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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가- 묵자의 생애와 사상
    묵가(墨家) ; 묵자(墨子)의 생애와 사상서론중국철학은 인식론의 탐구보다는 덕성의 함양과 인격수행이 중시되며, 보다 높은 경지의 지혜를 추구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양철학이 진리를 추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면 중국철학은 생명(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주체로 한 이른바 실천 원리로서의 도를 체득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을 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중국철학을 연구하는 까닭이 있다.사람들은 흔히 오늘의 세상을 불확실성의 시대 또는 격동의 위기시대라고 부른다. 『묵자(墨子)』및 기타 선진사상(先秦思想)들은 모두 전쟁으로 피폐한 패도의 동란시기에 태어난 것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격동의 자극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격동의 시기에 배태되었던 묵자의 윤리사상을 짚어보는 것이야말로 오늘의 위기적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한 하나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묵자의 윤리사상을 연구하는 목적은 중국 고대윤리학의 일면을 탐구하는 데 있으며 그러함으로써 혼란한 현실의 도전을 주체적으로 대면하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1. 시대적 배경삼황오제(三皇五帝) 전설이 중국에서의 대표적인 고대설화라고 한다면, 은대(殷代)로부터 시작되는 역사시대와 고대설화와의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어있는 하(夏)왕조의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 아직까지 하왕조에 대한 역사적 고증은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하는 그 왕조를 지속하는 동안 초기에는 농경과 수렵이 평행적으로 행해졌으나 차츰 농업생활을 영위하면서 정착적인 생활형태가 굳어졌고, 여기에서 혈연의식에 의한 사회조직도 형성되어 갔으리라 추정되고 있다.그러나 하 말기에는 왕들의 사치와 방탕으로 인해 연합세력의 범위에 있던 여러 부족의 이반을 초래하게 되어 드디어 하왕조에 반대하던 가장 유력한 세력이던 은에게 멸망당하게 되었다(기원전 1562-1523년 경).최근에는 하, 은을 단순한 선후관계보다는 시간적으로 병렬한 존재로 해석하면서 하의 실재성(實在性)을 주장하고, 이것을 초기 문명단계로 설리학설은 크게 4대학파가 있었다. 즉 유가, 묵가, 도가, 법가이다. 이들은 상호 유사함과 상이함을 지닌 경쟁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이들의 사상투쟁은 서로 다른 학파들 간에 내재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학파라 할지라도 여러 파벌들 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각 파벌들이 대표하는 계급과 집단이 다르고 그들이 견지하는 정치관이 다르고 또 이런 정치관이 이론적 근거로 삼는 철학이론이 다르고 도덕생활을 관찰하는 각도와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여러 학파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윤리학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도 제각기 다른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선진시대에는 윤리학의 사상투쟁에 있어서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측면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1. 선진 윤리학의 여러 가지 측면들1) 도덕 원칙에 대하여이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정의하느냐에 있다. 유(儒), 묵(墨), 도(道) 세 학파는 모두 사회를 떠난 개인은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 당시 계급제도를 옹호하고 계급제도로써 도덕의 기본 원칙을 삼았으나 그 중에서도 유가와 법가가 제일 두드러진다. 좀 더 세분해서 개인주의와 이타주의의 대립, 공리주의와 초(超)공리주의의 대립의 관점에서 보자.맹자와 묵가, 특히 후기 묵가는 이타주의를 주창했고 양주와 도가의 노장학파는 개인주의를 표방했다. 또 하나, 유가의 공맹(孔孟)과 도가의 노장(老莊)은 모두 초공리주의를, 묵가와 법가는 공리주의를 제창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유가와 도가의 초공리주의는 동일하다고 볼 수 없고, 묵가와 법가의 공리주의도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선진윤리학은 공리파와 초공리파라는 두 양대 사상으로 특징지워진다.2) 도덕의 기원과 성질에 대하여도덕의 기원에 대해서는 천부론(天賦論)과 후천형성론(後天形成論)의 대립이 있다. 맹자가 전자의 대표라 한다면 순자는 후자의 대표이며, 묵자는 ‘하늘의 의지(천지설, 天志說)’와 ‘후천적인 형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애매한 태도나라들 중 하나로 전락하였고, 실제로 기원전 249년에 초나라에 멸망당했다.)2. 묵자의 윤리사상(倫理思想)1. 사상적 배경1) 원류(原流)주(周)의 제자(諸子)는 어느 누구나 그 근거하는 바가 있다. 묵자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학자는 묵자가 우(禹)를 그 학문의 원조로 삼고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묵자의 학설과 우가 행한 일이 크게 서로 유사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첫째, 묵자는 절(節), 검(儉)을 말하는데, 우의 미덕으로서 절검이 가장 두드러짐은 논어에 보이는 공자의 말에 의해서도 명백하다.둘째, 묵자는 유가의 후장주의(厚葬主義)에 반대했다. 그런데 후장(厚葬)은 주(周)의 예(禮)요, 그 이전은 대단히 간단한 것이다. 특히 우 때는 홍수가 있은 뒤라 후장 따위가 될 리 없었던 것이다. 『회남자(淮南子)』에서 말하듯이 “언덕에서 죽은 자는 언덕에다 장사하고, 늪에서 죽은 자는 늪에다 장사하며... 삼년상을 하지 않고 석 달로 마쳤다”고 하는데, 이것은 묵가의 절장단상설(節葬短喪說)과 동일하다.셋째, 묵자는 ‘겸애(兼愛)’를 주장하여 자기 몸을 수고롭혀 세상을 주제함을 도덕의 요체로 보았는데, 우(禹)도 천하를 위해 부지런히 홍수를 다스려, 3년 동안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 부지런함은 묵학(墨學)의 이상과 크게 들어맞는 것이다.요컨대, 유가는 당시에 가장 완비된 주의 예를 채택한 반면, 묵가는 하례(夏禮)를 채택하였던 것이다.2) 사회적, 사상적 배경첫째, 묵자는 비천한 집안 출신이다. 그러나 그가 ‘천한 신분’이라는 것은 단지 ‘벼슬을 하지 않은 평민’을 뜻하는 것이지, ‘노예’같은 천민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이 사실은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던 듯하다. 즉, 묵자 자신이 미천한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여 봉건 계급사회를 타파하고 사회를 개혁하고자 뜻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겸애’, ‘비공’을 비롯하여 ‘절검’과 ‘귀의’ 등 그의 모든 사상은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둘째, 묵신하이다. 그래서 하늘이 모든 것을 보전시켜 주고 있고, 모든 것을 먹여 살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늘’은 묵자의 신앙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2) 하늘의 의의 : 인간 생활의 기준묵자는 늘 인간 윤리의 기준으로 ‘의(義)’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묵자는 이 ‘의’가 ‘하늘’로부터 나오는 것(義果自天出矣-의과자천출의, 「천지」)이라 하였다. 곧 ‘하늘’은 사람들이 살아나가면서 지켜야만 할 모든 규범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이야말로 이 세상의 최고 통치자이며, 천자도 ‘하늘’의 뜻을 따라 정치를 할 때 비로소 올바른 다스림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처럼 묵자에게 있어서 ‘하늘’은 온 우주와 천하의 질서의 정점인 것이다. 