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칠의 일대기윈스턴 처칠은 역사상 가장 숨가쁜 변화와 격변의 시기에 세상에 태어났다. 아버지인 랜돌프 처칠 경과 어머니인 제니 제롬 처칠 부부의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유했던 가정환경에 비해 윈스턴 처칠은 비교적 외로웠던 유년기를 보냈다. 근대의 영국의 귀족인 아버지 랜돌프 경과 미국 뉴욕의 재벌의 딸이었던 제니 처칠은 사회적 야망에 전적으로 몰두하며 아들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처칠의 아버지는 처칠을 지진아로 여기고 거의 대화를 나누는 법이 없었으며, 어린 처칠에게 버럭 화를 내기 일쑤였다. 다행한 일은, 윈스턴이 태어난 직후 엘리자베스 앤 애버레스트 부인이라는 유모에게 양육이 맡겨졌다는 것이며, 따라서 처칠에게 미친 유모의 영향을 과소평가하기가 어렵다. 일곱 살 때 윈스턴 성 조지 스쿨로 보내지게 되었지만 난폭한 교장을 만나게 되어 피가 줄줄 흐르도록 매질을 당하기 일쑤 였다. 방학때 집에 돌아온 윈스턴의 엉덩이를 본 애버레스트 부인이 어머니를 불러 학교에서 자퇴시키를 권유했다. 그 후 1888년 처칠은 명문인 해로우 스쿨에 입학했다. 처칠은 열등생이었고, ‘열등 학급’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또한 윈스턴은 나이에 비해 체격이 외소했으며, 팔다리도 연약하고, 가슴도 작고 여위었으며, 다른 아이들보다 병치레도 잦았다. 그는 신체적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수영과 펜싱에 몰두했다. 그 후 처칠은 군인의 길을 걷기 위해 샌더스트에 입학했다. 샌더스트에서 처칠은 동급생 150명 중 8등으로 졸업하였다. 학교를 졸업 후 인도에로 파병을 간 처칠은 그 곳에서 중요한 전환기를 맞게 된다. 대학 교육을 받은 같은 또래의 남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처칠은 그들의 폭넓은 지식을 경탄했고 호기심과 야심이 폭발한 처칠은 가장 취약한 분야의 책들을 걸신들린 듯이 읽기 시작했다. 군 전역 후 처칠은 국회로 진출하였고 다시 해군장관이 되어 다다넬레즈 전투를 이끌다 패전하였으며 그 책임을 지고 장관을 물러나 있던 중 다시 국회에 진출했고 2차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해군장관에 복귀하였다. 2차세계 대전이 한참이었던 1940년 66세의 나이로 수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 뒤 71세에 수상직에 물러났다가 다시 1951년에 다시 수상에 자리에 올랐으며 1953년 중풍으로 인해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1955년 수상직에서 사임했다. 그러던 처칠은 1965년 심한 발작 후, 나흘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1965년 1월 24일 아침 8시에 숨을 거두었다.● 처칠의 리더쉽윈스턴 처질이 후세를 위한 “위대한 행동”의 본보기가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상식이다. 그러나 그가 외롭고 절망적인 유년기에서 벗어나려는 불굴의 의지에 의해서 그처럼 강인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처칠은 사람을 좌절시키고 황폐하게 만들어 쓰라린 고통을 털어버리고 미래를 쟁취하려는 의지를 꺽어버릴 수도 있었던 유년기를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낸 것이다. 어린 시절 처칠은 무한한 활력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왕성한 호기심은 군대 생활의 실용적인 지식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처칠은 멀리 인도 방갈로르의 영국 식민지 부대에 근무하는 동안 22번째 생일을 즈음해서 왕성한 지적 호기김이 처음으로 발동되는 것을 경험했다. 윈스턴이 방갈로르의 무더운 오후에 그토록 열정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실천한 독학은 평생토록 그에게 습관으로 남게 되었다.처칠은 일생동안 남다른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그의 용기가 분명히 육체적 힘이나 장대 같이 큰 키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유년기가 영웅을 만들어낼 만큼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처칠은 처음 저술한 어떤 책에서는 영국 군인들 가운데 가장 존경을 받는 전설적인 허버트 키치너 경을 비난했는데, 군대로 하여금 이방인의 우상을 모독하게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그의 육체적 용기도 마찬가지로 경이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처칠에게 리더십은 연극도 아니었고, 참된 자기 자신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의 리더십은 모범에 의거한, 탁월한 헌신과 희생을 통해 얻은 권위에 의거한, 그리고 경험이라는 불로 철저하게 단련된 용기에 의거한 리더십이다.위대한 지도자임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표시의 하나는 비판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리더십이란 결국 원칙을 지지하고, 권위를 행사하며, 그리고 자원, 변화, 권력을 배분하는 일등의 문제이다. 지도자의 기질은 그가 받은 비판에 의해서 검증된다. 처칠은 처음보터 강력한 지도자는 자동적으로 비판을 불러오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에 평안함이 있고,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이 있는 한 비판자들을 잘 다룰 수 있다고 하였다.리더십에 의미를 부여하는 여러 가지 감정과 경험들을 잊어버린 고위 인사들에게는 공통적인 경향이자 지도자에게 어려운 도전인 것은 인생의 거친 싸움을 인내하면서도 그 싸움을 가치 있게 하는 감정과 순수한 경이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이 리더십의 많은 함정에 빠지지 않았던 것은 그가 절대로 변명하는 법이 없는 낭만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또한 지도자들이 너무도 쉽게 잃어버리는 이러한 품성은 바로 순수한 충성심이다. 쓸모 있는 옛 친구에 대한 충성을 훨씬 넘어서는 그것은, 곤경이나 결점, 또는 견디기 힘든 반대에 직면해서도 도망가기를 거부하는 친구나 동료에 대한 참되고 애정 어린 충성심이다. 윈스턴 처칠은 사람들을 대하게 되었을 때 분명히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거만할 때가 많았고, 항상 성급했으며, 의심할 여지없이 자기 중심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신실했으며, 특히 친구들에게 극히 신실했다. 우정은 처칠에게 많은 것을 의미했다. 수는 비록 적었지만 그는 친구들을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친구들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리더십은 미래와 많은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실제로 미래에 대해 자신이 믿고 있는 바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이다. 처칠의 미래에 대한 열정적인 비전은 그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의 하나였다. 자신의 운명을 확신한 것처럼, 그는 또한 그가 말하는 “인류의 사명”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처칠의 철학에 따르면, 미래는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며. 어떤 세대를 막론하고 가장 위대한 사람은 다가올 미래에 대해 가장 명확한 비전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