해 지극히 반어법적인 리얼리즘을 구현한 경우다. 그리고 21세기적인 암울한 미래사회를 묘사한 최고의 풍경화로 전해지는, 그리고 인조인간에게 반영된 인간성의 이중적 이미지가 탁월한 전범으로 기록되어오는 1982년의 리들리 스캇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있다.전자음악이 해낼 수 있는 새로운 음색의 창조에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 이 작품의 음악은, 공해로 인해 항상 비가 오는 칙칙한 도시의 분위기나 금속성의 주위환경 사이에서 쫓고 쫓기는 불안한 존재들의 정체성을 빗물과 눈물의 이미지에 섞어놓는다. 인조인간과 그들을 제거하는 해리슨 포드 사이에 흐르는 연민을 전달하는 데 블루스적인 선율이 동원되고, 끝없이 누군가를 쫓아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자의 반역을 위해, 전자악기로 만들어낸 풀 오케스트라의 꽉찬 소리가 빠르지만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긴장감 넘치는 리듬이지만 슬프고 유장한 선율로. 블레이드 러너와 리플리컨트가 함께 도피한다. 도피는 계속되고 암울한 운명은 결국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암시는 음악 외에는 없는 것이다.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을 읽고 나서본인에게 '강대국의 흥망'은 정치학의 이해 교양 수업 레포트 덕분에 정말 오래간만에 읽어보는 인문과학 서적이다.원래 본인의 전공이 컴퓨터 공학인지라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특히 군 제대 후 복학한 후로는 전공 서적만 탐독하였기 때문에 이춘근 교수님께서 제시하신 서평쓰기는 공학적 마인드로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있던 본인에게 좀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줄 기회가 될 것 같아 인문사회 분야의 책을 읽어 보기로 한 것이다.사실 여러 책들 중에 폴 케네디 교수의 '강대국의 흥망'을 선택한 이유는 본인이 고등학교 때 읽어보려고 사놓았던 책이었으나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루다 안 읽었던 책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고등학교 때 친구의 추천으로 이 책을 구입했었을 만큼 '강대국의 흥망' 이라는 책은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매우 유명한 책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분량도 많아서 거의 7백 페이지에 달한다. 내용 또한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본인은 7백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전 부분을 탐독하지는 않았고 총 3부로 나누어져있는 파트 중에서 1부인 '산업과 이전의 세계'는 skim 하여 읽고 산업화 시대와 현대 세계를 다룬 2부와 3부를 중심으로 읽었다.1. 유럽, 서양 세계.이 책을 읽어가면서 왜 서유럽지역이 다른 지역을 누르고 부상하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세계 지도나 유럽 지도 등을 참고하며 같이 보았는데 생각보다 서유럽의 크기는 크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보다도 작았다.이 책의 초반부에 유럽의 발전 요인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는 첫째 사회구조. 지리적 위치와 우발사태 등과 같은 여러 요인들과 상호작용 하면서도 주로 경제, 기술적 발전으로 촉진되는 역학관계가 있다는 것, 둘째 세계정치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는 한 개인의 변덕이나 변화무상한 외교, 정치보다는 물질적 기초와 장기적 요인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 셋째 힘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여러 국가와 사회를 거력이 존재하지 않는 반면 여러 왕국과 도시국가들이 호적적인 분쟁을 일삼는 바람에 끊임없이 군사력 증강을 자극했고 그 같은 경쟁적. 기업적 환경에서 태동한 새로운 기술적. 상업적 진보와 서로 맞물려 열매를 맺었다.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가 보다 적은 유럽사회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어 군사력을 증강함으로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계의 다른 지역을 앞지르게 되었다.2. 산업화, 영국의 제국주의.