즉, ‘하늘’은 우주의 주재자인 것이다. 따라서 묵자의 사회 개혁을 지향하는 여러 가지 사상도 이 ‘하늘’의 뜻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4. 묵자의 윤리사상1) 겸애(兼愛)앞에서도 이미 지적한 것처럼 묵자 윤리사상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하늘(天)’에 대한 신앙이며, 이 ‘하늘’은 사람들에게 윤리규범으로 ‘의(義)’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의’가 인간생활 속에 구체화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면이 ‘겸애’이다. ‘겸애’는 묵자철학의 중심사상으로서 ‘하늘’을 법도로 삼아 발전한 것이다.)따라서 묵자의 ‘겸애’는 나와 너의 구별이 없는 절대적인 사랑이다. 다시 말해서 나와 너의 구별도 없이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이 ‘겸애’이다. 즉, ‘겸애’란 “남 사랑하기를 그 자신을 사랑하듯 하고”, “남의 아버지나 형 또는 아우나 아들 보기를 그 자신 보듯 하고”, “임금이나 신하들 보기를 그 자신 보듯 하고”, “남의 집이나 남의 몸, 남의 나라 보기를 자기의 집이나 자기 몸, 자기 나라 보듯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대취(大取)」편에서도 “남의 어버이 사랑하기를 자기 어버이 사랑하듯 한다”(愛人之親, 若愛其親 ; 애인지친, 약애기친)고 하였다.따라서 ‘겸(兼)’이란 자기와 남을 똑같이 생각하는 것, 자기와 남의 유, 묵가에서 말하는 정의의 내용은 서로 다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추상적인 ‘정의’의 관념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묵자는 의를 사회도덕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통치자가 국가를 다스리는 최고 원칙으로 생각했다. 즉, 묵자는 의를 관리를 선발하는 표준으로 삼았으며, 천자의 책임은 현명한 인재를 선발하여 통치를 보조하게 하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의라고 하는 것은 바름이다.”, “모든 것을 막론하고 가장 귀중한 것은 의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묵가가 의를 중시한 까닭은 의라는 도덕관념으로써 당시의 계층관계를 조정하려는 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의 신분 세습제도에 정면으로 대립한 견해이며, 이 점으로 볼 때 묵자의 귀의설은 당시의 시대환경에서 보기 힘든 매우 진보적인 경향을 띤 것이라 할 수 있다.그러한 묵자의 사상은 소생산자 계층이 가까스로 얻은 사유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3) 비공(非攻)비공이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침략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겸애’를 주장하는 묵자의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당연한 조건이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비공’이란 국제 문제에 있어서 겸애의 한 단면이라 볼 수 있다. 국제관계에 있어 유독 전쟁만이 있을 리는 없지만, 묵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공’을 강조한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 할 것이다.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춘추시대에 신하에게 시해당한 임금이 36명, 망한 나라가 52국, 제후로서 망명을 하여 자기 조정을 보전치 못한 사람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라고 하였고, 맹자도 “신하로서 그의 임금을 시해하는 자도 있고, 자식으로서 그의 아비를 죽이는 자도 있었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전국시대에 와서는 나라들 사이의 전쟁이 더욱 어지러울 정도로 많아져서 맹자가 “땅을 다투기 위해 전쟁을 하느라고 사람을 들판에 가득하게 죽이고, 성을 다투기 위하여 전쟁으로 하느라고 사람을 성에 가득할 정도로 죽이다)가
    인문/어학| 2009.03.26| 22페이지| 1,500원| 조회(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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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속에 대한 개략적 고찰
    무속(巫俗)에 대한 개략적 고찰(槪略的 考察)1. 무속이란?무당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민간 신앙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를 흔히 무속 내지 무속신앙이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는 그 외에도 타종교와 동격으로 부른다는 의미에서 무교라고 한다든지, 무당들 스스로가 부르는 명칭을 존중한다고 그냥 무(巫)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국제적인 용어로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하기도 한다.종교로서의 무교는 사람들이 평상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큰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무당의 중재를 빌어 신령들의 도움을 청하는 종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대부분의 학자들은 한국 무교의 기원을 동북아시아의 시베리아에 있던 샤머니즘으로 본다. 그것은 이 양자가 구조적인 면에서나 그 기능 등의 면에서 유사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다면 무당이 천계와 교통하는 망아경의 기술에서이다. 한국 무교의 경우에는 천계의 신령들이 무당의 몸에 실리는 빙의(憑依)형인 반면, 시베리아의 샤먼들은 우리 무당의 경우처럼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망아경이 되면 혼이 몸을 빠져나가 천상계로 가서 신령들과 직접 만나는 이동(移動)형이다. 이는 양분화의 특수성 때문에 생긴 차이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즉 여러 곳으로 움직이기보다는 한 곳에 정착해야 하고, 기후와 같은 자연적 조건에 어쩔 수 없이 의존해야 하는 농경문화가 주종을 이루는 우리나라에서는 무당도 아무래도 정착형으로 수용적인 경향이 강할 것이다. 반면 자연과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고 더 좋은 자리를 찾아 계속 돌아다녀야만 하는 수렵 문화의 시베리아에서는 샤먼들도 가만히 앉아서 신을 받기보다는 스스로 찾아 나서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또한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이 사양길을 걷는 반면에, 한국의 무속은 여전히 활발하게 살아있는 종교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국 무당들의 전국 조직인 ‘대한 승공경신연합회’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등록된 무당의 숫자가 5만 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무당들의 학력이 점차 높아하는데, 이러한 인물이 바로 단군이다. “하늘”의 임금임을 내세워서 지배자의 위치를 강화하는 메커니즘은 고조선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이다.한국의 제례나 풍속을 기록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인 중국 진 나라의 진수라는 사람이 쓴 위지 동이전의 기록을 보면, 부여에서는 북을 쳐서 신을 맞이하는 영고라는 제천의례가, 고구려에는 시조 동명왕에게 제사 지내는 동맹이 있었고, 동예에서는 춤으로써 하늘에 제사 지내는 무천이 있었으며, 진한에서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성역인 소도에서 밤낮없이 음주 가무로 신들을 즐겁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이러한 의례 풍속들은 당시 정치, 종교적 지도자였던 무(巫)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들 지도자들이 무당이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에 기록된 남해차차웅(재위 AD4-24)조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 두 번째 왕은 별명이 차차웅인데, 이 말은 당시 속어로 무당이라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그 왕이 신령들에게 제사를 정성스레 잘 지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어 무당이라는 뜻을 가진 차차웅이라는 별명을 그에게 지어 주었다”3. 