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며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의 도약은 세력다툼으로 힘 싸움을 하던 유럽에서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이 책의 '산업화와 세계 균형의 변동' 부분에 보면 17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의 잦은 분쟁과 동맹결성과 서로간의 힘겨루기들이 19세기의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유럽에서도 양상이 변하는데,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기술이 육, 해군 전쟁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영국을 또 다른 종류의 강대국으로 탈바꿈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해군력과 금융신용과 상업술, 그리고 동맹외교들 치밀하게 결합시켜 1815년에 이미 세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특히 산업혁명은 세계인구의 2%, 유럽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영국이 근대산업에서 전 세계 잠재력의 40-45%, 유럽잠재력의 55-60%를 차지했다. 그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해군력을 앞세워서 식민지를 팽창시켰는데 태평양방면의 프랑스의 움직임이라든지 등을 제외하고는 이제 큰 라이벌은 없어진 셈이었기에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식민지의 군대를 유지했다. 그런데 영국군대는 사실상 1815년 이후 50년이 넘도록 영국 군대는 국민총생산의 약 2~3%를 소비하는데 그쳤으며 영국 경제의 규모가 군사력에는 반영되지 않았다.19세기 후기를 보면 세계의 중심은 유럽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러시아의 장군 드라기미로프(Mikhail Dragimirov)가 "극동문제들은 유럽이 결정한다." 라고 이 무렵에 언명하였다.그런데 다음 30년 동안(강대국의 역사에서 보면 그것은 실로 짧은 기간일 것이다) 바로 그 유럽 대륙이 자체 분열을서는 본인도 정말 단기간동안에 세계의 중심세력이 변한 것에 대해 놀라웠다.60년에 걸친 강대국 전쟁의 큰 윤곽은 1890년대에 이미 시사되었지만 개별 국가의 성패는 아직 판가름나지 않은 상태였고 분명히 국가가 생산력을 유지하고 확대시킬 수 있는가에 많은 것이 달려 있었다.국가가 국제적 위기의 중심부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가 아니면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가? 그 국가는 외부의 침공으로부터 안전한가? 2개나 3개의 전선에 걸쳐 동시에 대치해야 하는가? 국민적 단합, 애국심 그리고 국가가 국민에 대해 행사하는 지배력도 중요했다. 사회가 전쟁의 긴장을 견디어내는가 하는 것은 재부 구성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이었다. 그것은 또 동맹정치와 결단에 의해서 좌우될 수도 있었다. 그 나라가 큰 동맹체의 일부로 싸우는가 아니면 단독으로 싸우는가? 처음부터 전쟁에 가담했는가 아니면 중도에 참전했는가? 이전에 중립적이었던 다른 나라들이 적측에 가담하여 참전했는가?이와 같은 질문들은 양극사회의 도래와 중위권국가의 위기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르면서도 상호 작용하는 세 가지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주는데, 그 첫째는 한 국가가 물질적으로 강화 또는 약화될 때의 군사, 산업생산 기반의 변화이고, 둘째는 이 같은 세계균형의 광범한 변화에 대한 개별 국가의 반응에 영향을 미친 지정학적, 전략적, 사회문화적 요인들이며, 셋째는 20세기 초의 동맹전쟁의 승패에도 영향을 미친 외교적, 정치적 변화이다.3. 20세기 초20세기 초가 되면서 많은 비교통계들의 지표에서 미국은 하나의 라이벌 대륙으로서 유럽 전체를 따라잡는 수준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하였다.사실 어떤 추정에 의하면 이 같은 성장률이 지속되고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미국은 1925년까지는 경제적 생산량에 있어서 유럽을 앞질러 세계의 으뜸가는 지역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지난날의 강대국들이 경제적 손실과 혼란을 겪는 바람에 미국이 유럽을 능가하게 되는 시기가 1919년으로 6년 앞당겨졌다. 유럽이 었다. 그 당시 미국은 다른 6대 강대국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량을 생산해내고 있었다.그 당시 미국인들은 지도적 입장이 되면 필연적으로 외교와 군사 부문의 분쟁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세계정치에서 지도적 역할을 단호하게 거부했다.1939년 후반에도 미국의 군사비는 겨우 국민총생산의 1.6%를 차지했는데 이것은 다른 강대국에 비해 훨씬 낮은 비율이었다. 