무속신앙의 요소3.1 신, 신령 : 신앙의 대상3.1.1 신의 종류무교에는 수많은 종류의 신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분류에도 많은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① 아까마스 : 천상령, 영웅령, 시조령, 무조령, 가택신, 토지령, 풍신, 방위신, 무령, 생로병사에 관한 신, 타계령, 성스러운 나무, 신령한 동물, 떠돌아다니는 신, 몸에 붙어 다니는 신.② 클라크 : 원시 유일신론(하느님은 본래 유일신적인 최고신이었는데, 고대형의 무교가 차차 다신교로 타락해 가는 과정 중에 하느님도 점차 “희미한 지고신”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③ 언더우드 : 교체일신교론④ 김태곤 : 자연신 계통(천상신, 지신, 산신, 수신 등 158종)인신 또는 영웅신 계통(왕신, 장군신, 대감신, 수조신 등 90종)그 외의 신들 (걸립신, 부정신, 가뭉신, 측신 등 25종)⑤ 조흥윤 : 무신의 위계 질서가 무당의 계급여러 신령이 복합하여 하나의 신령을 형성무속의 세계에서 신령의 형성은 신앙 공동체의 감정 이입 내지는 사회적인 공감이다. 그래서 신령들은 인간 공동체의 공감 여부에 따라서 생성 소멸과 흥망성쇠의 길을 걷게 된다. 사회적인 공감 혹은 영향력이라는 기준을 설정해 놓고 볼 때에 신령들의 영향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위는 반비례의 상관 관계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3.1.3 신령의 기능한국의 무신들은 거의 모든 신령들이 다소간 하늘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 신들의 형성은 “죽음과 재생”의 요건을 충족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돌아온 영웅’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신령이 무엇으로 불리든지 간에 지극히 존귀한 존재가 가장 비천한 존재가 되어 이 세상의 온갖 간난 고초, 부조리, 고통, 모순, 한 따위의 비구원의 상황(죽음)을 몸소 겪고 나서 존귀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재생, 거듭남)이렇게 고통의 상황을 극복하고 되돌아온 ‘지고자(至高者)’ 즉 돌아온 영웅은 이전과는 달리 구원의 능력을 갖춘 존재(메시아)로서 귀환한다. 구원 능력을 갖추고 이 세상으로 되돌아온 ‘지고자’라는 말은 또한 어떻게 이 세상의 고난과 위난을 극복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과 모범을 범부(凡夫)들에게 보여 주는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이러한 신령들은 그 자체로 선하다거나 악한 성격을 띠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인간의 대우 여하에 따라서 신령의 기분이 달라지고, 거기에서 신령들에 대한 인간 본위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신령과 신령 사이에, 또 신령과 인간 사이에 알력이 없고 신의 풍파가 거세지 않도록, 그리고 삼라만상이 조화롭도록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이러한 특성을 지니는 신령들은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무속 신앙의 최종 목표인 조화에 이르는 기능을 수행한다.첫 번째 단계는 한(恨)의 인식이다. 무력함과 원한의 감정, 해방을 필요로 하는 상황 인식, 비(非)구원의 세계에 대한 경험, 조화와 평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드는 비조화와 반평화의 대조 경험에 대한 깨달음이다. 체제가 정형화되어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무당이 점복을 하고 치병을 한 기록이 남아 있는 삼국 시대에도 본격의례로서 굿을 했을 것이고,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 발굴에서 출토되는 제의용 방울 등이 현재의 무당 방울 등과 흡사한 점을 미루어 보면, 굿의 역사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3.2.1 굿의 유형굿은 제의의 대상, 즉 누구를 위한 굿을 진행하는가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대별된다. 첫째, 신굿은 무당 자신을 위한 제의이다. 둘째, 집굿은 기주 가족을 위해서 집전된다. 셋째, 마을굿은 지역 공동체를 위하여 치러진다.이를 좀 더 세분해보면, 강신무에게 해당되는 신굿은 내림굿, 진적굿, 물림굿으로 구분되고, 집굿은 여염에서 일가 피붙이의 총체적인 조화를 꾀하는 의례로서 재수굿, 병굿, 진오귀굿으로 나뉜다. 마을굿은 한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 전체가 통합을 이루어서 집단적으로 평화와 부귀를 기원하는 의례로서 대동굿, 별신굿, 당산제로 나눌 수 있다.3.2.2 굿의 구성무속의 본격적인 의례인 굿은 지역, 종류, 그리고 목적에 따라 그 구성이 다양하다. 단순한 축원의 형식인 비손이나 3-4거리로 구성되는 치성에 비해서 굿은 10-38거리까지 이어진다.기본적으로 굿은 신을 불러들여서 인간의 소청을 고하고 신의 대답을 듣거나 신에게 소청한 것이 어떻게 전달되었는가를 각종 신점을 쳐서 알아본 후에 음악과 춤과 촌극 등으로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고 나서 신을 보내는 순서로 되어 있다. 즉 굿판으로 신을 모셔 들이는 청신(請神), 신을 놀려서(놀도록 만들어서) 즐겁게 하는 오신(娛神), 그리고 신을 보내 드리는 송신(送神)의 3단계 과정을 거치게 된다.모든 굿의 목적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안녕과 복락을 구하고 재난을 예방하거나 물리치려는 데 있다. 죽은 영혼의 천도를 위한 사령제라 할지라도 궁극의 목적은 사령이 현세적 삶의 공간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되기 때문에 망자로 하여금 삶의 세계에 대해 지니고 있는 모든 집착과 원한을 풀로 없고 창시자도 분명하지 않으며 조직이 정비되어 있지 않은 종교에서는 종교적인 기능을 행사하는 인물이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무당은 한국 무속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진다.우선 그 어원에 있어서 무(‘巫’)라는 한자는 “긴소매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래서 “그 춤으로 신령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대적인 해석은 윗부분의 가로획은 “하늘”을, 아래 부분의 가로획은 “땅”을 뜻하며, 그 사이 양편의 사람 “인”자 두 개는 이 세상에 사는 인간들의 온갖 상황을 의미한다고 한다. 인간의 힘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을 무당이 하늘에 빌어서 푸는 상징적인 모습이 바로 세로획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堂)”은 본래 집을, 특히 기도하는 집을 의미하지만 그 뜻이 전이되어 무(巫) 자신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3.3.1 무당의 유형무당의 유형은 흔히 한강을 경계로 하여 그 이북 지방의 강신무와 이남 지방에 세습무로 나뉜다. 강신무(降神巫)가 되는 데는 강신 현상, 곧 신병을 앓는 것과 입무제인 내림굿을 하는 것이 무당이 되는 기본 조건이다. 내림굿을 한 다음에는 그 숙을 주제한 기성무당의 도제가 되어서 무업수행에 필요한 지식, 기술, 예능 등을 배운다.세습무는 남부지방과 동해안을 따라 분포되어 있는데, 무당가계에 의해 무업을 세습한다. 강신무의 세계에서는 무당의 대부분이 여성이지만, 남자 무당도 간혹 섞여 있는데 반해 세습무는 여성뿐이다.강신무와 세습무는 굿을 주제하는 방법에서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 강신무의 굿에서는 반드시 방울을 흔들면서 신의 자격으로 인간을 향해 말을 하는 부분이 포함된다. 이를 ‘공수’라고 한다. 그러나 세습무는 굿에서 직접 신의 자격으로 달하는 부분이 없다. 그 대신 신에게 인간의 소원을 고하는 부분과 신의 뜻을 알아보는 방법이 강신무보다 다양한 편이다.3.3.2 무당 수업무당들이 흔히 하는 말에 “영검은 신령이 주나, 재주는 배워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무당 수업과.
    인문/어학| 2009.03.24| 10페이지| 1,000원| 조회(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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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학]한민족 고유사상 - 풍류도
    한민족 고유사상 - 풍류도(風流道)서론한국의 고유 사상인 풍류 사상을 알아보는 것은 단지 국수주의의 편협한 사고를 가지려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한 올바른 인식의 자세를 갖추려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적인 호기심을 만족하기 위함이 아니라 한국인 의 심성 안에 내재해 있는 얼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우리가 서있는 땅에 대한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열기 위한 것이다.지금 이 시대에 만연된 외래 문화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마저 외국인으로 만들며 심지어 그것이 최고의 것인 줄 알고 조건 없이 답습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 상황에서 과연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며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자신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우선 풍류 사상의 기원을 알아보고 한국인의 종교적 영성의 측면에서 풍류 사상의 참뜻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풍류도가 어떻게 발전하여 화랑도의 유래가 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본론1. 풍류 사상의 연원)1.1.한국 원시 신앙의 풍류풍류란 상식적인 의미에서 ‘노래와 춤’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한국인이 어떻게 이 노래와 춤을 신앙의식으로 채용하였나?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고대 정신성을 미루어 알 수 있다.풍류는 고대 한국인의 모든 문화와 정신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록은 최치원의 난랑비서 에 짤막하게 나타난다.“우리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다. 이것을 풍류(風流)라고 한다. …이는 실로 삼교(三敎, 儒, 佛, 仙)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며, 뭇 사람들에게 접해서는 그들을 敎化(교화)한다.”(?三國史記?, 新 羅本紀, 第四, 眞興王條).이로써 한국에는 풍류도라고 하는 정신이 있어 신인(神人) 영교(靈交)의 행위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외래 사상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 우리의 사회생활을 지배하던 중요한 원리는 곧 이 풍류적인 신앙이었다. 고대인은 사고나 비판보다 신앙이 그 정신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던 것이다.신앙의 표현 양태로서의 풍류는 한족의 원시문화로서 나타났으으로 행하여지는 데는 신에 대한 관념에서 다른 민족들의 그것과 다르고, 따라서 종교적 의례도 다른 것이었다. 즉 신인관계를 시간인식으로 볼 때 연속적으로 생각하였다.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는 결코 시간적으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진행 과정으로 생각했던 것이다.공간적으로 볼 때에도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는 별립(別立)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가 연속 일치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여겼다. 다시 말하면 신과 인간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연속 일치하는 관계이다. 단지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신의 세계는 형이상적이고 무형의 세계인 것이며, 인간의 세계는 형이하적 유형의 세계라는 점에 있다. 이 형이상적인 신의 세계와 형이하적인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가 다름 아닌 풍류도인 것이다.이 풍류로 말미암아 신과 인간의 연속 일치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이같은 통로는 각 부족 또는 고대 국가에서 행해졌던 종교적 의식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것들을 기록을 통해 찾아본다면,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옥저(沃沮)의 무천, 마한의 오월제 또는 시월제같은 제천 의식이 있는데, 이 의식은 풍류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과의 접속을 위한 의례로서의 풍류는 전 부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를 형성했으며, 인간 상호간의 이해관계나 사고의 대립을 극복하고 그들 공동체의 염원을 기원하는데 그 역할이 있다고 본다. 이는 신에 대한 경외심의 표시이며, 신과의 접속을 신성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도의 경계 안에서 죄인을 체포하지 않았다는 데에는 신성시뿐만 아니라, 제천과 치정(治政)의 절대성이 보장된 영역이었기 때문에 대립이나 죄악시하는 관념이 전혀 없었고, 그곳은 풍류로써 감싸진 신성도량이었다.신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전부족의 구성원이 일체감을 형성할 필요가 있었다. 풍류의 의례는 고대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신을 영접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었다고 본다. 풍류는 공통의 의사를 표시하는 작용을 했으며 이러한 예는 다음의 설화를 통해서 짐작된다. 신라 성덕알 수 있다. 우리의 대표적 민족 신화인 “단군 신화”와 고대 한인들의 제천 의례의 구조를 통해 나타난 영성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느님(天神) 신앙이다. 하느님은 한국에 강림하셔서 자연과 인생을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농사를 전후하거나 삶의 위기에는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냈다. 둘째, 사람들은 금기 곧 자기 부정을 매개로 승화되어 하느님과 결합된다. 종교 의례로서는 가무 강신(歌舞降神)하여 신인 융합(神人融合)의 경지를 체험한다. 