파시스트 국가와의 군사비 차이를 줄이기 위한 미국의 군사비 증가는 미국을 자동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국가로 만들었다.히틀러의 경우 미국을 퇴폐적이고 이종족이 뒤섞인 강대국으로 보는 경시태도로 인해 문제가 훨씬 복잡해졌지만 그는 자신의 정복용구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1940년대 중반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 가서는 군사균형이 결정적으로 영국, 프랑스, 미국 쪽으로 기울 것이기 때문이었다.일본도 미국을 상당히 심각하게 고려해왔기 때문에 계산이 분명해졌다.일본 역시 독일처럼 강대국들에 의해 갈수록 퇴색하는 세계 속의 중위권 국가로서의 운명을 벗어나고자 곧바로 강력한 전략적 공격을 전개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중요한 것은 일본의 행동과 히틀러의 대미 전쟁선포가 세계에서 가장 힘있는 미국을 전쟁에 뛰어들도록 했다는 점 이었다.미국의 참전 소식을 들은 처칠은 드러내놓고 기뻐했다. "이것으로 히틀러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무솔리니의 운명도 결정되었다. 일본도 산산조각 나게 되었다."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일 때부터 이미 미국의 군사계획 입안자들은 새로운 질서의 개요를 그리고 있었다. 미국의 한 정책보고서는 ■이 전쟁을 성공적으로 종식시키면 이 세계는 국가의 상대적 군사력면에서 심대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일본의 패망 후에는 미국과 소련이 유일한 일급의 군사대국이 될 것이다. 이것은 두 나라가 갖고있는 지리적 위치와 크기 그리고 방대한 군수조달능력에 기인하는 것이다■ 라고 쓰고 있다.19세기와 20세기초에 자주 예견되었던 양극체제가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국제질서는 이제 '1945년의 미국은 마치 1815년의 영국과 마찬가지로 말하자면 부자연스럽게 강대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실제적 힘은 절대적 의미에서 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미국의 생활수준은 어느 나라보다 높았고 1인당 생산성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국 중에 전쟁으로 인해 가난해지지 않고 더 부자, 실제로는 훨씬 더 큰 부자,가 된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경제적인 면에서 세계는 미국 이익의 대상이었다.이 같은 경제력은 군사력에 그대로 반영되어 미국은 종전 당시 해외 파견군 750만을 포함하여 모두 1,250만명의 병력을 보유하게 되었다.미국이 누렸던 이처럼 극히 유리한 경제적, 전략적 지위를 생각할 때 1945년 이후 미국의 해외진출은 국제정치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전통적 강대국들이 물러나면서 미국은 이들이 남긴 공백을 착실하게 메워갔다. 일단 세계 제일은 국가가 된 이상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자국의 영토 아니 서반구에만 머물러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분명히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힘과 영향력의 대외 팽창을 가져온 일차적인 원인이었다.1815년 당시의 영국처럼 이번에는 미국이 여러 나라에 대한 자국의 비공식 영향력이 일종의 공식적 영향력으로 굳어가고 더욱 복잡한 관계에 얽혀드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과거의 영국처럼 이제는 미국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불안정한 새로운 프론티어(new frontier of insecurity)■을 설정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다. ■미국 지배하의 평화(Pax Americana)■가 무르익었다.과거에 강대국이었다가 초강대국의 등장과 함께 중위권 국가로 전락한 나라들은 어떻게 보아야할까?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패전한 파시스트 국가들은 종전 직후의 영국, 프랑스와도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연합국은 독일이나 일본이 다시는국제 질서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다져놓기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을 밀고 나갔다.반면에 프랑스는 독일 분할점령 참여라든가 국제연합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