셋째, 하느님과 하나가 됨으로써 인간은 생산과 문화 창조의 소원을 이룩한다. 해마다의 풍작과 전쟁시의 승리와 보호를 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보인다.2.1.1. 양극의 교합 구조하늘과 땅, 신과 인간은 대립적인 이원론적 갈등의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가 분리의 둘이면서 하나인 교합 구조를 이루고 있다.2.1.2. 자기 부정을 매개로 한 결합곰은 여인이 되고 하느님은 인간으로 화하여 서로 결합한다. 양극이 인간 안에서 결합된다는 여기에 한국인의 인간주의가 엿보인다.2.1.3. 창조적 태극의 영성하느님과 인간의 상호 내재적인 결합은 하나의 새로운 양상 곧 태극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양극의 교합 그 자체가 하나의 창조이며, 이러한 태극이 인간과 문화를 창조한다.2.2. 풍류도의 구조원초적 영성은 종교 문화를 매개로 승화된다. 중국으로부터 고등 종교 문화의 전래로 인해 고대의 한문화는 일대 변혁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문화의 변혁을 매개로 원시적인 영성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예가 신라에 나타난 화랑도이다.풍류란 일반적으로 신선도의 이상인 자연과 인생과 예술이 혼연 일체가 된 삼매경에 대한 심미적 표현의 말이다. 그러나 최치원이 우리의 영성을 가리켜 풍류도라 한 것은 단순한 신선도의 사상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삼교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도교적인 것을 넘어선 우리 고유의 영성을 지칭한 것이다.“풍류”는 그 음과 뜻으로 보아 우리말의 불(夫婁)의 표기가 아)이요, 삶은 그 용(用)이 된다. 이 관계는 그 위치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어서 “한”을 체라고 한다면 “멋”이 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한과 삶과 멋은 셋이면서 하나의 이념을 구성하는 3.1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또한 상호 내재적인 것이어서, 셋은 각각 다른 둘을 내포함으로써 형성되는 이념이기도 하다. 곧 멋은 한과 삶의 창조적 조화로써 형성되는 것이며, 한은 멋과 삶을 내포한 포월성이며, 삶은 한 멋진 것이어야 한다.3. 풍류도의 사상적 특성3.1. 삼교포함(三敎包含)의 초월성(超越性))풍류도는 우리 나라의 기후 풍토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종교요 사상이지만, 그것이 가지는 특성을 말한다면 풍류도는 무엇이든지 우리 나라에 들어오는 경우 그것을 한국화하게 하는 조화의 능력이었다. 따라서 풍류도는 무엇이든지 한국화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풍류 사상은 신라시대에 통일국가 형성의 이념으로 부각되어 화랑도를 낳게 했다. 이 화랑도를 통해서 풍류라는 자기 정체의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통일신라의 풍류사상은 한국 고대 철학의 첫 열매를 맺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근원적 자각에서 출발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볼 때, 논리 전개의 가능성이 내포된 한 문장이거나 한 명제가 제시되면, 설사 그것이 종교적이거나 문학적인 표현이라 하더라도, 이를 계기로 거기에는 철학이 형성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나타나 있는 그 짤막한 표현은 한국 철학이 전개될 수 있는 논리의 가능성을 지닌 것이다.“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禪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이라는 이 한 명제를 놓고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의 문제는 역시 한국철학을 탐구하려는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에 근원적 자각의 철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 하는 시원적인 물음에 접하게 될 때, 그것은 역시 實乃包含三敎의 명제를 들어 해명해야 될 것이기 때문이다.實乃包含三敎란 유교, 불교, 도교를 다 포함하면서 그 이상의 고차원적인 이상을 지향하고 있다에 끼친 영향이 컸다. 이것은 지행일치주의(知行一致主義)가 그 당시 지식청년들에게 강렬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더욱 발분(發奮)한 유력한 인물들은 봉공정신에 불타, 국가 사회를 떠나서는 개인의 생활이 없고 개인은 단체를 위하여 심력을 다함에서 비로소 참되고 빛나는 생활을 얻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생명을 위하고 대중을 위하여 일하는 자세는 접화군생(接化群生)하는 풍류도의 인간상이라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관은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 위로는 철학적 종교적 영역에까지 이르고, 아래로는 홍익인간의 능력을 지닌 인간상이라고 하겠다. 천지의 신명이 받드는 인간, 음양이 잘 조화된 인간을 신인 또는 선인이라 하거니와, 이처럼 생성의 윤리를 터득한 인간은 참된 풍류인이 된다. 신의(神意)가 내재하고 물질이 인간으로 승화되며, 천과 지의 요소가 일신에 화육되는 존재가 된다.이 같은 인간은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생명적 가치를 실현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미 개체를 넘어서 남과 공동체를 형성하는 자아가 된 것이다. 즉 자아의 자립과 더불어 남을 성립시켜 주는 공동의 주체자인 것이다. 이와 같은 풍류적 인간상은 통일을 전후한 신라기를 맞이하여 화랑도(花郞徒)의 인간으로 구현되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삼국이 정립(鼎立)되어 각각 자국의 세력을 신장하려고 하는 때, 그 상황 속에서 신라는 풍류도를 정치적 방법에 의하여 형성시킨 것이 화랑도이다. 그러므로 통일신라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풍류도에서 생성의 논리, 생명철학을 제일 먼저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화랑도는 풍류의 인간화라고 표현해 본다.4. 풍류도의 가치론적 해석)화랑의 무리들이 주로 세 가지 일에 전념하였는데, 첫째가 도의로써 연마함이요, 둘째가 가락으로써 즐거워함이요, 셋째가 산수에 노니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세 가지 화랑의 수련방법은 각기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상보적인 것임은 물론이다.서로 도의로써 연마한다고 함은 풍류도의 기본적인 윤리 중시적다.
    인문/어학| 2006.06.01| 16페이지| 2,000원| 조회(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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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교철학]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신관(神觀)
    들어가는 글17세기에 예수회의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유교와 그리스도교는 본격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도착한 유럽의 전교사들은 불교가 중국의 대중적 종교라는 점에 착안하여 불교의 용어를 가지고 전교를 꾀하였고, 그 때문에 대다수의 일반인과 유교 지식인들에게 그리스도교는 불교의 아류인 것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마테오 리치는 중국인의 심성 저변을 지배하는 것이 불교가 아닌 유교로 파악하였고, 당시 중국 사회의 유교적 엘리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교리는 어필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유교와 그 경전에 융합할 수는 없었다. 두 사유 체계의 계속된 접촉은 제사의 용인에 관한 문제, 그리스도교의 신(神)을 상제(上帝)로 표기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 그 신을 섬기는 구체적, 즉 전례적 문제 등에서 충돌을 일으켰고, 중국의 조정은 결국 그리스도교의 전교를 금하는 정책을 반포하기에 이른다.)유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만물의 창조자(創造者), 배타적인 유일신(唯一神), 구약에서부터 전통적으로 중요시해온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긍정적인)은 언뜻 보면 일맥상통하는 것 같으면서도 많은 오해와 충돌을 낳았다. 그로 인해 중국과 조선(朝鮮)에서는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고, 중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로마와 친교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사랑, 봉사, 나눔, 섬김 등의 가치도 이에 못지 않지만, 신앙에 있어서 최고 개념이라 할 신(神)의 문제에 대하여 두 문화 사이에 완전한 합의에 이를 수 있느냐는 문제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이에 그리스도교와 유교에서의 신(神)과 천(天)이라는 개념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되어 왔으며,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는가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두 종교에 대한 이해를 지향하고, 상호 간의 비교를 통해 인간 중심적이고 다분히 무신론적인 현대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Ⅰ. 그리스도교1. 하느님의 존재(存在)에 대한 성서?신학적 고찰(考察)그리스도교의 하느님에 대한 정의들 명확히 드러내셨다. 하지만 서양의 신관은 후에 그리스적으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무시간적이요 초월적인 하느님 모습이 강조되었다. 이 그리스적 신관은 구원 체험에 기인하는 히브리 신관과 다를 수밖에 없다. 원초적인 하느님 체험은 구원의 하느님이고, 도정(道程)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2. 신(神) 개념에 대한 서양 철학(哲學)의 이해와 신 존재증명(存在證明)하느님, 신(神)에 관한 문제는 신 자체에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신 존재를 넘어서서 세계 및 인간 문제와 직결된다. 한마디로 “본질적 인간의 본질적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에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문제는 일상사의 문제와 함께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문제이며 존재론적 차원의 문제이다.)그런데 모든 형이상학이 지닌 공통적인 특성은 존재하는 것의 제일(第一)원인을 발견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데모크리토스에게는 ‘물질’ 내지 ‘원자’로, 플라톤에게는 신(神)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사유(思惟) 중의 사유로, 플로티누스는 일자(一者)로, 모든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존재(Esse)로, 칸트는 도덕법으로, 쇼펜하우어는 의지로, 헤겔은 절대정신으로, 베르그송에 있어서는 창조적 지속(創造的 持續)으로 지칭되었다. 이 연구들은 유(有)의 창조적 특성과 신에 대한 인식에서 최고점에 다다른다.)그러나 ‘신, 즉 하느님이 누구냐?’는 이 문제에 앞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하느님이 있느냐?’(神存在證明)의 문제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이에 대해 신존재(神存在) 증명의 5가지 길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능 혹은 이성의 힘으로 인과율(因果律)을 따져 결과를 보고 원인을 밝히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1. 제일 원동(原動)자는 모든 운동을 소급해 올라가면 이론적으로 최초의 원동력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원동력은 다른 것으로)법에 근거를 둔다. 양심법이란 선은 행하고 악은 피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사상이 시경(詩經)과 서경(書經) 도처에 반영되고 있다.)2. 천(天) 과 상제(上帝) 개념의 역사적 변천동양에서 절대적 천(天)의 개념과 상제(上帝) 개념은 추상적이지 않았다. 고대 중국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상제 개념은 보다 보편적이면서 초월적인 것이었다. 시경(詩經), 서경(書經)을 보면 상제에 제사 드린 내용이 있었고, 백성들이 못살게 되면 상제의 명으로 황제를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경과 서경 안에 나타나는 천(天)개념은 신적(神的)이고 인격적(人格的)이다. 즉, 지고무상(至高無上)의 권위를 가진 만물의 시원자이며, 만물을 생성 변화시키기도 하는 주재자이다. 둘째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적인 천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창공, 바로 그것이다. 셋째로는 상제(上帝)나 다른 신들이 머무는 장소로서의 천(天)이다.) 한편 많은 학자들은 조상신(祖上神)이 시간이 흐르면서 “상제(上帝)”개념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재(主宰)적 천제(天帝) 개념은 서주(西周) 말기에 이르러 변화하는데, 우선 천(天)과 제(帝)가 분리되고, 제(帝)의 사용횟수가 줄어든다. 춘추(春秋)시대에 이르러서는 절대적이고 위격적인 천(天) 개념뿐 아니라 소박했던 자연천(自然天)의 개념도 변화되면서 점점 더 많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주(周)대에 들어 예(禮)가 하늘에 근원을 둔 것이라는 사상을 통해 기능을 확대해 가면서 천(天)과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양태를 나타낸다. 즉, 예(禮)는 본시 인간의 합리적 사고를 통해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므로 이전의 종교적 천(天)이 담당했던 역할들을 대신하게 되고 이를 통해 인문주의(人文主義)적인 사고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신의 내재(內在)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절대적인 신관(神觀)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변화되는 것이다.천제(天帝) 개념은 위와 같은 변천을 거쳐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변하게 된다. 따라서 천인(天人) 관계의 바탕는 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위대한 내재(內在)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자가 인격적 신성에 대해 주로 언급했던 것에 비해, 맹자는 대부분 이런 인격신이 아니라 좀더 하늘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천(天)은 만물과 인간 안에 들어있고 또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데 이것을 곧 도(道)라 한다.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인간이 수양(修養)과 교육(敎育)을 통해서 이 도(道)를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천(天)은 인간 안에 존재하는 내재적(內在的) 초월이 된다.) 여기에는 계시(啓示)의 여지가 없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맹자(孟子)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인간관을 주장하였고, 모든 인간에게 성인(聖人)에로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그러나 이렇게 내재만 강조하다보면 초월을 배제할 위험이 있다. 원칙적으로 인간은 천(天)을 열망하고, 어떤 면에서는 천과 합일(合一)되기도 하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다. 유한(有限)과 무한(無限)은 동일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차이의 인식은 곧바로 경외(敬畏)의 대상으로 천(天)을 이해하게 한다. 그렇지만 공자 이후로 내재(內在)를 강조하는 경향으로 발전하여 인간적 현세주의(現世主義)에 빠지게 된다. 이로써 현세적인 것에 쉽게 만족하며 종교성은 약화되었다. 또한 천(天)의 의지를 지배자와 동일화하여 지배 이데올로기(ideology)로 삼음으로써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Ⅲ. 비교1. 인격신의 유무(有無)1.1. 신에 대한 긍정(肯定)유교 경전들은 추종자들에게 있어 그리스도교의 성경(聖經)과 같은 위치를 지닌다. 이 중 ‘시경’이나 ‘서경’과 같은 몇몇은,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자연과 역사의 주재가 되시는 인격적 신에 대한 신앙을 긍정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창세 1-2장), 인류 역사에 개입하시기로 했다고 선언한다(요한 1장).) 여기에서 신(神)은 그저 당연히 있는 자(者)로 나타난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엄격히 말해 그리스도교와 같이 신적인 계시(啓示)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특히 천으로 대용된 까닭에 상제는 인격화된 모습을 잃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천(天)이라는 글자가 원래 一과 大로 되었듯이, 그 의미는 하나의 큰 무엇이다. 한편으로는 창공(蒼空), 창천(蒼天)이기도 하다. 그리고 창천의 의미는 점차 자연 전반의 의미로 확대, 변이되고, 더 나아가 자연의 이법(理法)으로까지 변이되었다.이리하여 12세기 말엽 이후 성리학자들에 와서는 천즉리(天卽理)라는 명제로, 자연의 이법과 선의 원리를 아울러 함께 하나의 천의 의미로 포괄시키게 되었다. 즉 범신론적 사고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변이되었다. 따라서 그 유일성마저 명확히 부각되지 않게 되었다. 근세 이후에는 이법신에 가리워진 인격신이 바로 유교의 상제라 할 수 있다.2.2. 두 존재의 영명성(靈明性)과 조물성(造物性)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지닌 능력은 흔히 전지(全知), 전능(全能)으로 표현되듯, 어느 모로나 무한하고 절대적이다. 그의 영명성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그의 작위(作爲)력은 모든 것을 창조까지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상제 내지 천은 그렇지 않다. 초인적이기는 하나, 무한하고 절대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정약용이 “영명주재지천(靈明主宰之天)”을 밝혔듯이, 상제나 천은 인간들의 죄와 악을 다 아는 영명성을 지녔다. 그러나 전능한 존재는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유교인들은 상제를 인간과 우주 만물을 창조한 조물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유교인들은 상제가 우주만물을 제작한 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재자”임을 강조하며 천주교를 비판하였다. 그들은 우주 만물의 형성 원인은 어디까지나 상제가 아닌 태극(太極)이라는 궁극의 근원적 이(理)라고 주장한다. 굳이 인격화한 상제에 한정하여 살피더라도, 유교인들이 말하는 주재란 주관(主管), 관리(管理)의 뜻에 지나지 않는다. 즉 상제는 우주 만물의 관리자 중 으뜸가는 웃어른을 의미한다. 우리는 유교에서 우주 만물의 조물적인 창생에 대한 관심이 매우 희박함을 알 수 있다. 우주 만물의 생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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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어학| 2006.06.01| 16페이지| 2,000원| 조회(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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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철학]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본 다산(茶山)의 수양론
    1. 들어가는 글천주교(天主敎)가 종교의 의미보다 학문으로 먼저 전파된 조선(朝鮮) 이후 220여년이 흐른 지금의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매우 활발하게 그 세력의 위용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순교자(殉敎者)의 피”로 세워졌기에 그 추앙(推仰)의 열기 뒤에 가려진 학문 탐구의 열정이 최근 들어 밝혀지고 있다. 조선의 억불(抑佛)정책으로 유교만이 존재하던 사회에 어떻게 천주교 교리는 자리를 잡게 되었는가? 교리에 앞서 그리스도교만의 독특한 “인격적인”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중, 하느님, 천(天), 상제(上帝)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으로부터 신독(愼獨)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하여 이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천주교에서 사랑, 봉사, 나눔, 섬김 등의 가치도 이에 못지 않지만, 구약에서부터 전통적으로 중요시 여겼던 것은 한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긍정적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마태 6,3)” 하고, “골방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기도하여라(마태 6,6 참조)”는 구절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 차고, “너희의 하느님이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라(레위 19,2 참조)”는 말씀에 따라 자신을 속세에서 떠나 수기(修己)했던 수많은 성인성녀들의 모습에서 신독(愼獨)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러한 취지에서 먼저 2장에서는 “하느님”과 “상제”의 인격성과 유일성, 영명성과 조물성에 대해 고찰하고 구약성서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다음으로 3장에서는 특별히 천주교를 학문으로 탐구한 옛 성현(聖賢) 중에 가장 유명한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사상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겠다. 그의 천관(天觀)과 천명관(天命觀)부터 신독(愼獨), 사천(事天), 인성론(人性論), 도덕(道德) 수양론(修養論) 등을 살펴본 뒤, 수양론의 현대적 의의와 그리스 않게 되었다. 근세 이후에는 이법신에 가리워진 인격신이 바로 유교의 상제라 할 수 있다.2.2.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유일성“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갖지 못한다.”(출애 20,3; 신명 5,6)라는 구약성서의 십계명 중 첫째 계명은 이미 존재하는 신앙의 배타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첫째 계명이 요구하는 배타성과 유일신 사상은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J.Wellhausen은 “고대 이스라엘에 유일신 사상이 알려져” 있었음에 주목하며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셨고 단지 매우 후대에 와서야 비로소 우주의 하느님”이 되셨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초기 이스라엘 왕정 시대에 이미 범신(凡神)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만일 배타성이 요구하는 것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한정하는 것이라면, 신명 6,4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성이 해야 할 일 혹은 한계에 대한 언급에서부터 인간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계속해서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신명 6,5)고 말한다. 이와 같이 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는 말의 이면에는 이미 신앙의 배타성이 반영되어 있다. 사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법의 첫 마디는 당신 백성이 다른 신을 가져서는 안 되며, 오직 야훼만이 주님이고 해방자임을, 생명의 기원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계명이 가르치는 바는 이스라엘이 다른 모든 신을 제거하고 절대적으로 야훼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2.3. 두 존재의 영명성과 조물성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지닌 능력은 흔히 전지(全知), 전능(全能)으로 표현되듯, 어느 모로나 무한하고 절대적이다. 그의 영명성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그의 작위력은 모든 것을 창조까지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상제 내지 천은 그렇지 않다. 초인적이기는 하나, 무한하고 절대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정약용이 “영명주재지천(靈다. 이러한 다산의 천관(天觀)이 의도하는 것은 성리학의 개념적인 천관을 극복하고 원시유가의 천이 지닌 주재적(主宰的) 의미를 새롭게 되살려 자신만의 독자적인 천관의 확립과 실천적 천관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다산의 독자적인 天관은 “주재하는 천이 상제(上帝)가 된다. 그것을 일러 천이라고 하는 것은 국군(國君)을 국(國)으로 칭(稱)함과 같다.”-짐이 곧 국가-와 같이 천을 상제라고 부를 때 그 성격이 뚜렷해진다. 상제는 국군과 같이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존재이며 황천(皇天), 호천(昊天), 민천(旻天) 등은 상제를 위한 별칭일 뿐이며 天위에다 또 다른, 인간이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게 하는 절대적 근원자로서 상제를 상정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상제는 “감각경험이 불가능한 존재이며 영명과 주재의 능력이 있다. 영명은 상제가 앎의 능력을 갖추었다는 의미이고 주재는 의미를 가지고 만물을 다스린다는 말이다.” 이렇게 주재의 면에 중점을 두면 상제는 자연현상과 우주운행의 주재자임과 동시에 인간까지도 주재하는 절대적인 권능의 소유자로 해석된다. 이런 초월자로서 상제는 무성무형(無聲無形)한 까닭에 인간이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완벽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다산이 “옛사람들은 성실한 마음으로 천과 신을 섬겼으며 사념의 발생함이 성실한 것이었다가 거짓이 되고 선하다가 악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여 상제께서 매일 보고 계신다. 그리하여 계신공구(戒愼恐懼)-경계하며 삼가고 두려워함-하여 신독(愼獨)-홀로 삼감-함이 진실하고 진실하고 독실하여 천덕(天德)에 도달하였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상제관을 신의 모습을 밝히는 것보다는 수기(修己)의 문제로 귀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상제관을 인간의 윤리의식에 직결시켜 천이 사람의 선악을 살리는 바는 항상 인륜에 있으므로 사람이 수신(修身)하고 사천(事天)하는 것이 인륜으로서 치력(致力)하는 것이라고 하여 상제와 인간과의 관계를 현실윤리적인 차원에서 결정지으려 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즉 그의 사천, 사상제의 의식 즐겨서 편안하게 될 수 없으므로 군자가 될 수 없다.”라고 하여 주재자로서의 천이 인간에게 부여해준 윤리적 측면으로의 소명(召命)내지 명령(命令)으로 보았다. 주자는 성을 이(理)로 보았기 때문에 천명을 이로 보았으나, 다산은 선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화(禍)를 주는 것을 천명으로 보았다. 이러한 그의 천과 천명관의 연원에 대하여 “공맹(孔孟)시대의 원시유학을 바탕으로 하여 공자이전의 주재적 천사상에서 유래한 것에서 보는 입장과 전적으로 천주교의 영향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다산은 양쪽 모두의 견해를 이론적 바탕으로 삼았지만 경학 자체가 수사학(洙泗學)적-중국의 지명(산둥성지역)으로 공자가 살던 곳이라 하여 수사학이라 하면 공자의 가르침을 말함- 유학에 기반을 두었기에 원시유교의 고전적 성격의 이해로부터 그 연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지금까지 천명이 종교적, 윤리적 천명임을 밝힘으로써 다산의 사상적 기반이 성리학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알 수 있다. 다산은 天을 날로 굽어살피시어 선에 복을 주며 악에 벌을 주는 주재자임과 동시에 만물을 생성케 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또한 도덕실천을 감시하는 인격신(人格神)적인 상제를 설정함으로써 당시의 가군자(假君子)들이 내세우는 허위의식을 드러내고자 하였으며 천을 섬김에 그치지 않고 사람까지 섬기는 경천경인(敬天敬人)의 도리로 실심사천(實心事天)-참된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섬긴다-할 것을 강조하였다.3.2. 신독(愼獨)천-상제가 초월적 신명으로서 인간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알고 있으며 속속들이 감시하는 존재로 확인되면, 천-상제를 마주 대하는 인간의 감정은 가장 먼저 두려움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중용」의 양쪽에서 언급되고 있는 ‘신독(愼獨)’의 獨을 주자가 “남들은 모르지만 자기가 홀로 아는 자리”라 해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다산은 “군자가 어두운 곳에서도 벌벌 떨며 감히 악을 행하지 못하는 것은 ‘상제가 너에게 임하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그 홀로 있는 자리가 바로 상제말이 바로 빛나는 천명임을 아라서 따르고 순응하면 선(善)이 되고 상서로움이 되며, 태만이하여 어기면 악(惡)이 되고 재앙이 될 것이다. 군자가 경계하고 삼가 두려워함은 오로지 여기에 있다”고 하여 마음(道心) 속에서 분명하게 들리는 천명을 들어야 할 것과, 이렇게 천명을 듣는 자세는 천-상제를 마주하여 계신(戒愼), 공구(恐懼)하는 두려움의 각성임을 확인한다. 또한 천-상제가 인간의 도심에 명령하고 경계하여 이끌어주는데, 이를 따를 것인지 거스를 것인지를 결단하는 인간의 자세는 계신, 공구의 두려움을 지니는지 잃는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다산은 하늘에 대한 인간의 기본자세로 두려움을 강조하고 또 두려움을 수양의 필수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미약하지만 하늘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하늘의 은총 곧 천총(天寵)에 대한 인식도 나타난다. 곧 하늘은 성인(聖人)이나 범인(凡人)이나 모든 인간에게 같은 성품을 부여함으로써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 천총(天寵)의 사실로 제시되고 있다. 다산은 “천성에 편안하지 않으면 인간은 모두 천총(天寵)을 잃게 된다”고 하여, 하늘이 부여해준 성품을 따르고 이에 안심함으로써 하늘의 은총을 누릴 수 있음을 밝힌다. 천명을 두려워하면서 또한 천명에 안심하는 자세가 사천(事天)을 위한 자세인 것이다.3.3. 다산의 사천(事天) 사상다산은 주자학에서 제시하는 천지인의 ‘유기적 일체관’을 깨뜨리고 천(天)을 섬기는 ‘신앙적 인간’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그는 주자학의 치밀한 사유체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서학(西學)의 세계관을 수용하고 있다. 성리학에서는 ‘天’을 ‘理’로 정의, ‘天’에 대해 외경(畏敬)하는 인간의 정감이 결핍되어 ‘天’이 추상적 관념에 머물러 인격의 변화 일으켜 성인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능동적 역할 할 수 없다고 다산은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의 도덕행위에 대한 감시자로서 영명(靈明)한 지각능력이 있는 인격신적 존재로서 천(天) 또는 상제(上帝)를 언명한다. 다산은 이러한 상제설을 통해.
    인문/어학| 2006.06.01| 9페이지| 1,000원| 조회(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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